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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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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02: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FM 94.5 (18:10~20:00)
■ 방송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 대담: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이 그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 해볼 얘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 관한 얘깁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 지낸 ‘심산 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이하 홍소연)>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경교장이 여관이냐, 이런 질문도 받으셨다고요?

◆ 홍소연> 네, ‘장’ 자가 붙었으니까.

◇ 이동형>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네요. 백범의 숙소이자 안두희에 총에 맞아 서거했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홍소연> 경교장은 공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유일한 국내에 있는 청사이고요. 그다음에 독립운동가들의 목표인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협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안두희로 상징되는 친일 반민족 세력의 흉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진도 기억이 나는데, 경교장 창문이 총탄에 깨진 사진이 있었잖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습니다. 백범 선생님이 2층에 앉아계셨는데, 창가에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안두희가 사선 방향에서 총을 쏴서, 모두 네 발을 쐈는데, 그중 총알 두 개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고 해서 경교장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재연했습니다.

◇ 이동형> 일제하고 싸우면서도 중국 망명길에서도 총탄을 맞았습니다만, 그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고, 해방된 조국에서 어쨌든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서거하셨는데요. 그 장소가 경교장이고요.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소유라고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복원이 됐습니까?

◆ 홍소연>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경교장 뒤와 옆이 병원하고 붙어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 되어 있고, 원래는 병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 넓은 뜰이었어요.

◇ 이동형> 백범 선생님 서거하시고, 우리 백성들이 경교장 앞에, 방금 말씀하신 뜰에 엎드려서 통곡하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그게 주차장으로 변했다?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네요.

◆ 홍소연> 그래서 사실은 경교장이 어쨌든 강북 삼성병원의 소유고, 병원 시설로 쓰고 있다가 병원이 양해를 해주어서 옛날처럼 복원을 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뜰이 주차장으로 있다 보니까 장소가 약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는 살짝 위험한 그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죠.

◇ 이동형> 실장님, 지금 경교장에서 해설 봉사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경교장 오시는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 홍소연> 네, 그렇죠. 처음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가 병원만 복원되니까 이제는 뜰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 이동형>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할 것 같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의 마지막 윤경빈 선생은 경교장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 성우> “봉영위원회에서 백범선생은 경교장에 모시고, 나머지 국무위원들 대부분은 한미호텔에 모시고, 또 부통령 되시는 분은 경교장에 며칠 묵으시다가 삼청동에 모시기로 했어요. 이시영 선생은 경교장에 계셨어요, 엄항섭 선생하고. 백범 선생 임시정부 선전부장이고 대외활동 많이 해야 하니까. 임시정부 선전부를 경교장 아래층 오른쪽 방에 모셨어요. 봉영위원회에서 처음에는 대단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스테이크 먹고. 이런 생활 한 20일 했나요? 스테이크도 없어지고 조반도 업어지고, 밥도 아무 것도 안주는 거야. 중국서 독립운동 할 때나 비슷한 생활을 했어요. 해방 후 돌아와서 임시정부 모든 일은 거기서 다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청사라고 할 수 있죠. 이승만 대통령은 뭐라고 할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편할 때는 나오시고 불편할 때는 안 나오시고. 그 이후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번, 한번 꼭 왔었어요.”

◇ 이동형> 윤경빈 선생의 회고를 들어봤는데요. 해방 이후 조국에서 임시정부가 이런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홍소연> 그것은 어쨌든 정부로서의 환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겠죠.

◇ 이동형> 개인 자격으로의 환국은 미군정이 그렇게 요구한 것이지 않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죠.

◇ 이동형> 미군정을 왜 그렇게 요구했을까요?

◆ 홍소연> 어쨌든 당시 미군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만약에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한 땅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혹시 임시정부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해서 정부로서의 활동을 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외세인 미국과는 당연히 충돌이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 이동형> 이승만 박사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들어오지 전에 일본을 거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고, 하지도 만나고, 굉장히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어왔던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푸대접 받았습니다. 환영받지도 못 했었고. 미군들만 몇 명 나와 있었고.

