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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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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익명 (미확인) | 금, 2019/04/19- 16:52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0] 종로도서관 ②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근대 문화시설인 도서관을 선구적으로 이끈 이범승의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범승의 공적과 별개로 일제가 경성도서관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의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식민 시대 일제의 도서관 정책을 고려하면, 일제가 이범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도서관 건립과 운영을 지원했다고 보는 게 진상에 가깝지 않을까. 이용재 교수가 이범승의 경성도서관 건립 제안에 대해 평한 부분을 살펴보자.

“조국의 왕통(王統)이 일제의 상징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일제를 향하여 조선 땅에 ‘민중의 대학’을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애국계몽사상의 실천 중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하겠다.”

도서관 건립을 통해 ‘애국계몽사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려 한 이범승이 일부러 일제의 비위를 맞추며 도서관을 ‘쟁취’했던 걸까. 경성도서관 이전과 이후 이범승의 행보가 애국계몽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있다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범승은 그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이범승의 애국계몽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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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사직공원에 재개관한 종로도서관 재개관 당시 종로도서관은 6만 권의 장서를 소장했고 하루 600여 명의 시민이 이용했다. 비슷한 시기인 1968년 8월 1일 종로도서관 근처에 사직 파라다이스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사직 파라다이스 수영장은 1969년 개장한 장충 수영장과 함께 인기 있는 서울의 야외 수영장이었다.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하는 선남선녀를 훔쳐보고 싶어서였을까. 한때 종로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좌석은 야외 수영장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였다. ⓒ 백창민

이범승은 1887년 8월 29일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 독법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이범승은 경성도서관 운영 시절인 1924년 4월부터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이사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당시 조선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를 11회나 면담하기도 했다.

경성도서관을 5년 동안 운영한 후에는 1926년 9월부터 고등관 5등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1928년 11월에는 쇼와 천왕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이후 조선박람회 사무위원,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황해도와 경상북도 산업과장을 지냈다. 1940년 9월부터는 경성에서 변호사를 개업해서 일했다.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활동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경력 때문에 이범승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경성도서관을 인수한 경성부는 이범승의 조카 이긍종을 분관장으로 임명한다.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 시대 첫 분관장을 맡은 이긍종은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긍종은 1926년 4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종로분관장을 맡았는데, 1929년까지는 촉탁, 1930년부터는 사서였다.

종로분관장을 그만둔 이긍종은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친일 신문인 <조선상공신문> 사장 겸 주필로 활동했고 ‘조선춘추회’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도서관과 언론 분야에서 활약한 이긍종은 <친일인명사전>에 삼촌 이범승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경성도서관을 분관으로 편입한 후 일제가 친일 성향 인물을 임명해서 도서관을 경영했음을 알 수 있다.

경성부윤 이범승과 종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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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종로도서관 열람실 풍경 1967년 7월 촬영한 이 사진은 종로도서관이 탑골공원에 머물던 시절 열람실 풍경이다. 지금처럼 열람실에 “칸막이”가 있지 않았는데, “정숙”과 함께 모자를 벗으라는 ‘탈모’ 안내가 벽에 부착돼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해방 후 이범승은 미군정 치하인 1945년 10월 25일부터 1946년 5월 9일까지 6개월 남짓 경성부윤을 맡기도 했다. 경성부윤은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장이다. 이범승이 ‘서울시장’이 아닌 ‘경성부윤’인 이유는 그가 재임할 때 서울은 ‘서울시’가 아닌 ‘경성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후임인 김형민이 1946년 9월 28일 서울특별시 승격과 함께 ‘초대 서울시장’이 됐음을 생각할 때 이범승은 ‘마지막 경성부윤’으로 일한 셈이다.

경성부윤 시절 이범승은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을 ‘종로도서관’으로 승격시켰다(종로도서관 초대 관장은 송몽룡이다). 승격한 종로도서관은 동대문도서관이 문을 여는 1971년 3월까지 남대문도서관(지금의 남산도서관)과 함께 수도 서울에 자리한 유이한 공공도서관으로 역할을 이어갔다.

