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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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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02: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FM 94.5 (18:10~20:00)
■ 방송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 대담: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이 그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 해볼 얘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 관한 얘깁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 지낸 ‘심산 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이하 홍소연)>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경교장이 여관이냐, 이런 질문도 받으셨다고요?

◆ 홍소연> 네, ‘장’ 자가 붙었으니까.

◇ 이동형>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네요. 백범의 숙소이자 안두희에 총에 맞아 서거했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홍소연> 경교장은 공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유일한 국내에 있는 청사이고요. 그다음에 독립운동가들의 목표인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협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안두희로 상징되는 친일 반민족 세력의 흉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진도 기억이 나는데, 경교장 창문이 총탄에 깨진 사진이 있었잖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습니다. 백범 선생님이 2층에 앉아계셨는데, 창가에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안두희가 사선 방향에서 총을 쏴서, 모두 네 발을 쐈는데, 그중 총알 두 개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고 해서 경교장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재연했습니다.

◇ 이동형> 일제하고 싸우면서도 중국 망명길에서도 총탄을 맞았습니다만, 그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고, 해방된 조국에서 어쨌든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서거하셨는데요. 그 장소가 경교장이고요.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소유라고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복원이 됐습니까?

◆ 홍소연>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경교장 뒤와 옆이 병원하고 붙어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 되어 있고, 원래는 병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 넓은 뜰이었어요.

◇ 이동형> 백범 선생님 서거하시고, 우리 백성들이 경교장 앞에, 방금 말씀하신 뜰에 엎드려서 통곡하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그게 주차장으로 변했다?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네요.

◆ 홍소연> 그래서 사실은 경교장이 어쨌든 강북 삼성병원의 소유고, 병원 시설로 쓰고 있다가 병원이 양해를 해주어서 옛날처럼 복원을 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뜰이 주차장으로 있다 보니까 장소가 약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는 살짝 위험한 그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죠.

◇ 이동형> 실장님, 지금 경교장에서 해설 봉사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경교장 오시는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 홍소연> 네, 그렇죠. 처음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가 병원만 복원되니까 이제는 뜰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 이동형>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할 것 같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의 마지막 윤경빈 선생은 경교장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 성우> “봉영위원회에서 백범선생은 경교장에 모시고, 나머지 국무위원들 대부분은 한미호텔에 모시고, 또 부통령 되시는 분은 경교장에 며칠 묵으시다가 삼청동에 모시기로 했어요. 이시영 선생은 경교장에 계셨어요, 엄항섭 선생하고. 백범 선생 임시정부 선전부장이고 대외활동 많이 해야 하니까. 임시정부 선전부를 경교장 아래층 오른쪽 방에 모셨어요. 봉영위원회에서 처음에는 대단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스테이크 먹고. 이런 생활 한 20일 했나요? 스테이크도 없어지고 조반도 업어지고, 밥도 아무 것도 안주는 거야. 중국서 독립운동 할 때나 비슷한 생활을 했어요. 해방 후 돌아와서 임시정부 모든 일은 거기서 다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청사라고 할 수 있죠. 이승만 대통령은 뭐라고 할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편할 때는 나오시고 불편할 때는 안 나오시고. 그 이후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번, 한번 꼭 왔었어요.”

◇ 이동형> 윤경빈 선생의 회고를 들어봤는데요. 해방 이후 조국에서 임시정부가 이런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홍소연> 그것은 어쨌든 정부로서의 환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겠죠.

◇ 이동형> 개인 자격으로의 환국은 미군정이 그렇게 요구한 것이지 않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죠.

◇ 이동형> 미군정을 왜 그렇게 요구했을까요?

◆ 홍소연> 어쨌든 당시 미군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만약에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한 땅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혹시 임시정부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해서 정부로서의 활동을 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외세인 미국과는 당연히 충돌이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 이동형> 이승만 박사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들어오지 전에 일본을 거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고, 하지도 만나고, 굉장히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어왔던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푸대접 받았습니다. 환영받지도 못 했었고. 미군들만 몇 명 나와 있었고.

