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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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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16:10

민변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2018. 11. 11. 아침, 제3차 낙동강 현장기행 시민조사단과 함께 영풍 석포제련소로 출발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철제품 부식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라고 한다.
석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다가설수록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석포 초입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차고 맑아보였으나 아래쪽에는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석포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아직 큰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쭉, 아니 자식들을 먹일 동안이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허나 그곳엔 진짜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것은 희뿌연 무언가를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낸 산은 시뻘건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산을 감싼 낙동강은 휴게소에서 본 그 낙동강이 아니었다. 48년이나 아팠던 낙동강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를 나무라는 듯했다.

「김무락 변호사(대구지부 사무차장)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후기」

2018. 11. 11. 제3차 낙동강 기행 중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석포제련소가 야기하는 식수원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대구지부에서는 법률대응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김무락, 박경찬, 백수범, 성상희, 이유정, 정재형, 최지연 변호사)

1970년 영풍이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 가동하여 온 이래 50년 가까이 누적되어 온 환경오염의 문제는 석포면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석포면 인근 주민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에 와서야 시민들이 석포제련소부지 내 토양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하였고, 2015. 3. 토양정밀조사결과 석포제련소 부지 내 6만여 ㎡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의 최대 414배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봉화군이 1,2공장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식회사 영풍(이하 ㈜ 영풍)은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봉화군에 토양정화기간을 2년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하였고, 봉화군이 거부하자 2017. 5. ㈜영풍은 봉화군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서 1, 2심은 ㈜영풍이 승소하였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진행중입니다.

2018년 2월 시민들이 ㈜영풍의 폐수 70만톤 무단방류 사실을 신고하였고, 관계기관의 합동점검 결과 7가지 불법행위가 적발되어 2018. 4. 5. 경상북도가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영풍은 이에 불복하여 경상북도지사를 상대로 조업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도 다시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1심이 계속중이고, 2019. 4. 3. 법률대응단에서는 봉화주민 4명, 안동주민 2명으로 피고 보조참가인을 모집하여 보조참가신청서를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피고 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에 대구지부 회원 19명이 연명에 동참하였습니다.

 

▷ 민변 대구지부 주최 토론회

2018. 11. 14. 민변 대구지부와 영풍 석포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는 ‘낙동강 최상류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한 식수원 오염 실태와 법률대응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법률대응 방안을 차분히 설명하였고, 토론자로 참여한 최지연 변호사는 백수범 변호사의 법률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정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정재형 변호사(토론사회), 김무락 변호사(전체 사회), 오랜 기간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다뤄 온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이상식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대표, 신기선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 2018. 11. 30. KBS 추적60분

“낙동강 미스터리, 48년 영풍공화국의 진실”방영

2018. 12. 18.~19. 1박 2일간 봉화 승부리를 방문한 백수범, 김무락 변호사

 

 

2019. 3. 14. 영풍공대위와 법률대응단 합동회의 및 대구민변과의 간담회

 

▷ 법률대응 진행상황

토지정화명령 건은 법률검토를 거쳐 봉화군과 대법원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며 현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추가 대응방법을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3공장 불법건축물의 합법화 과정, 2, 3공장 폐수 무단방류와 관련하여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감사청구 등의 법률대응을 하기 위해 검토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관련하여서는 우선 소수의 원고라도 모집하여 시범소송으로서 영풍 석포제련소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률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 1차 모금 마무리하였습니다. 개인과 단체 합하여 101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2천여만원입니다. 모집된 성금은 원고들이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없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보수를 포함한 각종 법률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쌓여 다행히도 최근 여러 방면의 환경이 진전되어 가고 있으니 이 불씨를 잘 살려가면 머지 않아 문제해결의 적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는 그동안 애써오신 영풍제련소 공대위와 봉화대책위 및 활동가 분들과 협력하여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아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지부의 활동에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대구지부 근황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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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위원회 활동소식

 

 

1. 경제민주화

2015년도 이제 저물어 갑니다. 여의도에서는 19대 국회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민생법안에 맞서 야권도 각종 민생법안을 발의하는 등 민생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입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참여연대·청년유니온·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등 각종 시민·청년단체와 함께 11월 11일(수) 국회 정론관에서는 정의당과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12일(목)에는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정부의 민생악법을 막고 제대로 된 ‘진짜 민생법안’의 도입을 촉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민생법안은 그 이름과는 달리 대다수 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대기업의 경제력 독점을 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름뿐인 정부·여당의 민생법안 입법을 저지하고 중소상공인·전월세거주자·저소득층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진짜 민생법안’ 입법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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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생위 외부 인사 강연

