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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출간! (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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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출간! (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익명 (미확인) | 월, 2019/03/25- 22:15

역사의 시작
The Beginning of History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역사의 종말(후쿠야마)인가 역사의 시작(데 안젤리스)인가?
신자유주의가 선언하는 ‘역사의 종말’에 맞서 투쟁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시작’을 탐구한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공유경제를 넘어 공통장으로!
공통장(commons)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필독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  옮긴이  권범철  |  정가  25,000원  |  쪽수  488쪽
출판일  2019년 3월 18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40*215)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아우또노미아총서 65
ISBN  97889-6195-201-9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06918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역사의 시작』은 창조성을 반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데려가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 사회주의, 코뮤니즘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지은이

『역사의 시작』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지적 혁명이며, 엄밀하면서도 흥미롭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지은이

이 책은 반자본주의 이론의 중대한 성과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지은이

『역사의 시작』 간략한 소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장과 존엄을 위한 다양한 투쟁들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다른 실재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이 투쟁의 전선을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으로 불리는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끝없는 성장과 화폐 가치를 추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사회적 세력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삶의 망을 재배열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대안지구화 운동이 최근 제기한 대안적인 공동생산 양식들을 다루면서 이 운동들이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이 책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비판 정치경제학 이론을 모색하고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어 그 이론의 역할을 탐구한다. 이 책은 모든 정치 활동가와 정치 이론 학생들의 필독서다.

『역사의 시작』 상세한 소개

『역사의 시작』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에 도전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라고 주장하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사실상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하는 이러한 사고에서 세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그것의 불완전한 실행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했으므로 그것의 보다 완전하고 광범위한 실행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것은 특정한 가치, 즉 이윤, 경쟁, 무한 축적 등이 보편화되어 사회 곳곳에 스며든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역사의 시작이란 “다른 가치들을 상정하는 것이며, 화폐로 부패된 민주주의,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경쟁으로 부패된 사회적 공동생산 그리고 비시장 공통장을 종획하는 구조조정과는 다른 지평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는 것은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도전과 적대이자, 자본주의를 넘어선 창조의 구성적 과정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지구 전역에서 자본의 폭력에 맞서 일어나는 다양한 투쟁들이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며 다른 삶을 창조하는 과정이기에 역사는 끝난 적이 없다. 역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말하지만 데 안젤리스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사회적 관계들의 체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세계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거대하며, 자본주의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떤 것, 즉 사회적 재생산 체계에 속한 하나의 하위체계에 불과하다.” 이 말을 따른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체계가 모든 것을 에워싼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체계들의 상호관계로 구성된 세계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저자는 이 세계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가치 체계들의 집합으로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가치’라는 것이 우리가 우선시하는 어떤 것이라면, 가치들은 전체 사고 구조로 함께 결합하여 가치 체계를 낳는다. 따라서 이 가치 체계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개념 격자다. 그것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우리가 무엇을 단념해야 하고, 무엇이 바뀔 수 있는지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정의한다.”

세계를 만드는 ‘가치 실천’

데 안젤리스는 이 가치 체계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 가치 실천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가치 실천은 “가치 체계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그것을 (재)생산하는 행동과 과정과 관계망”을 의미한다. 이 가치 실천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개념적으로 그리고 담론적으로 선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선별에 기초하여 행동함으로써” 특정한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가치 체계는 주어져 있다기보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재)생산되며, 상이한 가치들의 추구가 상이한 ‘사회들’을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주택소유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좋은 것’이고 하락은 ‘나쁜 것’이다. 반대로 세입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나쁜 것’이고 하락은 ‘좋은 것’이다. 주택소유자들은 가격을 담합하고 이른바 혐오 시설의 입주를 저지하며 임대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치화하는 것(임대료 및 주택 가격 상승)을 추구함으로써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가치 체계를 넘어 하나의 가치 프로그램이 된다. 저자가 인용하는 맥머트리에 따르면 “하나의 가치 체계 혹은 윤리 체계는 상정된 자신의 가치 구조가 자신을 넘어서는 사고를 배제할 때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다.” 즉 프로그램은 하나의 ‘정상’이 된 사고 체계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 부동산 투자는 화폐를 향한 공통의 욕망 위에서 번성한다.

자본의 외부 : 공통장(commons)

그러나 우리는 임대료와 주택 가격의 상승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 안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고 강제 집행에 맞서며 다른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한 일은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가치 체계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렇게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하나의 전선이 형성되고 그곳에서 다른 사회가, 자본의 외부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렇게 “자본과 다른 것이 되는” 과정, 즉 외부를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른다. 이 공통장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공통장들이 이미 사회 내에 잠재해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삶과 지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과 자원의 많은 부분을 공급하는 수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통장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여 다른 사회를 만듦으로써 우리가 자본 외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러한 외부를 자신의 울타리로 에워싸려 한다. 그 과정이 바로 종획(enclosure)이다.

