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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 인터뷰] 천정배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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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 인터뷰] 천정배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17:09

창립회원인터뷰 – 천정배 변호사를 만나다

 

본 인터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 30주년 사업의 후속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창립회원 아카이브’ 사업을 위해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합니다.

 

민변 21기 자원활동가분들(김유정, 서승연, 이단비)과 함께 국회의원회관 천정배 의원실로 방문했습니다. 변호사님(‘천’)께서 자원활동가분들 이름을 여쭈시면서 “말이 좋아 자원활동가지, 이거 열정페이..”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셨고, 이후 편하게 말씀을 이어가 주셨습니다.

 

 

심재섭 변호사 (민변 출판소통팀장, 이하 “심”): 민변 창립회원 선배님들께 민변 창립 당시의 이야기도 듣고, 후배들에게 해 주실 말씀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다른 여러 일정이 많으실 텐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변호사가 되시기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여쭙습니다.

천정배 변호사 (이하 “천”) : 오래된 이야기네요. 연수원에 들어갈 때에는 판사를 할지, 검사를 할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연수원에서 실무 수습을 하는 도중에는 검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주위 동기들은 제가 판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형사사법이 운영되는 실정을, 제가 보기에는, 검사가 중요하지 판사는 좀 소극적이지 않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78년 도에 수원에 있는 1전투비행단에서 공군법무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군복무 기간 중에 여러 일이 있었지요.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군검찰관 일을 했고, 이후 1212쿠테타, 80년 5.18. 전일 당시 김대중 선생의 구속 사건도 있었지요. 518도 있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전두환 일당, 쿠테타 세력의 하수인으로서 검찰이 될 수는 없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엄 하에서의 험한 일들은 육군에서 일어났지요. 계엄사령관도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전 공군법무관이었기 때문에 좀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육군 중심의 계엄사령부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공군에서 법무관 한 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을 한 일이 있었어요. 당시 육군에 있던 동기들이 하던 일들이란, 김대중 선생을 비롯한 분들을 군검찰관으로서 기소하는 일, 군판사로서 사형선고하는 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를 기소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가게 되면, 제가 김대중 선생님을 기소, 재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탈영을 했으면 했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요. 김대중 선생을 단죄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저는 혹시라도 제가 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동료, 상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뒀습니다. 난 절대 가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공군에서는 왜 저를 그렇게 봤는지, 저를 보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당시 제 계급이 중위라서 육군에서 대위급을 보내라고 요청이 와서, 안 갈 수 있었습니다.

심 : 그때 가셨으면 지금의 변호사님은 안 계셨을 수도 있었을까요.

천 : 에이, 아무리 보내도 제가 안 가지요. 탈영을 했으면 했지. 제가 뭐 똘똘하게 잘 한 일은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심 : 변호사가 되는 것도 여러 길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 81년도 8월에 제대를 하고, 검사는 못하겠다 생각을 했으니 변호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할지, 고향인 목포로 갈지, 광주로 갈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고심 끝에 들어가게 되었고 4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송무는 거의 없었고 주로 외국 클라이언트와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외국 변호사들과 팀이 되어서 일을 했지요. 그 안에서 영어도 그렇고 기존의 통상적인 변호사 업무와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운 좋은 기회였습니다.

 

심 : 서울대 법학과, 사시합격, 대형로펌의 국제분쟁 변호사라는 이력과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의 개업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천 : 비즈니스 로이어가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로는 그 길로 끝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4년차 이후에 2년 정도 외국을 보내주는 시점이었는데, 거기를 다녀와서 그만 두는 것은 좀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그 시점에 그냥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우리 딸들에게 타박을 받습니다. 그때 다녀왔으면 영어를 좀 했을 텐데, 아빠가 안 가서 우리가 영어로 고생이라고.(웃음)

85년도에 나와서 조영래 선배,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현재 진보연대 대표와 모여서 사무실을 시작했습니다. 김앤장에 있을 때 조영래 선배와 가까워졌어요. 워낙에 유명한 분이라 대학 때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친해진 것은 그때였어요. 그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권의 지도부였고, 연수원에 가서도 운동으로 문제가 되어서 도피생활을 길게 하셨지요. 1980년도에 비로소 다시 연수에 들어갔어요. 원래 2기로 입소한 것으로 아는데, 수료는 12기에 하셨어요. 연수원에 계실 때 김장에 일을 좀 도와주러 오셨는데, 그때 알게 되었지요. 82년에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대표와 같이 먼저 사무실을 차렸더라고요. ‘시민공익법률상담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로 산재피해자, 노동약자 등을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제가 김장에 있을 때, 조선배 먼저 나가서 하고 계시라, 저도 곧 나가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김장을 퇴사하고 합류하게 된 것이지요.

 

심 : 민변처럼 인권 신장에 헌신하는 변호사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변호사님께서 민변 창립회원이 된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천 : 민변은 88년도에 만들어 졌지만, 그 전에도 이름이 어떻든 조준희, 황인철, 이돈명, 홍성우 이런 분들을 주축으로 인권변호사의 흐름은 있었지요. 조영래 변호사님 역시 같이 활발히 활동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 자신은 당시 사무실을 유지하는 일을 했어요. 소위 돈 되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돈을 잘 벌지도 못했지만요. 당시 조영래 선배가 망원동 수재사건, 권인숙 양 성고문 피해사건 변론을 할 때, 저는 사무실 안에서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관여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86년도 건대 사건이 있었잖아요. 워낙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일손이 부족하니까. 그때 우리 내부에서 일 시키는 것은 박석운 후배 몫이었는데, 천 선배 거기 좀 가봐, 하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접견을 가게 되면서 소위 시국사건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87년 대통령 선거일에 일어난 구로구 부정투표 사건을 본격적으로 맡았습니다. 구로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때 동대문 경찰서에 접견을 가서 만난 분이 김희선 선생하고, 김병곤 선생을 만났어요. 수갑을 차고 오더라고. 지금이라면 수갑을 풀라고 이의를 했겠지만, 그때는 신참이라 그런 말도 못한 기억이 나네요. 그 사건은 제가 끝까지 열심히 한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계기로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민변이 만들어졌지요. 당시 노장 인권변호사 그룹과, 연수원 기수로 13기 전후의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거지요. 젊은 그룹으로는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이런 분들이었고, 좀 더 후배로 백승헌 같은 분이 있었지요. 전 위치가 좀 애매했던 것이, 나이로는 후배 그룹과 비슷한데, 연수원 기수는 좀 이르단 말이에요. 제 동기인 연수원 8기는 저와 서해교 변호사밖에 없었습니다. 좀 낀 세대였던 겁니다. 그 두 그룹이 주축으로 모였기 때문에 제가 뭘 할 여지가 없었어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을 걸요. 조영래 선배와 윤종현 변호사가 저도 집어넣어서 창립회원이 된 겁니다.(웃음)

정치인이 되다 보니까 민변 창립 주도라고 써주셨는데, 특별히 한 일이 별로 없네요.(웃음) 그러니까 저도 초기에는 좀 서먹서먹했어요. 후배 변호사들하고 잘 알지도 못했고요.

제가 민변 창립 즈음에 다시 김앤장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해요. 개업할 때는 세금이다 뭐다 신경 쓸 것이 많았는데, 다시 큰 조직에 들어가니 편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다시 들어갔어요. 송무를 담당했습니다. 동시에 민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89년도 방북사건들, 임수경 의원, 문익환 목사, 서경원 의원, 리영희 논설위원 등 사건이 폭주하게 되었고, 제가 임수경 의원 사건, 리영희 선생 사건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에서 한 달에 200시간 일을 한다면, 10시간이나 김장 일을 하고, 나머지는 민변 사건을 했던 겁니다. 회사에 미안하기도 해서, 다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일을 하다보니, 민변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는데 너무 산발적으로 체계가 없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민변 일만 하는 상근 변호사를 뽑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상근 변호사를 하지는 못하고, 제 사무실을 민변이 있던 건물 바로 아래층에 내고 민변 일에 중점을 두어 했지요. 이후에 후임을 못 찾아서 민변 상근 간사는 제가 유일합니다.

이후에 당시 민변에서 제일 파이팅 넘쳤던 임종인,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 91년에 해마루 법률사무소를 만들었습니다. 초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셨던 김창국 변호사님이 우리 셋과, 해마루라는 이름을 두고 해가 지는 석양에서 검객 3명이 모인 것 같다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이후 노무현 변호사도 모시고, 전해철 변호사님도 모시고 했지요.

