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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권 지폐를 찍어내던 총독부 인쇄소의 공간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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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권 지폐를 찍어내던 총독부 인쇄소의 공간 내력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17:36

[식민지 비망록 45 ]

조선은행권 지폐를 찍어내던 총독부 인쇄소의 공간 내력
용산 전원국 터는 어떻게 인쇄국을 거쳐 체신이원양성소로 변했나?

이순우 책임연구원

지난 2005년에 사적 제157호인 ‘圜丘壇’의 올바른 소리값이 무엇이냐를 두고 크게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다. 이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숱한 반대의견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보>2005년 11월 16일자를 통해 이것의 독음(讀音)을 ‘환구단’으로 한다는 최종 고시를 냈다. 고종황제의 즉위 관련 내용이 게재된 <독립신문> 1897년 10월 12일자의 기사에 ‘환구단’으로 표기한 사례를 존중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러 모로 그냥 따르기가 어렵다. 우선 해당 일자에 ‘환구단’이라는 표기가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보다 닷새 앞선 <독립신문> 1897년 10월 7일자에는 ‘원구’라고 표기한 구절이 두 차례나 나오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하나의 신문 내에서도 서로 다른 표기가 혼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까닭에 <독립신문>의 특정일자 기록 자체가 절대적인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1915년에 신문관에서 펴낸 <신자전(新字典)>에는 圜의 두 가지 음가 ‘환’과 ‘원’ 가운데 圜丘는 ‘원구’로 발음하는 것으로 명기하고 있다.

 

주한영국임시총영사를 지낸 윌킨슨(W. H. Wilkinson)이 갑오개혁 당시 제도개혁의 내역을 담아 펴낸 <한국정부(The Corean Government)> (1897)라는 책에는 ‘典圜局’을 ‘전원국’으로 발음하는 것으로 표시해놓은 내용이 분명히 남아 있다.

익히 알려진 바 대로 ‘圜’이라는 글자는 ‘환’과 ‘원’이라는 두 가지 음가를 동시에 갖는 경우에 속하므로, 어떤 경우에 ‘환’이 되거나 ‘원’이 되는지를 잘 분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 된다. 이 점에 관해 가장 일목요연하게 인용할 수 있는 자료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이다. 여길 보면 이 글자의 제1소리값인 ‘원’은 ‘둥글다(圓)’ , ‘하늘(天體)’, ‘돈(法錢)’ 등의 뜻으로 새겨지는 경우이며, 제2소리값인 ‘환’은 ‘두르다(繞)’ , ‘둘레(圍)’ 등의 뜻을 지닌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특히, 이 자료에는 ‘圜丘’라는 용어가 ‘원’의 항목에 설명 용례로 직접 등장하는 것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원지방(天圜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의미에 따라 ‘둥근 하늘’ 에 제사를 모시는 ‘둥근 언덕’의 제단은 ‘원’의 소릿값을 따서 ‘원구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결코 ‘환구단’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圜’의 음가와 관련하여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항목은 ‘典圜局’의 발음문제이다. 이 글자는 대개 ‘전환국’으로 읽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역사용어이기도 하다. <독립신문>의 경우에도 한결같이 ‘전환국’이라는 표기만 등장할 뿐 ‘전원국’으로 표기한 사례는 눈에 띄질 않는다. 하지만 <강희자전>에 따르면 ‘圜’은 ‘법전(法錢, 돈)’이라는 뜻도 담고 있으며, 구부원법(九府圜法, 주나라의 화폐제도)처럼 ‘원’으로 읽는 것이 옳다.
실제로 1886년 이래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통용됐던 주화들의 액면표기를 살펴보면, 화폐의 단위가 ‘圜’인 경우에는 한글 ‘원’을 함께 표기하거나 영어로 ‘WON’이나 ‘WARN’ 또는 ‘WHAN’이 새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로 보면 ‘돈(화폐)을 관장하는 기관’을 뜻하는 典圜局은 ‘전환국’이 아니라 ‘전원국’으로 새겨지는 것이 마땅하겠다. 전원국이 처음 이 땅에 등장한 때는 1883년 7월이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83년(고종 20년) 7월 5일 기사를 보면, “임시로 주전소(鑄錢所)를 설치하는 방법으로는 허다하게 계속 공급할 수 없으므로 따로 일국(一局)을 설치하고 상시로 주조하게 하여 경용(經用, 일상경비)에 보태 쓰도록 하며, 설치절목(設置節目)은 군국아문(軍國衙門)에서 마련하여 들이게 하라”는 전교(傳敎)가 있었던 것이 계기였다. 이에 따라 여드레 후인 7월 13일에 전원국관리사무(典圜局管理事務)와 총판(摠辦), 방판(幇辦)을 임명하는 것으로 전원국이 설치되었으며, 다시 7월 17일 기사에는 “전원국이 이튿날부터 불을 붙여 화폐주조를 개시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처음에 전원국에서는 당오전(當五錢)의 주조를 전담하였는데, 이곳에서 근대적인 주화제조가 본격화한 것은 2년이 지난 1885년 8월 이후의 일이다. 이때 선혜청 별창(宣惠廳 別倉)을 조폐기기창(造幣機器廠)으로 정하고 이곳에 벽돌로 만든 공장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886년 11월에 완공을 보았다. 근대시기의 서울전경 사진자료를 보면 서소문 바로 안쪽에 굴뚝이 높이 치솟아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간혹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60척(呎, 피트) 높이의 전원국 조폐창의 굴뚝이다. 이곳에는 독일에서 들여온 각종 주화제조기계를 장치하였고, 독일인 기술자 크라우스(F. Klaus) 등 3명이 고빙(雇聘)되어 몇 종류의 시주화(試鑄貨)가 생산되었다.
그 후 1887년에는 일본조폐국의 조각사(彫刻師), 기관사(機關士), 직공(職工) 등 25명이 고빙되어 주조사업을 개시하였으나 한강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운항에 의존하여 원료를 운반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시험적으로 적동화(赤銅貨) 5문(文) 짜리와 황동화(黃銅貨) 10문(文) 짜리의 두 종류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쳤다. 이러한 상태에서 1892년 12월에 이르러 원료 반입이 편리한 인천 제물포(濟物浦)의 후화촌(後花村)으로 자리를 정하여 전원국을 신축하고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14권에 수록된 「전원국조사보고서(典圜局調査報告書)」에는 인천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까닭을 이렇게 적고 있다.

