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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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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02: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FM 94.5 (18:10~20:00)
■ 방송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 대담: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이 그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 해볼 얘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 관한 얘깁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 지낸 ‘심산 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이하 홍소연)>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경교장이 여관이냐, 이런 질문도 받으셨다고요?

◆ 홍소연> 네, ‘장’ 자가 붙었으니까.

◇ 이동형>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네요. 백범의 숙소이자 안두희에 총에 맞아 서거했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홍소연> 경교장은 공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유일한 국내에 있는 청사이고요. 그다음에 독립운동가들의 목표인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협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안두희로 상징되는 친일 반민족 세력의 흉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진도 기억이 나는데, 경교장 창문이 총탄에 깨진 사진이 있었잖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습니다. 백범 선생님이 2층에 앉아계셨는데, 창가에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안두희가 사선 방향에서 총을 쏴서, 모두 네 발을 쐈는데, 그중 총알 두 개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고 해서 경교장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재연했습니다.

◇ 이동형> 일제하고 싸우면서도 중국 망명길에서도 총탄을 맞았습니다만, 그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고, 해방된 조국에서 어쨌든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서거하셨는데요. 그 장소가 경교장이고요.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소유라고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복원이 됐습니까?

◆ 홍소연>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경교장 뒤와 옆이 병원하고 붙어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 되어 있고, 원래는 병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 넓은 뜰이었어요.

◇ 이동형> 백범 선생님 서거하시고, 우리 백성들이 경교장 앞에, 방금 말씀하신 뜰에 엎드려서 통곡하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그게 주차장으로 변했다?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네요.

◆ 홍소연> 그래서 사실은 경교장이 어쨌든 강북 삼성병원의 소유고, 병원 시설로 쓰고 있다가 병원이 양해를 해주어서 옛날처럼 복원을 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뜰이 주차장으로 있다 보니까 장소가 약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는 살짝 위험한 그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죠.

◇ 이동형> 실장님, 지금 경교장에서 해설 봉사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경교장 오시는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 홍소연> 네, 그렇죠. 처음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가 병원만 복원되니까 이제는 뜰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 이동형>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할 것 같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의 마지막 윤경빈 선생은 경교장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 성우> “봉영위원회에서 백범선생은 경교장에 모시고, 나머지 국무위원들 대부분은 한미호텔에 모시고, 또 부통령 되시는 분은 경교장에 며칠 묵으시다가 삼청동에 모시기로 했어요. 이시영 선생은 경교장에 계셨어요, 엄항섭 선생하고. 백범 선생 임시정부 선전부장이고 대외활동 많이 해야 하니까. 임시정부 선전부를 경교장 아래층 오른쪽 방에 모셨어요. 봉영위원회에서 처음에는 대단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스테이크 먹고. 이런 생활 한 20일 했나요? 스테이크도 없어지고 조반도 업어지고, 밥도 아무 것도 안주는 거야. 중국서 독립운동 할 때나 비슷한 생활을 했어요. 해방 후 돌아와서 임시정부 모든 일은 거기서 다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청사라고 할 수 있죠. 이승만 대통령은 뭐라고 할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편할 때는 나오시고 불편할 때는 안 나오시고. 그 이후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번, 한번 꼭 왔었어요.”

◇ 이동형> 윤경빈 선생의 회고를 들어봤는데요. 해방 이후 조국에서 임시정부가 이런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홍소연> 그것은 어쨌든 정부로서의 환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겠죠.

◇ 이동형> 개인 자격으로의 환국은 미군정이 그렇게 요구한 것이지 않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죠.

◇ 이동형> 미군정을 왜 그렇게 요구했을까요?

◆ 홍소연> 어쨌든 당시 미군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만약에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한 땅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혹시 임시정부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해서 정부로서의 활동을 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외세인 미국과는 당연히 충돌이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 이동형> 이승만 박사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들어오지 전에 일본을 거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고, 하지도 만나고, 굉장히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어왔던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푸대접 받았습니다. 환영받지도 못 했었고. 미군들만 몇 명 나와 있었고.

◆ 홍소연>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하면, 우리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과정이 이어갔잖아요. 빨리 들어왔으면 그런 게 조금 더 원활히 수습이 되고, 그렇게 진행돼서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임시정부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인 여러 세력들이 생기고 하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나중에 임시정부 2진이 들어오는데, 2진은 더 홀대받고 들어왔으니까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 백범 선생님의 환국 날짜가 11월 23일이었는데요. 다음 날 백범은 하지 미군 사령관과 아놀드 미군정 장관을 방문합니다. 저녁 6시에 경성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서 2분 동안 귀국방송을 하는데요. 백범 연설 듣고 옵시다.