자본은 종획한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계라면, 자본은 이 체계를 출현시키는 사회적 세력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세력이란 어떤 지향점을 가진 힘들이 연결된 상태를 가리킨다. 자본의 지향점은 바로 무한한 축적이다. 이것을 지향하는 사회적 세력, 자본은 “인간 및 비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스며들기를 열망하며 그 모든 영역을 자신의 행위 양식으로, 따라서 특유의 사회적 관계로, 즉 사물을 가치화하고 그 결과 사물의 질서를 만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식민화한다.” 요컨대 자본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에워싸려 한다. 즉 종획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는 종획을 자본주의의 ‘시초’에 일어난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정상적인’ 축적 과정, 즉 ‘자본 논리’를 강조하지만 저자에게 종획이란 ‘자본 논리’의 지속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세계를 객관적인 법칙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 실천들 간의 투쟁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자본은 자기 보전과 무한한 증식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 세력을 종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의 강조점은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력들이 반대하는 것, 즉 자본주의보다는 그 세력들이 대면하는 것, 즉 자본과 자본의 가치 실천에 맞추어져 있다.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수많은 문헌들이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된 시장이 가져온 참담한 효과를 나열한다. 그것을 상이한 가치 실천들 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싸워야 할 ‘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빈곤과의 싸움’을 언급하는 이들의 발표자료 속에서 빈자는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재현되고, 빈곤은 자본의 세례를 아직 받지 못한 ‘저발전된’ 상태로만 나타난다. 즉 빈자들의 주체적인 실천과 투쟁은 지워지거나 심지어 범죄화되고, ‘역사의 종말’이란 사고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자본은 자신을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실상 그 자신이 그 문제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손쉽게 ‘해결책’,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공통장도 자본으로 흡수될 수 있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른바 공유경제는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는, 혹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는 그 사업들 대부분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업들은 공유, 협력, 나눔 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도시민들의 마주침을 조직하여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공통의 부를 전유한다. 그 부를 생산한 공통인들(commoner) 혹은 공동체는 자신들이 생산한 부로부터 배제된다. 따라서 이 소위 공유 사업들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새로운 종획의 사례다.

그러나 그 종획의 과정에서 또 다시 투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전선이 그어진다. 공유경제뿐 아니라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례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도시는 공통의 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다. 저자는 그 전장에 뛰어든 혹은 뛰어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관점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Massimo de Angelis, 1960~ )

이스트런던 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이며, 웹 저널 『공통인』(The Commoner)을 2001년에 설립하여 현재까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유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이론부터 현대 지구적 자본주의와 위기의 정치경제, 사회 운동과 공통장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내포된 다양한 위기 국면 안에서 사회적 체계로서의 공통장과 그것의 설계, 회복력, 지속가능성 및 발전 전략을 탐구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과 역학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 운동들이 만들어 낸 무수한 파열과 대안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특히 대안지구화 운동에 주목하면서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공통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만연하게 된 “역사의 종말”이라는 정신에 도전하기 위해 2007년에 『역사의 시작』(갈무리, 2019)을 출간하였다. 이후 10년간 현대 자본주의적 체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유지하면서 그 배경에 있는 공통장을 드러내는 연구에 주력하여 『모든 것은 공통적이다』(2017)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에코페미니즘, 진화생물학, 체계 이론 및 복잡성 이론을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공통장이 단순히 그 속의 자원만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에서 기업, 국가, 다른 공통장 및 사회 운동과 같은 다른 체계들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또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출현을 1920년대 이후 강력한 사회운동의 결과물로 해석한 『케인스주의, 사회 갈등, 그리고 정치경제학』(2000)을 썼다.

옮긴이
권범철 (Kwon Beomchul, 1978~ )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 공통계의 생산과 전유」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메트로폴리스의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Art of Squat. 점거 매뉴얼북』(오아시스프로젝트, 2007)을 함께 편집했으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갈무리, 2014)과 『빚의 마법』(갈무리, 2015), 『로지스틱스』(갈무리, 2017)를 옮겼다.