◆ 홍소연>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하면, 우리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과정이 이어갔잖아요. 빨리 들어왔으면 그런 게 조금 더 원활히 수습이 되고, 그렇게 진행돼서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임시정부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인 여러 세력들이 생기고 하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나중에 임시정부 2진이 들어오는데, 2진은 더 홀대받고 들어왔으니까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 백범 선생님의 환국 날짜가 11월 23일이었는데요. 다음 날 백범은 하지 미군 사령관과 아놀드 미군정 장관을 방문합니다. 저녁 6시에 경성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서 2분 동안 귀국방송을 하는데요. 백범 연설 듣고 옵시다.

◆ 성우>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이동형> 이렇게 이 방송이 나가고, 또 신문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은 임시정부 백범 선생이 들어왔구나, 뒤늦게 알았던 거잖아요? 미군정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여운형 선생 같은 경우도 하지가 일본 앞잡이 아니었냐, 이렇게 오해하기도 했었고. 결국은 미군정이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 홍소연> 네.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 백범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임시정부 활동은 경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무위원 회의도 개최되고, 신탁통지 반대운동도 주도하고, 경교장에서 있었던 임시정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홍소연>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탁통치 반대운동, 그다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기획하고, 실천한 곳입니다. 신탁통치 문제는 45년 12월 말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인데요. 임시정부로서는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일제에게 길게는 36년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4개국의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신 분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당시 그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하고, 경교장이 그 무대가 되어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 이동형> 48년 4월 19일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에도 넘어가면 김일성한테 이용만 당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 결과는 아마 백범 선생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백범 말대로 마지막 독립운동, 이대로 가면 조국은 분단되고, 서로 피를 흘린다. 결국은 또 그렇게 됐고요. 그래서 마지막 노정객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이는데요.

◆ 홍소연> 저는 최근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유심히 보면서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 2개를 들고, 1932년 1월 8일 동경에 가서 폭탄을 던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구 선생님이 그 폭탄 2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일본이 상해를 침략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군이 10만 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군함이 80척이 뜨고, 비행기가 300대가 떠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든요. 우리는 수류탄 2개 만들기 위해서 1년이 걸렸는데. 만약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독립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됐겠죠. 남북 협상도 꼭 당장에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이게 가야 할 길이어서 그 첫 걸음을 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가고 또 가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죠.

◆ 홍소연> 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계속 또 가고, 가고, 해야 한다. 지금도 가고 있고요.

◇ 이동형>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했을 당시, 백범의 축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우> “본인은 일찍이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해서 따라서 말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마디 글자를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의장단과 각 정당 단체 대표 여러분, 조국 분열의 위기를 만구하기 위하야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이 땅에 회집하야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참석하게 된 것은 실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발전이며 이와 같은 성대한 회합에 본인이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백범 선생 본인의 육성을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고 하는 게 그래도 다행스럽네요.

◆ 홍소연> 제가 알기로는 이 자료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위에 올라갔을 때 확보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미국에서 그 자료를 찾아오고요. 이 날 김구 선생님의 요지는 뭐냐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반대다,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남쪽에서 오해를 해서 마치 남한에서만 반대하고, 북한에서는 찬성한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더 김구 선생님에 덫을 씌운 거죠.

◇ 이동형> 지금도 가짜 뉴스가 문제입니다만, 과거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으니까요. 신탁, 반탁, 문제도 가짜 뉴스가 등장했었고. 백범은 하나의 나라를 꿈꿨습니다만, 결국 역사를 백범의 예고대로 흘러갑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요. 백범 김구가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겁니다. 그날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의 증언입니다.

◆ 성우>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20분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공주에서 ‘건국 실천원 양성소’ 입소식이 열릴 예정이었어. 그런데 당국의 탄압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지. 소식을 들은 백범은 울적해 했어. 붓글씨나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 안두희가 찾아온 거야. 나는 안두희를 2층으로 안내했어.”
백범 : “언제 왔느냐”
안두희 : “어제 왔습니다.”
“안두희를 백범에게 인사시키고, 나는 식사 마련 때문에 지하실 식당으로 갔어, 그러고 한 2~3분이 지났을까.”
안두희 :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 이동형>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경교장으로 가봤는데요.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날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헌병대들이 경교장 주위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두희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의심은 계속 드는 거고요. 그 이후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만, 석 달 만에 감형돼서 풀려나고, 군에 복귀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군납 업체 특혜를 받아서 상당한 부를 강원도에서 일구게 되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습니다만, 누가 안두희를 사주했을까.

