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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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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9- 02:51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FM 94.5 (18:10~20:00)
■ 방송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 대담: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이 그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 해볼 얘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 관한 얘깁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 지낸 ‘심산 김창숙기념관’ 홍소연 전시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홍소연 심산 김창숙기념관 전시실장(이하 홍소연)>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경교장이 여관이냐, 이런 질문도 받으셨다고요?

◆ 홍소연> 네, ‘장’ 자가 붙었으니까.

◇ 이동형>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네요. 백범의 숙소이자 안두희에 총에 맞아 서거했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한데, 어떤 곳인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홍소연> 경교장은 공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면서 유일한 국내에 있는 청사이고요. 그다음에 독립운동가들의 목표인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로 가기 위한 남북 협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안두희로 상징되는 친일 반민족 세력의 흉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 이동형> 역사적 사진도 기억이 나는데, 경교장 창문이 총탄에 깨진 사진이 있었잖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습니다. 백범 선생님이 2층에 앉아계셨는데, 창가에 앉아계셨어요. 그런데 안두희가 사선 방향에서 총을 쏴서, 모두 네 발을 쐈는데, 그중 총알 두 개가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고 해서 경교장을 복원하면서 그것을 재연했습니다.

◇ 이동형> 일제하고 싸우면서도 중국 망명길에서도 총탄을 맞았습니다만, 그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고, 해방된 조국에서 어쨌든 우리 민족의 한 사람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서거하셨는데요. 그 장소가 경교장이고요. 지금은 강북 삼성병원 소유라고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복원이 됐습니까?

◆ 홍소연>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데, 일부 경교장 뒤와 옆이 병원하고 붙어있어서 그런 부분이 안 되어 있고, 원래는 병원 주차장으로 쓰이던 곳이 넓은 뜰이었어요.

◇ 이동형> 백범 선생님 서거하시고, 우리 백성들이 경교장 앞에, 방금 말씀하신 뜰에 엎드려서 통곡하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그게 주차장으로 변했다?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네요.

◆ 홍소연> 그래서 사실은 경교장이 어쨌든 강북 삼성병원의 소유고, 병원 시설로 쓰고 있다가 병원이 양해를 해주어서 옛날처럼 복원을 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뜰이 주차장으로 있다 보니까 장소가 약간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는 살짝 위험한 그런 부분들도 있고 그래서 복원이라는 의미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죠.

◇ 이동형> 실장님, 지금 경교장에서 해설 봉사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경교장 오시는 분들이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 홍소연> 네, 그렇죠. 처음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가 병원만 복원되니까 이제는 뜰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 이동형>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할 것 같습니다.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의 마지막 윤경빈 선생은 경교장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 성우> “봉영위원회에서 백범선생은 경교장에 모시고, 나머지 국무위원들 대부분은 한미호텔에 모시고, 또 부통령 되시는 분은 경교장에 며칠 묵으시다가 삼청동에 모시기로 했어요. 이시영 선생은 경교장에 계셨어요, 엄항섭 선생하고. 백범 선생 임시정부 선전부장이고 대외활동 많이 해야 하니까. 임시정부 선전부를 경교장 아래층 오른쪽 방에 모셨어요. 봉영위원회에서 처음에는 대단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스테이크 먹고. 이런 생활 한 20일 했나요? 스테이크도 없어지고 조반도 업어지고, 밥도 아무 것도 안주는 거야. 중국서 독립운동 할 때나 비슷한 생활을 했어요. 해방 후 돌아와서 임시정부 모든 일은 거기서 다 처리했으니까 마지막 청사라고 할 수 있죠. 이승만 대통령은 뭐라고 할까,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편할 때는 나오시고 불편할 때는 안 나오시고. 그 이후에는 나온 적이 거의 없어요. 한 번, 한번 꼭 왔었어요.”

◇ 이동형> 윤경빈 선생의 회고를 들어봤는데요. 해방 이후 조국에서 임시정부가 이런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홍소연> 그것은 어쨌든 정부로서의 환국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겠죠.

◇ 이동형> 개인 자격으로의 환국은 미군정이 그렇게 요구한 것이지 않습니까?

◆ 홍소연> 네, 그렇죠.