추천사

『역사의 시작』은 탈근대 자본주의를 “외부”가 없는 총체적인 체계로 바라보는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 도전한다. 데 안젤리스에게 “외부”는 공유와 공생공락 그리고 공통성의 공간 속에서 건재하다. 이것은 삼림 공유지를 보호하는 제3세계 마을의 여성 농부부터 “자유” 소프트웨어와 “안티카피라이트” 라이선스를 만드는 인터넷 활동가에 이르는 지구 전역의 투쟁들에 의해 계속 창조된다. 『역사의 시작』은 이 창조성을 반자본주의적 사고의 중심으로 가져오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그리고 코뮤니즘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자율주의 사상가 ― 이 전통은 네그리와 비르노 같은 인물을 배출한 바 있다 ― 의 새로운 세대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명성을 쌓았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사의 시작』은 엄밀할 뿐 아니라 흥미진진하며, 그 자체가 일종의 지적 혁명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의 『역사의 시작』은 반자본주의 이론에서 큰 발전을 이룬 책이다. 데 안젤리스는 공통장, 종획, 자율, 사회적 재생산 같은 개념들을 그러모아서 자본주의가 자신에 맞선 투쟁에 직면하여 어떻게 살아남고 축적하는지 밝힌다. 이와 동시에 그는 가치, 시초 축적, 자본 같은 맑스주의의 대상화된 개념들을 탈물신화하고 그것들의 살아 있는 정수를 드러낸다. 그는 21세기의 사고와 행동에 유용한 맑스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다. 독자는 반지구화 운동의 슬로건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 대한 풍부하고 선명한 비판과 함께 이 책을 덮는다. 데 안젤리스가 다른 세계, 반자본주의적 세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저자

책 속에서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나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독재 정권과 저임금에 저항했던 한국의 노동자 및 사회 운동의 투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은 지구화의 결정적인 마디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쪽

역사의 시작이란 문제계는 역사의 종말이란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 … 자본주의를 넘어선 실재의 사회적 구성 과정은 창조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 1장 역사의 시작, 23쪽

자본주의가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의 세계의 부분 집합이다. 실제로 일반 체계 이론은 어떤 체계도 부분적 전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만일 그 체계 내에서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 나타나고, 외부에서 보면 그것은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체계의 부분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상이한 규모의 체계들은 서로 맞물려 있고 서로 위계 관계 속에 있다.

― 3장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자본, 86쪽

자본과 구별되며, 생산하는 신체의 필요와 욕망에 뿌리를 둔 가치 실천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과 노는 것과 요리를 하는 것은 결혼식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거나 혹은 철로를 까는 일만큼이나 한 ‘공동체’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맑스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자연의 생산을 우리의 욕구에 적응시킨 형태로 전유하고 있다.

― 5장 생산과 재생산, 123쪽

나는 무역이 훈육을 하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사후 영향을 통해서, 사전 위협을 통해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주체성의 물질적 기반의 연속적인 재구성 과정으로부터.

― 9장 전 지구적 노동 기계, 241쪽

종획은 상품화 과정에서 출현하지만, 공통장 회복과 상품화 반대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가령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략으로, 혹은 공통장과 공동체를 생산하는 실천 전체에 종획을 다시 씌우는 계급 전략으로 말이다.

― 11장 한계 없는 종획, 274쪽

가치는 사람들이 행동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며 담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주어진 척도 단위를 사용하여 측정된다. 상품 가치는 이 중요성이 뒤집어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생산물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다.

― 13장 자본의 가치화와 측정, 335쪽

사실 역사의 시작은 살아져야 한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상호 관계 양식의 구성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 특이성들/파편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 양식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자본의 가치 실천과 그 훈육 시장 외부로 나가는 것의 의미를 그들 사이에서 파악할 수 있다.

― 17장 공통장, 437쪽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8)

1979년에 저자는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세미나실들 안으로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기”라는 기폭장치를 설치했다. 『자본』 1장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는 『자본』이 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해 쓰였으며 우리가 이제 노동자라는 범주를, 주부, 학생, 실업자 그리고 여타의 비임금 노동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8)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에 때맞추어 1994년 1월 1일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하여 1997년 8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빠띠스따 투쟁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흔히 ‘원주민 게릴라들’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사빠띠스따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어떻게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는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 세계에 유통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피와 불의 문자들』(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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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평균 7만원이던 기부금, 金 비서실장 취임 이후 월 7억원대로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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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박근혜 청와대에 상납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상납이 빈번하던 그 무렵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 재단'(이하 재단)으로도 수상한 뭉칫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돼 주목된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과 CBS노컷뉴스가 국세청 공익법인공시를 확인한 결과 재단으로 2013년 11월과 12월 두 차례 거액이 기부금이 들어갔다.

11월에 재단 계좌에 찍힌 기부금은 10억 6천 만 원. 이어 12월에도 5억 원을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으로 전환한 이후 5개월간 월 평균 7만 원 정도 밖에 안됐던 기부금이 두 달 간 월 평균 7억 원 넘게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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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의 기부금이 돌연 1만 배 넘게 폭등한 시점이 묘하게 김기춘 씨의 청와대 입성직후다.

김 씨는 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3개월 만에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한다.

