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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와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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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와 개벽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13:00

1. 어느 고려학인가?

남한학과 북한학이 아니라 한국학과 조선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에 십분 공감했습니다. 다만 제가 한국학이라고 한 것은 개벽학의 발신지가 북조선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한국’이라는 의미이지, 결코 그 대상이 남한에 한정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그 범위는 지구학이자 미래학이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개벽학이 한국학의 영역이라는 말은, 량수밍의 동서문화론을 연구하는 분야는 중국학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국학과 조선학을 고려학이라고 부르자는 제안도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신라학, 고려학, 조선학이라고 할 때의 고려학과 구분이 안가니까요. 확실히 외국인들이 우리를 ‘고려인’(Korean)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만, 외국인들이 중국을 China라고 부른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중국’을 버리고 ‘진(秦)’이라고 명칭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고려도 아니고 조선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전적으로 새로운 이름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도 가능하면 남북학자들이 합의해서요.

조선사상전사

작년에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님이 『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를 출간하셨습니다. 고조선 시대부터 시작해서 김대중과 김정일에 이르는 한반도의 문학·역사·철학·종교의 흐름을 개관한 역작인데, 이상하게도 책 제목을 『한국사상전사』라고 하지 않고 『조선사상전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인데, 아마도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부르기 때문에 ‘조선사상전사’라는 이름을 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종의 ‘한반도사상전사’라는 뜻으로 ‘조선사상전사’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신라사상사, 고려사상사, 조선사상사라고 할 때의 조선사상사와 구분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역시 남북을 통칭하는 공식적인 학술용어가 아직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시대에 한국인들이 한반도를 지칭했던 개념이 최치원 이래로 ‘동방(東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사상사’나 ‘한국사상사’를 ‘동방사상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문제는 남을 것입니다. 지금은 ‘동방’이라는 말을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그 의미도 한반도를 가리키기보다는 ‘동아시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동방’이라는 말에는 중국에 대한 ‘동’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도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최치원 자신은 ‘동’을 중국에 대한 ‘동’이 아니라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만-.

이렇듯 개념은 언제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개념이 발화될 때의 문맥과 상황을 반영할 뿐입니다. 노자가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2. 개벽은 깨어있는 자세

제가 지난 20세기의 한국 인문학이 중화와 개화의 포로와 노예가 되었다고 한 것은 중국과 서양을 배척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만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중국과 서양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문과 수학은 한국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초 정도는 마스터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도학과 과학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100% 공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개벽’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깨어있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만일에 누군가가 개벽에 사로잡혀서 동학이나 개벽사상만이 제일이라고 하는 맹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이야말로 反개벽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손병희 학술대회(박길수)

지난주에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대표님이 어느 학술대회에서 「손병희의 개벽사상」으로 발표를 하셨는데, 제일 인상에 남는 대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3.1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리더들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해서 당장 독립이 되는 건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저는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이 한국과 비슷하게 식민지지배를 당한 아프리카에서도 ‘흑인의식운동’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 근대가 인도나 아프리카의 근대와 유사성이 있다는 뜻이지, 결코 지금의 한국이 제3세계와 비슷하다거나, 오늘날 동아시아 담론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중국과 일본의 개벽파를 찾아내고 발굴하는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성적 근대론’은 그것이 한국 근대라는 사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서 관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근대론을 포괄할 수 있다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저는 한국의 근대나 한국의 사례를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이나 학설에는 이제 관심이 적어졌습니다. 그것은 제 주된 연구 분야가 한국근대사상사이기 때문에 오는 한계일 것입니다.

 

3. 개벽으로 다시 보는 해방공간

‘해방공간의 재재인식’이라는 흥미로운 발상을 제안하셨습니다. 사실 제 요즘 관심분야도 ‘개벽으로 다시 보는 한국 근대’입니다. 덕분에 그동안 제가 모르고 있었던 현대사의 중요한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1948년에 천도교에서 3.1운동을 재현하려 했다는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모르고 있었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도교의 정치이념

해방정국(1945~1948)에서 개벽의 입장을 대변한 건국철학이 『천도교의 정치이념』(1947)과 원불교의 『건국론』(1945)인데 둘 다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남과 북, 성과 속을 모두 아우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천도교의 정치이념』에 수록된 임형진 교수님의 해제 「천도교청우당, 새로운 세계를 기획하다」(모시는사람들)와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에 실려 있는 백낙청 교수님의 논문 「통일사상으로서의 송정산의 건국론」(모시는사람들)이 두 문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백낙청)

『천도교의 정치이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1923년에 창당된 천도교청우당의 세 가지 기본이념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인데, 이돈화가 『신인철학』에서 주창한 삼대개벽과 용어가 동일합니다. 그런데 『천도교의 정치이념』에 의하면 “실제로 청우당의 활동 목적은 민족개벽과 사회개벽의 두 가지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48쪽)고 나와 있습니다. 즉 정신개벽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족개벽이라 함은 여러 가지 의의가 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을 얻자는 것이 제일의적이었고, 사회개벽이라 함은 자본 사회의 제도를 개혁하여 무산계급을 해방하자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청우당의 현실적인 정치이념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이었던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원래 보국안민(輔國安民)은 천도교의 신조요 염원인 만큼 천도교의 그것은 곧 당의 이념이 된다. 그런데 해석상 보국(輔國)은 민족해방이 되고, 안민(安民)은 계급해방이 되는 점에서 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다.”(48쪽)

저는 이 대목에서 80년대 학생운동과 비슷한 이념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 민족개벽=민족해방은 이른바 NL계열의 주장과 유사하고(대상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습니다만), 사회개벽=계급해방은 이른바 PD계열의 주장과 유사합니다. 그런 점에서 천도교가 고민한 보국과 안민의 문제는 한반도의 영원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천도교의 정치이념』의 경우에는 보국(민족)이나 안민(계급) 중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고 양자를 모두 병진하려 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원래 동학에서 ‘보국안민’이라는 슬로건을 표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도교의 정치이념』에 나오는 도식대로라면, 1차 동학농민혁명이 ‘안민’(계급)의 문제로 일어났다면, 2차동학농민혁명은 ‘보국’(민족)의 문제로 일어났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4. 천도교의 이중과제론

『천도교의 정치이념』에서는 보국과 안민의 문제를 ‘이중 과업’과 ‘양대 과제’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조선민족에게 부여된 정치적 사명은 두 가지가 있으니, 그 첫째는 민족해방이요, 둘째는 사회해방이다. 연합국의 위대한 전승으로 인하여 우리의 민족해방이 대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주독립을 완성하지 못한 만큼 아직도 이 이중적인 정치 과업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 조선의 특수한 사정이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주밀하게 논의하여 민족 만년 대계인 이 양대 과제를 완전히 수행해야 하겠다.”(51쪽)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본래 삼대개벽을 지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양대개벽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양대개벽을 추진할 정신적 동력인 정신개벽은 논의에서 빠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도교인 개개인이 정신수양을 게을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서의 정신개벽에 대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은 80년대 운동권에 이르면 더욱 심화됩니다. 사회운동에 치중한 나머지 정신수양이나 영성수련을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제 생각에 원불교에서 ‘정신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5. 『건국론』의 중도주의

