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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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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02: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FM 94.5 (18:10~20:00)
■ 방송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 대담: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이 그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 해볼 얘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 관한 얘깁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 지낸 ‘심산 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이하 홍소연)>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경교장이 여관이냐, 이런 질문도 받으셨다고요?

◆ 홍소연> 네, ‘장’ 자가 붙었으니까.

◇ 이동형>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네요. 백범의 숙소이자 안두희에 총에 맞아 서거했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홍소연> 경교장은 공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유일한 국내에 있는 청사이고요. 그다음에 독립운동가들의 목표인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협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안두희로 상징되는 친일 반민족 세력의 흉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진도 기억이 나는데, 경교장 창문이 총탄에 깨진 사진이 있었잖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습니다. 백범 선생님이 2층에 앉아계셨는데, 창가에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안두희가 사선 방향에서 총을 쏴서, 모두 네 발을 쐈는데, 그중 총알 두 개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고 해서 경교장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재연했습니다.

◇ 이동형> 일제하고 싸우면서도 중국 망명길에서도 총탄을 맞았습니다만, 그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고, 해방된 조국에서 어쨌든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서거하셨는데요. 그 장소가 경교장이고요.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소유라고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복원이 됐습니까?

◆ 홍소연>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경교장 뒤와 옆이 병원하고 붙어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 되어 있고, 원래는 병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 넓은 뜰이었어요.

◇ 이동형> 백범 선생님 서거하시고, 우리 백성들이 경교장 앞에, 방금 말씀하신 뜰에 엎드려서 통곡하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그게 주차장으로 변했다?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네요.

◆ 홍소연> 그래서 사실은 경교장이 어쨌든 강북 삼성병원의 소유고, 병원 시설로 쓰고 있다가 병원이 양해를 해주어서 옛날처럼 복원을 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뜰이 주차장으로 있다 보니까 장소가 약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는 살짝 위험한 그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죠.

◇ 이동형> 실장님, 지금 경교장에서 해설 봉사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경교장 오시는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 홍소연> 네, 그렇죠. 처음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가 병원만 복원되니까 이제는 뜰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 이동형>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할 것 같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의 마지막 윤경빈 선생은 경교장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 성우> “봉영위원회에서 백범선생은 경교장에 모시고, 나머지 국무위원들 대부분은 한미호텔에 모시고, 또 부통령 되시는 분은 경교장에 며칠 묵으시다가 삼청동에 모시기로 했어요. 이시영 선생은 경교장에 계셨어요, 엄항섭 선생하고. 백범 선생 임시정부 선전부장이고 대외활동 많이 해야 하니까. 임시정부 선전부를 경교장 아래층 오른쪽 방에 모셨어요. 봉영위원회에서 처음에는 대단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스테이크 먹고. 이런 생활 한 20일 했나요? 스테이크도 없어지고 조반도 업어지고, 밥도 아무 것도 안주는 거야. 중국서 독립운동 할 때나 비슷한 생활을 했어요. 해방 후 돌아와서 임시정부 모든 일은 거기서 다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청사라고 할 수 있죠. 이승만 대통령은 뭐라고 할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편할 때는 나오시고 불편할 때는 안 나오시고. 그 이후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번, 한번 꼭 왔었어요.”

◇ 이동형> 윤경빈 선생의 회고를 들어봤는데요. 해방 이후 조국에서 임시정부가 이런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홍소연> 그것은 어쨌든 정부로서의 환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겠죠.

◇ 이동형> 개인 자격으로의 환국은 미군정이 그렇게 요구한 것이지 않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죠.

◇ 이동형> 미군정을 왜 그렇게 요구했을까요?

◆ 홍소연> 어쨌든 당시 미군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만약에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한 땅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혹시 임시정부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해서 정부로서의 활동을 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외세인 미국과는 당연히 충돌이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 이동형> 이승만 박사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들어오지 전에 일본을 거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고, 하지도 만나고, 굉장히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어왔던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푸대접 받았습니다. 환영받지도 못 했었고. 미군들만 몇 명 나와 있었고.