김 씨가 재단 이사장으로 있을 때는 재단의 기부금이 7만 원 선이었는데, 김 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옮긴 이후 기부금이 7억 원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는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바처럼 그해 5월부터 청와대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상납되던 시기와도 겹친다.

하지만 문제의 기부금이 국정원 특활비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경협 의원은 재단으로 수상한 돈의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2014년 문창극 당시 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파악했다.

김 의원은 문창극 씨가 총리후보로 지명되기 직전까지 재단의 이사로 재직중이었던 만큼 재단 ‘회보’ 등을 바탕으로 문 씨의 재단 내 역할 등을 살펴보던 중 거액의 기부금이 모금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 재단 회보와 재단 홈페이지 등에는 대략적인 기부금 액수만 공개돼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기부 금액과 기부 시점이 확인된 것은 이번 국세청 자료를 통해 새로 밝혀진 부분이다.

더욱이 재단이 기부금 관련 내용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2014년 문창극 씨 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재단 홈페이지에는 2013년 기부금이 뭉칫돈으로 들어왔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었지만 지금은 관련 내용이 삭제돼 있다.

국세청 자료에는 2013년 15억 원의 기부금이 재단에 들어간 이후 기부금 규모가 다시 수 백 만 원 대로 줄어든 것으로 돼 있다.

다만 지난해 말까지 5차례 정도 거액의 기부금이 추가로 들어간 것으로 돼 있다.

5천 만원(2014년 1월), 1억 1800만원(2015년 5월), 1억 1600만원(2015년 9월), 2억 1,111만원(2015년 12월), 1억 원(2016년 12월) 등이다.

김경협 의원은 “국정원 적폐 청산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의 권력자들이 국정원 예산을 쌈짓돈으로 사용하거나 전경련에 압력을 가해 기업 돈을 보수단체에 지원한 사례 등을 봤을 때 박근혜 정권이 박정희 재단에도 금전적 지원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재단측은 기자의 통화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서울시 부지에 박정희 동상을 설립하는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이후 재단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17-11-17> 노컷뉴스

 ☞기사원문: [단독] 김기춘 靑 입성하자 박정희재단에 수상한 뭉칫돈

금, 2017/11/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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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비망록 34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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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15년판조선사정> (1939)에 수록된 센닌바리 자료사진

 

여기 일제강점기에 제작 배포된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소화15년판조선사정(朝鮮事情)>(1939)에 수록된 이 사진은 그냥 보면 여느 조선인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빨랫감을 건네며 정담을 나누는 일상풍경인 듯이 착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진 아래에는 ‘천인침(千人針, 센닌바리)’이라는 짤막한 구절이 친절하게도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의 정겨운 시골풍경이기는커녕 일제에 의해 자행된 군국주의 동원체제의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매일신보> 1944년 8월 12일자에 실린 「단성(丹誠)의천인침,여학생들이학병(學兵)에게」 제하의 기사를 보면 한여름에 여름방학은 고사하고 근로봉사에 더하여 이러한 센닌바리 제작에 여학생들이 광범위하게 동원된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경성부내의 여학도들이 더운 여름 근로작업하는 중에 틈을 내어 정성껏 만든 학병 오빠에게 보낼 센닌바리가 총독부 학무국 안에 있는 조선장학회에 연달아 들어와서 관계자들을 감격시키고 있다. 실로 조국의 흥망이 달려 있는 이 싸움에 안연히 교실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연필 대신 총을 잡고 지난 1월 감연히 입대한 반도인 학병들의 사기를 격려하고저 조선장학회에서는 그동안 총독부 조선연맹 등과 협력하여 이들에게 센닌바리를 만들어 보내려고 준비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부내 각 여학교에서는 자진하여 이 귀중한 일을 맡아 갔다.
각 여학교에서는 전력증강에 봉공하기 위하여 여름휴가도 없이 운모(雲母)의 가공이며 군의(軍衣) 재봉 등 근로봉사작업을 하는 터이었지만 학병을 위하여 이 일을 자원한 것이었다. 그 후 각 학교에서는 그 학교 학생들이 정성껏 한 바늘씩 뜬 다음 천 명이 다 못되는 남은 것은 거리로 가지고 나가서 땀을 흘려가면서 지나가는 부인들에게 청하여 한 바늘씩 얻어서 전부 완성시킨 것이다. 군국여성의 사무치는 열성과 의기로 뭉친 이 센닌바리에 관계자들은 감격하는 터인데 장학회에서는 이것을 조선신궁에 가지고 가서 참배하여 학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 후 근근 조선 내 각 부대에 있는 학병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보다 약간 앞서 <매일신보> 1944년 7월2일자에 수록된 「이만큼 성장한 반도해병(半島海兵) 연마의 공(功) 일등병(一等兵)에」 제하의 기사에도 센닌바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내 아들의 이날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저 식장에 임석한 해병의 어머니 경상남도 마산부 교방동 이와모토(岩本大山, 47) 여사는 말한다. 내 자식 석원(石原)이가 형설의 공이 이루어져 일등병에 진급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 애가 출정할 때 주려고 한 바늘 한 바늘 꿰맨 센닌바리를 줄 때는 이때라고 생각되어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그 애는 이미 폐하께 바친 병정입니다. 전쟁은 날로 치열해 가는 이때 석원이가 제일선에서 훌륭한 무훈을 세울 날도 머지않았거니 생각하면 감격으로 가슴이 메어집니다.

