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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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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5:53

[회원인터뷰]

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어
어린이문화 발전과 우리헌법읽기운동에 힘쓰고 있는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인터뷰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문 :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답 : 제가 위하고 간, 두 군데에 암이 발병해서 2011년 명예퇴직을 했어요. 치료를 3년 정도 했죠. 처음에는 수술을 못할 정도였어요. 특히 간이 안 좋았는데 암세포가 여러 군데 분포해 있었어요. 다행히 표적 치료제가 있어서 그걸 먹었더니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저한테 딱 맞는 약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잘 맞는 경우는 3~4% 정도라고 하더군요. 의사도 처음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술하고 완치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난 거죠.

문 :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답 : 어린이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린이 관련 교육, 문화, 예술 단체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협력하는 어린이문화연대라는 모임입니다. 퇴직 후 약 10년째 대표를 맡고 있어요. 또 3년 전부터는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이라는 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온국민이 헌법을 읽고 헌법대로 운영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서 한 권에 5500원씩 후원금을 받아서 배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 뜻대로 1919년 3·1혁명을 대한민국 독립선언기념일로 하자는 뜻을 알리기 위해 3년 째 대한민국 생일잔치를 하고, <독립선언서 말꽃 모음>과 <대한민국 생일은 언제일까요?> 라는 책도 냈습니다.

문 : 어린이문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답 : 제가 처음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1977년 당시 교육현실이 너무나 열악했어요. 그때 책을 통해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은 당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셨는데, 어린이문학 평론과 교육 현장에 대한 수필을 쓰셨어요.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선생님을 찾아갔고,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어린이문학 평론을 읽으면서 어린이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문 : 이오덕 선생님한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나요?
답 : 선생님이 쓴 책 중에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란 책이 있는데요. 그 책에 우리나라 어린이문학가들이 갖고 있는 열등의식과 극복 문제에 대해 쓰신 글이 있어요. 문학은 우리 겨레 아이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장 중요한 예술인데 그 창작자인 어린이문학가들이 이중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셨어요. 하나는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고 또 하나는 성인문학에 대한 열등의식이라는 겁니다. 이런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작가들이 쓴 작품은 어린이들한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런 이중 열등의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셨지요. 1970년대 상황이 실제로 그랬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1920년대 어린이문학운동에 앞장섰던 방정환, 현덕, 마해송 같은 분들이 갖고 있던 문학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또 당시 아동문학가들이 모작이나 표절에서 벗어나 가장 우수한 예술성을 갖춘 아동문학을 창조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점에서 권정생 작가를 높게 보셨죠. 그런 문학이 나와야 어린이 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어요.

이오덕선생님

문 : 이오덕 선생님이 우리 어린이문학에 끼친 영향은?
답 : 1970년대만 해도 동화는 아이들만 본다. 유치한 동화, 유치한 동시, 유치한 연극, 유치한 영화. 그걸 창작하는 유치하고 질 낮은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었어요. 그러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그런 잘못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동화, 동시, 동요, 동극은 유치한 예술이 아니라 가장 소중하고 귀하고 높은 예술이고 그런 예술을 창작하는 어린이문학인 또한 그렇게 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어린이문학이 소중하게 대접받게 되었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끼친 영향이 크지요.

