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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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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익명 (미확인) | 금, 2019/04/19- 16:52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0] 종로도서관 ②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근대 문화시설인 도서관을 선구적으로 이끈 이범승의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범승의 공적과 별개로 일제가 경성도서관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의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식민 시대 일제의 도서관 정책을 고려하면, 일제가 이범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도서관 건립과 운영을 지원했다고 보는 게 진상에 가깝지 않을까. 이용재 교수가 이범승의 경성도서관 건립 제안에 대해 평한 부분을 살펴보자.

“조국의 왕통(王統)이 일제의 상징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일제를 향하여 조선 땅에 ‘민중의 대학’을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애국계몽사상의 실천 중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하겠다.”

도서관 건립을 통해 ‘애국계몽사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려 한 이범승이 일부러 일제의 비위를 맞추며 도서관을 ‘쟁취’했던 걸까. 경성도서관 이전과 이후 이범승의 행보가 애국계몽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있다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범승은 그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이범승의 애국계몽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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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사직공원에 재개관한 종로도서관 재개관 당시 종로도서관은 6만 권의 장서를 소장했고 하루 600여 명의 시민이 이용했다. 비슷한 시기인 1968년 8월 1일 종로도서관 근처에 사직 파라다이스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사직 파라다이스 수영장은 1969년 개장한 장충 수영장과 함께 인기 있는 서울의 야외 수영장이었다.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하는 선남선녀를 훔쳐보고 싶어서였을까. 한때 종로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좌석은 야외 수영장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였다. ⓒ 백창민

이범승은 1887년 8월 29일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 독법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이범승은 경성도서관 운영 시절인 1924년 4월부터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이사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24년부터 1926년까지 당시 조선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를 11회나 면담하기도 했다.

경성도서관을 5년 동안 운영한 후에는 1926년 9월부터 고등관 5등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1928년 11월에는 쇼와 천왕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이후 조선박람회 사무위원,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황해도와 경상북도 산업과장을 지냈다. 1940년 9월부터는 경성에서 변호사를 개업해서 일했다.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활동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경력 때문에 이범승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경성도서관을 인수한 경성부는 이범승의 조카 이긍종을 분관장으로 임명한다.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 시대 첫 분관장을 맡은 이긍종은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긍종은 1926년 4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종로분관장을 맡았는데, 1929년까지는 촉탁, 1930년부터는 사서였다.

종로분관장을 그만둔 이긍종은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친일 신문인 <조선상공신문> 사장 겸 주필로 활동했고 ‘조선춘추회’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도서관과 언론 분야에서 활약한 이긍종은 <친일인명사전>에 삼촌 이범승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경성도서관을 분관으로 편입한 후 일제가 친일 성향 인물을 임명해서 도서관을 경영했음을 알 수 있다.

경성부윤 이범승과 종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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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종로도서관 열람실 풍경 1967년 7월 촬영한 이 사진은 종로도서관이 탑골공원에 머물던 시절 열람실 풍경이다. 지금처럼 열람실에 “칸막이”가 있지 않았는데, “정숙”과 함께 모자를 벗으라는 ‘탈모’ 안내가 벽에 부착돼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해방 후 이범승은 미군정 치하인 1945년 10월 25일부터 1946년 5월 9일까지 6개월 남짓 경성부윤을 맡기도 했다. 경성부윤은 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장이다. 이범승이 ‘서울시장’이 아닌 ‘경성부윤’인 이유는 그가 재임할 때 서울은 ‘서울시’가 아닌 ‘경성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후임인 김형민이 1946년 9월 28일 서울특별시 승격과 함께 ‘초대 서울시장’이 됐음을 생각할 때 이범승은 ‘마지막 경성부윤’으로 일한 셈이다.

경성부윤 시절 이범승은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을 ‘종로도서관’으로 승격시켰다(종로도서관 초대 관장은 송몽룡이다). 승격한 종로도서관은 동대문도서관이 문을 여는 1971년 3월까지 남대문도서관(지금의 남산도서관)과 함께 수도 서울에 자리한 유이한 공공도서관으로 역할을 이어갔다.