◆ 홍소연>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하면, 우리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과정이 이어갔잖아요. 빨리 들어왔으면 그런 게 조금 더 원활히 수습이 되고, 그렇게 진행돼서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임시정부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인 여러 세력들이 생기고 하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나중에 임시정부 2진이 들어오는데, 2진은 더 홀대받고 들어왔으니까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 백범 선생님의 환국 날짜가 11월 23일이었는데요. 다음 날 백범은 하지 미군 사령관과 아놀드 미군정 장관을 방문합니다. 저녁 6시에 경성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서 2분 동안 귀국방송을 하는데요. 백범 연설 듣고 옵시다.

◆ 성우>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이동형> 이렇게 이 방송이 나가고, 또 신문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은 임시정부 백범 선생이 들어왔구나, 뒤늦게 알았던 거잖아요? 미군정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여운형 선생 같은 경우도 하지가 일본 앞잡이 아니었냐, 이렇게 오해하기도 했었고. 결국은 미군정이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 홍소연> 네.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 백범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임시정부 활동은 경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무위원 회의도 개최되고, 신탁통지 반대운동도 주도하고, 경교장에서 있었던 임시정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홍소연>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탁통치 반대운동, 그다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기획하고, 실천한 곳입니다. 신탁통치 문제는 45년 12월 말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인데요. 임시정부로서는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일제에게 길게는 36년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4개국의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신 분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당시 그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하고, 경교장이 그 무대가 되어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 이동형> 48년 4월 19일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에도 넘어가면 김일성한테 이용만 당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 결과는 아마 백범 선생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백범 말대로 마지막 독립운동, 이대로 가면 조국은 분단되고, 서로 피를 흘린다. 결국은 또 그렇게 됐고요. 그래서 마지막 노정객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이는데요.

◆ 홍소연> 저는 최근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유심히 보면서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 2개를 들고, 1932년 1월 8일 동경에 가서 폭탄을 던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구 선생님이 그 폭탄 2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일본이 상해를 침략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군이 10만 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군함이 80척이 뜨고, 비행기가 300대가 떠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든요. 우리는 수류탄 2개 만들기 위해서 1년이 걸렸는데. 만약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독립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됐겠죠. 남북 협상도 꼭 당장에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이게 가야 할 길이어서 그 첫 걸음을 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가고 또 가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죠.

◆ 홍소연> 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계속 또 가고, 가고, 해야 한다. 지금도 가고 있고요.

◇ 이동형>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했을 당시, 백범의 축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우> “본인은 일찍이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해서 따라서 말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마디 글자를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의장단과 각 정당 단체 대표 여러분, 조국 분열의 위기를 만구하기 위하야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이 땅에 회집하야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참석하게 된 것은 실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발전이며 이와 같은 성대한 회합에 본인이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백범 선생 본인의 육성을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고 하는 게 그래도 다행스럽네요.

◆ 홍소연> 제가 알기로는 이 자료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위에 올라갔을 때 확보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미국에서 그 자료를 찾아오고요. 이 날 김구 선생님의 요지는 뭐냐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반대다,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남쪽에서 오해를 해서 마치 남한에서만 반대하고, 북한에서는 찬성한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더 김구 선생님에 덫을 씌운 거죠.

◇ 이동형> 지금도 가짜 뉴스가 문제입니다만, 과거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으니까요. 신탁, 반탁, 문제도 가짜 뉴스가 등장했었고. 백범은 하나의 나라를 꿈꿨습니다만, 결국 역사를 백범의 예고대로 흘러갑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요. 백범 김구가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겁니다. 그날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의 증언입니다.

◆ 성우>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20분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공주에서 ‘건국 실천원 양성소’ 입소식이 열릴 예정이었어. 그런데 당국의 탄압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지. 소식을 들은 백범은 울적해 했어. 붓글씨나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 안두희가 찾아온 거야. 나는 안두희를 2층으로 안내했어.”
백범 : “언제 왔느냐”
안두희 : “어제 왔습니다.”
“안두희를 백범에게 인사시키고, 나는 식사 마련 때문에 지하실 식당으로 갔어, 그러고 한 2~3분이 지났을까.”
안두희 :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 이동형>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경교장으로 가봤는데요.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날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헌병대들이 경교장 주위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두희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의심은 계속 드는 거고요. 그 이후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만, 석 달 만에 감형돼서 풀려나고, 군에 복귀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군납 업체 특혜를 받아서 상당한 부를 강원도에서 일구게 되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습니다만, 누가 안두희를 사주했을까.