◆ 성우>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이동형> 이렇게 이 방송이 나가고, 또 신문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은 임시정부 백범 선생이 들어왔구나, 뒤늦게 알았던 거잖아요? 미군정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여운형 선생 같은 경우도 하지가 일본 앞잡이 아니었냐, 이렇게 오해하기도 했었고. 결국은 미군정이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 홍소연> 네.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 백범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임시정부 활동은 경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무위원 회의도 개최되고, 신탁통지 반대운동도 주도하고, 경교장에서 있었던 임시정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홍소연>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탁통치 반대운동, 그다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기획하고, 실천한 곳입니다. 신탁통치 문제는 45년 12월 말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인데요. 임시정부로서는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일제에게 길게는 36년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4개국의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신 분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당시 그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하고, 경교장이 그 무대가 되어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 이동형> 48년 4월 19일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에도 넘어가면 김일성한테 이용만 당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 결과는 아마 백범 선생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백범 말대로 마지막 독립운동, 이대로 가면 조국은 분단되고, 서로 피를 흘린다. 결국은 또 그렇게 됐고요. 그래서 마지막 노정객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이는데요.

◆ 홍소연> 저는 최근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유심히 보면서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 2개를 들고, 1932년 1월 8일 동경에 가서 폭탄을 던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구 선생님이 그 폭탄 2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일본이 상해를 침략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군이 10만 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군함이 80척이 뜨고, 비행기가 300대가 떠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든요. 우리는 수류탄 2개 만들기 위해서 1년이 걸렸는데. 만약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독립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됐겠죠. 남북 협상도 꼭 당장에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이게 가야 할 길이어서 그 첫 걸음을 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가고 또 가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죠.

◆ 홍소연> 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계속 또 가고, 가고, 해야 한다. 지금도 가고 있고요.

◇ 이동형>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했을 당시, 백범의 축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우> “본인은 일찍이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해서 따라서 말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마디 글자를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의장단과 각 정당 단체 대표 여러분, 조국 분열의 위기를 만구하기 위하야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이 땅에 회집하야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참석하게 된 것은 실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발전이며 이와 같은 성대한 회합에 본인이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백범 선생 본인의 육성을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고 하는 게 그래도 다행스럽네요.

◆ 홍소연> 제가 알기로는 이 자료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위에 올라갔을 때 확보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미국에서 그 자료를 찾아오고요. 이 날 김구 선생님의 요지는 뭐냐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반대다,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남쪽에서 오해를 해서 마치 남한에서만 반대하고, 북한에서는 찬성한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더 김구 선생님에 덫을 씌운 거죠.

◇ 이동형> 지금도 가짜 뉴스가 문제입니다만, 과거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으니까요. 신탁, 반탁, 문제도 가짜 뉴스가 등장했었고. 백범은 하나의 나라를 꿈꿨습니다만, 결국 역사를 백범의 예고대로 흘러갑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요. 백범 김구가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겁니다. 그날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의 증언입니다.

◆ 성우>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20분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공주에서 ‘건국 실천원 양성소’ 입소식이 열릴 예정이었어. 그런데 당국의 탄압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지. 소식을 들은 백범은 울적해 했어. 붓글씨나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 안두희가 찾아온 거야. 나는 안두희를 2층으로 안내했어.”
백범 : “언제 왔느냐”
안두희 : “어제 왔습니다.”
“안두희를 백범에게 인사시키고, 나는 식사 마련 때문에 지하실 식당으로 갔어, 그러고 한 2~3분이 지났을까.”
안두희 :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 이동형>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경교장으로 가봤는데요.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날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헌병대들이 경교장 주위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두희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의심은 계속 드는 거고요. 그 이후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만, 석 달 만에 감형돼서 풀려나고, 군에 복귀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군납 업체 특혜를 받아서 상당한 부를 강원도에서 일구게 되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습니다만, 누가 안두희를 사주했을까.

◆ 홍소연> 흔히 하는 이야기가 제3세계에서의 암살 사건에는 그 뒤에 반드시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 이동형> 어쨌든 반통일세력이었을 것이다.

◆ 홍소연> 네, 친일, 반통일세력이.

◇ 이동형>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백범 선생 암살당하기 20일 전에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경찰들이 습격한 건데, 반민족행위자들,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시키고, 마지막으로 20일 뒤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이제부터 정말 친일 활동 했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해방 후 조선에서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버린 것이죠.

