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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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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16:10

민변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2018. 11. 11. 아침, 제3차 낙동강 현장기행 시민조사단과 함께 영풍 석포제련소로 출발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철제품 부식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라고 한다.
석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다가설수록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석포 초입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차고 맑아보였으나 아래쪽에는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석포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아직 큰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쭉, 아니 자식들을 먹일 동안이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허나 그곳엔 진짜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것은 희뿌연 무언가를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낸 산은 시뻘건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산을 감싼 낙동강은 휴게소에서 본 그 낙동강이 아니었다. 48년이나 아팠던 낙동강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를 나무라는 듯했다.

「김무락 변호사(대구지부 사무차장)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후기」

2018. 11. 11. 제3차 낙동강 기행 중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석포제련소가 야기하는 식수원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대구지부에서는 법률대응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김무락, 박경찬, 백수범, 성상희, 이유정, 정재형, 최지연 변호사)

1970년 영풍이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 가동하여 온 이래 50년 가까이 누적되어 온 환경오염의 문제는 석포면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석포면 인근 주민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에 와서야 시민들이 석포제련소부지 내 토양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하였고, 2015. 3. 토양정밀조사결과 석포제련소 부지 내 6만여 ㎡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의 최대 414배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봉화군이 1,2공장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식회사 영풍(이하 ㈜ 영풍)은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봉화군에 토양정화기간을 2년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하였고, 봉화군이 거부하자 2017. 5. ㈜영풍은 봉화군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서 1, 2심은 ㈜영풍이 승소하였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진행중입니다.

2018년 2월 시민들이 ㈜영풍의 폐수 70만톤 무단방류 사실을 신고하였고, 관계기관의 합동점검 결과 7가지 불법행위가 적발되어 2018. 4. 5. 경상북도가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영풍은 이에 불복하여 경상북도지사를 상대로 조업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도 다시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1심이 계속중이고, 2019. 4. 3. 법률대응단에서는 봉화주민 4명, 안동주민 2명으로 피고 보조참가인을 모집하여 보조참가신청서를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피고 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에 대구지부 회원 19명이 연명에 동참하였습니다.

 

▷ 민변 대구지부 주최 토론회

2018. 11. 14. 민변 대구지부와 영풍 석포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는 ‘낙동강 최상류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한 식수원 오염 실태와 법률대응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법률대응 방안을 차분히 설명하였고, 토론자로 참여한 최지연 변호사는 백수범 변호사의 법률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정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정재형 변호사(토론사회), 김무락 변호사(전체 사회), 오랜 기간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다뤄 온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이상식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대표, 신기선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 2018. 11. 30. KBS 추적60분

“낙동강 미스터리, 48년 영풍공화국의 진실”방영

2018. 12. 18.~19. 1박 2일간 봉화 승부리를 방문한 백수범, 김무락 변호사

 

 

2019. 3. 14. 영풍공대위와 법률대응단 합동회의 및 대구민변과의 간담회

 

▷ 법률대응 진행상황

토지정화명령 건은 법률검토를 거쳐 봉화군과 대법원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며 현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추가 대응방법을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3공장 불법건축물의 합법화 과정, 2, 3공장 폐수 무단방류와 관련하여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감사청구 등의 법률대응을 하기 위해 검토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관련하여서는 우선 소수의 원고라도 모집하여 시범소송으로서 영풍 석포제련소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률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 1차 모금 마무리하였습니다. 개인과 단체 합하여 101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2천여만원입니다. 모집된 성금은 원고들이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없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보수를 포함한 각종 법률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쌓여 다행히도 최근 여러 방면의 환경이 진전되어 가고 있으니 이 불씨를 잘 살려가면 머지 않아 문제해결의 적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는 그동안 애써오신 영풍제련소 공대위와 봉화대책위 및 활동가 분들과 협력하여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아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지부의 활동에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대구지부 근황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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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인터뷰 – 천정배 변호사를 만나다

 

본 인터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 30주년 사업의 후속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창립회원 아카이브’ 사업을 위해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합니다.

