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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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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익명 (미확인) | 월, 2019/04/08- 14:48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서훈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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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허형식 서훈추진위원회 장기태 위원장은 대구지방보훈청에 허형식 장군에 대한 포상을 신청했다. ⓒ 신문식

지난 2일에 마침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아래 민문연, 지회장 전병택)가 창립 이후 추진해 온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이 신청됐다. 이날 오전 11시 50분 민문연 구미지회의 장기태 허형식 장군 서훈 추진위원장과 신문식 회원(구미시의원)은 대구지방보훈청에 구미시 임은동 출신 허형식(1909~1942)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모바일 단체 대화방으로 낭보를 접하면서 나는 지난해 10월 21일, 110년 만에 이루어진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의 추모제를 떠올렸다. 13도 의병 연합부대(십삼도창의군)를 이끈 왕산이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것은 1909년 10월 21일이었다.

이날 추모제에서 절규에 가까운 통한의 추모사로 좌중을 숙연하게 만든 이가 장기태 위원장이었다. 곧이어 창립한 구미지회에서 우선 사업으로 허형식 장군 서훈을 추진할 때 그가 이를 맡아 책임지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련 글 :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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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1일, 왕산 선생 순국 110돌을 맞아 치러진 추모제에서 장기태 위원장은 절규에 가까운 통한의 추모사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전병택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만났더니 그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며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치사를 하다 말고 나는 서류를 들여다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서훈 신청이지 그게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모르는 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독립운동가 공적조사서, 평생 이력서, 제적등본, 족보 등을 비롯하여 관련 기사, 논문, 단행본, 중국어 자료 등 모두 8종 115쪽에 이르는 증빙자료를 모았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런 가외의 일에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은 누구인가

허형식은 최근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독립운동가다. 당숙인 왕산이 순국(1908)한 다음 해 임은동에서 태어난 허형식은 1915년 봄, 임은 허씨 일가의 집단 망명으로 만주로 간 이래 망국민이 겪어내야 하는 온갖 시련을 겪으며 항일전사로 성장했다. (관련 기사 :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중국인 지주와 마적, 친일 밀정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와 반일 반제의 사상을 갖게 된 허형식은 1920년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화요파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군사부장이었던 최용건(해방 후 북한 부주석 역임)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 5월 만주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을 주도했던 그는 심양 감옥에서 평생 동지 김책(북한 부수상 역임)을 만났다.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이 만들어지면서 군사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허형식은 북만주 일대의 일본군 거점과 일본 농장 설비 등을 공격해 이름을 떨쳤다. 1936년 동북인민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으로 발전할 때도 그는 북만주 서북 방면의 유격투쟁을 이끌었다. 허형식은 1939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의 군장(軍長) 겸 총참모장에 올랐다.

동북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지도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수행한, 중국인과 한국인 등이 참여한 민족통일전선의 성격을 지닌 군사조직이었다. 전성기인 1938년께 3만 명이 넘었던 항일연군은 일제의 만주 및 중국 침략에 커다란 장애였고,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쳐 일본을 괴롭히곤 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제가 76만 명으로 늘린 관동군으로 토벌 작전에 나서면서 항일연군에게 시련과 위기가 닥쳐오자 중국공산당은 항일연군 지도부와 잔여 병력을 소련 영내로 이동시켰다.

1942년 소련 극동군이 동북항일연군의 잔류대원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教導旅)로 편성하면서 간부들을 소련군으로 편제했는데 이때 북만주의 허형식도 이 부대에 일방 편제되었다. 해방 후 북한 정권 건설의 핵심이 되는 최용건(부참모장), 김책(정치위원) 등이 지휘관이었는데 허형식은 김일성과 같이 ‘영장(營長)’이었으니 소련은 그를 김일성과 동급의 지휘관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허형식은 끝내 소련 국경을 넘지 않고 소부대 활동으로 무장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북 유격전구(遊擊戰區)와 인민을 지켰다. 전술, 전략적 판단 이전에 그는 양심상 동북의 전구와 인민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허형식 군장은 만주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뒤늦게 현장에 온 부하들은 그의 다리뼈 하나밖에 수습하지 못했다.