 

심 : 민변 초기에 내가 이렇게 기여했다, 하는 점도 자랑을 좀 해 주셔요.

천 : 상근 간사로서 1년 정도 일을 하면서 제 업적이라면, 민변 회비를 5만원, 10만 원으로 올린 것입니다.(웃음)

또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 비슷하게 활동하는 변호사 집단과 교류 기회를 만들었고, 지금도 지속되는 것으로 알아요. 또 제가 상근 간사를 할 때 ICCPR(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 관련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80년대 말 전두환 때인가 노태우 때인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을 했어요. 그 사람들 참 재밌어요. 아직 미국도 가입을 안 한 것 같은데, 독재자들이 그런 것은 잘 가입하고 그랬습니다. 규약에 가입한 나라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요구하고, 정부가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때 인권 NGO에서는 카운터 레포트를 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우 정권 때에 법무부 인권과에서 최초 레포트를 냈고, 민변이 이것을 입수해서 카운터 레포트를 냈지요. 그때 조용환 변호사가 열심히 했습니다. 이후 빈에서 열린 세계 인권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국제 무대에 민변이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민변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겠지요? 세계에서 최고의 인권단체로 인식을 하지 않겠습니까.

 

심 : 96년도, 그러니까 변호사로서 15년 조금 넘게 일을 하시고 나서 정치에 입문하시게 됩니다.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요.

천 : 인생에 모든 순간이 선택이지요.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처음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실망도 있었고요. 지금이야 김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길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임용을 포기하는 것이었기에 부모님 생각해서 못 가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바로 변호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주류적인 법조 체계에 비추어 비주류,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겁니다.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고민이 컸습니다. 95년에 김대중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만드셨고, 젊은 전문가 그룹을 영입하셨습니다. 당시 들어갔던 분들이 정동영, 신기남, 추미애, 유선호 이렇게 기억이 나네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변호사로서 엄혹한 시기를 거쳐왔고, 군사독재를 실질적으로 청산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이었고, 김대중 총재를 잘 보필해서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을 했고,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당시 민변 선배들은 거의 반대하셨지요. 그 마키아밸리적인 세계에서 당신이 가서 굳이 상처입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심 : 정치인으로서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민변에서의 활동이나 동료들의 존재가 도움이 된 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천 :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제 정신적 고향은 민변이지요. 그 시절의 열정, 신념, 소명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정치를 한 세월이 있어서 지금은 이게 팔자이려니 하고 생각을 합니다.(웃음) 실제로 정치가 중요하지요. 사회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정치가 뇌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잘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 것이 맞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말로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명절이라고 쉬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젊을 때만 해도 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시대적인 공감대가 있었으니, 일 중심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세상에 태평양 같은 문제가 있는데, 내 바가지로 몇 바가지라도 변화시킨다, 하는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민변에서 배운 거지요.

 

서승연 자원활동가 : 정치를 하시면서도 많은 도전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천 : 제가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기만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을 해 본다면, 제가 72년도에 대학을 들어갔고 그때가 유신이었지요. 저는 청소년기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컸고, 또 신안, 목포 출신이다 보니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대중 선생님이었고, 부모님도 박정희 독재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환경에서 대학을 갔지만, 실제로는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유신헌법이나 공부했습니다. 내적인 갈등이 컸습니다.

이후 민변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 변론도 많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분들, 활동가분들이 극도의 탄압을 당할 때, 그 고난은 말할 수가 없지 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변호사로서 어찌 되었건 밥을 굶길 합니까, 상대적으로 수월했지요. 그런 점들이 부채의식으로 작용했고 심리적으로 압박이었습니다. 지금 내 처지, 내 조건에서 무엇이라도 역사 발전에 기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후 민변에 있으면서 좋은 분들과 사귀고 함께 일할 수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도움이 됩니다.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변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동화되든지 아니면 떨어져 나오든지 하는데 보통 동화되는 것 같더라고요. 기득권에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다 친구가 좋아서 그렇더라고요. (웃음) 저는 친구를 잘 사귀었던 것 같습니다.

 

김유정 자원활동가: 저도 변호사를 꿈꾸며 민변 자원활동가로 지원했습니다. 제게는 미래의 모습이고, 변호사에게는 한참 후배들이실 민변 변호사님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 : 제가 젊어서 직접 민변 일을 할 때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냐, 제대로 열심해 해보자, 말들을 해 왔지요. 그런데 지금 민변 후배들을 보면, 다 열심히 하고 아주 훌륭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작년 30주년 행사에 갔는데, 예전에 알던 동료만 알고 후배들은 거의 모르지요. 그럼에도 한국 사회 지식인 집단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집단이 없어요. 흠 잡을 것이 없습니다.

 

 

이후 방송 인터뷰 일정이 있어서 민변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민변에 대한 사랑이 지금도 여전하시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민변 초기의 체계를 잡는 데에 누구보다 헌신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습니다. 518 망언에 대한 대응, 선거제도 개혁 등 산적한 현안에서도 뚝심 있게 목소리를 내고 관철해 나가는 변호사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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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기 자원활동가 인터뷰]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꾸다 : 조현주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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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맑던 6월의 어느 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조현주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의 곁에서 보낸 그는 만도지부 투쟁, 쌍용자동차 대한문분향소 투쟁, 콘티넨탈지회 노조 간 차별 소송 등 굵직한 노동 사건들을 맡아왔다.

최근 열린 민변 31차 정기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그는 ‘세상에 이로운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꾼다는 조현주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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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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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현주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주 변호사입니다. 2009년에 변호사가 된 후 2011년에 민주노총 법률원을 시작으로 금속노조 볍률원을 거쳐 작년 5월부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조현주 변호사‘라고 하면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부터 노동 변호사를 꿈꾸신 건가요?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땐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동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죠.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학내문제 관련 집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세대학교 학생 한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 학생은 풍물패 단원이었는데, 집회가 진행되기 전 준비 작업을 했을 뿐인데 토끼몰이식의 시위 진압으로 인해 맨 앞에서 맞아 죽은 거죠. 그 학생이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 보면서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후 졸업할 시기가 되어 ‘내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제 대답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거였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즉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길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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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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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사법고시 합격 후 처음부터 법률원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네. 연수원 수료할 때 법률원에 지원을 했는데 그 때는 지원이 늦기도 했고 채용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우선 일반 법률사무소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한 후에 다시 지원을 해서 운 좋게 민주노총법률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Q. 현재는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우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공공운수노조의 부설기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조 관련한 일을 하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상담 및 자문, 의견서 작성, 법률 교육, 다른 단체와의 연대활동, 기본적인 송무 등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에는 변호사 9분, 노무사님 4분, 차장님 3분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업무의 강도는 어떤지 궁금해요.
법률원에 들어오기 전에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걱정을 했어요. 지금은 법률원 규모도 어느 정도 커지고 인원 충당이 많이 돼서 예전 선배들만큼 고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업무는 상당한 편에 속해요.

특히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시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아지죠. 또 단순히 투쟁은 끝나더라도 법률적인 싸움은 지속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업무량은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말에는 최대한 쉬려고 노력하는데, 이때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미술관도 가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해요.

Q.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높은 업무강도를 버티기 위한 나름의 비법이라도 있나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스스로도 아직 비법을 찾지 못했거든요.(웃음)
다만, 예전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려고 식사도 자리에서 대충 해치웠는데, 이제는 점심시간에 바깥공기도 쐬고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큼 척추에 무리가 가는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식사시간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산책도하고, 혈액을 순환시켜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Q. 그동안 다양한 법률원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금속노조법률원에 있었던 2016년 초에 노조가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때 금속노조 사무처 분이 “그래도 변호사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내가 도움이 됐구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문자를 보내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여럿 있어요. 일을 하다가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떠올리는 분들, 노조들이 있어요. 절 잊지 않으시고 “보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분, “고맙다. 잘했다”고 말해주셨던 분들이요.