 

26<일로전쟁 시사화보> 제2권(1904년5월8일발행)에는일본오사카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던 백목면으로 하라마키(服卷)를 만드는 풍경삽화가 묘사되어 있다.

 

센닌바리라는 것은 1미터 남짓 되는 흰 천에다 붉은 실로 천 명의 여성들로부터 바늘 한 땀씩을 얻어 매듭지어 만들며, 이렇게 하면 적의 탄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 일종의 부적 역할을 했던 다소간 해괴한 물건을 가리킨다. ‘천’이라는 숫자는 “호랑이가 하룻밤에 천리를 오고 간다”는 속담에 따른 것이라 한다.
제작 주체는 출정군인을 둔 가족인 경우가 보통이지만, 군국주의가 가속화하면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와 같은 관변단체가 개입하거나 여학생들이 대거 동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초창기에는 범띠 여성 1천 명에게서 바늘땀을 받는 식으로 이뤄졌으나, 여러 차례의 침략전쟁을 거치고 특히 중일전쟁 때에 이르러 출정군인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형편을 가릴 처지가 되지 못하자 범띠의 여성에게는 나이 수만큼, 다른 일반여성에게는 한 땀씩 수를 놓게 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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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전쟁시사화보>제6호(1904년5월25일발행)에수록된 삽화자료. 센닌바리 제작광경이 담긴 이 그림에는 ‘센닌리키(千人力)’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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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4월에 처음 등장한 ‘구멍 뚫린’ 오전짜리 동전(왼쪽)의 모습. 센닌바리의 제작에는 이런 유공동전은 총알구멍을 연상시킨다 하여 그 사용이 금기시되었다.

 

센닌바리의 제작에 관한 연원을 좇아가다보면, 러일전쟁 때 출정군인을 둔 가족이 무사귀환을 비는 뜻에서 백목면(白木綿)으로 만든 복권(腹卷, 하라마키) 또는 천인결(千人結, 센닌유이)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 크게 유행하였다. 실제로 <일로전쟁사진화보>나 <일로전쟁시사화보>와 같은 당시의 전시화보잡지를 보면 길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에게서 바늘 한 땀을 얻어내는 장면이 묘사된 삽화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원래 센닌바리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봉제선을 이어 만들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무운장구(武運長久)나 사봉(仕奉), 필승(必勝)과 같은 구호문자나 호랑이 문양 또는 일장기의 모습을 함께 새겨 넣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밖에 센닌바리 안에 여자의 머리카락을 넣으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것을 모자에 꿰매거나 복대의 형태로 착용하는 과정에서 이를 신주처럼 몸에 계속 걸치고 있는 바람에 오히려 몸에 이가 번식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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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제작 배포한 엽서자료에는 일본인과 조선여인이 함께 어울려 센닌바리 바늘땀을 짓고 있는 광경이 담겨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구멍이 없는’ 5전짜리 동전이나 10전짜리 동전을 함께 꿰매어 넣는 일도 성행했던 모양이다. 이 경우 총알구멍을 연상시키는 유공동전(有孔銅錢)은 당연히 사용치 않았다. 오전(五錢, 고센)은 사전(四錢, 시센)과 발음이 똑같은 사선(死線, 시센)을 지났다는 뜻으로 새겨지며, 또 십전(十錢, 쥬센)은 구전(九錢, 쿠센)과 발음이 같은 고전(苦戰, 쿠센)을 넘어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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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제작 배포한 엽서자료. 여기에는 길거리의 남자들에게서 글자를 받아 센닌리키를 제작하는 모습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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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3년 5월 27일자에 소개된 친일조각가 윤효중의 목조 ‘천인침’. 이 작품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되어 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천인침과 거의 짝을 이루는 것으로 천인력(千人力, 센닌리키)라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1939년 2월9일자에 수록된 국방헌금 및 위문품등의 내역을 보면 중일전쟁개시 직후인 1937년 8월 이후 1938년 12월말까지 이 기간에 위문대(慰問袋)가 149,204개, 그리고 센닌바리 및 센닌리키가 모두 4,185점이 헌납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센닌리키라는 말은 초창기에 센닌바리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천 명의 남성으로부터 역(力)이라는 글자를 얻어 제작한 것을 착용하면 남자 천 명의 힘과 동일한 용맹함을 얻게 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여자들에게서 바늘땀을 얻고, 남자들에게서 한 글씨를 받아내는 장면이 일상풍경처럼 연출되곤 했던 것이다. 그나마 이것조차 나중에는 변질되어 ‘역(力)’이라는 스탬프를 만들어 급조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모두가 다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침략야욕이 낳은 서글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데없는 센닌바리의 제작 열풍에 부화뇌동한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도쿄미술학교 조각과 출신의 윤효중(尹孝重, 1917~1967)이 여기에 속한다. 그가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바로 바늘땀을 짓는 조선여인의 모습을 나무에 새긴 ‘천인침’이었으며, 그해 특선(特選)에 선정되는 한편 조선총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센닌바리와 관련하여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는 <매일신보> 1944년 1월20일자에 수록된 마츠무라 코이치(松村紘一)의 기고문 「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 천인침」이다. 여기에 나오는 마츠무라는 친일 문인으로 변절한 주요한(朱耀翰, 1900~1979)의 창씨명이다.