 

민변 21기 자원활동가분들(김유정, 서승연, 이단비)과 함께 국회의원회관 천정배 의원실로 방문했습니다. 변호사님(‘천’)께서 자원활동가분들 이름을 여쭈시면서 “말이 좋아 자원활동가지, 이거 열정페이..”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셨고, 이후 편하게 말씀을 이어가 주셨습니다.

 

 

심재섭 변호사 (민변 출판소통팀장, 이하 “심”): 민변 창립회원 선배님들께 민변 창립 당시의 이야기도 듣고, 후배들에게 해 주실 말씀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다른 여러 일정이 많으실 텐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변호사가 되시기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여쭙습니다.

천정배 변호사 (이하 “천”) : 오래된 이야기네요. 연수원에 들어갈 때에는 판사를 할지, 검사를 할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연수원에서 실무 수습을 하는 도중에는 검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주위 동기들은 제가 판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형사사법이 운영되는 실정을, 제가 보기에는, 검사가 중요하지 판사는 좀 소극적이지 않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78년 도에 수원에 있는 1전투비행단에서 공군법무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군복무 기간 중에 여러 일이 있었지요.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군검찰관 일을 했고, 이후 1212쿠테타, 80년 5.18. 전일 당시 김대중 선생의 구속 사건도 있었지요. 518도 있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전두환 일당, 쿠테타 세력의 하수인으로서 검찰이 될 수는 없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엄 하에서의 험한 일들은 육군에서 일어났지요. 계엄사령관도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전 공군법무관이었기 때문에 좀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육군 중심의 계엄사령부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공군에서 법무관 한 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을 한 일이 있었어요. 당시 육군에 있던 동기들이 하던 일들이란, 김대중 선생을 비롯한 분들을 군검찰관으로서 기소하는 일, 군판사로서 사형선고하는 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를 기소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가게 되면, 제가 김대중 선생님을 기소, 재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탈영을 했으면 했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요. 김대중 선생을 단죄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저는 혹시라도 제가 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동료, 상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뒀습니다. 난 절대 가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공군에서는 왜 저를 그렇게 봤는지, 저를 보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당시 제 계급이 중위라서 육군에서 대위급을 보내라고 요청이 와서, 안 갈 수 있었습니다.

심 : 그때 가셨으면 지금의 변호사님은 안 계셨을 수도 있었을까요.

천 : 에이, 아무리 보내도 제가 안 가지요. 탈영을 했으면 했지. 제가 뭐 똘똘하게 잘 한 일은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심 : 변호사가 되는 것도 여러 길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 81년도 8월에 제대를 하고, 검사는 못하겠다 생각을 했으니 변호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할지, 고향인 목포로 갈지, 광주로 갈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고심 끝에 들어가게 되었고 4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송무는 거의 없었고 주로 외국 클라이언트와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외국 변호사들과 팀이 되어서 일을 했지요. 그 안에서 영어도 그렇고 기존의 통상적인 변호사 업무와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운 좋은 기회였습니다.

 

심 : 서울대 법학과, 사시합격, 대형로펌의 국제분쟁 변호사라는 이력과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의 개업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천 : 비즈니스 로이어가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로는 그 길로 끝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4년차 이후에 2년 정도 외국을 보내주는 시점이었는데, 거기를 다녀와서 그만 두는 것은 좀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그 시점에 그냥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우리 딸들에게 타박을 받습니다. 그때 다녀왔으면 영어를 좀 했을 텐데, 아빠가 안 가서 우리가 영어로 고생이라고.(웃음)

