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매일신보 첫 보도에 나타난 서울 지역 3·1만세시위의 현장

지역

매일신보 첫 보도에 나타난 서울 지역 3·1만세시위의 현장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5:23

<매일신보> 첫 보도에 나타난 서울 지역 3·1만세시위의 현장

 

• 이순우 책임연구원

 

 

① 경성 종로통 :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를 촉발시킨 탑골공원(파고다공원)의 전경이다. 추가적인 집회를 막기 위해 일본 군인들이 이곳을 장악한 직후 모든 출입구는 폐쇄되고 말았다.
② 덕수궁 대한문 앞 : 이곳은 고종 국장 행렬의 출발점인 동시에 공간 자체가 광장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만세시위군중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교차지점이 되기도 했다. 왼쪽에 있는 것이 대한문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경성일보사(매일신보사, 지금의 서울시청 자리)이다.
③ 경성우편국 앞 : 종로에서 남대문정거장으로 나가거나 덕수궁 대한문 쪽에서 본정통(혼마치)로 이동할 때 교차지점이 되는 경성우편국 앞 광장의 전경이다. 왼쪽에 보이는 조선은행도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선은전(鮮銀前, 센긴마에)’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기도 했던 공간이다.
④ 남대문정거장 앞 :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의 전면 모습이다. 이 자리는 다시 수 만 명이 참여한 3월 5일 제2차 만세시위의 집결지였을 뿐만 아니라 불과 반년 후인 1919년 9월 2일 사이토 신임 총독이 부임하던 날 다시 강우규 의거의 현장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⑤ 조선보병대 앞 : 광화문 앞 옛 삼군부 터(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가 있었고, 그 아래로 헌병대 숙사(宿舍)와 경성제2헌병분대가 나란히 터를 잡고 있었다.
⑥ 미국총영사관 : 독립선언서를 미국총영사관(정동 10번지)에 전달하고 덕수궁 담장길을 따라 되돌아나오는 만세시위행렬의 모습이다. 독립선언의 취지를 전달하고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만세시위 참여자들은 서울 주재 서양 각국의 영사관을 빠지지 않고 방문하였다.
⑦ 본정통 : 일본인들의 중심 거리인 본정통(혼마치, 지금의 충무로) 일대의 거리풍경이다. 만세시위행렬은 강압적인 식민통치의 본거지인 조선총독부가 있던 남산 왜성대를 향해 나아가려다가 이곳에서 일제의 방어선에 막혀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⑧ 종로경찰서 앞 : 다수의 시위참여자가 체포된 종로경찰서 앞의 거리 풍경이다. 왼쪽에 보이는 시계탑 건물이 옛 한성전기 사옥이자 1919년 당시 종로경찰서로 사용된 건물이며, 오른쪽으로 붙어있는 건물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이다. 종로경찰서는 1923년 1월 김상옥 의거의 현장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1919년 3월 1일, 일제는 탑골공원(塔洞公園, 파고다공원)과 명월관 지점(明月館支店, 태화관)에서 촉발된 ‘독립선언’이라는 우리 민족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강압적 식민통치기구를 대거 동원하여 시위참가자들에 대해 구타, 체포, 구금, 살상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이와 더불어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일체의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그러나 조선독립의 대의를 외치는 큰 흐름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이 명백해지자 3월 7일에 이르러서야 이른바 ‘소요사건(騷擾事件)’이라는 제목이 붙은 각 지역 만세시위의 양상에 대한 기사가 처음 신문지상에 등장하게 된다. 이때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1919년 3월 7일자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서울 지역에서 이뤄진 시위양상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3월 1일 오후 2시 반에 학생 3, 4천 명은 경성 종로통 ①에 모여 군중이 부화하여 여러 대로 나뉘어 일단은 덕수궁 대한문 앞 ②에 이르러 한국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일시 대한문 안으로 침입하였다가 다시 대한문 앞 넓은 마당에서 독립연설을 하였고 일단은 경성우편국 앞 ③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다시 남대문정거장 앞④에서 의주통으로 나아가 불란서영사관에 이르고 일단은 창덕궁 문 앞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일단은 조선보병대 앞 ⑤으로 가서 그 영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못하고 또 대한문 앞에 단체에서 나뉜 일단은 미국총영사관 ⑥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다른 단체 약 3천 명은 총독부로 향하려 함으로써 본정통 ⑦에서 이것을 막아 운동은 일시 표면으로는 진정되었고 군중 중에 괴수로 인정할 만한 자 130명을 체포하였으며 처음의 소요가 진정된 후 1일 오후 8시 경에 마포전차종점 부근에 약 1
천 명이 모였었고 또 11시쯤에 야소교 부속 연희전문학교 부근에 학생 약 200명이 집합하였으나 얼마 아니하여 헤어졌고, 2일 정시 20분에 종로네거리에서부터 약 400명이 만세를 부르며 종로경찰서 앞⑧으로 지나가매 경찰서에서는 이것을 제지하고 괴수로 인정할 만한자 20명을 체포하였는데 나머지 군중은 모두 헤어졌더라.
그러한데 이 군중의 다수는 노동자요 학생도 더러 섞여 있었고 3일의 경성은 전일 이래로 매우 고요하여 훈련원 장제장의 장식은 성대 무사히 마치었고 3월 4일에는 각 관공사립학교에 결석생도가 많고 혹은 한 명도 출석치 아니한 학교가 있었는데 그 원인은 불량학생들이 이번 시위운동에 참가치 아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거나 또는 부형이 위험을 염려하여 출입을 금하고 혹은 3월 1일 소요 후 고향으로 돌아간 자가 많은 까닭이라더라.

