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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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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17:44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주최
대규모 상황극으로 100년 전 만세함성 되살려

800명 청소년·시민, 행사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
새로운 100년 위해 ‘친일 청산’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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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행주산성에서, 마을에서, 배 위에서…. 100년 전 행주나루터에서 울려 퍼졌던 고양땅 선조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가 주최한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지난달 30일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열렸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행진에 앞장섰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은 만세를 선창했다. 그러나 이날의 재현행사를 성대한 기억과 체험의 장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800여 명 시민과 청소년들이었다. 100년 전 기미년 3월, 민족대표와 지식인·학생들이 앞장서 시작한 독립만세의 외침이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와 마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을 연상케 했다.

고양시와 고양시3·1혁명100주년추진위원회, 민족얼지킴이,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행주어촌계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고양시 소재 10여 개 학교 5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겼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준 고양시장, 이규열 고양시의회 부의장과 김해련·김미수·정봉식 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이 참석했고, 이이화 역사학자와 김재득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을 비롯해 많은 지역인사들이 참석해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기림행사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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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시장은 “고양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밭두레보존회가 길놀이 농악으로 문을 열었고, 이어 24반무예 전수자들이 친일 청산을 주제로 한 호쾌한 전통무예 시연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무예인들의 칼과 활이 일제와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친일매국노를 응징하는 대목에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열린 개회식에서 이재준 시장은 “역사는 기억할 때만 살아난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서 선상만세를 불렀던 역사를 살아 흐르게 하자”고 말했다. 이어 “친일자본가를 비롯해 친일 세력들이 여전히 죄과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청소년들이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달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린 수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고양 행주나루터에서 열리는 오늘의 행사가 가장 멋지고 감동적”이라고 소감을 밝힌 후 “고양시를 넘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키워내자”고 제안했다. 임 소장은 여전히 남은 과제를 상기시키며 “친일파 청산!”을 기운차게 선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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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잔재 청산”을 힘차게 외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음으로 파주 수억고등학교 ‘민족얼지킴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세준군과 이아람양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33명의 청소년들이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들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백창환 지부장이 만세삼창을 선창하며 개회식이 마무리됐다.

한강 수로의 관문이자 개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던 행주지역은 3·1운동 당시 고양땅에서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이 수차례 반복해서 일어난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1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시위에서는 총칼을 앞세운 일경의 진압에 쫓긴 행주어민들과 주민들이 행주나루터에서 나룻배와 고기잡이배에 올라 타 전국 유일의 선상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고양에서 항일 운동이 치열하고 다양하게 펼쳐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날의 뜨거웠던 외침은 개막식 후 이어진 재현행사에서 생생하게 표현됐다. 상황극을 연출한 젊은 배우들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외침의 소문을 들은 고양의 민중들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자발적으로 통문을 돌리고, 시위 날짜를 약속해 대대적 만세운동을 일으킨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또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제의 잔인함과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항의 함성을 외친 선조들의 의기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농민과 학생들이 한 몸이 되는 모습은 고양은 물론,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펼쳐졌던 민중 중심 만세운동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여기에 행주나루에서만 발견된 선상만세 장면이 상세히 보태졌다.

재현행사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주최측은 전문배우들의 연기와 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커다란 말이 등장하고 총탄 소리에 만세를 부르던 학생들이 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손수 치마저고리, 학생교복 등을 차려입고 행사장을 찾은 청소년들이 재현행사의 적극적 주인공이 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만세를 따라 부르며 상황극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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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지부장은 “신임 지부장 취임 후부터 행주나루 선상만세 재현행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서 “100인 추진위원회와 33인 어린이 합창단, 남과 북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민족대표 33인 퍼포먼스, 그리고 출연진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 등이 올해 새로 선보인 순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후에 행사를 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4월 13일 친일·항일 음악회를 개최하고, 고양교육청과 협력해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 TF’도 구성할 예정이다. 백 지부장은 “학교 교가, 석물 등의 친일잔재 조사를 위해 회원들과 발로 뛸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 사진으로 보는 3.1혁명 행주나루터 선상만세 재현행사
 (사진제공=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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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선조들의 뜨거운 외침,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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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밭두레패의 길놀이 농악공연. 3.1운동과 같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진밭두레패는 농악대 깃발 끝에 태극기를 꽂고 공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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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와 독립운동기가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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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무예 수련자들이 한민족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을 응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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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얼지킴이’ 동아리 배세준군과 이아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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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동안 33명의 청소년들이 민족대표의 얼굴을 들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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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김미수.김해련 고양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 이규열 시의회부의장, 이재준 고양시장, 백창환 민문연 고양파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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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독립군가와 3ㆍ1절 노래를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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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대한독립기를 앞세운 만세행렬이 행주나루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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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총칼을 앞세워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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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나루터 빨래터 강물 위에 마련한 행사용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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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기자 [email protected]