◆ 홍소연> 흔히 하는 이야기가 제3세계에서의 암살 사건에는 그 뒤에 반드시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 이동형> 어쨌든 반통일세력이었을 것이다.

◆ 홍소연> 네, 친일, 반통일세력이.

◇ 이동형>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백범 선생 암살당하기 20일 전에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경찰들이 습격한 건데, 반민족행위자들,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시키고, 마지막으로 20일 뒤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이제부터 정말 친일 활동 했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해방 후 조선에서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버린 것이죠.

◆ 홍소연> 네, 저는 반민특위 와해의 마침표가 김구 선생님 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만약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 홍소연> 적어도 지금처럼 기득권들이 불의로 상징되는 세상은 아니겠죠.

◇ 이동형> 경교장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우리 방송 듣고 경교장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그냥 가면 됩니까?

◆ 홍소연> 네, 월요일 쉬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일정하게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요. 그것을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이라는 데 들어가서 예약 신청을 하면, 저처럼 전문적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어떤 설명을 해주시는 거죠?

◆ 홍소연> 저는 주로 우선 경교장의 의미, 그리고 또 백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지금 우리 역사 속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 이동형> 내부는 백범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그대로 복원한 건가요?

◆ 홍소연> 네, 사진 자료나 기타 자료들이 많아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층고가 높다 보니 복원하기 위해서 천정을 뜯었더니 천정 쪽은 거의 그대로 살아있어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지난 2월 26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는데요. 4월 11일은 임시정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 홍소연> 딱 100년이죠.

◇ 이동형> 이 날 경교장에서 국무회의하면 어떨까요?

◆ 홍소연>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오늘 질문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2019년에 앞의 100년을 기념했다면, 과연 100년 뒤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과연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를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을 지낸 홍소연 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실장님은 심산 선생 기념관 전시실장을 함께 맡고 있으니까. 심산 선생님 기념관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 홍소연> 거기는 일요일에 쉬어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보통 박물관하고 틀을 똑같습니다.

◇ 이동형> 3·1운동 있을 때 민족대표로 우리 유교가 빠지지 않았습니까? 심산 선생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데.

◆ 홍소연>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을 하시면서 그때 심산 선생님 나이가 40이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 ‘심’ 자가 맹자의 사십부동심에서 가져온 심이거든요.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산처럼. 그래서 호가 심산입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백범 기념관, 또 심산 기념관, 여러분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마무리하면서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 대사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 성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9-03-28>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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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 29주기 추모 답사기