◆ 홍소연>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하면, 우리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과정이 이어갔잖아요. 빨리 들어왔으면 그런 게 조금 더 원활히 수습이 되고, 그렇게 진행돼서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임시정부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인 여러 세력들이 생기고 하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나중에 임시정부 2진이 들어오는데, 2진은 더 홀대받고 들어왔으니까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 백범 선생님의 환국 날짜가 11월 23일이었는데요. 다음 날 백범은 하지 미군 사령관과 아놀드 미군정 장관을 방문합니다. 저녁 6시에 경성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서 2분 동안 귀국방송을 하는데요. 백범 연설 듣고 옵시다.

◆ 성우>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이동형> 이렇게 이 방송이 나가고, 또 신문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은 임시정부 백범 선생이 들어왔구나, 뒤늦게 알았던 거잖아요? 미군정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여운형 선생 같은 경우도 하지가 일본 앞잡이 아니었냐, 이렇게 오해하기도 했었고. 결국은 미군정이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 홍소연> 네.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 백범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임시정부 활동은 경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무위원 회의도 개최되고, 신탁통지 반대운동도 주도하고, 경교장에서 있었던 임시정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홍소연>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탁통치 반대운동, 그다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기획하고, 실천한 곳입니다. 신탁통치 문제는 45년 12월 말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인데요. 임시정부로서는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일제에게 길게는 36년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4개국의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신 분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당시 그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하고, 경교장이 그 무대가 되어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 이동형> 48년 4월 19일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에도 넘어가면 김일성한테 이용만 당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 결과는 아마 백범 선생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백범 말대로 마지막 독립운동, 이대로 가면 조국은 분단되고, 서로 피를 흘린다. 결국은 또 그렇게 됐고요. 그래서 마지막 노정객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이는데요.

◆ 홍소연> 저는 최근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유심히 보면서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 2개를 들고, 1932년 1월 8일 동경에 가서 폭탄을 던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구 선생님이 그 폭탄 2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일본이 상해를 침략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군이 10만 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군함이 80척이 뜨고, 비행기가 300대가 떠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든요. 우리는 수류탄 2개 만들기 위해서 1년이 걸렸는데. 만약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독립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됐겠죠. 남북 협상도 꼭 당장에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이게 가야 할 길이어서 그 첫 걸음을 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가고 또 가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죠.

◆ 홍소연> 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계속 또 가고, 가고, 해야 한다. 지금도 가고 있고요.

◇ 이동형>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했을 당시, 백범의 축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우> “본인은 일찍이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해서 따라서 말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마디 글자를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의장단과 각 정당 단체 대표 여러분, 조국 분열의 위기를 만구하기 위하야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이 땅에 회집하야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참석하게 된 것은 실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발전이며 이와 같은 성대한 회합에 본인이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백범 선생 본인의 육성을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고 하는 게 그래도 다행스럽네요.

◆ 홍소연> 제가 알기로는 이 자료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위에 올라갔을 때 확보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미국에서 그 자료를 찾아오고요. 이 날 김구 선생님의 요지는 뭐냐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반대다,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남쪽에서 오해를 해서 마치 남한에서만 반대하고, 북한에서는 찬성한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더 김구 선생님에 덫을 씌운 거죠.

◇ 이동형> 지금도 가짜 뉴스가 문제입니다만, 과거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으니까요. 신탁, 반탁, 문제도 가짜 뉴스가 등장했었고. 백범은 하나의 나라를 꿈꿨습니다만, 결국 역사를 백범의 예고대로 흘러갑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요. 백범 김구가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겁니다. 그날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의 증언입니다.