이번 11월에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교수·국회의원 등 외부 인사분들을 모시고 민생경제 각 분야의 현안에 대하여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11월 17일(화) 저녁 7시에는 부동산팀 주최로 서울대 김용창 교수님을 모시고 “도시계획제도와 시민단체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개최합니다. 이어 11월 18일 저녁 7시에는 11월 민생위 월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의원님을 모시고 정당과 시민단체의 연대모델, 경제민주화 사업의 중요성 등을 다룰 간담회를 개최합니다.

 민생경제위원회 일정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 뿐만 아니라 민생경제 분야에 관심있는 모든 회원분께 열려있습니다. 관심있는 회원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민생경제위원회와 관련된 각종 문의사항은 사무처 송아람 상근변호사(02-522-7284)로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 민생경제위원회 소식이었습니다^^

 

목, 2015/11/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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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 곳에서 발견한 학살과 고통의 흔적

성유리(김인숙회원의 자녀)

입시가 끝난 후, 엄마의 권유에 따라 제주평화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제주 평화기행은 내 생각과 달리 엄마와 나와 둘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얼 결에 민변 과거사위 분들과 함께 이행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내가 알고있던 4.3사건이란

내가 제주 4.3사건을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지나가듯 얼핏 본 알쓸신잡의 한 장면에서였다.

4.3사건이라는 명칭과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들었다. 딱 그 정도의 익숙함이었고, 그 프로그램 또한 마저 보지 않은 탓에 4.3사건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규모 학살에 가까운 살인이 있었다, 그 규모는 몇십에서 몇백에 이른다’

이 정도의 설익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탓에 처음 버스에 오르고 배부 받은 안내 책자를 읽었을 때, 큰 충격에 빠졌다.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라는 표현이 주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에 당황했다.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생긴 사건을 나는 왜 모르고 있을까? 내가 이 정도로 무지한 걸까?

그 정도의 규모의 사건이라면 대한민국에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주위의 사람들 여럿에게 이 사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다들 똑똑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규모를 1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사람은 1명, 6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국사를 전공한 사람 1명을 제외하고는 나와 같이 이 사건의 규모에 대하여 현실의 반의반만큼도 알고 있지 못했다.

4.3사건은 4.3일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약 7여년에 걸쳐 1947. 3. 1~1954. 9. 21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일부 희생자들끼리의 이념 대립 또한 있겠으나, 가장 많은 희생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었고 이들이 민간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민간인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자 한다.

발단은 어린아이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의 뒷발에 다친 일이다. 1947년 3월 1일, 행렬을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말에 치여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어린아이가 다친 것을 몰랐고, 사람들은 다친 어린아이를 두고 떠나는 경찰의 뒤를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다. 놀란 경찰은 긴급히 피신했고, 이를 본 경찰들은 총을 발포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일제시대 때도 사람이 사망한 일이 없었다는 제주도에서 주민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폭력을 거부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와중 2명의 경찰 사상자가 나왔다. 소통이 안 된 환경 속 오해는 그렇게 불어났고, 분단을 바라지 않은 사람들은 폭도로 규정되어 사살 대상자가 되었다. 국가는 1000명을 죽이면 한 명의 폭도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며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4.3사건을 쳐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설명이 틀리다고 할 수 없으나 충분하지 못하다.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대량학살당한 주민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으며, 무력을 앞세워 정부에 반대한 인사들로부터도 오히려 도망다녀야했던 사람들이었다. 무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했다고 보기 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통해 그 속에 숨어있을지 모를 반대자들을 없애겠다는 국가의 방침에 따른 참혹한 살인이었고 슬픔이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알려지지 못한 사람들

평화공원에 갔다.

위패봉안소에 가서 신분이 확인된 피해자분들의 위패를 보았다. 처음엔 그것이 위패인 줄 몰랐다.

약 14,000개가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량 학살이 일어난 현장에서 신분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곳도 있다 하였고,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 또한 흔하다 했다. 그 가운데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상자만 14,000명이라는 이야기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그 몇 배가 될 터였다.

면접 스터디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연습했던 사안 중 하나가 ‘한’생명의 소중함과 무거움이었다.

