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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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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익명 (미확인) | 월, 2019/04/08- 14:48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서훈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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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허형식 서훈추진위원회 장기태 위원장은 대구지방보훈청에 허형식 장군에 대한 포상을 신청했다. ⓒ 신문식

지난 2일에 마침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아래 민문연, 지회장 전병택)가 창립 이후 추진해 온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이 신청됐다. 이날 오전 11시 50분 민문연 구미지회의 장기태 허형식 장군 서훈 추진위원장과 신문식 회원(구미시의원)은 대구지방보훈청에 구미시 임은동 출신 허형식(1909~1942)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모바일 단체 대화방으로 낭보를 접하면서 나는 지난해 10월 21일, 110년 만에 이루어진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의 추모제를 떠올렸다. 13도 의병 연합부대(십삼도창의군)를 이끈 왕산이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것은 1909년 10월 21일이었다.

이날 추모제에서 절규에 가까운 통한의 추모사로 좌중을 숙연하게 만든 이가 장기태 위원장이었다. 곧이어 창립한 구미지회에서 우선 사업으로 허형식 장군 서훈을 추진할 때 그가 이를 맡아 책임지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련 글 :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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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1일, 왕산 선생 순국 110돌을 맞아 치러진 추모제에서 장기태 위원장은 절규에 가까운 통한의 추모사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전병택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만났더니 그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며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치사를 하다 말고 나는 서류를 들여다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서훈 신청이지 그게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모르는 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독립운동가 공적조사서, 평생 이력서, 제적등본, 족보 등을 비롯하여 관련 기사, 논문, 단행본, 중국어 자료 등 모두 8종 115쪽에 이르는 증빙자료를 모았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런 가외의 일에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은 누구인가

허형식은 최근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독립운동가다. 당숙인 왕산이 순국(1908)한 다음 해 임은동에서 태어난 허형식은 1915년 봄, 임은 허씨 일가의 집단 망명으로 만주로 간 이래 망국민이 겪어내야 하는 온갖 시련을 겪으며 항일전사로 성장했다. (관련 기사 :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중국인 지주와 마적, 친일 밀정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와 반일 반제의 사상을 갖게 된 허형식은 1920년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화요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군사부장이었던 최용건(해방 후 북한 부주석 역임)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 5월 만주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을 주도했던 그는 심양 감옥에서 평생 동지 김책(북한 부수상 역임)을 만났다.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이 만들어지면서 군사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허형식은 북만주 일대의 일본군 거점과 일본 농장 설비 등을 공격해 이름을 떨쳤다. 1936년 동북인민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으로 발전할 때도 그는 북만주 서북 방면의 유격투쟁을 이끌었다. 허형식은 1939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의 군장(軍長) 겸 총참모장에 올랐다.

동북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지도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수행한, 중국인과 한국인 등이 참여한 민족통일전선의 성격을 지닌 군사조직이었다. 전성기인 1938년께 3만 명이 넘었던 항일연군은 일제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고,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쳐 일본을 괴롭히곤 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제가 76만 명으로 늘린 관동군으로 토벌 작전에 나서면서 항일연군에게 시련과 위기가 닥쳐오자 중국공산당은 항일연군 지도부와 잔여 병력을 소련 영내로 이동시켰다.

1942년 소련 극동군이 동북항일연군의 잔류대원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教導旅)로 편성하면서 간부들을 소련군으로 편제했는데 이때 북만주의 허형식도 이 부대에 일방 편제되었다. 해방 후 북한 정권 건설의 핵심이 되는 최용건(부참모장), 김책(정치위원) 등이 지휘관이었는데 허형식은 김일성과 같이 ‘영장(營長)’이었으니 소련은 그를 김일성과 동급의 지휘관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허형식은 끝내 소련 국경을 넘지 않고 소부대 활동으로 무장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북 유격전구(遊擊戰區)와 인민을 지켰다. 전술, 전략적 판단 이전에 그는 양심상 동북의 전구와 인민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허형식 군장은 만주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뒤늦게 현장에 온 부하들은 그의 다리뼈 하나밖에 수습하지 못했다.