 

경성(京城)에서 인천(仁川)으로 이접(移接)한 기인(起因)을 문(聞)한즉 해국내(該局內) 소용석탄(所用石炭) 급(及) 기타 공업용 물품건 수입(輸入)은 전수(全數)히 인항(仁港)에 도(到)하는 고(故)로 해물품(該物品)을 경성(京城)으로 전운(轉運)하려니 강(江)에 수리(水利)를 의(依)하나 엄동시(嚴冬時)에는 빙강(氷江, 결빙)되어 항운(航行)이 절지(絶止)하는 때 있고 인마(人馬)를 의(依)하여 반운(搬運)하려면 일년간(一年間) 경비(經費)는 모인(某人)이 하든 계산(計算)을 알아본즉 이만필(二萬疋)에 하(下)치 아니하며 차(此)를 인(因)하여 이접(移接)하였다 하며 (하략)

 

여기에서 보듯이 한강을 이용하는 방법은 겨울철 결빙 관계로,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은 과다한 비용이 발생하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에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 당시 인천 전원국의 감독은 오사카제동회사(大阪製銅會社)의 사장이던 마스다 노부유키(增田信之)가 맡았으며, 오사카조폐국(大阪造幣局)에서 원형(圓形)의 은지(銀地, 은화의 원재료)와 오사카 제동회사에서 동지(銅地, 동전의 원재료)를 공급받아 은화, 동화, 백동화(白銅貨), 황동화 등 5종류의 주화를 압인(壓印)하여 생산하였다.
청일전쟁의 와중에는 일본의 간섭에 따라 1894년 7월 11일에 「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이 제정 공포되었는데, 여기에는 새 화폐를 은전(銀錢, 1냥짜리와 5냥짜리), 백동전(白銅錢, 2돈 5푼짜리), 적동전(赤銅錢, 5푼짜리), 황동전(黃銅錢, 1푼짜리)의 네 종류로 유통하도록 하고, 특히 제7조의 규정에 “신식화폐가 다량 주조되기 이전에 당분간 외국화폐를 혼용할 수 있되 다만 본국화폐와 동질(同質), 동량(同量), 동가(同價)의 것이라야 통용이 허락된다”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다. 인천 전원국에서 만들어진 주화는 완전히 일본의 것과 동일한 것이었으므로, 이 말은 곧 일본화폐가 조선 전역에 무제한으로 유통되는 것을 허가하였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용산 전원국이 폐지된 자리에 들어선 탁지부 인쇄국의 모습이다. 뒤로 이곳의 상징물인 90척(呎, 피트) 높이의 굴뚝이 높이 솟아있다. (통감부, <일영박람회출품사진첩>, 1910)