◇ 이동형> 미군정을 왜 그렇게 요구했을까요?

◆ 홍소연> 어쨌든 당시 미군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만약에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한 땅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또 혹시 임시정부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해서 정부로서의 활동을 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외세인 미국과는 당연히 충돌이 있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 이동형> 이승만 박사가 한반도로 들어올 때는, 들어오지 전에 일본을 거쳐서 맥아더 장군을 만나고, 하지도 만나고, 굉장히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중국에서 들어왔던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푸대접 받았습니다. 환영받지도 못 했었고. 미군들만 몇 명 나와 있었고.

◆ 홍소연> 그렇기도 하고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임시정부가 일본이 항복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하면, 우리 지금 국내에서는 일본이 항복하고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과정이 이어갔잖아요. 빨리 들어왔으면 그런 게 조금 더 원활히 수습이 되고, 그렇게 진행돼서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임시정부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이미 국내에서 정치적인 여러 세력들이 생기고 하면서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나중에 임시정부 2진이 들어오는데, 2진은 더 홀대받고 들어왔으니까요.

◆ 홍소연> 네, 맞습니다.

◇ 이동형>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 백범 선생님의 환국 날짜가 11월 23일이었는데요. 다음 날 백범은 하지 미군 사령관과 아놀드 미군정 장관을 방문합니다. 저녁 6시에 경성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서 2분 동안 귀국방송을 하는데요. 백범 연설 듣고 옵시다.

◆ 성우>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 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閣員)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 완성을 위하여 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 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 이동형> 이렇게 이 방송이 나가고, 또 신문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은 임시정부 백범 선생이 들어왔구나, 뒤늦게 알았던 거잖아요? 미군정에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또 여운형 선생 같은 경우도 하지가 일본 앞잡이 아니었냐, 이렇게 오해하기도 했었고. 결국은 미군정이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를 하나도 몰랐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 홍소연> 네.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임시정부 백범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미군정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임시정부 활동은 경교장에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국무위원 회의도 개최되고, 신탁통지 반대운동도 주도하고, 경교장에서 있었던 임시정부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홍소연>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탁통치 반대운동, 그다음에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기획하고, 실천한 곳입니다. 신탁통치 문제는 45년 12월 말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문제인데요. 임시정부로서는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일제에게 길게는 36년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4개국의 신탁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신 분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어서 당시 그것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하고, 경교장이 그 무대가 되어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 이동형> 48년 4월 19일 김구는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요. 주변에서도 말렸고, 이승만 박사 같은 경우에도 넘어가면 김일성한테 이용만 당한다,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는데, 결과는 아마 백범 선생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백범 말대로 마지막 독립운동, 이대로 가면 조국은 분단되고, 서로 피를 흘린다. 결국은 또 그렇게 됐고요. 그래서 마지막 노정객이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이는데요.

◆ 홍소연> 저는 최근에 이봉창 의사 의거를 유심히 보면서 이봉창 의사가 수류탄 2개를 들고, 1932년 1월 8일 동경에 가서 폭탄을 던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 김구 선생님이 그 폭탄 2개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그로부터 20일 뒤에 일본이 상해를 침략해 들어오는데, 당시 일본군이 10만 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군함이 80척이 뜨고, 비행기가 300대가 떠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든요. 우리는 수류탄 2개 만들기 위해서 1년이 걸렸는데. 만약에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독립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역사가 됐겠죠. 남북 협상도 꼭 당장에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이게 가야 할 길이어서 그 첫 걸음을 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가고 또 가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요. 그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봐도 되겠죠.

◆ 홍소연> 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계속 또 가고, 가고, 해야 한다. 지금도 가고 있고요.

◇ 이동형>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여했을 당시, 백범의 축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성우> “본인은 일찍이 글을 배우지 못하여 무식해서 따라서 말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몇 마디 글자를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친애하는 의장단과 각 정당 단체 대표 여러분, 조국 분열의 위기를 만구하기 위하야 남북의 열렬한 애국자들이 이 땅에 회집하야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참석하게 된 것은 실로 우리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발전이며 이와 같은 성대한 회합에 본인이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이동형> 백범 선생 본인의 육성을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고 하는 게 그래도 다행스럽네요.