토벌군은 그의 머리를 베어 경안경찰서 입구에 매달았다. 백마를 타고 항일 파르티잔을 지휘하던 헌헌장부, 때로 본명보다 이희산(李熙山)이나 이삼룡(李三龍)으로도 불리었던 이 혁명가는 토벌대와 교전할 때 썼던 권총 한 자루를 남기고 풍운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지도하의 반일 유격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동북항일연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은 오래 잊히고 있었다. 무엇보다 동북항일연군에는 김일성, 김책, 최현, 최용건 등이 참여했고, 이들이 해방 후 북한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김일성과 동급의 동북항일연군 지휘관

허형식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구미 출신의 작가 박도가 실록 소설 <허형식 장군>(눈빛, 2016)을 펴내면서다. 작가는 허형식을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수석 연구위원의 평가도 비슷하다.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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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형식은 구미 출신의 박도 작가가 쓴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눈빛

왕산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할 때부터 장기태 위원장은 허형식에 매료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는 추모제 이후 <허형식 장군>을 읽고 그가 서훈을 받지 못한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훈을 신청할 직계후손이 없었다는 것과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재평가가 없었던 게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민문연 구미지회가 창립되자 자청해 서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전화와 메신저로 장기태 위원장과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이 문제를 팠다는 사실을 알았다. 준비를 어떻게 했냐니까 처음에는 인터넷 자료와 허 장군과 관련된 논문, 소설 등 자료수집을 한 달쯤 했고, 그 뒤에는 논문을 쓴 학자들과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가 만났다고 했다. 그 후 최종적으로 공훈 조서와 허 장군 평생 이력서를 준비하였다고.

그 과정에서 그는 왕산 허위 일가 후손들을 통해 허 장군의 친조카 허창수(74) 씨를 직접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허창수씨는 2010년 건국포장을 받은 허필(許苾)의 손자로, 부친은 허규식, 허형식 장군은 큰아버지가 된다.

허형식 친조카, 조부의 서훈도 모르고 살다

“그런데 허창수씨 댁에 갔는데 대문에 ‘독립유공자 문패’가 달려 있지 않더라고요. 이분은 조부가 서훈을 받은 사실도 모르고 있대요. 다음날 국가보훈처에 확인해 보니 후손을 못 찾아 훈장도 보관하고 있다네요. 그래서 유공자 후손 찾기 부서에 후손 가족관계증명서류(제적등본, 주민등록등본)를 보냈습니다. 조만간에 할아버지 훈장이 손자에게 전달될 거 같습니다.”

– 큰일 하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국내 생존해 있는 후손도 못 찾지요, 참… 힘들지는 않았어요?
“아니요. 오히려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허형식 장군에 대한 자료를 모아오신 박도 작가님. 자문 역할에다 고향 후배가 본인이 할 일을 한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논문자료를 주신 장세윤 동북아재단 수석 연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민문연 구미지회 회원님들도 힘이 되어 주셨고요.”

– 어때요? 서훈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희망적입니다. 이분은 항일투쟁 끝에 전사해 순국하였으니 당연히 국가에서 포상하리라 봅니다.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것도 더는 장애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서훈 받으신 분도 많으니까요.”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은 2000년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된 약산 김원봉 선생 같은 경우는 보수 세력의 반발이 극심하다. 약산의 서훈은 진작 이루어져야 했지만, 그가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부분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거기 견주면 해방 전에 일제와 전투 중에 전사한 허형식은 그런 걸림돌과 무관하다. 지난해 민문연 구미지회 창립 때 강연을 해주신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이 허형식 서훈에 다른 장애는 없는 거 같다고 말한 까닭도 거기 있다.

