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취를 더듬어(1)

지역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취를 더듬어(1)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7:56

[회원마당]

임시정부 답사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취를 더듬어(1)

조선동 예원학교 국어교사, 청년백범 대표

S#1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맺어졌다. 이른바 ‘경술국치(庚戌國恥)’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대 전란을 겪은 이후, 조선왕조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일부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득세하면서, 일부 권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아니라 일부 권력층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정치가 이루어졌다. 백성들은 권문세가의 이익을 위해 맞아죽고, 굶어죽었다. 일부 백성들은 스스로 민적(民籍)을 파내고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되었다. 이미 나라는 썩어 들어갔다.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왕조는 금이 가고 있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과 양심을 팔아먹은 조선의 관료들이다. 세계사 어디에도 외부의 힘만으로 멸망한 국가는 없다. 이미 내부에서 썩어 들어가던 국가가 외부의 작은 충격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할 뿐이다. 한일합병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에 기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전연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황태자전하 및 그 후비와 후예로 하여금 각기의 지위에 적응하여 상당한 존칭 위엄 및 명예를 향유하게 하며, 또 이것을 유지함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 황족 및 그 후예에 대하여도 각기 상응의 명예 및 대우를 향유하게 하며, 또 이것을 유지함에 필요한 자금의 공급을 약속한다.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 대하여 영작(榮爵)을 수여하고, 또 은급을 줄 것이다.(후략)

 

한일합병조약문을 읽어 가면서, 나는 화가 났다. ‘조선 황제의 권리를 일본 황제에게 넘긴다’는 제1조로 시작된 조약문은 황족(皇族)의 위엄과 명예를 지켜달라고 한다. 훈공 있는 한국인, 다시 말해 ‘친일파’에게는 표창과 작위와 은급을 내려 달라고 한다. 조선이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특권만을 행사하고 어떠한 의무도 지지 않았던 지배층의 탓이다. 그 지배층들은 나라가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고 명예와 권력과 재산을 보장받고자 한다. 그를 위해 충분한 세비를 공급하라고 한다. 뻔뻔스럽다. 그
세비는 결국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백성들을 쥐어짜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회사를 운영한다 치자. 경영을 잘못하여 회사를 다른 회사에 넘겨야 한다. 회사를 넘기
기 위해 인수합병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나의 경영권과 재산을 보장받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나 때문에 고생한 직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달
라고, 직원들을 잘 대해 달라는 내용을 어떻게라도 인수합병서에 넣어야 한다. 나 때문에 고생
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한 나라를 경영한 자들이 우리 국민들을 어떻게 해 달라
는 말 한 마디 없다. 분통이 터진다. 한일합병이 이루어지자마자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우리 국토 대부분은 조선총독부의 것이 되었다. 당시 국민들 대부분의 직업은 농업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순식간에 ‘소작농’으로 전락한 것이다. 원래 소작농이었던 이들의 삶은 더더욱 황
폐화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소작세를 대폭 올리고 여러 가지 준조세 형태로 우리 국민들을 수탈
하였다. 민초들의 삶은 뿌리째 뽑혔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은 1917년 광무선언(대동단결선언)에서 드러난다. 한입합병조약은 대한제국 황제가 대한제국의 모든 권리를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는 것이다. 1917년 상하이에서 신규식·박은식·신채호·박용만·윤세복·조소앙 등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한일합병조약의 부당성을 말하면서, “대한제국의 황제가 우리나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이제 우리 민족의 것이 되었으며, 대한제국의 황제가 우리나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여서 우리나라에 대한 권리가 일본 황제에게 갈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경술국치를 통해서 망한 것은 황제의 나라인 ‘대한제(帝)국’일 뿐이며, 황제가 포기한 우리나라에 대한 권리는 대한의 국민들이 승계·계승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제(帝)국’은 사라졌지만, 그 뒤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대한민(民)국’이 계승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에서 황제국가가 시민국가로 전환되는 데 약 200여 년이 걸렸다. 우리는 이러한 민주적 전환을 10년도 걸리지 않아 이루어낸 것이다.
조선 시대에 모든 공적(公的) 문서의 주어는 모두 임금(왕) 또는 황제이다. 1917년 광무선언, 위대한 정치적 개안(開眼)은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첫 문장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국민’이 우리나라 국권의 주어(主語)로 자리잡았다. 이 정신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본이념이 되었다. 이후 우리 독립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S#2 ‘바리데기’들의 눈물, 한숨, 피