원불교의 제2대 리더인 정산 송규가 쓴 『건국론』은 『천도교의 정치이념』보다 2년 빠른 1945년 10월에 나왔습니다. 해방 직후에 나온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첫 장(章)부터 「정신」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치」, 「교육」에도 ‘(정신)훈련’이나 ‘정신교육’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같은 ‘교정쌍전’이라고 해도 천도교가 ‘정(政)’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원불교는 상대적으로 ‘교(敎)’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국론』의 정신개벽의 특징은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건국은 단결로써 토대를 삼고, 단결은 우리의 심지가 명랑함으로써 성립되며, 명랑은 각자의 흉중에 갊아있는 장벽을 타파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장벽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간단히 그 대요를 말하자면, 1. 각자의 주의에 편착하고 중도의 의견을 받지 아니해서 서로 조화하는 정신이 없는 것이요…” (제2장 「정신」)

건국론

저는 여기에서 말하는 ‘중도주의’야말로 우리가 해방 이후로 잃어버린 정신적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무위당 장일순 선생도 ‘중립화 통일론’을 주창해서 감옥에 갔다고 하는데, 『건국론』의 중도주의와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중도주의이든 중립화이든, 이들이 말하는 ‘중’은 단순한 ‘중간’이기보다는 “배제를 거부하는 포함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설령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 ‘타자’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투쟁의 상대로 보기보다는 그들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장일순의 표현대로라면 ‘보듬으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건국론』에서 말하는 “내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내 마음의 장벽”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달려온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영성‘ 대신에 ’아성(我性)‘을 공고히 해 왔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방 이후에 잃어버린 정신은 『건국론』이나 장일순이 말하는 ‘중도’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유행하는 이른바 ‘혐오문화’도 이런 정신의 상실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상대의 존재를 긍정하려 들기보다는 처음부터 부정하려는 태도가 앞서는게 혐오니까요.

개벽포럼(도법스님)

지난달에 있었던 제1회 개벽포럼에 도법스님이 연사로 오셔서, 서로 생각이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운데’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중재했던 경험들을 생생하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원효식으로 말하면 ‘화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건국론』의 중도주의나 장일순의 중립주의 나 보듬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개벽의 입장일 것입니다. 개벽은 양 극단의 가운데에 서서 ‘새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일종의 ‘중도개벽’인 셈입니다. 19세기식으로 말하면 유학과 서학의 중간에서 양자를 아우르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한 개벽파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벽포럼(청중)

 

6. 21세기의 공통가치를 찾아서

마지막으로 『천도교의 정치이념』을 읽으면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을 소개하면서 이번 서신을 마칠까 합니다. 그것은 보국과 안민이라는 서로 다른 과제를 추구하면서도 그 바탕에는 ‘하늘’이라고 하는 동학의 기본이념이 깔려 있는 점입니다. 80년대식으로 말하면 NL과 PD가 우선시하는 과제는 서로 달랐지만, 양자의 바탕에는 “시천주”라고 하는 공통가치가 공유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시천주는 두 말 할 것 없이 인간과 만물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말합니다. 이 점 또한 해방 이후에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일 것입니다. 각각의 진영에서 자기 주장을 외치면서 상대를 비난하려는 노력은 열심히 해왔지만, 입장이 서로 다른 상대와의 공통토대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에서 ‘공공’의 영역은 확보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개벽’이 주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동학‧천도교‧증산교‧대종교‧원불교 등등이 비록 종교의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 ‘개벽’이라는 공통가치를 향해서 100년 넘게 계승하고 상생해 왔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개벽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 잃어버린 공통가치를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해방정국이 ‘좌’나 ‘우’라는 편도(偏道)를 고집했다면, 그리고 해방 이후가 ‘개화’라는 편도(偏道)로 치달았다면, 지금부터는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중도(中道)를 ‘개벽학’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보려는 것이지요.

유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계열의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동학을 공부하는 ‘하늘학회’(가칭)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공통가치로 삼아서 뭇 종교들을 아우르려는 중도의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과학자까지 가세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요. 앞으로 뜻있는 분들이 하나씩 둘씩 동참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개벽학당도 그런 중도의 일꾼들을 길러내는 산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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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동안 서양의 현대철학을 다시 리뷰하면서 발견한 것은 현대철학은 니체, 하이데거나 화이트헤드가 탐구해온 보편적 존재론과 포스트모더니즘(푸코, 라깡, 들레즈, 데리다 등),후기포스트모더니즘(알랭 바디우, 조르쥬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과 같은 사회철학, 문화철학 및 정치철학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철학, 문화철학과 정치철학은 모두 그 뿌리를 보편적 존재론을 실체론이 아니라 생성론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는 특히 니체의 생성철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및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보편적 존재론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및 소시에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도 힘입은 바도 크다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철학은 시계열적으로 가족유사성을 띄고 있기에 현대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건 후기포스트모더니즘이건 반드시 그의 사상적 피상속인이 스승으로 존재하기에 그들 스승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현대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푸코, 들레즈와 데리다는 프랑스출신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니체와 하이데거 철학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삼 그들의 사상의 역사적 폭과 깊이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서양문명의 철학적 토대(자유, 평등, 박애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참여와 연대 등)가 만만치 않게 굳건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서구문명의 전통적 이념들이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상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서구 정신문명의 근원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필자의 입장은 이러한 팬더믹은 서양 문명의 근본적 결함인 실체론적 존재론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도리어 산업화에 따른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및 재벌독점자본주의와 그이 극단적 발현형태인 신자유주의의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이 훨씬 크다할 것이며 이제는 자본주의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라는 체념으로 인해 심화된 산업화의 모순이 인간의 대응능력을 넘어서버릴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버린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과도 일치하는 것이기에 따라서 오늘날 마지막 현대철학자라는 칭호를 듣는 지젝의 철학을 일별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젝의 철학적 태반으로 헤겔의 변증법과 칼 맑스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들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정의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결코 들레즈를 비롯한 후대의 철학자들이 함부로 단정해버린 동일성 또는 통일성의 변증법이 아니라고 재해석하면서 헤겔은 시간성 속에서 변화와 운동을 일으키는 원리를 변증법으로 풀어보고자 한 것이지 결코 차이를 지양하고 배제하여 동일성으로 차이들을 해소해버리는 전체주의적인 철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독자적인 시각에서 ‘차이의 변증법’을 주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헤겔은 칸트의 선험적 주체와 같은 독자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아니하면 단지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갖게 된다고 보았기에 결국 주체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변증법을 통하여 해소시키고자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헤겔의 입장을 대체로 계승한 지젝은 타자를 주체의 결핍으로 보았으며 그러한 결핍의 타자를 통해, 즉 타자의 부정성과 차이성을 통해 즉자인 주체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며 이후 타자의 부정을 재부정하는 재귀적 부정을 통하여 자신을 합정립synthese하게 되는데 여기서 타자는 결코 즉자로 흡수되거나 통일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젝의 변증법은 동일성 또는 통일성이 아닌 타자(대자)를 영원히 차이로 인정하는 차이의 변증법으로 나아가게 되며 단지 차이의 타자로 인해 즉자인 주체는 한껏 고양된 재귀적 존재self-being로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를 우리 속담대로 해석하자면 ‘애들은 서로 싸우면서 큰다’라는 관점과 같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즉자의 결핍을 내용으로 하는 대자인 타자를 통해 즉자는 자신의 존재의 결핍을 인식하고 반성을 하게 되며 이후 즉자는 자신을 재부정하면서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어가는 한편 영원한 차이인 대자는 자신의 존재를 즉자에 의해 지양되거나 억압받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부정성을 유지하며 존속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여 지젝은 즉자는 결핍과 차이인 대자를 통해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는 한편, 즉자는 차이로서의 대자(타자)를 억압하거나 지양하지 않고 즉자와 동등하게 등가적인 가치를 인정해주는 생성론의 세계관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결합시키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쥬이상스, 즉 향유의 이론을 전개시켜 나갑니다.