도서관에 관심 많던 이범승이 경성부윤 또는 서울시장으로 오래 일했다면 해방 후 서울의 도서관 정책에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고집이 세고 자기 스타일이 강한 그는 미군정 책임자 윌슨 중령과 갈등을 빚다가 반년 만에 사임했다. 이범승은 1952년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19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경성부윤 외에 이범승의 이채로운 경력은 1957년 성균관 유도회(儒道會) 총본부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점이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심산 김창숙을 성균관대학교 총장에서 몰아내고 이듬해 친일파 출신 유도회 집행부를 구성한다. 이명세, 윤우경과 함께 이승만이 앉힌 친일파 출신 집행부 중 한 사람이 이범승이다.

종로도서관이 사직공원으로 이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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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을 부수고 지은 “파고다 아케이드” “파고다 아케이드”가 지어진 탑골공원 서문 일대에는 경성도서관, 지금의 종로도서관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종로도서관을 철거하고 파고다 아케이드를 짓는다.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파고다 아케이드는 당시에도 “불법 건축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1921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탑골공원에 있던 종로도서관은 1967년 10월 2일 서울시 도시계획사업으로 철거된다. 종로도서관 철거 및 이전 과정은 황당하기까지 한데, 이전할 건물을 먼저 짓고 도서관을 철거한 게 아니라 건물을 짓기도 전에 철거부터 먼저 했다. 심지어 철거가 확정된 종로도서관은 수개월 동안 이전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폐관 직전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시민의 지원과 각계의 관심으로 1967년 10월부터 사직공원 근처에 신축 공사를 시작해서, 1968년 8월 20일 지금의 모습으로 개관하긴 하나 종로도서관은 종암동 서울시 자재창고에 장서와 비품을 보관한 채 10개월 동안 휴관해야만 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공공도서관을 부수고 박정희 정권은 탑골공원 그 자리에 뭘 지었을까? 바로 ‘파고다 아케이드’라고 불린 상가를 만들었다. 탑골공원 구역을 따라 2층 높이 현대식 상가를 짓고 악기와 의류, 전자제품 매장을 들인 것이다.

종로도서관 철거뿐 아니라 유서 깊은 탑골공원을 상가 건물로 빙 둘러싼 것에 대해 당시에도 비판이 많았다. 3.1 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4.19 혁명 과정에서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리는 등 민중의 함성이 울려 퍼진 이곳을 상가 건설을 통해 ‘용도 변경’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한때 반도 조선 아케이드와 신신백화점과 함께 3대 아케이드형 상가로 꼽힌 파고다 아케이드는 결국 1983년 전두환 시대 철거된다. 하지만 종로도서관을 철거하고 상가 건물을 지은 이 사건은 박정희 시대 도서관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1964년과 1974년 소공동에 있던 남대문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남산으로 각각 이전한 것처럼, 박정희 시대 도서관은 도심에서 산으로,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나마 사직공원으로 옮긴 종로도서관은 종로구 관내로 옮겨 그 이름을 유지했지만,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옮긴 남대문도서관은 이름을 ‘남산도서관’으로 바꿔야 했다.

이승만 시대 그나마 도심에 있던 주요 도서관이 박정희 시대 외곽으로 밀려 난 건 뭘 의미할까. 1963년 <도서관법>이 처음으로 마련되긴 하나 박정희 시대 도서관이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근대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도서관은 그 과실을 함께 나누지 못한 채 여전히 ‘변방’에 머물렀다.

도서관의 처지는 우리 시대라고 크게 다를까. 2015년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사직단 복원 계획에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이 포함되면서 철거 및 이전이 거론되기도 했다. “‘왕조 시대 유적’ 복원을 위해 ‘공화국 시대 유적’을 파괴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며 문화재청이 물러서긴 했지만 말이다.