옛날 오구대왕이 살았다. 혼례를 일년 미루어야 아들을 낳고, 길하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한 탓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만 계속 낳다가 마침내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화가 난 오구대왕은 일곱째 바리공주를 내다버렸다.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길러졌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병이 들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저승의 생명수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 했다. 오구대왕 부부는 가장 사랑을 많이 주며 기른 첫째 공주를 불렀다. 저승에 가 생명수를 구해, 아비와 어미의 목숨을 구해 달라 했다. 첫째 공주는 내가 왜 그래야 하냐며 거절하였다. 다음으로 사랑을 많이 준 둘째 공주를 불렀다. 저승으로 가 생명수를 구해, 아비와 어미의 목숨을 구해달라 부탁했다. 둘째 공주 역시 내가 왜 그래야 하냐며 고개를 저었다. 여섯째 공주까지 마찬가지였다. 낳자마자 내다버린 바리데기가 기적처럼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구대왕은 체면불고(體面不顧) 바리데기를 불러다가 부탁했다. 그 말을 들은 바리데기가 말했다. 내가 은혜를 입은 바 없으나, 아비의 씨앗을 받아 어미의 배에 열 달 있었으니, 가겠노라 말한다. 바리데기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으로 갔다. 바리데기는 무슨 지옥, 무슨 지옥, 무슨 지
옥… 온갖 고생 끝에 저승의 생명수를 구해와 부모를 살려냈다.
나라가 망하자 뜻 있는 사람들이 상하이로 모여들었다. 그 후 1919년부터 1945년까지 그들이 벌인 투쟁은 세계사에서 그 비슷한 경우조차 찾아볼 수 없는 끈질기고 가열 찬 싸움이었다.
그들은 어두웠던 우리 역사의 등대였고, 우리들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다. 그들을 만나러 간다. 이회영 형제처럼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행한 경우도 있었지만,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다들 ‘바리데기’였다. 나라로부터 은혜 입은 적 없으나, 나라에 몸을 의탁해 살았으니, 기꺼이 지옥의 불길을 향해 간다.
그들의 눈물, 한숨, 피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해 짐을 싼다. 4박 5일의 일정이다. 상하이, 자싱, 하이옌, 항저우, 난징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때 상하이를 향해 집을 나선 윤봉길은 이런 글을 남겼다. 나라 잃은 원수를 갚기 위해 진시황을 죽이려 했던 ‘형가’라는 자객이 남긴 시의 첫 구절이다. “사나이 집을 나서매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으리!” 1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왜 이 길을 나서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가슴에 담고자 하는가?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답사 하루 전 밤이다.

S#3 죽자꾸나, 상해시대

두 시간 남짓 비행으로 상하이 국제공항에 내렸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인 상하이는 1월 날씨인데도 따뜻하다. 해발 100m가 채 안 된다는 상하이는 사방 어디에서도 산을 찾아볼 수없는 평원지대이다. 도시 한 가운데로 황포강이 상하이를 동서로 나누며 흐른다. 황포강 동쪽을 ‘포동(浦東)’ 황포강 서쪽을 ‘포서(浦西)’라고 부른다.
첫 여정은 상하이의 번화가인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차창 너머로 보는 중국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하늘 끝까지 뻗어 있는 것 같은 마천루의 열병식. 변화하고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웅변하는 듯하다.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사실 상하이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시정부 청사이다. 첫 번째 사용한 청사는 그 위치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한다. 두 번째 사용한 청사는 상하이 회해중로에 있다고 한다. 원래 건물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H&M 매장이 들어섰다.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는 청사를 열 번 정도 옮겼다. 우리가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임시정부의 흔적은 마지막 청사인 이곳 뿐이다.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인 1932년 4월까지 사용한 청사이다. 원래 한 칸만 청사로 사용했었는데, 중국 정부의 협조로 옆의 두 칸까지 모두 세 칸을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장사진(長蛇陣), 인산인해(人山人海)를 넘어서서 ‘야단법석(野壇法席)’에 가깝다. 청사는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너비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 서면 그만이다. 1층 전면으로 응접실이 있고, 1층 후면에는 중국식
부뚜막이 있는 작은 부엌이 있다. 임시정부 사람들이 밥을 짓고 밥을 먹던 곳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임시정부 중심인물들의 숙소가 있다. 좁고 긴 복도를 따라 나란히 네 개의 방이 있다. 원래 넓지 않은 집인데, 복도와 계단을 빼고 남은 공간을 넷으로 나누었으니, 방의 넓이는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좁다. 기념관 안에서는 촬영을 일절 금한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이곳까지 와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1층 좁은 중국식 부뚜막 주변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이곳에서 이봉창과 임시정부 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이봉창이 말했다.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못 죽이나?” “하급 관리 하나 죽이기도 어려운데, 천황을 죽이기가 쉽겠소?” 이봉창은 다시 말했다.
“내가 동경에서 천황의 행차를 본 적이 있소. 그때 내가 엎드려서 생각하기를 지금 만약 내 손에 폭탄만 있다면 쉽게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대화를 우연히 들은 백범은 이봉창과 함께 침체에 빠져 있던 우리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봉창은 적진의 심장부에 홀로 뛰어들어 큰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거사 직후 중국의 신문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었다.
“불행히도 적중하지 않았다.” 이봉창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백범과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 나이가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31년을 더 산다 해도 늙은 생활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 이제는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읍시다.
” 이봉창의 거사가 시작된 곳이 이곳이로구나. 한 사나이가 죽음을 앞두고도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떠오른다. 1931년 일이다. 이때 이봉창의 나이 서른하나였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봉길이 백범을 찾아온다.
“제가 날마다 채소 바구니를 등에 메고 홍구 쪽으로 다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상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께서 동경 사건과 같은 계획이 또 있을 줄 믿습니다. 저를 지도하여 주시면 죽
어도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이 만남은 두어 달 후 우리 독립운동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홍커우공원 의거를 이끌어낸다. 백범과 윤봉길은 서로 시계를 나누어 가지고, 후일 지하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영원히 헤어졌다. 1932년 일이다. 윤봉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먹먹한 가슴으로 임시정부 청사를 나와서 백범 가족이 살았던 영경방 10호를 찾아간다. 당시 이곳은 상하이에서 가난한 동네에 속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은 중국인들이 버린 배춧잎 중에 먹을 만한 것을 골라서 생활할 만큼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백범은 아내 최준례를 잃는다. 최준례는 둘째 아들 신을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하였다. 시어머니인 곽낙원이 자신의 세숫물까지 치우는 일을 하게 되자, 회복이 덜 된 몸으로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좁고 가파른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 늑막염이 폐병으로 번졌다.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최준례는 외국인 선교회에서 무료로 시술하는 홍커우 폐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병원이 있던 곳은 일본 조계지였다. 프랑스 조계지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일본 조계지에는 더더군다나 갈 수 없었던 백범은 아내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다. 시어머니 곽낙원이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최준례는 이미 영안실로 옮겨진 후였다. 어미를 잃은 둘째 아들 신은 그때 막 걸음마를 익힐 때였다. 우유를 먹었지만 잘때는 할머니의 빈 젖을 물고야 잠이 들었다. 차차 말을 배웠지만, ‘할머니’라는 말만 알았고, ‘엄
마, 어머니’라는 말을 몰랐다고 한다.
백범이 안악 양산학교 교사였던 시절, 애제자였던 나석주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백범은 나석주를 ‘지사이자 제자’라 칭하였다. 나석주는 조국과 겨레를 위해 무언가 큰일을 도모하고자 톈진으로 가 의열단에 가입할 것을 결심하고 스승인 백범을 찾아온다. 때마침 백범이 생일인 것을 안, 나석주는 양복저고리를 전당을 잡히고 고기와 채소를 사와, 백범의 생일을 기념하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만국공묘 내 신규식•박은식•노백린 선생 묘가 있던 자리