맑스는 이데올로기를 부르죠아의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하였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정신분석학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자아를 상상계, 상징계와 실재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젝은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을 상징계이론으로 재해석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젝은 유아의 상상계를 거울단계로 해석하면서 소타자인 어머니를 자아로 착각하면서 자아는 이미 정신분열의 조짐을 보이는데 상징계에 이르러서는 프로이트의 아버지와 같은 대타자인 국가, 규범, 종교, 자본주의 등에 의해 주체가 수동적으로 사회화되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의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간의 주체가 결정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결국은 자본이 만든 실상을 은폐한 거짓 환상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이 만들어낸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마치 욕망의 실상을 구현한 실재계인양 호도하고 왜곡하여 주체를 자본에 복종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결국 자본주의는 자신을 결코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종교, 문화, 예술 등 대타자 뒤에 숨어서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면서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주인이 되고자 획책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여 그는 무엇보다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채 대타자들의 뒤에 숨어서 결코 자본주의 모순의 피해자들과의 전면전을 거부하는 자본의 교활한 책략에 봉사하는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은 항상 대타자들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모순에 따른 피해자들(노동자, 무산자, 소수자등)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투쟁의식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결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혁명은 전략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지젝은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자본이 만든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만이라도 그 허상, 환상을 폭로하여 해체하자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그는 실재계를 향한 향유, 즉 라깡의 쥬이상스enjoyment로서 죽음충동으로서의 향유를 제시하게 됩니다.

달리 설명하면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은 주체에게는 일종의 기존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자살행위와 같은 모험이기에 실재계를 찾아나서는 모험인 향유는 죽음충동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기존 상징계의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의 실현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유를 주장한 것입니다.(이는 지젝이 맑스와는 달리 상부 구조가 하부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능산적 주체는 단지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스피노자의 능산적 욕망, 즉 코나투스Conatus가 만개한 실재계를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는 향유와 차이의 변증법의 주인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 것 입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의 현대적 변형태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슬리브족 출신으로서 서구의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와 결탁하면서 공동체의 연대와 공화주의를 해체하고 뷸평 등을 가속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했다고 보았기에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앞장서 온 것입니다.

즉, 그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불평등을 확대, 심화시켰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유의 평등을 실현하기위해서는 형식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인 개입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으로 그 방법으로 코나투스로 가득한 실재계를 향한 향유를 제시한 것이며 대안으로 맑시즘과 기독교의 평등정신의 복원을 꿈꾸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타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노예가 되도록 강요해온 자본의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이를 해체하는 작업에 시민들이 새로운 인식론, 존재론과 변증법의 주체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정치에도 앞장서서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은 평등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주의 정신의 기틀마저 손상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존재의 욕망을 당위인 평등가치로 통제하는데 실패해온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본다면 그의 정치철학 역시 윤리학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수, 2020/04/2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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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서를 앞서 최원식 교수의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이라는 구절에서부터 풀어가 보기로 하자. 남북연합이란 분단체제론에서 제기해온, 분단체제 극복과 변혁을 위한 핵심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그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 부정론, 극복론, 변혁론이지만, 그 부정, 극복, 변혁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재와 존속이 상정되어야 한다. 이러다 ‘분단체제’가 ‘분단체제 극복’의 과업 안에 포함돼 어느덧 그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를 혼동하는 현상도 생겨난다. 결국 부정했던 대상을 인정하고 공존하게 되는 딜레마가 분단체제론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부르자.

그런데 최원식 교수가 보여주었듯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분단체제는 ‘분단된 남북을 연계시키는 불일불이의 상태’, 즉 그 자체가 “통일의 최종형태”가 될 수도 있는 상태로 격상되는 단계로 나갈 수도 있다. 부정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소극적인 인정을 넘어 이제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완전히 탈바꿈해버린다. 이것을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 분단체제론의 역설은 최 교수의 언급을 통해 그 순수한 형태를 드러냈지만, 그 역시 분단체제론의 이론 구조 안에 잠재해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애초부터 백 선생의 분단체제 개념 자체에 부정과 긍정의 2중 계기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부정적 현상을 강조해왔지만 이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론적으로 핵심적인 지점은 분단체제란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 속에는 ‘분단의식’ 또는 ‘반쪽국가의식’의 강렬한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이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었던 것이고,(이 책, 37~46쪽)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란 ‘하나’의 체제이기 때문에 ‘하나(분단체제)에서 하나(통일)로’ 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양국체제에 대한 반발의 근원이 있다. 양국체제론은 한반도 상태를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두 국가 상태라 하니, 이것은 애초부터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단정해버린다. 너무나 단순한 이해가 아닐 수 없다. 하나가 되자면 우선 둘이 서로 인정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양국체제다. 그런데 그렇게 둘임을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면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북이 경쟁적으로 적대와 불신을 고조시켜왔던 체제가 분단체제였고, 그 분단체제가 통일을 가로막아왔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 장애물을 치우고 양국체제가 정착되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분단체제론은 비원(悲願)의 언어인 ‘분단’을 동시에 희원(希願)의 언어로도 사용하고 있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고통이자 동시에 희망이다. 그렇다 보니 분단체제론의 서술 속에서는 이렇게 한쪽으로는 비원과 고통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희원과 희망이라는 정반대의 가치와 정서가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이때와 이 장소에서는 이 얼굴로, 저때와 저 장소에서는 저 얼굴로, 번갈아가며 널뛰기 하듯 나타난다. 분단체제론 측에서야 그것이야말로 ‘분단체제’의 양면성과 복합성의 전체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가 도대체 이것인지 저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만드는 식자들의 악취미이거나 고질적인 병통이 아니냐고 항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무슨 악의나 악취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고, 분단체제론에 내재한 곤경과 역설이 필연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뿐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분단체제론을 처음 제기했던 90년대 초반에는 분단체제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과 민중주도 분단극복의 운동성에 대한 강조가 논의의 표면을 압도하여 ‘하나의 체제로서의 분단체제’라는 이론적 핵심이 갖는 함의를 덮고 있었다. 그러다 1997년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라는 글에서부터 분단체제의 부정적 파생 현상보다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 갖는 분단체제의 적극적 의미에 대한 인정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는 1999년에 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국가연합’에 대한 적극적 강조로 이어진다. 분단체제 상태에서 연합을 하다 어느 순간 문득 통일이 된다는 발상이다. 2005년에 쓴 「6·15 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에서도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의 남북 상태가 연방·연합제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이후 출간된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2012년의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 종합된다. 그러다 2018년에 이르면 백 선생은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에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까지 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최 교수의 표현대로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을 새로 도입하여 ‘불일불이의 분단체제 상태의 장기화’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30년 궤적 속에서 분단체제는 그 30년간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분단체제에 대한 백 선생 자신의 기왕의 표현을 통해서 그러하다. 먼저 2006년 출간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머리말이다.