다수를 살릴 수 있다 하여도 죄 없는 한 사람의 목숨을 다수의 목숨과 교량하여 희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다. 희생될 한 명의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한’명의 생명권이 얼마나 엄중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나날들이 불과 며칠 전인데 14,000명이 이름 하나 남기고 사라진 장소에 있다는 생각에 어지러웠다.

유리1

<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위패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 더욱 이 사람들이 실존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비슷한 이름이 함께 같은 지역자란에 적혀져 있었다. 돌림 이름을 지었던 우리나라의 관습을 생각해보면 이 들이 형제 혹은 남매일 터였다. 감히 그분들의 성명을 빌려 설명을 돕자면

고창수, 고창동.. 김치우, 김치현. 같은 지역의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가족 단위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김영중의 자. 이런 식으로 이름마저 아직 남기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위패가 적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죄목으로 희생당한 걸까? 당시 제주의 인구가 30만 명이라 했다. 공식적으로 1만 명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3만에서 6만, 8만까지 희생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수가 과연 희생당한 사람의 수가 맞는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로스쿨에서의 공부를 돕기 위해 예비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로스쿨에서 예비교육을 하는 첫 번째 시간에 헌법 수업을 들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배웠다. 당시 나는 4.3사건에 대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며칠이나마 기행을 통해 설명을 듣고 현장을 보고 느낀 내가 잘못된 사실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때문에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더욱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은 대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 그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인 생존권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 것일까.

교수님은 인권이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적 간섭 배제 요청권이라고 하셨다.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대 국가적 방어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던 주범이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생긴 개념일 것이다. 학부 때에도 분명 배운 개념인데, 제주를 다녀온 후 인권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제주에 그저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놀러 갔다면 이 표현이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없었으리라. 국가의 폭력 앞에 개인은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 본질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현실은 이렇게나 참혹하고 슬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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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몰려서 살해당하기를 기다리는 모습.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 숙인 모습과 절망 섞인 표정이 시신 없는 행방 불명자들의 비석 가운데에 나타나있었다. 이 들의 심정을 상상하고 이 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공감하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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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형무소에 갇혔던 사람들. 수장되기도 했고 피살되어 대규모로 땅에 묻히기도 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감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 사람들.

남아있는 편지에서 이들에게는 너무나 현실이었을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때에 든 생각 또한 처음 위패봉안소에 갔을 때와 같았다. 이렇게 참담한 사건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많은 사람 또한 모르겠구나. 외부 사람들 중에는 4.3사건을 4.3폭동이라는 명칭을 붙여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은 밤이면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숨어야 했고, 낮이면 경찰들을 무서워하며 도망가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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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날을 보면 집단적 사살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보고 나이를 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 아이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시대의 아픔에 희생되기엔 너무나 이른 나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동굴로 피해 겨울 날씨에 동사하고 굶주려 아사했다. 또는 운동장으로 불려가 무차별적인 총살을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존해있는 피해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시기 때문이다. 국가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당했던 것은 국가폭력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또 붙잡혀갈까, 혹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말하기 힘든 것이다.

혹자는 너무나 큰 갈등의 크기 때문에 생존자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건엔 명칭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과 두려움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직 있을 때, 용기 내주시는 분들이 있을 때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폭동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희생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도록.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가 있다. 여기에 독일 사람들이 한국에 여행 왔을 때, 그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게 여겼다.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던 나라의 후손으로서 비슷한 아픔의 현장을 보고 과거를 되새기며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려는 자세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역사의 아픔의 현장을 보면서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다크투어가 더욱더 성행해야 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듣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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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나 하나에 모두 눈길이 가지만,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을 잊을 수 없다. 저 아이가 무엇을 알고 무슨 잘못을 해서 희생당한 것일까.>

평화박물관에서 본 희생자들의 얼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 살아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플까. 이 들이 저항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많이 아파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관심과 공감이다. 평화박물관에서 설명을 해주시는 가이드분을 보며 느꼈다. 몇 번씩 반복해서 4.3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실 텐데 이야기하실 때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아는 것을 원하셨고, 희생자들을 기억해 줄 것을 원하셨다. 이 사건을 돌아보며 이를 평화의 도구로서 쓸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 명칭마저 지어지지 않은 이 아픈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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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볼 때에도 절벽마다 요새가 지어져있는 볼 수 있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섬 전체가 요새화되었기에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더욱 경계한 것일까. 1000명 죽이면 한 명은 폭도일 것이니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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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을 파는 강아지가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

서울에 가자마자 순이삼촌 책을 샀다. 중단편 모음집 속 순이삼촌은 그리 분량이 길지 않다.