◆ 홍소연> 네, 저는 반민특위 와해의 마침표가 김구 선생님 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만약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 홍소연> 적어도 지금처럼 기득권들이 불의로 상징되는 세상은 아니겠죠.

◇ 이동형> 경교장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우리 방송 듣고 경교장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그냥 가면 됩니까?

◆ 홍소연> 네, 월요일 쉬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일정하게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요. 그것을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이라는 데 들어가서 예약 신청을 하면, 저처럼 전문적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어떤 설명을 해주시는 거죠?

◆ 홍소연> 저는 주로 우선 경교장의 의미, 그리고 또 백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지금 우리 역사 속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 이동형> 내부는 백범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그대로 복원한 건가요?

◆ 홍소연> 네, 사진 자료나 기타 자료들이 많아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층고가 높다 보니 복원하기 위해서 천정을 뜯었더니 천정 쪽은 거의 그대로 살아있어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지난 2월 26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는데요. 4월 11일은 임시정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 홍소연> 딱 100년이죠.

◇ 이동형> 이 날 경교장에서 국무회의하면 어떨까요?

◆ 홍소연>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오늘 질문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2019년에 앞의 100년을 기념했다면, 과연 100년 뒤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과연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를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을 지낸 홍소연 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실장님은 심산 선생 기념관 전시실장을 함께 맡고 있으니까. 심산 선생님 기념관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 홍소연> 거기는 일요일에 쉬어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보통 박물관하고 틀을 똑같습니다.

◇ 이동형> 3·1운동 있을 때 민족대표로 우리 유교가 빠지지 않았습니까? 심산 선생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데.

◆ 홍소연>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을 하시면서 그때 심산 선생님 나이가 40이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 ‘심’ 자가 맹자의 사십부동심에서 가져온 심이거든요.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산처럼. 그래서 호가 심산입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백범 기념관, 또 심산 기념관, 여러분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마무리하면서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 대사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 성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9-03-28>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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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10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교에선 뜨거운 열기를 잊은 듯한 힘찬 구호가 울려퍼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이 묻혀진 현충원에 ‘친일파’라니, 과연 무슨 일일까.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김창룡과 5.18 민주항쟁을 진압한 책임자들이 순국열사들과 함께 현충원에 묻혀있다고 문제를 제기 했다.

이번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대회’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평화재향군인회, 대전충청 5.18민주유공자회 등 시민단체 주최로 현충교에서 진행되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묵념하기 위해 찾는 현충원,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날 행사는 가두 판넬 전시와 홍보물 배포, 성명서 낭독과 파묘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되었다.

현충원의 장군묘역은 반민족 사범들의 안식처인가” 울분의 성명서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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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교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든 모습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가 열린 와중,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임재근

오전 9시, 가두 판넬 전시 및 홍보물 배포로 시작한 행사는 본격적으로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의 대회사와 촉구 발언이 이어지고, 대회 참가자들의 성명서 낭독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성명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으로 구석구석 이 땅의 적폐를 청산중에 있으며, 오래된 민족의 적폐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새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곳 국립묘지는 과거의 적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여전히 ‘국립묘지법’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 국립묘지는 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영혼의 안식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해방 후에는 이승만 비호 아래 양민학살에 앞섰고, 민족 지도자이신 김구 선생님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김창룡이 ‘국립 묘지법’의 비호 아래 이 곳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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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서를 낭독중인 이순옥 부위원장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국립묘지법 개정과 친일파 묘 이전 촉구대회> 성명서를 낭독중이다. ⓒ 임재근

그리고 무력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주범이자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여 처벌받은 범법자 안현태와, 5.18 민주항쟁 당시 진압군 측 주요 책임자인 유학성, 소준열이 이곳에 버젓히 편하게 잠자고 있다. 이런 자들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국립묘지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짓이자, 이 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는 순국선열과과 애국지사를 능멸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더불어 이해 관계자들에 주장하는 바를 밝혔다. 우선 김창룡과 안현태 등의 유족에는 “그들의 묘가 현충원에 있는 한 국민에게 조롱받을 것”이라며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묘를 이장”하길 요구했다. 또 국회위원들에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개정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길” 촉구했다.

더불어 현충원 유족들과 국민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우리 호국영령 들은 반민족 반민주 인사들과 한자리에 묻혀 맘이 편하실리 없다. 유족과 국민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들을 국립현충원에서 몰아내도록 여론을 만들자”라며 친일파 파묘에 힘을 보태주길 호소했다.