토벌군은 그의 머리를 베어 경안경찰서 입구에 매달았다. 백마를 타고 항일 파르티잔을 지휘하던 헌헌장부, 때로 본명보다 이희산(李熙山)이나 이삼룡(李三龍)으로도 불리었던 이 혁명가는 토벌대와 교전할 때 썼던 권총 한 자루를 남기고 풍운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지도하의 반일 유격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동북항일연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은 오래 잊히고 있었다. 무엇보다 동북항일연군에는 김일성, 김책, 최현, 최용건 등이 참여했고, 이들이 해방 후 북한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김일성과 동급의 동북항일연군 지휘관

허형식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구미 출신의 작가 박도가 실록 소설 <허형식 장군>(눈빛, 2016)을 펴내면서다. 작가는 허형식을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수석 연구위원의 평가도 비슷하다.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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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형식은 구미 출신의 박도 작가가 쓴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 눈빛

왕산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할 때부터 장기태 위원장은 허형식에 매료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는 추모제 이후 <허형식 장군>을 읽고 그가 서훈을 받지 못한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훈을 신청할 직계후손이 없었다는 것과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재평가가 없었던 게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민문연 구미지회가 창립되자 자청해 서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전화와 메신저로 장기태 위원장과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이 문제를 팠다는 사실을 알았다. 준비를 어떻게 했냐니까 처음에는 인터넷 자료와 허 장군과 관련된 논문, 소설 등 자료수집을 한 달쯤 했고, 그 뒤에는 논문을 쓴 학자들과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가 만났다고 했다. 그 후 최종적으로 공훈 조서와 허 장군 평생 이력서를 준비하였다고.

그 과정에서 그는 왕산 허위 일가 후손들을 통해 허 장군의 친조카 허창수(74) 씨를 직접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허창수씨는 2010년 건국포장을 받은 허필(許苾)의 손자로, 부친은 허규식, 허형식 장군은 큰아버지가 된다.

허형식 친조카, 조부의 서훈도 모르고 살다

“그런데 허창수씨 댁에 갔는데 대문에 ‘독립유공자 문패’가 달려 있지 않더라고요. 이분은 조부가 서훈을 받은 사실도 모르고 있대요. 다음날 국가보훈처에 확인해 보니 후손을 못 찾아 훈장도 보관하고 있다네요. 그래서 유공자 후손 찾기 부서에 후손 가족관계증명서류(제적등본, 주민등록등본)를 보냈습니다. 조만간에 할아버지 훈장이 손자에게 전달될 거 같습니다.”

– 큰일 하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국내 생존해 있는 후손도 못 찾지요, 참… 힘들지는 않았어요?
“아니요. 오히려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허형식 장군에 대한 자료를 모아오신 박도 작가님. 자문 역할에다 고향 후배가 본인이 할 일을 한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논문자료를 주신 장세윤 동북아재단 수석 연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민문연 구미지회 회원님들도 힘이 되어 주셨고요.”

– 어때요? 서훈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희망적입니다. 이분은 항일투쟁 끝에 전사해 순국하였으니 당연히 국가에서 포상하리라 봅니다.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것도 더는 장애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서훈 받으신 분도 많으니까요.”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은 2000년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최근 논란이 된 약산 김원봉 선생 같은 경우는 보수 세력의 반발이 극심하다. 약산의 서훈은 진작 이루어져야 했지만, 그가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부분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거기 견주면 해방 전에 일제와 전투 중에 전사한 허형식은 그런 걸림돌과 무관하다. 지난해 민문연 구미지회 창립 때 강연을 해주신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이 허형식 서훈에 다른 장애는 없는 거 같다고 말한 까닭도 거기 있다.

– 구미시민과 구미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구미에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선양사업과 후손에 대한 예우에 구미시가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일부 기념사업회 등 정작 해야 할 선양사업은 하지 않고 겉치레 행사에만 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미시민들께서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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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일, 왕산기념관에서 베풀어진 왕산 위패 봉안과 사당 낙성 고유제에서 제관들과 함께 허경성 선생이 양복 차림으로 서 있다. ⓒ 구미시

지난 2일, 왕산기념관 옆 사당에서 왕산 허위 선생 위패 봉안과 사당인 경인사(敬仁祠)의 낙성 고유제가 열렸다. 구미시와 왕산기념사업회 주관의 이 행사에 왕산 선생의 친손자인 허경성(1928~ ) 선생도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행사 뒷이야기를 전해들은 민문연 회원들은 분개해 마지않았다.