1919년 당시 20세였던 이학(李鶴)이라는 중동학교(中東學校) 중등과 학생이 있었다.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일리동에 본적지를 둔 그는 공업전습소 학생인 안형선(安衡善)과 함께 경성부 연건동 39번지에서 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3월 1일 아침 낙원동에서 만난 친구 안형선에게서 오늘 파고다공원에서 조선의 독립선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으로 가서 만세시위행렬에 참가하게 된다.
이날 하루 그는 서울 시내의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거의 전 행로에 동참했으며, 3월 5일에 다시 남대문 역전에서 벌어진 제2차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북미창정(지금의 북창동)을 거쳐 대한문 앞으로 나가는 도중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는 상황에 처하였다. 그는 5월 3일 총독부 판사 앞에서 “독립선언을 한다는 것에 찬성하여 파고다공원에 갔다”고 당당히 밝혔는데, 그의 신문조서에는 만세시위에 동행한 행로를 이렇게 적고 있다.

 

안형선으로부터 위의 말을 들었으므로 그와 함께 정오가 지나서 파고다공원에 갔다. 그때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있지 않았으나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점차 사람이 많아지고 마침내 다수의 군중이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오후 2시경이 되니 육각당 쪽에서 누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혹자는 독립신문을 살포했으므로 나는 그것을 주워 보았다. 그러는 중에 군중은 박수를 치고 또 독립만세를 불렀으므로 나도 거기에 맞춰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나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종로로 나와 남대문역전, 서대문 밖, 영성문(永成門) 앞을 거쳐 미국영사관 앞으로 갔다가 거기서 대한문, 종로, 광화문을 거쳐 서대문 밖 프랑스영사관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서소문정, 대한문앞, 장곡천정(長谷川町)을 거쳐 본정 2정목에 이르렀더니 경찰관이 제지했으므로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위의 행로에 나오는 ‘영성문’은 경운궁 선원전 구역에서 신문로 방향으로 나가는 쪽에 설치된 북쪽 대문이며, 1900년에 만들어졌다가 덕수궁 해체과정에서 1920년에 철거되어 사라진 유적이다. 그리고 ‘장곡천정’은 일찍이 한국주차군사령관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3.1 당시의 조선총독)가 자신의 관저로 삼았던 대관정(大觀亭)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소공동(小公洞)’의 일제식 지명을 가리킨다.
이학이 만세시위행렬을 따라 다닌 행로는 앞서 보았던 ????매일신보???? 첫 보도에 기술된 장소들과 거의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3일에 있던 고종 국상일을 넘기고 다시 5일에 열린 제2차 만세시위에 나갔다가 체포되기에 이른다. 비록 닷새 남짓에 불과한 기간이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삶을 통틀어 가장 자유롭고 가슴 벅찬 나날들을 보낸 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0717-2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군함도’의 모든 것이 담긴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이 14일 밤 9시 채널CGV를 통해 방송된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0717-24

‘군함도’ 무비멘터리는 딸과 함께 군함도에 오게 된 악단장 ‘이강옥’ 역 황정민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촬영 현장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품에 임한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 전에 없던 초대형 규모의 세트 제작 과정이 모두 담겨 있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치열한 촬영 현장 속에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촬영에 함께한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의 모습은 이들의 완벽한 호흡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 군함도의 내부와 외부를 고스란히 재현해 영화의 비주얼을 완성한 제작진의 노력과 이러한 세트 제작 과정을 담아내 눈길을 끈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장이 너무 리얼해 어느 장소에서 촬영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의 강제 징용이 있었던 숨겨진 역사를 모티브로 류승완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이며, 파워풀한 캐스팅이 더해진 2017년 최고 기대작으로 오는 7월 26일 개봉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mail protected]