85년도에 나와서 조영래 선배,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현재 진보연대 대표와 모여서 사무실을 시작했습니다. 김앤장에 있을 때 조영래 선배와 가까워졌어요. 워낙에 유명한 분이라 대학 때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친해진 것은 그때였어요. 그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권의 지도부였고, 연수원에 가서도 운동으로 문제가 되어서 도피생활을 길게 하셨지요. 1980년도에 비로소 다시 연수에 들어갔어요. 원래 2기로 입소한 것으로 아는데, 수료는 12기에 하셨어요. 연수원에 계실 때 김장에 일을 좀 도와주러 오셨는데, 그때 알게 되었지요. 82년에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대표와 같이 먼저 사무실을 차렸더라고요. ‘시민공익법률상담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로 산재피해자, 노동약자 등을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제가 김장에 있을 때, 조선배 먼저 나가서 하고 계시라, 저도 곧 나가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김장을 퇴사하고 합류하게 된 것이지요.

 

심 : 민변처럼 인권 신장에 헌신하는 변호사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변호사님께서 민변 창립회원이 된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천 : 민변은 88년도에 만들어 졌지만, 그 전에도 이름이 어떻든 조준희, 황인철, 이돈명, 홍성우 이런 분들을 주축으로 인권변호사의 흐름은 있었지요. 조영래 변호사님 역시 같이 활발히 활동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 자신은 당시 사무실을 유지하는 일을 했어요. 소위 돈 되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돈을 잘 벌지도 못했지만요. 당시 조영래 선배가 망원동 수재사건, 권인숙 양 성고문 피해사건 변론을 할 때, 저는 사무실 안에서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관여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86년도 건대 사건이 있었잖아요. 워낙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일손이 부족하니까. 그때 우리 내부에서 일 시키는 것은 박석운 후배 몫이었는데, 천 선배 거기 좀 가봐, 하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접견을 가게 되면서 소위 시국사건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87년 대통령 선거일에 일어난 구로구 부정투표 사건을 본격적으로 맡았습니다. 구로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때 동대문 경찰서에 접견을 가서 만난 분이 김희선 선생하고, 김병곤 선생을 만났어요. 수갑을 차고 오더라고. 지금이라면 수갑을 풀라고 이의를 했겠지만, 그때는 신참이라 그런 말도 못한 기억이 나네요. 그 사건은 제가 끝까지 열심히 한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계기로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민변이 만들어졌지요. 당시 노장 인권변호사 그룹과, 연수원 기수로 13기 전후의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거지요. 젊은 그룹으로는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이런 분들이었고, 좀 더 후배로 백승헌 같은 분이 있었지요. 전 위치가 좀 애매했던 것이, 나이로는 후배 그룹과 비슷한데, 연수원 기수는 좀 이르단 말이에요. 제 동기인 연수원 8기는 저와 서해교 변호사밖에 없었습니다. 좀 낀 세대였던 겁니다. 그 두 그룹이 주축으로 모였기 때문에 제가 뭘 할 여지가 없었어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을 걸요. 조영래 선배와 윤종현 변호사가 저도 집어넣어서 창립회원이 된 겁니다.(웃음)

정치인이 되다 보니까 민변 창립 주도라고 써주셨는데, 특별히 한 일이 별로 없네요.(웃음) 그러니까 저도 초기에는 좀 서먹서먹했어요. 후배 변호사들하고 잘 알지도 못했고요.

제가 민변 창립 즈음에 다시 김앤장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해요. 개업할 때는 세금이다 뭐다 신경 쓸 것이 많았는데, 다시 큰 조직에 들어가니 편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다시 들어갔어요. 송무를 담당했습니다. 동시에 민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89년도 방북사건들, 임수경 의원, 문익환 목사, 서경원 의원, 리영희 논설위원 등 사건이 폭주하게 되었고, 제가 임수경 의원 사건, 리영희 선생 사건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에서 한 달에 200시간 일을 한다면, 10시간이나 김장 일을 하고, 나머지는 민변 사건을 했던 겁니다. 회사에 미안하기도 해서, 다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일을 하다보니, 민변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는데 너무 산발적으로 체계가 없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민변 일만 하는 상근 변호사를 뽑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상근 변호사를 하지는 못하고, 제 사무실을 민변이 있던 건물 바로 아래층에 내고 민변 일에 중점을 두어 했지요. 이후에 후임을 못 찾아서 민변 상근 간사는 제가 유일합니다.

