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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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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익명 (미확인) | 금, 2019/04/05- 08:25

春日(춘일)

 

川邊春柳綠(천변춘류록)

聚散稚魚遊(취산치어유)

野老孤徐步(야로고서보)

吟哦上古樓(음아상고루)

 

봄날에

 

냇물 주변의 봄철 버들 푸릇푸릇

모였다 또 흩어지며 노는 稚魚들

시골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時調로 改譯>

 

냇가 春柳 푸릇푸릇 노는 어린 물고기들

시골에 사는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저으기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春日: 봄철의 날. 또는 그날의 날씨 *川邊: 냇물의 주변 *春柳: 봄버들 *聚散: 모임

흩어짐 *稚魚: 알에서 얼마 되는 어린 물고기 *野老: 한적한 시골에 사는

늙은이  *徐步: 천천히  걷는  걸음  *吟哦: 음시(吟詩).  吟詠.  시가(詩歌) 따위를 읊음.

 

<2019.4.4, 이우식 지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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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意(천의)

 

但有從天意(단유종천의)

何人語是非(하인어시비)

雨晴皆好事(우청개호사)

墻上發薔薇(장상발장미)

 

하늘의 뜻

 

하늘의 뜻이란 좇음이 있을 따름

어떤 이가 옳고 그름을 말하는가

비가 오건, 날이 개건 다 좋은 일

저 담장 위에 장미꽃이 피었구나.

 

<時調로 改譯>

 

하늘의 뜻 좇을 뿐, 그 뉘 是非 말하는가

비가 오건, 날이 개건 어쨌든 다 좋은 일

저기 저 담장 위에는 장미꽃이 피었구나.

 

*天意: 천심(天心). 天旨. 하늘의 뜻 *何人: 어떤 사람 *是非: 옳음과 그름.

理非 *雨晴: 날이 갬과 비가 옴. 우양(雨暘). 청우(晴雨) *好事: 좋은 일.

 

<2017.7.26, 이우식 지음>

수, 2017/07/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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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비망록 30

<매일신보> 1937년 6월 22일자의 지면에는 임사일(林士一)이라는 사람이 기고한 연재물 「창의문 밖의 기억」 첫 회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기사는 그 다음달 7월 2일에 이르기까지 6회에 걸쳐 분할 연재되었는데, 창의문 밖을 벗어나 부암동 중턱의 무계동천과 윤웅렬 별장에서 시작하여 석파정을 거치고 골짜기 아래의 부침바위, 세검정, 연융대, 홍지문, 보도각 백불(白佛) 일대를 죽 탐방하는 행로가 그려져 있다.
이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듯 아닌 듯 이 일대의 옛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이 연재물에는 여기저기 채석장에 관한 언급이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 1937년 6월 27일자에 수록된 ‘4회’ 연재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묘사되어 있다.

실상 인왕산 주변을 살펴보면 예전에 채석장으로 사용한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홍제동 쪽에 자리한 문화촌현대아파트 104동의 후면에도 바로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쌈지마당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남은 작은 공터가 보이고, 그 동편에 절개지 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광경에서 이곳이 한때 채석장이던 공간임을 실감하게 된다.

 

20서울 홍제동 문화촌현대아파트 104동의 후면에 자리한 쌈지마당놀이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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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홍제동 채석장의 한쪽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입상의 모습

