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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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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5:53

[회원인터뷰]

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어린이문화 발전과 우리헌법읽기운동에 힘쓰고 있는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인터뷰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문 :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답 : 제가 위하고 간, 두 군데에 암이 발병해서 2011년 명예퇴직을 했어요. 치료를 3년 정도 했죠. 처음에는 수술을 못할 정도였어요. 특히 간이 안 좋았는데 암세포가 여러 군데 분포해 있었어요. 다행히 표적 치료제가 있어서 그걸 먹었더니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저한테 딱 맞는 약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잘 맞는 경우는 3~4% 정도라고 하더군요. 의사도 처음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술하고 완치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거죠.

문 :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답 : 어린이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린이 관련 교육, 문화, 예술 단체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협력하는 어린이문화연대라는 모임입니다. 퇴직 후 약 10년째 대표를 맡고 있어요. 또 3년 전부터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이라는 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온국민이 헌법을 읽고 헌법대로 운영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서 한 권에 5500원씩 후원금을 받아서 배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 뜻대로 1919년 3·1혁명을 대한민국 독립선언기념일로 하자는 뜻을 알리기 위해 3년 째 대한민국 생일잔치를 하고, <독립선언서 말꽃 모음>과 <대한민국 생일은 언제일까요?> 라는 책도 냈습니다.

문 : 어린이문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답 : 제가 처음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1977년 당시 교육현실이 너무나 열악했어요. 그때 책을 통해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은 당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셨는데, 어린이문학 평론과 교육 현장에 대한 수필을 쓰셨어요.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선생님을 찾아갔고,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어린이문학 평론을 읽으면서 어린이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문 :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나요?
답 : 선생님이 쓴 책 중에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란 책이 있는데요. 그 책에 우리나라 어린이문학가들이 갖고 있는 열등의식과 극복 문제에 대해 쓰신 글이 있어요. 문학은 우리 겨레 아이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장 중요한 예술인데 그 창작자인 어린이문학가들이 이중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셨어요. 하나는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고 또 하나는 성인문학에 대한 열등의식이라는 겁니다. 이런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작가들이 쓴 작품은 어린이들한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런 이중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셨지요. 1970년대 상황이 실제로 그랬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1920년대 어린이문학운동에 앞장섰던 방정환, 현덕, 마해송 같은 분들이 갖고 있던 문학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또 당시 아동문학가들이 모작이나 표절에서 벗어나 가장 우수한 예술성을 갖춘 아동문학을 창조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점에서 권정생 작가를 높게 보셨죠. 그런 문학이 나와야 어린이 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어요.

이오덕선생님

문 : 이오덕 선생님이 우리 어린이문학에 끼친 영향은?
답 : 1970년대만 해도 동화는 아이들만 본다. 유치한 동화, 유치한 동시, 유치한 연극, 유치한 영화. 그걸 창작하는 유치하고 질 낮은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었어요. 그러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그런 잘못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동화, 동시, 동요, 동극은 유치한 예술이 아니라 가장 소중하고 귀하고 높은 예술이고 그런 예술을 창작하는 어린이문학인 또한 그렇게 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어린이문학이 소중하게 대접받게 되었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끼친 영향이 크지요.