<2019-04-02> 고양신문 

☞기사원문: 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관련기사

☞경기인터넷신문 :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경기&뉴스: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내외통신: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민족문제연구소:[화보] 선상만세시위 재현 (3.30)

※관련영상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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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假牧師(증가목사)

 

牧者開慈殖(목자개자식)

彌親大喝通(미친대갈통)

天堂虛素裏(천당허소리)

謝濫氣生充(사람기생충)

 

가짜 牧師에게 지어 주다

 

목사님의 그 열린 사랑 번성하니

두루 친해 큰 꾸짖음 통하였구나

천당은 하늘 넓은 가운데 있노니

감사 넘치고 氣는 생겨 충만하다.

 

<時調로 改譯>

 

열린 사랑 번성하니 大喝 두루 통했구나

저 하늘 넓은 가운데 천당은 존재하느니

감사는 가득 넘치고 氣는 생겨 충만하다.

 

*大喝: 가슴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듯한 큰 소리로 외쳐서 꾸짖음 *天堂: 天國.

 

<2019.1.31, 이우식 지음>

금, 2019/02/01- 10:01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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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접속시) ☞  [유튜브 채널]     [팟빵 채널]

금, 2019/02/01- 14:32
21
0
죄없는 일본인 약장수를 몽둥이로 패고 강도살인을 저지르고도 그
것도 모잘라 사체유기까지 하고 나중에는 그 죽이고 돈까지 빼앗은
일본인 약장수를 민비를 죽인 일본군 장교로 둔갑시켜 싸우다가 죽
인걸로 조센진들을 속인 김구를 위인으로써의 지휘를 박탈하고 그
자손들의 독립유공자로써의 특혜를 박탈하라. 
 


미개한 조선을 위대한 대일본의 영도아래 이끌어 미개한 조선을 근
대화로 만드는데 공헌한 이완용 공작각하 반자이!!!!!!!!!!!!!!!!!!!!!!

 
이완용 공작각하의 자손들이야 말로 지금 조선에서 특혜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위대한 대일본의 통치이후 미개한 조선에 반공사상을 강화
하야 남조센인 한국이 북괴 빨갱이거지새끼들처럼 안되게 해주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각하 만세!!!!!!!!!!!!!!!!!!!!!!!!!!!!!!!!!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서 기용하신 최정예 일본군 헌병 출신이자 일
본 경찰 출신인 김창룡 장군과 노덕술 총경 같은 분들이 친일청산
이나 외치던 빨갱이놈년들을 잡아다가 전기로 지지고 물통에 머리
통 처박고 하셨기에 이 남조센이 북괴 빨갱이거지새끼들처럼 안되
게 된게다. 


그리고 안두희 장군도 만세!!!!!!!!!!!!!!!!!!!!!!!!!!!!!!!!!!!!!!!!!!!!!!!!!!
일, 2019/02/03- 14:30
84
0

김구가 강도살해한 일본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군 장교가 아닌 일본의 일반 약을 파는 상인으로 알려져 왔다.

김구도 이미 재판 과정에서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범일지에 민비를 죽인 일본군 장교로 거짓미화하여 조센진들을 속이고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것으로 조센진들을 우롱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문제는 아직도 백범일지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음에도 아직도 그거에 대해 안고쳐먹고 조센진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게다.

이는 당연 죽은 무고한 일본인 약상인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을 저지른 김구에 대하여 출판사들이 묵인 방조한다고 보는게 맞는 것인게다.

당시 죽은 일본인 약상인의 후손들이 출판사를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방조와 부작위”로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은 당연한게다.

 

일, 2019/02/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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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역사디자인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3.1운동의 주역들과 공간,

그리고 그 영향과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민족대표 33인과 유관순 중심의 기억을

 

더욱 풍부하게 넓혀보고자 합니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에서 벌어진 반식민 평화운동,

그리고 통일 한반도를 염두에 두고 북한의 시각에서 3.1운동을 되돌아봅니다.

한편, 3.1운동의 정신이 중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현장에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그 열악한 현장과 치열했던 고민을 되돌아 봅니다.