가만히 살펴보니 한쪽 바위면에는 가히 이곳의 명물이라고 할 만한 ‘마애관음보살입상’ 한 구가 새겨진 모습도 눈에 띈다. 기껏해야 반세기 남짓 그 안쪽 시기에 만들어졌을 이 보살상이 정확하게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조성된 것인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듣기로는 1972년 이후 1994년까지 문화촌현대아파트 101동 자리에 사현사(沙峴寺)라는 사찰이 옮겨와 있던 기간에 이 절에 다니는 독실한 신자가 이를 조성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곳 홍제동 채석장은 어떤 내력을 지닌 곳이었을까? 이 장소에 관해서는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의 부록으로 간행되던 <통보(通報)> 제118호(1942년 6월 18일자)에 탐방기 하나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현지보고(2) 착암공양성소」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 글을 쓴 목적에 대해 “본란은 고도국방건설을 목표로 조선 내에 약동하는 각종 시설을 있는 그대로 평이 간명하게 소개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홍제정(弘濟町)의 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려, 오른쪽으로 꺾어 야채밭을 반천(半粁, 500미터) 남짓 나아가면 눈앞에 황색 빛을 띤 밝은 건물이 나타난다. 경성부 홍제정 산(山) 1번지, 이런 복잡한 지번인 ‘조선총독부 착암공양성소(鑿岩工養成所)’. 산금반도(産金半島), 지하자원 적극 개발의 요청에 응하여 소화 13년(1938년) 8월 1일에 개설된 광산전사(鑛山戰士)의 연성도장(鍊成道場)이다.
4월, 8월, 12월, 1년을 3기로 나눠 1기에 약 4개월, 이미 530여 명의 졸업자를 배출한 이 양성소에는 지금 제12기생, 이번 4월 입소한 50여 명의 젊은 산남(山男, 산사나이)들이 착암부(鑿岩夫)로서 홀로서는 어봉공(御奉公)의 날을 마음에 그려가면서, 인왕산 뒤편 암벽에 묵묵히 수행의 투혼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중략)
매일 아침 6시 기상, 7시 아침밥, 궁성요배,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 라디오체조를 행하고 발랄하게 현장으로 향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소장인 키노(木野) 본부(本府) 산금과장(産金課長)의 수양훈화가 행해진다. 1일 8시간의 실습을 마치고 숙사로 돌아오면 즐거운 저녁밥이다. 그리고 밤은 녹초가 되어 피곤해진 몸으로, 내일의, 또 한 번 큰 미래의 설계를 그리면서 유쾌한 잠자리로 빠져들어 간다. 그리하여 4개월, 배우고 익힌 이 팔뚝에 착암기를 힘차게 쥐고, 지하자원개발의 기운찬 광산전사로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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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홍제정에 착암공양성소가 개설될 예정임을 알리는 <매일신보> 1938년 5월 28일자 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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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보> 제118호(1942.6.15)에 수록된 착암공양성소 실습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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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8년 11월 16일자에 수록된 착암공양성소 입소허가자 명단을 살펴보면, 전체 50명 가운데 일본인은 9명에 불과하고 절대다수는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홍제동 산 1번지’는 실상 인왕산의 서쪽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번이다. 이 가운데 지금의 홍제동 채석장 터 일대에 들어선 것이 ‘착암공양성소’였던 것이다. 공기착암기와 전기착암기를 다루는 숙련공을 배출하는 실습교육장인 이곳은 일제가 1937년에 추진한 이른바 ‘산금(産金) 5개년 계획’과 관련하여 만들어졌다.
이 당시 중일전쟁의 발발로 전시체제가 본격화하면서 광물자원의 확보가 더욱 긴요한 상황이 되었고, 그 가운데 특히 금(金)은 결제수단으로서 전통적인 위상과 더불어 장차 ‘동아공영권(東亞共榮圈)’ 내에서 기준화폐로 사용될 엔화(圓貨)의 통화 신용유지를 위해서라도 증산의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금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안을 집중 강구하여 1936년 기준 연간 20톤 규모이던 것을 5년 사이에 연간 75톤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국책(國策)으로 삼게 되었다.
1938년 5월 12일에 공포된 제령 제20호 조선중요광물증산령(朝鮮重要鑛物增産令)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금을 비롯한 주요 전시 광물자원의 생산은 대개 함량미달로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놀려두고 있던 저품위 광산을 개발하거나 매광(賣鑛)을 촉진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를 위해 조선총독이 중요광물을 목적으로 하는 광업권자에 대해 사업의 착수 또는 사업의 계속을 명령할 수 있다거나 중요광물의 증산을 꾀하기 위해 산금장려비와 시설보조비를 지급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이 법령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총독부 식산국(殖産局) 내에는 종래의 광산과에서 산금과(産金課)를 분리 신설하여 산금정책을 전담하게 하였고, 이때 착암공양성소도 함께 만들어 산금과장에게 이곳의 운영을 맡겼다. 착암공양성소의 설치 이유는 무엇보다도 실무적으로 원활한 금 생산을 위해서는 광산도로의 개설, 송전시설의 보강, 착암공과 광부의 알선이 뒷받침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매일신보> 1938년 7월 31일자에 수록된 개소식 관련 보도내용을 보면, 착암공양성소가 홍제동 일대에 설정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일찍이 총독부에서 그 개소를 준비중이던 착암공양성소는 키노(木野) 산금과장을 소장으로 하여 부내 홍제정 발파연구소(發破硏究所)의 일부를 빌려서 8월 1일부터 개소하기로 되었다. 강습생은 응모자 250명 중에서 50명이 전형 결정되어 이미 양성소 전용의 압기기공장(壓氣機工場) 75마력도 완성하여 이것을 요하는 착암기는 부내 각 판매점에서 다투어가며 기부신청이 있어 벌써 십 수 대가 준비되어 있다. 여길 보면 착암공양성소가 들어선 곳은 원래 발파연구소가 있던 구역이라고 되어 있다. 광산개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발파연구소는 1936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화약의 제조 및 취급과 관계된 이유로 애당초 총독부 식산국이 아닌 ‘경무국(警務局)’의 소관 기관으로 설정되었다.