<애뉴얼 리포트> (1911~1912년판)에 수록된 용산 인쇄국에 종사하고 있는 조선인 여직공들의 제책작업광경이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1898년 8월 15일에는 인천에 있던 전원국을 서울의 용산강으로 옮기는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이 당시 이전 장소로 정해진 곳이 군자감 강감(軍資監 江監; 원효로 3가 1번지 구역) 터였다. 이 자리가 선택된 이유는 갑오개혁 때 각도(各道)에서 올라오는 일체의 물납(物納)이 폐지되고 대전(代錢, 금납)으로 하도록 변경됨에 따라 이곳이 비어있는 공간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용산 전원국은 1898년 10월부터 토공(土工)이 개시되었으나 여러 가지 정세의 변화로 공사가 지연되었다가 1900년 5월에 이르러서야 건물이 대략 완성되고 시운전을 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때마침 한강철교의 완성과 더불어 그해 7월 8일 경인철도의 전 구간이 개통되자 8월 22일에는 인천에 남아있던 제반 기계를 수송하는 일에 착수하였고, 9월 8일 이후 백동화를 압인하는 일이 용산에서 재개되었다. 물론 이곳에서 백동화의 남발이 이뤄졌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러일전쟁 시기에 ‘제1차 한일협약’에 따라 일본정부가 추천하는 재정고문(財政顧問)의 용빙이 강요된 결과 1904년 10월 14일에 임명된 탁지부고문(度支部顧問) 메가타 타네타로(目賀田種太郞)에 의해 이른바 ‘화폐정리사업’의 이름으로 전원국은 철폐되고 말았다. 비록 관제(官制)는 사라졌으나, 화폐정리 탓에 회수된 엄청난 수량의 백동화를 녹이고 절단하는 작업은 1911년 3월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고 알려진다.
전원국이 폐지된 이후 옛 군자감 강감 터를 차지한 것은 탁지부 인쇄국(度支部 印刷局)이었다. 1904년 12월 6일 칙령 제30호 「인쇄국 관제」를 통해 설치된 이 기관의 생성과 변천과정에 대해서는 <경성부사> 제2권(1936), 1016~1018쪽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국내(局內)에 설치했던 인쇄사업에 관해서는 명치 37년(1904년) 10월 전원국의 폐지와 동시에 탁지부 인쇄국 관제가 발포되어 전원국 터는 인쇄국이 되고, 인쇄공장 300평과 제지공장 100평에서 우편절수(郵便切手, 우표), 징세인지(徵稅印紙), 기타 석판(石版)과 활판(活版)에 속한 잡인쇄(雜印刷) 사업만을 존속시키는 것으로 했다. 39년(1906년) 3월 1일 인쇄국 공장 전부가 소실되어 9월에 복구했고, 40년(1907년) 10월부터 한국은행권(韓國銀行券) 제조사업도 기도하여 그해 7월부터 제(諸) 설비공장의 축조에 착수했다. 42년(1909년) 11월 27일 증설의 대공사를 준공하고, 이듬해 11월부터 은행권의 제작업에 착수했다.
이보다 앞서 41년(1908년) 관제개정에 있어서 국(局, 인쇄국)을 특립(特立)의 한 관청으로 삼아, 탁지부대신 관리 아래에 인쇄제지사업의 직영(直營)을 하는 것으로 되었다. 또 이해부터 교과서의 인쇄를 하고, 나아가 수입인지, 수형용지(手形用紙, 어음용지), 소절수(小切手, 수표) 용지류, 국고채권(國庫債券), 각 은행주권(銀行株券), 제2회 농공채권(農工債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고급의 인쇄도 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보듯이 전원국의 기능이 인쇄국으로 전환된 것은 일찍이 이곳에서 지폐 발행을 위한 제지소가 설치된 바 있고, 이와 병행하여 우표와 수입인지 등 관공서에서 필요한 제반 인쇄물을 이곳에서 공급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 시기에는 ‘탁지부 인쇄국’이라는 간판 아래 각종 주권, 채권, 어음, 수표용지 등을 제조하였고, 경술국치 직전의 시점에는 한국은행권의 제판(製版)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또한 교과서를 비롯하여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현행대한법규유찬(現行大韓法規類纂)>과 같은 관찬 간행물들도 모두 이곳에서 인쇄되었다.