이후에 당시 민변에서 제일 파이팅 넘쳤던 임종인,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 91년에 해마루 법률사무소를 만들었습니다. 초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셨던 김창국 변호사님이 우리 셋과, 해마루라는 이름을 두고 해가 지는 석양에서 검객 3명이 모인 것 같다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이후 노무현 변호사도 모시고, 전해철 변호사님도 모시고 했지요.

 

심 : 민변 초기에 내가 이렇게 기여했다, 하는 점도 자랑을 좀 해 주셔요.

천 : 상근 간사로서 1년 정도 일을 하면서 제 업적이라면, 민변 회비를 5만원, 10만 원으로 올린 것입니다.(웃음)

또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 비슷하게 활동하는 변호사 집단과 교류 기회를 만들었고, 지금도 지속되는 것으로 알아요. 또 제가 상근 간사를 할 때 ICCPR(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 관련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80년대 말 전두환 때인가 노태우 때인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을 했어요. 그 사람들 참 재밌어요. 아직 미국도 가입을 안 한 것 같은데, 독재자들이 그런 것은 잘 가입하고 그랬습니다. 규약에 가입한 나라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요구하고, 정부가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때 인권 NGO에서는 카운터 레포트를 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우 정권 때에 법무부 인권과에서 최초 레포트를 냈고, 민변이 이것을 입수해서 카운터 레포트를 냈지요. 그때 조용환 변호사가 열심히 했습니다. 이후 빈에서 열린 세계 인권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국제 무대에 민변이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민변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겠지요? 세계에서 최고의 인권단체로 인식을 하지 않겠습니까.

 

심 : 96년도, 그러니까 변호사로서 15년 조금 넘게 일을 하시고 나서 정치에 입문하시게 됩니다.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요.

천 : 인생에 모든 순간이 선택이지요.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처음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실망도 있었고요. 지금이야 김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길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임용을 포기하는 것이었기에 부모님 생각해서 못 가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바로 변호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주류적인 법조 체계에 비추어 비주류,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겁니다.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고민이 컸습니다. 95년에 김대중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만드셨고, 젊은 전문가 그룹을 영입하셨습니다. 당시 들어갔던 분들이 정동영, 신기남, 추미애, 유선호 이렇게 기억이 나네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변호사로서 엄혹한 시기를 거쳐왔고, 군사독재를 실질적으로 청산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이었고, 김대중 총재를 잘 보필해서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을 했고,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당시 민변 선배들은 거의 반대하셨지요. 그 마키아밸리적인 세계에서 당신이 가서 굳이 상처입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심 : 정치인으로서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민변에서의 활동이나 동료들의 존재가 도움이 된 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천 :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제 정신적 고향은 민변이지요. 그 시절의 열정, 신념, 소명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정치를 한 세월이 있어서 지금은 이게 팔자이려니 하고 생각을 합니다.(웃음) 실제로 정치가 중요하지요. 사회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정치가 뇌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잘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 것이 맞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말로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명절이라고 쉬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젊을 때만 해도 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시대적인 공감대가 있었으니, 일 중심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세상에 태평양 같은 문제가 있는데, 내 바가지로 몇 바가지라도 변화시킨다, 하는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민변에서 배운 거지요.

 

서승연 자원활동가 : 정치를 하시면서도 많은 도전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천 : 제가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기만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을 해 본다면, 제가 72년도에 대학을 들어갔고 그때가 유신이었지요. 저는 청소년기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컸고, 또 신안, 목포 출신이다 보니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대중 선생님이었고, 부모님도 박정희 독재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환경에서 대학을 갔지만, 실제로는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유신헌법이나 공부했습니다. 내적인 갈등이 컸습니다.