◆ 홍소연> 흔히 하는 이야기가 제3세계에서의 암살 사건에는 그 뒤에 반드시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 이동형> 어쨌든 반통일세력이었을 것이다.

◆ 홍소연> 네, 친일, 반통일세력이.

◇ 이동형>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백범 선생 암살당하기 20일 전에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경찰들이 습격한 건데, 반민족행위자들,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시키고, 마지막으로 20일 뒤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이제부터 정말 친일 활동 했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해방 후 조선에서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버린 것이죠.

◆ 홍소연> 네, 저는 반민특위 와해의 마침표가 김구 선생님 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만약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 홍소연> 적어도 지금처럼 기득권들이 불의로 상징되는 세상은 아니겠죠.

◇ 이동형> 경교장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우리 방송 듣고 경교장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그냥 가면 됩니까?

◆ 홍소연> 네, 월요일 쉬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일정하게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요. 그것을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이라는 데 들어가서 예약 신청을 하면, 저처럼 전문적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어떤 설명을 해주시는 거죠?

◆ 홍소연> 저는 주로 우선 경교장의 의미, 그리고 또 백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지금 우리 역사 속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 이동형> 내부는 백범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그대로 복원한 건가요?

◆ 홍소연> 네, 사진 자료나 기타 자료들이 많아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층고가 높다 보니 복원하기 위해서 천정을 뜯었더니 천정 쪽은 거의 그대로 살아있어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지난 2월 26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는데요. 4월 11일은 임시정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 홍소연> 딱 100년이죠.

◇ 이동형> 이 날 경교장에서 국무회의하면 어떨까요?

◆ 홍소연>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오늘 질문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2019년에 앞의 100년을 기념했다면, 과연 100년 뒤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과연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를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을 지낸 홍소연 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실장님은 심산 선생 기념관 전시실장을 함께 맡고 있으니까. 심산 선생님 기념관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 홍소연> 거기는 일요일에 쉬어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보통 박물관하고 틀을 똑같습니다.

◇ 이동형> 3·1운동 있을 때 민족대표로 우리 유교가 빠지지 않았습니까? 심산 선생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데.

◆ 홍소연>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을 하시면서 그때 심산 선생님 나이가 40이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 ‘심’ 자가 맹자의 사십부동심에서 가져온 심이거든요.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산처럼. 그래서 호가 심산입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백범 기념관, 또 심산 기념관, 여러분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마무리하면서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 대사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 성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9-03-28>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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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합 뉴스에서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백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를 죽인 몽둥이 “정의봉”을 식민지 역사 박물관에 전시하도록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어렸을 때에 선친께서 읽어주시던 백범 일지를 기억합니다.

또한 고인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고,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신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두희는 분명히 일제가 아닌 대한민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판결문에도 진범으로 되어 있고 수사 기록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법의 심판이 충분했냐와는 별개로 그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와 대한민국에서 모든 심판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테러가 성행하고, 법을 무시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이 추앙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까요?

대한민국에는 준법 정신과 법과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두희를 때려죽인 사람은 살인범이며, 우리 사회의 법치를 어지럽힌 범죄자입니다.

이 결정을 민주 시민의 입장에서 재고 부탁 드립니다.

 

월, 2018/10/22- 21:12
37
0

讚朴琦緖先生處斷金九先生弑害犯安斗熙

 

誰何云國法(수하운국법)

處斷盡歡呼(처단진환호)

正義眞如此(정의진여차)

衆言大丈夫(중언대장부)

 

김구 선생 弑害犯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선생을 기리며

 

누가 나라의 법을 운운하는가

안두희 처단에 다 환호했었네

正義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時調로 改譯>

 

그 뉘 國法 말하는가 모두 환호했었네

올바른 도리란 것 참으로 이와 같느니

이 나라 많은 이들이 대장부라 말하네.

 

*弑害: 부모나 임금을 죽임. 시륙(弑戮).  시역(弑逆) *誰何: 누구 *國法: 나라의

법률이나  법규  *處斷: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衆言: 많은 사람의 말.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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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問獨裁者金正恩

 

腹中何物在(복중하물재)

三代樂膏粱(삼대락고량)

再考人民苦(재고인민고)

其哀斷我腸(기애단아장)

 

독재자 김정은에게 묻는다

 

腹中에는 무슨 물건이 들어 있나

삼 代에 걸쳐 즐기는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롬 다시 생각하니

그 슬픔일랑 나의 창자를 끊는다.