문 : 어린이문학이 왜 천대 받았나요?
답 :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은 어린이청소년을 많이 탄압했어요.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에 어린이 청소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걸 잘 아니까요. 당시 김산호 화백이 그린 <라이파이>란 연작 만화책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게 이승만과 같은 독재정치에서 생겨나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가 승리하는 내용이었거든요.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동화들이 인기를 끌었고요. 그래서 박정희 독재정부에서는 초중등 학생들이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했고, 만화를 마약, 폭력, 부패와 함께 4대 악 가운데 하나로 몰아가면서 탄압했어요. 어린이문학 단체도 없애고 동화나 동시도 반공문학으로 쓰게 했죠. 유신 이후에는 학생자치회도 다 없애고 학도호국단으로 만들어서 민주주의 싹을 잘라버렸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문학과 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문 : 어린이문학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답 :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어린이문학은 반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하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 겨레 역사와 현실을 참되게 담아내는 문학, 통일과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동화와 동시를 써서 읽혀야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가 살아난다고 하셨어요. 어린이문학을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로 써야 민주화가 된다고 했어요. 이걸 말의 민주화라고 하는데요. 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말이 민주화가 되지 않고는 정치나 경제도 민주화가 될 수 없다고 하셨지요. 어린이문학이 그것을 담아내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가장 소중한 그릇이 되는 겁니다. 이런 민주, 민족, 인간화 문학에 대한 생각을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했어요. 그걸 한 마디로 참교육이라고 했어요. 1980년대 우리교육현장을 크게 일으켜 준 참교육이라는 말도 이오덕 선생님이 만드신 거지요. 이런 생각이 젊은 교사와 권정생을 비롯한 어린이문학가들에게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문 :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영향은 어땠나요?
답 : 이오덕 선생님은 일제 때 방정환 선생님 활동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어요. 방정환 선생님은 민족적 열등의식을 벗어던지고 민족의 역사와 삶을 가꾸는 책을 쓰셨다는 거예요. <사랑의 선물> <77단의 비밀> <만년 셔츠> 같은 작품이지요. 〈어린이〉라는 잡지도 내셨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 영인본을 500부 한정본으로 찍으려고 선주문을 받는다며 권유했어요. 당시 제 월급이 7만원 정도였는데 10만원을 내고 그걸 사서 봤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어려운 항일 투쟁기에 아이들을 위해 다달이 그렇게 좋은 잡지를 냈다는 것에 놀랐지요. 그 잡지가 남북한 전역은 물론 일본과 흑룡강과 상해까지 나갔다고 해요. 한때 10만부가 나갈 만큼 인기가 있는 잡지였다고 해요.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을 비롯해 당시 수많은 아이들이 그런 잡지를 보면서 자란 거지요. 어린이문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1980년에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인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단체로 만들게 된 겁니다. 어린이도서 연구회는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 어린이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린이문화연대도 어린이도서연구회를 기반으로 만든 모임이고요. 방정환 선생님은 우리 겨레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문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그 영향은 점점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방정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문 : 어린이날의 내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답 : 방정환 선생님이 계시던 천도교에서 1922년 3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님은 다음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고 그 단체 주최로 1923년 5월 1일에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다시 합니다. 어린이운동을 천도교에서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때 어린이들이 종로를 행진하면서 뿌린 전단이 ‘어린이해방선언’이에요. 어린이를 윤리적 억압과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유인물입니다. 그걸 20만 장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어요. 당시까지 세계 어린이운동사에서 이런 표현을 쓴 선언문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억압에서 해방되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문이 나온 거예요. 세계 최초가 아닌가 생각해요. 나중에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꿉니다.

문 : 학교현장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가 어떤 것들인가요?
답 : 성내운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게 있는데요. 우리가 교육을 정말 잘했던 때가 해방되고부터  6·25 때라는 거예요. 그때는 교육현장에 정부 간섭이 거의 없었다는 거죠. 당시 교육계에 뜻을 가진 교사가 많이 들어와서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고 해요. 그런데 1957년에 장학사 제도가 생기면서 교육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학교현장에 일제 식민지교육 방식이 살아났다는 겁니다. 일제 때 사범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장이나 장학사를 비롯한 교육행정가가 되면서부터요. 그러면서 학교와 교실에 일제 때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교무실 칠판에 한자를 쓰고, 아이들을 번호로 부르고, 군대식 애국조회를 실시하고, 황국신민서사를 본뜬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하고…. 그렇게 교육 전반이 일제 때 방식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해방 후 급격히 확산되던 민주교육은 껍데기 구호가 되었지요. 학교에서 어떤 부분이 아니라 전체 교육 방식이 일제 식민지교육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던 거죠. 그걸 깨자는 게 참교육 운동이었던 겁니다.

문 :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 보급하신다고요?
답 : 네, 제가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1997. 지식산업사)와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2012. 고인돌) 복간했습니다. 1990년대 초에 한승헌 변호사 주선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대법원에 가서 법관들을 대상으로 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강의를 몇 차례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헌법을 봤더니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헌법은 나라를 운영하는 바탕인데, 그런 헌법을 한문으로 써 놓았으니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읽을 수가 없지요. 