문 : 어린이문학이 왜 천대 받았나요?
답 :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은 어린이청소년을 많이 탄압했어요.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에 어린이 청소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걸 잘 아니까요. 당시 김산호 화백이 그린 <라이파이>란 연작 만화책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게 이승만과 같은 독재정치에서 생겨나는 악을 물리치고 정의가 승리하는 내용이었거든요. 사회현실을 비판하고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동화들이 인기를 끌었고요. 그래서 박정희 독재정부에서는 초중등 학생들이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했고, 만화를 마약, 폭력, 부패와 함께 4대 악 가운데 하나로 몰아가면서 탄압했어요. 어린이문학 단체도 없애고 동화나 동시도 반공문학으로 쓰게 했죠. 유신 이후에는 학생자치회도 다 없애고 학도호국단으로 만들어서 민주주의 싹을 잘라버렸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문학과 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문 : 어린이문학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답 :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어린이문학은 반인간적이고 반민주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하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 겨레 역사와 현실을 참되게 담아내는 문학, 통일과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동화와 동시를 써서 읽혀야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가 살아난다고 하셨어요. 어린이문학을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로 써야 민주화가 된다고 했어요. 이걸 말의 민주화라고 하는데요. 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생활 속에서 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말이 민주화가 되지 않고는 정치나 경제도 민주화가 될 수 없다고 하셨지요. 어린이문학이 그것을 담아내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가장 소중한 그릇이 되는 겁니다. 이런 민주, 민족, 인간화 문학에 대한 생각을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했어요. 그걸 한 마디로 참교육이라고 했어요. 1980년대 우리교육현장을 크게 일으켜 준 참교육이라는 말도 이오덕 선생님이 만드신 거지요. 이런 생각이 젊은 교사와 권정생을 비롯한 어린이문학가들에게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문 :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영향은 어땠나요?
답 : 이오덕 선생님은 일제 때 방정환 선생님 활동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어요. 방정환 선생님은 민족적 열등의식을 벗어던지고 민족의 역사와 삶을 가꾸는 책을 쓰셨다는 거예요. <사랑의 선물> <77단의 비밀> <만년 셔츠> 같은 작품이지요. 〈어린이〉라는 잡지도 내셨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 영인본을 500부 한정본으로 찍으려고 선주문을 받는다며 권유했어요. 당시 제 월급이 7만원 정도였는데 10만원을 내고 그걸 사서 봤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어려운 항일 투쟁기에 아이들을 위해 다달이 그렇게 좋은 잡지를 냈다는 것에 놀랐지요. 그 잡지가 남북한 전역은 물론 일본과 흑룡강과 상해까지 나갔다고 해요. 한때 10만부가 나갈 만큼 인기가 있는 잡지였다고 해요.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을 비롯해 당시 수많은 아이들이 그런 잡지를 보면서 자란 거지요. 어린이문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1980년에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인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서울양서협동조합 산하단체로 만들게 된 겁니다. 어린이도서 연구회는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 어린이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린이문화연대도 어린이도서연구회를 기반으로 만든 모임이고요. 방정환 선생님은 우리 겨레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문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그 영향은 점점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방정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문 : 어린이날의 내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답 : 방정환 선생님이 계시던 천도교에서 1922년 3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님은 다음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고 그 단체 주최로 1923년 5월 1일에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다시 합니다. 어린이운동을 천도교에서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때 어린이들이 종로를 행진하면서 뿌린 전단이 ‘어린이해방선언’이에요. 어린이를 윤리적 억압과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유인물입니다. 그걸 20만 장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어요. 당시까지 세계 어린이운동사에서 이런 표현을 쓴 선언문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이 억압에서 해방되어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문이 나온 거예요. 세계 최초가 아닌가 생각해요. 나중에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꿉니다.

문 : 학교현장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가 어떤 것들인가요?
답 : 성내운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게 있는데요. 우리가 교육을 정말 잘했던 때가 해방되고부터  6·25 때라는 거예요. 그때는 교육현장에 정부 간섭이 거의 없었다는 거죠. 당시 교육계에 뜻을 가진 교사가 많이 들어와서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고 해요. 그런데 1957년에 장학사 제도가 생기면서 교육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학교현장에 일제 식민지교육 방식이 살아났다는 겁니다. 일제 때 사범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장이나 장학사를 비롯한 교육행정가가 되면서부터요. 그러면서 학교와 교실에 일제 때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교무실 칠판에 한자를 쓰고, 아이들을 번호로 부르고, 군대식 애국조회를 실시하고, 황국신민서사를 본뜬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하고…. 그렇게 교육 전반이 일제 때 방식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해방 후 급격히 확산되던 민주교육은 껍데기 구호가 되었지요. 학교에서 어떤 부분이 아니라 전체 교육 방식이 일제 식민지교육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던 거죠. 그걸 깨자는 게 참교육 운동이었던 겁니다.

문 :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 보급하신다고요?
답 : 네, 제가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1997. 지식산업사)와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2012. 고인돌) 복간했습니다. 1990년대 초에 한승헌 변호사 주선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대법원에 가서 법관들을 대상으로 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강의를 몇 차례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헌법을 봤더니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헌법은 나라를 운영하는 바탕인데, 그런 헌법을 한문으로 써 놓았으니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읽을 수가 없지요. 