벌써 8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 제목을 달면서 당시로서는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했다. 분단체제가 안 흔들리면 어쩔 거냐는 주위의 은근한 귀띔도 없지 않았다 …… 지금 돌이켜 보면 — 이것이 이번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북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 따라서 1997~1998년께 가서야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나는 현실에 뒷북이나 치며 따라가는 지식인의 한 표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으로 ‘6·15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분단체제의 흔들림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앞서간 형국이 되었다 …… 6·15 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작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 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이렇듯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허물어져도 허물어지지 않고, 해체되어도 해체되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쓴 지 12년이 흘러 이제 촛불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018년에도 백 선생에게 분단체제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세월호 때나 탄핵행동 때 무작정 ‘가만있으라’던 권력자들은 몰락했고 그들의 노골적인 ‘좌파·종북’ 몰이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신용을 잃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반공수구세력보다 훨씬 뿌리가 깊고 신축자재한 것이어서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재생될 수 있다.

과연 그토록 신축자재한 분단체제에 대응해야 하는 분단체제론 역시 최소한 그만큼은 신축자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 분단체제를 극복·변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축자재한 분단체제론이 본 2018년의 분단체제는 단순히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다.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무엇이 되었다.

통일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러나 전쟁을 또 한번 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차라리 낫다 하는 게 거의 국민적인 합의사항이 돼버렸어요. 그게 분단체제의 한 기반이죠. 그러니까 분단체제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쨌든 1953년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다시 안 일어나고 살아왔으니까 세계의 다른 분쟁지역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행복한 편입니다. 아주 행복한 것은 아니고 그래도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중동의 여러 지역이나 발칸반도 어디하고 비교하더라도요.

아무리 불만족한 현실이더라도 그래도 거기서 만족할 구석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일 것이다. 현상 인정의 심리적 장치가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에 ‘분단체제’라는 이름을 내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분단체제’가 마치 ‘삶의 조건’, ‘인간 조건’ 수준으로 범박화되기도 하고, 동시에 초월화되기도 한다. ‘분단체제’란 민족 간의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야 말았던 체제다. 전쟁 후의 평화도, ‘경제성장’도 항상 조마조마한 전쟁 위기의 칼끝에서 이뤄져야만 했던 체제였다. 분단체제란 바로 그러한 남과 북의 항상적 위기와 비정상 상태, 즉 영구적 비상 상태(permanent state of emergency)의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체제가 “굉장히 행복한 편”이고,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이었다니. 도대체 분단체제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개념이 초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결국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는 분단체제의 지속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의 성격 자체에 긍정이 포함되기에 이르는 곤경과 역설의 싹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 곤경과 역설은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이 2중의 모습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부정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으로 긍정의 대상이 된다. 후자, 즉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분단체제는 ‘남북연합을 허용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백 선생의 글 속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의 이론사적 위상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론에도 장강의 앞 물결 뒷 물결이 있고, 생애 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보아야 이론의 전체 풍경을 볼 수 있다. 백 선생이 분단체제에 대한 단편적인 발상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라 하지만, 이론적인 구성을 갖춘 체계적 입론으로서 ‘분단체제론’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92년 《창작과비평》 78호(겨울호)에 발표한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였다. 이 시점은 묘하다. 소련·동구권의 붕괴로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이며, 그 여파로 한반도에서 분단 이래 최초로 열렸던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내외의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 유포 세력의 반격을 받아 급격하게 닫혀가는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는 분단체제가 그 절정을 지나 크게 흔들리던 위기의 시기였고, 그 위기는 분단체제가 붕괴하고 양국체제가 열리는 첫 계기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완수해낼 내적 역량의 부족(주로 민주진영의 분열로 야기된 것)과 외적 조건의 한계(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였던 점)로 인해, 그 가능성이 급격히 닫히고 있던 시점이었다. 아울러 이 시기는 동구권 붕괴와 87년 대선 패배 이후 야권과 운동권이 분열하고 약화되면서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비롯한 여러 혁명 이론들이 급속히 쇠퇴해가던 때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은 새로운 이론을 요청한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이 등장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더구나 이렇게 등장한 분단체제론은 뜻밖에도 분단체제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러한 것처럼, 장기지속의 존재임을 설파했다. 80년대 ‘사구체 논쟁’이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대 진영의 대결논리와 그 연장인 반제국주의 – 민족해방투쟁의 혁명이론인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양 측면(NL과 PD) 사이의 논쟁이었던 만큼, 자본주의 – 사회주의의 진영 대립이 붕괴된 새로운 상황에서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새로운 시각이 요청되던 때였다. 그런데 왜 다시 ‘장기 자본주의’이고 더구나 ‘장기 분단체제’인가?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 진영의 대립, 즉 냉전의 붕괴는 단순히 사회주의(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수준에서 세계사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아메리카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적 근대의 긴 여정과 그 격발점이 된 ‘긴 유럽내전’, 그리고 그 유럽내전을 배경으로 한 유럽 – 서구의 세계지배의 역사가 비로소 종식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러한 사실이 이제 서서히 학계를 중심으로 인정되고 확산되고 있지만, 분단체제론이 처음 모습을 보인 1990년대 초반에 이러한 인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크게 의지한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도 2001년의 가히 묵시론적인 9·11 이후에야 (그가 500년 되었다고 본)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막장에 이르렀다는 것, 세계사는 미지의 새로운 단계(가지치기, bifurcation)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단계가 자신의 입론인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론 자체에 대한 상당한 수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나는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에 앞서,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당시인 80년대 말~90년대 초반에 그토록 크게 변화했던 현실에 대한 완전한 조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사구체 논쟁’의 주도자들 대부분이 이론적인 혼란과 좌절 속에서 물러나 앉는 상황에서 백 선생이 새로운 종합의 무거운 짐을 지려 했던 용기는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그 이후 거의 30년 동안 담론의 확산을 넘어 ‘6·15 민족공동위’ 등 현실의 통일촉진운동의 주요 행위자의 하나로 적극적 역할을 해온 것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을 전제한다.

다만 공적과 함께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나왔던 이론의 한계 역시 짚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2018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적 전환기다. 그런 작업 없이 미래는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된 1990년대 초반은 오늘날보다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었고, 당시의 현실과 미래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당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처음 겪는, 어느 역사책에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은 ‘길’을 제시해야 했는데, 이때 현실과 미래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려 행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이 또한 백 선생이 제기했던 분단체제론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린다’는 말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명한 풍자적 언어이지만, 나는 결코 단순히 풍자적인 뜻으로 이 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을 했던 때의 마르크스는 아직 젊었다. ‘빌린다’보다는 강물처럼 ‘잇는다’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질서와 같다. 반드시 빌리고 이어갈 수밖에 없되, 또한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이 무거운 사명이다.