도서관 선구자의 친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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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찾아보니 지난 7일 종로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 우연인지 몰라도 종로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은 전3권 중 윤익선과 이범승, 이긍종의 친일 행적이 수록된 제2권만 없었다. ⓒ 백창민

오랜 역사만큼 많은 고서(古書)를 소장하고 있는 종로도서관 앞뜰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종로도서관 전신, 경성도서관을 세운 건립자의 업적을 기리며 1971년 9월 17일 세운 이범승의 흉상이다. 반세기 가까이 된 이범승 동상은 도서관인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운 동상이며, 울주도서관이 2017년 세운 엄대섭 동상과 함께 국내에서 단 둘 뿐인 ‘도서관인 동상’이다.

윤익선과 이범승은 우리 도서관 분야에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친일 행적으로 인해 2009년 11월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됐다.

윤익선의 행적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1940년 4월부터 ‘대동일진회’ 산하기관인 ‘동학원’ 교장으로 활동한 것이다. 대동일진회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아들 이석규가 일본 우익단체 흑룡회의 지원을 받아 만든 친일단체다. 대동일진회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기치로 내걸고 활동했다. 윤익선은 1939년부터 일진회보에 ‘황인종은 결속하자’는 글을 기고하고, 1941년 8월 삼천리사 주최 좌담회에서 황국신민으로 임전국책(臨戰國策)에 전력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결의했다.

윤익선은 해방 후인 1962년 3월 <조선독립신문> 발간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는다.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윤익선은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친일부역 행위가 드러나면서 윤익선은 2010년 서훈이 취소되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이장(移葬)했다. 2010년 윤익선의 서훈 취소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국회부의장과 서울시장을 역임한 윤치영도 함께 서훈이 취소됐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가 적용한 것과 거의 동일한 기준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명을 선정해서 사전을 발간했다.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와해되지 않았다면 윤익선과 이범승은 오래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분받았을 것이다.

지난 7일 종로도서관을 직접 찾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친일인명사전>(전3권) 중 윤익선과 이범승, 이긍종의 친일 행적이 수록된 제2권만 없었다. 도서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참고도서여서 관외 대출도 불가능한 책이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분실됐다”라고 했다.

종로도서관 홈페이지를 검색해 봐도 <친일인명사전>은 역시 2권만 빠져 있었다. 종로도서관이 2권이 없음을 인식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했다는 건데, 누락을 알고도 다시 책을 채우지 않은 것이다.

혹시 몰라 17일 오후에도 책을 검색해 봤지만 역시 2권만 없었다. 이유가 궁금해 이날 종로도서관 측에 해명을 요청한 결과 “확인해 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8일 “찾아보니 서가에서 발견됐다. 이제 홈페이지에서도 검색할 수 있다”라고 알려왔다. 도서검색 결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건 단지 해프닝이었을까.

이범승 동상을 ‘철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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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도서관 앞뜰에 있는 이범승 동상 이범승 동상은 1971년 당시 서울시 교육감 하점생이 세우고 동상 아래 이범승 업적에 대한 글은 종로도서관 9대 관장 이홍구가 썼다. 도서관인 동상 중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동상이다. 이범승 동상 아래 그의 업적을 새긴 비문에는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담겨 있지 않다. 반 세기 가까이 그의 동상은 “친일파”가 아닌 “도서관 선구자”로 종로도서관 입구를 지켰다. ⓒ 백창민

공공도서관 건립을 주도한 도서관 선구자가 모두 ‘친일파’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도서관 선구자로서 업적만큼 그 친일 행각도 제대로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 분야 선구자가 아쉬운 상황이라 해도 ‘업적’만 칭송하고 친일파로서 ‘죄상’을 눈감는 건 문제 아닐까.

친일파 동상 철거와 친일파 이름을 딴 도로명을 변경하자는 의견이 한창 일었다. 이런 맥락에서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이범승 동상에 대해 반세기 동안 도서관계에서 어떤 의견도 나오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도서관과 문헌정보학 분야의 역사적 무관심 때문인가, 도서관 선구자의 부끄러운 친일 행각을 덮기 위함인가. 종로도서관 이범승 동상은 ‘철거’하거나, 최소한 동상 옆에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적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틀이 놓인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일반 열람실)을 해방 후 70년이 넘도록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관련기사 : “도서관의 칸막이 공부방은 식민지배 잔재”).