 


이건 헌법을 국민이 읽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헌법을 일단 한글로바꾸고, 한글로 바꾸고 보니 뜻을 알기 힘든 한자말이 많아서 그걸 쉬운 우리말로 바꾼 헌법이에요. 복간 했는데 잘 안 나가요. 국민들이 헌법을 읽어야 하는 필요를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2016년 3월 1일부터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서 모든 국민이 한 권씩 갖고, 손바닥 보듯이 헌법을 읽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죠. 2016년 3월 1일에 1만부를 만들었는데 1주일 만에 다 나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26만부가 나가고 있어요. 이 헌법책을 본 사람들에게 ‘헌법책이 이렇게 작아?’, ‘1시간 만에 읽을 수 있네?’ 라고 말하게 됩니다. 초등학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1권에 500원에 보급하고 있어요. 헌법에 대한 관심과 접근성을 아주 쉽게 만든 거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읽고 알았으면 좋겠어요. 100년 전 선조들이 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대한민국 독립을 선언했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27년 동안 독립전쟁을 치루고, 대한민국 30년이 되는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으로 대한민국을 재건한 것인지, 어떤 민주공화국을 꿈꾸었는지를.

이주영 회원은 1977년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암울한 교육현장에 문제의식을 느끼던 차에 이오덕선생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오덕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다. 이후 이오덕 선생과 함께 한국글쓰기 교육연구회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등을 만들어 글쓰기·독서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활동을 벌였다. 2003년 이오덕 선생 의 타계 후 선생의 문학과 교육사상을 연구하여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이오덕 선생의 삶과 교육, 어린이문학을 정리한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를 출간하는 등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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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순 교수 “이승만·김구 주장 왜곡 전복돼 개탄… 1919년 임시정부 법통 이어받았다는 이승만의 기억”

지난 15일 광복절 73주년을 앞두고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수진영에선 ‘건국 70주년’을 주장하며 또 해묵은 이념 논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치켜세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마저 ‘1919년 건국’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는 역사학계 발표가 계속 나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제정 요구는 더욱 무색해졌다.

지난 22일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주최로 동국대 서울캠퍼스 법학관에서 열린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 학술회의에선 최근 언론 보도로 주목을 받았던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60)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도 교수는 이날 발표문에서 “나는 국정교과서도 반대했고,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지정에도 전혀 지지한 바 없다”면서 “그간의 ‘건국절’ 등 논쟁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것은 논쟁이 이념적 단죄에 치우쳐 있었고, 이승만과 김구의 주장이 왜곡·전복되는 개탄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이날 도 교수 주제발표의 요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야말로 ‘1919년 건국, 1948년 정부수립’이라는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는 데 있다.

1948년 당시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행로는 적대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이승만은 5·10 총선을 주도하고 5월31일 국회의장으로서 국회 개회 식사를 발표했다. 이 개회 식사에서 이승만 의장은 “1919년 3월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가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다”고 말한다.

“이승만이야말로 1919년 건국론 창시자이자 주도자”

이승만의 이런 입장은 그가 주도한 제헌헌법 전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나온다.

도 교수는 “이승만은 1919년 수립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고 ‘대한민국’이며, 그래서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 것으로 표현했다”며 “‘1919년 건국론’은 기나긴 논쟁에서 오해돼 온 것처럼 김구와 임시정부가 주도하고 이승만도 그렇게 따라간 것이 결코 아니라, 이승만이야말로 이러한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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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도 교수에 따르면 외려 김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1년 11월28일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전국적으로 보통선거가 실시돼 정식 정부가 수립되는 2단계를 건국의 핵심 기준으로 봤다. 이러한 건국론을 ‘임정법통론’이라고 불렀다. 김구는 1945년 귀국 이후 신탁 정국을 맞아 임정의 직접 정권 장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건국강령’의 원칙에 따라 비상국민회의 등을 통한 과도정권 수립도 이뤄내지 못했다.

도 교수는 “김구와 임시정부는 해방 이후 임정법통론에 의한 ‘건국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1948년 5·10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5월 말 국회는 개회했고 이승만 주도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전문이 헌법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 교수는 “결국 이승만이 주도한 ‘1919년 건국론’은 김구와 임정의 참여 없이도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기억 방식이고, 현재의 미국과 미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민주주의를 시행했다는 기억 방식”이라며 “대한민국이 단독정부나 분단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유일의 중앙정부라는 기억 방식이며 남한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새로 제정하자는 문제는 기억·기념의 문제이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는 사실과 그 건국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기억·기념하는가는 이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 교수는 “이제 우리의 역사 기억 방식도 단순히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조로는 지난간 역사도 반쪽의 기억이 되기 쉬우며 다가오는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이제 남과 북이 소통하는 더 확대되고 열린 시야에서 100년 전의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1948년 건국절 되면 친일 반민족 세력이 ‘건국유공자’로 면죄부”