<2017-07-14> 마이데일리

☞기사원문: ‘군함도’ 오늘(14일) 채널CGV서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채널CGV서 방송

☞서울경제: ‘군함도의 모든 것’ 오늘(14일) 채널CGV 무비멘터리 방송

☞이슈데일리: ‘군함도’ 오늘(14일) 무비멘터리 방송…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월, 2017/07/17- 17:02
360
0

[책을 내면서] [서문] [주문하기]

항일음악-표지-앞

▲ 양장, 724쪽. 75,000원 / 노동은 편저. 민족문제연구소 간 

[히스토리뱅크몰]에서 주문하기

0811-2▲ 노동은(1946~2016)

목원대학교 교수·음악대학장, 중앙대학교 교수·국악대학장, 한국음악학회 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음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6년 12월 2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30여 권의 단행본과 400여 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항일음악과 친일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쌓았다. 1996년 단재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2005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음악기학」·「가정성과 직관성」·「만주음악연구」·「제국의 음악가 현제명」 등을 발표했고, 『한국근대음악사』, 『경기음악』(京畿音樂)1·2, 『지영희평전』등의 저서를 펴냈다.

♦ 330곡의 연대별수록 곡 수
⓵ 1860∼1900년대 : 83곡
⓶ 1910년대 : 68곡
⓷ 1920년대 : 72곡
⓸ 1930년대 : 63곡
⓹ 1940년대 : 44곡

1. 『항일음악 330곡집』 발간의 의의

항일의 현장에는 국내외 어느 곳이든 항일음악이 있었고, 우리 민족은 항일노래를 함께 부르며 굳건하게 단결했다. 항일음악은 일제침략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노래를 가리키며, 시기적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노골화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음악이다. 항일음악의 장르는 가요뿐만 아니라 가곡 동요 가극(한유한의 ????아리랑???? 등) 무용(유희 등) 등에 걸쳐 있으며,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등 여러 형태로 보급됐다.

『항일음악 330곡집』일제침략기 국내와 만주 및 중국 관내, 러시아의 원동, 하와이와 미국 본토, 멕시코 지역 등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노래(악보)를 집대성하고, 연대별로 구분한 최초의 항일노래집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 국내외에서 부른 항일가 100여 곡을 새로이 발굴해 수록하였으며, 기존에 알려진 노래를 망라하여 총 330곡을 악보로 복원했다. 작사자와 작곡자의 실명 여부, 가사 원문과 출전, 원곡과 출전, 노래의 성격과 유래, 원곡과의 관계, 보급된 지역, 그 밖의 음악적인 특성 등을 밝힌 점도 특기할 만하다.

 

2. 세계적인 명곡을 활용

항일음악은 국내외 항일 현장에서 가사와 곡조를 창작하여 부른 노래도 있지만 다수는 기존 악곡을 개사하거나 편곡해 활용했다. 기존 악곡은 국내 창가나 민요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많이 선택했다.

국내의 민요를 차용한 노래로는 「광복군 아리랑」 1(아리랑), 「미나리타령」(도라지), 「광복군 석탄가」(사발가), 「광복군 아리랑」 2(밀양아리랑) 등이 있으며, 창작 민요곡으로는 「기쁨의 아리랑」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서양 곡조로는 하이든의 「황제찬가」, 베토벤의 「이 어두운 무덤에」(In Questa Tombao Squra),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의 아리아,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 중 「로만체」(Romanze), 미국의 스티븐 포스터의 「스와니강」, 「켄터키 옛집」, 미국에서 포스터와 쌍벽을 이룬 작곡가 헨리 워크의 「조지아행진곡」(Marching Through Georgia), 「파수꾼이여! 종을 울려라」(Ring the Bell, Watchman) 등을 항일가로 개사하여 불렀다. 특히 진취적이고 용맹한 느낌을 주는 조지아행진곡의 곡조는 경성2, 국문창립기념, 만세가, 구주전장 한인군가, 나라보전, 독립군가1, 보국, 신흥무관학교 교가, 작대, 어린이날 노래, 조선의 자랑등 다수의 항일가와 계몽가로 개사되어 널리 불렸다.