조선총독부 인쇄국 관제가 폐지된 다음날인 『조선총독부관보』 1912년 4월 1일자(호외)에는 발행처의 표기가 ‘조선총독관방 총무국 인쇄소’로 변경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개시된 이후에는 이곳은 ‘총독부 인쇄국’으로 승계되었다가 1912년 3월의 총독부 관제 개정으로 인쇄국이 철폐되고 ‘총독관방(總督官房)’으로 소속이 바뀌면서 ‘인쇄소’로 전환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선은행권(朝鮮銀行券) 지폐를 찍어내는 것과 <조선총독부관보>의 인쇄도 이곳에 속한 주요 업무의 하나였다. 그러나 1923년 3월 28일에 이르러 예산절감을 이유로 총독부 인쇄소의 민영화가 추진된 결과, 그 자리 그대로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朝鮮書籍印刷株式會社)가 설립되어 사업 일체를 승계하였다. <매일신보> 1923년 1월15일자에 실린 「조선도서인쇄준비위원회」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이완용(李完用), 박영효(朴泳孝), 송병준(宋秉畯), 민영기(閔泳綺), 한상룡(韓相龍), 조진태(趙鎭泰), 이병학(李炳學; 李柄學), 김승환(金昇煥) 등 다수의 조선인 친일인사들도 회사 발기인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때 친일귀족 박영효는 창립 때부터 사장 자리에 올라 1935년 5월 6일까지 재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은행권은 ‘대일본제국정부 내각인쇄국(內閣印刷局)’에서 제조하는 것으로 이관 처리되었으나, 나머지 총독부 인쇄소의 소관이었던 대부분의 업무는 ‘총독부 고시’의 형태를 거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몫으로 귀착되었다. 예를 들어, 총독부관보의 인쇄 및 발매를 비롯하여 “조선총독부가 저작권을 갖는 여러 학교의 교과용 도서, 교수참고용 도서, 기타 필요한 도서의 번각(飜刻)에 대한 발행”, 그리고 “총독부가 저작하는 조선민력(朝鮮民曆; 책력)의 제조 및 판매”에 관한 권한도 이 회사가 갖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1936년 12월에 종전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터에 신축된 체신이원양성소의 전경이다. (<조선의 체신사업(소화 13년판)>, 1938)

 

<일본지리대계> 제12권 조선편(1930)에 수록된 경성시가도에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옮겨간 ‘육군탄약고(옛 총기제조소자리)’의 위치가 또렷이 표시되어 있다.

 

용산과 마포의 경계지점인 도산(桃山, 모모야마; 지금의 도원동)에서 포착한 용산 방향의 전경이다. 사진의 아래쪽에 건축 공사중인 곳이 일본군의 유곽(遊廓)으로 유명했던 모모야마(1912년에 ‘야요이쵸’로 개칭)이고, 중간에 보이는 건물이 나중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옮겨오는 일본군 탄약고이며, 오른쪽 위로 언덕 너머 굴뚝이 보이는 곳이 당시 ‘탁지부 인쇄국’ 자리이다. (조선타임스신문, <황태자전하 한국어도항 기념사진첩>, 1907)

경성비행장에 근무할 천녀(天女), 즉 에어포트 걸(스튜어디스)의 모집기사에 체신이원양성소가 시험장소로 표시되어 있다. (<동아일보> 1937년 6월 29일자)