 

<時調로 改譯>

 

배 속에 뭐가 있나 三代가 고량진미라

인민이 겪는 괴로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슬픔 나의 창자를 가닥가닥 끊는다.

 

*腹中: 배의 *何物: 무슨 물건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세 대. 三世 *膏粱:

고량진미(膏粱珍味). 기름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난 음식 *再考:어떤

일이나 문제 따위에 대해 다시 생각함 *斷腸: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2018.10.23, 이우식 지음>

화, 2018/10/23- 12:47
28
0

오는 30일 신일철주금 손해배상 청구 최종 판결
“이번 판결이 외교적 분쟁 촉발 주장 적절치 않아”
“일본 정부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 할 일만”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에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인 김정주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온유 기자 = 시민사회단체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재판에 대한 공정 판결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을 앞두고 진행됐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로 늦춰진 판결이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후 빠르게 진행됐다”면서 “다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인정한 대법관들이 13명 중 8명이나 있는 조건에서 국가가 다시 피해자들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패소가 확정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는 “ICJ의 경우 양국 정부가 모두 동의해야 이뤄질 수 있어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엿새 앞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사죄배상, 사법부 재판거래 공식 사죄 및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2018.10.24. [email protected]

이어 “일본 측이 이번 판결이 마치 외교적 분쟁을 촉발하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법원도 이것이 가지는 외교적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며 “대법원은 일본 정부 입장이나 외교부에 휘둘리지 않고 사법부가 해야할 일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상복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기호지부지부장과 이규매 미쓰비스 중공업소송 원고 유족, 김정주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등도 참여했다.

강제동원 공동행동 관계자는 “일본 강제 동원 사건들은 외교적 분쟁이 아닌 정당한 사죄와 보상의 문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모든 것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에는 신일본주금 외에도 미쓰비시 중공업 동원 피폭 피해자 소송, 미쓰비시 중공업 여자근로정신대 동원피해자 소송 등 3건이 계류돼있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은 피해자 4명이 구 일본제철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제공한다고 회유해 일본에 갔지만 1941년부터 1943년 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일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고 2003년 최고 재판소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2005년 서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기각됐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며 앞선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결국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원고 일부가 승소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불복하면서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돼 오는 30일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다. 소송이 긴 시간 진행되며 피해자 4명 중 3명이 숨져 현재는 1명의 원고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양승태 사법부는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늦추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mail protected]

<2018-10-24> 뉴시스

☞기사원문: 5년 끈 日강제동원 손해배상…”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관련기사

☞민중의소리: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최종판결 앞두고…“대법원, 법과 양심만 따라야”

☞쿠키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정의롭게 판결하라” 촉구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에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을 향해 강제동원피해자 김정주 할머니(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의 발언 영상.

수, 2018/10/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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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逸志讀後

 

愛國恒他事(애국항타사)

平生爲一身(평생위일신)

冊前無限愧(책전무한괴)

自責久愚民(자책구우민)

 

白凡逸志를 읽고 나서

 

나라 사랑 언제나 남의 일이었으니

평생토록 내 한 몸만을 위하였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

오래 못난 백성이었던 걸 자책한다.

 

<時調로 改譯>

 

愛國 남의 일인 듯 평생 한 몸 위했구나

白凡逸志 책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져

긴 세월 愚民이었음을 스스로 꾸짖는다.

 

*愛國: 자기 나라를 사랑함 *逸志: 훌륭하고 높은 지조(志操). 세속을 벗어난 뜻

*他事: 다른 일. 또는 남의 *一身: 자기 *自責: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 *愚民: 우맹(愚萌). 어리석은 백성.