「조지아행진곡」 못지않게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많이 부른 외국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오랜 옛날부터 old long since)이다. 해방 직후까지 “동해물과∼”로 부르는 대표적인 애국가 곡조로 사용되었으며 우리 근현대사에서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노래라 할 수 있다. 독립을 희원하는 「애국가」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찬송가로도, 때로는 ‘졸업가’, ‘망년가’ 등 이별을 노래하는 송가로 불린 감상적인 노래였다. 1900년대 전후로 부른 무궁화가」·애국가」·전씨 애국가, 1910년대의 앞 뫼의 칡같이, 1920년대의 신년축하가조선소년군 단가, 1930년대의 주일학교 교가이 모두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쓰고 있다.

또 많이 차용된 곡조는 아일랜드 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 「아! 목동아」(대니 보이 Danny Boy), 독일 민요 「전나무」(O Tanenbaum), 중국 민요 「모리화」 등이다. 특히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나의 사랑 한반도, 도산선생 추도가, 사랑하는 자유등으로 개사되어 불렸다.

심지어 적국인 일본의 창가와 군가도 이용했다. 오오노 우메와카(多梅稚) 작곡의 철도창가용진가1, 용진가3, 운동1, 운동2, 전쟁과 우리, 조상을 위해, 학도권면가, 혁명군행진곡으로, 나가이 켄시(永井建子)의 소남공(小楠公)메데가1로, 코야마 사쿠노스케(小山作之助)의 일본해군소년군가로, 세토구찌 토오키찌(瀬戸口藤吉)의 군함행진곡조선물산장려가2, 카미나가 료오게쯔(神長瞭月)하이카라 부시(ハイカラ)용진가2, 조국산수가, 승전가, 대감자 혁명가, 유격대행진곡으로 개사해 사용했다.

 

3. 항일가를 창작한 작사가와 작곡가

『항일음악 330곡집』에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사가는 안창호(安昌浩), 김인식(金仁湜), 이범석(李範奭), 김여제(金與濟),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이용준(李容俊), 김창만(金昌滿), 김학규(金學奎), 신덕영(申悳泳), 이해평(李海平) 이다. 특히 안창호거국행, 격검가, 만나생각, 모란봉가, 소년남자가, 심주가, 애국가1, 학도가2, 한반도, 혈성대1 다수의 항일가를 작사해 계몽가로서 음악의 효용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곡가는 이상준(李尙俊), 이성식(李聖植), 김인식(金仁湜),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정율성(鄭律成), 한유한(韓悠韓, 한형석韓亨錫) 으로 이들은 초창기 한국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의 한유한은 광복군이 가장 많이 불렀던 광복군 제2지대가」·국기가압록강행진곡」·여명의 노래」·우리나라 어머니」·조국행진곡등을 비롯하여 오페라 ????아리랑????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정율성은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루쉰(魯迅)예술학원 음악학부를 다녔으며, 연안송·연수요를 비롯하여 팔로군 대합창을 창작하는 한편 루쉰예술학원에서 성악을 가르쳤다. 1942년 옌안(延安)을 떠나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고 조국 향해 나가자」 「혁명가등을 창작했다.

 

4. 참고  

1) 국내 작곡가의 창작곡

작곡가 대표곡 (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성식 「격검가」(4), 「학도가」 2(75), 「복수회포」(108, 학도가 편곡), 「독립가」 3(99), 「소년건국가」(110), 「체육」(138), 「창검가」(323)
이상준 「거국행」(1), 「소년남자가」(38), 「의무」(61), 「해」(79), 「깊이 생각」(90), 「우리의 옛 역사」(122), 「제국역사」(129), 「결사전가」 1(154), 「광복군가」 2(289)
이두산 「선봉대」(247), 「광복군가」 1(288)
이정호 「혁명가」 2(277),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한유한 「광복군 제2지대가」(293), 「국기가」 2(294), 「신출발」(303), 「압록강행진곡」(305), 「여명의 노래」(307), 「우리나라 어머니」(309), 「조국행진곡」(315), 「황하강변의 달」(329), 「흘러가는 저 구름」(330)


2)
항일가를 작사하고 독창한 성악가

성악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용준 「나라 찾으려면」(298) : 베를리오즈, Opera 벤베누토 첼리니, 1막 로만체
「이동녕선생 추도가」(311) : 베토벤,「이 어두운 무덤에」