임무성 교육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천안지회·아산지회가 주최하고 충청남도 교육청이 후원하는 임종국선생 29주기 추모 답사가 11월 11일에 진행되었다. 답사 여정은 천안삼거리 공원→요산재(임종국선생 서재, 살림터)→천안공원묘원(무학지구 철쭉 4-1)→신부공원(임종국선생 조형물) 순이었다.
뿌연 미세먼지를 뚫고 천안삼거리공원 주차장에 참가자들이 집결하였다. 본부에서는 방학진 기획실장, 강대운이 참가하였고, 지부 참석자들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부부, 권희용 충남지부장, 최기섭 천안지회장, 홍남화 아산지회장, 최요식 세종지부장을 비롯하여 35명가량이었다.
수많은 차로 빽빽한 천안삼거리 공원 주차장 한가운데 눈에 확 띠는 낡은 화물차에 스티커로 붙여진 ‘친일청산’ 구호가 반갑게 답사 일행을 맞아주었다. 천안 사람들에겐 이미 명물이 된 트럭이라 한다. 주차장 한켠엔 충남도교육청에서 지원한 대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임종국선생이 살던 요산재는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탓에 회원들 승용차에 분승하여 출발하였다.
천샛골 낚시터를 지나 몇 굽이 산길을 오르니 가파른 산자락 아래 추모객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는 듯한 선생님 서재로 쓰시던 집이 나타난다. 1980년 식구가 다 같이 이사와 산 곳으로 가옥, 창고, 과수원으로 이뤄져 있다. 지금도 대중교통으론 왕래가 쉽지 않은 곳으로 선생님 살아 생전엔 천안삼거리 공원에서 한 2km를 걸어 들어와야 했던 곳이다. 요산재(樂山齋)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쉽게 알 수 있겠다. 선생은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집필에 전념하며, 밤농사 등으로 생계도 해결하려 하셨던 것이다. 농사 중엔 밤농사가 그래도 손이 덜 가는 편이라 한다. 지금은 선생이 기거하고 글 쓰시던 건물은 새롭게 개축되어 있고 선생이 심은 밤나무 외에 아로니아 농사, 토종꿀 양봉도 추가로 하며, 얼마 전 추수에서 귀하다는 옥광밤을 3톤이나 수확했다고 한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시며 펜을 잡고 있던 선생의 모습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금 이곳엔 캐나다 이민 갔다 돌아온 노부부가 살고 있다. 답사일행이 도착했을 땐, 교회에 가서 주인 없는 집에 불쑥 방문한 불청객을 향해 목이 터져라 짖어대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세마리 애완견도 손자 손 붙잡고 들어오는 주인을 보자 꼬리를 흔들어대며 조용해진다. 구입할 땐 몰랐는데, 큰 존경을 받는 일을 하신 분이 살던 집에 살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영광이라 하며 답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충남지부 회원들은 요산재 입구에 있는 천샛골 낚시터 앞에 ‘임종국 선생 거처’라는 안내표지판을 세우는 것을 내년의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내년은 임종국 선생 서거 30주기라 추모객이 더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집 앞 마당에 작은 비석을 세우는 것은 이미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추모객 일행은 다시 천안삼거리공원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여 천안공원묘지에 도착했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인데도 묘소 앞까지 버스가 올라간다. 선생은 나주 임씨 가족공동묘 3기 중에 앞쪽 동생 묘와 대각선으로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참여한 회원들은 선생의 숭고한 뜻을 한마음으로 되새기며 이민우 운영위원장을 필두로 술 한 잔, 담배 한대 올리고 추념 후 음복을 했다. 그리고 다 같이 우렁차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하산하러 버스로 향했다.
산이라 그런지 낮인데도 날이 쌀쌀해졌다. 다시 버스로 20분 정도 시내 쪽으로 이동하여 신부 공원에 도착했다. 추워진 날씨에 목도리를 하고 계신 임종국 선생 조형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3626명의 역사독립군의 후예가 부활시킨, 예의 꿰뚫는 듯한 눈빛의 역사독립군 대장 임종국 선생 흉상. 한 해 먼저 자리 잡은 ‘평화의 소녀상(2015)’, 선생보다 한 해 뒤에 입주한 ‘6월민주항쟁 30주년 표석(2017)’이 사각 모양의 공원 세 군데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생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작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셨던 분에게 사후에 마음을 터놓는 든든한 동지들이 생겨 공원에 화기가 돈다. 지역 이름을 따서 ‘신부공원’이라 불리는 곳인데, 조형물들의 성격을 감안해서 ‘평화의 공원’으로 개명하는 운동에 충남지부 회원들이 앞장서고 있다.
이곳에서도 묵념을 올리는 한편, 참가자 모두는 다시 한 번 선생의 뜻을 기리며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수, 2019/01/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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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학진 기획실장 / 정리 국세현 기획실

 

12월 5일 2018 항일음악회에서 힙합퍼포먼스를 선보인 이지 크루(EZ crew) 박원상 대표(37)가 인터뷰를 위해 연구소를 찾았다. 이지 크루는 이번 항일음악회 ‘독립군 아리랑,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에서 더 히스토리(The History)라는 제목으로 색다른 힙합 퍼포먼스를 펼쳐 보여 젊은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문 : D.VIVE는 무슨 뜻이고 어떻게 생겨난 말인가요?