한번은 제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지회장님이 농담으로 ‘변호사님이 불러준 그 노래 때문에 우리가 투쟁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가벼운 농담일지라도 기억에 남죠.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저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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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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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직장갑질 119>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네이버 밴드, 메일 등을 통해서 노동자분들이 직장에서 받으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말해주시면 스태프들이 법률 자문을 해주는 시스템인데요, 저도 스태프로 직장 내 부당한 대우나 차별적 관행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Q. 직장갑질 119에 자문을 의뢰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인가요?
피해자 분들이 얘기해주시는 사건들은 대부분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임금체불이나 근로시간 산정, 연차 수당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히 많고요, 이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도 꽤 높은 편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들으면 저는 항상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직접 만드시라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혼자보단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게 훨씬 수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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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진행되는 상담과 법률원 측에서 진행하는 노동 상담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도 유선 상으로 노동 상담을 하긴 해요. 다만, 이쪽으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고,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저희가 거의 이름,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 저희가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직장갑질 119를 통해 문의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익명이기 때문에 저희가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요. 익명이기 때문에 상담을 신청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고,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은 있어요. 한편으로 저희가 상담을 해드려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정말 중요한데 이분들이 상담 후에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실지는 미지수죠. 이 부분은 민주노총 법률원 유선 상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상담을 넘어서 ‘직접 힘을 모아 부당한 것을 바꾸자’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상담을 넘어선 집단적 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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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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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사로서 노동 현장에 함께 하시면서 노동권 보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법적 장치, 사법 환경이 있나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지금 법원의 해석으로 ‘노동자’의 범위에 포섭되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더 이상 법원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가 내려왔는데 이행기간이 내년 상반기로 알고 있어요.

이 외에도 지금 창구단일화 구조는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교섭을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경되어야 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낮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지금 현행법에서는 강요된 근로를 금지하기는 하는데 ‘감금’과 같은 수단을 요구해요. 즉, 아무리 강요된 근로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감금’과 같은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면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요새 누가 감금해놓고 강제로 일을 시키나요?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인거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게 실질적으로는 폭행을 하거나 협박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처벌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지속되는 경우가 있고요. 이렇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시급히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2013년 변호사님께서 쓰신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노동자의 개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사회는 ‘노동자’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막노동‘의 이미지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들은 노동자야’, ‘나는 커서 노동자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노사관계와 관련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왜 이런 편견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노동자가 될 수 있고, 노동자가 되었을 때 어떠한 권리들을 요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투쟁을 하는 단체’, ‘공격적인 단체’라고 편견을 갖는 부분도 개선되어야겠죠. 노동조합을 활동할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기본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노동조합이 중요한 데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노동조합의 투쟁방식도 천차만별일 수 있는 데 노조에 대해 공격적 이미지만 갖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들이 해소될 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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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한 인터뷰에서 “정의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변호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윤보다 사람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구요, 구체적으로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음식과 식당이 차고 넘치는 데 굶어 죽는 분들이 있고, 길거리에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한 몸 뉘일 곳이 없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가요. 아픈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노후를 위해서 일평생을 바치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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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마지막으로, 인간 조현주의 앞으로의 계획, 꿈은 무엇인가요?
법률원에 처음 들어올 때 술자리에서 꿈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묘비에 ‘인권변호사‘ 라는 글자가 새겨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살다 보면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지금 이야기 하는 꿈이 바뀔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권변호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금, 2018/06/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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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활동 소식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하여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으로 헌정을 유린하였습니다.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이라는 명목으로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판결로서 ‘제2의 국가폭력’을 자행하였습니다. 누구보다 공정하여야 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하여야 할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고 자평하면서,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내팽겨 쳤고, 판결을 정부와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농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의 선두에는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국가폭력을 가하였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5월 28일,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며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은 사법부의 만행을 규탄하며,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오전 11시경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과거사 피해자들 약 500명을 고발인으로 하여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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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과거사위원회는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에 합류하여,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사 관련 판결에 대한 재판거래 내지는 재판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6월 27일 오전 11시에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모임인 ‘긴조사람들’이 주관하는 “민보상법 18조 2항 헌법소원에 대한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과거사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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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월 15일에는 과거사위원회의 신입 회원들을 환영하는 “신선한 모임”을 가졌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과거사위원장을 역임하셨던 장완익 변호사님(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을 모시고, 과거사위원회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입회원으로 서채완, 이주희, 정현석, 천지륜 변호사님이 함께 해주셨답니다. 앞으로 신입 회원 변호사님들의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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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과거사위원회는 6월 27일 저녁 7시 30분, 일본군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6년여에 걸쳐 진행된 ‘관부(關釜)재판’ 과정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를 함께 관람할 예정이구요, 8월에는 울릉도로 떠나는 대망의 워크샵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술자리와 대화가 있는 곳. 과거사위원회는 언제나 신입 회원 여러분들을 격하게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과거사위원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목, 2018/06/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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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민생경제위원회 최근 활동 소식

서희원 변호사

안녕하세요, 지난 6월 18일 민변 사무처에 합류하여 새로이 민생위 간사를 맡게 된 서희원 변호사입니다. 위원회가 앞으로도 좋은 활동 이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생위는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저녁 정기 월례회를 진행하며, 각 팀별(금융부동산팀, 공정경제팀, 조세재정팀) 회의도 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민생법률실무연수’를 진행하는 등, 민생·경제 문제에 대한 교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은 민생위의 6월 정기 월례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회의에 많이 참석하지 못하셨거나, 위원회에 갓 가입하신 신입회원님들도 많이 참석하신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월례회에서는 민변 30주년 행사에서 공로패 등을 수상하신 위원님들의 수상 소감을 다시 한 번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가입 20주년 공로패를 수상하신 강신하 변호사님과 신인회원상을 수상하신 안지희 변호사님, “내 사랑 민변” 공모전 우승자인 조일영 변호사님과 오영택 변호사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멋진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공정경제팀에서 준비한 이번 월례회는 박기현·서치원·김종휘 변호사님이 각각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의 쟁점과 진행경과 등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너리스크로 인한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이 제기한 “봉구스 사건” 소송,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해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영구히 행사할 수 없게 된 작곡가들이 제기한 “유령 작곡가 사건” 소송, 대기업의 기술탈취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하도급 업체가 제기한 “썬에어로시스 기술탈취 사건”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각 사건의 법적 쟁점과 운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질의응답을 통해 위원들 간의 의견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월례회에 참석하셨다는 한 위원님은 월례회에서 진행한 발표가 “좋은 지적 자극이 되었다”며 “공정경제팀에서 진행 중인 다른 사건에도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혀주셨습니다.

다음 월례회는 7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 참여연대 주거도시포럼과 함께 진행됩니다. 보유세, 부동산·주거 관련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민생위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민생·경제 현안을 다루는 각종 단체들과의 연대 사업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주거, 소비자, 서민금융, 중소기업 문제 분야 등에 관심 있는 회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언제든지 민생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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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6/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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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최근 활동 소식

– 장경욱 변호사

1. 제8회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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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는 지난 6월 6일 덕성여대에서 개최된 제8회 6.15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6.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부터 매년 열린 체육대회에 우리 위원회는 참가에 의의를 두고 꾸준히 참가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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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된 중대한 전환적 국면이 열린 올해 참가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6.15공동선언 18주년 기념에 더하여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다짐하는 뜻깊은 행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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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축사 중인 채희준 통일위원장

이날 체육대회 개막식 축사에서 채희준 통일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올해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일에 반드시 국가보안법 장례식을 치르자며 국가보안법폐지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번 6.15체육대회에 참가한 단체는 우리 위원회를 비롯하여 통일뉴스, 범민련 남측본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중민주당,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6.15합창단까지 모두 7개 단체였습니다. 이날 덕성여대 운동장에 모인 각 단체 회원들은 축구, 피구, 단체줄넘기, 이어달리기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렸습니다. 체육대회를 위해 각 단체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술과 음식을 함께 들며 서로 친분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친 후에는 흥겨운 대화와 노래가 가득한 뒷풀이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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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원회에서는 채희준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 위원들(심재환, 양승봉, 장경욱 위원) 만큼이나 가족들의 참가(채 위원장의 가족 3명과 장 위원의 가족 2명)가 더 많았습니다. 또한 우리 위원회 위원들로부터 국가보안법사건 변론을 받은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거 참가하였습니다. 유우성씨 가족이 전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홍강철씨, 허성일씨 등이 참가하여 우리 위원회 소속으로 각 종목경기와 응원에 열성을 다했습니다.