3)
연대별 대표적인 항일가

연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1860~1910 「거국행」(1), 「격검가」(4), 「대한혼가」(19), 「무궁화가」 2(29)=「애국가」 4(48), 「새야새야 파랑새야」(36), 「소년남자가」(38), 「애국가」 2(46), 「정신가」(70), 「한반도」 2(77), 「혈성대」 1(81)
1910년대 「국민」 1(86), 「국치일노래」(88), 「내 고향을 이별하고」(93), *독립가4(100), 「신흥무관학교 교가」(112), 「연해주빨찌산가」(117), 「작대」(128), 「피묻은 옷」(140), 「혁명가의 노래」(145), 「효순」(151)
1920년대 「단심가」(169), 「독립군가」 2(170), 「두만강」(172), 「부여의 민족아!」(184), 「31 소년가」(187), 「십진가」(191), 「전기가」(204), 「추도가」 1(214), *태평양가(216), 「혼을 위로하노라」(220)
1930년대 「도산선생 추도가」(235), 「민족해방가」(240), 「선봉대」(247), 「우리 영광 끝 없네」(254), 「자유의 기」(257), 「조선의 노래」 3(264), 「최후의 결전」 1(268), 「혁명가」 2(277), 「혁명객의 아리랑타령」(281), 「혁명군가」 1(282)
1940년대 「광복군가」 1(288), 「광복군 아리랑」 2(292), *기쁨의 아리랑(297), 「압록강행진곡」(305), 「조국행진곡」(315), 「조선의용군 추도가」(320),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진군가」(322), 「창검가」(323), 「혁명군가」 2(326)


4)
최초공개 항일가 104

곡번호 곡명 작사자 작곡자
  1860~1900년대
4 격검가 안창호 이성식
37 생욕사영가 정재홍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59 우덕순의노래 우덕순 요한 B. 크래머
65 전씨 애국가 전명운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75 학도가 2 안창호 이성식
  1910년대
84 개천절가 (미상) 헨리 S. 톰슨
85 구주전장 한인군가 (미상) 헨리 C. 워크
86 국민 1 (미상) 카를 빌헬름
88 국치일노래 (미상) 스티븐 C. 포스터
91 나라보전 (미상) 헨리 C. 워크
92 나라의 한 아버지들 (미상) 독일민요(전나무)
94 다시 산 태극기 (미상) 윌리암 H. 돈
98 독립가 2 (미상) 퍼시 몬트로즈
99 독립가 3 이성식 찰스 록하르트
100 독립가 4 (미상) 헨리 C. 워크
102 동반도 옛집 곽임대 스티븐 C. 포스터
104 만주들 장백산인 지암피에트로 토놀리
109 3·1절가 (미상) 로버트 로우리
114 앞 뫼의 칡같이 (미상)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115 어천절가 (미상) (미상)
116 역행가 강영소 루이스 하트소우
120 옥야삼천리 (미상) 요한 C. 린크
122 우리의 옛 역사 (미상) 이상준 원곡
126 자유로 죽고 살아라 기산 아서 F. M. 커스턴스
139 태극기가 창해소년 필립 필립스
140 피묻은 옷 어느 배우 스티븐 C. 포스터
142 학도권면가 (미상) 오오노 우메와카
145 혁명가의 노래 (미상) (미상)
147 협사가 (미상) (미상)
149 환영가 1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에드워드 F. 림볼트
150 환영가 2 (미상) 조지 F. 루트
  1920년대  
153 거기 정순이 쉬는데 동해수부 헤르만 뢰어
157 경성감옥가 (미상) (미상)
158 경축가 2 (미상) 존 B. 다익스
159 고대 은암 시므온 B. 마쉬
160 고향 동원 제임스 L. 몰로이
161 고향 떠나는 길 (미상) (미상)
162 고향생각 (미상) (미상)
168 내 나라 동해수부 토머스 à 베킷
170 독립군가 2  (미상)  (미상)
172 두만강 동원 제임스 I. 러셀
182 반도가(꽃동산반도) 김태연 윌리엄 스테프
184 부여의 민족아! 김창만 루제 드 릴
185 불속에 김창만 빅터 허버트
186 산지조종 태백산 문양목 한국민요(산염불)
192 애국의 피 (미상) 로버트 로우리
194 어머님 생각 (미상) (미상)
198 을지문덕 (미상) (미상)
201 자유의 노래 1 이정대 정사인
204 전기가 (미상) (미상)
205 조선독립가 (미상) (미상)
208 조선반도 (미상) (미상)
209 조선산수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11 조선의 노래 1 (미상) (미상)
213 천도교 청년당가 이광수 (미상)
216 태평양가 동원농부 아브라함 F. 프랑켄슈타인
220 혼을 위로 하노라 김창만 조지 F. 루트
221 흥사단 나아가 이광수 로버트 로우리
222 흥사단 너도나도 김여제 (미상)
223 흥사단 단가 김여제 헨델
  1930년대  
225 고향이별가 (미상) (미상)
226 국민회가 성우 헨리 C. 워크
227 국치가 이화용 토머스 헤이스팅스
228 근화낙원 (미상) 다이엘 D. 에밋
230 기러기 (미상) (미상)
231 나의 사랑 한반도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3 대감자 혁명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34 대장간 박세영 맹오영
235 도산선생 추도가 주요한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9 묵경 한인청년가 황보영주 조지 F. 루트
240 민족해방가 (미상) (미상)
243 사랑하는 자유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44 3‧1기념가 1 이세창 에드워드 F. 림볼트
245 3‧1기념가 2 (미상) 아더 S. 설리반
248 선현추도가 (미상) 아일랜드민요(아 목동아)
249 송구영신 대암생 찰스 H. 가브리엘
253 우리나라 한석원 (미상)
256 응원가 (미상) 헨리 C. 워크
257 자유의 기 (미상) (미상)
258 전쟁과 우리 김준 오오노 우메와카
259 정숙추도가 죽혈 (미상)
270 추도가 3 유진태 헨리 W. 베이커
271 충의열사 추도가 대암생 조셉 P. 웹스터
274 한양감옥 (미상) 태인수
276 혁명가 1 (미상) (미상)
278 혁명가 3 (미상) (미상)
280 혁명가 5 (미상) (미상)
282 혁명군가 1 (미상) (미상)
283 혁명군의 노래 (미상) (미상)
  1940년대
289 광복군가 2 (미상) 이상준 원곡
295 군도를 높이 들고 (미상) (미상)
296 군민도라지 (미상) 한국민요(도라지타령)
297 기쁨의 아리랑 (미상) (미상)
298 나라 찾으려면 이용준 H. 베를리오즈
299 무궁화 (미상) (미상)
302 승리의 깃발 배항진 장춘성
310 우리는 조선의 전사 (미상) (미상)
311 이동녕선생 추도가 이용준 루드비히 판 베토벤
313 전가 (미상) (미상)
321 중국의 광활한 대지위에 이정호 이정호
322 진군가 (미상) (미상)
323 창검가 (미상) 이성식
324 처의 명상 (미상) (미상)
326 혁명군가 2 안정송 로버트 로우리