 

다음해인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는 국내로 잠입하여, 서울 남대문 근처에 있던, 경제침탈의 총본산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불행히 불발하였다. 뒤쫓아온 일경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일본 경찰 7인을 사살하고 자결하였다. 나석주가 순국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백범은 그 후부터 죽는 날까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지 않았고, 나석주는 영영 다시는 자신의 생일을 맞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곳은 상하이의 번화가로 변모하였다. 영경방 일대는 고풍스러운 건물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실내는 고급 식당 등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다.
임시정부 사람들이 상하이에 모여들기 전, 이곳 상하이에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분들이 계신다. 예관 신규식 선생, 백암 박은식 선생 같은 분들이다. 선견지명으로 우리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고, 평생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애쓰던 분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분들이 잠들어 계셨던 만국공묘로 간다. 이분들의 유해는 1993년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으로 무심한 후손들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들 잠들어 계셨던 곳에 준비해간 차와 술을 올리고 두 번 절했다. 뜨겁고 뭉클한 것이 울컥 올라왔다. 어찌 아는 이 하나 없는 이역만리 땅에 계셨어요? 우리가 참으로 죄인입니다!
눈물 마를 사이도 없이 홍커우공원으로 이동한다. 윤봉길 의사 의거지(義擧地)이다. 상하이를 점령한 기념식과 천황 생일인 천장절을 겸하여 기념하는 기념식장에 단신으로 들어가 일본군 시라카와 대장 등 군 수뇌부와 주중 일본 대사, 상하이 민단장 등을 폭사시켰다. 윤봉길이 들고 간 폭탄은 두 개였다. 하나는 도시락 모양, 또 하나는 물통 모양. 폭발력이 강한 도시락 모양 폭탄을 던지고, 물통 모양의 폭탄은 자결용이었다고 한다. 단상 주변에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이 있는 것을 본 윤봉길은 불필요한 희생을 줄
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폭발력이 약한 물통 모양의 폭탄을 던졌고, 단상 위에 있던 일본군 수뇌부 등을 제외한 민간인에게는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윤봉길의 의거로, 중국인 특히 국민당 정권은 한국인에 대해 재평가하게 된다.‘만보산 사건’ 등으로 나빠졌던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놀랄 만큼 좋아졌고, 우리 독립운동을 국민당정권이 돕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 미주, 하와이등지의 한국인들이 임시정부에 다시 성원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침체기를 걷던 우리 독립운동이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의거로 백범에게는 60만원(2002년 환산 200억원)의 현상금이 붙었고, 임시정부와 임시정부 사람들은 길고 긴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윤봉길기념관 안에 모셔진 윤봉길 의사 흉상

중국인들은 윤봉길의 호 ‘매헌(梅軒)’을 따서, 홍커우공원 안에 ‘매헌(梅軒)’이라는 윤봉길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잘 꾸며 놓았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침나절, 마당로 임시정부 청사에 장사진을 이루던 한국인들은 왜 이곳은 외면하는 것일까? 가이드에게 물으니, 홍커우공원 버스 주차장이 좁아서, 주차하기가 어렵고 홍커우공원과 거리가 멀어서 그렇단다. 나 이런! 세상 물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헌 주변에 때 이르게 핀 매화만이 우리들을 수줍게 반겨주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황포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상하이를 동서로 가르며 흐르는 황포강에서 바라보는 포동(浦東)과 포서(浦西)는, 한쪽은 중국이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겪을 때 지어진 유럽식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고 반대쪽에는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우리는 이렇게 성장했다는 걸 웅변하듯이 현대식 마천루들이 줄지어 서 있다. 포동은 포동대로 포서는 포서대로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한다.
이 강 옛 선착장 자리에서 의열단원은 일제 군부의 거물이며 해외 영토확장 계획의 지도적 이론가를 자처하는 침략주의자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 하였다.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 세 사나이가 나섰다. 3월 28일, 상해 주재 일본총영사를 필두로 수십 명의 고관과 육·해군 장병 및 거류민을 포함한 다수의 일본인들, 그리고 각국 외교사절단이 영접차 도열해 있는 가운데 다나카를 태운 여객선이 오후 3시 반경에 황포탄 세관 마두(碼頭)의 잔교(棧橋) 앞에 도착했다. 다나카가 배에서 내려 몇 걸음 내디뎠을 때, ‘권총 사격의 귀재’ 오성륜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잰걸음으로 다나카를 추월하여 나온 미국여인이 그 탄환에 맞아 쓰러졌다.1