– 구미시민과 구미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구미에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선양사업과 후손에 대한 예우에 구미시가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일부 기념사업회 등 정작 해야 할 선양사업은 하지 않고 겉치레 행사에만 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미시민들께서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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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왕산기념관에서 베풀어진 왕산 위패 봉안과 사당 낙성 고유제에서 제관들과 함께 허경성 선생이 양복 차림으로 서 있다. ⓒ 구미시

지난 2일, 왕산기념관 옆 사당에서 왕산 허위 선생 위패 봉안과 사당인 경인사(敬仁祠)의 낙성 고유제가 열렸다. 구미시와 왕산기념사업회 주관의 이 행사에 왕산 선생의 친손자인 허경성(1928~ ) 선생도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행사 뒷이야기를 전해들은 민문연 회원들은 분개해 마지않았다.

아흔이 넘은 노령의 허 선생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에 참여했는데 행사 내내 서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관의 무신경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했는데 시청 누리집에 오른 행사 사진을 보고는 뜨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치단체와 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행사지만 유족 대표를 불러놓고 그에겐 의관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행사 내내 제대로 의관을 갖추어 입은 시장을 비롯해 지체 높은 제관들 사이에 허리 굽은 허 선생이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에게 조부의 영전에 헌작(獻爵)할 순서는 돌아왔을까.

행사가 끝나고 관계자들은 모두 내려가 버리고 홀로 남은 허 선생을 모신 건 장기태 위원장과 신문식 시의원이었다. 두 사람은 선생을 대구 산격동 자택까지 승용차로 모셔다 드렸다. 이들이 대구지방보훈청에 허형식 장군에 대한 서훈 신청을 한 것은 그다음 순서였다.

<2019-04-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관련기사 

☞연합뉴스: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매일일보: 구미 출신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 

☞경북일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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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을 위한 소송 건 >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을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명예훼손

 

 

늘 진보적이고 올바른 정의 실현의 선두에 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정상회담을 중계하던 YTN 뉴스채널에서 정부 통일연구원의 고위급 연구자가 크게 상식과 법을 파괴 했습니다.

 

 

여기 한 2분 쯤에서 이북의 고위 여성정치인에게 얼굴ㅇㅇ 이라고 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법과 여론 등으로 심판 할 수 있을런지요?

 

요즘 같은 미투와 통일 열풍 속에 지금 막 뜨고 있는 아이돌 여자멤버에게도 얼 굴 ㅇㅇ 이라고 못 할텐데 말입니다..

민주당의 추 미 애 의원에게 얼 굴 마 담 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 통일 연구기관의 고위연구자가 국가의 중앙 뉴스 에이전시에서 발언한 것이니 반드시 크게 이슈화 되어서, 엄벌해야 합니다.

 

꼭 검토해 주시고 심판의 물고를 열어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통일연구원에서 세금으로 월급을 받을 고위직원이 그런 반통일적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게 용서 하기 힘든 사안 인 듯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이나 협력 가능한 사안인지 검토를 부탁 드릴 수 있을런지요?

 

고맙습니다

일, 2018/04/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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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25일자 게시물에서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극단의 표현을 써가며 싸우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저의 고민을 밝히고,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시작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조 총장님께 전화로 문의하고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주장을 상세히 알아봐야 했고, 그래서 총장님께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을 통해서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와중에 운영위원회가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게시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청했습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 두 가지 요청은 작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극히 일부의 사항이고, 제가 궁금해 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 게시물을 통해 다시 밝혔습니다.

“이제 살짝 화가 나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화가 난다는 것입니까?

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한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논쟁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예단이나 편견 없이 듣는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을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에 따라 들을 경우 상대의 말은 왜곡되어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1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청자는 1차 왜곡된 말을 판단하는데 당연히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2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제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도 모릅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다.

저는 현재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재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월, 2018/04/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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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정관개정에 관해서도 설명했고

운영위원회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저의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충분히, 더 잘 설명 못한 것은 저의 한계일 수는 있습니다.