 

그 후 1935년 6월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는 종전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인접한 ‘대도정(大島町, 지금의 용문동) 38번지’에 건물과 시설 등을 새로 갖춰 그곳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자리는 원래 대한제국 시기에 총기제조소(銃器製造所)가 설치된 곳이며, 이후 일본군에 접수되어 화약고(火藥庫)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다.
이와 동시에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가 빠져나간 곳에는 체신이원양성소(遞信吏員養成所)가 들어와서 이 구역을 넘겨받았다. 이 기관은 일찍이 총독부가 전기통신, 전신전화의 공무(工務), 항로표지업무 등 특수한 기능을 요하는 체신사업 종사원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8년 1월 21일에 정식으로 설립하였고, 그해 5월 이후 경복궁 서쪽의 ‘창성동 117번지’에 있던 경찰관연습소(警察官練習所, 옛 대한적십자사 및 대한적십자병원 터) 자리를 넘겨받아 사용하던 상태였다.
오래도록 인쇄시설이 포진하고 있던 구역에 총독부 체신국이 새로운 건물을 신축한 연혁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36년 12월 20일자에 수록된 「체신이원양성소, 낙성식 성대 거행」 제하의 기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체신국 체신이원양성소는 금년 6월 원정(元町) 3정목 고대지에 기공하여 공사중이던 바 총부지(總敷地) 7,500여 평에 근대식 양옥이 완성되었으므로 19일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정오경 동 양성소 대교실에서 미나미(南) 조선총독 대리로 오타케(大竹) 내무국장 이하 관공민 150여 명 참석으로 식을 마치고 별실 강당에서 성대한 피로연이 있은 후 오후 2시경 산회하였다.

 

<경향신문> 1950년 5월 21일자에 게재된 ‘국립체신고등학교(원효로 3가 1번지)’ 관비생 모집공고이다.

 

이로부터 이 공간은 일제의 패망 시점까지 조선총독부가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한 기반시설로서 우편, 전신, 전화, 항로를 비롯한 여러 체신기관에 종사할 요원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연혁 때문인지 해방 이후에도 이 구역에는 체신관련 교육기관이 그대로 점유하였다. 실제로 이곳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에 ‘조선체신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국립체신학교’로 다시 바뀌었으며 이내 ‘체신대학’의 명칭을 달고 운영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체신고등학교’도 함께 설립
되었으나, 1957년 7월 10일 「체신제학교설치령(遞信諸學校設置令)」에 따라 종전의 체신학교 대학부는 ‘체신학교’로, 종전의 체신학교 고등부는 ‘체신학교 병설 체신고등학교’로 각각 위상이 재정비되었다.

옛 용산 전원국 자리이자 총독부 인쇄국 자리이자 체신이원양성소 자리였던 원효전화국 터는 2018년 4월 이후 ‘KT 용산 IDC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골목길은 1900년에 개통된 용산포구 행 전차(電車)가 오가던 길이기도 하다.

 

1962년 1월 1일에는 두 학교가 폐지되고 체신공무원훈련소가 설치되었으며, 체신공무원교육원과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 등의 명칭변경이 있었다. 1999년 5월 12일에는 새로운 청사가 완공되면서 1936년 체신이원양성소가 이곳으로 옮겨온 지 60여 년 만에 충남 천안으로 이전하기에 이른다.
이와는 별도로 1976년 1월 16일에는 이 구역 안에 원효전화국(元曉電話局)이 신설된 바 있으며, 이 자리는 원효전신전화국과 국제전화국 시절을 거쳐 2018년 4월 이후 지하 5층 지상 5층 규모의 ‘KT 용산 IDC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상태이다. 현재는 이 앞에 ‘군자감 강감터’라는 것을 알리는 문화유적표석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이곳이 1898년 이래 용산 전원국과 총독부 인쇄국과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시절을 거쳐 체신이원양성소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노골적인 경제침탈이 거듭되었던 공간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정도는 추가로 설치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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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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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대통령이 우리 최고의 무역흑자국인데 사드로 무역마찰중인 중국을 방문 힘든 외교협상 끝에

우리헌법에도 민족간 전쟁을 만들수있는 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적시해놓았듯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큰성과를 받아왔고 대중무역도 원상태로 돌아가며