◆ 홍소연> 제가 알기로는 이 자료가요. 6.25 전쟁 때 미군이 위에 올라갔을 때 확보한 자료라고 합니다. 그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미국에서 그 자료를 찾아오고요. 이 날 김구 선생님의 요지는 뭐냐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반대다, 그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남쪽에서 오해를 해서 마치 남한에서만 반대하고, 북한에서는 찬성한 것처럼 이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더 김구 선생님에 덫을 씌운 거죠.

◇ 이동형> 지금도 가짜 뉴스가 문제입니다만, 과거에도 가짜 뉴스가 있었으니까요. 신탁, 반탁, 문제도 가짜 뉴스가 등장했었고. 백범은 하나의 나라를 꿈꿨습니다만, 결국 역사를 백범의 예고대로 흘러갑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리는데요. 백범 김구가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겁니다. 그날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백범의 비서였던 선우진의 증언입니다.

◆ 성우>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20분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공주에서 ‘건국 실천원 양성소’ 입소식이 열릴 예정이었어. 그런데 당국의 탄압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지. 소식을 들은 백범은 울적해 했어. 붓글씨나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때, 안두희가 찾아온 거야. 나는 안두희를 2층으로 안내했어.”
백범 : “언제 왔느냐”
안두희 : “어제 왔습니다.”
“안두희를 백범에게 인사시키고, 나는 식사 마련 때문에 지하실 식당으로 갔어, 그러고 한 2~3분이 지났을까.”
안두희 : “내가 선생님을 쏘았소.”

◇ 이동형>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경교장으로 가봤는데요.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날 이상한 일이 연달아 벌어집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기나 한 것처럼 헌병대들이 경교장 주위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두희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의심은 계속 드는 거고요. 그 이후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만, 석 달 만에 감형돼서 풀려나고, 군에 복귀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 군납 업체 특혜를 받아서 상당한 부를 강원도에서 일구게 되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습니다만, 누가 안두희를 사주했을까.

◆ 홍소연> 흔히 하는 이야기가 제3세계에서의 암살 사건에는 그 뒤에 반드시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 이동형> 어쨌든 반통일세력이었을 것이다.

◆ 홍소연> 네, 친일, 반통일세력이.

◇ 이동형>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백범 선생 암살당하기 20일 전에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경찰들이 습격한 건데, 반민족행위자들,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해체시키고, 마지막으로 20일 뒤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면서 이제부터 정말 친일 활동 했던 사람들이 마음 놓고 해방 후 조선에서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버린 것이죠.

◆ 홍소연> 네, 저는 반민특위 와해의 마침표가 김구 선생님 암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만약 백범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땠을까요?

◆ 홍소연> 적어도 지금처럼 기득권들이 불의로 상징되는 세상은 아니겠죠.

◇ 이동형> 경교장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우리 방송 듣고 경교장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그냥 가면 됩니까?

◆ 홍소연> 네, 월요일 쉬고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일정하게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요. 그것을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이라는 데 들어가서 예약 신청을 하면, 저처럼 전문적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어떤 설명을 해주시는 거죠?

◆ 홍소연> 저는 주로 우선 경교장의 의미, 그리고 또 백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드는 데 참여해서 지금 우리 역사 속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 이동형> 내부는 백범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그대로 복원한 건가요?

◆ 홍소연> 네, 사진 자료나 기타 자료들이 많아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요.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층고가 높다 보니 복원하기 위해서 천정을 뜯었더니 천정 쪽은 거의 그대로 살아있어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지난 2월 26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기도 했었는데요. 4월 11일은 임시정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 홍소연> 딱 100년이죠.

◇ 이동형> 이 날 경교장에서 국무회의하면 어떨까요?

◆ 홍소연> 저도 미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오늘 질문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2019년에 앞의 100년을 기념했다면, 과연 100년 뒤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가, 과연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오늘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를 백범 기념관 자료실장을 지낸 홍소연 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실장님은 심산 선생 기념관 전시실장을 함께 맡고 있으니까. 심산 선생님 기념관은 어떻게 방문하면 됩니까?

◆ 홍소연> 거기는 일요일에 쉬어요.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보통 박물관하고 틀을 똑같습니다.