혼비백산한 다나카가 대기 중인 자동차를 향해 줄행랑을 놓았다. 도망가는 다나카를 향해 김익상이 권총을 겨누었다. 두 발을 쏘았는데 빗맞아 모자만 꿰뚫었다. 김익상은 연이어 다나카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긴박한 상황에서 너무 서두르다 보니, 안전핀을 먼저 뽑아야 하는 걸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 사이에 다나카는 황급히 차에 올라타 출발하였다. 우왕좌왕하는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 이종암이 힘껏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자동차 앞바퀴에 적중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로 터지질 않았고, 옆에서 있던 영국 군인이 강물 속으로 차넣어 버렸다. 이리하여 의열단원 3인의 암살 저격은 불행히도 실패하고 말았다. 의열단원들은 거사 지령을 받으면 탄두를 갈아서 뭉툭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총알이 관통하여 다른 사람까지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름다운 상하이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조국의 독립과 겨레의 자주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분들을 떠올린다. 묵직한 아픔과 슬픔이 화려한 조명과 눈물처럼 뒤섞인다.


1 오성륜이 쏜 총탄에 맞아 절명한 젊은 부인은 신혼여행 중인 미국인이었는데, 그 남편 되는 영국인 스나이더가 영사관 구치소로 면회를 와서 “조선 청년들의 의기에 배운 것이 많다”며 오성륜을 위로하고 갔다.

 

백범은 상하이 시절을 회고하면서 ‘죽자꾸나 상해시대’라고 압축하여 적었다. 큰 뜻을 품고 저마다 모여들었지만, 자금줄은 끊기고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중국인들이 버린 배춧잎 더미를 뒤져 먹을 만한 걸 골라야 하는 간난신고가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배신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밀정이 횡행했다. 그 시절 백범은 “살려고 해서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라고 적었다. ‘죽자꾸나 상해 시대’를 주린 배를 움켜주고 누항에서 바릿밥을 마다하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한숨을 반찬 삼아, 눈물을 국 삼아 찌개 삼아 견뎌낸 분들 덕분에 우리는 존재한다. 그분들을 잊지 않고자 한다.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 발바닥에 새기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오늘 연합 뉴스에서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백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를 죽인 몽둥이 “정의봉”을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전시하도록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어렸을 때에 선친께서 읽어주시던 백범 일지를 기억합니다.

또한 고인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고,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신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두희는 분명히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판결문에도 진범으로 되어 있고 수사 기록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법의 심판이 충분했냐와는 별개로 그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와 대한민국에서 모든 심판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테러가 성행하고, 법을 무시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이 추앙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까요?

대한민국에는 준법 정신과 법과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두희를 때려죽인 사람은 살인범이며, 우리 사회의 법치를 어지럽힌 범죄자입니다.

이 결정을 민주 시민의 입장에서 재고 부탁 드립니다.

 

월, 2018/10/22- 21:12
37
0

讚朴琦緖先生處斷金九先生弑害犯安斗熙

 

誰何云國法(수하운국법)

處斷盡歡呼(처단진환호)

正義眞如此(정의진여차)

衆言大丈夫(중언대장부)

 

김구 선생 弑害犯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누가 나라의 법을 운운하는가

안두희 처단에 다 환호했었네

正義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時調로 改譯>

 

그 뉘 國法 말하는가 모두 환호했었네

올바른 도리란 것 참으로 이와 같느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弑害: 부모나 임금을 죽임. 시륙(弑戮).  시역(弑逆) *誰何: 누구 *國法: 나라의

법률이나  법규  *處斷: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衆言: 많은 사람의 말.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4
14
0

問獨裁者金正恩

 

腹中何物在(복중하물재)

三代樂膏粱(삼대락고량)

再考人民苦(재고인민고)

其哀斷我腸(기애단아장)

 

독재자 김정은에게 묻는다

 

腹中에는 무슨 물건이 들어 있나

삼 代에 걸쳐 즐기는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롬 다시 생각하니

그 슬픔일랑 나의 창자를 끊는다.

 

<時調로 改譯>

 

배 속에 뭐가 있나 三代가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로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슬픔 나의 창자를 가닥가닥 끊는다.

 

*腹中: 배의 *何物: 무슨 물건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세 대. 三世 *膏粱:

고량진미(膏粱珍味). 기름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난 음식 *再考:어떤

일이나 문제 따위에 대해 다시 생각함 *斷腸: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7
28
0

오는 30일 신일철주금 손해배상 청구 최종 판결
“이번 판결이 외교적 분쟁 촉발 주장 적절치 않아”
“일본 정부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 할 일만”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에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인 김정주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온유 기자 = 시민사회단체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재판에 대한 공정 판결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을 앞두고 진행됐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로 늦춰진 판결이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후 빠르게 진행됐다”면서 “다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대법관들이 13명 중 8명이나 있는 조건에서 국가가 다시 피해자들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는 “ICJ의 경우 양국 정부가 모두 동의해야 이뤄질 수 있어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이어 “일본 측이 이번 판결이 마치 외교적 분쟁을 촉발하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법원도 이것이 가지는 외교적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며 “대법원은 일본 정부 입장이나 외교부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가 해야할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상복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기호지부지부장과 이규매 미쓰비스 중공업소송 원고 유족, 김정주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등도 참여했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일본 강제 동원 사건들은 외교적 분쟁이 아닌 정당한 사죄와 보상의 문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모든 것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에는 신일본주금 외에도 미쓰비시 중공업 동원 피폭 피해자 소송, 미쓰비시 중공업 여자근로정신대 동원피해자 소송 등 3건이 계류돼있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은 피해자 4명이 구 일본제철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제공한다고 회유해 일본에 갔지만 1941년부터 1943년 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고 2003년 최고 재판소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2005년 서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기각됐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며 앞선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결국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원고 일부가 승소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불복하면서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돼 오는 30일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다. 소송이 긴 시간 진행되며 피해자 4명 중 3명이 숨져 현재는 1명의 원고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늦추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mail protected]

<2018-10-24> 뉴시스

☞기사원문: 5년 끈 日강제동원 손해배상…”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관련기사

☞민중의소리: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최종판결 앞두고…“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쿠키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정의롭게 판결하라” 촉구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을 향해 강제동원피해자 김정주 할머니(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의 발언 영상.