1985년 11월 9일 대한도서관연구회 엄대섭 회장이 마련한 ‘한일 공공도서관 관계자 간담회’에서 일본 도서관 관계자는 한국 공공도서관을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도서관이 학생들에게 자리를 빌려주는 ‘대석업'(貸席業)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이 서구로부터 ‘번안한 도서관’을 이식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도서관을 ‘칸막이 열람실’ 위주로 운영하던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발 빠르게 도서관을 변화시켜 나갔다(일본 공공도서관에서 ‘칸막이 열람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역시 미국과 세계로부터 ‘도서관학'(문헌정보학)을 수입했다. 세계 도서관 변화를 직접 목도하고 그 흐름을 따라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 번안해서 이식한 ‘식민지 도서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도서관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과거의 제도와 운영을 관성적으로 답습한다면 우리 도서관은 언제까지나 ‘식민지 도서관’에 머물 것이다. 34년 전 일본 도서관 관계자가 통렬히 지적한 ‘대석업’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종로도서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14(사직동)
– 이용시간 : 인문사회자연과학실 / 어문학실(평일 09:00 – 22:00, 주말 09:00 – 17:00), 자연과학정보실(평일 09:00 – 20:00, 주말 09:00 – 17:00), 인왕관(평일 09:00 – 18:00, 토요일 09:00 – 17:00), 자율학습실 / 노트북실(평일 07:00 – 23:00, 11월-2월 평일 08:00 – 23:00, 주말 07:00 – 22:00, 11월-2월 주말 08:00 – 22:00)
– 휴관일 : 매주 둘째, 넷째 월요일, 법정공휴일
– 이용자격 : 서울시민, 서울 소재 직장인 또는 학생. 무료
– 홈페이지 : http://jnlib.sen.go.kr/
– 전화 : 02-721-0707
– 운영기관 : 서울시교육청

<2019-04-18>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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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합 뉴스에서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백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를 죽인 몽둥이 “정의봉”을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전시하도록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어렸을 때에 선친께서 읽어주시던 백범 일지를 기억합니다.

또한 고인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고,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신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두희는 분명히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판결문에도 진범으로 되어 있고 수사 기록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법의 심판이 충분했냐와는 별개로 그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와 대한민국에서 모든 심판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테러가 성행하고, 법을 무시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이 추앙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까요?

대한민국에는 준법 정신과 법과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두희를 때려죽인 사람은 살인범이며, 우리 사회의 법치를 어지럽힌 범죄자입니다.

이 결정을 민주 시민의 입장에서 재고 부탁 드립니다.

 

월, 2018/10/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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讚朴琦緖先生處斷金九先生弑害犯安斗熙

 

誰何云國法(수하운국법)

處斷盡歡呼(처단진환호)

正義眞如此(정의진여차)

衆言大丈夫(중언대장부)

 

김구 선생 弑害犯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누가 나라의 법을 운운하는가

안두희 처단에 다 환호했었네

正義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時調로 改譯>

 

그 뉘 國法 말하는가 모두 환호했었네

올바른 도리란 것 참으로 이와 같느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弑害: 부모나 임금을 죽임. 시륙(弑戮).  시역(弑逆) *誰何: 누구 *國法: 나라의

법률이나  법규  *處斷: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衆言: 많은 사람의 말.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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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獨裁者金正恩

 

腹中何物在(복중하물재)

三代樂膏粱(삼대락고량)

再考人民苦(재고인민고)

其哀斷我腸(기애단아장)

 

독재자 김정은에게 묻는다

 

腹中에는 무슨 물건이 들어 있나

삼 代에 걸쳐 즐기는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롬 다시 생각하니

그 슬픔일랑 나의 창자를 끊는다.