추모의 장에 친일파 흔적은 없어져라… 파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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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파묘 퍼포먼스 김창룡의 묘 앞에서 파묘 퍼모먼스를 대회 참가자들이 이행하고 있다.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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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룡 묘 앞에 놓인 피켓들 김창료 묘 앞에 참가들이 준비한 피켓들이 놓여져 있다. ⓒ 송혜림

‘민족의 반역자 김창룡 묘 파가라!’라고 적힌 커다란 삽이 등장했다. 대회 참가자들이 삽에 이어진 끈을 잡고 영차영차 잡아당기자, 마치 무덤을 파내는 듯한 파묘 장면이 연출된다. 현충원 장군묘역에 위치한 육군중장 김창룡의 묘에서는 위와 같은 파묘 퍼포먼스와 묘 이전을 촉구하고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

김창룡,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이들이 이렇게도 분노하는걸까. 1920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한 그는 1940년에 일본 관동군 헌병교습소에서 근무하다가 일본 중지군의 아마카스사단 파견헌병대에 배속되었다. 중국공산단 거물 왕진리를 체포하는데 큰 공을 세운 그는 이후 다수의 항일조직을 적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월남 이후 국방경비대 내부 좌익숙청을 벌이며 육군 방첩대장이 된 김창룡은 1949년 ‘김구암살사건’에서 사건 당일 범인 안두희를 특무대 영창으로 이감, 특별 배려하며 배후 은폐에 가담했다. 6.25 전쟁 이후 김창룡은 특무부대장으로 부임 후 정치적목적과 성과주의로 상당한 공안사건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암살당한 그의 장례식은 최초의 국군장으로 안양의 사설 묘역에서 치뤄졌으나, 1988년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현충원에 이장되었다.

애국지사 조문기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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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원에 이장된 조문기 묘 앞에서 대회 참가들이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송혜림

친일파의 묘에서 퍼모먼스를 이행한 참가자들은 고 조문기 열사의 묘로 이동했다. 조문기 열사는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대한애국 청년당을 개설하고 국내 항일운동을 주도해왔다. ‘친일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구호아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노력을 기하다 2006년 파킨스병으로 사망했다.

추모사를 발언한 박해룡은 “이승만 정권 하에 단독정부와 독재를 반대한 조문기는 민주화 투쟁과 통일 운동을 이어나갔다. 현대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했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함께 했다.”라며 “승리의 영광없이 고난밖에 없던 가시밭길을 걸어오셨다. 그러나 현재 남북회담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 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시대에 발맞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친일파들을 청산하고 몰아내는 데 힘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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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곽낙원의 묘와 김 인의 묘 앞 단체촬영 김구 어머니 곽낙원의 묘와 김구 아들 김 인의 묘 앞에서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송혜림

또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의 묘 앞에서는 “민주화를 갈망했던 아들이 부당하게 세상을 뜬지 70년이 되었다. 여전히 국내 곳곳에는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다.”라며 “요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김구와 김구 어머니가 그토록 꿈꾸시던 통일을 앞두고 있다. 조속하게 친일과 유신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노력하겠다. 양심 민주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연대하며 만들어가겠겠다”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 인사 중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으로 총 63명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가슴아픈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의 하나로 이들 묘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져 왔으나, 현행 법에 제정된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 째 미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민족사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어 현충원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바로잡히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2018-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에 드리워진 그림자, 친일파의 묘?

목, 2018/06/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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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어린이 책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정황이 보인다. <시사IN>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전태일이 위인으로 소개’돼 있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요하게 ‘좌편향’을 문제 삼았다. 기존 검인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며, “99.9% 전국 고등학교의 절대다수가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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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오른쪽)과 안종범 경제수석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편향’ 낙인찍기 집착은 교과서만이 아니었다. <시사IN>은 박근혜 정부가 기존 어린이 교양도서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문건을 입수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다. 여기에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지시사항에 대한 이행 및 대책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같은 내용이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51권 곳곳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를 추진하던 2015년 11월23일, 이병기 실장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아래 <그림 1-1> 참조). “당분간 ‘집필진 명단 미공개’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고, 명단 보안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교문수석).”