나아가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 100년을 향한 기억의 초석을 다져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rchd2018/221453853369

일, 2019/02/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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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26주년 되는 날의 소회 (2)
–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관련자들과 맹목적 옹호자들, 정녕 임종국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내가 제명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사회의 제명 결정서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결정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정관에 의거 이사회에 주어진 권한에 따라 참석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회원 여인철을 제명 처분한다. (51차 이사회는 이사 8인 중 이사 강만길을 제외한 7인이 참석하였으며, 여인철씨의 제척사유 주장에 따라 이사 임헌영과 조세열은 의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죄목(?)으로 제명당한 것인지가 나와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정관 몇조 몇항에 의거, 무슨 죄목으로 제명함” 정도는 기본적으로 결정서에 담겨야할 것 같은데 그저 “정관에 의거”,  “이사회에 주어진 권한에 따라” 제명처분했단다.

제명의 이유는 당사자인 내가 추측하기에는, 아마도 내가 총회 때 정관개정을 통해 회원의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축소시킴으로써 권한을 강화하려는 집행부의 기도에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고 총회장에 들어가 반대의사를 밝힌 것 등의 일련의 행동에 대한 응징일 것이다.  나를 괘씸죄로 회원에서 제거하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지금 3공, 5공 시대인가? 내가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말과 글로 문제제기한다고 제명을 하다니.  더구나 지부장과 운영위원장까지 지내며 20여년을 헌신하며 회원 활동을 한 사람을…

어떤 이사는 내가 “조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한다.  지난 20여년을 헌신한 사람이 왜 이제 와서 조직에 있어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작년 5월 11일자로 제명된 후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을 동지들과 만들어 함께 행동해 왔다.  처음엔 운영위원회를 쪼그라뜨리는 정관 개악에 반대하며 시작했지만 지금은 문제의 양상과 심각성이 크게 달라졌다.

민문연과 투쟁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민문연의 비리 비행 부정의 폭과 깊이가 생각 외로 넓고 크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크게 찍힌 꼴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결국 민바행에서 첫 민원을 낸 작년 7월 초 이후 5개월만인 12월 14일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형사고발보다 한 단계 낮은 처벌인 경고처분과 시정조치를 받았다.  4일간이나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나온 행정처분이며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이다.

경고처분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미승인 정관 사용에 ‘엄중경고’,  ‘기부금 부적정 사용’에 기관경고, 그리고 시정조처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전원(5명)과 감사 전원(2명)은 경고처분을 받았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표면적 경고 이유는 미승인 정관 사용(임의로 “운영” 정관을 만들어 사용)이지만, 그 이면의 핵심은  지난 십수년동안 법적 효력이 있다는 “신고 정관”-회원들이 그 존재와 용도를 알지 못한- 을 이용해 “회원 10명”으로 총회를 열어오면서 전국의 1만 3천여 회원들을 속여온 것이다.

그리고 “회원 10명”의 구성원이 ‘이사 5명과 상근자 5명’이라니, 그들이 회원 몰래 총회를 열어 주요 사안을 결정해 왔다는 건 실질적으로 몇몇 상근자들이 운영위원회(회원)의 뜻을 무시하고 저들 마음대로 민족문제연구소를 주물러왔다는 것이다.

그 십수년 동안을 회원과 회원을 대표하는 운영위원회는 있으나마나, 그냥 허울로만 존재한 것이다.  그러니 회원으로서, 회원의 대표격인 운영위원장 으로서 분노가 이는 것이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이런 망나니 사기극을 벌이는가?  그런 속임수를 획책한 핵심 상근자들은, 그리고 그 책임자는 그러고도 그 자리를 지키려 하는가?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가?

그리고 교육청에서는 “기부금 부적정 운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부적정”하게 “운영” 했다는 것의 의미가 무언지 밝혀져야 한다. 돈을 어떻게 걷어서,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은 10명”이라며 신고한 집행부의 의사록에 대해 “흠결이 없다”고 한 서울시교육청의 판단대로라면 1년에 십수억원씩 들어오는 기부금품 처리에대해 기부금품법 위반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불법을 인지했을 때 고발해야한다는 의무를 피해가기 위해 고의로 봐주기 처분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아직 남아 있다.

어쨌든 감독관청으로부터 위와 같은 내막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로서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민문연 집행부는 전국의 회원과 국민을 속여가며 그동안 무슨 짓을 해온 것인가?