최근 건국절 논란은 심재철 한국당 의원을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가 지난 15일 국회에서 건국 70주년 기념식을 열면서 다시 시작됐다. 이들은 “8월15일은 광복절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의 의미로만 기념됐을 뿐, 건국에 대한 기념은 지금까지 외면돼 왔다”며 “이에 국회에서 개최되는 건국 70주년 기념식은 8월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로서 당위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역사학계에선 한국당이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또 건국절 논란을 제기하며 이념적 논쟁을 촉발해 보수 세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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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실제 김문수 한국당 전 의원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전쟁으로 인한 위기가 극도로 악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원은 “역사전쟁에서 청와대는 권력을 이용해 모든 언론을 다 자기편으로 만들어 정통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애국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완전히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우리 정치는 여전히 분열의 정치, 정쟁만 일삼는 비생산적 정치가 기승부리고 있다”며 “한국당은 여전히 ‘48년 건국론’을 들먹이며 해묵은 이념 논쟁을 시도하고 있다. 광복절을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 보수 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수 진영이) 계속 건국일을 강조하는 배경엔 결국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과거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들이 제출했던 법률안만 보더라도 “1945년 8월15일부터 1948년 8월14일까지 신탁통치를 반대하거나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해 활동한 건국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해 서훈과 응분의 예우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렇게 되면 1945년 이후 1948년 정부수립을 주도한 반공 세력들이 ‘건국유공자’가 되면서 역사적 단죄를 받아야 할 친일 반민족 세력 상당수가 면죄부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건국이라는 건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하고 1948년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남북이 언젠가 하나로 통일되면 그 전체를 건국의 과정으로 부를 것인지도 논의가 될 것”이라며 “결국 이는 실천적으로 해소할 부분이지 논쟁을 통해 해소될 부분은 아니다. 분단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08-2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이승만 ‘1919년 건국’ 주창, 한국당 왜 ‘건국절’ 집착?

토, 2018/08/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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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국치 108주년 맞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

오랜 준비 끝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108주년 국치일인 8월 29일 드디어 문을 연다. 2011년 2월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이화)가 출범한 지 8년만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전시와 교육을 통해,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간에 걸친 일제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고발하는 한편, 세계사상 유례없이 치열하고 지속적이었던 항일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알려나가는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 식민지배의 부정적 유산인 일제잔재와 분단독재체제의 폐해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거사청산운동의 과정도 생동감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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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발기인 명판 –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 ⓒ 식민지역사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은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이희자)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계 학계가 중심이 되어 순수하게 민간에서 추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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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전경 ⓒ 식민지역사박물관

송기인 초대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2년간의 급여 2억 원 전액을 통장 째로 기탁한 것이 본격적으로 건립에 착수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초등학생들의 개미모금에서 사회 지도층의 기부에 이르기까지 성금이 이어졌으며, 개관을 앞둔 현재 4,500여 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1만여 명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약 16억 5천만 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강만길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 전기호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등이 큰 액수의 성금을 기탁하였으며 고인이 된 김창국 전 친일재산조사위원장도 생전에 여러 차례 성금을 보내왔다. 한상권 덕성여대 총장직무대행과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 부부는 1차 성금에 이어 첫 급여 전액을 “역사적폐 청산에 써 달라”며 전달해 왔다.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강제동원피해자 유족들이 대거 건립운동에 동참하였으며, 미주와 중국 일본 각지의 동포사회도 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과일본을잇는모임’을 결성하고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아 지난 6월 방한해 전달식을 가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들어서는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전시 설비에는 총 6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민모금과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가 출연한 재원을 합해도 아직 20억 원 정도가 부족한 실정이어서 당분간 모금 운동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모금의 성과에 이어 주목해야 할 점은 상당수의 전시자료를 독립운동가 후손,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기증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일본 시민사회가 펼친 자료 기증운동도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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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 현판 ⓒ 식민지역사박물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에 걸쳐 총 6천점이 넘는 자료를 정리해 보내온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 선생, 문화부장을 지낸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건국동맹의 채충식 선생, 부민관폭파의거의 주역 조문기 선생의 유품도 후손들이 기증해 왔다.

강제동원피해자들이 남긴 유품들에는 유족들의 한이 서려있다. 희생자의 원혼이 담긴 유골함과 청춘만장이라 불린 장행기에는 비극의 한국근대사가 오롯이 담겨있으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절규가 느껴진다.