25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홍제내리가 발파연구소 후보지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매일신보> 1936년 7월 3일자 보도내용

그후 산금장려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이에 발맞춰 1940년 7월에 부설기관인 ‘발파기술원양성소(發破技術員養成所)’가 정식으로 설립되기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광산과 기타 공사장에서 종사할 발파기술원들을 체계적으로 배출하기 위해 20명 남짓 선발된 교육생을 대상으로 6개월 간에 걸쳐 화약 종류의 취급과 발파법에 관한 교육이 이뤄졌다.
이처럼 두 기관이 하나의 공간에 들어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폭약을 터뜨리고 또한 착암기로 쉴 새 없이 뚫어대니 아무리 바위산인들 어찌 온전할 리가 있었겠는가.
지금에야 어찌 어찌 세월이 흘러 그 앞에 들어선 아파트 숲으로 인해 조금은 시야에서 가려진 형국이지만,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이곳의 속살을 대면하게 되면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생채기들이 이토록 많았던가 하는 점을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목, 2017/11/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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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적폐 청산은 친일부터 뿌리 뽑아야!”

이재명 성남 시장이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데, 저항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적폐 청산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촛불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7일 오후 고양시 소재 고양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식민지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 출연해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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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좌측부터)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 노기환 MC가 27일 경기도 고양시 문예회관 공연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받은 질문 가운데 세 번째 주제인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사회자가 “촛불시민이 독일 에버튼 인권상 받았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유래가 없는 한 국가의 시민이 이제 인권상을 받은 건데 그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인권이 크다는 생각이다. 시장님 그동안에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시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촛불을 든 우리 전사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또 문재인 정부 민주정부는 수립돼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아마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역사는 말할 필요 없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무결의. 아무런 피해도 없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 낸 건 아마 처음 아닐까 싶다”면서 “저는 우리 촛불 혁명의 이 결과 정권교체를 했지만 이건 하나의 수단이고, 초입이고… 진짜 능력은 적폐세력 청산. 이것도 사실은 초입에 불과하고, 다음 단계 공정한 국가. 미래 희망이 있는 나라 만드는 게 마지막 과제일 것”이라고 시민들이 일구어낸 촛불혁명에 대해 정리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만약 거기까지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프랑스 혁명이 버금갈 만한. 인류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일이 국민들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게 시작인 거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겨우 과거에 잘못된 구조. 이 적폐를 덮고 있던 껍데기 하나를 제거하는 이 적폐를 제거하고 또 새로운 질서. 공정한 나라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아 내가 진짜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다’. ‘애 많이 나야지’. ‘우리 아들 딸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은 거다”라고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봤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현재나 과거의 이 불합리한 구조로 부당하게 작은 노력을 하고 큰 이익을 챙기는 집단들이 있다. 이제 소수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걸 바꾸려면 그들이 저항하지 않겠나? 뺏겨야 되니까. 그거를 뺏지 않고는 뺏어서 공정하게 만들지 않고는 사실 비전이 없는 건데. 희망이 없는 건데. 엄청난 저항이 기다릴 거다”라고 진단해 사실상 적폐 청산의 길은 거대한 저항과 진통이 있음을 예고했다.