도서관에 관심 많던 이범승이 경성부윤 또는 서울시장으로 오래 일했다면 해방 후 서울의 도서관 정책에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고집이 세고 자기 스타일이 강한 그는 미군정 책임자 윌슨 중령과 갈등을 빚다가 반년 만에 사임했다. 이범승은 1952년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19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경성부윤 외에 이범승의 이채로운 경력은 1957년 성균관 유도회(儒道會) 총본부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점이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심산 김창숙을 성균관대학교 총장에서 몰아내고 이듬해 친일파 출신 유도회 집행부를 구성한다. 이명세, 윤우경과 함께 이승만이 앉힌 친일파 출신 집행부 중 한 사람이 이범승이다.

종로도서관이 사직공원으로 이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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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을 부수고 지은 “파고다 아케이드” “파고다 아케이드”가 지어진 탑골공원 서문 일대에는 경성도서관, 지금의 종로도서관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종로도서관을 철거하고 파고다 아케이드를 짓는다.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파고다 아케이드는 당시에도 “불법 건축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1921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탑골공원에 있던 종로도서관은 1967년 10월 2일 서울시 도시계획사업으로 철거된다. 종로도서관 철거 및 이전 과정은 황당하기까지 한데, 이전할 건물을 먼저 짓고 도서관을 철거한 게 아니라 건물을 짓기도 전에 철거부터 먼저 했다. 심지어 철거가 확정된 종로도서관은 수개월 동안 이전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폐관 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시민의 지원과 각계의 관심으로 1967년 10월부터 사직공원 근처에 신축 공사를 시작해서, 1968년 8월 20일 지금의 모습으로 개관하긴 하나 종로도서관은 종암동 서울시 자재창고에 장서와 비품을 보관한 채 10개월 동안 휴관해야만 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공공도서관을 부수고 박정희 정권은 탑골공원 그 자리에 뭘 지었을까? 바로 ‘파고다 아케이드’라고 불린 상가를 만들었다. 탑골공원 구역을 따라 2층 높이 현대식 상가를 짓고 악기와 의류, 전자제품 매장을 들인 것이다.

종로도서관 철거뿐 아니라 유서 깊은 탑골공원을 상가 건물로 빙 둘러싼 것에 대해 당시에도 비판이 많았다. 3.1 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4.19 혁명 과정에서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리는 등 민중의 함성이 울려 퍼진 이곳을 상가 건설을 통해 ‘용도 변경’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한때 반도 조선 아케이드와 신신백화점과 함께 3대 아케이드형 상가로 꼽힌 파고다 아케이드는 결국 1983년 전두환 시대 철거된다. 하지만 종로도서관을 철거하고 상가 건물을 지은 이 사건은 박정희 시대 도서관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1964년과 1974년 소공동에 있던 남대문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남산으로 각각 이전한 것처럼, 박정희 시대 도서관은 도심에서 산으로,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나마 사직공원으로 옮긴 종로도서관은 종로구 관내로 옮겨 그 이름을 유지했지만,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옮긴 남대문도서관은 이름을 ‘남산도서관’으로 바꿔야 했다.

이승만 시대 그나마 도심에 있던 주요 도서관이 박정희 시대 외곽으로 밀려 난 건 뭘 의미할까. 1963년 <도서관법>이 처음으로 마련되긴 하나 박정희 시대 도서관이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근대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도서관은 그 과실을 함께 나누지 못한 채 여전히 ‘변방’에 머물렀다.

도서관의 처지는 우리 시대라고 크게 다를까. 2015년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사직단 복원 계획에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이 포함되면서 철거 및 이전이 거론되기도 했다. “‘왕조 시대 유적’ 복원을 위해 ‘공화국 시대 유적’을 파괴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며 문화재청이 물러서긴 했지만 말이다.

