미국 국립공원 이야기
미국은 아시아나 유럽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역사가 일천하여 고적 등 문화유적이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이런 탓에 미국인들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웅대한 자연 환경이다. 실재로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 등 미국의 장엄한 자연은 어떠한 문화유산 보다 사람을 경건케 한다. 이들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중 특히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세계 최초 최대 국립공원으로 홍보되어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국립공원으로 문화유산 대신 미국인의 자긍심을 지켜주고 있다.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1872년 최초의 국립공원인 엘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을 지정한 그랜트 대통령(Ulysses S. Grant)도 아니고 1916년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을 설립하여 국립공원의 관리에 이바지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도 아니다. 그는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설립자인 자연인 죤 뮤어(John Muir)이다. 그가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가 된 사정은 무엇일까?
죤 뮤어의 직업은 작가, 빙하연구가, 환경운동가, 생태연구가 등 다양하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를 단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윤리 사상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는 실용적이고 개척 마인드를 갖춘 미국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이상한 사람이다. 죤 뮤어는 자연 속에서 경건함을 찾고 풀과 심지어 바위에도 나름 영혼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연보호의 이유를 인간의 유익이 아닌 자연 자체를 위해서라고 주장하며 인간 개입의 최소화를 통한 자연 유지를 주장하였다. 이는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네이쳐(Nature) 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왈든(Walden)에서 찾을 수 있는 초월주의와 같은 흐름이다. 실재로 죤 뮤어가 젊은 시절 시에라 산맥 자연 속에서 에머슨의 책 네이쳐를 읽는 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였다는 회고는 이런 대목에서 이해가 된다.
죤 뮤어는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설립을 통해 세코이아(Sequoia) 지역 등 캘리포니아 시에라 산맥 주위의 자연 보호에 주력하였다. 특히,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그의 노력으로 보호된 대표적 지역이다. “자연의 보고 요세미티”(The Treasures of the Yosemite) “요세미티 국립공원 지정의 의의“(Features of the Proposed Yosemite National Park)과 같은 기고문을 통해 미국 사회에 많은 요세미티 지역 보호에 공감을 불러일으켜 1890년 미 연방의회가 요세미티 국립공원 지정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1903년 시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과 함께한 3일간의 요세미티 캠핑 여행은 미국 국립공원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기존의 국립공원들은 지정은 연방정부에서 하였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주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연방정부의 역할이 외교, 국방, 통화제도 등에 국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국립공원 관리에 소요되는 예산을 연방의회에서 연방제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뜩치 않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방의회를 포함하여 연방정부가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지정 법안이 의회에서 다루어질 때 캔자스 주 상원의원인 잉걸(Ingall) 의원은 연방정부가 엘로우스톤 국립공원이라는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를 하려는 필요성이 무엇인지 의문이며 만일 해당 지역의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처럼 민간에게 분할 위탁하여 관광 사업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에서도 당시의 국립공원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요세미티 공원이 1890년 미의회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익이 우선인 주정부는 요세미티 지역을 보호하기 보다는 지역 주 산업인 목축업자들의 양떼 방목을 방관함으로 요세미티 공원의 파괴를 사실상 방치하였다. 이에 죤 뮤어는 연방차원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며 당시 대통령인 시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에게 요세미티 계곡으로의 캠핑을 제안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리 죤 뮤어에게 캠핑을 사적으로 제안하고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죤 뮤어의 제안을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인 모습으로 연출하였다고는 하지만 여하튼 환경운동가와 대통령의 요세미티 캠핑은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1903년 동부 워싱턴 디씨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까지 기차를 타고 온 루즈벨트는 죤 뮤어와 마차를 타고 시에라 산맥 입구까지 가서 역사적인 캠핑을 시작한다. 첫날 거목들이 울창한 세쿼이야 대산림 지역인 마리포사 그로브(Mariposa Grove)에서 첫 밤을 보낸 루스벨트는 본인은 사실 캠핑의 첫날 요세미티 계곡을 연방정부가 책임지고 보호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회고하였다. 3일 동안 뮤어와 루스벨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며 트래킹을 하였는지 별빛이 쏟아지는 한밤 장작불을 키우고 어떤 토론을 벌였는지는 모른다. 식물학과 빙하에 조예가 깊었던 뮤어에게는 요세미티 지역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가 가득했음은 분명하다.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 로고
캠핑을 마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간 루스벨트는 연방차원에서 국립공원 관리를 공론화하였으며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연방차원의 보호 외에 5개 지역의 국립공원, 18개 국립유적지(national monuments), 55개의 국립조류보호구(bird sanctuaries)와 야생보호지구 그리고 150 여개의 국유림(national forests) 지역을 지정하였다. 이러한 지정의 배경에는 죤 뮤어의 추천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유물관리법(Antiquities Act)을 1906년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과학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지역을 국립유적지를 지정할 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이들의 보존임무를 담당하는 연방 조직을 내무부 산하에 설치하였다. 이 조직은 후에 우드로 윌슨이 서명한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설립에 관한 법률(Organic Act)으로 현재의 국립공원청이 된다. 이처럼 죤뮤어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보전 노력은 미국이 자랑하는 국립공원의 밑바탕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1832년 현 국립공원인 알칸사스(Arkansas)주의 온천지역이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유보지(Hot Springs Reservation)로 지정된 바 있어 옐로우스톤 이전에도 미국 연방 차원의 보호지구는 옐로우스톤 이전에도 존재하였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미국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도 미국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지도 의문이 있다. 왜냐하면 사실 엘로우스톤 국립공원 지정 이전인 1778년 몽골 정부가 수도 울란바토르 남쪽의 위치한 몽골인들의 성산 복드산을 사냥과 벌목이 금지된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였다는 점에서 복드 산이 현대적 의미의 국립공원의 효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옐로우스톤인지 몽골 복드산인지 호사가들에게는 좋은 이야기 거리이지만 정작 두 산들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무관심하게 묵묵히 인간들을 바라보고 품어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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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소병천(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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