◇ 이동형> 3·1운동 있을 때 민족대표로 우리 유교가 빠지지 않았습니까? 심산 선생이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하는데.

◆ 홍소연> 그래서 파리장서운동을 하시면서 그때 심산 선생님 나이가 40이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그 ‘심’ 자가 맹자의 사십부동심에서 가져온 심이거든요.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산처럼. 그래서 호가 심산입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백범 기념관, 또 심산 기념관, 여러분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마무리하면서 백범 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 대사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 성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9-03-28> YTN 

☞기사원문: [임정 100주년 특집] 4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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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病中牧師卽事

 

誰言天路遠(수언천로원)

屈指待君來(굴지대군래)

速死眞良策(속사진양책)

如何擧祝杯(여하거축배)

 

病中의 목사를 찾아 즉흥시를 읊다

 

천당 길이 멀다고 누가 말하는가

그대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소

급하게 죽음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것은 어떻겠소.

 

<時調로 改譯>

 

天路 멀다 뉘 말하나 그대를 기다리오

급하게 죽어 버림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건 또한 어떠하겠소.

 

*病中:  병을  앓고  있는  동안  *天路:  천당으로  가는    *屈指:  무엇을    때,

손가락을 꼽음 *速死: 즉사(卽死). 직사(直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良策:

좋은  계책이나  뛰어난  책략.  고유(高猷)ㆍ양계(良計)ㆍ양모(良謀)  *祝杯:

축하하는 뜻으로 마시는 술. 또는 그런 술잔.

 

<2017.7.16, 이우식 지음>

일, 2017/07/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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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는 조작된 영상이 올라오는게많아서 민족문제홈피에  영상이 있나 찾아 봤는데 없네요 원본영상 볼수 있는곳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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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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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무수좌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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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은팔순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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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善友(증선우)

 

同生同死約(동생동사약)

盡信固愚痴(진신고우치)

四處盈奸黨(사처영간당)

君余被誕欺(군여피탄기)

 

착하고 어진 벗에게 지어 주다

 

함께 살다 같이 죽자 약속했음을

다 믿으니 정말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간사한 무리 가득한지라

그대도 또 나도 속임을 당하였소.

 

<時調로 改譯>

 

함께 살다 같이 죽자 그리 약속했음을

그대로 다 믿으니 참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奸黨인지라 둘 다 속임당했소.

 

*善友: 착하고  또 어진 벗  *同生: 함께 삶.  함께 남  *同死: 같이  죽음  *愚癡:

매우 어리석고  못남. ≒치욕(癡慾).  삼독(三毒)의 하나. 四相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름 *四處: 사방(四方) *奸黨: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誕欺: 속임. 거짓말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8:22
260
0

역사 교과서에 '세월호'는 어떻게 기록될까?

참사를 둘러싼 역사 전쟁

 

박주민 변호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명언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단순한 사실(a mere fact)이 아니라 이것에 현재의 가치를 부여하여 역사적 사실(a fact of history)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역사가 이렇게 가치 부여가 수반되는 것이기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역사 앞에 "하나의" 혹은 "올바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특히 국가가 그런 수식어를 붙인 '역사'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원래 안 되는 것이지만 만약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의 사고를 호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세력이 역사에 대해 단 하나의 가치관만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더욱 더 좌절되어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애초부터 '올바른 역사'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호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집권 세력이 자국민의 정치적 선호를 바꾸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를 동원해 자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戰)'을 전개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시 정작 12명의 잠수부, 헬기 2대, 군함 2척, 특수보트 6대만이 동원되어 구조 작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0명의 잠수사와 121대의 헬기, 69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온 국민이 믿게 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진실을 드러내고, 국민의 비판을 수용하여 문제를 개선하는 민주주의적 선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정치적 비판과 그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두려워해 진실을 숨기고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악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 그들이 끊임없는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해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사람이 소위 '올바른 역사'란 것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카의 위의 말에 따르면 진실과 동떨어진 것을 역사로 만들려는 것을 막는 싸움은 2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사실을 확정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후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에 속하는 싸움이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만들기 위해 아니 믿게 만들기 위해 참사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진상 규명 작업 자체를 방해하는 세력과의 싸움이다.