이재명 시장은 그러면서도 “적폐 청산은 오히려 쉽다. 성역 없이 조사하고 책임을 물으면 되는 건데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꿔서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엄청난 저항이 있을 거다. 그거는 의지와 국민의 힘으로 합리적으로 권력을 통해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거는 보장돼 있지 않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촛불을 들고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이 권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에 더 신경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많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고 안타깝다”고 촛불 혁명 이후의 세상을 우려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함께 출연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에게 “적폐청산에 무엇보다 시민들의 힘이 중요할 텐데… 실장님 평상시에 역사강의 하면서 시민들 많이 만나시잖는가? 만나시는 시민들 생각이 좀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박한용 실장은 “저는 그래도 희망을 좀 가지고 있다. 갖고 있는 게 과거에는 우리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그런게 있었다. 이번에는 시민들이 나와 주셔서 흩어지지 않고 있는 분들도 많다. 실제로 그분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간단하게 한마디 한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 죽 써서 개주지 말자는 거다. 이 촛불을. 다시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으로 남아야 되겠다. 419혁명을 516으로 박정희가 가져가고 518민주항쟁 했더니 전두환이가 탱크로 가져가고 민주항쟁 했더니 노태우가 619 선언을 통해 가져갔더라. 저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과제들은 더 이상 후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까 우리 이재명 시장님 말씀처럼 혁명은 파괴가 아니고 건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전망이 서 있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박한용 실장이 파악한 촛불민심을 전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대개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끝났다고 생각하면 느슨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뀌고 그렇게 된다. 지금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하고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공정한 나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성공했다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번에 과거로 되돌아가면 다시는 성공하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되고 거기에 모두가 힘을 합해야 되고, 작은 차이들은 이겨내야 된다”면서 “그리고 민주정부 개혁정부가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체제가 좀 안정될 수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매우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날 사회를 맡은 노기환 MC는 다시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적폐들이 있겠지만 또 현직 시장님이시니까 지방자치 부문에서는 적폐들이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적폐 때문에 오늘도 제가 발목 잡히고 있는 중인데 모든 영역에 있다.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도 있고, 지방에도 있고 많다. 적폐라고 하는 게 별 거겠는가? 예를 들면 국민을 배재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그 대리권을 남용하는 형태. 대표적인 적폐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부인하는 거다”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 권력의 원래 귀속이 어디냐? 그 생각을 하면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또는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텐데. 과감하게 내 권력이니까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하는 것도 엄청난 적폐 중에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시장은 특히 “중앙정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아닌?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뭘 한 게 있다고 ‘신적폐’ 운운하고. 또 예를 들면 과거에 적폐청산에 대해서 잘못하면 처벌하자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가지고 ‘정치보복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도둑놈 잡는 게 보복인가? 도둑놈은 때려잡아야지. 그것도 도둑놈 때려잡는 걸 ‘야 이거 보복’이라고 얘기하니까 일부가 동의하는 게 있다. 동네 스피커로 떠들고. 이런 것도 역시 남아 있는 적폐들이다. 상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작금에 일부 야당에서 제기하는 ‘정치보복론’을 합창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적폐’로 규정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답답한 게 도둑이 이건 보복이다. 얘기하는데 그걸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은가?”라는 질문엔 “대개 도둑들이 공범들이다. 오해를 한 건 있다. 친인척. 전폐청산 특히 역사문제 적폐청산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가 가장 앞장서고 있지 않나? 역사 부분 적폐에 대해서 실장님이 조금 집어 주시라”고 마이크를 박한용 실장에게 넘겼다.

박한용 실장은 이에 대해 “상징적일 수 있다. 우리가 미 군정 시기에 대한민국 국군을 만들 때 군사영어 학교를 먼저 세웠다. 이때 110명이 배출되니까 108명이 일본군 또는 만주족 장교 출신이더라. 광복군은 딱 두 명밖에 없다. 대한민국 군번 1번이 친일파다. 경찰은 경위 이상이 82%가 친일 순사 출신이다. 저는 이미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고 본다. 그들이 이승만 앉혀 놓고 이 대한민국을 호작질 한 거다. 함께 해 먹으면 한 통속 공범들이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최순실 사건이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일제시대 경찰이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는 일제 때 만주군 장교였다. 이게 적폐의 뿌리가 계속 왔다고 본다. 이들은 도덕성도 없고 후안무치하고. KBS는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에서도 하등의 공로가 없다’. 김부석 아버지가 친일파. 사실 저희가 다 공개할 수 없지만. 그래서 친일세력은 반공을 주장한다. 분단을 악용하고. 한국 사회를 색깔로 마비시키는 주범. 자기 방을 지킬 개들을 해 놓은 거다”라고 분기 탱천한 마음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박한용 실장은 이어 “검찰에는 검경. 경찰에는 경경이 있잖은가? 그래서 적폐혁신은 이거다. 이 57년 동안 한 통속이 됐던 사람들이 고리를 놓았지만 적폐 청산한다고 할 때 57년 동안 밥 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민주세력)를 물어뜯으려고. 이런 역사들이 역사 적폐라고 추가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적폐 청산의 시작은은 친일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한편, 이날 이재명 시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운동’에 공감하고, 박한용 실장이 권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 후원에 범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은 ‘52억 안팎의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미 3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으나 나머지 20억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오는 11월말로 건립부지 잔금을 치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아울러 이재명 시장의 다음 강연 행선지는 경기도 가평이다. 더불어민주당 가평지역위원회가 주관하는 이재명 시장 초청 강연은 11월 1일 수요일 19시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있을 예정으로 이날 이재명 시장은 ‘시대정신과 시민주권’이란 주제로 ‘성남시 사례를 통해 보는 시민주권시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내용으로 경기도 동부지역 주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날 강연회에 참가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제한이 없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mail protected]