백 선생이 이었던 흐름의 하나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었다. 이 이론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붕괴 이전부터) 이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예견하고 있었다. 소련·동구권 붕괴 직후 이러한 세계체제론에 근거한 분단체제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적 세계질서는 세계체제론이 설파해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일성(專一性)을 입증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11 이후 이라크 전쟁의 실패, 그리고 연이은 금융 위기로 미국 일극주의는 급격히 막을 내렸다. 이후 세계는 명백하게 다극화로 가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전일성 대신 국가, 시장, 호혜 공동체가 다양하게 조합되는 ‘혼합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앞 물결은 백 선생 자신이 그 가운데 있기도 했던 7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분단시대론’과 ‘분단체제론’이었다. 엄혹한 냉전, 유신시대의 절정기에 제기된 이 견해들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이 안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세력이 생기면서 ‘분단체제’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70년대 분단시대/체제론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남과 북 모두의 정부·체제·국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주도자들은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투쟁을 이끌면서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통일에 두고 있었는데, 그 통일이란 남과 북의 현존 체제, 국가를 부정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남과 북의 기왕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공모(共謀)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냉전의 절정기에 남과 북 모두를 정당성 없는 ‘반쪽국가’(1971년 함석헌 선생의 표현으로는 “둘 다 가짜”)로 보는 것은 그 시대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두 개의 가짜’를 걷어내고 ‘민중의 힘’으로 하나의 진짜를 찾아내자는 것이 당시 재야운동권 분단체제 극복론의 논리요 정서였다. 70년대 재야 민주화론, 통일론이 한국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 논리와 정서는 모든 코리안에게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던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의 강렬한 표현이었고,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그 흐름을 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가짜’라는 논리와 정서는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뤄졌으며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어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더 이상 자명한 명제일 수가 없었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게 된 것은 87년 이후 30년에 대한 뼈아픈 반성, 복기(復碁)의 결과였다. 그때는 촛불혁명 전이었고 상황은 암담했다. 우선 어찌하여 87년의 희망이 이렇게까지 어두운 지경으로 곤두박질쳤는지 그 이유를, 그 뿌리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도달한 것이 한국 현대사에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30년 주기로 작동해왔다는 생각이었고, 그 ‘마의 순환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단체제를 끝장내고 양국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그 촛불혁명의 힘으로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은 막연한 희망을 넘어 현실의 발판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체제전환’이 이루어져야 촛불은 진정 혁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기된 양국체제론에 대해 뜻밖에 창비 분단체제론 그룹이 그렇듯 강하게 반발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제기의 전후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다만 양국체제론을 제기한 목적이 단지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필자가 ‘잃어버린 30년’을 복기하면서 분단체제 – 분단체제극복의 논리가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의 일부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비판은 창비 분단체제론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87세대 운동권 일반, 아니 60~80년대에 형성된 민주화 운동권 일반의 분단극복 논리에 내재된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런 논리로는 ‘마의 순환고리’를 깰 수 없었고, 그 결과 87년은 결국 다시 독재로 회수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없이, 다만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했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 반발의 내용도 들여다보면 ‘분단체제’ 비판을 ‘분단체제론’ 비판과 등치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애초부터 양국체제론 구상의 동기가 무슨 ‘창비 비판’에 있지도 않았고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처음에는 그렇게 특이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분명히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본지(本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한 오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반발의 배경에 필자와 창비 그룹 사이에 ‘분단체제’ 개념에 대해 매우 큰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서서히 그리고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과 마찬가지로 분단체제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자고 한다. 그런데도 양국체제론에 그렇듯 반발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생각하는 분단체제’가 실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 보니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 서로 구분이 안 되는 바 있다.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고 시작한 분단체제론이 어느덧 분단체제와 동반(同伴)하자는 이론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양국체제론의 핵심은 마의 순환고리를 끊자는 것이고, 마의 순환고리의 핵심에 분단체제가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론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끝장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와 적당히 공생하자는 주장이 되어버린 것인가.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문제는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게 된다.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차근차근 밝혀보기로 한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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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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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란 결코 지위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물론 ‘저항’을 생각하는 공무원이 지나치게 많게 된다면, 그 또한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상명하복과 동종교배식의 조직 분위기만으로 과도하게 충만된 관료사회에서 그 권위와 관행에 ‘저항’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 공무원들이 존재해야만 조직이 그나마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왕따’되지 않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우리 공직사회도 비로소 희망이란 게 존재하고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몇 번이나 징계와 면직 위기를 겪어야 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기자는 필자에게 “걸어 다니는 징계혐의자”라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였다.

필자가 직면했던 대표적인 징계위기는 바로 지금 이 기고문에서 계속 지적하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회 공무원들이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막강한 입법권한을 행사하는 ‘검토보고’ 제도에 위헌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신문에 발표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회사무처가 필자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는 ‘품위 유지 위반’ 혐의였다. 그러나 정작 ‘품위 유지’를 어긴 것은 오직 그들이라는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뒤 필자는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추진법안에 국민들이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고 상고법원은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다시 징계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회 법사위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필자를 징계하기로 했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훗날 풍문으로 들었다(그런데 이 기고문을 계기로 필자는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마침내 상고법원을 저지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보수정당 출신의 어느 국회의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기고를 포함한 필자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랫것’의 ‘하극상’에 못마땅해 한 것이리라. 봉건성과 비민주성의 뿌리가 깊다. 한편 국회사무처의 한 고위간부는 언론사에 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문을 실어주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고,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필자의 발표만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필자는 조직 내에서 이른바 ‘왕따’가 되어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지 몇 년이 계속되었고, 또 필자가 조직 내 ‘왕따’로 지내는 사이에 나이가 상당히 어린 한 직원에게 “당신”이라는 말을 듣는 수모까지 당했다. 하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심성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사실상 면직의 위기였던 두 차례의 징계위기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서면경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발단은 무슨 비판을 하고 기고문을 발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포(公布)’라는 법률 개념을 둘러싼 학술 차원의 논의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이 문제 제기는 최소한 입법을 주 업무로 하는 국회로서는 법률적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로잡은 것으로서 상을 받아야 마땅한 문제였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개념의 정확한 규정을 요구했다고 하여 결국 기관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기관장으로부터 공식석상에서 “×××”라는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정신병자”로 지칭되기도 했다(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지만, 국회는 자신들 소관 밖이라며 접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국회의 다른 문제를 국민국익위에 제기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회는 소관업무 외라는 회신만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조직은 ‘그들만의 리그’, ‘성역’으로 영역화한다).

또 그 ‘서면경고장’을 준 총무과 계장은 필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훈계’까지 하였다. 나아가 이 징계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요청해 열린 고충처리 소청조차도 “근무한지 몇 년이나 됐느냐?” 등 조롱 섞인 언사만 들어야 하는 채 기각되었다. 이 소청에서 필자는 중요한 증인이기도 한, 진보진영 출신으로서 훗날 국회의원까지 된 한 당료의 증언을 요청했지만, 그는 귀찮은 탓인지 아니면 문제의식이 결여된 때문인지 출석을 거부했다. 무릇 정치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가장 큰 덕목일 터다. 불행하게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이렇듯 무관심하고 경시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폐단이리라.

내게 서면경고를 ‘부여’한 기관 측은 서면경고가 징계도 아니고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징계도 아닌 것”을 그토록 한사코 ‘부여’하고자 했을까? 필자가 서면경고를 받은 바로 그 날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 직원들이 복도에서 지나치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 날로부터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혼밥족’이 되어야 했다. 확실한 사실은 그것은 ‘주홍글씨’로서 곧 조직 내 ‘왕따’의 분명한 신호라는 점이었다.