답 : D.VIVE는 사전에 없는 말이에요. 대한민국의 D와 만세의
VIVE를 결합한 말인데 제가 만든 신조어예요. 처음에는 사실
D.VIVE라는 이름만 만들어 놓은 상태였어요. 근데 D를 놓고 보니
까 대한민국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대한민국 만세가 되는 거
예요. D는 댄스의 첫 글자이기도 하니까 댄스 만세도 되잖아요. 같이 하는 동료들과 어
렵지 않게 D.VIVE를 대한민국 만세라고 정했어요. 저희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거지요.
시작은 그랬어요

문 : 민족문제연구소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답 : D.VIVE가 새겨진 옷을 만들었는데 그 판매수익금을 좋은 일에 쓰고 싶었어요. 마침 8·15 광복절도 다가오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기부하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근데 이상하죠?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궁금해졌어요. 우리나라는 도대체 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까?
궁금하긴 한데 학창시절에 그런 걸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더라구요. 정확하게 가르쳐준 선생님들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책도 읽고 검색도 하며 찾아봤죠.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 봤어요. 하지만 다들 맨숭맨숭하게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게 하는 분위기였는데, 연구소에선 우선 만나자고 하더라구요. 그날 바로 방학진 실장을 만났죠.
방 실장과 만나서 제가 생각한 것들을 의논했어요. 그리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둘러봤지요. 둘러보고 나니 우리가 알고 있는 근현대사, 특히 친일파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어린 후배들에게 친일의 역사를 새롭게 일깨워 주고 싶었어요. 때마침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개관한다고 하니 옷 판매수익금을 박물관에 후원하겠다고 하자 흔쾌히 그러자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인연이 닿았어요.

문 : 이지 크루가 힙합 퍼포먼스로 2018 항일음악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답 : 공연을 준비하게 된 것은 방학진 실장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였어요. 그날 방학진 실장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과 남영역 부근에 있는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에 갔었죠. 저는 아직은 영웅적인 이야기가 더 와닿는 편인데 김구 선생 등 독립지사들이 계신 효창공원이 그랬어요. 그날 정말 좋았어요. 둘러보고 나서 방학진 실장이 힙합 퍼포먼스 형태로 독립지사 추모극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 말에 공감했어요.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흥미롭게 역사를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실,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안다고 해서 역사를 아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이 그때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각오였는지를 느껴보는 것이 진짜 역사를 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춤과 몸짓, 힙합으로 그걸 전달하면 좋겠다 싶었죠.

문 : ‘더 히스토리’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답 : 항일음악회에 공연을 올려보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그래, 해 보든가. ”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근데 며칠이 지나니까 참가하는 친구들이 자기 역할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내는 거예요. 어떤 친구는 이완용에 대해 찾아보고 와서는 “이놈은 빠진 데가 없더라구! 안 좋은 조약이란 조약에는 다 들어가 있어. 친일계의 삼관왕이야!” 그러더라구요. 또 다른 친구는 “일본군 옷 못 입겠어요. 죄지은 기분 들어요. 다음엔 좋은 역 하고 싶어요.” 라구 말했죠.
처음에는 별 생각 없던 친구들이 점점 변해가는 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전 이때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역사를 제대로 아는 마음은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문 : 이번 공연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답 : 공연 준비와 연습 시간은 딱 한 달이었어요. 아주 짧았죠. 일제에 침략당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초반이라는 중심 이야기는 정해져 있었지만 이야기들 간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시간부족으로 잘 잡지 못했어요. 예를 들면 친일파들이 변질되는 과정을 더 섬세하게 그리지 못한 것이죠. 친일파들의 옷
이 조선 관료복에서 양복으로 바뀌고 양복입은 관료들에게 일제가 훈장을 달아주는 식으로 친일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친일파들이 훈장을 받을 때 백성들이 핍박받는 장면도 넣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춤은 대사 없이 동작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장르인데 사실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감동 전달 장면이 좀 부족했어요.

문 : 공연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답 : 공연을 준비하느라 한달 동안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지 크루 잠실본점에서 매주 금, 토, 일마다 모여서 4시간 이상 연습했어요. 연습기간이 아이들 중간고사 기간과 맞물려 있어서 더 힘들었지요. 부천이나 동탄에서 사는 아이들이 많아서 오가는 시간도 꽤 걸렸고요.
이번 공연이 첫 무대인 아이들도 있고 평생 춤을 추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는 의미 있는 좋은 무대였지만 사실 아이들 입장에선 예쁘지 않은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런데도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 줘서 고맙고 기특했어요. 다음엔 의상도 신경 써서 만들어 주고 싶네요.