 

<2018.10.26, 이우식 지음>

금, 2018/10/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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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0/2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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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0/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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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신성한 ‘한반도의 첫수도’에 이런 똥덩이를 전시해 놨는가?
고창 국화축제현장에 갔다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을 목도하였다. 국화축제 한 복판에 친일부역자 서정주의 친일대표시 국화옆에서가  버젓하게 서 있지 않은가.
매난국죽,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충성심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군자 중에 국화의 고혹한 향기 맡으러 갔다가 매국과 친일의 쓰레기가 쓴 시 제목을 버젓이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차마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 국화축제장에 치욕과 굴종, 그리고 노예의 정신을 은근히 주장하는
말당 서정주의 친일을 종용했던 시, 국화옆에서라는 이 더러운 문자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윽하고 깊은 향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악취가 진동하였다.  고창의 어떤 지식인이 의향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친일 부역자를 추종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고창의 이러한 전통을 더럽히고 있다.
그 똥덩어리가 국화축제장을  온통 악취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었다.

지방재정을 지원해서 열리는 지역의 축제 현장에 이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매국의 식민주의적인 전시행위에 국민의 혈세를 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며 제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는 일본을 추종하는 세력이 이 땅에 아직도 버젓이 활보하며, 활동하고 다니는가?
하루빨리 국민의 정신을 더럽히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 할 일이다.

 

월, 2018/10/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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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堂徐廷柱之松井伍長頌歌

 

附逆焉忘失(부역언망실)

看詩正可憎(간시정가증)

何人云泰斗(하인운태두)

不覺似伊藤(불각사이등)

 

미당 서정주의 ‘伍長 마쓰이 頌歌’

 

국가에 반역한 사실 어찌 잊어버리랴

詩를 보아 하니 참으로 가증스럽도다

그 어떤 이 泰斗 어쩌구저쩌구하는고

저 이등박문과 같음 깨닫지 못했도다.

 

<時調로 改譯>

 

附逆함 어찌 잊으랴 정말 가증스럽다

어떤 사람이 있어 泰斗를 운운하는고

伊藤과 같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도다.

 

<이우식 지음>

월, 2018/10/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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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촛불’ 2주년에 돌아보는 역사전쟁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이것이 나라냐?”고 분노하며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벌써 2년이 됐다. 그간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촛불민심이 요구한 ‘적폐청산’과 ‘국가재조’라는 혁명적 과제는 현실정치와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잠시 자숙하는 시늉을 하던 수구세력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촛불항쟁의 정신을 외면하고 거침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분단 70년이 넘어 찾아온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절호의 기회를 한갓 정치적 득실을 따져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숱한 개혁 입법도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두 차례 보수정권에서 고질화한 관료사회의 퇴행도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이제 일각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강변하며 현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통설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지부진한 현 상황을 남의 탓만으로 돌리며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근원을 찾아 효과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촛불민심의 선택과 위임을 받아 출범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권위를 지니는 동시에, 그 요구에 응답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함께 외쳤던 주장이 무엇이었던가를 곱씹어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사실 거창한 명제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하야–퇴진–탄핵-구속 촉구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지만, 이를 관통하는 구호는 ‘기본권의 보장’에 다름 아니었다. 각계의 각양각색의 슬로건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자연스레 수렴되었다. 즉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준수하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 2015.10.24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국정교과서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많은 이들은 자유 평등 민주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헌법정신이 서구사회로부터 이식된 개념으로 이해한다. 법제 과정이나 문언으로만 볼 때는 얼핏 그런 해석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근현대사 전반을 조망해 보면 우리 민족이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보편적 가치가 우리 스스로 수난 속에 스스로 체득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반봉건반외세운동, 3·1항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반제국주의와 민주공화운동, 사월혁명 5·18민주항쟁 6·10시민항쟁으로 이어지는 반독재민주화운동 등 면면히 이어지는 저항정신의 요체가 바로 헌법정신으로 현현되었던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부할 만한 전통으로 긍지를 가지기에 모자람이 없다.

촛불항쟁의 저변에는 이러한 역사의식의 계승이 작동하고 있었다. 항쟁의 직접적 계기는 물론 ‘최순실게이트’였다. 그러나 이는 도화선에 지나지 않을 뿐 그 근본 원인은 구조적인 데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기간 가장 두드러졌던 폐해는 지배층의 무분별한 사익집단화 현상이었다.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부터 재벌 관료 정치인 언론인 학자, 심지어 사법부조차도 철저하게 결탁하여 특권을 향유하며 불법과 부정을 서슴지 않았다. 갑질이 난무하고 부패가 만연했으며, 비판세력에 대한 사찰 음해 탄압이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재정권의 완벽한 부활이자 교활하고 세련된 파시즘의 대두였다.