이날 체육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채 위원장의 딸(초등학교 4학년)과 장 위원의 아들 장(중학교 1학년)이 선수로 참여한 단체줄넘기에서 전체 2등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성인 참가자들(채 위원장, 양승봉, 장경욱 위원 부부)과 함께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한 마음, 한 뜻으로 22번 단체줄넘기를 성공하였습니다. 어린 미래세대의 거친 호흡을 들었던 단체줄넘기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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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교포 초청강연회

지난 6월 8일 우리 위원회는 민변 대회의실에서 재미동포 목회자 최재영 목사와 재미 언론인 박대명 선생을 초청하여 4.27 판문점 선언시대를 맞이한 국내외 정세변화의 전망을 들어보는 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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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강연자들의 강연은 북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4. 27 남북정상회담과 6. 12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힘에 대해 강연자들은 한미동맹이 추동했던 최대한의 압박과 재제정책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국내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을 부정했습니다. 현하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도래하고 있는 긴장완화(평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은 오랜 기간 대북제재와 압박 속에 핵무력을 완성한 북의 역량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고, 미국(트럼프 대통령)조차 북미 간 핵전쟁의 위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종전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관계정상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 지도자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핵실험 중단 등 비핵화 조치는 평화협정의 체결에 의한 주한미군철수를 담보하기 위한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북의 능동적이고 선제적 조치로서, 세계 비핵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특히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시기 남북에 끼친 전쟁피해에 대해 천문학적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확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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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8. 최재영 목사 국가보안법 위반 출석요구 규탄 기자회견

남북을 수시로 오가며 분단의 질곡을 깨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애써온 최재영 목사는 방한 기간 중 초청강연 당일 오전을 비롯해 2차에 걸쳐 보안경찰들로부터 국가보안법위반 조사를 받았습니다. 과거 북을 방문하여 활동한 것을 트집 잡은 것입니다. 10.4 선언 5주년 기념토론회 참석, 정전협정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종전과 평화협정 촉구, 재북 인사 묘역 묘비사진 등 제공, 방북 과정에서 유엔 주재 북 대사관과 일정 조율 등 혐의 내용 어느 것이나 판문점 선언에 비추어 볼 때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판문점 선언을 합의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이번 최재영 목사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공안탄압은 문재인 정권의 일관성 없고 이중적 대북인식과 대북정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을 받는 가운데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위협을 무릅쓰고 초청강연을 해주신 강연자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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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초청강연회와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는 서울대 최종길 교수 사건에 연루되어 독일에서 33년 동안 들어오지 못 하시다가 참여정부 때 입국하였으나 3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인천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입국을 거부당하고 독일로 쫓겨 가신 김성수 박사님께서 참석하셔서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목, 2018/06/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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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위] 환경보건위원회 소식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환경보건위원회입니다.^^

작년보다 미세먼지가 다행히 심하지는 않은 날들이 많아서, 늦은 봄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에서는 미세먼지에 대한 정책대응과 함께 최근 붉어지고 있는 유해물질로 인한 건강피해 사건들에 대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1. 월경용품 생리대 유해성 논란

환경보건위원회는 공감, 녹색법률센터와 함께 생리대 유해성과 관련하여 깨끗한 나라가 여성환경연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여성환경연대를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 9월과 12월 식약처는 조사결과 생리대가 유해하지 않다는 발표가 있었으나, 최근 KBS 언론보도에 의하면 당시 식약처 조사는 생리대의 극히 일부분인 0.1g만을 시료로 사용하여 유해물질 검출을 한 결과를 발표하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식약처가 시료를 0.5g으로 조사하였을 때에는 유해물질이 검출 양과 제품이 더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식약처 조사분석 방법과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고, 환경부는 생리대로 인한 여성건강에 대한 건강영향조사를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연대 단체 변호사님들과 회의한 결과 깨끗한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생리대 제품에 대해서도 사전예방원칙에 따른 생리대 원료물질에 대한 전수조사와 건강영향조사가 실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나라가 여성환경연대의 문제제기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형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직 첫 변론기일도 지정되어 있지 않은 사건이라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적극 환영합니다.

2. 라돈 피해

라돈침대 사건은 제2의 가습기 사건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과 규제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경보건위원회는 해바라기, 녹색법률센터 변호사분들과 함께 라돈 침대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라돈침대 제조업체인 대진침대의 경우 엄청난 규모의 리콜 사태와 반품등으로 회사가 사실상 청산절차에 돌입할 수 밖에 없으며, 제조물책임보험에 가입되어는 있으나, 방사능피해 면책약관에 따라 피해자들의 보험청구도 어렵기에 국가배상책임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소송물로서는 건강피해에 대한 것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현재 대법원의 법리하에서는 특이성 질환에 대해서만 유해물질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어, 이 사건 라돈 피해로 인하여 발생되었다고 의심되는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특이성 질환을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기에 정신적 피해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하여 소송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피해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다음 카페도 개설된 상태로서, 유해물질로 인한 손해배상의 ABC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될 것입니다.

3. 오색케이블카

환경보건위의 전통적인 관심사항인 자연환경의 파괴 문제로서 오색삭도 설치 사건을 진행한지 3년째입니다. 환경부장관은 2015. 9. 14. 오색삭도 설치를 위한 설악산 국립공원 계획변경처분을 하였고, 환경보건위원회와 녹색법률센터 변호사분들이 연대하여 2015. 12. 환경부장관을 상대로 국립공원계획변경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소송계속 중인 2017년 오색삭도 설치를 위한 관련 처분으로서 문화재청의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사업자인 양양군이 득하였어야 하나, 문화재청에서 이를 불허하여 오색삭도 계획이 취소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양군의 행정심판 제기로 인해 문화재청이 조건부 현상변경허가를 함으로써 오색삭도 반대 투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2018. 6. 14. 2차 증인신문을 위해 환경보건위 변호사들은 2018. 4. 16과 2018. 6. 8. 각 1박 2일에 걸쳐 오색삭도 구간을 현장조사하였습니다.

삭도 설치 예정 구간은 법정 탐방로가 아니기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허가를 받아 길도 아닌 곳을 헤쳐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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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 8. 현장 답사때는 증인으로 예정되어 있던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님이 중청 산장에서 증인신문때 사용할 프리젠테이션 자료로 1시간 동안 강의 겸 예행연습도 하였습니다. 실제 현장을 보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니 오색삭도를 막아야 겠다는 의지가 불끈!!!

강의가 끝나고 중청산장 밖으로 나오니 대청봉에는 아름다운 별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답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증인신문을 진행할지, 오색삭도가 설치되면 어떠한 환경변화가 발생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중청산장에 잠을 청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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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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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를 가득 덮고 있는 운해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네요^^

환경보건위와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금, 2018/06/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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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부 소식

김형일 회원

1. 경남은 전국유일의 도지사 청정구역으로 이름 높은 곳입니다. 경남 도민들은 병원도 없애고 아이들 밥도 못주겠다고 하셨던 경남 특산 도지사님을 우리만 독점할 수 없다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가슴에 품었고, 경남지부 하귀남 회원은 굳이 도지사를 송별하겠다며 경남도청 앞에서 소금을 뿌리며 떠나는 길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장 큰 팔각도로 소금을 뿌리는 하귀남 회원 : 영상 썸네일 기준 우측 여섯번째]ⓒ경남도민일보

2. 즐거웠던 민변 정기총회 이후, 경남지부의 핵심 사업은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2017년 노동절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경남지부는 별도의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피해 노동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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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도정운영의 모토로 삼았던 전임 도지사의 영향인지, 관할 고용노동부는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이렇다 할 대책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당연히 지급해야 할 휴업수당마저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가 많고, 끔찍한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이 와중에 2017. 8. 20. STX조선 진해 조선소에서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삼성 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안전시설 미확보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며, 이는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조선업 특유의 고용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경남지부에서는 유족들을 만나 원청에 대한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지원을 진행 중이며, 후속 대응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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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남지부 회원들은 고용노동부 통영지원 앞에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총회에서 보셨다시피, 경남의 바다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 한켠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경남지부의 2017년은 아마도 조선업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함께 흘러갈 것 같습니다.