문 : 박원상 대표님은 왜 춤을 추나요? 무대에 올린 공연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답 : 춤은 그냥 좋아요. 춤을 추는데 많은 의미가 있다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때 장기자랑에 나가면 후배들이 “오빠~” 외치며 환호하잖아요. 그때 그 기분이 좋아서 춤을 췄어요. 그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무대의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잖아요.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이죠. 물론 책임감이 따르죠. 잘 하면 환호와 박수를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되죠. 그래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해요.
저는 대회 참가 경력보다는 공연과 작품을 만드는 일을 더 즐겨했어요. 슈퍼모델 선발대회 개막 작품, 부산 원아시아드 BOF페스티벌 개막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한국전력에서 후원한 뮤지컬에는 예술 컨설팅도 했구요.
춤을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현장에서 춤을 출 때 저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교습 분야로 먼저 나왔는데 다행히 가르치는 게 제 적성에 맞는 듯해요.

문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답 : 힙합으로 표현하는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첫 번째 이야기는 일제 침략부터 3·1운동까지예요. 이번 항일음악회에 올린 것은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예요. 두 번째는 만주에서 벌어진 항일투쟁 이야기고 세 번째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와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네 번째 이야기는 해방과 그 직후 대한민국의 상황을 그리고 싶어요. 해방 직후에 복잡한 역사적 상황들이 많지만 희망차고 힘차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특히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있어요. 민족문제연구소가 많이 도와주실 거지요? (하하) 젊은 춤꾼들과 청소년, 일반인들이 모여 3·1운동 100주년을 표현해 보는 거죠. 가족이나 남녀노소 누구든 참여해서 그날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요. ‘리멤버 기억하라, 1919’ 이런 주제가 되겠죠.
사실 삼일절이나 광복절 날 하는 공식 행사는 재미없잖아요. 21세기 아이들에게 19세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방식은 역사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죠. 100년 전 3·1 운동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요즘 아이들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해요. 힙합이나 비보잉 같은 스트릿 댄스(street dance)가 아이들의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대신하면 좋겠어요.

수, 2019/01/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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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안미정

 

 

 

• 지난 11월 9일, 12회 임종국상 시상식에 앞서 고(故) 임종국 선생의 부인인 이연순 여사가 임종국 선생이 즐겨 연주하던 클래식 기타 1점을 기증했다. 생전에 임종국 선생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악기 연주에 능했다. 클래식 기타는 수준급이었고 첼로 역시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가 연주하는 모습은 사진과 악보집으로 남아있다.

• 11월 16일,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의 손녀인 채영희 회원(대구지부)이 비녀 2개와 화로에 꽂아 두고 쓰는 작은 부삽 1점을 기증했다. 비녀는 채충식 선생의 가문이 지난날 높은 벼슬을 했던 증거인 정경부인貞敬夫人의 비녀로 가보처럼 소중히 간직해온 유물이다.

• 11월 18일 기타무라 메구미 씨가 <광도신사廣島神社: 시민생활편> 1권을 기증했다.

• 11월 23일 언주중학교 동아리 다온(박정빈, 이다윤, 이상우, 이어진, 정소양)이 독도 알리기 L자형 홀더 500장을 기증했다. ‘독도, 이것만은 꼭 알고 가자’의 제목으로 한·영판 홀더를 만들고 전교생에 배부, 독도 빙고 게임, 독도 사랑 교내캠페인, 독도 골든벨 등 독도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11월 27일 가와구치 사치코 씨가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이흥섭 지음) 1권을 기증했다. 이 책은 1944년 5월 황해도 곡산에서 콩밭을 매다 일본으로 끌려가 광산 노동을 하고 해방 후에도 어려운 생활을 한 이흥섭 씨의 이야기로 일제시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의 성격이 강하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수, 2019/01/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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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후 6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하 ‘역사재단’)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에서 강만길저작집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강만길 고려대명예교수의 의사에 따라 직접 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들만 참여하는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용옥 역사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저작집 간행위원회 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 신용옥 이사가 저작집 출간 경위
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자인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의 감사인사, 저작집을 펴낸 창비 기획편집위원장인 백영서 교수 및 임헌영 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강교수는 답사에서 “이번 저작집 역시 학자로서 치열하게 살고자 한 삶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후학들이 나를 넘어서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만길저작집은, 역사재단이 2010년부터 기획한 것으로 역사재단과 창비사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에 간행된 것이다. 강교수의 첫 저작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시작으로 초판 출간 연도에 맞춰 19권의 저서를 순서대로 배치하고 2010년에 나온 〈역사가의 시간〉은 자서전이라는 성격을 고려해 저작집의 마지막 권으로 했으며 미출간 원고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특히 제자 20명이 각 저서에 대한 사학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해제를 실어 그 의의를 더했다.
• 편집부