18년만의 일이다.  2000년에 민문연이 서울시 동부교육청으로부터 고발조치 처분을  당했을 때는 이사 전원이 사퇴를 했다.  그래도 그때의 이사진은 양심이나 염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민바행에서는 지난 1월 12일 성명을 통해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임헌영 소장과 지난 십수년 동안 “회원 10명”으로 회원들을 우롱해온 조세열 당시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바행 측을  법적 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친일연구에 몸 바치신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세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받들어야 할 그분의 정신은 무엇인가?  바로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 행적까지도 친일 자료에 남기는 엄정함, 그리고 가난과 질병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친일연구에 매달린 기개 아닌가?  그(분) 덕에 오늘날의 민족문제연구소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그런 엄정함과 기개가 남아있나?  그저 오로지 끼리끼리, 패거리 정신과 기득권 지키기 소유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임종국 선생은 또 친일한 인사들이 반성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개탄했다.  그런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비리와 부정에 연관되거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음해 세력”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관련자들, 그리고 맹목적 비호자들, 정녕 정신적 사표여야 할 임종국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2019. 1. 16.
회원가입 26년째 되는 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제명자

목, 2019/02/0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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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구를 지지하지 않고 중이 싫으면 절을 나간다고 합니다

아마 여인철씨도 민족 문제 연구소가 싫고 마음과 뜻이 맞지 않아서 나가시고 당신 마음과 뜻을 생각하시면서 새 단체를 세우셨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시고 단체의 정관이나 계획등등 바로 세워서 참 그사람 여인철씨가 이끄는 단체가 마음에 들고 하시는 사업이 옳다고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 세운 단체에 가입할것입니다

당신이 이름을 지적하면서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에 당신이 그자리가 욕심이 나서 그런것 같습니다

당신이 쓴 글 다읽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단한줄입니다 부정 불의 등등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라면 법에서 판결할것입니다  누구누구 일하는 분을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가 탐나서 그런가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않이라면 다시는 그런글  올리지 마시고 당신이 만든 단체 잘 운영하셔서 참 여인철씨가 훌륭하신 분이구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단체에 가입 할것입니다 나역시 당신 단체 운영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협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뚜렷한 계획없이 무조건 과거 몸담았던 단체와 임원들 성명 운운하면서 사퇴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당신네가 만든 단체가 날마다 발전하여 민중의 마음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 전 미주공동대표 이덕문

 

 

 

 

목, 2019/02/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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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日帝治下朝鮮僧徒

 

邦亡奚削髮(방망해삭발)

利敵後人嘆(이적후인탄)

詰問望成佛(힐문망성불)

狂歌百尺竿(광가백척간)

 

일본 제국 治下의 朝鮮 중들에게 묻는다

 

나라 망했는데 어찌 중이 되었는가

敵 이롭게 했으니 훗사람 탄식한다

따져 묻겠노니 부처 되길 바랐는가

百尺竿頭 올라 미친 노래 불렀구나.

 

<時調로 改譯>

 

어찌 중이 됐는가 利敵行爲 탄식한다

따져서 묻겠노니 부처 되길 바랐는가

높다란 장대에 올라 狂歌를 불렀구나.

 

*僧徒:  수행하는  승려의  무리.  치도(緇徒)ㆍ치려(緇侶)ㆍ치류(緇流)  *削髮:  출가

(出家)하여  승려가  됨을 이르는  말 *利敵: 적을 이롭게 함 *後人: 훗사람 *詰問:

트집을 잡아 따져 물음 *狂歌: 곡조나 가사와 상관없이 마구 소리쳐 부르는 노래.

 

<2019.2.8, 이우식 지음>

금, 2019/02/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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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聞某國會議員美國半裸公演觀覽

 

辨覈非全裸(변핵비전라)

愚民忽解頤(우민홀해이)

貴公高位職(귀공고위직)

何故覓佳姬(하고멱가희)

 

어떤 국회 의원이 미국에서 반나체 공연을 관람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알몸 아니었다며 옳고 그름 밝히니

못난 백성 문득 입 딱 벌린 채 웃소

貴公은 높은 지위의 관직에 있는데

무슨 연유로 예쁜 아가씨 찾았는고.

 

<時調로 改譯>

 

알몸은 아니라 하니 어리석은 백성 웃소

貴公은 높은 지위의 관직에 있는 분인데

어떠한 연유로 인해 예쁜 여자 찾았는고.