강만길 선생의 남북교류 자료, 윤정옥 선생의 일본군‘위안부’ 관련자료, 고 성대경 선생의 의병 관련 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돈명 변호사와 한승헌 변호사의 법조 관계 자료, 전기호 선생의 강제동원 관련 자료, 이이화 선생의 동학 관련 자료, 임헌영 선생의 재판 관련 자료, 윤경로 선생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등도 눈에 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자료 기증은 열풍에 가까웠지만, 도쿄지회 조영숙 회원의 자이니치 관련 자료, 미국 이덕문 회원과 독일 원병호 회원의 민주화운동 자료 등 해외 회원들의 호응도 두드러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일본을잇는모임’에서도 다수의 자료를 수집해 보내왔다. 즈시 미노루 선생이 방대한 ‘침략신사’ 컬렉션을 기증하였으며, 기타무라 메구미 씨 등이 개별적으로 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쿄고려박물관 일본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재한군인군속재판을지원하는모임 오키나와한의비모임 등 과거사 관련 단체들도 조직적으로 자료기증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 선생의 유품에서 시작하여 『친일인명사전』편찬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를 포함 무려 7만 여점의 유물과 약 5만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극히 일부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아카이브로 구축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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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설전시관 내부 ⓒ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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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설전시관 내부 ⓒ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관은 4부로 구성되었는데 가치를 따지기 힘든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도 공개된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니시키에, 출처와 경위가 분명한 삼일독립선언서 초판본, 남경대학살 일본군 선봉부대 일장기, 동학 의병 관련 자료, 을사오적 등 거물 친일파의 훈장 등 유품,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포스터 엽서 등 선전자료, 일기 책자 등 문헌자료, 문서 지도 사진 등 희귀한 자료가 그 보기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소장자료들을 활용하여 전시는 물론 출판 영상제작 등 교육교재 개발에도 주력하는 한편,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역사문화강좌를 개설하고 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서는 한편으로 인권말살의 상징인 중앙정보부와 대공분실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개관식은 8월 29일 오후 3시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현판 제막은 박물관 입구에서 4시 30분에 진행되며 다양한 기념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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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순]

개관기념 답사(13:30∼14:30)
효창원 독립운동 선열 묘역

식전 축하공연(15:00∼15:30)

개관식(15:30∼16:30)
사회: 노기환
∘개식선언
∘내빈소개
∘국민의례
∘경과보고 : 윤경로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
∘기념사 : 이이화 건립위원회 위원장
∘발기인 대표 인사 : 송기인 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축사 Ⅰ : 안민석 국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위원장
∘축사 Ⅱ :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축하 영상 :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 /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
∘공로패·감사장 수여 : 이이화 건립위원회 위원장
∘폐식인사 :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공지사항 안내
-기념촬영

현판 제막식(16:30∼16:30)

개관 부대행사(16:30∼18:00)
1층 ‘임종국’ 드로잉, 그라피티, 캘리그라피
2층 상설 전시관 전시해설
5층 영상 상영, 책 나눔 행사
옥상 전망대 : 남산·용산 일대 식민지시대 유적해설

임시연락처 : 02-969-0226 민족문제연구소

첨부자료 (다운로드)
1. 개관식 초청장
2. 식민지역사박물관 리플릿
3. <민족사랑〉식민지역사박물관 특집호

월, 2018/08/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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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정관에서 회비 납부와 정관 준수를 의무로 정하고 있고
회원은 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사업과 활동에 참여,  자료 이용, 회보 투고를 권리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의무를 정한 정관을 비공개(정보공개청구 공개했지만)했습니다.
심지어 의사록(총회, 이사회)의 공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 비공개도 있을 수 없는일인데
의사록 마저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소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회원이 모르는-절대 알면 안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1만 3천여 회원에게 감춰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연구소에서는 회원이 알면 안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떤 회원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연구소에 쓴소리 한다는 이유로 제명하고, 사고지부로 지정하고…..
정관과 의사록도 비공개하고….
앞으로 어떤 역겁고 추한 모습을 더 보여주실 생각입니까?

회원의 기본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외치는 진실과 정의는 무엇입니까?

화, 2018/08/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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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14번째!