 

이 세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여러 시도들을 벌여왔다. 우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충분한 권한이 부여된 조사 기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방해했다. 이후 600만 명이 넘는 국민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지도 못한 채 풍찬노숙을 견뎌냈던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열망의 일부가 담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하기까지 하였으나 이에 대해서도 거부권이라는 비상한 방법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가 요청한 조사 예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만 집행하였고, 내년 예산도 세월호 특조위가 요청한 예산액 중 31%만 배정하려 하고 있다. 파견하기로 했던 공무원들도 제때 파견하지 않았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하기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를 하였건만 이제는 말을 바꾸어 연장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는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실관계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둘 수는 없다. 1863년 영국에서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전 세계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하철 사고는 단 3건인데 이 중 2건이 우리나라 그것도 대구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가 밥 먹듯이 아니 황당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참사 때마다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현장 실무 책임자만이 책임을 지는 소위 '꼬리 자르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과 그를 통한 참사의 재발 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참사가 단순한 사고로만 역사적으로 기록되도록 만들어 왔던 것이 참사가 재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리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고, 세월호 참사의 의미가 제대로 기록되게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시한 연장과 조사에 필요한 예산의 확보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세월호특조위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수사권과 기소권은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제한 없이 청문회를 할 수 있고, 특검도 2번이나 요청할 수 있다. 과거의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역사적 왜곡은 중단될 수 있을 것이고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당시 해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그를 통해 진상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역사를 통해 후대와 현세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느냐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생한 그리고 진행 중인 사건들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일도 역사를 둘러싼 전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이때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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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11/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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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人君南北對話

 

止爭尋活路(지쟁심활로)

南北本同民(남북본동민)

共滅何邦待(공멸하방대)

休誇美日親(휴과미일친)

 

나라님께 남북 대화를 권함

 

다툼을 멈추고서 살길을 찾으소서

남북은 본디부터 같은 백성입니다

共滅하기를 어떤 나라 기다릴까요

저 미국, 일본과 친함 자랑 마소서.

 

<時調로 改譯>

 

다툼 대신 살길 찾소 남북 同民입니다

함께 망해 버리길 어떤 나라 바랄까요

美日과 썩 친하다며 자랑 따위 마소서.

 

*人君: 나라님 *活路: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共滅: 함께 사라지거나 멸망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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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老僧嘲大佛事

 

未識無爲道(미식무위도)

平生作苦勞(평생작고로)

虛心誰妄說(허심수망설)
佛恐放霜刀(불공방상도)

 

늙은 중을 만나 큰 佛事를 조롱하다

 

無爲의 道를 아직도 알지 못하니

평생 괴롬과 또 수고로움을 짓네

虛心하다 함은 그 누구 妄言인고

부처가 겁내니 시퍼런 칼 놓으라.

 

<時調로 改譯>

 

無爲之道를 모르니 평생 苦勞를 짓네

虛心하다고 함은 그 누구의 妄言인고

부처가 두려워하니 시퍼런 칼 놓으라.

 

*佛事: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 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 ≒법사(法事).

법업(法業)  *未識:  미지(未知).  아직  알지  못함 *苦勞: 괴로움과  수고로움.

신로(辛勞) *虛心: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 *妄說: 망언(妄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고  망령되게  말함. 또는 그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선 칼.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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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

월, 2017/07/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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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國巡廻說法僧

 

汝口終成佛(여구종성불)

全無所不知(전무소부지)

呼神能斥鬼(호신능척귀)

直答解衆疑(직답해중의)

 

전국을 돌며 설법하는 스님

 

그대의 입이 마침내 成佛을 하여

아시지 못하는 바가 전혀 없구나

神을 부르고 鬼도 능히 물리치며

즉시 답하여 뭇사람 의심도 푼다.

 

<時調로 改譯>

 

입으로 成佛을 하여 마침내 無所不知라

저 神을 막 불러 대고 鬼도 썩 물리치며

물음에 直答으로써 뭇사람 의심도 푼다.

 

*全無: 전혀 없음 *無所不知: 모르는 것이  없음  *直答: 즉답(卽答).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아니하고서 직접 대답함 *衆疑: 여러 사람이 품은 의심.