◆ 성우>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20분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공주에서 ‘건국 실천원 양성소’ 입소식이 열릴 예정이었어. 그런데 당국의 탄압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지. 소식을 들은 백범은 울적해 했어. 붓글씨나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 안두희가 찾아온 거야. 나는 안두희를 2층으로 안내했어.”
백범 : “언제 왔느냐”
안두희 : “어제 왔습니다.”
“안두희를 백범에게 인사시키고, 나는 식사 마련 때문에 지하실 식당으로 갔어, 그러고 한 2~3분이 지났을까.”
안두희 :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 이동형>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경교장으로 가봤는데요.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날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헌병대들이 경교장 주위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두희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의심은 계속 드는 거고요. 그 이후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만, 석 달 만에 감형돼서 풀려나고, 군에 복귀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군납 업체 특혜를 받아서 상당한 부를 강원도에서 일구게 되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습니다만, 누가 안두희를 사주했을까.

◆ 홍소연> 흔히 하는 이야기가 제3세계에서의 암살 사건에는 그 뒤에 반드시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 이동형> 어쨌든 반통일세력이었을 것이다.

◆ 홍소연> 네, 친일, 반통일세력이.

◇ 이동형>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백범 선생 암살당하기 20일 전에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경찰들이 습격한 건데, 반민족행위자들,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시키고, 마지막으로 20일 뒤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이제부터 정말 친일 활동 했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해방 후 조선에서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버린 것이죠.

◆ 홍소연> 네, 저는 반민특위 와해의 마침표가 김구 선생님 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만약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 홍소연> 적어도 지금처럼 기득권들이 불의로 상징되는 세상은 아니겠죠.

◇ 이동형> 경교장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우리 방송 듣고 경교장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그냥 가면 됩니까?

◆ 홍소연> 네, 월요일 쉬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일정하게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요. 그것을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이라는 데 들어가서 예약 신청을 하면, 저처럼 전문적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어떤 설명을 해주시는 거죠?

◆ 홍소연> 저는 주로 우선 경교장의 의미, 그리고 또 백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지금 우리 역사 속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 이동형> 내부는 백범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그대로 복원한 건가요?

◆ 홍소연> 네, 사진 자료나 기타 자료들이 많아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층고가 높다 보니 복원하기 위해서 천정을 뜯었더니 천정 쪽은 거의 그대로 살아있어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지난 2월 26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는데요. 4월 11일은 임시정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 홍소연> 딱 100년이죠.

◇ 이동형> 이 날 경교장에서 국무회의하면 어떨까요?

◆ 홍소연>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오늘 질문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2019년에 앞의 100년을 기념했다면, 과연 100년 뒤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과연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를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을 지낸 홍소연 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실장님은 심산 선생 기념관 전시실장을 함께 맡고 있으니까. 심산 선생님 기념관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 홍소연> 거기는 일요일에 쉬어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보통 박물관하고 틀을 똑같습니다.

◇ 이동형> 3·1운동 있을 때 민족대표로 우리 유교가 빠지지 않았습니까? 심산 선생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데.

◆ 홍소연>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을 하시면서 그때 심산 선생님 나이가 40이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 ‘심’ 자가 맹자의 사십부동심에서 가져온 심이거든요.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산처럼. 그래서 호가 심산입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백범 기념관, 또 심산 기념관, 여러분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마무리하면서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 대사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 성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9-03-28>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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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남양주양평가평시민실천위 초청강연에서 “이제 3.1혁명이라 불러야”

[구리=경기인터넷뉴스] 3.1혁명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초청 강연회가 24일 오후 3시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3.1혁명 100년 구리남양주양평가평시민실천위원회’(위원장 김거성, 이하 시민실천위)가 주최하고 구리시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강연회에는 350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과 안승남 구리시장, 박석윤 구리시의회 의장 및 시의원들 그리고 나태근 자유한국당 구리시당원협의회 위원장 등 내·외빈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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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인터넷뉴스

시민실천위 이주연(구민교회) 사회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국민의례 후 김거성 위원장의 내빈소개와 동화라온앙상블의 ‘천개의 바람’연주에 이어 독립군가를 제창한 뒤 이준식 관장의 강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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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중인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경기인터넷뉴스

항일독립운동가이며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로 친일반민족행위와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고 ‘일제강점기 사회와 문화’를 저술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이날 강연에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특히 3.1운동은 대한민국이 출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에 3.1운동은 3.1혁명을 바꿔 불러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3.1혁명을 비롯한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평화를 지향한 운동이었다. 또한,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동포라는 사회동포주의에 입각한 운동이었으며 모든 인종과 민족의 평등을 지향한 운동이었다.”고 정의했다.