 

*傳聞: 다른  사람을  통하여  전해  들음.  또는 그런 말 *半裸: 반나체 *辨覈: 옳고

그름을 가려 밝힘 *全裸: 알몸 *愚民: 어리석은 백성 *解頤: 턱을 푼다는 뜻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음을 이르는 *何故: 무슨 까닭 *佳姬: 젊고 아리따운 여자.

 

<2019.2.9, 이우식 지음>

토, 2019/02/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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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환기화백의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이력을 보니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친일행위를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좀더확실히 알고싶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잘 알것이라 생각해서 문의 드립니다.

김환기 화백은 친일파 또는 행위를 했었나요?

월, 2019/02/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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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허위사실 인지·반복 게시 등에 비춰 볼 때 죄질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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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기타

문재인 대통령과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하는 허위 내용이 담긴 글과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수 성향 인사가 항소심에도 1심과 같이 실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공직선거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방 모(50)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9일 밝혔다.

1심은 방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방 씨는 게시글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피해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각 게시글을 게시했다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전파성이 높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작성한 글의 개수·반복성에 비춰 그 죄질이 나쁘다”고 설명했다.

보수 성향 단체 대표로 알려진 방 씨는 지난 2016년 11월부터 19대 대선을 앞둔 2017년 4월까지 문 대통령에 대한 허위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게시물의 ‘문 대통령 아버지는 북한 공산당 간부 출신’, ‘문 대통령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파산관재인’,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1조원의 환전을 시도했다’는 등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 2014년 10월에는 트위터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을 조작했다’는 허위 사실을 세 차례 게시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방씨의 이런 범행은 선거 공정성을 훼손하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그릇된 인식을 하게 할 위험이 있어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크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2019-02-09>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문 대통령 아버지는 공산당’ SNS 허위 글 올린 50대 2심도 실형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명예훼손 방자경 2심도 유죄, 징역 10개월 

☞YTN: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50대 2심도 실형 

☞뉴시스: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50대 2심도 실형 

☞세계일보: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 50대 2심도 실형

☞일요신문: ‘文 대통령 아버지 공산당 간부’ 허위 사실 게시한 보수 인사 ‘실형’

월, 2019/02/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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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頂上會談

 

何邦先破約(하방선파약)

不信又相疑(불신우상의)

老虎逢狼子(노호봉낭자)

將來豈可期(장래기가기)

 

북한과 미국의 정상 회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약속을 깰까

믿지 못하겠는지라 또 서로 의심

늙은 호랑이가 이리 새끼 만나니

다가올 앞날 어찌 가히 기약하랴.

 

<時調로 改譯>

 

뉘 먼저 약속 깰까, 믿지 못해 서로 의심

늙어 버린 호랑이가 이리 새끼를 만나니

다가올 저 앞날일랑 어찌 가히 기약하랴.

 

*破約: 약속이나 계약 따위가 깨어짐. 약속이나 계약 따위를 깨뜨림 *狼子: 이

새끼  *不信: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 *可期: 기대하거나 또는 기약할 만함.

 

<2019.2.12, 이우식 지음>

화, 2019/02/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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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부터 기생까지 만세운동 선봉…3ㆍ1운동 직전 첫 ‘여성 독립선언서’ 발표
임시정부 헌장에도 남녀평등 명문화…”독립운동계, 여성 역할에 깊은 이해”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3·1 만세운동때 선봉에 섰던 여성은 유관순 열사만이 아니었다.

어린 학생부터 평범함 주부, 간호사, 기생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은 물론이고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3·1운동은 여성들이 오랜 세월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항일운동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3·1운동 이후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여성 독립운동단체들도 우후죽순으로 결성돼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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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여성가족부 제공]

3·1운동 직전 만주지역에선 1천335자 한글로 작성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발표됐다. 이 선언서의 말미에는 기원 4252년(1919년) 2월이라고 표기돼 있고,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여성 독립운동가 8인이 서명했다.

국가기록원이 발간한 ‘여성독립운동사(3·1운동 편)’는 이 선언서를 “3·1운동 이전에 발표된 여성들의 첫 독립선언서”라고 평가했다.

선언서는 여성도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국민 구성원임을 강조했다. 자주독립 정신과 함께 남녀평등 의식을 표명한 것이다.

여성들은 3·1운동 당시 서울, 개성, 평양, 부산, 광주, 전주 등 주요 도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도시에는 여학교와 교회 부인회 조직 등이 있어 여성들을 조직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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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혜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서울에선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배화여학교 등을 중심으로 여학생과 졸업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부속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도 서울의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중심인물은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간우회(看友會)를 조직한 박자혜 선생이다. 간우회 회원들은 각종 유인물을 작성해 배포하는 등 만세시위의 전면에 섰다.