도서관 선구자의 친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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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찾아보니 지난 7일 종로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 우연인지 몰라도 종로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은 전3권 중 윤익선과 이범승, 이긍종의 친일 행적이 수록된 제2권만 없었다. ⓒ 백창민

오랜 역사만큼 많은 고서(古書)를 소장하고 있는 종로도서관 앞뜰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종로도서관 전신, 경성도서관을 세운 건립자의 업적을 기리며 1971년 9월 17일 세운 이범승의 흉상이다. 반세기 가까이 된 이범승 동상은 도서관인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운 동상이며, 울주도서관이 2017년 세운 엄대섭 동상과 함께 국내에서 단 둘 뿐인 ‘도서관인 동상’이다.

윤익선과 이범승은 우리 도서관 분야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친일 행적으로 인해 2009년 11월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됐다.

윤익선의 행적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1940년 4월부터 ‘대동일진회’ 산하기관인 ‘동학원’ 교장으로 활동한 것이다. 대동일진회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아들 이석규가 일본 우익단체 흑룡회의 지원을 받아 만든 친일단체다. 대동일진회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기치로 내걸고 활동했다. 윤익선은 1939년부터 일진회보에 ‘황인종은 결속하자’는 글을 기고하고, 1941년 8월 삼천리사 주최 좌담회에서 황국신민으로 임전국책(臨戰國策)에 전력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결의했다.

윤익선은 해방 후인 1962년 3월 <조선독립신문> 발간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는다.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윤익선은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친일부역 행위가 드러나면서 윤익선은 2010년 서훈이 취소되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이장(移葬)했다. 2010년 윤익선의 서훈 취소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국회부의장과 서울시장을 역임한 윤치영도 함께 서훈이 취소됐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가 적용한 것과 거의 동일한 기준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명을 선정해서 사전을 발간했다.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와해되지 않았다면 윤익선과 이범승은 오래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분받았을 것이다.

지난 7일 종로도서관을 직접 찾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친일인명사전>(전3권) 중 윤익선과 이범승, 이긍종의 친일 행적이 수록된 제2권만 없었다. 도서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참고도서여서 관외 대출도 불가능한 책이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분실됐다”라고 했다.

종로도서관 홈페이지를 검색해 봐도 <친일인명사전>은 역시 2권만 빠져 있었다. 종로도서관이 2권이 없음을 인식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했다는 건데, 누락을 알고도 다시 책을 채우지 않은 것이다.

혹시 몰라 17일 오후에도 책을 검색해 봤지만 역시 2권만 없었다. 이유가 궁금해 이날 종로도서관 측에 해명을 요청한 결과 “확인해 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8일 “찾아보니 서가에서 발견됐다. 이제 홈페이지에서도 검색할 수 있다”라고 알려왔다. 도서검색 결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건 단지 해프닝이었을까.

이범승 동상을 ‘철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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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 앞뜰에 있는 이범승 동상 이범승 동상은 1971년 당시 서울시 교육감 하점생이 세우고 동상 아래 이범승 업적에 대한 글은 종로도서관 9대 관장 이홍구가 썼다. 도서관인 동상 중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동상이다. 이범승 동상 아래 그의 업적을 새긴 비문에는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담겨 있지 않다. 반 세기 가까이 그의 동상은 “친일파”가 아닌 “도서관 선구자”로 종로도서관 입구를 지켰다. ⓒ 백창민

공공도서관 건립을 주도한 도서관 선구자가 모두 ‘친일파’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도서관 선구자로서 업적만큼 그 친일 행각도 제대로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 분야 선구자가 아쉬운 상황이라 해도 ‘업적’만 칭송하고 친일파로서 ‘죄상’을 눈감는 건 문제 아닐까.

친일파 동상 철거와 친일파 이름을 딴 도로명을 변경하자는 의견이 한창 일었다. 이런 맥락에서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이범승 동상에 대해 반세기 동안 도서관계에서 어떤 의견도 나오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도서관과 문헌정보학 분야의 역사적 무관심 때문인가, 도서관 선구자의 부끄러운 친일 행각을 덮기 위함인가. 종로도서관 이범승 동상은 ‘철거’하거나, 최소한 동상 옆에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적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틀이 놓인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일반 열람실)을 해방 후 70년이 넘도록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관련기사 : “도서관의 칸막이 공부방은 식민지배 잔재”).