누구라도 부담 없이 금방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혹은 읽고 제주 다크투어를 통하건 혹은 개인적으로 방문하건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를 둘러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큰 공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할머님이 들려주신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2년 만에 사망한 어린 동생의 이야기, 운동장에 수십수백 명이 모여 한꺼번에 총살 당한 이야기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왜 제주도민들이 같은 날에 오열하며 합동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 있다.

이해관계를 떠나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기릴 수조차 없이 마을 단위로 사라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주민들의 희생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이 사건을 알리고자 다크투어를 기획한 사람들이 있는지, 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진상조사를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마을회장 할머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상대가 미웠지만, 이제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신다고.

수많은 사망자와 행방 불명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그분들이 말씀해주실 수 있을 때 진상조사가 활발히 일어나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길 바란다.

화, 2018/02/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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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6. 과거사청산위원회 신입회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하여 과거사위 입회원들과 배회원들이 함께하는 신선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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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는 신입회원들을 위한 뜨거운 환영과 배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장완익 변호사님께서 들려주시는 과거사위의 역사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과거사위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과거사위가 걸어온 길을 함께 훑어보면서, 우리 위원회를 조금 더 알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29차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습니다.

 맛있는 음식, 다른 곳에서 듣기 어려운 귀중한 말씀, 그리고 좋은 사람들.

배도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지는 점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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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희 위원장님 말씀처럼 우리 과거사위가 앞으로 더 재밌고 유쾌한 모습으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지난 5년 남짓 과거사위와 함께하셨던 오지은 간사님께서 아쉽게도 과거사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간사님께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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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부 소식

조애진 변호사

 

◎ 부산퀴어문화축제 참가

2018. 10. 13. 부산 해운대 구남로에서는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우리 민변 부산지부에서 ‘법률지원’을 목적으로 단독 부스를 설치․ 운영하였습니다. 인천 퀴어문화축제때 보수기독교단체가 축제참가자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일이 있었던 터라,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이 특별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고, 인천과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부산 민변 회원들이 적극 나서게 되었습니다.

금년에도 해운대구청은 축제 행사용 부스설치를 위한 도로점용을 불허했습니다. 이에 대해 부산기독교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산에서 활동하는 진보정당 등 많은 단체에서 해운대구청의 처분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고, 우리 민변 부산지부도 “해운대구청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중단하고, 제2회 퀴어문화축제의 평화로운 개최를 보장하라”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큰 사고 없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물론 아쉬웠던 점도 많았습니다. 축제를 방해하려는 혐오세력은 올해 더 크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빵빵한 음향시설을 갖춘 초대형 무대를 해운대 구남로에 설치하였습니다. 때문에 몇몇 변호사님들은 행사장소를 오인하여 혐오세력의 행사에 다녀오시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로는 해운대 구남로에 펼쳐진 성소수자들의 자긍심과 다양성의 축제를 결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엘라이’들이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민변 부산지부도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 부산지부 회장님과 사무국장님이 부스에 부산민변 무지개 깃발을 설치중

 

 

 

◎ 젠더위원회 페미니즘 독서모임

민변 부산지부 젠더위원회는 올해 최대의 화두가 ‘미투운동’이라는데 공감하는 회원들의 제안으로 2018년 초에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첫 사업으로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추진하여 8월에는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9월에는 <사랑은 사치일까-벨훅스>, 10월에는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를 읽고 토론을 하였고, 11월에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스테파니 스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활동

뿐만 아니라 민변 부산지부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부산)’에 회원조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소수자 지원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4월에는 수영구의회의 인권조례 개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5월에는 경찰의 성소수자인권단체에 대한 과잉 정보수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및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를 기념하는 아이다호 문화제에 참여하는 등 바쁜 재판 일정 속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나가며…

민변 부산지부는 지역사회에서 민변의 역할과 소명에 대해 항상 고민하면서 지역의 시민단체, 진보정당와 연대하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젠더위원회의 설치를 필두로 하여 앞으로 다양한 위원회 구성을 통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해나갈 것입니다. 민변 부산지부의 활동에 대하여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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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1/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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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 후기

이승경 변호사

지난 9월 8일,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이미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던 차에, 인천에서도 드디어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게 되었는데, 첫 단추를 꿰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측에서 이미 합법적으로 집회신고까지 마친 집회를 아예 원천봉쇄하기 위하여 시작단계부터 꾸준히 반대 집회 및 선전전 등으로 행사 개최를 방해하여 왔고, 결국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조직위측에서 행사장소로 정한 동인천역 북광장에 대한 사용 신청을 불승인하게 되어 반대세력 측에서는 마치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불법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였습니다.