마지막으로 이준식 관장은 “독립운동과정에서 이름과 후손을 남기지 못한 무후 독립운동가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그동안의 관 중심 행사에서 벗어나 ‘民-官 협력’으로 3.1절 100주년 첫 기념행사를 치른 시민실천위원회는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3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한용운, 오세창,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있는 망우공원역사기행, 김삼웅(前독립기념관관장)선생 초청 강연회를 구리시와 남양주시 후원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또한, 몽양 여운형 기념관/생가 및 식민지역사박물관기행, 지역 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 조사하고, 일상에서 친일청산 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서의 평화통일운동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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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군가를 제창하는 시민들

<2019-02-24> 경기인터넷뉴스 

☞기사원문: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3.1혁명은 대한민국 출범의 결정적 계기”

일, 2019/02/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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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一人當年平均所得三萬弗

 

數値衆民笑(수치중민소)

朝廷不答酬(조정부답수)

誰貧誰大富(수빈수대부)

或者唱狂謳(혹자창광구)

 

국민 한 사람當 연평균 소득 三萬 달러

 

셈한 값에 많은 백성이 비웃건만

朝廷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네

누가 가난하며 또 누가 大富인가

어떤 者는 미친 노래를 부른다네.

 

<時調로 改譯>

 

많은 백성 비웃건만 朝廷은 대답 않네

누가 가난뱅이며 또 누가 큰 富者인가

오호라! 어떤 사람은 狂歌를 부른다네.

 

*數値: 계산하여 얻은 값 *衆民: 많은 백성 *答酬: 수답(酬答). 묻는 말에 대답함.

 

<2019.2.25, 이우식 지음>

월, 2019/02/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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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풍·엔카풍도 수두룩…도교육청, 친일 교가 개선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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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교육청 청사 전경 [전북교육청 제공]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지역 학교 25곳이 친일 작곡가나 작사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도 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도내 모든 초·중·고교 교가를 분석한 결과 25개 학교가 친일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25일 밝혔다.

교가에 일제 잔재가 남은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0곳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성태와 이홍렬이 각각 8곳, 김동진이 6곳, 현제명이 2곳, 김기수가 1곳의 교가를 작사 혹은 작곡했다.

친일 작곡가 제자들이 만든 교가도 적지 않고, 195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 중에 일본 군가풍, 엔카 풍 교가도 상당하다는 게 도 교육청의 설명이다.

이들 교가에는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등 표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교육청은 전북중등음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친일 교가 개선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25개교 중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작곡이나 편곡 등을 지원한다.

전북교육청은 현재 교육 방향이나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가사는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쳐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역사교육도 강화한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사제동행 국회 역사체험학교’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역사 인문학 캠프’ 등 학생 참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한다.

역사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담은 역사교육으로 아이들을 건전한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02-25> 연합뉴스

☞기사원문: 전북교육청 “25개 학교 교가 친일인물이 작사·작곡”(종합)

※관련기사

☞뉴스1: 전북교육청, ‘일제 잔재’ 교가 교체 운동 본격 추진 

☞노컷뉴스: 일제 대표하는 ‘군가’와 ‘엔카’, 교가 사용 학교 수두룩

☞서울신문: 전북 학교 25곳 교가 친일 작곡·작사가가 만들어

☞포커스데일리: 전북도교육청, 역사바로 세우기 앞장선다 … 3·1운동 100주년 맞아 

월, 2019/0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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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 교육감 기자회견 열어 친일잔재 청산, 친일인명사전 배부 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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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5일 오전 울산시 중구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2019.02.25. (사진=울산시교육청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시교육청이 교육현장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는 동시에 친일잔재 청산에 나선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25일 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노 교육감은 이날 “시교육청은 대한민국 건립의 뿌리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교육 독립운동 찾기에 나선다”며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독립운동과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 학생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그 뜻을 바로 새기고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100년이 바르게 기록된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미래가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노 교육감은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교와 학교터에 QR코드가 포함된 표지판 설치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 ▲사업 추진연구회 연구결과 알리기 ▲교육 분야 친일잔재 청산 ▲관내 중·고등학교에 친일 인명사전 배부 ▲울산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동참 등을 추진한다.