 

<時調로 改譯>

 

배 속에 뭐가 있나 三代가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로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슬픔 나의 창자를 가닥가닥 끊는다.

 

*腹中: 배의 *何物: 무슨 물건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세 대. 三世 *膏粱:

고량진미(膏粱珍味). 기름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난 음식 *再考:어떤

일이나 문제 따위에 대해 다시 생각함 *斷腸: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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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신일철주금 손해배상 청구 최종 판결
“이번 판결이 외교적 분쟁 촉발 주장 적절치 않아”
“일본 정부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 할 일만”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에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인 김정주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온유 기자 = 시민사회단체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재판에 대한 공정 판결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을 앞두고 진행됐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로 늦춰진 판결이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후 빠르게 진행됐다”면서 “다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대법관들이 13명 중 8명이나 있는 조건에서 국가가 다시 피해자들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는 “ICJ의 경우 양국 정부가 모두 동의해야 이뤄질 수 있어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이어 “일본 측이 이번 판결이 마치 외교적 분쟁을 촉발하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법원도 이것이 가지는 외교적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며 “대법원은 일본 정부 입장이나 외교부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가 해야할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상복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기호지부지부장과 이규매 미쓰비스 중공업소송 원고 유족, 김정주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등도 참여했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일본 강제 동원 사건들은 외교적 분쟁이 아닌 정당한 사죄와 보상의 문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모든 것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에는 신일본주금 외에도 미쓰비시 중공업 동원 피폭 피해자 소송, 미쓰비시 중공업 여자근로정신대 동원피해자 소송 등 3건이 계류돼있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은 피해자 4명이 구 일본제철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제공한다고 회유해 일본에 갔지만 1941년부터 1943년 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고 2003년 최고 재판소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2005년 서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기각됐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며 앞선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결국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원고 일부가 승소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불복하면서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돼 오는 30일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다. 소송이 긴 시간 진행되며 피해자 4명 중 3명이 숨져 현재는 1명의 원고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늦추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mail protected]

<2018-10-24> 뉴시스

☞기사원문: 5년 끈 日강제동원 손해배상…”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관련기사

☞민중의소리: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최종판결 앞두고…“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쿠키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정의롭게 판결하라” 촉구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을 향해 강제동원피해자 김정주 할머니(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의 발언 영상.

수, 2018/10/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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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逸志讀後

 

愛國恒他事(애국항타사)

平生爲一身(평생위일신)

冊前無限愧(책전무한괴)

自責久愚民(자책구우민)

 

白凡逸志를 읽고 나서

 

나라 사랑 언제나 남의 일이었으니

평생토록 내 한 몸만을 위하였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

오래 못난 백성이었던 걸 자책한다.

 

<時調로 改譯>

 

愛國 남의 일인 듯 평생 한 몸 위했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져

긴 세월 愚民이었음을 스스로 꾸짖는다.

 

*愛國: 자기 나라를 사랑함 *逸志: 훌륭하고 높은 지조(志操). 세속을 벗어난 뜻

*他事: 다른 일. 또는 남의 *一身: 자기 *自責: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 *愚民: 우맹(愚萌). 어리석은 백성.

 

<2018.10.26, 이우식 지음>

금, 2018/10/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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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0/2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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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0/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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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성한 ‘한반도의 첫수도’에 이런 똥덩이를 전시해 놨는가?
고창 국화축제현장에 갔다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을 목도하였다. 국화축제 한 복판에 친일부역자 서정주의 친일대표시 국화옆에서가  버젓하게 서 있지 않은가.
매난국죽,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충성심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군자 중에 국화의 고혹한 향기 맡으러 갔다가 매국과 친일의 쓰레기가 쓴 시 제목을 버젓이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차마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 국화축제장에 치욕과 굴종, 그리고 노예의 정신을 은근히 주장하는
말당 서정주의 친일을 종용했던 시, 국화옆에서라는 이 더러운 문자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윽하고 깊은 향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악취가 진동하였다.  고창의 어떤 지식인이 의향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친일 부역자를 추종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고창의 이러한 전통을 더럽히고 있다.
그 똥덩어리가 국화축제장을  온통 악취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었다.