개성에선 당시 여자성경학원 기숙사 사감을 지내던 어윤희 선생이 남성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독립선언서 배부를 자청하는 등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선생이 집집마다 독립선언서를 돌리는 광경을 본 학생들이 독립선언서 배부에 동참했고 이는 개성 만세시위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일제에 체포된 선생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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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윤희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는 3·1운동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몰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던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 열사가 주도했다. 태극기를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 등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이끈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된 이후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했다.

부산 일신여학교의 만세시위는 경남지역 3·1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 교사인 주경애 선생은 12명의 여학생과 시위 준비를 한 뒤 저녁에 기습적으로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했고 이때 거리의 군중들도 시위에 동참해 시위대는 순식간에 수백명으로 늘었다.

평양 만세시위에선 숭의여학교와 교회 여신도들의 활약이 컸다. 숭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직접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남산현교회에서 열린 고종황제 봉도식(奉悼式)에선 여신도 20여명이 나서 만세시위를 촉발했고, 미국 선교사 거주지인 신양리에선 기독교 부인 200여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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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열사 [국가보훈처 제공]

수원과 해주 등지에선 기생들이 만세시위에 불을 붙였다.

당시 수원 기생조합의 총무였던 김향화 선생은 자혜병원 앞에서 동료 기생들과 만세행진을 벌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향화 선생은 일제에 체포돼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해주에선 김해중월 선생 등의 주도로 기생들이 자신의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을 벌였고, 여기에 시민들이 동참해 만세시위 군중이 수천 명에 달했다.

3·1운동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선 여성들은 서울과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항일 여성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다.

여성단체 중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평양 중심의 대한애국부인회는 조직 규모가 방대해 지방 곳곳에 지회를 두고 활동했다. 평안남도 순천의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 평안남도 강서의 대한독립여자청년회, 평안남도 대동의 대한독립부인청년회, 평안남도 개천의 여자복음회 등 항일여성단체들도 비밀리에 활동했다. 중국에선 김순애·이화숙 선생 등이 주축이 된 애국부인회, 일본에선 여성 유학생 중심으로 여자학흥회가 조직됐다.

미국에선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여자애국단과 유학생 중심의 근화회, 하와이의 대한부인구제회 등이 결성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고 했다”며 “3·1운동 당시 독립운동계를 비롯해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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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문화재 등록 예고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따라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6일 전했다. 2018.11.6 [문화재청 제공] [email protected]

<2019-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3ㆍ1운동.임정 百주년](25) 성차별 굴레 벗고 항일 주체로 우뚝

화, 2019/02/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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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지명 결정판 군산…도시 곳곳 수탈의 역사 담긴 지명 수두룩  

전국 지명의 30퍼센트 일제식 추정 
미쓰비시 창업주 호 딴 전주 동산동 본래 쪽구름, 조각구름이란 우리말 이름 가진 곳 
군산 서수면, 푸른 이삭이 넘실 거리는 땅이라는 일제식 지명 
지자체 의지만 있다면 곧바로 지명 개정 가능…의지의 문제


■ 방송 : 전북CBS 라디오 <사람과 사람> FM 103.7 (17:05~18:00)

■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요.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일제가 남긴 잔재가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지명인데요. 자세한 내용,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과 짚어보죠. 소장님 어서 오세요.

◆ 김재호> 네, 반갑습니다.

◇ 박민> 3.1절 1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고요. 역사운동을 하는 분으로서 소감이 더욱 남다를 것 같아요?

◆ 김재호> 네, 남다르기는 한데요. 현재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가 100년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다 보니 일제 잔재나 3.1정신을 그동안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해냈는가 하는 부분은 의문입니다. 요즘 많이 부각되는 것이 3.1운동이 운동이냐 혁명이냐인데요. 논란이 되겠지만 우리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고요. 3.1운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요. 1908년, 1909년으로 넘어가면서 호남 지방 의병들이 초토화 됩니다. 그리고 경술국치가 이뤄지고요. 이후 거의 10여 년에 걸쳐 무단통치가 행해집니다. 무단통치라는 것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부분들에 저항해서 민족적인 거사로써 일어난 것이 3.1운동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고요. 3.1운동은 이후 우리 독립운동의 방향, 항일무장투쟁이나 해외 독립군 기지 건설 등에 교훈을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박민> 우리 민족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인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나란히 100주년을 맞는 시점인데요. 중요한 것은 아직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남아있죠. 대표적인 사례가 지명인 것 같아요?