그동안의 대화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월, 2018/04/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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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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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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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_입헌공화국을 꿈꾸다”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2회 “파이팅은 일제 잔재인가”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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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수, 2018/05/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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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3회 “경복궁 수난사 – 조선물산공진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목, 2018/05/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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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_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목, 2018/05/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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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1.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을 공개하면서,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결과, 역사학계의 중론 등을 고려하고,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실시 등을 거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최종 확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화 전도사’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초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썼던 용어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새 집필 기준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로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다. 그 해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요청함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절차도 무시하였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 도덕(윤리), 정치, 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유독 역사과목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과목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발하였다.

3. 학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이명박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거로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적 이념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헌법 전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2년 12월 27일에 7차 개정된 이른바 유신헌법에서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전문을 근거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쓸 경우, 1972년 이전의 민주주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를 의미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것이다.

4. 수구-냉전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이라며, 이를 사용해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현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확대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5.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의 이념인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환원’한 것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은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6.국정교과서 소동으로 늦춰진 새로운 역사교과서 적용년도는 2020년이다. 불과 2년도 남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제작에 부역하였던 교육부가 국민 앞에 속죄하는 길은 오류를 최소화한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수구-냉전 세력의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려 했던 실패를 되새겨, 헌법이념인 독립운동-민주주의-평화통일의 가치를 담은 검정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끝>

2018년 5월 3일
역사정의실천연대

목, 2018/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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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공동 주최 춘계 학술대회  

대회 주제: 구술사와 공동체 아카이브: 구술, 기록, 지역의 만남

일시: 2018526() 오전 10오후 630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Minerva Complex 지하 2층 국제회의장  

대회 일정  

9:30 ~             등록 및 개회사       사회자 : 김수영(한국구술사학회 총무이사)

9:30 ~ 10:00    축사 : 노명환(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회장)

                                  이해영(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윤택림(한국구술사학회 회장)  

10:00 ~ 12:00   1 세션 지역과 아카이브       사회자 : 김종애(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1 주제 : 지역구술기록관리의 현황과 과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발표자 : 배은희(빨간집(기록조사기획사))

                  토론자 : 정연경(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2 주제 : 지역 디지털 아카이브 경기도메모리구축과 운영

                  발표자 :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토론자 : 이호신(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3 주제 : 지역의 정체(停滯)와 변화(變化)에 대한 주민의 기억

                    발표자 : 손동유(아카이브네트워크)

                   토론자 : 윤은하(전북대학교 대학원 기록관리학과)

13:00 ~ 15:40   2 세션 구술사와 지역사      사회자 : 안승택(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제 1 주제 : 구술사와 연극, 지역에서 만나다

                        발표자 : 김영미(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토론자 : 이하나(연세대학교 사학과)  

            제 2 주제 : 장소 기억과 기록 그리고 로컬리티: 대구 달성의 장소 아카이브와 장소성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자 : 정유진(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토론자 : 추명희(한국구술사연구소)

      3 주제 : 성남 제 1공단 빠이롯트 공장 구술채록을 통해 본 산업문화사적 의미

                        발표자 : 이정훈(전북대학교 무형문화연구소)

                      토론자 : 장미현(한국학중앙연구원)  

            제 4 주제 : 수복지역민의 반공·재건 서사와 지역사 연구   

                        발표자 : 한모니까(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토론자 : 김아람(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5:40 ~ 16:00   휴 식 

16:00 ~ 17:20   3 세션 구술과 기록 연구     사회자 : 오명진(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제 1 주제 : 대학기록관에서의 구술채록 수집 활동 

                      발표자 : 조용성(한국외대 역사기록관)

                     토론자 : 조석연(한국학지식정보센터)  

           제 2 주제 : 기록의 이면: 구술을 통해 바라본 코트라맨들의 경험

                               발표자 : 김명훈(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토론자 : 이세진(한국외대 사학과)  

17:20 ~ 18:30   종합토론      좌장 :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월, 2018/05/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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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4회 “망국의 굴욕, 헌상품”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5/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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