1985년 11월 9일 대한도서관연구회 엄대섭 회장이 마련한 ‘한일 공공도서관 관계자 간담회’에서 일본 도서관 관계자는 한국 공공도서관을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도서관이 학생들에게 자리를 빌려주는 ‘대석업'(貸席業)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이 서구로부터 ‘번안한 도서관’을 이식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도서관을 ‘칸막이 열람실’ 위주로 운영하던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발 빠르게 도서관을 변화시켜 나갔다(일본 공공도서관에서 ‘칸막이 열람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역시 미국과 세계로부터 ‘도서관학'(문헌정보학)을 수입했다. 세계 도서관 변화를 직접 목도하고 그 흐름을 따라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 번안해서 이식한 ‘식민지 도서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도서관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과거의 제도와 운영을 관성적으로 답습한다면 우리 도서관은 언제까지나 ‘식민지 도서관’에 머물 것이다. 34년 전 일본 도서관 관계자가 통렬히 지적한 ‘대석업’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종로도서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14(사직동)
– 이용시간 : 인문사회자연과학실 / 어문학실(평일 09:00 – 22:00, 주말 09:00 – 17:00), 자연과학정보실(평일 09:00 – 20:00, 주말 09:00 – 17:00), 인왕관(평일 09:00 – 18:00, 토요일 09:00 – 17:00), 자율학습실 / 노트북실(평일 07:00 – 23:00, 11월-2월 평일 08:00 – 23:00, 주말 07:00 – 22:00, 11월-2월 주말 08:00 – 22:00)
– 휴관일 : 매주 둘째, 넷째 월요일, 법정공휴일
– 이용자격 : 서울시민, 서울 소재 직장인 또는 학생. 무료
– 홈페이지 : http://jnlib.sen.go.kr/
– 전화 : 02-721-0707
– 운영기관 : 서울시교육청

<2019-04-18>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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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5·18기록관서 11일부터 12월30일까지.

▲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나치 부역자들을 단죄한 프랑스의 사례와 5·18 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린다. 8일 5·18기록관에 따르면, 2014년 프랑스 파리 국립기록보존소(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처음 열린 ‘라 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비시 파리 베를린 1940~1945’ 전시회가 5·18기록관의 초청으로 오는 11일부터 12월30일까지 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2018.10.08. (사진 = 5·18기록관 제공)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나치 부역자들을 단죄한 프랑스의 사례와 5·18 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린다.

2014년 프랑스 파리 국립기록보존소(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처음 열린 ‘라 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비시 파리 베를린 1940~1945’ 전시회가 5·18기록관의 초청으로 오는 11일부터 12월30일까지 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8일 5·18기록관에 따르면, 이 전시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소장한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의 반역 행위와 반인도적 범죄, 나치의 지배정책 등을 고발하는 초청전이다.

광주 전시는 ‘파리-5·18 광주, 끝나지 않은 과거청산’이란 서브타이틀을 달고 ‘다시 시작하는 광주의 과거청산’ 패널 등을 특별 제작, 5·18 진상 규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선 2016년 서울 전시에 이어 두 번째로,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광주 전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기록관과 함께 이 전시를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국립기록보존소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역사자산인 5·18을 갖고 있는 광주에서도 프랑스처럼 과거청산 작업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광주 전시를 강하게 주문했다”고 밝혔다.