 


이건 헌법을 국민이 읽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헌법을 일단 한글로바꾸고, 한글로 바꾸고 보니 뜻을 알기 힘든 한자말이 많아서 그걸 쉬운 우리말로 바꾼 헌법이에요. 복간 했는데 잘 안 나가요. 국민들이 헌법을 읽어야 하는 필요를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2016년 3월 1일부터 <손바닥 헌법책>을 만들어서 모든 국민이 한 권씩 갖고, 손바닥 보듯이 헌법을 읽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죠. 2016년 3월 1일에 1만부를 만들었는데 1주일 만에 다 나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26만부가 나가고 있어요. 이 헌법책을 본 사람들에게 ‘헌법책이 이렇게 작아?’, ‘1시간 만에 읽을 수 있네?’ 라고 말하게 됩니다. 초등학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1권에 500원에 보급하고 있어요. 헌법에 대한 관심과 접근성을 아주 쉽게 만든 거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읽고 알았으면 좋겠어요. 100년 전 선조들이 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대한민국 독립을 선언했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27년 동안 독립전쟁을 치루고, 대한민국 30년이 되는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으로 대한민국을 재건한 것인지, 어떤 민주공화국을 꿈꾸었는지를.

이주영 회원은 1977년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암울한 교육현장에 문제의식을 느끼던 차에 이오덕선생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오덕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다. 이후 이오덕 선생과 함께 한국글쓰기 교육연구회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등을 만들어 글쓰기·독서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활동을 벌였다. 2003년 이오덕 선생 의 타계 후 선생의 문학과 교육사상을 연구하여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이오덕 선생의 삶과 교육, 어린이문학을 정리한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를 출간하는 등 이오덕 선생의 ‘참교육’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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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특별전 <나는 의병입니다 그리고 독립군입니다> 개막

 

 

특별전 <나는 의병입니다 그리고 독립군입니다>가 2020년 12월 22일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였다. 근현대사기념관과 독립기념관이 공동 개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의 제1부 <나는 의병입니다>는 근현대사기념관이, 제2부 <나는 독립군입니다>는 독립기념관이 준비하였다.

제1부 <나는 의병입니다>는 ‘군대해산, 자결로 답하다’, ‘시위대, 서울에서 의병전쟁의 서막을 열다’, ‘진위대, 전국으로 의병전쟁을 확산하다’, ‘의병과 군인, 연합부대를 만들다’, ‘13도 창의군, 서울로 진군하다’, ‘유격전의 확산과 일본군의 잔인한 탄압’, ‘압록강 너머 두만강 건너, 만주로 연해주로’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1907년 군대해산 직후 박승환의 자결은 의병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전시는 시위대가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부대와 합류하여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고, 전국적 의병전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박승환의 「시위 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 임명장」, 1900년대 초반 경성부 지도, 1907년 프랑스 잡지 L’ILLUSTRATION에 수록된 일본군과 전투 후 시위대 병사들의 모습, 1907년 8월 민긍호 의병부대와 일본군의 활동지역을 나타낸 지도, 관동창의대장 이인영이 해외동포에게 보낸 격문 내용을 알 수 있는 신문기사, 1910년 초에 작성된 연해주 13도의군의 서명록으로 추정되는 「의원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2부는 2020년 독립기념관 기획전 <나는 독립군입니다>의 순회전시로 ‘독립군, 독립전쟁을 쓰다’, ‘독립군을 양성하라’, ‘독립전쟁이 시작되다’, ‘우리의 군대, 한국광복군’, ‘독립전쟁 제1회전, 봉오동 전투’, ‘만주에 울려 퍼진 승전보, 청산리 전투’, ‘전진하는 독립군’, ‘독립군을 지키는사람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활동이 어려워진 의병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재편되어 독
립전쟁을 하는 여정과 광복 후 총칼을 내려놓은 독립군들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여 독립군의 역사를
남긴 일기, 수기 등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신흥교우단의 기
관지인 <신흥교우보> 제2호, 북로군정서의 훈련교본,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포고 제1호・제3호, 봉오동전투상보와 더불어 의병 출신 독립군 김정규 일기, 한국광복군 김문택 수기, 지청천 친필 일기 <자유일기>, 홍범도 일지(이인섭 필사본), 청산리 전투 참가자 이우석 수기, 한국광복군 지복영 수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근현대사기념관 특별전시 <나는 의병입니다 그리고 독립군입니다>를 통해 일제에 맞선 수 많은 의병과 독립군들의 간절한 바람과 희생을 되돌아보고 의병전쟁, 독립전쟁을 이끌어온 한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나는 의병입니다 그리고 독립군입니다> 특별전은 VR전시로도 제작하였다. 현재 근현대사기념관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어 현장 관람에는 제약이 있지만, 2020년 11월에 개막한 상설전시, 특별기획전 <잔인한 사월, 위대한 혁명>과 함께 홈페이지에서 전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원 홍정희

월, 2021/01/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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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 역사부교재 발간

 