다음 번 경남지부 소식은 유쾌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보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당장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지요. 열심히 싸우고 좋은 소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수, 2017/08/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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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로 사법위원회 간사를 맡게 된 최용근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한참 흥겹게 생일잔치를 하던 2018. 5. 25. 저녁, 대법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숨가쁘게 흘러간 3주의 시간을 잠시 되뇌어 보겠습니다.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한 마디로 참혹했습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특정 사건을 거래의 목적물로 삼은 정황이 드러났고, 법원행정처가 인사권을 남용한 다수의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특별조사단의 조사 대상 파일 410개의 목록 중에는, “민변대응전략”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행사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파일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민변은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사법농단의 피해자 및 그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공동고발장 작성 등에 힘을 보탰고, 나아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를 구성하여 대응에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김지미 사법위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위 T/F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현 시기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한 민변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조사 자료를 전면 공개하여 사법농단의 진상을 밝혀라. ② 대법관을 포함하여 사법농단에 책임 있는 모든 법관들을 현재의 직무에서 배제하라. ③ 대법원장은 재차 이 사태의 중대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하여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향후 있을 수사기관의 수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라.”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은, 사법농단 사태를 해결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입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못했던 법원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법부가 원래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주실 분들이 사법위원회에서 더 많이 활동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초여름을 지나 무더위에 진입하는 날씨입니다. 늘 건강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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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출연하여 사안을 설명하는 김지미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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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앞, 1인 시위 중인 김지미 위원장>

금, 2018/06/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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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왜 거리로 나섰는가

 

류하경 회원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우리는 대법원 동문 앞에서 지난 6월 5일 “사법농단규탄 법률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11시 30분 취재열기는 뜨거웠다. 많은 수의 변호사, 법학교수들이 분노 담긴 규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선언문은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언문 말미에 농성돌입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5일전인 5월 31일 초동모임을 갖고 긴 토론 끝에 천막농성을 결의했다. 이 내용이 알려질 경우 보안상 문제가 생겨 천막농성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낭독자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시대를 밝히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되새기며, 그리고 법원에 대한 분노를 모아 위와 같은 내용으로 법률가 시국농성을 선언합니다.”

 

문장이 마무리되는 그 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노동자들이 미리 준비한 천막을 대법원 동문에서 서초역 6번 출구로 가는 인도 위에 펼쳤다. 10여초나 되었을까 천막은 금세 설치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농성천막이 설치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법률가 농성 시작을 선언합니다. 자, 참가자 여러분 모두 천막으로 가서 빨리 앉아주십시오.” 법원 경위와 주위에 서있던 경찰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천막을 지키려 달려간 우리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함성과 박수로 농성이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10일차 노숙농성이다.

 

1971년 최초의 사법파동이 있었다. 판사들이 공안사건에 자꾸 무죄를 내리는 것이 박정희는 맘에 들지 않았고 결국 서슬퍼런 군부독재가 양심껏 재판하는 판사들을 손보기 시작하자 이에 법원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칼은 검찰이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대표적인 소신 판사인 이범렬 부장판사를 표적 수사하여 관례상 접대를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접대자체가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시기와 대상의 형평성을 보건대 정황상 소신 판사에 대한 표적수사로 결론지었고, 이를 독재정권이 법원의 독립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전국 법관의 1/3인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박정희는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중지를 지시하고 대법원장은 법관처우개선을 약속하면서 사법파동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을 찾아가 법관들의 항의를 전달한 7명의 판사 중 스스로 사직한 홍성우, 김공식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최영도, 목요상, 김인중, 금병훈, 장수길 등 5명의 판사는 모두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이후에도 1988년 2월 소장 판사 335명이 5공화국에서 중용되었던 김용철 대법원장 재임명을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위하여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하였고(2차 사법파동), 1993년 6월에는 판사 40여명이 군부독재에 협조한 사법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항의하여 대법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3차 사법파동). 그리고 2003년, 판사 160여명이 기수 서열에 따른 보수적 남성 법원장만이 대법관이 되는 관례에 항의하며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연명을 제출했다(4차 사법파동).

 

이처럼 법원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폭압적 분위기에서 그릇된 재판을 했거나, 정당한 지휘권과 인사권을 침해당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파동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법원이 사사로운 제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정권에 부역한 것이다. 특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원이 박근혜 정권과 거래한 재판들이 모두, 노동자·사회적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법원에 기댄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1차~4차 사법파동에서 피해자가 법원 또는 판사였다면, 이번 사법파동에서는 법원과 판사가 가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법파동이 아닌 “사법농단”이라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니, 사법농단의 피해자는 투쟁하는 노동자, 가난한 서민, 독재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과거사 피해자들이었다. 법원은 제도에 희생된 약자를 권력에 아부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함으로써 이들을 두 번 죽였다. 대법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 강요에 의한 굴복이 아닌 자발적·적극적 부역이기에 이는 조금도 감경될 수 없고 오히려 가장 엄하게 가중처벌 되어야 할 역사범죄다.

 

변호사도 중요한 직접 피해자다. 재판이 이 모양이면 우리가 쓰는 서면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재판이 이 모양이면 국민이 권력자를 찾아가지 무엇 하러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변호사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내팽개쳐 버린 법원에서 더 이상 재판을 할 수 없다. 심판이 부패하고 경기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선수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합 준비에만 매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대법원 앞에서 법률가들이 천막 노숙농성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태에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책상머리와 법정을 벗어나 초유의 노숙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 당사자들 외의 국민 대다수는 이 사태가 어떻게 역사를 후퇴시켰는지, 그 피해의 규모와 향후 예방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지금보다는 더 커져야 한다. 독립적이며 공정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세우는 주춧돌이어야 할 법원이 썩어버리면 힘의 논리와 권모술수만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모두가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파괴다. 역사의 종말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팔아먹은 국정농단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하는 심각한 사태다.

 

그렇다면 사안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우리 법률가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 법률가들이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공론을 주도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이 사법농단 사태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금, 2018/06/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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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설립 30주년 기념행사 참석 후기]

 

청년 30년, 한길로 함께

민변 인천지부 사무처장 한 필 운 변호사

한필운변호사

 

총회 가는 길

 

민변 총회날, 갑작스럽게 변호인 접견이 잡혀 인천구치소에서 접견을 마치고, 조금 늦었지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남순환도로를 탔습니다(가는 길에 심심하지 말라고 많은 도움 주신 조미연 변호사님 감사드립니다).

 

평일 오후에 열리는 총회라서 일찍 참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서 빨리 총회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이유는 저의 ‘첫 총회’ 참석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경남지부 회원님들께서 성대히 맞아 주신 작년 총회가 저의 ‘첫 총회’였는데, 총회에 참석한 저의 소감은 ‘참 좋다’였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의 총회이기 때문이었는지, 통영 중앙시장 맛집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인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바라본 한려수도가 아름다웠기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날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이번 총회도 꼭 가서 참석하고 싶었었습니다(아마도 가장 좋은 것은 뒤풀이였겠지요. 통영에서 둘째날 늦은 새벽에, 제가 많이 취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한 시간 즈음 늦은 시각에 회장에 도착하여 윤대기 지부장님 옆에 앉은 순간부터 민변 설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세 장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민변 창립회원이신 한승헌 변호사님의 ‘(축사 아닌)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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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민변 회원이시므로 셀프 축사를 하지는 않겠다 하시며 시작하신 ‘축사’는, 이제 막 민변을 알아가는 저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스스로를 ‘노병’이라 칭하시며, 민변 간판 값이 올랐으니 지분을 달라고 하시는 유쾌한 농담은 큰 가르침을 위한 프롤로그였습니다. 이어서 후배회원님들께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시라며 던져주신 다음의 세 가지 가르침은, 아마도 제가 앞으로 30년 민변 활동을 하면서 두고두고 되새길 가르침인 듯합니다.

 

인권변호사라 스스로 말하지 말라.

내가 의롭다 하여, 다른 이를 배척하지 말라.

민변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와 다른 이유는 ‘사서 고생’하기 때문이다.

 

선배님의 가르침을 모두 받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민변 변호사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되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민변 30주년 행사를 위해서 오랫동안 연습을 하셨던 중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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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첫 곡부터 손수건 꺼내서 사용했습니다. 요즘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는데, 야속하게도 중창단 회원님들 때문에 터져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민변 30년의 변론을 낭독한 ‘낭독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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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의 변론을 시작으로 촛불혁명의 성명서까지 우리 역사 곳곳에서 울려퍼졌던 아름다운 민변의 언어들을, 감동적으로 되새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이번에도 손수건 사용했습니다).