수, 2018/10/24- 22:17
38
0

白凡逸志讀後

 

愛國恒他事(애국항타사)

平生爲一身(평생위일신)

冊前無限愧(책전무한괴)

自責久愚民(자책구우민)

 

白凡逸志를 읽고 나서

 

나라 사랑 언제나 남의 일이었으니

평생토록 내 한 몸만을 위하였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

오래 못난 백성이었던 걸 자책한다.

 

<時調로 改譯>

 

愛國 남의 일인 듯 평생 한 몸 위했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져

긴 세월 愚民이었음을 스스로 꾸짖는다.

 

*愛國: 자기 나라를 사랑함 *逸志: 훌륭하고 높은 지조(志操). 세속을 벗어난 뜻

*他事: 다른 일. 또는 남의 *一身: 자기 *自責: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 *愚民: 우맹(愚萌). 어리석은 백성.

 

<2018.10.26, 이우식 지음>

금, 2018/10/26- 07:54
23
0

dsfdsfdfs

일, 2018/10/28- 07:24
32
0

컴퓨터만 켜놓으면 하루 20만원 수입!! 늦기 전에 지금 선점하세요!

 

 

블러드 코인이라고 지금 엄청 핫합니다

 

비트코인도 처음에 1원도 안하다가 지금 7백만원 넘는거 아시죠?

 

황금버스 떠나고 또 후회하지 마시고 블러드 지금 잡으십시오

 

그리고 코인 채굴은 무료입니다!

 

 

블러드 채굴 링크 >>> https://t.co/xvtm2Sz1SU

 

여기에서 가입하시고 마이닝 프로그램 다운 받고 바로 채굴 시작하시면 됩니다

 

추천에 FIRELAND 적으셔야 평생 채굴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똥컴 노트북 으로 돌리고 있는데도 24시간에 오천개 정도 채굴하고 있습니다

 

현금 필요하시면 그때 그때 코인 처분하셔도 되고 저같은 경우는 코인 가격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모으는 중입니다

 

 

중요한게 추천당 영구적으로 평생 채굴 보너스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밑에 추천 늘리시는게 좋습니다

 

이 추천 보너스가 아래 2단계까지 무제한으로 가능한데 딱 이번달 10월 말까지만 받고 추천 제도를 중지한다고 합니다

 

(회원 가입을 하시면 바로 본인 추천 링크를 줍니다)

 

 

추천 2명만 모으시면 현재 매일 20만원 이상씩 채굴 가능합니다

 

밑에 몇십명 추천 가지치고 벌써 블러드 코인 몇백만개 모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짜 채굴에 추천 보너스까지 개꿀 아니겠습니다. 바로 고 인정

 

 

지금 당장 채굴 시작하시고 추천 꿀 빠시기 바랍니다.

 

일, 2018/10/28- 07:25
38
0

누가 신성한 ‘한반도의 첫수도’에 이런 똥덩이를 전시해 놨는가?
고창 국화축제현장에 갔다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을 목도하였다. 국화축제 한 복판에 친일부역자 서정주의 친일대표시 국화옆에서가  버젓하게 서 있지 않은가.
매난국죽,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충성심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군자 중에 국화의 고혹한 향기 맡으러 갔다가 매국과 친일의 쓰레기가 쓴 시 제목을 버젓이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차마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 국화축제장에 치욕과 굴종, 그리고 노예의 정신을 은근히 주장하는
말당 서정주의 친일을 종용했던 시, 국화옆에서라는 이 더러운 문자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윽하고 깊은 향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악취가 진동하였다.  고창의 어떤 지식인이 의향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친일 부역자를 추종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고창의 이러한 전통을 더럽히고 있다.
그 똥덩어리가 국화축제장을  온통 악취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었다.

지방재정을 지원해서 열리는 지역의 축제 현장에 이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매국의 식민주의적인 전시행위에 국민의 혈세를 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일본을 추종하는 세력이 이 땅에 아직도 버젓이 활보하며, 활동하고 다니는가?
하루빨리 국민의 정신을 더럽히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 할 일이다.

 

월, 2018/10/29- 06:30
22
0

未堂徐廷柱之松井伍長頌歌

 

附逆焉忘失(부역언망실)

看詩正可憎(간시정가증)

何人云泰斗(하인운태두)

不覺似伊藤(불각사이등)

 

미당 서정주의 ‘伍長 마쓰이 頌歌’

 

국가에 반역한 사실 어찌 잊어버리랴

詩를 보아 하니 참으로 가증스럽도다

그 어떤 이 泰斗 어쩌구저쩌구하는고

저 이등박문과 같음 깨닫지 못했도다.

 

<時調로 改譯>

 

附逆함 어찌 잊으랴 정말 가증스럽다

어떤 사람이 있어 泰斗를 운운하는고

伊藤과 같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도다.