이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누가 참여하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 ‘복면 집필진’이라는 비판을 샀다. 정부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과정을 불투명하게 하고, 집필진의 비전문성을 숨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실장은 계속해서 집필진 비공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바로 다음 이어진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문건 내용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 교양도서의 이념 편향성, 특히 위인전집에 있어 대상 위인 선정의 좌편향성이 매우 심각한데 이러한 도서가 교양도서로 출판되도록 놔둔 교육부/문체부에 문제가 있음. 행정조치에 앞서 이러한 실상을 학부모들이 정확히 알도록 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 *전태일, 레닌, 호찌민, 모택동, 체 게바라 등을 위인으로 소개.”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기록된 지시사항

같은 날(2015년 11월23일) 쓰인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5. 역사 교양도서(아래 <그림 1-2> 참조)’라고만 쓰인 단어에 위와 같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 등을 다룬 도서는 ‘좌편향’이 심하다며 어린이가 읽지 못하게 정부 부처가 민간 출판에도 개입하라는 초법적인 주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지역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할 계획이었다. 이 또한 편향이라고 몰아세웠다.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관련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아래 <그림 2-1> 그림 참조).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용어가 자꾸 회자되지 않도록 하고, ‘학교가 특정 편향 단체의 출판을 지원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점을 적극 알려나갈 것(교문수석).” 같은 날 작성된 2016년 2월14일 안종범 전 수석은 청와대 티타임 메모를 남겼다. 1번부터 7번까지 기록한 내용의 다섯 번째가 ‘친일인명사전?(아래 <그림 2-2> 참조)’이다. 0608-4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4389명이 이름을 올렸다. 2008년 박지만씨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으면 안 된다”라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은 학문적 의견 표명에 가깝고 발간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국정화를 ‘이념 전쟁’으로 인식한 박근혜 정부는 비판세력을 제어할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했다. 2015년 9월30일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교과서 국정화 성공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세력을 제어할 정교한 추진 전략과 디테일한 상황 진전 계획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함…. ※이러한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KBS, EBS 등 매체를 잘 활용할 필요(위 <그림 3-1> 참조)”.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안종범 전 수석에게 국정화 홍보전에 나서라는 주문을 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2015년 9월20일자 VIP 메모에 ‘1. 국정교과서, 부모들 마음 움직여야, 조갑제 대한민국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김일성 보천보 전투 X, 조선 MBC 한경 매경, 시민단체 부모단체(위 <그림 3-2> 참조)’로 기록되어 있다.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활용하라는 취지다.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리고 시행하는 데 관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기 전 비서실장,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현재 모두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이들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고, 국정교과서 관련 직권남용 등 혐의는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2018-06-05> 시사인

☞기사원문: 어린이 책에 붙인 좌편향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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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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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방한
“남북 분단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남북 평화 무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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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북한의 피해자들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야노 국장이 성금 모금을 위해 만든 팸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8.6.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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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통해 탄생한 4·27 판문점 선언을 지지한다며 종전선언 이후의 남북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야노 국장은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한국 전쟁도 있었지만, 결국 한반도 분단의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에 있다”며 “하지만 그 사실을 일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일본은 자민·사회당이 북한 노동당과 양국 관계 정상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재 아베 정권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베 정권은 대북 압력만 넣고 있는데 이는 북미정상회담 등 화해 과정을 방해하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베 정권의 이런 방해 공작을 막는 것이 일본 시민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노 국장은 또 “많은 일본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 생각하면서 일본을 피해국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본 때문에 피해를 본 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더욱 개선되고 종전선언이 나오더라도 향후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야노 국장은 “현재 한일 간에도 위안부 문제나 군인·군속의 강제동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한일 양국의 상황을 극복해서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더 발전된 해결책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공원으로 뒤바뀐 효창공원과 김구기념관, 대공분실을 참관하는 등 식민지배와 강제병합, 한국 현대사 등을 배운 뒤 1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야노 국장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열 계획”이라며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과 학습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앞으로 과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토, 2018/06/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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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서울=연합뉴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2018.6.9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9일 민족문화연구소에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여원을 기부했다.

안자코 유카 모임 공동대표와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등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민문연에서 열린 기금전달식에서 지난 2년간 일본에서 모은 성금 1억345만원을 관련 자료와 함께 전달했다.

민문연은 “한국과 일본 시민의 연대의 뜻을 모은 만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평화의 인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민문연의 식민지박물관 건립을 응원하는 취지로 지난 2015년 11월 발족했으며, 홍보 팸플릿 4만 부를 찍어 지난해 초까지 일본 전역에 배포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 1억원 기부

※관련기사

☞헤럴드경제: 아베와 다른 일본인들…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1억원 기부

토, 2018/06/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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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하는 사관생도(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8일 오후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제107주년’기념식에서 사관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육사, 신흥무관학교 계승한 학교”…독립군 전통, 국군역사에 편입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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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 육사에서 처음 개최(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서 육사 군악대와 생도들이 분열의식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1천100여명은 육사 화랑연병장에 집합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위한 분열의식을 했다.