먼저 병영지역 3·1 만세운동이 시작됐던 병영초등학교(옛 일신학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통해 QR코드를 시연한다.

병영초 뿐만 아니라 시교육청과 울산초, 울산노동역사관, 보성학교터, 언양초 등에 표지판을 설치해 울산교육 독립운동 역사체험 지도를 만든다.

이를 통해 휴대전화로 손쉽게 연구자료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학교 중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관내 학교에서 차례대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현판 제막식을 연다.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사업으로는 오는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육분야 독립운동가들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해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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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배병수 기자 = 6일 울산시 중구 병영사거리 일원에서 울산광역시중구문화원(원장 박문태) 주관으로 열린 제99주년 울산 병영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에서 참가들이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2018.04.06. [email protected].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세빈 선생과 서진문, 이효정, 이무종, 박상진, 최현배 선생 등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한다.

공훈록과 신문잡지 자료, 학적부, 졸업대장, 재판기록 등을 일괄 조사해 알려지지 않은 학생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기록하고 추모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9월 발족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심포지엄, 보고회, 전시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역화교재에 울산의 독립운동을 담는다.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해서는 TF팀을 구성해 학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교육계에 남아있는 친일잔재 사례를 정리,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또 친일잔재 청산을 국어와 역사, 음악 교과학습에 연계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학습활동을 권장한다.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친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사전을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부한다.

노 교육감은 “시교육청은 일회적 기념사업이 아니라 연간 지속사업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에 나서겠다”며 “대한민국의 튼튼한 기초를 세웠으나 잊혀진 독립운동 교육자를 찾아내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9-02-25> 뉴시스 

☞기사원문: 울산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발표…QR코드 표지판 설치 등

※관련기사

☞연합뉴스: QR코드로 알리는 학교 독립운동사..울산 3·1 운동 기념사업

☞노컷뉴스: ‘학교 친일잔재 청산’ 교육분야 항일독립운동 알린다

월, 2019/0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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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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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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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민족문제연구소 공동발표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인물 동상도 7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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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초∙중∙고교 100곳 이상이 친일인사가 등재된 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을 세운 학교도 7곳이나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교가를 작사 또는 작곡한 학교는 113개교에 달했다. 초등학교가 18개교, 중∙고등학교는 95개교였다. 설립유형으로 보면 사립이 73개교(64.6%)로 40개교인 공립(35.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여기엔 서울대사범대학 부설초, 영훈초, 창덕여중, 숙명여고, 휘문중∙고 등이 포함됐다. 성남중∙고교는 친일인사가 작사∙곡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교가에 친일파였던 이 학교 설립자 원윤수와 김석원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의 동상 등 기념물이 있는 학교는 7곳으로 파악됐다. 중앙고와 고려대에는 두 학교의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의 동상이 있는데, 김성수는 조선방송협회 평의원 등 친일단체 간부를 역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고려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성수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휘문고에는 대표적 친일 자본가로 알려진 민영휘의 동상이, 상명대에는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배상명의 동상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TF팀을 꾸려 교육계 친일잔재에 대한 전수조사와 청산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26> 한국일보 

☞기사원문: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파가 만든 교가 사용” 

※관련기사 

☞연합뉴스: “서울 학교 곳곳에 친일잔재…일왕 찬양 의혹 교가도” 

☞뉴시스: “서울 초중고 113곳,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사용” 

☞KBS: “서울 초·중·고교 113곳 교가, 친일파가 작사·작곡”

☞노컷뉴스: 학교에 ‘친일파’ 동상·기념관·교가…서울에만 100곳 넘어 

☞뉴스1: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인사 작사·작곡 교가 써”

화, 2019/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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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 곳곳에 3·1운동과 항일투쟁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 기념비마저 일제식으로 세워진 곳이 많습니다.