아흔이 넘은 노령의 허 선생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에 참여했는데 행사 내내 서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관의 무신경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했는데 시청 누리집에 오른 행사 사진을 보고는 뜨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치단체와 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한 행사지만 유족 대표를 불러놓고 그에겐 의관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행사 내내 제대로 의관을 갖추어 입은 시장을 비롯해 지체 높은 제관들 사이에 허리 굽은 허 선생이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에게 조부의 영전에 헌작(獻爵)할 순서는 돌아왔을까.

행사가 끝나고 관계자들은 모두 내려가 버리고 홀로 남은 허 선생을 모신 건 장기태 위원장과 신문식 시의원이었다. 두 사람은 선생을 대구 산격동 자택까지 승용차로 모셔다 드렸다. 이들이 대구지방보훈청에 허형식 장군에 대한 서훈 신청을 한 것은 그다음 순서였다.

<2019-04-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관련기사 

☞연합뉴스: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매일일보: 구미 출신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 

☞경북일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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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 조사 결과… “충실한 이행 촉구” 결정문 홈페이지에 게재

▲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의 강제노역이 행해졌던 군함도. ⓒ 위키백과

유네스코가 일본이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후속조치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일본은 지난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후속조치로 한국인 노동자의 강제노역 등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오는 16일부터 온라인으로 열릴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한국 시간으로 12일 오후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 점검 결정문을 게재했다.

이 결정문은 지난 6월초 세계유산센터와 세계기념물유적협의회의 추천을 받아 호주, 벨기에, 독일 등의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을 도쿄로 파견, 일본 정부가 만든 도쿄산업유산정보센터를 직접 방문한 뒤 만든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례적 강한 문구… 일본의 약속 불이행 국제사회가 확인”

유네스코는 결정문에서 ▲ 그간 일본의 세계유산위원회 결정 내용과 일본의 약속 미이행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아주 강하게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 충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제5항에서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하게 유감 표명(strongly regrets)’이라고 돼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국제 기구의 결정문 안에 ‘strongly regrets’란 표현이 들어간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라며 “그동안 일본이 충실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명시적으로 확인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결정문은 또 이어진 제6항에서 ‘당사국이 관련 결정을 이행함에 있어 아래 사항들을 포함하는 공동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할 것을 요청(requests)한다’고 돼있어 일본측이 5개 사안을 충분히 고려해서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5개 사안은 ▲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 마련 ▲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 ▲ 희생자 기리기 위한 조치 ▲ 국제 모범사례 고려 ▲ 관련 당사자간 대화 지속 등이 포함돼 있다.

당국자는 이 가운데 “특히 두 번째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서 가혹한 조건하에 강제노역했다는 사실과 세 번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표현은 2015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될 당시 일본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라며 “이 내용이 결정문 각주로는 들어간 적이 있어도 본문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정문의 내용 자체가 과거와는 달리 공동조사단의 객관적인 심사 결과를 인용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국제모범 사례에 대해서는 “독일의 탄광, 제철소 등 2차대전 때 강제노역 시설에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기념비 등이 설치돼있다”며 “일본측에서도 유사한 조치를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년 2월 도쿄의 정보센터가 객관적으로 잘 건립될 수 있도록 개관 전 일본측에 공동조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양국간 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세계유산의 본질적인 특수성이 완전히 훼손됐을 경우에 한해 지정이 취소될 수 있으나 유네스코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에 강한 결정문이 나온만큼 일본측이 결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는커녕 사실 부정하는 자료만 전시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2015년 7월 군함도 등 일본의 23개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는데, 당시 위원회는 각 시설에 전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전략을 마련하라고 일본에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일본 대표는 ▲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동원되고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 ▲ 인포메이션 센터와 같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시키겠다 등 2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당시 약속했던 조치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급기야 일본의 근대산업 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도쿄에 문을 연 도쿄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강제노역을 부정하거나 희석시키는 증언 또는 자료들이 전시됐다.