이에 조직위측에서 민변 인천지부에 법률자문을 요청해와 법률조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하였으나, 민변 인천지부의 법률조력을 통하여 행사 전날인 9월 7일 기각 결정이 나왔고, 조직위측은 인천지방경찰청 및 인천중부경찰서측에 충분한 경찰 인력을 파견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행사를 보장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경찰측은 최대한 많은 경찰 병력을 투입하여 행사의 안전을 보호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앞서 개최되었던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 집회가 있더라도 경찰측의 보호를 통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행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드디어 9월 8일 행사 당일 오전, 인권침해 감시 등 집회 법률지원을 위하여 행사 장소인 동인천역 북광장에 도착하였으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조직위측에서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한 북광장을 반대세력이 전날부터 무단점거하여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고, 무대 및 부스 설치를 위한 트럭조차 진입할 수 없도록 길목 곳곳에 무단으로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반대세력의 불법 집회가 있을 경우 해산시키겠다고 조직위측에 약속하였으나, 행사 진행을 위한 차량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불법주차차량을 견인하려고 할 때마다 반대세력측에서 몰려와 차량 밑에 들어가고 견인차량 앞에 드러눕는 등 방해하였고, 경찰은 집회장소를 불법점거하고 있는 반대세력을 제대로 해산시키지도 못하여 행사의 정상적인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리행진을 위해 나온 참가자들이 행진을 막고 있는 반대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당시 반대세력의 인원수에 비하여 경찰측 인원이 많이 부족하여 경찰측은 북광장 한쪽 구석만을 확보하였고, 그 좁은 장소로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모았으나, 반대세력측에서 폭력적으로 경찰벽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을 시도하였고, 안쪽으로 뚫고 들어온 반대세력들과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로 섞여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측은 인력부족으로 방어벽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세력들을 바로 연행하거나 해산시키지 않고 조금씩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오전부터 와 있던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과 스탭들은 사실상 외부와 고립된 상태가 되었고, 밖에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광장으로 향하던 참가자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반대세력에 둘러싸여 폭행 및 폭언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참가자들이 안쪽으로 들어오거나 대치하는 과정에서 반대세력에게 옷을 찢기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깨물리거나 안쪽에 전달하려던 음식 등을 빼앗기거나 갖고 있던 깃발을 훼손하는 등 수많은 혐오범죄가 자행되었습니다.

경찰벽 안에 고립되어 있던 참가자들과 스탭들에게 음식물 등을 전달할 수도 없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은 부스에서 판매하려던 굿즈들을 좌판을 벌여 판매하기도 하였고,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나름 흥겹게 작은 퀴어문화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퀴어문화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를 진행하려고 시도하였는데, 반대세력 측은 참가자들의 퍼레이드를 막기 위하여 몸싸움은 물론 퍼레이드 차량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타이어 펑크까지 내고 깃발을 훼손시키는 등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하였으나 여전히 경찰은 소극적이었고 안전한 퍼레이드를 위한 통로 확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한 대치를 거쳐 경찰이 통로를 확보하여 불과 2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던 거리를 무려 5시간 정도나 걸려 가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정식으로 폐회 선언을 하고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부산, 제주, 전주 등지에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었고 거의 매번 반대 집회는 있어왔으나 이번 인천의 경우처럼 아예 무대 및 부스 설치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세력의 폭력이 도를 넘어 행사 자체가 파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에 조직위측은 9월 10일 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범죄 조장한 인천지방경찰청장과 동구청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각종 피해사례를 접수하여 향후 고소고발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민변 인천지부는 민변 소수자위원회와 공동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인천퀴어문화축제 집회 방해등 각종 피해사례와 관련한 고소고발 및 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인천은 일부 종교단체의 반대로 인하여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인권조례제정운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P.S. 10월 3일에는 인천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 혐오범죄 규탄집회가 열렸고, 이날은 다행히 경찰이 지난번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 상대적으로 좀 더 대응이 잘 되어 이른 시간부터 반대세력을 막는 노력을 했고, 거리행진 등 집회 안전 보호가 비교적 잘 이루어져 9월 8일과 같은 큰 충돌은 없이 집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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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0/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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