서승 일본 건립후원회 공동대표

재일교포 2세인 서승 대표는 서울대 재학시설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박정희 후보와 맞서던 김대중 후보에게 북한의 선거자금을 전하려 했다는 혐의가 씌워졌고 보안사(지금의 기무사)는 그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허위자백으로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볼까봐 고문실에 있던 난로 기름을 몸에 끼얹어 분신자살을 기도해 전신 화상을 입었습니다.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인 서승 대표는 동아시아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식민지역사박물관 일본 건립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기적을 이어 2018년 8월 29일,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모금 참여 https://www.minjok.or.kr/archives/97796

화, 2018/08/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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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왈, “김병준은 대권야욕에 정신팔린 박쥐새끼”

 

민주당에서 나름 최고 어른인 박지원 의원 쪽에서 김병준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가히 충격적이다.

 

보수 철새 아니냐는 이야기에 더해서 대권에 환장한 박쥐라는 평가까지 들린다.

참여정부에서 일할 당시 자신을 맹공하며 깍아내린 자유한국당에 기어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틈만나며 친박에 비박에 요리조리 붙어가며 대권을 향한 도전을 계속해온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박지원 측에서 재미있게 이런 표현도 했다.

“골프치면서 로비받다보니 많이 답답했나보다. 박근혜 하는거 보니까 자신감이 넘쳤네.”

 

출세욕에, 이런저런 비리들로 가득찬 김병준은 이미 노무현 정신을 잃어버린 더러운 정치철새에 불과하다.

 

불쌍한놈.

 

화, 2018/08/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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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무죄 판단…재판장 “배심원단 3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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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 다큐멘터리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감독과 프로듀서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9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와 최모씨 등 2명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은 “배심원의 평결 결과를 바탕으로 이같이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기일은 27일∼28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배심원단의 평의가 길어져 이날 새벽에야 결과가 나왔다. 김씨에 대해선 배심원 9명 중 8명이, 최씨에 대해선 7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장은 “배심원단이 3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치열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비판적 관점에서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기회주의자며 악질 친일파로 사적 권력을 채우려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미국 지역 신문 보도나 중앙정보국(CIA) 문서 등을 근거로 삼았다.

2012년 말 시사회로 처음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이후 보수성향 언론과 학계에서 내용을 강력히 비판했고, 진보진영이 반론을 펼치면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 박사 등 유족들은 이듬해 5월 제작자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4년 6개월 가까이 수사를 이어온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19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맨법(Mann Act·성매매나 음란행위 등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과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던 법)’을 위반해 체포·기소됐다는 부분이 허위사실이라며 김씨 등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그 밖에 유족들이 문제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없음 처분했다. 사료나 언론보도 등을 근거로 영상물을 제작했고, 다소 과장되거나 공격적인 표현은 형사처벌의 영역이 아닌 평가나 의견표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mail protected]

<2018-08-29> 연합뉴스

☞기사원문: ‘이승만 명예훼손’ 다큐 감독·프로듀서,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관련기사

☞뉴시스: 이승만 다큐 ‘백년전쟁’ 감독·PD, 명예훼손 혐의 ‘무죄’

수, 2018/08/2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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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15번째!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응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슬픈역사, 아픈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이 지금 현재 우리의 삶, 미래세대의 삶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기적을 이어 2018년 8월 29일,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모금 참여: https://www.minjok.or.kr/archives/97796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응원영상]

응원영상 – 1. 최태성 (역사강사)

응원영상 – 2. 청소년들

응원영상 – 3. 김태곤 조이시티 CTO

응원영상 – 4. 박주민 의원과 김광진·정청래 전 의원

응원영상 – 5. 장항준 영화감독

응원영상 – 6. 전국역사교사모임

응원영상 – 7. 김지영 영화감독

응원영상 – 8. 독립운동가 후손

응원영상 – 9. 최원정 아나운서

 

응원영상 – 10. 배동록선생

 

응원영상 – 11. 임순례 영화감독

응원영상 – 12. 박원순 서울시장

응원영상 – 13. 심정섭 선생

응원영상 – 14. 서승 대표

수, 2018/08/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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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의 급격한 접속 증가로

서버가 다운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긴급복구를 통해 홈페이지 서버를 정상화 시켰습니다.