지난 12월 경기도, 지역사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함께 친일청산 교육부교재 개발을 위해 공동 작업을 진행하여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전5권)를 발간하였다. 2019년 경기도가 추진하고 우리 연구소가 조사연구를 맡아 진행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부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경기도의 일제잔재는 크게 인적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친일인물’과 물적 잔재인 ‘친일 관련기념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경기도 출신 ‘친일인물’ 선정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근거로 하였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1,006명의 반민족행위자 가운데 경기도 출생・출신자는 모두 267명이다. 이들의 주요 경력에 따라 매국・귀족, 일제 통치기구 협력자인 관료・중추원・법조인, 경찰・군인, 문화계, 예술계 친일인물 등 6개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친일 관련 기념물’은 일제강점기 건축물, 친일 인물의 기념비·송덕비, 그 외 기념조형물 등 71개를 조사하였다. 역사부교재는 경기도를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일제잔재를 소개하고, 일제잔재 청산의 방법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도움 자료를 함께 실었다. 전체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1권은 일재잔재의 개념과 유형별 분류를 제시했고, 친일인물 가운데 경기도 내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인물들과 친일 관련 기념물 중 경기도의 신사(神社) 해설,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와 그 청산 사례를 소개했다. 그리고 2권~4권은 동부, 남부, 서부・북부 4개 권역별로 친일인물, 친일 관련 기념물, 교수-학습과정안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5권 사료편에는 친일인물 근거 사료, 친일파 관련규정・법령과 분야별 사료 해제, 친일 문제 이해를 돕는 논문과 참고문헌이 실려 있다.
이 역사부교재는 경기도 소재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직접 집필하였다. 이 부교재가 학교 현장에서 지역의 일제잔재를 둘러싼 다양한 토론장을 만들어 내고, 친일 청산의 대안과 실천을 마련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역사부교재는 경기도 소재 1100여 곳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었고, 전권 PDF는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다.

• 김승은 학예실장

월, 2021/01/2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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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2020년 경기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웹툰과 만화로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역사 인물들을 비교하여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우리 공동체의 가치로 재인식함과 동시에 사회 일각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지배 미화 등 반역사적 행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이 사업에는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소속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역사 인물과 작가는 다음과 같다. 신석구・정춘수(최승춘), 한용운・강대련(하재욱), 차미리사・김활란(성덕환), 신채호・최남선(정태권), 여운형・김성수(국태이), 지청천・이응준(최인수), 안재홍・방응모(최승춘), 조명희・김동인(전진이), 이육사・서정주(오금택), 한형석・현제명(서상균). 각 작품마다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작품의 수준을 높였는데 강태구(한국음악연구소 연구원) 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광종(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순우(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준식(독립
기념관장) 장신(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장원석(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학예실장) 한상권(덕성여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470쪽 분량의 2권으로 제작된 이 만화는 경기지역 모든 초·중·고등학교 2,400곳에 무상으로 보급되었으며 조만간 부천지부사이트(minjok21.kr)를 통해서도 웹툰 형식으로 공개된다.

• 방학진 기획실장

월, 2021/0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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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마당]

빛나는 삶

김원근 전 교사

 

숨죽여 그늘을 걸을지라도
누군가에게 흙탕물 튕기지 않았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쓰린 이별 뒤 어딘가 둥지 틀고 살지라도
어쩌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긴긴 겨울밤 뒤척이고 있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울고 싶어 어딘가를 홀로 떠돌지라도
부모님의 소소한 안부를 잊지 않고 이따금씩 떠올린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보잘 것 없고 든든한 배경이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작은 햇살 한 줌으로 미소에 젖어 있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누군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또는 이따금 비스듬히 떠받치기도 하며
저마다의 초저녁 어스름 길을 가고 있는 거 아닌가

화, 2021/03/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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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마당]

경기도 후원, 지역사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발행
교사용 학습 부교재 『우리 지역 친일잔재를 찾아라』