 

<2017.7.14, 이우식 지음>

금, 2017/07/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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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맞은 대전수요문화제


“굴욕적 한일합의 당장 무효화하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
“역사적폐 끝까지 청산하자!”

7월 12일, 20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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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저녁 7시, 대전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가 20차를 맞았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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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사람이 살면서 3가지 만남이 필요하다”며, 이 3가지 만남을 ‘자기 자신과 냉철한 만남’,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만남을 위해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고, 더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통일이라며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카이스트 내에 작은 소녀상 건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카이스트 소셜메이커의 정지윤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알이야 한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노예 범죄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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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회원과 조합원들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임재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피플큐브’의 최준호, 김관영 회원과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백장현, 김요진 조합원도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최준호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SNS를 타고 퍼지는데도 일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은 고개를 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장현씨는 “위안부 범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가혹한 일”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김관영씨도 “일본이 용서를 구하고, 국가에서 사과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요진씨는 ‘난 알아요’ 곡으로 노래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진 대표는 군함도로 대표되는 강제 징용의 사례를 들며,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사실과 끔찍했던 광경들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인 일본만 피하려고 한다”며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청년회에서는 군함도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피해 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직접 만들어 문화제 주변에 전시했고, 올해 11월에는 군함도를 직접 다녀와 강제징용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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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과 시민들. ⓒ 임재근

보릿고개에 입 하나 덜자고 나선 길이었다.
떨어져 살아도 고향 쪽 하늘 바라보면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겠지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한 줌 빛줄기 들지 않는 열차 속에서
겁먹은 표정의 앳된 얼굴의 마주 앉은 낯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이제 공장 가면 돈 많이 벌어
고향 집에 흰 눈처럼 소복한 솜옷 보내자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자기는 이불 보내고 싶어요
수줍게 웃었지…

양보규 대전지역 희망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땅 위에’란 제목의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는 독립영화 ‘우리 학교’ 삽입곡인 ‘우리’와 통일 노래인 ‘경의선 타고’를 부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통일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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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대전민중의힘 소속 단체 대표자들. 왼쪽부터 김원진 대전청년회 대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정선 공동대표,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최명진 대표,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민주노총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 대전민중의꿈 김창근 상임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수요문화제는 ‘평화나비대전행동’이 주최하는 데,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이 돌아가며 주관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 수요문화제는 대전민중의힘이 주관했고,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대전수요문화제는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다. 다음 수요문화제는 8월 9일에 개최된다.

임재근 기자

<2017-07-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모두 가혹하고 끔찍.. 일본은 사과하라”

목, 2017/07/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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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 8화 – 2부 「이게 실화냐?」 
“연구소 단독-이준열사 집터 발굴”

팟빵에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7/07/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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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이준 열사 집터 표석 제막식 자료집]

 

이준 열사 순국일에 집터 표석 제막식 거행

 

▲ (좌) 이준 집터’ 표석 (시안), (우) 이준 열사의 집터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안국동 152번지 구역의 현재 모습

헤이그특사사건 11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준 열사가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될 당시에 거주했던 곳에 그를 기리는 집터 표석이 설치된다. 그간 이준 열사가 생전에 안국동에 살았던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주소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각종 문헌자료를 조사해 최초로 지번(안국동 152번지)을 확인한 결과, 덕성학원 재단 건물인 해영회관이 헤이그특사로 파견될 당시 이준 열사가 거주했던 집터임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표석 설치를 신청하였고,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이번에 집터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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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면 위에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자료이다. (『경성부일필매 지형명세도』,1929)

표석 문안에는 이곳이 1907년 당시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점 이외에 1905년 이준의 부인 이일정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명기하였다.

표석 제막식은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가 되는 7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덕성학원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리며, 제막행사는 1시 40분에 해영회관 1층(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전면에서 거행된다. 이번 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준 열사 유족대표로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명예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이에 앞서 낮 12시 3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준 열사의 생애와 이준 집터에 관한 사료 소개와 전시해설이 있을 예정이다. (재)리준만국평화재단(이사장 이양재)에서 제공하는 전시유물에는 이준 열사의 유묵(遺墨) 2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목, 2017/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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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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