<2017-10-28> 한국인터넷언론조합

☞기사원문: 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월, 2017/10/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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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35

 

“찌는 듯이 무더운 남방에서는 아귀 같은 미국과 영국을 쳐물리기 위한 싸움이 매일같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더위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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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반회보 뒷면>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43년 8월 1일, 국민 총력조선연맹에서 발간한 제32호 애국반 회보 다. 애국반 회보는 1941년 9월 인가를 받아 매 월 1일에 발행되던 간행물로 내용은 전시상황 에서 후방은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특히 32호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에 발행한 것으로 주요 기사의 내용도 여름 철 후방의 전시준비태세에 관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더위에 지지 말고 몸 을 튼튼히 해서 근로보국에 힘씁시다’에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덥게 느껴지니 더위를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며, 전투 중 인 병정들을 생각하면 덥다는 생각조차도 하 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몸이 약하면 더 위에 지게 되니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 으로 ‘신사나 절, 공원을 청소’, ‘개천이나 하수 도, 농촌이나 공장에 근로봉사’, ‘5리쯤 되는 데 는 걸어 다닐 것’ 등을 소개한다. ‘전시살림은 이러케!’에서는 전쟁은 제일선의 병사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 일터, 거리 등 싸움터가 아닌 곳이 없으며 특히 부엌에서 밥 지어 먹는 것도 ‘전쟁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생 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싸움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활전선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 어나고 지각과 결근하지 말라고 선동한다. 저금은 나라의 힘이며 시중에 돈이 돌지 않게 되면 물 건값도 올라가지 않고 살림살이도 안정되며 결국 이는 집안이 부자가 되는 것이고 곧 나라가 부 자가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각 가정에 강제저축을 독려했다. 또한 옷감을 만들기 위해 쓰는 양잿물을 화약으로 만들면 대포알 630만 발, 총알 17억 7천 8백 만 알이나 되니 각 가정에서는 헌 옷을 고쳐 쓰고, 애국반원끼리 돌려가며 나눠 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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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반회보 앞면>

특히 ‘언제나 전장에 나간 병사와 갓튼 생각으로’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지 말고 ‘미국과 영국식 옷차림을 좋아하는 자는 우리의 원수’라고 지칭하며 전시 물자절약을 ‘전쟁승리’와 ‘애국’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날은 왓다 징병준비는 다되엿슴니까’에서는 곧 실시될 징병제에 대해 ‘반도 2천5백만 동포의 감격’으로 칭하며 징병대상자는 호적을 정리하고 국어(일본어)를 배우며,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17세 이상의 남자는 지망하라고 독려하며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다 읽으섯거든 뒷면에 있는 그림을 하나식 따로 오려서 눈에 잘 띄이는 곳에 부쳐 두십시요”라는 문구를 따라 회보의 뒷면을 보면 전시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들을 만화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으싸! 결전생활로’라는 구호 아래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음식을 남기지 말며, 무지각 무결근하고, 옷을 기워 입으며, 출장 갈 때는 각반을 준비해 비상시를 대비하고, 옷소매 폭을 줄여 옷감 낭비를 줄이고, 출정 군인 집이나 그 유가족의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애국반’은 전쟁동원을 선전·선동하고 민간인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목적으로 각종 관변기구와 친일단체를 흡수해 조직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최말단 기구로 주민 통제와 조선총독부의 정책 홍보, 물자와 노동력동원 등에 활용되었다. ‘애국반 회보’는 바로 이러한 조선총독부의 시책을 말단 주민조직까지 전달·관철시키는 수단이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월, 2017/09/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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