 

이명박그네가 망쳐논 남북관계를 다시 평화적 한반도로 바꿔놓고있는데 친일매국노 후예당인 한국당등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북한역시 핵무기는 미국견제용이지 한국공격용이 아니라고 밝혀도 올림픽까지 북풍조작 안보팔며 이념조작하는데

 

요번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로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이 자기들 하키팀 출전못하더라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의 평화통일위한 한국의 남북단일팀 결성위해 양보한것인데도

친일매국노가 만든 한국당등 친일파가 변신한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이라 평화통일 방해위한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것으로

 

자기민족을 아끼는 민족주의와 자기국가를 최고로 사랑하고 타국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진짜 우익보수정신인데

친일파가 변신한것들이라 일본에 충성하다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일본편들어 조국강제분단을 돕고 애국국민을 학살한것으로

 

우릴침략해 36년간 우리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아녀자 수십만명을 위안부로 끌고가 학살했으며

강제동원과 엄청난 우리재산 약탈하고도 피해배상도 않하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우리땅인 독도를 넘보듯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이 세계에도 로비하여 독도를 일본땅이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세계인을 속이는것이며

미국과 짜고 올림픽주관사인 미국NBC가 한국을 일본식민지로 근대화됐다고 세계에 거짓방송케하듯이

한국내 뉴라이트에게 간첩처럼 지원금주며 매국노를 양성해 일베나 뉴라이트교수나 선생 또 정치언론인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그것들이 일본침략을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한 역사책도 만들고

미국 역시 북한이나 중국등지서 죄짓고 도망온 탈북자등 돈주면 동원되는 가짜보수들에게 돈주고 냉전조작시키니

미국일본서 돈받고 냉전조작과 데모하는 것들도 미국 일본 간첩혐의로 처벌해야할것인데 그 간첩같은 매국노들이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잘한짓이라고 거짓말하며 평등한 동맹관계가 아닌데도 한미동맹이 최고라고 떠들고있지만

 

미국지시가 있어도 한미일 삼국군사동맹을 반대한다는 역사적인 문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도 감동시켜 한중관계가 좋아지는데

야당대표란것이 아베에게 찾아가 머리조아리며 굴욕적 위안부나 군사협정을 일본편드는 친일파 변신 더러운것들로

요번 일본의 내정간섭이나 한반도기에 독도표기 항의와 미국NBC 망언방송에 조용하고 북한단일팀이나 북한응원단 흠집잡기에 혈안이며

뉴라이트 이명박그네에 충성하던 친일파가 만든 조중동과 문화와 연합 경제신문등등 쓰레기언론과 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과거 미국옆 쿠바가 쏘련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돼었는데도

박근혜가 전쟁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탄두를 한국인 죽어도 한국상공서 터트린다고 사드미사일기지를 한국에 들여와

중국이 사드 레이다로 중국 감시와 미사일로 중국을 폭격할수있다고 반대하고 러시아도 반대해

 

전쟁시 중국 러시아가 폭격 일순위가 사드기지라했고 무역거래와 관광객 끊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문통이 해결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가짜우익 보수당과 종편과 신문이 문대통령 까대기에 총력기울이며

이명박 똘마니인 간철수는 본색을 드러내며 보수당과 통합한다고 호남을 배반하며 이명박 지시로 문대통령을 비난하듯이
이명박그네가 감옥안가려고 마지막 발악으로 세금도둑질한 돈풀어 한국당등에 정치자금주니

정치보복이라 선동하며  세금도둑을 편드는 더러운 정치꾼들이며

이것들이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며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핵무기말고도 휴전선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공격으로  6.25때도 삼백만명이 숨졌지만

지금은 수천만명이 숨지거나 멸망할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반국가 반민족 매국노들이란걸 잘나타내준 작태이므로
이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과 요즘 북한핵사태와 애국애족심이 투철한 외국과 다르게 미국 일본에 충성하는 한국의 가짜우익 가짜보수들과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보다는 남북간 이간질시키며 친일파가 만든 한국당등 수구세력이용 냉전조장하는 이유도 집중 조명해보자

 