전시 구성은 5·18을 비롯해 ▲콜라보라시옹의 주역들 ▲공공의 적 ▲경찰조직의 콜라보라시옹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의 나치 부역 ▲경제계의 나치 부역과 강제동원 ▲가자, 전선으로! 독일군과 함께 등 8개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프랑스는 국권 수복 이후 과거사를 청산하며 12만명 이상을 법정에 세워 1500여명을 처형하고 3만8000명을 수감하는 등 나치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대거 단죄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나치 부역자들을 단죄한 프랑스의 사례와 5·18 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린다. 8일 5·18기록관에 따르면, 2014년 프랑스 파리 국립기록보존소(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처음 열린 ‘라 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비시 파리 베를린 1940~1945’ 전시회가 5·18기록관의 초청으로 오는 11일부터 12월30일까지 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2018.10.08. (사진 = 5·18기록관 제공) [email protected]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는 9000여 명이 약식 처형됐다. 프랑스는 7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치 부역자들을 추적하며 처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35년간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도 단 한명의 친일파도 처단하지 않았다. 5·18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또한 미흡하다.

5·18 기간에 발생한 피해자는 모두 5517명(광주시 1~6차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집계)에 이른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사망자는 155명이며 부상 후 사망자 110명, 행방불명자 81명, 부상자 2461명, 연행 구금 부상자 1145명, 연행 구금자 1447명, 재분류 및 기타 118명 등이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처형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법원 선고형량대로 옥살이를 한 사람도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해 16명이 일부 죗값을 치렀을 뿐이다. 사실상 ‘5·18 총지휘자’인 전두환은 회고록에 거짓기록까지 남겨놓고 있다.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정부기관이 주체가 돼 국가의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낸 이 전시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5·18 진상조사 작업도 프랑스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깊이 새기면서 진행돼야 하며, 우리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 오전 10시30분께 5·18기록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르네 니콜라 우즐로 부소장과 함세웅 이사장 등 다수의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email protected]

<2018-10-08> 뉴시스

☞기사원문: 과거사 청산, 프랑스와 5·18은 어떻게 다른가?…나치 부역자들 초청전

월, 2018/10/0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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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가 2018년 8월 20일 마지막 방송으로 9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으로 좋은 성과를 냈던 시즌1 〈역적〉을 발판삼아 시즌2는 연구소가 보유한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외부단체와 제휴를 통해 청취자를 늘려 장기적으로 연구소 미디어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내역사 시즌2에서는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의 대중역사강의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여행’(아쉽게도 개인사정으로 중단됨)을 필두로 조한성 연구원, 방은희 교육팀장, MC노가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간 ‘역전다방(역사를 전하는 수다방)’과 이순우 연구원의 식민지시대 자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인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가다)’ 그리고 역사이슈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는 ‘방학진 기획실장의 바하인드히스토리’까지 4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총 55개의 에피소드를 방송하였다.
국민TV와 협력하여 3개월간 영상방송을 제작하여 영상방송의 가능성도 타진하였다. 특히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에 맞춰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을 모시고 특별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청취자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내역사 시즌2는 5천여 명의 고정 청취자를 확보해 월 8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역사 팟캐스트 분야에서 10위권에 진입하여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는 시즌1, 2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제작노하우를 습득해 향후 장기적인 방송을 할 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소는 두 달 간 충전기를 갖고 나서 10월말쯤 시즌3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내역사 시즌2의 모든 에피소드는 오디오 팟빵, 아이튠즈 팟캐스트, 유튜브와 팟티를 통해서 다시 들을 수 있다.

• 김세호 PD

목, 2018/09/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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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독립군·광복군 정신 계승, 국군 역사에 편입 검토” 학술대회 개최 이례적

육군사관학교가 “독립군·광복군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특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관련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군의 기원을 독립군·광복군에서 찾는 내용의 세미나 등을 개최했으나, 육사가 직접 이 같은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육사가 그간 독립군·광복군 역사 계승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육사는 11일 서울 노원구 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특별 학술대회를 연다고 7일 밝혔다. 김완태 육사 교장(중장)은 학술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게재된 초대 말씀에서 “현재 군이 일제강점기에 독립군과 광복군이 수행한 독립전쟁을 국군의 역사와 연계 및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육사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하려 한다”고 말했다. 육군의 뿌리를 독립군·광복군에서 찾는 움직임을 이번 학술대회 개최를 계기로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신흥무관학교와 무장독립투쟁’ ‘독립군·광복군과 육군의 기원’ ‘육사의 효시에 대한 연구’ 등 3가지 소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 독립기념관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등 다수의 독립운동 관련 전문가들이 토론과 발제에 참여한다.