수, 2019/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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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1/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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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2/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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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寄金正恩

 

壓制連三代(압제연삼대)

衆言未久亡(중언미구망)

民飢君飽喫(민기군포끽)

共産若豺狼(공산약시랑)

 

김정은에게 거듭 띄우는 글

 

압제하는 정치가 三代를 이으니

뭇사람 未久에 망한다고 말하네

백성은 굶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공산주의란 승냥이와 이리 같네.

 

<時調로 改譯>

 

壓制三代 이으니 未久에 망한다 하네

백성은 굶고 있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오호라! 공산주의란 豺狼과도 같다네.

 

*壓制: 권력이나 폭력으로  남을  꼼짝 못 하게  강제로  누름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대. ≒삼세(三世)  *衆言: 많은  사람의  말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飽喫: 배부르게 먹음. 포식(飽食). 포복(飽腹) *共産: 공산주의(共産主義).

을 공동(共同)으로  관리하고  소유함  *豺狼: 승냥이와 이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2019.1.4, 이우식 지음>

금, 2019/01/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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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급식이 아닌 학교 다닐쩍에 도시락 처먹던 세대들은 잘 알게야. 

점심시간에 애들끼리 도시락 먹으면 당연 서로 같이 싸온 반찬 나눠먹고 하는게 올바른 것이며 국가간 외교로 따지면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국제적 참다운 교류인게다. 

그런데 꼭 도시락은 안 싸오고 거지새끼 처럼 염치도 없이 애들한테 밥이나 얻어 처먹고 반찬이나 축내면서 왔다갔다하는 얄미운 새끼들 있지? 

바로 이런 새끼들이 지금 북괴 빨갱이같은 새끼인게다. 

남한한테 얻어먹고 퍼가고 바라는건 졸라리 많으면서 정작 남한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해만되고 말썽이나 부리는 애물딴지 개버러지 새끼들 

바로 북괴 빨갱이거지10새끼들인게다.

금, 2019/01/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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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시빌

팔용동

목장원

주소는

창원 의창구  팔용로 494-20

박상규윤항기의 경상5회 갑짱들아!

진영당감 일세

ㅍㅏ이브

손소리통  목장원:256-6205

합천봉산똥대지가

생각나는  오마고  창원 경상고 다섯기  정기총회에서

ㅂㅗ고픈 칠팔칠구팔공의  경상고5기

황금도야지해  에는 희비 제대로 내고

경조사 스님에게  찾아 배야 대는데,

기해와기회

올겐 진짜  너거 한테 비찐거 가파야 대는데,

0110모교일  19:00에 봄세

금, 2019/01/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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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筆强於刀諺

 

日本霜刀國(일본상도국)

朝鮮久筆邦(조선구필방)

如何其結果(여하기결과)

誤信正無雙(오신정무쌍)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을 비웃다

 

일본은 시퍼런 칼의 나라였고

조선은 오래 붓의 나라였지만

그 결과는 마침내 어떠했던가

잘못된 믿음 참으로 무쌍했네.

 

<時調로 改譯>

 

일본은 서슬도 푸른 칼의 나라였었고

조선은 오랜 세월 붓의 나라였었지만

그 결과 어떠했던가 誤信 무쌍하였네.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如何:   형편이나 정도가

어떤가의  뜻을  나타내는 *結果: 어떠한 원인으로 결말생김. 그런 결말의

상태 *誤信: 잘못 믿음 *無雙: 서로 견줄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심함.

 

<2019.1.5, 이우식 지음>

토, 2019/01/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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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를 소망하며

새해 우리 사회를 향한 나의 소망 두 개.

하나는 우리 사회가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패거리 짓기, 같은편 편들기와 봐주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행적까지도, 대학 은사 유진오 등 많은 인연 닿는 인사들까지도 “그런 저런 사정은 일체 눈을 감기로 작정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라고 쓴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불러와 기려야 할 시대정신이다.