이후 민변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 변론도 많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분들, 활동가분들이 극도의 탄압을 당할 때, 그 고난은 말할 수가 없지 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변호사로서 어찌 되었건 밥을 굶길 합니까, 상대적으로 수월했지요. 그런 점들이 부채의식으로 작용했고 심리적으로 압박이었습니다. 지금 내 처지, 내 조건에서 무엇이라도 역사 발전에 기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후 민변에 있으면서 좋은 분들과 사귀고 함께 일할 수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도움이 됩니다.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변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동화되든지 아니면 떨어져 나오든지 하는데 보통 동화되는 것 같더라고요. 기득권에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다 친구가 좋아서 그렇더라고요. (웃음) 저는 친구를 잘 사귀었던 것 같습니다.

 

김유정 자원활동가: 저도 변호사를 꿈꾸며 민변 자원활동가로 지원했습니다. 제게는 미래의 모습이고, 변호사에게는 한참 후배들이실 민변 변호사님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 : 제가 젊어서 직접 민변 일을 할 때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냐, 제대로 열심해 해보자, 말들을 해 왔지요. 그런데 지금 민변 후배들을 보면, 다 열심히 하고 아주 훌륭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작년 30주년 행사에 갔는데, 예전에 알던 동료만 알고 후배들은 거의 모르지요. 그럼에도 한국 사회 지식인 집단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집단이 없어요. 흠 잡을 것이 없습니다.

 

 

이후 방송 인터뷰 일정이 있어서 민변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민변에 대한 사랑이 지금도 여전하시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민변 초기의 체계를 잡는 데에 누구보다 헌신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습니다. 518 망언에 대한 대응, 선거제도 개혁 등 산적한 현안에서도 뚝심 있게 목소리를 내고 관철해 나가는 변호사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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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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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로 사법위원회 간사를 맡게 된 최용근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한참 흥겹게 생일잔치를 하던 2018. 5. 25. 저녁, 대법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숨가쁘게 흘러간 3주의 시간을 잠시 되뇌어 보겠습니다.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한 마디로 참혹했습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특정 사건을 거래의 목적물로 삼은 정황이 드러났고, 법원행정처가 인사권을 남용한 다수의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특별조사단의 조사 대상 파일 410개의 목록 중에는, “민변대응전략”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행사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파일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민변은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사법농단의 피해자 및 그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공동고발장 작성 등에 힘을 보탰고, 나아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를 구성하여 대응에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김지미 사법위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위 T/F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현 시기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한 민변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조사 자료를 전면 공개하여 사법농단의 진상을 밝혀라. ② 대법관을 포함하여 사법농단에 책임 있는 모든 법관들을 현재의 직무에서 배제하라. ③ 대법원장은 재차 이 사태의 중대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하여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향후 있을 수사기관의 수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라.”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은, 사법농단 사태를 해결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입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못했던 법원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법부가 원래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주실 분들이 사법위원회에서 더 많이 활동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초여름을 지나 무더위에 진입하는 날씨입니다. 늘 건강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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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출연하여 사안을 설명하는 김지미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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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앞, 1인 시위 중인 김지미 위원장>

금, 2018/06/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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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지부에서 진행했던 시영운수 관련 소송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평석입니다.

 

 

통상임금 법정수당과 관련된 신의칙 법리의 쟁점

김주관 변호사 (인천지부)

1. 들어가며

최근 2019. 2. 14.자에 대법원에서 기존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 조금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9. 2. 14.선고 2015다 217287 임금 판결)

대법원은 213. 12. 18. 선고 2012 다 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노동자의 사후적 통상임금 청구에 대하여 경영위험을 초래할 경우에 신의칙에 반하여 추가적인 임금 청구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의미하는 경영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여부 및 신의칙에 위반한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여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어서 혼란을 초래한 바 있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선고를 통해서 조금 더 구체적 기준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번 판결의 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간단한 평석을 하기로 한다.