다른 한편 역사와 교육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이를 전유하겠다는 망상은 왕조시대에도 지탄받았을 대표적인 폐정의 하나였다.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식세계마저 지배하려 했다. 역사와 교육을 도구삼아 미래세대까지 세뇌하려 기도한 것이다. 이명박은 과거사위원회 폐지를 첫 번째 국정과제로 공언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공공연하게 뉴라이트세력을 지원해 식민지미화론 이승만국부론 박정희신격화를 전파시켜나갔다. 여기에 다수의 언론과 학자들이 부역자 역할을 자임했다.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같은 도발은 ‘역사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역사정의실천연대라는 연대기구를 조직하고 역사변조에 정면으로 맞서나갔다. 시민사회와 학계가 힘을 합쳐 뉴라이트의 교학사 고교한국사를 원천 봉쇄하자, 박근혜는 한 술 더 떠 아예 국정 한국사교과서 편찬이라는 강수로 맞불을 놓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다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를 구성해 전 국민을 상대로 전국적인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박근혜의 오만과 무지는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었다.

결과는 놀랄 정도였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교육부와 교육청 수구언론과 극우단체를 총동원하고 전력을 기울여 역공작까지 벌였음에도,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며, 결국 폐기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박근혜가 국가기구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인 역사쿠데타가 실패로 막을 내린 것이다.

시민사회와 학계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시대착오적인 한국사 국정화를 강행한 박근혜의 빗나간 효도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그를 권좌에서 쫓겨나게 하는 한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구국의 지도자 박정희’라는 우상화의 허구를 드러내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했다.

친일세력 대 항일세력, 독재세력 대 민주세력, 냉전세력 대 평화세력. 어떤 이들은 이분법적인 역사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뿌리박은 수구세력은 결코 자발적으로 특권을 양보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작업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과 관용을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엄혹한 것이다.

내년은 3·1독립운동 100주년이다. 3·1독립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수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우리 역사상 초유의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려 백여 년 간에 걸쳐 다져온 민주공화주의가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이제 반석 위에 올라설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익집단의 재생산 구조를 타파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 그 지름길은 역사인식의 정립과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생활 속의 실천이다. 그래서 단언컨대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8-10-29> 프레시안

☞기사원문: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월, 2018/10/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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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28일 더불어민주당 이규희(왼쪽 첫번째) 의원과 준비위원회 관계자 등이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8.10.29. (사진=뉴시스 독자 제공) [email protected]

【천안·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천안시의 발굴 동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오전 매장지로 추정되는 직산 관아 일원에서 위령제를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 앞서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규희 국회의원(천안갑)과 육종영 천안시의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정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며 유해 발굴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길 준비위원회장은 29일 “11월 초 아산지역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충북대 발굴단의 현장답사 진행에 이어 천안시의회에 가칭 ‘천안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준비위원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천안시 직산읍 인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여 구에 달하는 매장 추정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지역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신청된 사건은 없고, 부역 혐의 희생 사건으로 신청된 사건 7건이 있다.

이 중 당시 직산면사무소(직산관아)와 관련해 지서장의 지시로 “200여 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금광구덩이에 죽이고 묻고 했다는 참고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 준비위의 설명이다.

▲ 【천안=뉴시스】이종익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가 23일 오전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현황 전수조사와 발굴조사 시행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3. [email protected]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제정될 경우 보수와 진보 측의 찬반 의견 대립으로 난항도 우려된다.

경기 고양시의 경우 금정굴 사건과 관련해 전국에서 처음 조례안이 만들어져 2011년부터 6차례나 시의회에서 발의됐지만, 보수 단체와 정당 반발로 맞서다가 7년이 지난 올 9월 제정됐다.

육종영 시의원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해 평화와 인권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만간 관련자료를 정리해 조례안 초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면 조례 절차에 따라 후속조치를 이어가겠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단체에서 반대 여론이 감지되고 있어 민감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천안과 인접한 아산지역에서는 지난 3월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어린이 80여 구를 포함해 208명의 유해가 수습됐다.

[email protected]

<2018-10-29> 뉴시스

☞기사원문: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월, 2018/10/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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