지방재정을 지원해서 열리는 지역의 축제 현장에 이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매국의 식민주의적인 전시행위에 국민의 혈세를 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일본을 추종하는 세력이 이 땅에 아직도 버젓이 활보하며, 활동하고 다니는가?
하루빨리 국민의 정신을 더럽히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 할 일이다.

 

월, 2018/10/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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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堂徐廷柱之松井伍長頌歌

 

附逆焉忘失(부역언망실)

看詩正可憎(간시정가증)

何人云泰斗(하인운태두)

不覺似伊藤(불각사이등)

 

미당 서정주의 ‘伍長 마쓰이 頌歌’

 

국가에 반역한 사실 어찌 잊어버리랴

詩를 보아 하니 참으로 가증스럽도다

그 어떤 이 泰斗 어쩌구저쩌구하는고

저 이등박문과 같음 깨닫지 못했도다.

 

<時調로 改譯>

 

附逆함 어찌 잊으랴 정말 가증스럽다

어떤 사람이 있어 泰斗를 운운하는고

伊藤과 같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도다.

 

<이우식 지음>

월, 2018/10/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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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촛불’ 2주년에 돌아보는 역사전쟁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이것이 나라냐?”고 분노하며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벌써 2년이 됐다. 그간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촛불민심이 요구한 ‘적폐청산’과 ‘국가재조’라는 혁명적 과제는 현실정치와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잠시 자숙하는 시늉을 하던 수구세력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촛불항쟁의 정신을 외면하고 거침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분단 70년이 넘어 찾아온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절호의 기회를 한갓 정치적 득실을 따져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숱한 개혁 입법도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두 차례 보수정권에서 고질화한 관료사회의 퇴행도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이제 일각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강변하며 현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통설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지부진한 현 상황을 남의 탓만으로 돌리며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근원을 찾아 효과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촛불민심의 선택과 위임을 받아 출범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권위를 지니는 동시에, 그 요구에 응답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함께 외쳤던 주장이 무엇이었던가를 곱씹어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사실 거창한 명제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하야–퇴진–탄핵-구속 촉구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지만, 이를 관통하는 구호는 ‘기본권의 보장’에 다름 아니었다. 각계의 각양각색의 슬로건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자연스레 수렴되었다. 즉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준수하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 2015.10.24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국정교과서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많은 이들은 자유 평등 민주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헌법정신이 서구사회로부터 이식된 개념으로 이해한다. 법제 과정이나 문언으로만 볼 때는 얼핏 그런 해석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근현대사 전반을 조망해 보면 우리 민족이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보편적 가치가 우리 스스로 수난 속에 스스로 체득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반봉건반외세운동, 3·1항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반제국주의와 민주공화운동, 사월혁명 5·18민주항쟁 6·10시민항쟁으로 이어지는 반독재민주화운동 등 면면히 이어지는 저항정신의 요체가 바로 헌법정신으로 현현되었던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부할 만한 전통으로 긍지를 가지기에 모자람이 없다.

촛불항쟁의 저변에는 이러한 역사의식의 계승이 작동하고 있었다. 항쟁의 직접적 계기는 물론 ‘최순실게이트’였다. 그러나 이는 도화선에 지나지 않을 뿐 그 근본 원인은 구조적인 데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기간 가장 두드러졌던 폐해는 지배층의 무분별한 사익집단화 현상이었다.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부터 재벌 관료 정치인 언론인 학자, 심지어 사법부조차도 철저하게 결탁하여 특권을 향유하며 불법과 부정을 서슴지 않았다. 갑질이 난무하고 부패가 만연했으며, 비판세력에 대한 사찰 음해 탄압이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재정권의 완벽한 부활이자 교활하고 세련된 파시즘의 대두였다.