친일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건데 서둘러 바로 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보도에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3·1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당시 투쟁을 소개하고 이끌었던 인사들의 이름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의 사각뿔 모양이 일본 황실의 무력을 상징하던 일제의 충혼비와 같습니다.

바로 옆에 세워진 독립운동 인사 숭모비도 마찬가집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기미독립선언 기념비도 같은 모양을 했습니다.

일제가 ‘황국신민’이 되기를 강요하며 전국 곳곳에 세웠던 비석 모양 그대로 독립운동으로 내용만 바꿔 다시 만든 겁니다.

이처럼 일제식으로 세워진 독립운동 기념비는 보훈처에 등록된 현충시설에만 10여 개,

미등록 시설의 기념비와 군대와 경찰 충혼비까지 포함하면 일제식 기념비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김순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 “기단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위에는 뿔 모양이 이런게 일본의 충혼비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이런 걸 세웠단다 하는 안내판을 세울 필요는 있죠.”]

독립운동 기념비에까지 스며 있는 일제의 잔재.

선조들의 항일 운동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바로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KBS 뉴스 유승용입니다. 

<2019-02-26> KBS 

☞기사원문: 독립운동 기념비마저 ‘일본식’…“서둘러 바로잡아야”

화, 2019/02/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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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도 고양시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진 작곡가가 지은 ‘고양시의 노래’를 사용 중단한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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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동진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돼 있다.

그는 고양시의 노래 외에도 대한민국 군가 등 다수의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전국 초중고 교가, 시가 등 많은 관공서의 공식 노래에 김동진을 비롯한 친일 음악인의 손길이 미쳐 있다.

고양시는 ‘고양시의 노래’를 시가(市歌)로써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시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시민이 잘 알지 못하지만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찾기’에 나선다.

일본군 군사기지로 추정되는 고양 시내 육군 A 사단 탄약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덕은동 쌍굴터널 조사 등이다.

이재준 시장은 “역사의 청산은 정치적 논쟁이 아닌 성장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라며 “점차 잊혀져 가는 일제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보존하고, 항일운동의 정신은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해 그 불씨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19-02-26>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양시, 친일파 김동진 작곡한 ‘고양시의 노래’ 사용중단

※관련기사 

☞뉴시스: 이재준 고양시장 “친일파가 작곡한 고양시歌 사용 중단”

화, 2019/0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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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글론지… 근론지

한다꼬

밥무꼬  살마돼지  말라  비엠인지…W륜지 그래 산노?

친구야 오늘  니한테  마니 미안해가꼬,

여는 마산 회원구 봉암동 창힌핵죠 부그이다.

하모하모 바로 미테아이가

…..그래 링게루 좀주리자 !

니가아이고 내가

고래 통기 기다리꾸마?1

진천총국호양은  군고향 오마이중  둥기둥청….!

유관순들  안중근들  극장  하지말게

 

호영드리며,…..

 

화, 2019/02/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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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도 좋아져서 낭비가 되는것 같아  e-mail을 이용 PDF파일로 받았으면 합니다.

수, 2019/0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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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口增減(인구증감)

 

水來風去事(수래풍거사)

孰挽孰能防(숙만숙능방)

若此人增減(약차인증감)

官衙豈太忙(관아기태망)

 

인구의 늚과 줆

 

물이 흘러오고 바람이 떠나는 일

누가 말리며 누가 능히 막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이와 같거늘

官衙에선 어찌 그리 몹시 바쁜가.

 

<時調로 改譯>

 

물이 오고 바람 떠남 누가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바로 이와도 같거늘

오호라! 官衙에서는 어찌 그리 太忙한가.

 

*增減: 많아지거나  적어짐. 늘리거나  줄임.  증손(增損)  *若此: 이러함 *官衙: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공당(公堂). 공부(公府).

 

<2019.2.27, 이우식 지음>

수, 2019/02/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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