언젠가 이 ‘법률 문제’에 대해 내가 발표를 하고 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할 때 한 법대 교수가 내 직함인 ‘해외자료조사관’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석했던 과장은 “번역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건 예를 들어 방호과 직원을 앞에 두고 “문지기”라고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조사관’이란 명칭그대로 조사를 담당한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격 모독, 인권 유린이기도 했다. 나아가 “번역하는 사람”이 발표하는 자리에 토론하러 참석한 교수들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 과장은 이후 사과하라는 내 요구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과장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공무원으로 된 후 기관에서 개혁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것을 보거나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징계를 받던 당시 나는 갈릴레오처럼 탄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모두가 막무가내 1+1=3이라 강변하면서 1+1=2라는 나의 정답을 처벌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부연해야 할 특징적인 사실은 필자에 대한 징계 사안이 묘하게도 모두 교수 출신의 기관장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여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야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또 그들이 입으로 진보를 내세우는가 보수를 내세우는가와 전혀 무관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그러한 비정상적인 압박이나 상황에 굴복하여 무릎 꿇고 살 수 없었다. 필자는 매일같이 어둠 속 새벽 출근길에 국회 정문을 들어서면서 다짐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자. 그리고 ‘연구’하자.” 그러면서 감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오늘도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전심전력, 실천하고자 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비판자, 실천자가 나와야 하고,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2019년 11월, 필자는 청천벽력과 같은 아내의 췌장암 4기 확진으로 근무가 불가능해졌고 끝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소속된 과의 과장이라는 사람은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이나 문자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한 국회사무처 고위 간부는 필자의 후임 채용에 자기 아는 사람을 도와준다며 정말 너무 경황이 없는 필자에 전화해 일언반구의 위로도 없이 필자가 수행했던 업무 내용 좀 보내줄 수 있냐는 어이없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또 내가 가슴이 무너지는 사연으로 직장을 떠났건만 국회도서관 노조 게시판에는 필자 후임 채용을 언급하면서 필자를 “문제아”라고 표현해 ‘조롱’과 ‘적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노조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화목이 가득한 직장”이다). 물론 필자를 응원해준 국회 직원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 참으로 몰인성화(沒人性化)된 조직의 성격이 그대로 투영된, 어이없게도 슬프고 이기적이며 비인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1760년대의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 베카리아는 사람들이 분석적 탐구보다는 진부한 인상에 좌우되기 때문에 “생명과 자유에 가장 필수적인 문제에서도 수많은 오판을 겪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지쳐 인내의 한도에 이른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괴롭혀온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눈은 가장 자명한 진리를 향해 열린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이제 진리를 향해 눈을 떠야 할 때이다.

민주주의란 결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비판자 그리고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확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한 힘의 총화로써 우리 사회가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되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그리고 희망은 멀리 ‘추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까운 곳에 ‘구체’로 존재한다.

모름지기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실천되어야 한다. 입으로 진보를 주창하는 인사일수록 정작 그 일터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의 현실이다.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 추구의 주관적 등치가 빈발한다. 자기의 삶터와 일터라는 가까운 곳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침묵하고 방관, 동조하면서 오로지 멀리 ‘열매’와 ‘자리’만 추구했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모순과 혼돈이 초래된 것이리라.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수, 2020/05/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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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어 봅니다.

현대철학은 니이체와 프로이트 및 마르크스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니이체는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폐기하고 생성론을 새로운 존재론으로 제시하였으며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에 칸트의 주체철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서구의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면서 물적 토대에 대한 구조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토대인 생산양식의 혁명을 주장하였으며(마르크스는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엥겔스의 객관적인 결정론을 버리고 토대의 모순이 극대화된 임계상황에서 정치적 의식화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지가 고양되었을때 토대인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슬라보이 지젝은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을(대중의 계급의식이 소멸함에 따라 토대의 혁명은 불가능해졌기에 상부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이라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유와 무가 둘이 아니듯 불교의 중도사상과 양자역학 의 중첩성의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하나만의 혁명은 온전한 변혁이 아니기에 결코 그에 따른 희생에 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마르크스의 혁명이 종국에 실패한 것은 상부구조에 위치한 욕망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부구조는 토대에 종속된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이분법적인 실체론에 입각한 유물론의 필연적인 결론이라 할 것이므로 욕망의 본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새로운 생산양식의로의 혁명의 성공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토대에 대해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즉 상대적 결정론을 주장한 발터 벤야민이나 조르주 루카치의 견해를 계승한 지젝의 상부구조의 혁명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코 절반의 치유책에 불과하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의 결핍을 대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욕망의 절대적 결핍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이 자신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하여 생산한 잉여욕망을 마치 본래적인 인간의 욕구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대중은 무한한 잉여욕망을 당연한 본성인 것처럼 추구하다보니 결핍에 따른 계급의식 또는 투쟁의식을 상실하였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못 벗어난 대중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임을 깨닫고 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지전 이론을 개진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통을 옹호하는 전통적 지식인 대신에 유기적 지식인이 전선의 참호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어 이를 해체하는 진지전을 펼침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해체하여 재구성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보다는 깨어있는 유기적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론운 제시한 그람시의 이론이 더욱 실현가능성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유물적인 심층분석 보다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포플리즘의 전위로서 정치적 구호에 흡수되어 자신의 변혁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착잡함을 금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진보 또는 보수의 이항대립적 대결구도로 해석하면서 피상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뿐 결코 한국의 국가재벌독점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온전한 혁명은 상부. 하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언듯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램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온전한 혁명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물론 지식인조차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토대와 상부구조를 변혁할 선구적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지혜와 토대를 변혁할 대중의 결집된 주체의식과 투쟁의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전위에서 창도하고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를 주체적,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서는 불가하므로 결국 외부적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없이 추단해봅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회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자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민운동이 시민단체운동으로 협소하게 왜곡되어버리고 그나마 시민이 아닌 실무자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해버렸으며 그 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을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키기보다는 대부분이 정치운동으로 흡수되면서 결코 시민운동과 주체는 물론 목적과 작동방식이 다른 정치운동의 하부구조로 전락해버려 시민운동의 존재의미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기에 이제는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에 의해 중세가 몰락하고, 세계대전에 의해 근대가 몰락한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화의 모순에 따른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지구적 차원의 파괴도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이번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인간의 생존방식과 생산양식의 변환을 가져올 사건, 즉 알랭 바디우의 진리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부재의 진리’를 찾는 노력도 우리에게 그나마 혁명의 당위성을 가르쳐주고 있읍니다만 이 또한 관념적 철학자의 현실불가능한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지젝은 불가능에 도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고민해야할 문제점은 현재의 생산양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복지국가를 통하여 이미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켜왔기에 다른 보완재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외에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자본주의에 따른 독점모순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평등 모순 및 기타 부가적 모순인 분단모순 및 지역모순 등을 열거할 수가 있는 바, 과연 그러한 모순들이 한국사회 시스템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불가능한 치명적 상황을 만들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한 임계상황인지 아니면 재정비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으로 치유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어떤 결론이 나던지간에 이들을 치유하는 방식은 결국 구조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 해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진보정권이라하여도 지금껏 계급과 계층 및 집단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치유책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집단을 초월하여 진지한 연구와 성찰과 변혁의지가 부재한 실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긴 안목으로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갖춘 열린 대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참여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 2020/06/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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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지나간 곳엔 시체가 즐비하다. 흔히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냥한 후에는 기업을 완전히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장사를 지낸다. 그래서 나는 사모펀드를 ‘기업장의사’라 부른다. 사모펀드가 어떤 식으로 기업의 흡혈귀와 장의사 노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예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예다.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보자.

사모펀드가 기업장의사임을 즉시적으로 보여주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떻게 사모펀드가 신발소매업 체인점 페이리스(Payless)를 장사 지냈는가”란 기사 제목이다.