김찬수 수원동원고 교사

“선생님, 친일파가 뭐예요?”
“경기도에는 친일인물이 누가 있어요?”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는 무엇인가요?”
“우리 학교 교목(校木)과 교가(校歌)는 왜 일제잔재인가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의 당연한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에는 범위가 넓고 다양하여 학생들의 궁금증을 다 풀어주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사실은 교육을 맡은 선생님들이 더 답답하다.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벅찬 감격에 이어 2012년에는 모바일 친일인명사전까지 출시되었지만, 일반인들이나 성장하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교육자들을 위한 ‘친일교육자료’는 많이 부족하였다. 인물별, 기관별로 여러 가지 노력이 있기도 했지만, 비교적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의 친일파 관련 자료집은 많지 않았다. 그동안 선생님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기댈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선생님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아주 적절한 친일 관련 역사교육 자료집이 나왔다. 이 자료집은 역사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사용하기에 아주 유용하도록 편집되어 1권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사료편(PDF로 제공)을 포함하여 총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경기도를 4개 권역 즉 1편 경기도, 2편 경기동부지역, 3편 경기남부지역, 4편 경기서부·북부지역으로 나누어 집필되어 있다. 선생님 책상 위의 책꽂이에 꽂혀져 언제든지 찾아서 활용하기에 최적이다. 이제 경기도교육청의 선생님들은 근무지가 바뀌어 어디에서 근무하든 근무지역의 식민지 시대 친일인물과 그 흔적을 쉬게 찾아서 가르칠수 있게 되었다. 1권에서는 일제잔재의 개념과 유형별로 분류하고, 친일인물 중에 경기도 내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인물과 일제강점기 신사(神社)를 정리해서 설명하였고, 학교생활 속의 일제잔재와 그 청산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선생님들도 한 번쯤 궁금했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일제잔재 용어 사용 문제, 일제잔재 유형, 일제잔재 대상 시기, 일제잔재 청산 관련 사료집이나 관련법 그리고 매국행위 친일인물부터 통치기구 협력자, 군인, 경찰, 친일단체, 문화계 친 일인물을 표로 만들어서 잘 정리하였고, 경기도 곳곳에 있었던 ‘신사(神社)’ 그리고 학교 속의 일제잔재로서 교가와 교표가 왜 일제잔재인지 설명하고 있다.

‘반장’, ‘부반장’, ‘간담회’, ‘결석계’ 심지어 ‘차렷 경례’, ‘수학여행’도 일제잔재라는 것에 지금까지의 교육활동 모든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가평 대성초등학교, 김포 대명초등학교, 동두천 양주 삼숭초등학교, 이천 이헌고등학교, 수원 삼일학원, 화성 정남초등학교의 교표를 바꾸는 노력을 친일잔재 청산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 2-4권은 권역별 친일인물, 친일 관련기념물, 교수-학습과정안을 담았다. 지역 출신 친일인물을 분류하여 그들의 행위들을 정리하고 각종 일제강점기 건축물, 기념비, 송덕비, 기념물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조금만이라도 식민지 역사에 대해 궁금해하고 고민한 분들이라면 이러한 자료의 발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안다. 우리는 책이 나오기까지 고생하신 분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경기도의 후원으로 지역사연구소 중심이신 신대광 선생(원일중학교)과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승은 학예실장이 기획하고, 김진호 선생(원곡고등학교), 이을 선생(원곡고등학교), 이철환 선생(안산디자인문화고등학교), 최도현 선생(단원고등학교)이 함께 집필하였다. 이제 이 역작의 활용방안은 각종 교사연수, 토론회, 발표대회, 다양한 교육활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좋은 자료집은 아쉬움도 있게 마련이다. 우선 경기도 지역에 한정되어 아쉽다. 서울과 경기, 인천은 별개 지역이 아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는 지역 구분이 없었다. 현재의 행정구역 경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많이 아쉽다. 이 자료집으로 서울과 인천이 자극을 받아 이 같은 집필 작업이 이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시·군 단위 기초자치단체의 세부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각 기초자치단체의 문화
원과 이 작업을 함께하면 더 좋을 것이다. 초중고 학생용 친일잔재 관련 교육자료도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학생 수준별 서술의 전문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쉽게 쓰여지고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유산답사 해설사나 관련 업무 종사자 분들을 위한 자료제공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최대한 찾으려 노력했겠지만 사진 자료도 적고 편집과 인쇄가 흑백이어서 조금 아쉽다. 더불어,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이 자료집을 모든 역사 선생님들에게 모두 배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자료집이기에 실제 수업을 위한 선생님들의 또 다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많은 선생님들과 네트워크를 맺어 함께하면 어깨가 좀 더 가볍지 않을까? 교사 연수 때 연수 교육과정으로 담을 경기도교육청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을사늑약 이래로 40년 동안의 치욕의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교육하는 작업은 4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아니 시기적으로 늦어져서 역사의 흔적이 많이 사라진 까닭에 더 오래 걸릴 것이다. 해방 이후 세대가 여러 번 바뀌면서 몇 단계로 성장한 친일파 청산 작업들이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독재정치를 경험한 우리 세대에는 친일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갈증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들은 지난날의 세대만큼 역사문제에 절실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 세대의 역사교육을 책임져야 할 우리의 책임이 막중하다. “제2의 독립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화, 2021/03/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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