원활한 접속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 기록정보팀

식민지바로가기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수, 2018/08/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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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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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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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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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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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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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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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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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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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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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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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정관의 기본재산 목록의 내용입니다.
토지, 건물의 평가액 : 49억8천만원
금융기관 담보제공 및 차임금 : 27억원

등기부에 따르면 청파동 건물은 재단법인의 단독소유입니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재단법인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서 보고받은 바 없고,
재단법인은 명칭을 내일을여는역사재단으로 변경할때도 회원에게 알린 바 없습니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재단법인이 완전한 별개의 법인이니 당연할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임헌영 소장은 지난해 총회에서 건물 매입에 돈이 부족하다며 후원을 요청했고, 올해 총회에서는 차입금과 이자를 회원에게 갚아달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묻습니다.
건물 매입후 매월 수 백만원의 이자를 납부했을 것입니다.
이자의 재원은 무엇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민족문제바로세우기시민행동
2018.8.30

목, 2018/08/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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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국민의 힘으로 세워졌습니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먼저 나서서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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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8/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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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역사가 법정에 섰다.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재판이었다. 역사의 문법과 법의 문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일례로 2004년 반민족처벌법 제정 당시를 설명한다.

“역사학자들은 처벌 대상을 ‘한일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정하며, 작위 자체가 병합의 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병합이 되면서 그들이 무슨 공을 세웠는지 증명하라고 하더라.”

역사와 법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역사를 법 앞에 세운 이는 다름 아닌 정치였다.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제작진 김지영 감독과 최진아 PD는 법정에 섰다. 2012년에 나온 ‘백년전쟁’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두운 과오를 다뤘다.

‘백년전쟁’은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됐다. 1995년경부터 시작된 이승만 바로세우기 운동에 이어 2000년 뉴라이트가 친일 인사 찬양 운동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백년전쟁’은 건국의 아버지,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승만의 친일행적과 비위행위를 드러냄으로써 그를 역사의 법정에 세웠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합계 2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에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 등 유족들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제작진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이승만의 미국 박사학위 취득 과정, 친일 활동과 독립성금 전용 의혹 등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영상에서 이승만이 19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맨 법(Mann Act·성매매, 음란행위 기타 부도덕한 목적으로 가족이 아닌 여성과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던 1900년대 미국 법률)’ 위반으로 체포, 기소됐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해당 사례로 이승만이 하와이 주민들이 힘들게 모은 독립성금을 낭비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로 보고 기소를 결정했다.

피고인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했다. 지난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태업) 심리로 해당 사건 2회 공판 겸 선고기일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증인신문, 피고인 신문, 검찰·변호인 최종 의견진술, 배심원 판결, 재판부 선고 순으로 진행됐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이 다음 날 새벽 2시에 끝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 재판의 서막

검사는 이 사건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은 이승만을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허위 사실을 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던가. 재판 내용은 아닐지라도 김 감독과 최 PD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되기까지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2013년 3월 청와대 오찬에서 조부의 친일을 옹호한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이 “‘백년전쟁’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 살펴보겠다”고 화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수 언론들은 해당 영상물에 ‘좌파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교육부에 ‘백년전쟁 대응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국정원은 전경련을 통해 이승만 찬양 영상 제작비를 지원했다. 김 감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인수씨의 고소로 검찰에 사건이 접수되자 사건의 정치적 양상은 더욱 빛을 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1부에 배정해 조사하던 중 공안1부로 재배당했다. 검찰이 통상 형사부에서 다뤄지는 명예훼손 사건을 간첩을 조사하는 공안부로 넘겼다는 사실은 이 사건을 이념적 문제로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사건을 4년 넘게 끌던 검찰은 이례적으로 공소시효를 10여 일 남기고 기소했다.

법정에서 역사를 논하다

오후 증인신문 과정은 근현대사 수업시간을 방불케 했다. 이승만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하는 두 교수가 양측 증인으로 나왔다. 오후 4시 종료 예정이던 증인신문이 저녁 7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옛날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지만 막상 사료를 따지고 들면 역사는 수학만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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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전 대통령ⓒ뉴시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맨법(성매매나 음란행위 등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과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법) 위반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두 교수는 재판장에서 1900년대 초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교수는 “미주지역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알력 다툼 속에서 경쟁 세력이 이 전 대통령을 음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승만과 김노디의 부적절한 관계는 많이 알려졌다. 여러 사료들을 바탕으로 이 같은 감독의 해석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반되는 두 교수도 동일하게 인정한 부분이 있었다. 역사학계에는 이승만과 김노디의 당시 행적에 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이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연구하는 것을 꺼려하는 학풍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계 다수가 인정하는 정설이 없다는 뜻이었다.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 신문 과정 틈틈이 배심원단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개진했다.