한 가지 특별히 놀랐던 것은, 영문 의견서를 낭독하신 회원님의 놀라운 발음이었고, 한 가지 특별히 아쉬웠던 것은, 제가 그 영어를 해석할 수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순서로 창립회원 선배님들을 무대위로 모시고 함께 부른 아침이슬에 또다시 손수건을 꺼내야 했던 기억,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으로 뒤풀이 행사를 진행하신 김준우 변호사님의 센스 넘치는 진행, 윤대기 지부장님과 인천지부 회원들, 김남근 부회장님과 서중희 위원장님까지 한데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뒤풀이의 기억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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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기억

 

이번 행사 참석도 역시 ‘참 좋다’라는 기억만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올해 총회와 기념행사가 특별히 좋았던 이유가,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감동을 받아서인지, 뒤풀이에서 좋은 분들과 맛있는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민변 회원님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민변이 좋고, 민변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는 것이겠지요.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청춘

 

노동위원회 뒤풀이 장소에서 한 신입변호사님께서 남긴 건배사가 ‘청·바·지’였습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청년시기를 맞는 민변의 청춘도 다시 한 번 지금부터일 것입니다.

민변과 저의 나이가 비슷하니(뭐, 완전히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청춘도 지금부터이겠지요.

이제 청년의 꿈으로 날아오를 청춘 민변에서, 저 역시 청춘 30년을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한 길로, 참 좋은 이 느낌 그대로, 함께 날아오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소속위원도 아닌 저에게 밤새도록 술을 사주신 노동위원회 정병욱 위원장님과, 밤새도록 반겨주신 노동위원회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셨으면 자동 가입이다’라는 통보도 감사드립니다.

목, 2018/05/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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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입회원 환영회, 그 두 배의 기쁨에 대하여

조미연 변호사

 

2018년 상반기 민변 신입회원 환영회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석입니다.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도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지각의 아쉬움과 동시에 작년 이맘때 즐거움을 떠올리며 기대를 안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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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키워드를 적어 넣은 종이를 보이며

그 중 한 가지를 통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민변 사람들

한껏 들뜬 기분으로 꾸벅 무언의 인사부터 드립니다.

좀 더 둘러보니 종종 마주치는 익숙한 눈빛의 신입회원들이 보여 설렘을 갖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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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리에 착석해서 종이컵에 와인이 채워지니

급한 걸음에 몽롱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

그제야 차분히 진행되고 있는 신입회원의 자기소개가 들리고 함께 자리한 분들의 모습이 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마치 친한 지기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 피어올라 왔습니다.

 

그래도

자기소개 시간은 왜인지 항상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

최대한 원래 쌓여있던 가마니였던 것처럼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는데

역시 뛰어난 사회자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세 가지 키워드는 아니더라도 부랴부랴

겨우 ‘민변과의 첫 인연’ 하나 적어놓은걸 들어 올리고는 무대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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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인권법학회 활동을 하면서 전주전북지부와 활발한 교류를 했었고 인권법학회 연합(약칭 인:연) 겨울캠프 기획팀으로 민변을 방문했던 바도 있지만, 저는 민변과의 공식적인 첫 인연이라는 키워드에 작년 신입회원 간담회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간담회에서의 즐거움이 생생한데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부득이 1년 동안의 활동이 유예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환영회에서 보자며 두 배로 기쁘다고 표현해주신 백주선변호사님의 답신, 노동위원회 모임에서 김선수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머릿수 채우기’의 중요성과

제가 외쳤던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라는 건배제의를 차례로 상기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민변과의 첫 인연을 생각하며 항상 그때의 열정으로 머릿수부터 채우면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스스로의 당찬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소개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자기소개인지 스스로에 대한 다짐소개인지 모를 정신 산만했던 저의 말이 끝나자 따뜻한 박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존에 가입했던 회원팀, 노동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을 비롯해

부족한 제게 관심이 있다면 함께하자고 제안해 주신 아동인권위원회, 민생경제위원회 등 그저 인권과 민주사회를 위한 행동하는 변호사모임에 함께할 수 있음에 소소한 인연의 즐거움을 누리며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자리할 수 있어 행운입니다.

 

차근차근 머릿수를 채우는 일부터 같이하겠습니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늦장부리다 민변의 길에서 멀어지지도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민변 세 번째 신입회원 환영회 자리를 맞이하여 세 배의 기쁨을 안고

이 자리에서 느꼈던 온기와 공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제가 다른 분들에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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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5/0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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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가 주관하여 3월 6일부터 3월 31일까지 총 10강으로 진행된  <제 7회 노동법 실무교육>을 수료한 신입변호사의 수강후기입니다.

노동법 실무교육 수강 후기

 

박용범

 

  한가롭던 2월 중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민변 노동법 실무 떴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 공지가 언제 뜨나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SNS에서 공지를 보고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게 아니라 이미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2월 한 달 동안 아무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도 이거 하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 3월에는 민변 가서 노동법 공부해야지.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 가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학교 선배의 조언이 컸다. 작년에 민변 교육에 참석했던 선배로부터 정말 훌륭한 강의이니 나중에 꼭 들으라는 얘기를 들은 때부터 이미 부러움 반, 기다림 반의 심정으로 나중에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2016년 민변에서 했던 실무수습의 좋은 기억 때문이다. 너무나도 더웠던 2016년 8월 민변에 와서 민변 노동위원회와 법무법인 시민에서 실무수습을 했던 경험은 나의 짧았던 로스쿨 생활 중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변호사시험을 치고 나면 꼭 다시 민변에 가야겠다고.

  시간을 더 거슬러서 내가 로스쿨에 와서 왜 처음으로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내가 다닌 로스쿨은 이른바 세무특성화 로스쿨이었는데 입학 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법 수업을 많이 들어야 취업이 잘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말에 대해선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이왕에 법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취업보다는 다른 뭔가를 하고 싶었다. 공익활동에 관심에 있다면 적어도 노동법은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노동법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듣다보니 좀 많이, 네 과목이나 듣게 되었다. 꼭 집어 구체적으로 말하긴 쉽지 않았지만 돈 많이 버는 자리보다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면 좋겠다는 생각, 세무나 기업 관련 사건보다는 노동사건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이어져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노동법실무교육1

 

  민변에서의 노동법 강의는 역시 기대한대로 모두 훌륭했다. 내가 감히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평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한 가지 말하자면 모든 강의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훌륭해서 더욱 좋았다. 한 강의에서는 모든 노동 사건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서 배웠고(이 표는 취업하면 꼭 사무실 책상에 붙여놔야겠다), 산재보험 신청절차를 실제 진행된 기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배우기도 했다.(생각했던 것보다 신청 서류가 무척 복잡해서 놀랐다. 변호사는 의학까지 알아야 되는 걸까?) 또 이제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건을 직접 담당하신 변호사님으로부터 직접 그 사건에 대해 듣기도 했고, 흠모해 마지않던 변호사님의 강의는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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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출발하는 신입 변호사로서 가졌던 진로와 공익활동에 대한 고민, 또 내가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들이 이 강의를 듣고서 시원하게 해결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같은 길을 지나서 저 멀리까지 나아간 선배 변호사님들의 존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주었다. 역시 고민도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밖에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변호사로서의 첫발을 떼어 보려고 한다. 내가 과연 어떤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내 손에 달릴 일이겠지만, 2018년 3월, 변호사시험을 치고서 처음으로 들었던 이 노동법 실무교육을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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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4/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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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부소식

1.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더니, 일을 많이 하고 싶다던 경남지부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한해였습니다. 경남지부에서 지난해부터 총력을 기울여왔던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자 법률지원은 사고 발생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러 건의 소송만을 남기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사업자들이 만들어낸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시스템 속에서 단결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파편화 되어있어,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크레인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은 노르웨이에서 발주한 선박을 건조하는 곳이었는데, 노르웨이의 신문사 측에서 자국에서 발주한 선박과 관련한 사고에 대해 취재하여 노동자의 날에 특집 기사를 싣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노르웨이 기자의 한국방문 및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 

  경남지부에서 변론사업 이외에 중점적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분야가 학술 연구였습니다. 연 1-2회 학술 토론회 내지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회원들 간의 스터디 모임 등을 활성화 하자는 것이 주요 취지였습니다. 우선, 2017. 11. 27. 경상남도교육청의 후원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제도의 문제점’ 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좀 더 실제적인 논의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에 따라, 미성년인 탈학교 청소년을 발제자로 섭외했고, 미처 우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시각에서 교육현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교사, 학생, 학자의 발제자 구성은 기획의도를 넘어 권력구조의 관점에서 교육현장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심포지엄을 참관하러 온 교장급 교사들 중에서는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해 무례라고 표현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시적인 불쾌함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경남지부는 학생인 청소년의 인권과 교사의 이른바 ‘교권’에 대한 토론회를 검토 중입니다. 그저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닌, 진짜 문제를 찾기 위한 격렬한 토론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볼 예정입니다.