 

<이우식 지음>

월, 2018/10/29- 09:20
9
0

[기고] ‘촛불’ 2주년에 돌아보는 역사전쟁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이것이 나라냐?”고 분노하며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벌써 2년이 됐다. 그간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촛불민심이 요구한 ‘적폐청산’과 ‘국가재조’라는 혁명적 과제는 현실정치와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잠시 자숙하는 시늉을 하던 수구세력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촛불항쟁의 정신을 외면하고 거침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분단 70년이 넘어 찾아온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절호의 기회를 한갓 정치적 득실을 따져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숱한 개혁 입법도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두 차례 보수정권에서 고질화한 관료사회의 퇴행도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이제 일각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강변하며 현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통설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지부진한 현 상황을 남의 탓만으로 돌리며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근원을 찾아 효과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촛불민심의 선택과 위임을 받아 출범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권위를 지니는 동시에, 그 요구에 응답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함께 외쳤던 주장이 무엇이었던가를 곱씹어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사실 거창한 명제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하야–퇴진–탄핵-구속 촉구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지만, 이를 관통하는 구호는 ‘기본권의 보장’에 다름 아니었다. 각계의 각양각색의 슬로건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자연스레 수렴되었다. 즉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준수하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 2015.10.24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국정교과서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많은 이들은 자유 평등 민주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헌법정신이 서구사회로부터 이식된 개념으로 이해한다. 법제 과정이나 문언으로만 볼 때는 얼핏 그런 해석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근현대사 전반을 조망해 보면 우리 민족이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보편적 가치가 우리 스스로 수난 속에 스스로 체득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반봉건반외세운동, 3·1항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반제국주의와 민주공화운동, 사월혁명 5·18민주항쟁 6·10시민항쟁으로 이어지는 반독재민주화운동 등 면면히 이어지는 저항정신의 요체가 바로 헌법정신으로 현현되었던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부할 만한 전통으로 긍지를 가지기에 모자람이 없다.

촛불항쟁의 저변에는 이러한 역사의식의 계승이 작동하고 있었다. 항쟁의 직접적 계기는 물론 ‘최순실게이트’였다. 그러나 이는 도화선에 지나지 않을 뿐 그 근본 원인은 구조적인 데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기간 가장 두드러졌던 폐해는 지배층의 무분별한 사익집단화 현상이었다.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부터 재벌 관료 정치인 언론인 학자, 심지어 사법부조차도 철저하게 결탁하여 특권을 향유하며 불법과 부정을 서슴지 않았다. 갑질이 난무하고 부패가 만연했으며, 비판세력에 대한 사찰 음해 탄압이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재정권의 완벽한 부활이자 교활하고 세련된 파시즘의 대두였다.

다른 한편 역사와 교육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이를 전유하겠다는 망상은 왕조시대에도 지탄받았을 대표적인 폐정의 하나였다.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식세계마저 지배하려 했다. 역사와 교육을 도구삼아 미래세대까지 세뇌하려 기도한 것이다. 이명박은 과거사위원회 폐지를 첫 번째 국정과제로 공언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공공연하게 뉴라이트세력을 지원해 식민지미화론 이승만국부론 박정희신격화를 전파시켜나갔다. 여기에 다수의 언론과 학자들이 부역자 역할을 자임했다.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같은 도발은 ‘역사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역사정의실천연대라는 연대기구를 조직하고 역사변조에 정면으로 맞서나갔다. 시민사회와 학계가 힘을 합쳐 뉴라이트의 교학사 고교한국사를 원천 봉쇄하자, 박근혜는 한 술 더 떠 아예 국정 한국사교과서 편찬이라는 강수로 맞불을 놓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다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를 구성해 전 국민을 상대로 전국적인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박근혜의 오만과 무지는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었다.

결과는 놀랄 정도였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교육부와 교육청 수구언론과 극우단체를 총동원하고 전력을 기울여 역공작까지 벌였음에도,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며, 결국 폐기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박근혜가 국가기구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인 역사쿠데타가 실패로 막을 내린 것이다.

시민사회와 학계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시대착오적인 한국사 국정화를 강행한 박근혜의 빗나간 효도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그를 권좌에서 쫓겨나게 하는 한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구국의 지도자 박정희’라는 우상화의 허구를 드러내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했다.

친일세력 대 항일세력, 독재세력 대 민주세력, 냉전세력 대 평화세력. 어떤 이들은 이분법적인 역사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뿌리박은 수구세력은 결코 자발적으로 특권을 양보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작업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과 관용을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엄혹한 것이다.

내년은 3·1독립운동 100주년이다. 3·1독립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수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우리 역사상 초유의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려 백여 년 간에 걸쳐 다져온 민주공화주의가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이제 반석 위에 올라설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익집단의 재생산 구조를 타파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 그 지름길은 역사인식의 정립과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생활 속의 실천이다. 그래서 단언컨대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8-10-29> 프레시안

☞기사원문: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월, 2018/10/29- 18:37
23
0
1029-13

▲ 【천안】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28일 더불어민주당 이규희(왼쪽 첫번째) 의원과 준비위원회 관계자 등이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8.10.29. (사진=뉴시스 독자 제공) [email protected]

【천안·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천안시의 발굴 동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오전 매장지로 추정되는 직산 관아 일원에서 위령제를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 앞서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규희 국회의원(천안갑)과 육종영 천안시의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정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며 유해 발굴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길 준비위원회장은 29일 “11월 초 아산지역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충북대 발굴단의 현장답사 진행에 이어 천안시의회에 가칭 ‘천안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준비위원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천안시 직산읍 인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여 구에 달하는 매장 추정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지역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신청된 사건은 없고, 부역 혐의 희생 사건으로 신청된 사건 7건이 있다.

이 중 당시 직산면사무소(직산관아)와 관련해 지서장의 지시로 “200여 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금광구덩이에 죽이고 묻고 했다는 참고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 준비위의 설명이다.