◆ 김재호> 한글학자 배우리 씨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명의 약 30퍼센트가 아직도 일제 지명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 박민> 우리 지역에도 있죠. 대표적으로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김재호> 우리 지역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전주 동산동이 대표적이죠.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투하한 두 번째 핵무기가 나가사키에 떨어집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돼 가있었단 말이죠. 거기가 초토화되면서 조선인들이 대량 학살됩니다.

◇ 박민> 혹시 미쓰비시 중공업 말씀하시는 건가요?

◆ 김재호>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의 군국주의 기업 중에서 가장 최상위층에 있는 그룹이죠. 그런데 미쓰비시 그룹이 한국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서 동산농사주식회사를 차립니다. 수원에 조선지점을 두고 전국에 여러 지점을 둡니다. 전주에 동산농사주식회사의 전주지점이 있었고요. 동산농사의 동산을 따서 동산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동산은 미쓰비시 창업주인 이와사키 야타로의 호입니다. 그러니까 창업주의 호를 따서 지은 지명이 동산동이라는 거죠. 원래 이 지역은 편운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조각구름이나 쪽구름이라는 뜻입니다. 예쁘죠. 그런데 동산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안 바뀌고 3.1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거예요. 큰 문제죠. 그렇다면 동산농사주식회사가 한국에 와서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가도 봐야 해요. 여의도의 24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땅이죠. 상상이 가지는 않죠. 전국적으로 2100만여 평 정도 되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호를 딴 동산이라는 지명을 아직도 안 바꾸고 있다는 겁니다.

◇ 박민> 그렇다면 동산농사주식회사의 땅이 전국적으로 흩어져있을 텐데 전주만 지명이 남아있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지역에도 이 지명이 남아 있습니까?

◆ 김재호> 이 부분은 전수조사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동산동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서 보여요. 그런데 아직은 그 부분이 저희 같은 시민사회단체가 전수조사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추정은 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필요합니다.

◇ 박민> 그런데 전주 동산동은 분명하다는 말씀이죠?

◆ 김재호> 네 맞습니다.

◇ 박민> 이거는 어떻게 확인하신 거예요?

◆ 김재호> 이 부분은 실제 많은 기록들에서 나오고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안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명이 바뀐 시기도 일제강점기 때 바뀌었고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쭉 유지돼 왔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자치단체나 시의회가 여기에 대해서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면 힘듭니다. 동산동의 유례가 어떻게 전해져 오는 것인지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설명 절차가 부실합니다. 주민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고요. 이 문제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데 바꾸려고 하겠어요? 그리고 지명을 개명하는 문제에서 행정적인 절차가 쌓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무원들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잠깐 개정 논의를 하다가 결국 무산됐고 계속 동산동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는 겁니다.

◇ 박민> 그런데 최근에 또다시 논의가 되고 있다고요?

◆ 김재호> 아무래도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저희 단체, 시민단체들이 지명을 바꿔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최근 들어서 김승수 전주시장도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개정과 관련한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박민> 전주시의 상황을 짚어봤습니다만 일제 잔재하면 군산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여기도 일본식 지명이 많이 남아있죠?

◆ 김재호> 그렇습니다. 군산은 거의 일본식 지명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전죽마을, 중야마을, 팔목마을 이런 데는 대부분 일본인 지주나 아니면 측량기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어요. 일본이 식민 통치 편의를 위해서 숫자로 이름을 붙인 마을이 아직도 남아있거든요. 해2마을, 해7마을, 해8마을 이런 식으로도 남아있고요. 군산이 동이 59개인데 쌀 ‘미’자가 들어간 동이 아직도 다섯 개가 남아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 식민통치 중심부라고 할 수 있었던 지역인 금광동, 영동, 중동, 영화동 이런 곳들도 모두 일본식 지명입니다. 그런데 군산시는 이런 문제에는 소홀하고요. 오히려 식민 거리를 재현하는 일에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 박민> 개정 움직임은 없나요?

◆ 김재호> 제가 보기에는 서수면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수면도 지금 행정 차원에서 논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서수면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박민> 서수가 어떤 의미이기에 그렇습니까?