학폭위 심포지엄

  또한 경남지부는 5.1. 노동자의 날 확정된 학술 행사로 경남이주민센터와 함께 이주민 인권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을 공동주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시작으로 경남이주민센터와 연계하여 이주민과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제껏 제기되지 않았던 이주민 인권관련 문제를 찾아 알리는 작업을 하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지부 회원들의 개별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스터디 모임을 기획 중에, 본부에서 실시했던 노동법 강의 영상을 같은 자리에서 보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스터디를 매주 열기로 했으며, 회비로 책을 구입하여 독서토론모임을 여는 안도 준비 중입니다. 이러한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들은 기존 회원 간의 유대를 더욱 튼튼히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신입 회원이 회비를 납부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3.

  경남지부는 회원들의 공익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공익소송지원제도를 준비 중입니다. 구체적인 형식은 본부의 제도를 참고할 예정이며, 공익소송심의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익소송으로 인정되면 사안에 따라 변론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경남지부는 이제껏 공동사업은 부족한 반면 회원 개개인들의 공익활동이 많았고, 이 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회원들끼리 내용을 공유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싼밥을 먹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던 정기총회 사진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2018정기총회 1

화, 2018/04/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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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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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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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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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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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 참가기

전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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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이하 ‘위원회’)는 제네바 현지 시각으로 2018. 2. 22. 대한민국 정부가 제출한 제8차 국가이행보고서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이하 ‘여성위’)는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위원회 제7차 대한민국 정부 심의에 참석하여 대응한 이래로 위원회 권고 사항의 국내이행 여부에 관한 모니터링을 하였고, 지난 2월에 열렸던 제8차 정부심의에도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여성위 소속 변호사들(류민희, 박인숙, 장보람, 전민경)이 위 심의 대응을 위하여 조직된 한국 NGO 단체 대응팀에 결합하여 스위스 제네바 현지활동을 마친바, 이하에서 위원회 제8차 대한민국 심의참가 소식을 간략하게 전해드리려 합니다.

 

 

2.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유엔 주요 조약기구 9개 중 하나로, 1981년에 발효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하 ‘협약’)에 기반하여, 동 협약의 이행을 위한 진전 사항들을 심의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84년에 위 협약을 비준하였고(이듬해 1월 26일에 협약 발효), 이에 따라 1986년 2월에 제1차 정부보고서를 제출한 이래, 2015년에 제8차 정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제8차 정부보고서에 대하여 지난 2월 22일에 위원회의 본 심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3. 2018년 제8차 정부심의에 대한 국내 NGO의 대응

 

위원회는 정부에 대한 본 심의에 앞서, 사전심의과정을 통하여 본 심의에서 주로 다룰 쟁점목록(List of Issues)을 도출하는데, 이 쟁점목록에 대하여 정부가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정부는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서를 지난해 12월 초에 제출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여성인권단체(총 15개 여성단체)들은 정부의 답변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작성하고, 지난 2월 초에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또한 민변 여성위를 비롯한 6개의 인권단체들(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은 본 심의 대응을 위한 ‘NGO 참가단’ 모임을 꾸려, 작년 12월부터 본 심의 대응을 준비하였고, 본 심의 기간동안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정부 심의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NGO 참가단’은 위원회의 NGO 미팅(Informal Public Meeting)에서의 구두발언(Oral statement), 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NGO Lunch Briefing)개최 및 개별면담을 통하여 위원들에게 한국의 여성인권 현황을 전달하고,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 인권 상황 개선과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권고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현지 활동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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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일) : 위원회와 NGO간담회 준비 워크샵 (IWRAW-AP NGO 워크샵)

 2/19(월) : 위원들과의 심의 대상 4개국 NGO 간담회 (Informal Public Meeting_NGO)

 2/21(수) : 위원들과의 한국 NGO 간담회 (NGO Lunch Briefing)

 2/22(목) : 위원회 한국 제8차 본 심의 모니터링

 2/23(금) : NGO 참가단 활동 결과 보고 및 마무리 작업

 

 

4. 본 심의 주요 내용

 

본 심의에서 다루어진 주요 내용은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2)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에 관한 대책을 포함한 다양한 젠더 폭력 문제,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에 대한 논의,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5) 취약계층 여성인권,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으로, 위 내용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주요 여성인권 현안이 협약의 조항 순서에 따라 다루어 졌습니다.

 

위원회 위원들은 한국 여성 인권 현실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인권단체가 작성한 NGO 보고서 및 NGO 참가단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보다 깊게 파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 대표단에게 협약의 이행여부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1) 위원회의 질의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위원회는, 한국이 본 협약의 선택의정서(협약 위반 사항에 대하여 개인이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인진정절차’를 담은 의정서)를 채택한 몇 안 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 한국정부의 여성차별을 대상으로 한 개인진정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국내의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협약 상의 권리침해절차(개인진정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2005년 「성차별금지법」 폐지 이후, 성차별 방지 관련 법률의 부재함을 지적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위원회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2) 젠더에 기반한 폭력 문제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은 전 세계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위원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기반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지적사항은 ① 한국의 「형법」 제297조가 강간죄의 성립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아니라, 가해자의 폭행 및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강간죄의 성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 ② 피해자들이 어렵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소를 하여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가 남발되어 2차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 ③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거나, 이를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하는 등의 사이버 성폭력이 새롭게 문제되고 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나, 조직 내에서 문제제기를 할 경우 가해자가 징계처벌을 받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괴롭힘의 대상이 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현실로 인하여, 문제제가 자체가 되는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정부의 정책적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 문제

위원회는 또한 여성의 임신중단에 관하여, 모자보건법에 따라 강간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낙태가 허용될 뿐, 여전히 낙태는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형법으로 낙태를 처벌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으며,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고비용 · 비위생적인 불법시술을 받거나 온라인에 유통되는 위험한 약물에 의존하고 있고, 후유증이나 의료사고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을 꼬집으며 정부에 낙태죄 비범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부재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 :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부의 SRHR에 관한 정책이 임신을 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트렌스젠더나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SRHR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간을 마련하고, 당사자들의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하였습니다.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여성 고용부분에 대한 질문에서, 위원회는 한국이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성 격차 지수 순위를 매긴 144개국 가운데 123위이며, 성별임금격차는 37%로서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는 점을 제시하며, 국내 성별임금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지난 회기 동안 정부가 이행했던 개선책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동시에 여성임금노동자 중 41%는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26.9%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있어서,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64%로 매우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하였습니다.

 

5) 취약계층 여성인권

위원회는 이주, 난민 여성의 국적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아동 출생 등록 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결혼하지 않은 이주여성의 자녀가 무국적 상태의 위험이 놓여 있는 점을 비롯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이 한국인 고용주와 관리자로부터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나 언어제약 및 체류자격 불안으로 인하여 가해자로부터 쉽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였습니다. 또한 탈북여성의 고용과 관련하여 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교육은 서울 1곳으로, 지방의 탈북여성은 이러한 혜택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성평등 및 인권교육 등도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후속조치에 불과함을 지적하였습니다.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관하여 위원회는, 종전의 일본 정부 심의에서 ‘(일본)정부가 조속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피해자 배상조치를 실시하고 가해자를 기소하도록 하며, 이러한 범죄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포함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할 것을 반복적으로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심의에서 일본군 성노예 이슈가 제기된 것은 금번 회기가 처음으로, 피해자 중심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난 한일합의를 비판하며, 2015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도출된 ‘화해치유재단’의 존속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후속조치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2) 정부 답변

 

이처럼 위원회의 질의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토대로 날카롭게 진행되었다면, 정부의 답변은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그대로 읽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이미 정부가 위원회에 사전에 제출한 정부 보고서 및 답변서의 내용과 일치하여서, 일부 위원은 ‘정부대표단이 기존에 제출한 정부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이행 계획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면 위원회가 왜 굳이 모여서 정부의 답변을 들어야 하냐’며 정부를 향하여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동 협약이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교차적 차별을 모두 철폐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즉각적인 이행을 국가의무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고 있다는 위원의 질문에 대하여, 정부는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하여서, 정부가 과연 위원회의 권고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최종 권고의 주요 내용