8개 중대로 나뉜 육사 1~4학년 생도들과 육사 군악대는 약 15분간 절도 있는 동작으로 연병장을 돌며 연단 앞에 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을 항해 큰 소리로 ‘충성’ 경례를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와 호국간성의 대한민국 정예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의 역사적 만남이었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것은 육사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라는 선언의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 등 독립군의 전통이 국군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가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국군의 효시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동안 국군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과거 군 당국이 독립군의 전통을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1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행사를 육사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육사에는 독립군의 역사를 가르치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군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9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과 광복군과 관련한 역사를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육사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당시 박일송 육사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1911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 등의 군사교육기관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육사의 정신적 정통성의 연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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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교내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이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이어 올해 3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육사 교내 충무관에 설치됐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기념식이 육사에서 열린 것도 군 당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로 가능했다.

기념식에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와 육사 생도대장인 김태진 준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 1천200여명이 참가했다.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육사 생도들의 분열의식,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및 특별전시회 관람, 항일음악회 순으로 진행됐다.

항일음악회에선 ‘안중근 옥중가’, ‘기쁨의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 ‘압록강 행진곡’ 등 독립군이 부르던 노래들이 연주됐다.

육사 관계자는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한 학교”라고 “전쟁사 과목 중 포함됐던 독립전쟁 역사교육의 시간을 크게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오늘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국군의 뿌리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국군 장병들이 앞으로 독립군이 불렀던 노래도 군가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8-06-08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처음 열렸다…”독립군 정신 계승”

금, 2018/06/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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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에 부쳐-

1. 오늘(8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 및 백서 발간에 맞추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이자 ‘교육의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역사교육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화 추진이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교육부장관으로서 “정부 과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새로이 되새기며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2. 지난 3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발표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 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국정화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작당하여 자행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발표문을 접하고, 교육부가 과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헌법을 유린한 중차대한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심각한 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고·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에서 배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한 다음,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하여 추진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가)편찬기준 수정요구, (나)편찬심의위원 선정 개입 (다)집필진 선정 등 교과서 편찬과 내용 수정과 같은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박근혜 전 대통령임이 명약관화한데도 교육부는 그를 수사의뢰 대상에서 제외하는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였다.

4. 다음 국정농단에 동조한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처벌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가)국정화 추진과 실행 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다)청와대의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다)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관을 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하였다’고 하였다. 교육부는 청와대의 국정농단에 자발적‧적극적‧반복적으로 동조한 ‘공동정범’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화 방침을 결정할 당시 교육부 수장이었던 황우여 장관이 수사의뢰 대상에서 빠졌다. 게다가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 등 산하기관을 총동원하여 국정농단에 부역하였는데, 겨우 여섯 명의 고위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5. 교육부의 과장급 이하 중·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면죄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국정화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삼아 견마지로를 다한 적폐세력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이 (가)국정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하였으며 (나)검정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거짓 선동하였으며 (다)여론 조사를 빙자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정권의 ‘충견(忠犬)’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함부로 팔아넘겨도 된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6. 교육부는 <보도 자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발표(‘18.3.28) 당시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하여 추진”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가)역사교육지원체제 구축 (나)역사교과서 발행관련 제도와 법규 개선 (다)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 정립 (라)역사교육 공론화 장 및 기구 마련 등을 제시하였다.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제작에 올인한 교육부가 역사교육과 관련된 이와 같은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선언하고 1년이 넘었는데도, 교육부는 아직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대신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자유한국당이 적반하장으로 근거 없는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한 수구-냉전 세력인 교육부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어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을 정립’한다고 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7.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작년 4월 28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역사교육의 정치성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정책 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 가운데 3항이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차후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진상조사위원회도 재발방지책으로 ‘역사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역사교육 거버넌스 주관기구로 역할을 부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교육부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면피용 재발 방지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학계와 체결한 대통령 공약이 조속히 이행되도록 노력하여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끝>

2018년 6월 8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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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253-5251

호반식당의

유뤌이십일

사대강물요일이

기다려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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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6회 “을사늑약과 이토히로부미”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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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금, 2018/06/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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