 

※ 참조
『항일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항일음악 중 5곡의 공연영상을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영상보기 클릭). 이 5곡은 지난 2011년 11월 열린 ‘항일음악회’(주최: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관: 항일음악회조직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 후원: 국가보훈처)에서 공연한 20여 곡 중 선별한 노래입니다. 당시 노동은 교수가 항일음악회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지휘하였습니다.

▶ 항일음악회 연주 노래

048-애국가 4, 작사 한국인 공동, 작곡 스코틀랜드 민요, 1900년대
048_애국가4

305-압록강행진곡, 작사 박영만, 작곡 한유한, 1940년대

305_압록강행진곡

목, 2017/08/17- 14:32
340
0

국정역사교과서공익감사청구_모집

국정교과서 국민감사청구 청구인단 참여하기 http://bit.ly/2fl5lTO

월, 2017/08/07- 17:40
337
0

IDS 피해자 입니다.

사건 이 후 왜 이리도 이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친일파 적폐와 김성훈의 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통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말과 글로써 백성을 기만했다.
2. 국가와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다.
3.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아직도 잘먹고 잘산다.
4. 지식층 권력층과 규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사기 피해자들은)매일같이 피빨리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는 확고 합니다. 그것이 친일파 적폐이든 사회 전반의 적폐이든…
다만, 피해자 구제는 요원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의 파산 변호를 맡으신 변호사님…
변호는 자유입니다.
다만, 이 사회가 아직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니까요.
또한, 이번 변호를 통해 얻은 금전도 자유입니다.
다만, 친일파의 더러운 돈과 김상훈의 돈이 다르지 않음을 피해자들은 아니까요.

부디, 파산을 통해 1/n 구제가 합리적이라는 논리에 현옥되지 마시고, 또한 적폐의 우두 머리인 김성훈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지 마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다시한번 생각하시고, 백성들과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변호를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수, 2017/12/06- 20:39
33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