 

삼팔조끼(명주조끼)에 풀솜을 두어 붉은 실로 한 바늘 두 바늘 천 사람의 어머니와 누이의 정성을 모두어 뜨는 ‘센닌바리’. 학병의 입영날짜를 앞두고 종로네거리 백화점 어구에 세패 네패로 벌어진 정성의 바느질. 어제날까지도 보기 어렵던 새로운 풍경을 나는 가던 발을 멈추고 묵묵히 본다.(중략)
그 정성은 곧 무운장구를 비는 정성인 동시에 임전무퇴의 용기를 비는 것이요 칠생보국(七生報國)의 충성을 비는 것일지며 옥쇄(玉碎)의 영광과 격멸의 기백과 필승의 신념을 바늘마다 아로새긴 정성일 것이다.
대동아전쟁 이후로 오늘날까지 흰옷 입은 이 땅의 백성도 황국의 충성스런 인민으로서 그의 지킬 본분을 지켜온다 하였지마는 오늘처럼 뜨거운 가슴을 정성 드린 ‘센닌바리’를 누비어 본 적이 없었으리라.(중략)
저기서는 더벅머리 여학생 한 떼가 바늘을 움직이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쓴 노인이 붉은 실을 꿰고 있다. 웃옷을 입은 상점의 점원들도 웃는 낯으로 한 바늘 꿰매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굳센 어머니 굳센 누이 굳센 병정 그리고 굳센 나라. ‘센닌바리’는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나타남인 동시에 이 땅의 가장 굳셈을 자랑하는 풍속임을 이제사 나는 깨달았노라.

 

자랑스런 풍속으로까지 미화한 센닌바리야말로 일제의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교묘한 자
기위안의 최면술인 동시에 삶과 죽음의 책임마저 고약하게도 그저 개개인과 그 가족의 운수 탓
으로 돌려버리는 일종의 면죄부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화, 2018/03/2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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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혁명 100년, 그 역사적 무게를 생각한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2019년은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거족적인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1919년의 항쟁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이상의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우리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민주공화정을 잉태시켰다. 3·1혁명 이후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으며 복벽파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신민’에서 ‘국민’으로의 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둘째, 처음으로 여성들이 사회변혁의 전면에 나섰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남녀노유가 차이가 있을 까닭이 없었겠으나, 여성들이 대거 현실참여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 시기에 비할 때 획기적 국면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기생·해녀·백정·광부 등 아직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분적 차별을 받던 계층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에 맞선 주력이 민중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천민으로 취급받던 이들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 내포한 현상타파적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넷째, 전면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3·1혁명을 계기로 식민지 조선의 수다한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어 무관학교와 독립군을 찾았다. 이들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로 상징되는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사들로 거듭났다.

다섯째, 좌우세력이 통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였다. 초기 임시정부가 그러하였으며 이후 부침이 있었으나 이러한 통합 지향은 일제의 패망 때까지 지속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좌우통합, 통일국가 수립의 여망으로 맥을 이어나갔다.