 

경북 영덕주민들 두 번 울린 사모펀드

경상북도 영덕에 가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지역주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있다. 이 풍력발전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튄다는 속어)를 했기 때문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가 영덕풍력발전공사를 인수한 것은 2011년, 200억 원을 들여 유니슨 등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2019년 삼천리그룹의 삼탄에 매각했다. 7년간 맥쿼리가 소유주로 있는 동안 올린 수익은 630억 원. 그러나 현재 회사는 자본잠식상태다. 깡통회사란 뜻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8년 한 해만 보더라도 영덕풍력발전은 한 해 동안 약 81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약 19억3천만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자비용으로 45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렇게 7년간 맥쿼리에 이자비용(전환사채 차입에 대한)으로 지출한 것이 총 319억 원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계상하면 결손금 117억 원이 자본총액 40억 원을 초과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이다. 빚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멕쿼리는 2013년 영덕 근처의 영양풍력발전공사까지 인수했다가 작년 영덕풍력발전까지 한데 묶어 삼탄에 1천9백억 원을 주고 매각했다. 이로써 수백억 원의 매각 수익에 이자, 거기에 7년 동안 올린 수익을 쏙 빼먹고 튄 것이다. 영덕군이 올린 수입은 부지 대부료로 매년 331만 원 받은 것이 전부. 각종 기반시설 지원 등에 군민 혈세가 들어간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며 기대한 일자리는 고작 7명이다.

그럼 이게 다일까?

새 인수자 삼탄 역시 사모펀드와 은행을 끼고 영덕 및 영양풍력발전공사를 차입매수 했다. 각각 192억 원과 854억 원을 30년간 대출로 연리 12%의 이자를 내도록 했다. 해서 영덕과 영양풍력발전공사는 연간 각각 23억 원, 102억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을 내봤자 아무 소용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될 것이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쌓인다. 더 못 버티고 곧 문을 닫을 것이다.(『영남경제』, 2019. 9. 5; 2019, 9. 6; 2019, 9. 18).

 

기업흡혈귀와 장의사 사모펀드의 기업 고사 방식

다른 나라(미국) 이야기를 먼저 하면 관심이 덜 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이것을 보면 사모펀드가 왜 기업장의사와 기업흡혈귀란 명칭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사모펀드는 경영상태가 안 좋은 회사를 좋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들고 회사를 싼 값에 매입하거나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한다. 이 뒤에 따라오는 명분들은 수익을 내는 튼실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 하겠다는 것이다. 매입 대상 업체는 둘 중 하나다. 상장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상장을 폐지해 나중에 재상장해 매각 수익을 얻거나, 비상장사를 사서 상장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가치를 높여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된 것은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사냥의 대상이다.

둘째, 그러나 그 명분은 말만 그럴 뿐, 회사의 구성원이나 회사 자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나 소유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장부상으론 이전 보다 괜찮은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즉 회사의 정상화나 건실화 등이 목표가 아니고 오로지 산 것 보다는 비싼 값에 매각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표다.

셋째, 회사를 매입할 때 절대로 자기의 돈으로만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빌려 매수한다. 즉 차입매수(leverage buyouts)를 한다. 그 빚과 이자는 고스란히 회사에 떠넘긴다. 그러나 알맹이(수익)는 철저히 주주들과 소유주의 몫이다. 그러면 회사엔 뭐가 남는가. 계속해서 손실만 쌓이고 고사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사정이 안 좋은 회사에 도움은커녕 설상가상으로 빨대를 꽂은 격이다.

넷째, 이렇게 부채더미를 쌓고 있는 회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 부채에 대한 파생금융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이하 CLO)을 발행한다. 부채를 담보로 해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노리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분산, 나머지 하나는 수수료로 인한 수익창출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닥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 위험을 떠안아 주니까. 구제금융으로. 이들이 그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마불사다. 자신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노나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잘 나갈 땐 그 열매를 온전히 자신들의 몫으로, 위기가 닥쳐 망할 땐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로 대신 메워준다.

코로나19가 악성 회사채를 가지고 무모한 노름을 하고 있는 월가(사모펀드)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기사를 낸 뉴요커

CLO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월가에서 써먹던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사촌 격으로 작동 원리는 똑 같다. CDO는 대형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업체로부터 받은 불량채권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써먹었던 일종의 대출에 대한 보험 상품으로 우량과 불량대출을 섞어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살짝 분칠해 파는 것이다.(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2012). 본질 면에서 CDO와 똑같은 CLO는 대형금융회사나 사모펀드 자체가 발행, 관리 및 판매한다. 그렇게 거짓되게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 후 투자자를 모아 수수료까지 챙긴다. 그러나 위험은 인위적으로 희석되어 가려졌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망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올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대마불사론이다. 2008년 월가가 써먹던 수법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driven capitalism)의 실상이다.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의 경고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2019년 1월 영국 하원에 나와 전 세계적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회사부채(corporate debt)의 폭증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는 코로나 때도 아니고 트럼프가 “나(미국)홀로 잘나가!”하면서 경제의 호황을 자랑하던 때다. 카니는 파행적인 회사부채 시장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 견주어 경고했다. 회사부채 시장에서의 이른바 “약식대출”(covenant lite loans: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검사)를 생략한 채 이루어지는 대출)의 만연이 “서브프라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채권인수’(no doc underwriting)라는 의미에서 그 때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1월 현재 차입대출의 85%가 약식대출이다(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급증하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대출을 2008년 금융위기에 견주어 경고하고 있는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커니 <출처: 타임스/로이터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영국은행 총재의 저런 경고는 개 코로도 듣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라면 높은 신용등급과 과도한 부채의 회피가 그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은 완전히 구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주도자본주의에 편승한 뒤로는 사모펀드가 이것을 선도했다. 인수와 자사주매입을 위해 많은 대출이 이루어졌고 차입매수가 성행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비금융권기업의 회사부채는 총 6조1천억 달러(7,527조 원)에서 10조1천억 달러(1경2,463조 원)로 증가했다.

회사부채는 채권발행으로도 조달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레버리지대출”(leveraged loans)의 확산으로도 이루어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까지 대출해준 협조융자(syndicated loan: 둘 이상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해주는 대출) 총액은 5,540억 달러(684조 원)에서 1조2천억 달러(1,481조 원)로 급증한다. 이런 레버리지대출은 앞에서 언급한 CLO를 창출하는데 사용되었다. 2019년 말까지 7천억 달러(864조 원) 상당의 CLO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빚을 놓고 그것에 대한 금융상품이 투자 상품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돈 놓고 돈 먹는 돈 놀이가 지금 월가에서 사모펀드 주도하에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문제는 그런 돈 놀이에 말려든 기업들과 거기에 속한 종업들이 말라 죽어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백화점의 서거: 니만마커스와 JC페니

5월 초 미국의 유명 백화점체인 두 개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다.(“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두 회사는 모두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명사이다. 니만마커스는 최고급백화점이고, JC페니는 서민들을 위한 백화점이다. 두 회사의 역사는 각각 113년, 118년으로 둘 다 유서 깊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시대에 맞는 변신에 실패를 파산신청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내가 보는 견해는 다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백화점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은 도표에서 보듯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이들 백화점이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저질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빼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쇼핑몰들의 폐쇄다. “쇼핑몰의 서거 경제학과 향수”라는 제목의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

그 기저질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시장만 호황이었을 뿐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백화점의 서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화점과 단독 점포가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미국인들에겐 애틋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딱히 재미라고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미국식 삶 속에서 그나마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곳 중 하나도 쇼핑몰이다. 그런 곳이 문을 닫으니 뉴욕타임스 같은 곳은 쇼핑몰의 서거가 향수를 불러온다고 제목을 달아 기사화를 했던 것이다.(“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그런 기사가 났던 것이 2015년이다. 그리곤 마침내 이제 백화점의 종언까지 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던 백화점의 발에 살짝 걸린 돌부리와 같다. 다시 말해, 코로나가 미국 백화점 사망의 주효한 원인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심각한 기저질환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 등이 파산보호신청을 하자 백화점의 서거를 알리는 2020년 4월 뉴욕타임스