◆ 김재호> 서수는 한두 군데 있는 지명이 아니에요. 서수는 대만에도 있고 사할린에도 있고요. 일본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수는 신칸센에도 있고 일본 여자 이름에도 서수가 쓰입니다. 푸른 이삭이 넘실거리는 땅이라는 게 서수의 뜻입니다. 자신들이 식민통치하는 국가의 이상향을 지명에 심어놓은 거예요. 침략과 약탈을 본질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는 그게 이상향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지배를 당한 입장에서는 지옥인 거죠. 여기 같은 경우에는 가와사키라는 농장주가 서수라는 지명을 지었다고 해요.

◇ 박민> 지명을 바꿀 때 절차가 까다롭거나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까?

◆ 김재호> 도로명 주소를 변경하거나 동과 면을 변경할 때 차이가 있어요. 행정동이나 동명 개정은 지방자치법 4조에 분명히 명시돼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바꿀 수 있어요. 물론 주민공청회나 설명회는 필요합니다만, 지방자치단체와 시의회가 마음만 먹으면 사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거죠. 도로명 주소는 주민들의 동의 절차가 필요해요. 복잡하긴 하지만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의지가 문제라는 겁니다.

◇ 박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우리 생활 곳곳에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명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재호> 네, 고맙습니다.

<2019-02-12> 노컷뉴스 

☞기사원문: 일제 지명 사용하는 전주 ‘동산동’, 전범기업 창업주 호 딴 지명도…

화, 2019/02/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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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전시 내용 가득…찾는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아
日관람객 “3·1운동에 한국인 프라이드 대단하다 느껴”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많은 일본인은 3·1 독립운동은커녕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평화적으로 저항한 한국인들의 독립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일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東京).

도쿄에서도 중심가인 신주쿠구(區) 오쿠보의 한국광장 빌딩 7층에는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고려(高麗ㆍ일본발음 고라이)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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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광장 빌딩 7층의 고려박물관에서 일본인들이 주관하는 ‘3ㆍ1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모습.

이곳에서 3·1 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전시회가 지난 6일 시작됐다.

오는 6월 2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아직은 일본인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걸음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 시민들만의 힘으로 2001년 12월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배워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모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700여 명이 연회비로 5천엔(약 5만원)씩을 내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 외에 수시로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전시회를 시작했다.

기획전은 자원봉사 활동가 80여 명이 7~8명씩 한 조를 이루어 매번 한국 역사에 연관된 주제로 마련하는데, 이번 3·1절 기획전은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8명이 매달려 1년 6개월 정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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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에서 이사 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하라다 교코 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박물관 회원 6명을 포함한 14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직접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천안 유관순기념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 제암리순국박물관, 서대문형무소 등 3.1운동 관련 자료를 모을 수 있는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해 총 24장의 패널로 3·1운동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리한 전시물을 내놓았다.

작년까지 고려박물관 이사장을 지낸 뒤 지금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라다 교코(77) 이사는 7일 “모든 멤버들이 함께 공부하고 배우면서 전시 패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봉사자들이 꾸민 전시회라고 했지만 내용은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찼다.

3·1운동 이전의 한일 관계 역사를 먼저 소개한 뒤 3·1 운동 전개 과정, 종교의 역할, 여성의 참가, 제암리 학살사건, 3·1운동 당시의 신문보도와 일본인의 관점, 3·1운동 이후 100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사를 핵심을 빠뜨리지 않고 자료사진까지 곁들여 명료하게 설명했다.

3·1 운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24장의 패널을 훑어가면 한국인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 왜 평화적인 만세 운동에 나섰는지, 일제의 당시 대응은 어땠는지,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엇갈린 시각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3·1운동 관련 기술이 거의 돼 있지 않는 일본 역사교과서 여러 종을 펴놓았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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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 전시장에 펼쳐 놓은 일본 역사교과서. 한국인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인 3·1 운동이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하라다 이사의 설명이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하라다 이사는 “3·1 독립운동 정신에는 동양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면서 “우리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배우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회 시작 이틀째인 7일까지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1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하라다 이사는 “일본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줘야 하는데 몇몇 매체가 문의만 하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다마키 시노(56·고교 영어교사) 씨는 “한국에 여러 차례 갔는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도 둘러본 적이 있다”며 “3·1독립운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프라이드(자긍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방한 때의 인상을 전했다.

다마키 씨와 3·1운동 기획전을 함께 관람한 니와 쇼코(57·고교 일본어 교사) 씨는 “두 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박물관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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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화, 2019/02/1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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