여섯째, 제국주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피압박 민족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이 독립선언에 이은 만세시위를 ‘혁명’이라 평가하였으며,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조선을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항쟁의 전개과정과 그 영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3·1정신은 민족이 당면했던 자주독립이라는 목표와 자유 민주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성격을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인 동시에 반봉건적 민주혁명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3·1항쟁이 배태하고 있던 이러한 혁명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강 정책에 반영되고 항일세력 전체의 시대정신으로 발전 확산되어 갔다는 측면에서 선언적 차원을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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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3·1절을 맞아 중국 서안에서 공연됐던 대형 항일 오페라 〈아리랑〉 기념사진. ‘삼일혁명절’ 표기가 선명하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소속 한유한이 대본을 쓰고 작곡한 〈아리랑〉은 해방 전까지 10여 차례 상연됐다. ⓒ민족문제연구소

1930년대 들어 항일세력의 3·1인식이 좌우를 막론하고 ‘혁명’ 또는 ‘대혁명’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일제 침략전쟁의 확대,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 등 시대적 상황이 3·1정신이 내포한 혁명성을 재평가하고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항일세력이 공유하였던 3·1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해방 후 제헌헌법에서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으로 관철되고 있다. 또 ‘촛불’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도 기실 그 원천을 3·1정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재확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명과 다름없었다.

3·1항쟁이 운동인가? 혁명인가? 아니면 혁명적 운동인가? 서구 학문의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항일세력이 왜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수용하였는지, 또 장기간에 걸쳐 확립된 개념이 어떻게 실종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전향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절실하다고 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처음으로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을 주도하고 매년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여는 등 3·1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위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애써왔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 의의 및 기념사업 추진 방향’ 연구용역을 수임해,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하였으며 곧 보고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제 3·1혁명 100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볼 때다. 여기에서 향후 전개될 기념사업을 일일이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3·1혁명의 위상 재정립만큼은 다시 강조하고 싶다. 자국사에 대한 국수주의적 과대평가도 문제이지만 스스로 폄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전개됐던 독립투쟁의 역사, 특히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 진영과 재외동포들의 정신적 지표였으며 외국에서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3·1혁명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몰가치적인 3·1절이라는 명칭도 독립선언기념일 또는 3·1혁명 기념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또 3·1정신의 요체라 할 민족대단결의 뜻을 살려 남북화해와 평화구축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공화정 수립 100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성찰하는 한편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 100년을 설계하고 전망을 세우는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촛불혁명’과 ‘3·1혁명’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그 과제는 여전히 닮은꼴이다.

<2018-03-22> 프레시안
☞기사원문: 처음으로 여성이 사회변혁 전면에 나선 이 사건!

목, 2018/03/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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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and.us/band/59839794/post/4428

김구와 이승만의 차이.

 

오늘 존경하는 김영선 의원께서 백범 김구 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으셨다하니 참으로 기쁘기도 하고 김영선 전 의원께서 경제 민주화 등 여러가지 사업을 공정 무사하게 의정 활동 해 오신것 같아 믿음이 가며 사회에 대한 정의감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6.25 발발 직전 김일성을 방문하여 군사열을 받았습니다.

 

그때 군사열을 받았을때 백범 김구 선생은 6.25 같은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남한이 질 것이라 생각하고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려는 이승만을 돕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승만은 독재자로 취급되고 백범 김구 선생은 애국자로 둔갑하여 있지만 민중 운동을 한 신채호나 김구에 대한 행적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평가를 다시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김구 선생을 들먹이며 우리의 소원이란 노래로 통일 의식을 고취하고 있으며, 중학교에 가면 여운형의 사회주의 사상을 조금씩 주입시켜 북한을 이롭게 했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호의적으로 할 수 있게끔 전교조가 정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남 이승만 박사는 29살때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때 이후 부터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서구 열강과 대적하고 스탈린, 루즈벨트, 처어칠에 대적하여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널리 설파가하고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한성 감옥에 투옥 되었을때 영어 사전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미국에 Japan Indside Out이란 책을 발간하여 일본이 미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란 것을 예견하여 미 주류의 커다란 반향을 받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커다란 공을 세운 분입니다.

 

우리는 백범 김구, 신채호 선생과 우남의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강북구에 37억이라는 서울시 예산 지원으로 근현대화 역사관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한국의 사회주의화에 대한 노골적인 컨텐츠 전시를 하고 있으며 이 곳의 관리를 한국 좌익의 선봉인 한국 민족 문제 연구소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이 국가가 문재인 정부 들어 노무현,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더 좌익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홍준표, 김무성은 역사의 좌익화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고민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토, 2018/02/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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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인터뷰]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시간에 쫓겨 못한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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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939년 3월 31일 <만주신문>에 이런 혈서가 실렸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 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 합격을 위해 충성 맹세했을 그때, 백강 조경한 선생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선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침내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 입교에 성공했을 즈음, 선생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있었으며, 1944년 4월은 또한 두 사람 모두에게 중대한 시점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조경한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낯설었던 선생의 이름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귀에 꽂혔다. 14일 윤소하 의원(정의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 덕분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당시 보훈차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백강 선생 유족의 지원 요청 “몇 차례 잘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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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강 조경한 선생 생가 안채 후면 모습 ⓒ 윤소하 의원실 제공