동문이니까, 동향 사람이니까, 같은 편이니까…등등의 부족사회 수준의 감성으로 잘못된 것에 눈감고 침묵하고 봐주는 사회 분위기,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양심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썩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가 유학에서 돌아와 인사차 찾아뵌 교수님이 1991년에 하신 말씀이다.  그 후 한 세대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다.  세상 곳곳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있다.

아예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다.  처벌도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다.  앞에서 말한 엄정함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니 어물쩍 넘어가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냥 넘기는 사람들이나, 양심과 엄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 낮은 사회 분위기가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2019. 1. 4
민족문제연구소 제명자, 회원
여인철

토, 2019/01/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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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인단 “강제징용 기업 한국 자산 압류해달라” 강제집행 신청
아베 주장하는 ‘국제법‘ 뭐냐 질문에… 법조계 “나도 물어보고 싶다”
법조계 “‘국제법 위반했다’ 국내외 향한 ‘여론전’… 그 이상 이하도 아냐”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6일) 아베 신조 총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힌 모양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아베 총리가 어제 NHK ‘일요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전범기업 신일본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관련해서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부처에 지시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워딩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고 한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지난 연말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단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요.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지난해 두 차례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면담조차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국 내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입니다.

여기다가 배상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인데요. 이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 워딩을 보니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등 ‘국제법’을 많이 언급하고 있던데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다는 건가요.

[기자] 네, 안 그래도 궁금해서 강제징용 손배소송을 수행한 김세은 변호사에게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어서 아베 총리가 그러는 거냐” 라고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그 국제법이 도대체 뭔지 나도 물어보고 싶다”는 답변이었는데요. 직접 들어 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아, 저희도 사실 그게 궁금한데요. 일본 측에 좀 물어봐 주셔야 될 거 같은데. 어느 국제법, 계속 아베 총리나 고노 외무상 워딩이 그래요.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에 근거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어느 국제법인지 사실 국제법이라는 건 없어요.”

[앵커] “국제법이 없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네, 통상 ‘국제법을 어겼다’고 할 때는 김세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어떤 국제 조약, 또는 어떤 국제 협약, 몇 조 몇 조, 이걸 위반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워딩은 이런 게 없이 그냥 거두절미하고 “국제법 위반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건데요. 국내외를 향한 ‘여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김세은 변호사의 말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호하게 그냥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엄청 ‘국제법 위반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우리가 되게 큰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걸 위반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장이고요”

일본 정부 일부 각료가 ‘한국에 대한 트럼프식 관세 보복’ 등을 언급하는 것도 다 이런 여론전, 보수우익 결집 등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을 받는 건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재판처럼 어느 일방이 제소를 한다고 해서 바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양 국 정부가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로 동의를 해야 재판 관할권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미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새삼 국제 분쟁화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옵션이 못 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그러면.

[기자] 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업무가 종료됐다는 일본과 그건 정부 차원의 일이고 민간 차원은 다른 문제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인데요.

일단 외교 경로를 통해 풀어보고 안 되면 별도의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든다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시죠.

[조시현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외교부가 지금 오늘 반응이 나왔잖아요. ‘비우호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한 것은 아닌가. 아베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할 것은 뭐냐면 협의를 해야죠. 언론 선전전을 할 것이 아니고…”

[앵커] 일본은 총리까지 나서 여론전을 펼치는데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될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2019-01-07>법률방송뉴스 

☞기사원문: 아베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 강제징용 변호사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은 없다”

화, 2019/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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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충북지부전체회원모임에서 임헌영 소장님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사무국에 요청을 하라고 하셨고, 지난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도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무국에 연락을하여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2018. 12. 14. 서울시교육청은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행정처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에 있어서 법률 또는 행정처분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 회원들이 공유하여야 할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비공개했던 총회 의사록을 교육청을 통해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2002년 1월에도 동부교육청이 법인실태 조사후 고발 및 시정시시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은 민문연 집행부에서 어떻게 연구소를 운영했으면 고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또 서울시교육청이 현장 실사를 하고,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처분한 공문을 제공해주시고, 회원에게 공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 2019/01/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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