1994년 제네바에서 영변핵발전소로 핵무기 만들수있다하여 가동중단 대신 미국일본이 중유발전소 지어주고 중유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이 영변핵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핑계를 대고 제네바협정을 깨트린후 북한에 선제공격 위협하여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짓고 핵무기만들게 유도한게 음흉한 미국과 일본으로

북한핵만드니 미국은 한반도서 전쟁날것처럼 위협하며 한국에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많이 팔아먹었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인 한국주둔비용도 더뜯어갔으며 서해미군기지와 일본서 쫏겨나는 해군기지도 우리세금으로 짓고
일본은 전범국가라 군대도 못갖고 전쟁도 할수없는 나라인데 미국과 짜고 북한핵 핑계대고 침략할수있게 바꾸는중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 짜고 구상중인 한미일 삼국 연합군사동맹이 과거에 비슷한 매국적인 전략협상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1963년 불법쿠테타 성공후 일본가서 만주총통으로 직속상관이었던 전범 기시 수상에게 경례하며

우리땅이던 독도 앞바다를 일본요구대로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최악질 매국노로

당시 미군과 일본군 또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지금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 박정희 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자국보호란 핑계로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이렇게 한국인 생명 무시하는 미국이 1905년에도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만드는데 적극 협조한 더러운 미국으로
해방후 독일처럼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731부대 살상무기정보를 준 살인마 731부대장도 전범처리 않하듯이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를 뇌물로 미국에주고 부탁 일왕도 전범처리않고 조선을 일본대신 강제분단시켜

당시 독립군과 애국국민과 제주도민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이승만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후
정부와 군경 요직에 기용 강제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와 애국국민과 제주도민

또 독립군을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 암살과 학살한것인데 사실은 조국분단 반대자들이 진짜 우익 보수인데

 

미국과 일본과 매국노들땜 강제분단되어 분단때문에 300만명이 숨진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것으로

일본은 6.25전쟁때 전쟁물자 판매로 엄청난 소득올려 지금도 남북간 전쟁을 부추기는것이며
미국은 우리세금으로 한국주둔 미국세력 확장하고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듯이 한국에 엄청난 피해준것으로

그래서 얼마전 양심적인 주한미국대사 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이

 

전쟁나서 폐허로 약소국이 안돼고 한국이 독일처럼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되면

미국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책임을 물을것이며 친일매국노 박정희 이용해 침략배상을 제대로 않한 일본이
침략배상까지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할까봐 죽어라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더러운 미국 일본이고
60억불 부정축재한 박정희와 박근혜 서방인 최태민과 수십조 도둑질한 최순실 박근혜와

수백조원 나라돈 날리고 수십조 뇌물받은 이명박도
뉴라이트 소속이라 미국 일본 편들어 남북간 냉전만드는것으로 남북간 자유왕래와 교류를 막으려고 금강산 관광도 깨고

[이상한 관광객 한명이 잠자는 밤중에 경계선 철책을 넘어 사살됨] 업주들 이익 엄청 발생하는 개성공단도 깨고

휴전선이 불확실해 마찰이 잦아 안전위해 만든 서해평화 어업협정도 깨트린것이다

 

(박정희 불법집권기간은 저개발 아시아가 선진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이 다발전할때인데도

당시 장면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세워놓은걸 설계도 보고서 따라했으며 기업과 짜고 근로자 최저임금으로 착취후

경제살려야할 세금 60억불 박정희가 도둑질해 당시 북한 필리핀 싱가폴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등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경제 훨씬못살린거 세계경제발전도표에 다 나와있으며

 

박정희가 60억불 도둑질해 스위스계좌로 빼돌린건 기업서 돈뜯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신 아들이 미국 프레이져 국회청문회가서 증언했듯이

 

만주서 독립군들 많이 죽인죄로 해방후 처형이 무서워 도망다니던 박정희는 이승만이 일본장교 모집하자 국군에 입대후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맡아 간첩질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자 조사관이었던 만주 일본장교 매국노인 백선엽에게

군대내 공산조직과 자기형 친구까지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였고 백선엽이 목숨살려주고 군대 복직까지 시켜

 

조카에게 마음준 김종필시켜 불법쿠테타 계획후 본인은 실패하면 튀려고 육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변장후 기다리다