신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축사를 할 예정이다.

육사의 이런 움직임은 과거와 뚜렷이 대조된다. 육사는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11년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100주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하는 등 독립군 역사 계승에 소극적이었다. 육사 홈페이지에 나오는 주요 연혁을 봐도 육사는 1946년 5월 개교한 국방경비대사관학교를 모체로 삼고 있다.

육사의 이런 태도 변화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방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장은 지난 9월26일 단행된 군 인사를 통해 임명됐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12-07> 경향신문

☞기사원문: 정권 바뀌니 달라진 육사…‘임시정부’서 뿌리 찾는다

※관련자료

육사학술회의 –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歷史”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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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7/12/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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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502

안녕하세요?
위의 사이트는 모 교회의 계시판입니다.
건국 100주년이 아니다.
이승만은 배드로다.
등등 참 힘든 역사관으로 교인들이 힘들어 합니다.

최근에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까지 동원해서 몇개월간 계속 힘든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고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합니다.

o 대한민국의 위기와 기독교의 역할_건국 70주년의 의미

2018년 9월 16일(일요일)에는 다시 김문수 전 지사를 초청하여 2시간에 걸쳐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 강연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차이, 좌파의 근본 문제점, 좌파 탈출 경험, 좌파 정책의 필연적 실패 등에 대해 김문수 전 지사가 체험하여 느끼고 본 대로 진술하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사랑침례교회 서창동 캠퍼스로 오셔서 같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시: 2018년 9월 16일 오후 3시
강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강연 제목: 나의 좌파 체험 및 탈출기

o 이병태 교수: 문재인 정부 1년_한국 경제는 왜 위기인가? 최저 임금 소득 주도 성장의 허구

o 이춘근 박사: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건국과 부국강병 2부_박정희 시대의 국제 정세

o 김철홍 교수: 나는 어떻게 좌파를 버렸나?_공산주의 주사파 이해, 좌파 탈출

o 전교조의 실체와 학교 교육의 문제 1부_전교조의 정체 및 사상

o 홍지수 작가: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1부_정치적 금기어(PC)의 정의 및 계보, 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전 세계 좌경화

일, 2018/09/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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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아닌, 누구나 새기고 나눠야 하는 위안부 이야기

우리 청춘들이 뜨겁게 노래한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 <귀향 끝나지 않을 노래>

2017.12.5.() 세종M씨어터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들려주는 우리의 아픈 역사

 음악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감동의 무대

 

75천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국민의 영화 <귀향> 이 무대에서 재탄생됩니다.

잔혹하고 불편한 기억이지만

우리들이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입니다.

오늘을 통해 힘으로 굴복되어지는 피해자가 없고 전쟁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예매는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goo.gl/f2gf9f

– 2016년 개봉한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이 무대로 탄생한다

작곡 황호준, 영상감독 조정래와의 작업으로 한층 더 깊은 메시지를 던질 무대 <귀향>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 청소년국악단의 음악으로 새로이 기록 한다

영화 <귀향>의 주연배우 강하나, 박지희양이 직접 들려주는 나레이션과 아리랑 노래의 감동의 무대

공 연 명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제49회 정기연주회 귀향끝나지 않을 노래

일시장소

2017. 12. 5() 오후 730/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40,000 S30,000

관람연령

7세 이상 관람 가능 (미취학 아동 관람불가)

제작진

총연출 및 예술감독: 유경화 단장 / 연주: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영상연출: 조정래 감독, 위촉작곡 황호준

협연 JC curve, 씻김 바라지 박성훈, 무녀 박미옥

나레이션/노래:강하나, 박지희(영화귀향주연배우)

예매문의

세종문화회관 02-399-1000 www.sejongpac.or.kr

인터파크티켓 1544-1555 ticket.interpark.com

공연문의

서울시청소년국악단 02-399-1181~3

목, 2017/11/1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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