검찰은 영상 속 “1920년 6월 이승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맨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이승만은 이민국에서 집중조사를 받고 기소됐다. 그로 인해 21일로 예정된 주민 환영회가 취소됐다.이승만은 하와이로 가서 재판 받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하와이에서 기각 결정을 받았다”는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당 내용이 나오는 2분 30초 분량의 영상을 컷, 자막, 이미지 등을 모두 분류해 사실 여부를 물었다. 어느 사료를 보고 이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했는지 증명하라고 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이 수사·재판을 받았다는 직접 증거는 구할 수 없었지만 로버트 장이 집필한 저서 ‘하와이의 한인들’과 김노디의 이민국 진술서, 이승만의 해명서, 당시 미국 형사절차법의 특성 등이 정황 증거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 측도 변호인 측도 10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단언할 수는 없었다. 역사는 띄엄띄엄 남아있는 사료에 역사학자의 해석이 가해지면서 완성된다.

검찰은 신문 과정에서 역사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부정적인 측면만 조명했고 긍정적인 측면은 담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이민국 문서 같이 공문서만이 객관적인 자료라고 인정했다. 공인된 사실일 때만 그를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년전쟁’은 역사적 사료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상물이다. 제작진은 영상을 통해 이승만의 비위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은, 내용들을 대중에 알렸다.

오전 증인신문에 출석했던 강성률 광운대 교수는 다큐멘터리라도 객관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실을 카메라로 잡을 것인가 선택하는 것부터 감독의 주관이 들어간다. 카메라 거리, 앵글 등 촬영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며 “결국 감독의 주관을 객관으로 최대한 포장해서 보여지는 것이 다큐멘터리다”라고 설명했다.

역사, 국민이 심판하다

재판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국민 배심원들은 3시간에 걸쳐 토론했다. 평소 1시간 반이면 만장일치로 결정이 모아진다고 하던데. 배심원들은 판결의 무거움을 안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민이 판단의 주체가 된 법정은 친절한 공간으로 변했다. 국민참여재판의 분위기는 평소 재판과는 확연히 달랐다. 방청객들이 있긴 하지만 평소 재판은 판사, 검사, 변호사 그들만의 세상이다. 앞에 놓여 진 마이크는 장식품일 뿐. 그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법률 용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피해자, 피고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는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국민 배심원을 이해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법률 용어의 의미부터 법률 해석의 배경까지 쉽고 천천히 설명했다.

모든 재판들이 이렇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쉬운 설명을 통해 국민 누구나 재판과정을 이해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게끔 말이다. 사법부에겐 ‘우리가 이렇게 기소하고 이렇게 선고했으니 너네는 받아들이기만 해’와 같은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라 국민들을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음 날 새벽 1시 55분 국민 배심원 9명은 김 감독에 대해 1명이 유죄, 8명이 무죄 판결을, 최 PD에 대해 2명이 유죄, 7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 역시 이들의 결론을 참작해 무죄를 선고했다.

<2018-08-30>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법정르포] 역사가 법정 위에 섰다··· 배심원들이 외면한 이승만의 ‘명예’

※관련기사

☞뉴시스: 이승만 다큐 ‘백년전쟁’ 감독·PD, 명예훼손 혐의 ‘무죄’

☞한겨레: 이승만 비판 다큐 ‘백년전쟁’ 제작진 명예훼손 혐의 무죄

☞법률뉴스: [판결]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 백년전쟁 감독·프로듀서,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아시아경제: 이승만 비판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감독·PD 국민참여재판 1심 “무죄”

☞헤럴드경제: ‘백년전쟁’ 감독ㆍ프로듀서 ‘이승만 명예훼손’ 혐의 무죄

☞투데이신문: 이승만 비판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제작진, 국민참여재판서 명예훼손 무죄

☞금강일보: 백년전쟁 무죄…이승만 사생활·친일행적 다뤄

목, 2018/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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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 언론·사회 

금, 2018/08/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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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인사이드, 오늘은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과 함께합니다.

1. 오늘은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돼 가는데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2.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3. 광복 73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못 받는 독립유공자가 많고, 받은 사람들도 서훈의 등급이 부당한 게 많다고 하는데요.

4. 잘못된 역사 교육과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5.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일제의 잔재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6. 지난해부터 광주 곳곳에 있는 친일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광주 친일 잔재 청산 특별팀’을 꾸렸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7. 몇 차례 회의는 진행됐지만, 여전히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8. 당연한 질문 같지만,‘광주 친일 잔재 청산’의 가장 큰 목적은 뭔가요?

9. 광복절만 되면 건국절 논쟁이 시작되는데요. 올해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 앞으로의 계획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8-08-15>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모닝730 피플인사이드>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금, 2018/08/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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