쿠테타 성공했다는 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로 덕분에 백선엽이 인천서 박정희믿고 불법을 마구 저질렀고

박근혜는 자기멋대로 북한방문해 김일성 김정일을 칭송과 선물바치고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생가에도 묵념한 진짜 빨갱이 가족이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해 전국민이 일본을 비난하고 성토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을 비난하였고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지시로 일본함정을 내쫏앗으며

 

또 세계경제인들이 한국방문하였을때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가 참석한후 한국경제발전을 망치려고 경제인들에게

“한국의 좌파정권에 경제협력이나 한국에 투자하지말라”고 이념조작하며 어이없는 매국발언까지한 가짜보수 진짜 매국노들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등 한국당 전신이 세금도둑질과 외국에 빚을 엄청만들어 IMF만든걸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살렸듯이

현재도 이명박그네가 나라빚 엄청만들고 정경유착 세금도둑질로 망쳐논 한국경제를 살리려하는데

마치 문재인정권이 경제망친것처럼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시비걸고 유언비어퍼트리며 발목잡는것이다 )

 

화, 2018/02/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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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솔직히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북한에서 보내오는 진심이다.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북한에 대한 나름의 편견과 오해가 많이 있는데, 정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관료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하기로 한 것은 꼭 하고, 할 말 안 할말 꼭꼭 다 하고, 속이 시원하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강대국한테는 깨갱하는게 다반산데
북한은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속이 시원할 정도로 국민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것 같다.

이런 면은 문재인 대통령님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적폐놈들 땜시롱 어렵겠는 부분도 있겠는데, 가끔 실망할때가 많이 있으니!)

북한에선 이미 남한의 평창올림픽을 마치 자신의 행사인듯 온갖정성과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언론보도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심지어 종편이나 조중동 쓰레기 언론에서도 그런 상황이 보인다.

우리도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에 많이 많이 참가하면 어떨까?
북한에서 이번에 300명이 덜 왔는데, 우리는 300명이상 방북을 하면 정말 보기 좋겠다!

이번처럼 찌질하게 비용문제 처리 같은 얘기는 안나오게…(아휴 쪽팔려…독도 표기도 못하면서…)

아무튼 인정할 것은 인정~!! 김정은 위원장 겁나 멋찌다~!!

화, 2018/02/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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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네~외세는 물러가라~

화, 2018/02/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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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우리민족 역사에 우리가 이렇게 강대한적이 있었던가!!
북한에서 온갖 모진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핵무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게 사용된다는 것을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북한에서 핵무력은 남한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된다.

실제 아베와 펜스가 평창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에서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지만 정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남과북이 하나로 뭉치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대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낸 핵무력이 우리민족의 핵으로 될 수 있게
남과 북이 계속해서 힘을 합치길 소원해본다.

왜적을 목숨으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과 이름난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 장군들도 하늘에서나마 크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화, 2018/02/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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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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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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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연합뉴스) 경기 화성시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만든 독립운동 자료집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자료집. 2018.2.12 [화성시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28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집은 화성시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콘텐츠발굴 사업에 의해 만든 것으로, , 시로부터 위탁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3년부터 3년간 화성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11명을 인터뷰해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변순용씨,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홍면옥 선생의 출옥기념 사진, 변기재 선생의 친필엽서 등 독립운동 자료 사진도 다수 발굴됐다.

화성시는 자료집을 전국 국공립대학의 도서관·박물관·연구소, 화성시 관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화성지역 독립운동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인터뷰 자료로 2권의 자료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날 접견실에서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분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자료집 발간

※관련기사

☞세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신문: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 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뉴스통신: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아시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화, 2018/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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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수원시

연화장

측백실

전달자호영

총무국장 심재욱

수원시 영통구 하동 25

자료사진은 경남민언련

사랑의하모니!

수, 2018/02/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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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위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마자들이 친일세력 후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데…

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목, 2018/02/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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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일, 2018/02/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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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5차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이번 5차 발굴조사지역인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경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5차 발굴조사 예정지인 아산시 역시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는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

【붙임】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자료집. 끝.

월, 2018/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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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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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2/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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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UaxKw9Ndq34

화, 2018/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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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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