다른 한편 역사와 교육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이를 전유하겠다는 망상은 왕조시대에도 지탄받았을 대표적인 폐정의 하나였다.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식세계마저 지배하려 했다. 역사와 교육을 도구삼아 미래세대까지 세뇌하려 기도한 것이다. 이명박은 과거사위원회 폐지를 첫 번째 국정과제로 공언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공공연하게 뉴라이트세력을 지원해 식민지미화론 이승만국부론 박정희신격화를 전파시켜나갔다. 여기에 다수의 언론과 학자들이 부역자 역할을 자임했다.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같은 도발은 ‘역사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역사정의실천연대라는 연대기구를 조직하고 역사변조에 정면으로 맞서나갔다. 시민사회와 학계가 힘을 합쳐 뉴라이트의 교학사 고교한국사를 원천 봉쇄하자, 박근혜는 한 술 더 떠 아예 국정 한국사교과서 편찬이라는 강수로 맞불을 놓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다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를 구성해 전 국민을 상대로 전국적인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박근혜의 오만과 무지는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었다.

결과는 놀랄 정도였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교육부와 교육청 수구언론과 극우단체를 총동원하고 전력을 기울여 역공작까지 벌였음에도,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며, 결국 폐기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박근혜가 국가기구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인 역사쿠데타가 실패로 막을 내린 것이다.

시민사회와 학계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시대착오적인 한국사 국정화를 강행한 박근혜의 빗나간 효도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그를 권좌에서 쫓겨나게 하는 한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구국의 지도자 박정희’라는 우상화의 허구를 드러내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했다.

친일세력 대 항일세력, 독재세력 대 민주세력, 냉전세력 대 평화세력. 어떤 이들은 이분법적인 역사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뿌리박은 수구세력은 결코 자발적으로 특권을 양보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작업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과 관용을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엄혹한 것이다.

내년은 3·1독립운동 100주년이다. 3·1독립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수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우리 역사상 초유의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려 백여 년 간에 걸쳐 다져온 민주공화주의가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이제 반석 위에 올라설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익집단의 재생산 구조를 타파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 그 지름길은 역사인식의 정립과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생활 속의 실천이다. 그래서 단언컨대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8-10-29> 프레시안

☞기사원문: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월, 2018/10/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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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28일 더불어민주당 이규희(왼쪽 첫번째) 의원과 준비위원회 관계자 등이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8.10.29. (사진=뉴시스 독자 제공) [email protected]

【천안·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천안시의 발굴 동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오전 매장지로 추정되는 직산 관아 일원에서 위령제를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 앞서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규희 국회의원(천안갑)과 육종영 천안시의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정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며 유해 발굴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길 준비위원회장은 29일 “11월 초 아산지역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충북대 발굴단의 현장답사 진행에 이어 천안시의회에 가칭 ‘천안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준비위원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천안시 직산읍 인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여 구에 달하는 매장 추정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지역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신청된 사건은 없고, 부역 혐의 희생 사건으로 신청된 사건 7건이 있다.

이 중 당시 직산면사무소(직산관아)와 관련해 지서장의 지시로 “200여 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금광구덩이에 죽이고 묻고 했다는 참고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 준비위의 설명이다.

▲ 【천안=뉴시스】이종익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가 23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현황 전수조사와 발굴조사 시행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3. [email protected]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제정될 경우 보수와 진보 측의 찬반 의견 대립으로 난항도 우려된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금정굴 사건과 관련해 전국에서 처음 조례안이 만들어져 2011년부터 6차례나 시의회에서 발의됐지만, 보수 단체와 정당 반발로 맞서다가 7년이 지난 올 9월 제정됐다.

육종영 시의원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해 평화와 인권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관련자료를 정리해 조례안 초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면 조례 절차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어가겠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단체에서 반대 여론이 감지되고 있어 민감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천안과 인접한 아산지역에서는 지난 3월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어린이 80여 구를 포함해 208명의 유해가 수습됐다.

[email protected]

<2018-10-29> 뉴시스

☞기사원문: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월, 2018/10/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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