“1919년 3.1 운동 후 만주로 망명해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만주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으시고, 1981년에는 독립유공자협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안장돼 계십니다. 선생은 유언에서조차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친일파 일부가 묻혀 있다고 같이 묻힐 생각이 없다, 평생을 강직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하지만 선생의 고향인 순천에 추모비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추모시설 조차 없어요. 사진 한 번 봐주세요. 완전히 방치되어 있는 백강 선생 생가의 안채와 사랑채 전면과 후면의 현재 모습인데요. 임시정부 국무위원, 그리고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의 기념시설조차 없고 생가마저 방치되어 있는 것은 부끄러운 겁니다. 전남 동부 보훈지청을 통해 유족들이 생가 복원 사업 계획을 제출했습니다. 자기 돈 들여서,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는 답과 함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이 설명을 끝으로 페이스북 영상은 끝났지만, 윤 의원으로서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했다. 윤 의원의 질의가 나왔던 시점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앞 동상 건립을 놓고 논란이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 14일 전화통화에서 윤 의원은 “시간이 부족해 매우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윤 의원 역시 “솔직히 백강 선생을 잘 몰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손들이 자신들의 돈을 더해 복원하겠다며 몇 차례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 보내 온 자료들을 통해 조경한 선생이 살아오신 궤적을 살피게 됐다”고 했다. “1억 8000만 원 정도 되는 예산이 몇 차례 잘려버렸다고 하더라”는 그의 음성에는 화가 묻어 있었다.

이어 윤 의원은 “이건 예산 얼마를 확보하고 못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방 이후 친일 잔재들이 정치·사회·경제적 기득권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반대편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삶이 있다”며 “박정희 탄신 100주년이라고 동상 건립 논란이 있는 상황을 백강 선생과 대비시켜 이게 현실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비밀독립군”, 백강 선생 이용했던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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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 국무위원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백강 조경한 선생. 지난 8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독립운동가 조경한을 찍은 흑백 사진’을 공개하면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맞다. 왜냐하면, 부모를 제대로 봉양 못 하게 되고, 자녀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으며, 자신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 선생의 말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리고 윤 의원은 거듭 “적폐 청산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고, “단순히 이번 정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졌다”는 이와 같은 윤 의원의 주장은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과거 백강 조경한 선생을 이용해 박 전 대통령이 ‘비밀 독립군’이었다고 강변했던 것을 떠올리면 더 명확하게 와 닿는다.

2015년 10월 새누리당은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조경한의 당시 새누리당 측 표기 오류) 선생께서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이기청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의 <세계일보> 기고글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선생을 찾아가 자신을 일본군 중좌 다카키 마사오라 소개했고, 이에 선생이 조선인 병사들을 상해 임시정부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이름으로 익히 알고 있어 반가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었다.

이와 같은 새누리당 주장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선생 이름은 조경환이 아닌 조경한이며, 만주에 있던 박정희가 당시 중국 남서부 중경에 있던 임시정부로 조선인 병사를 빼돌렸다는 말은 성립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백강 선생 외손자 심정섭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역시 “박정희와 외조부가 나눈 실제 대화는 기고문과 많이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쿠데타 당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친일 행적을 고백했다는 것이었다. 그밖에 박 전 대통령 스스로 비밀 독립군설을 스스로 부정했다는 과거 증언까지 줄줄이 소개됐다.

그럼에도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권력’은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든 독립군으로 공식화하려고 했다. 2016년 10월 국방부는 박 전 대통령 추모식 행사를 알리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했다”고 그의 약력을 기술했다. 기자들의 반박에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 알아보겠다”고 답을 피했다고 한다. 윤소하 의원은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기념사업에 1400억원… “적폐 청산은 긴 숨 갖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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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적폐 청산은 단순히 정치적 공방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예요. 전면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적폐 청산은 계속 돼야 합니다. 이런 의지를 지금 정부가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백강 선생 생가 복원에 대한 정부 입장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정부, 전전 정부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폐 청산은 긴 숨을 갖고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2009년 포항시를 시작으로 박 전 대통령의 동상 세우기 경쟁이 불붙었다. 서울 중구는 신당동 박 전 대통령 가옥에 228억 원을 들여 ‘박정희 공원’을 조성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박정희 기념사업에 국가 예산을 포함해 140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친일파와 함께 묻히기 싫어 동작동 국립묘지를 거부했던 독립운동가, 백강 선생 생가 보존에 국가가 이제까지 쓴 돈은 공식적으로 ‘0원’이다.

<2017-11-1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혈서 쓴 박정희 1400억 독립투사 생가예산은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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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1/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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