이에 외교부 2차관이 즉각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강력한 유감을 표시하고, 장관 명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발송해서 약속이 이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김경년(sadragon)

<2021-07-12> 오마이뉴스

☞ 기사원문: 유네스코, 일본에 “군함도 강제노동 부정 강한 유감”

※관련기사

☞뉴시스: 유네스코 “日, 군함도 강제노역 알려야…불이행 강한 유감”(종합)

☞한겨레: 유네스코, 일 군함도 등에 강제동원 기록 미이행 “강하게 유감”

화, 2021/07/1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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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목, 2021/07/1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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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세계유산위, ‘일본에 유감 표명’ 결정문 채택해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故) 서정우씨 등의 영상은 최초로 공개됐다. 2021.7.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혼잣말을 하면서 매일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군함도(하시마·端島) 강제동원 피해자 서정우 씨)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산업시설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다루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 주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전시회를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16일 밝혔다.

전시 영상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열네 살에 하시마 탄광에 동원됐다가 이후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고(故) 서정우(1928∼2001) 씨의 영상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사복형사에게 연행돼 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갔던 손용암(78)씨,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제련소로 강제동원된 류기동(79)·손성춘(76)·이영주(77)씨 영상은 올봄 촬영돼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다.

징용 경험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군수시설에서 탈출하려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잇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가늠될 정도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보통 강제동원을 떠올리면 ‘배고프다’ ‘아프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안다”며 “이번 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게 됐는지, 현장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증언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제공한 영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이 제공한 중국인 포로, POW연구회가 제공한 연합군 포로의 증언 영상을 함께 전시해 강제노동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연구소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2021.7.16 [email protected]

한편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센터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2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군함도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사단은 일본이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일본의 관점뿐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피해자의 시각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일본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르면 이달 2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노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공개한 권고를 지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권고를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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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연합뉴스

☞ 기사원문: 피해자 육성 담은 ‘일제 강제동원’ 전시회 서울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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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등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 증언 공개

☞이투데이: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의 증언

금, 2021/07/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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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 전경. 김영민 기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이 ‘군함도’(하시마·端島) 등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담긴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 정부를 향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 등의 강도높은 표현이 담긴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22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의문에서 군함도에 관해 설명하는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등이 강제노역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역시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 다수 포함된 일련의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징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던 것과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인권 침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의 옛 군함도 주민 동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정부와 뜻있는 한일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징용 등 강제 노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도록 전시관을 개선할 것을 거듭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며 주장해왔다.

앞서 일본은 유네스코의 지적에 반발해왔다. 지난 12일 결정문이 최초 공개되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튿날인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국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왔다”고 주장했다. 교도통신도 지난 17일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론을 펼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일본은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련 설명을)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하지만 결정문은 토의 없이 채택됐으며, 일본 측도 이에 대해 추가 발언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21-07-22> 경향신문

☞기사원문: 유네스코, ‘일본 군함도 왜곡’ 결정문 만장일치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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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유네스코, ‘日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징용설명 부족”

☞한국일보: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강한 유감”

☞아시아경제: 유네스코, 日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의문 채택

☞뉴시스: 유네스코, 日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정문 채택…”강한 유감”

☞MBC: 유네스코, ‘日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의 채택

☞SBS: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 왜곡 비판결의 채택…”개선하라” 요구

금, 2021/07/2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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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희생 조선인 추도 비문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폭동으로 희생된 조선인 6천여 명을 추도하는 도쿄도 위령당 내의 비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26일 성명을 내고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모사업 진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2023년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로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진상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국회도 나서 자료 보존과 공개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9월 1일을 국가 추모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송인동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 원로 17명이 참여했다.

<2021-07-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사회 원로들 “日간토학살 진상규명·추모사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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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소 6600여명의 학살… 일본 의원도 나섰는데 우리 의원은 왜 말이 없나

☞오마이뉴스: “일본을 벌하라, 나는 죄가 없다” 예순 두군데나 찔린 조선인이 남긴 유언

화, 2021/07/2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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