 

위와 같이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정부의 불성실한 답변이 오갔던 가운데, 지난 3월 9일,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제8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및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배치할 것
  • 지방정부의 성별영향분석 평가 제도를 강화하고, 성 인지 예결산 협의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 할 것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피해자의 성 이력을 사법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금지할 것
  •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효과적인 관리 감독 체계를 확립 할 것
  • 탈북 여성들에 대한 적절한 상담 등 적절한 재원을 탈북여성센터에 제공할 것
  • 팔레르모 의정서 기준에 상응하는 포괄적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할 것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생존자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한 진실과 정의 배상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공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즉각적으로 추진할 것
  •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여성할당제의 강제이행 조치를 마련할 것
  • 이주 여성의 귀화 절차 기간을 축소하고 한국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 및 관행을 폐지 할 것
  •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 동일임금 조항의 엄격한 시행 및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할 것
  • 남녀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공사기업에서의 임금공시제를 시행할 것
  •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관련 법제도를 개선할 것
  • 건강보험 등 트렌스젠더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비자발적 의료조치가 발생되지 않도록 할 것
  • 낙태 비범죄화 및 수술 이후의 질 높은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
  •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혼청구 시 이혼 결정 이전에 가해자와 강제로 화해나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할 것
  • 비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호를 확대할 것
  •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아젠다의 이행과정에서 실질적인 성 평등을 실현할 것

 

 

6.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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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현장에서의 일주일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NGO 브리핑 자료, 런치브리핑

자료, 제안 질문지, 제안 권고문 등을 작성하고 다듬으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이 위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지, NGO 보고서의 내용 역시 오늘날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이 오갔습니다. 이러한 고민들로 인하여 NGO 참가단은 결국 제네바 현장에서, 한국에서 준비해왔던 작업을 뒤집고 새로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의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힘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여성단체에서 참여하신 대표단 분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여성인권 문제에 대하여 압축적으로 공부하고 논의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본 심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지내는 동안, 위원회의 최종권고문도 나왔고 이 권고문을 토대로 한 토론회도 개최하며 권고사항에 대한 사회적 공유 작업도 시작되었습니다. 최종권고들은 다음 회기의 정부 심의 전까지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할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여성인권단체들은 정부에 그 이행을 촉구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로 인하여 한국사회에서의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 한 발 더 가까워지길 바래봅니다.

금, 2018/03/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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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 ~ 3. 7. 오키나와에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11회 평화교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풍으로 한차례 연기된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그 의미와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회원을 비롯하여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다가올 만남을 또 기다립니다.

 


  

 

 

오키나와, 이름만으로도 설렌 그 곳 도착

 

오민애 변호사

 

 

오키나와. 인터넷 검색창에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평화로운 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막연히 좋은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오키나와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1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 속에서,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사드 배치 문제로 매일매일 치열했던 성주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참석한 교류회에서, 일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잘먹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불편함 없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성주 주민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사드 가고 평화오라’고 외쳤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채로, 2017년 가을, 오키나와로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오키나와 교류회가 예정된 날짜에 태풍이 오키나와를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결국 2017년 교류회 일정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키나와에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말,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면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오키나와의 공기도, 변호사님들의 얼굴도 참 따뜻하고 푸근했습니다.

 

2018년 3월 3일, 그렇게 고대하던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가셨던 박진석 변호사님의 전언으로는 계속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였어서,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비행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오키나와 교류회 일정 동안 날씨도 교류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차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은 기우였습니다. 짧디 짧은 영어로, 손짓으로 반가움을, 안부를 전하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파파고’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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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첫 ‘친목회’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함께 한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정말 따뜻하게 저희를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3-4일씩 만나왔다면, 어쩌면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할 수도 있을텐데,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여서 좋았던 첫 날

 

오키나와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언급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촛불집회’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까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거나 정권의 문제점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촛불집회가 있을 수 있었고 정권교체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역사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도, 다음날 세미나에서 제가 발제를 맡은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준비를 잘 한 것일까,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꾹 누를 수 있을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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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변호사님이 직접 그린 시샤. 시샤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전설의 동물로, 나쁜 기운을 가져가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지난해 예정되었던 교류회 일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셨던 그림인데(2017. 10. 27.),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번에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평화와 연대,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튿날, 숙소 근처의 변호사회관에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화 관련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발표를 듣고 메모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색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통테마에 대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오후에는 양국의 사례보고를 이어갔습니다. 공통테마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군사대국으로의 책동’, 그리고 ‘촛불혁명과 우리의 주권’이었고, 토론이 열띠게 이어졌는데요. 먼저 하야시 치가코 변호사님의 발제에서 언급된 일본 자민당이 마련한 헌법개정안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법을 전체주의 관점으로 재정비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을 넣는가 하면, ‘긴급사태(내각총리대신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 특별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에 상정하여 긴급사태의 선언을 발할 수 있다)’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공고히 하는 방식의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의 헌법개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현재 일본의 집권 정당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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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법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군대’를 헌법에 명문으로 두는 것이 군대에 대한 통제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두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에서의 전시작전권 문제,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국민들이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군사 문제에 대해, 언제나 국가기밀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로 감추기 급급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 전쟁 문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 시도를 어떻게 국민들이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많은 변화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지만, 오키나와 분들은 ‘촛불혁명’이라 명명하고 그 시간을 궁금해했습니다. 함께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순간 이렇게 함께 지난 1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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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양국에서 어떤 사안들이 문제되었고 어떻게 대응하여왔는지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아시아 태평양 법률가 협회(COLAP)와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IDAL) 활동에 대한 보고, 마샬제도 관련 보고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관련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기한 암초 파쇄 행위의 금지청구 소송과 기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활동, 2차 후텐마 기지 폭음 소송, 오키나와 전투‧남양전 소송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한국의 사드 배치 관련 소송 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 미군기지는 현재 800여개 정도가 있고, 규모로 분류하면 크게 세 분류가 있는데, 그 중 한국과 오키나와는 미군의 가족들까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형태의 대규모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지로 인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사모토 준 변호사님은 일본과 한국의 국내에서의 운동, 나아가 미군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연대의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교류회 현장 또한 연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샬제도’에 대한 발제였습니다. 오랜시간 미군 기지 문제에 관여하고 연구해 오신 하지메 이노우에 변호사님의 설명이, 이름도 낯설기만 했던 ‘마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마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국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어가 사용되는 곳입니다. 미국은 이곳을 2086년까지 빌리는 형태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1년에 4번씩 이곳에서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사일 훈련 2주 전에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마샬제도 외부장관은 핵군축조약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제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마샬제도에서는, 지금도 협정과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훈련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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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재환 변호사님이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전망에 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교류회가 진행되던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직후였고, 올림픽을 전후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대립과 견제, 갈등이 아닌 ‘평화’를 중심 가치로 두고 남북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드 배치 관련 법적 대응에 대하여 오현정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적폐를 청산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에 한국에서 사드 배치 발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소원, 행정소송, 형사고발 등 관련하여 진행해온 법적 대응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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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백충 변호사님 발제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암초파쇄행위에 대한 금지소송을, 오키나와 현이 제기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의 허가를 받아야 암초를 파쇄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없이 파쇄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어 사이토 유스케 변호사님은 2016년 4월,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던 중 미군 헌병에 의해 체포‧구속된 메도루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신체구속 상태로 두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대신 책임진다는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텐마 기지와 가네다 기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에하라 도모코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후텐마 기지에서는 2차, 가네다 기지에서는 3차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폭음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금지청구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미군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기각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사례보고는 오키나와전, 남양전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마쓰모토 게이타 변호사님의 발제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진 유일한 사례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중부 해안에 미군이 상륙(미군55만명, 함정 1400척 이상)한 이후 격전이 벌어져 현 인구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하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로 기각되었는데, 이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공권력이 잘못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천황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만들고 싸워나가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주희 변호사님의 미군기지 내 한국여성 성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법원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미군기지 주변에 관한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소개에, 참석자 모두 공감하면서 마지막 발표를 마쳤습니다.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를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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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정작 그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내고 또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여서 자랑스럽고, 또 그 ‘우리’에 함께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각자, 또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서로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접어두고 찐한 뒷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교류회 3일차

 

이 윤 주 변호사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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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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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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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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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금, 2018/03/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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