 

2. 대법원 2019. 2. 14.선고 2015다 217287 임금 판결의 요지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없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주장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본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전제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산정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 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다만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여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의 경영 상황은 기업내.외부의 여러 경제적.사회적 사정에 따라서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위험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3.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검토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검토를 해보고자 한다.

첫째, 통상임금과 관련하여 추가적 법정수당 청구에 대하여 신의칙법리를 도입한 것은 2013년 위 항목에서 언급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였다. 강행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영역에 신의칙의 법리가 도입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면이 있었으나, 기업측면에서 과도한 재정정 부담을 사후적으로 가지게 되어 기업도산의 위험이 초래된다면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사회정책적 측면이 대법원 판사들의 논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전체적인 취지가 기업경영 측면에 우위를 두고 노동자의 법정수당 청구를 하위에 두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보니 하급심에서 여러 혼란이 있었으나 대체로는 노동자의 추가적 법정수당 청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판결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그런데 이번 시영운수 사건 대법원 판결을 통하여, 노동자측의 법정수당 청구를 조금더 확장하는 취지의 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법정수당 청구는 근로기준법령에 의해 보장된 구체적 권리라는 점에서 이를 신의칙에 의해 부정하려면 사용자측에서 적극적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 입증하여야 한다고 본다. 사용자측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입증노력 없이 쉽사리 경영상의 위험성을 판사로부터 인정받으려는 것은 노동법의 기본적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영운수 대법원 판결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해당성에 따른 추가적인 법정수당청구는 법원으로부터 인용될 여지가 높아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사용자측에서 적극적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위험초래 상태를 입증한다면 법원도 사용자측의 손을 들어줄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향후에도 “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결론적 문구가 암시하듯이, 하급심 법원에서 이러한 추상적 기준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함에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찌되었든 이번 대법원 판결은 통상임금 관련 신의칙법리에 있어서 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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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03/2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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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원회 활동소식

박수빈 변호사

지난 10월에 사법위 소식을 알려드렸으니 벌써 5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사법위는 여전히 공수처 설치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 및 법원행청처의 사법농단 사태에 관하여 사법행정개혁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련의 사법농단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분노와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에 우리 모임은 사법농단 TF를 결성하여 대응하고 있으며, 사법위원회 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이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사법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공수처 설치를 비롯한 각종 사법개혁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우리 모임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18. 12. 11. 김인회 교수(사법위 위원)님을 모시고 ‘사법개혁을 생각하다’를 주제로 초청강연을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고, 사법개혁의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지에 대한 교수님의 진단을 들었습니다.

뒤이은 2019. 1. 4. 에는 2018.12.경 대법원이 발표한 법원행정처 개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민변 전 회원님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긴급 집담회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서선영 위원님의 <사법행정 현황 및 문제점과 개혁과제>에 대한 발제가 이루어졌고, 참가하신 사법위 위원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의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와 고민을 바탕으로 민변 사무처 산하 사법정책연구지원팀과 협업하여 2019. 2. 15. 민주사법 제1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사법위만의 공은 아니나 이 자리를 빌어 관심가져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현재 법원에서는 지난 2019. 1. 24.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농단의 중심 인물들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민변은 위 재판들의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법농단TF는 대법원에 대하여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의 징계 및 재판업무 배제조치를 요구하였으며, 국회에는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소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법위원회 활동에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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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4/0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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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에 따른 정보공개 청구 

국제통상위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11일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조치에 따라 청와대와 통일부를 상대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의 행사인지,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한 통일부 장관의 협력사업 정지 조치인지’를 확인하는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하였다.

한국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밝히며 ‘“이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익 목적으로 행해진 행정적 행위이며, 이번 조치는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도발의 악순환을 끊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제통상위는 “기업활동과 재산권을 직접 제약하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은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고 법적 절차를 따라한다”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법적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한 것이다.

 

관련하여 송기호 위원장은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에 ‘개성공단 불법중단과 재산 동결, 희망 없나‘라는 기고글 게재하며 ’개성공단 재산 정산 협상에서 대화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3196

월, 2016/02/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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