▲ 【천안=뉴시스】이종익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가 23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현황 전수조사와 발굴조사 시행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3. [email protected]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제정될 경우 보수와 진보 측의 찬반 의견 대립으로 난항도 우려된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금정굴 사건과 관련해 전국에서 처음 조례안이 만들어져 2011년부터 6차례나 시의회에서 발의됐지만, 보수 단체와 정당 반발로 맞서다가 7년이 지난 올 9월 제정됐다.

육종영 시의원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해 평화와 인권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관련자료를 정리해 조례안 초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면 조례 절차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어가겠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단체에서 반대 여론이 감지되고 있어 민감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천안과 인접한 아산지역에서는 지난 3월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어린이 80여 구를 포함해 208명의 유해가 수습됐다.

[email protected]

<2018-10-29> 뉴시스

☞기사원문: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월, 2018/10/29- 18:46
24
0

[다운로드] [판결문]

남겨진 시간이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피해자에게 보상하라!

오늘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당한 전 징용공 피해자가 제소한 사건에서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신일철주금이 상고한 재판의 최종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 재판은 식민지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행한 강제노동(노예노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또한 전 징용공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법적 구제로 도모할 것인가, 즉 식민지지배로 침해된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할 것인가를 묻는 재판이었습니다. 이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 등의 양자협약에 의해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되는가 하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개인의 권리 문제를 묻는 중요한 재판이었습니다.

1030-1우리는 이번 판결을 전면적으로 환영합니다. 신일철주금은 즉각 판결에 따라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제소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구제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동안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판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강제노동 문제의 전면적 해결을 위한 대책을 실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러나 너무 뒤늦은 판결입니다. 재판의 원고 가운데 여운택, 신천수 두 사람은 1997년에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뒤 사법에 의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의 판결을 받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원고인 여운택 씨는 “일본제철에서 일한 경험은 그것이 힘든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 내 삶의 일부이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시기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대가를 꼭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일본제철은 법이라든가 외교협정 같은 정치적 결정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십시요”라며 회사가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통한의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4명의 원고 가운데 3명이 이미 돌아가셨고 후속 재판의 원고도 모두 고령의 피해자들입니다.

피해자에게 더 이상 남겨진 시간은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판결에 따라 즉각 피해자에게 보상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2018년 10월 30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화, 2018/10/30- 19:48
25
0

[다운로드] [보도자료]

대법원 공보관실(02-3480-1451)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2018. 10. 30.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가 원고들(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시켰음(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 핵심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임.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이미 2012. 5. 24.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1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2가 있고,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이 있으며,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음.

1. 사안의 내용

▣ 원고들은 1941년~1943년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임

▣ 2005. 1.경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었고 원고들은 2005. 2.경 일본 기업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함

▣ 제1, 2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하였으나,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환송판결)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음

▣ 환송후 제2심은 환송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고, 위자료 금액을 1억 원씩으로 정하였음

▣ 피고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음


2. 대법원의 판단

가. 사건의 주요 쟁점

▣ ① 원고1, 2에 대한 일본 법원 판결의 효력과 기판력 (상고이유 1점)
원고1, 2는 이 사건 소 제기에 앞서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확정되었음
이러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외국법원 판결의 승인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②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상고이유 2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이 운영하던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하였는데,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가 피고(신일철주금)에게 승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③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핵심 쟁점) (상고이유 3점)

▣ ④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할 수 있는지 (상고이유 4점)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다투었음

▣ 우선 대법원은 위 ①, ②, ④ 쟁점에 관해서, 환송판결 및 환송 후 제2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위 ①쟁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으며(위 ②쟁점),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위 ④쟁점)고 판단하였음

▣ 위 ③쟁점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갈렸음
청구권협정은 전문(前文)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라고 정하였음. 제1조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하였고, 이어서 제2조 1.에서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정하였음. 제2조 3.에서는 “…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정하였음.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서는 “…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라고 하였음

이러한 청구권협정 등의 해석상, 1) 원고들이 주장하는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2) 포함되었다면 그에 따른 효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즉 권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만이 소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체법상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인지 등이 이 사건의 쟁점임

나. 다수의견(7명) :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음

▣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임(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님) ☞ 이는 아래와 같은 환송 후 제2심판결의 사실인정에 기초한 것임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음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음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음

▣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음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음
▪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개최된 제1차 한일회담에서 이른바 ‘8개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음. 위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음.
▪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간 청구권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
▪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음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음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도,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책임이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것임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환송 후 제2심에서 피고가 협상 과정에 관한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였으나, 그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음
▪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한 사실, 1961. 12.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님
▪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에는 일본측의 반발로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았음
▪ 위와 같이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음.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 것이라고는 보기는 어려움

다. 별개의견1 (1명) : 이미 환송판결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환송판결의 기속력(상급법원의 판단에 하급법원이 따라야 하는 것)은 환송 후 제2심뿐만 아니라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임

▣ 환송 후 제2심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 등에 의하여 환송판결의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면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렇게 볼 만한 사정이 없음

▣ 재상고심이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속력이 미치고, ‘환송판결에 명백한 법리오해가 있어 반드시 이를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아니한 채 종전 대법원판결이 취한 견해와 상반된 입장을 취한 때’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함

이 사건의 경우 환송판결에 위와 같은 예외적인 사정이 없으므로, 환송판결과 같은 결론을 취할 수밖에 없음

라. 별개의견2 (3명)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함.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함.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