 

기업장의사 사모펀드에 의해 이미 고사 중이던 업계

나머지 기저질환은 사모펀드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산신청의 주된 원인은 사모펀드다. 이것들의 농단으로 백화점들이 완전히 작살났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쇼핑으로 노선을 바꾸고 재기할 자구노력과 자생력조차 사모펀드는 완전히 압살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배당금과 이자로 현금을 다 빼갔으니 그렇다. 어떻게? 맨 처음 우리나라 영덕풍력발전공사의 경우에서와 같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업계의 귀공자 니만마커스가 어떻게 엄청난 빚만 짊어진 채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는지 보자. 현재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50억 달러(약 6조2천억 원)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사모펀드 TPG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는 51억 달러(약 6조 3천억 원)로 니만마커스를 차입매수 한다. 그리곤 2013년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와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에 60억 달러(약 7조 4천억 원)를 주고 매각한다. 이들 회사는 니만마커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기업공개(IPO)를 시도하려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2년 동안 50억 달러의 부채를 조정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자는 수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2018년 마지막 회계보고엔 49억 달러(약 6조5백억 원)의 수익이 있었다. 그러고도 빚이 50억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매해 나는 수익이 한 푼도 안 남기고 거의 다 주주들의 배당과 이자 지불로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디스는 니만마커스의 부채를 두고 “지탱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이런 판에 온라인쇼핑으로 전환하려는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투자인데 말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들이 주주들과 소유주에게 배당금과 이자로 다 홀랑 가버리는데….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좀비기업으로

그렇다면 백화점만 그럴까? 아니다.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사정이 똑같다. 그리고 기업은 회생은커녕 시체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예를 두 곳만 더 보자. 옷가게 제이크루(J. Crew)와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다.

먼저, 2011년 사모펀드 TPG와 레오나드그린&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ners)가 제이크루를 30억 달러(약 3조7천억 원)에 차입매수 한다. 소비자 옹호 단체인 <미국금융개혁연대>(Americans for Financial Reform)이 추산한 바, 2011년 이후 제이크루는 소유주인 사모펀드에게 배당금, 이자 및 수수료로 7억6천만 달러(약 9천4백억 원)를 지불했다. 니만마커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 등의 영업 전환 모색 등에 들어갈 돈은 한 푼도 없이 사모펀드가 탈탈 털어갔는데 무슨 자구노력이 가능했겠는가.(New York Times, May 14).

페이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사모펀드 골든게이트캐피탈(Golden Gate Capital)과 블룸캐피탈(Blum Capital)이 페이리스를 20억 달러에 차입매수 했다.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과거 2년 동안의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페이리스는 그 기간에 3억2,200만 달러(약 3,986억 원)의 에비타(세전이자지급전이익)를 올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억5,200만 달러(약 4,357억 원), 그리고 이자로 8,300만 달러(약 1,027억 원)가 돌아가서 손실만 기록했다. 이것을 쉽게 계산하면, 회사로 1달러(약 1200 원)가 들어올 때마다, 소유자에겐 1.09달러(약 1350원)가 대출자에겐 0.26달러(약 322 원)가 돌아가게 되어서 1달러 벌 때마다 계속해서 0.35달러(433 원)의 빚이 쌓이는 꼴이다.(“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딱 그 짝이다.

뉴욕시 진보단체인 <대중민주의센터>(The Center for Popular Democracy)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파산한 소매점 체인 14개 중 10개가 사모펀드가 소유주로 밝혀졌다.(New York Times, May 14). 이렇게 기업은 시체가 되고, 사모펀드는 살이 통통 오른 승냥이와 장의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거리와 시체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워런과 코르테스는 왜 코로나사태 동안 기업의 인수합병 금지를 주장 했는가?

그러니 회사들로서는 어떤 노력을 경주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가 덮쳤고 완전히 고꾸라졌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언제가 그들에겐 가장 호기인가? 바로 헐값에 기업을 살 수 있을 때다.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비싸게 팔면 되니까. 이 칼럼시리즈 초반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의 철칙인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에겐 안 좋은 시기다. 따라서 코로나19야 말로 그들에겐 최적기다. 기업사냥을 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위험과 위기는 사모펀드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라 사모펀드가 정말로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험을 빙자해 고수익을 올렸으니(CLO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위기가 있어야만 장사가 되는 모순이 사모펀드가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된 동력이다. 또한 위기 시엔 파산하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것들을 헐값에 거머쥘 수 있으니 위기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위기는 사모펀드에겐 노다지인 셈이다. 죽어가는 회사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그걸로 더 큰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사모펀드가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가지고 기세가 등등한 사이 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그걸 가지고 전 세계 사업들에 마수를 뻗치며 제국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이 때문에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코로나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인수합병이 대다수는 사모펀드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이다.(“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사모펀드가 이끈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

소위 미국식 선진금융의 핵심은 전 산업부문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금융화라 한다. 그것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금융주도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선두에 현대의 제국 사모펀드가 있다.

산업자체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기업이 저렇게 좀비가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실업자가 된다. 이런 펜데믹 시기에는 영원한 실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회사에 약 880만 명의 근로자가 있으며, 이 회사들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New York Times, Jan. 31, 2020).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경상도 말로 “쌔(혀)가 빠지게” 노력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 게 뻔하다. 이것은 경제와 관련한 관념과 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세상 어디에 저런 젖과 꿀이 흐르는 장사가 있겠는가. 땀 흘려 일 안하고 남의 돈 빌려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득달같이 덤벼들어 하려 들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다. 경제와 노동 가치의 왜곡, 그것은 기업의 시체가 늘비해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 규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월가의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그 틈을 타고 제국들이 탐욕의 눈이 박힌 머리를 바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와 당국의 방치는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 우리에게도 사모펀드란 이름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이윤에 이악스런 자들은 남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사모펀드에 벌써부터 발을 담갔다. 사모펀드의 구성요건이 49명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풀어졌으며, 10%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하는 “10% 룰”의 제한에서도 사모펀드는 제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문을 열어 놨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작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천조 원을 넘겼다.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한국경제』, 2019. 5. 1; 뉴시스1』, 2019. 10. 4;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동아일보』, 2018. 9. 28;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그리고 이 와중 어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어떤 이들은 소중한 노후자금까지 날리고 있다. 지금 한가하게 미국의 사모펀드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참고자료

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2012.

“영덕풍력발전 매각한 맥커리는 호주의 최대 투자금융,” 『영남경제』, 2019. 9. 5.

“경북 영덕풍력발전 외국계 사모펀드 기업사냥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덕군,” 『영남경제』,2019. 9. 6.

“외국계 사모펀드의 고리대금에 멍들은 영덕·영양풍력발전,” 『영남경제』, 2019. 9. 18.

“자산운용시장 2000조원 돌파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위험성↑”,” 『한국경제』, 2019. 5. 1.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후 은행 파생상품 판매 49% 늘어,” 『뉴시스1』, 2019. 10. 4.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사모펀드 규제완화… 한국판 ‘엘리엇’ 생긴다,” 『동아일보』, 2018. 9. 28.

“금융위, 코로나19발 구조조정 위해 1조펀드 모은다,”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The Death of the Department Store: ‘Very Few Are Likely to Surviv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Hertz, Car Rental Pioneer, Files for Bankruptcy Protection,” New York Times, May 22,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

“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화, 2020/06/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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