청구권협정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8개 항목’ 제5항에서 규정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포함됨이 분명한데, ‘기타 청구권’에는 원고들 주장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함
대한민국은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군인․군속을 포함한 피징용자 전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음. 1961. 12.경에도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보상금을 3억 6,400만 달러로 산정하고 이를 포함하여 8개 항목에 대한 총 보상금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
▪ 1961. 5.경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이 위 요구액은 국가로서 청구하는 것이고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구체적인 징용․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여 협상에 난항을 겪었음
▪ 이에 일본은 증명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대한민국은 순변제 및 무상조 등 2개 명목으로 금원을 수령하되 구체적인 금액은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을 다시 제안하였음
▪ 이후 구체적인 조정 과정을 거쳐 1965. 6. 22.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제1조에서는 경제협력자금의 지원에 관하여 정하고 제2조에서는 권리관계의 해결에 관하여 정하였음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대한민국이 각종 보상입법을 통해 보상조치를 취한 것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됨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임

▣ 위와 같이 포함은 되지만,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임

‘외교적 보호권’이란‘자국민이 외국에서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은 경우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 등을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서 나아가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음
 ▪ 국가와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근대법의 원리는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권리의 ‘포기’는 그 권리자의 의사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원칙에 의할 때,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대신 포기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더욱 엄격하게 보아야
 ▪ 청구권협정에서는 ‘포기(waive)’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음

당시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음이 분명함

▪ 일본은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하였음. 이러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음

마. 반대의견 (2명) :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됨.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됨 ⇒ 파기환송 의견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별개의견2와 같음

▣ 하지만 별개의견2처럼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되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함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다고 보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보기 어려움.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주체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그의 국적국이며 개인의 청구권 유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음
▪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 규정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문언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체약국 사이에서는 물론 그 국민들 사이에서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부합함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함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이나 체결 이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임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고, 청구권자금의 분배는 전적으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였음
국제법상 전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하여 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국가간 조약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일괄처리협정’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임
대한민국은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함. 실제 피해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사실은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음 


청구권협정 제2조의 문언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됨
– 청구권협정에서는 명시적인 포기(waive) 표현이 없음. 개인청구권이 실체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보기 어려움. 제2조 3.에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음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함. 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함.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음

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2명) :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함

▣ 청구권협정의 문맥, 청구권협정의 목적 등에 비추어 청구권협정의 문언에 나타난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할 경우,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려움

▣ 교섭 기록과 체결 시의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이 달라지지 않음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과 그 포기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은데도 명시적 근거 없이 이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음


3. 판결의 의의

▣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2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환송판결을 선고하였음

▣ 이후 위 판결에 대하여 학계 등에서 그 찬반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있었고,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포함되었다고 볼 경우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되는 것인지 등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음

▣ 본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피고의 다른 상고이유 주장도 배척함으로써,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최종적으로 확정시켰음

화, 2018/10/30- 14:38
14
0
온카지노 www.bby67.com OnCasino

온카지노 www.88und.com On카지노 바카라 제공영상 : 타이산(T), 올벳(AB), W88(W), 마이크로게이밍(M), 아시아게이밍(AG)
슬롯 제공영상 : 플레이텍
라이센스 : 각 영상의 라이센스
온라인 : 2009년 7월(구글검색 기준)
지원 : 24시간 실시간 1대1 라이브 채팅(자체) / 고객센터 070-7417-9513
최소 입금액 : 1만원 / 최소 출금액 : 1만원
바카라스토리 BIY 시스템 : [4회통과] BIY 시스템이란
바카라스토리 보증관리시스템 : [등록전]
온카지노 접속주소 : http://EBS77.com

온카지노 www.77cka.com On카지노주소

온카지노 www.88zkt.com 100만이벤트

온카지노 www.znn36.com 온카지노 신규회원일 경우 100만원 달성 이벤트를 노려볼만 한다. 3만원 입금시 바로 1만원을 지급한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해서 10만원을 달성하면 3만원 추가 지급, 50만원 달성시 5만원 추가 지급, 100만원 달성시 10만원을 추가로 받게되는 재밌는 이벤트이다. 곧, 3만원 입금후 100만원을 달성하면 총 19만원의 보너스 머니도 받게된다.

온카지노 www.duk22.com 온카지노 클릭

온카지노 www.99pnq.com 지금시작

온카지노 www.ebs66.com 메인서버


온카지노 www.ebs22.com 바로가기신규회원 100만원 달성 이벤트 : 3만원 입금 시 바로 1만원 지급 / 10만원달성시 +3만원 등
첫충 보너스 : 5% / 롤링 3배 / 최대 15만원
매충 보너스 : 3% / 롤링 3배 / 최대 15만원
루징 이벤트(주중) : 월~금 루징금액의 5% / 누적 루징 20만원 이상자 / 화요일 오후 4시 일괄 지급
루징 이벤트(주말) : 토,일 루징금액의 5% / 누적 루징 20만원 이상자 / 월요일 오후 4시 일괄 지급

온카지노주소 ▶▷▶ www.99pnq.com

온카지노주소 ▶▷▶ www.88pnq.com

온카지노주소 ▶▷▶ www.duk22.com

온카지노주소 ▶▷▶ www.88und.com

온카지노주소 ▶▷▶ www.77cka.com

온카지노주소 ▶▷▶ www.88zkt.com


온카지노주소 ▶▷▶ www.znn36.com

온카지노주소 ▶▷▶ www.99pnq.com

온카지노주소 ▶▷▶ www.bby67.com

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온카지노 온카지노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코드 CASS

http://www.xn--o80b950b2scurg.com/ 카지노온 온카지노 

http://www.xn--o80b950b2scurg.com/&nbsp;카지노온 온카지노 

수, 2018/10/31- 11:18
2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