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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출간! (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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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출간! (맛시모 데 안젤리스 지음, 권범철 옮김)

익명 (미확인) | 월, 2019/03/25- 22:15

역사의 시작
The Beginning of History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역사의 종말(후쿠야마)인가 역사의 시작(데 안젤리스)인가?
신자유주의가 선언하는 ‘역사의 종말’에 맞서 투쟁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시작’을 탐구한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공유경제를 넘어 공통장으로!
공통장(commons)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필독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  옮긴이  권범철  |  정가  25,000원  |  쪽수  488쪽
출판일  2019년 3월 18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40*215)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아우또노미아총서 65
ISBN  97889-6195-201-9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06918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역사의 시작』은 창조성을 반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데려가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 사회주의, 코뮤니즘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지은이

『역사의 시작』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지적 혁명이며, 엄밀하면서도 흥미롭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지은이

이 책은 반자본주의 이론의 중대한 성과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지은이

『역사의 시작』 간략한 소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장과 존엄을 위한 다양한 투쟁들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다른 실재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이 투쟁의 전선을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으로 불리는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끝없는 성장과 화폐 가치를 추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사회적 세력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삶의 망을 재배열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대안지구화 운동이 최근 제기한 대안적인 공동생산 양식들을 다루면서 이 운동들이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이 책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비판 정치경제학 이론을 모색하고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어 그 이론의 역할을 탐구한다. 이 책은 모든 정치 활동가와 정치 이론 학생들의 필독서다.

『역사의 시작』 상세한 소개

『역사의 시작』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에 도전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라고 주장하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사실상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하는 이러한 사고에서 세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그것의 불완전한 실행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했으므로 그것의 보다 완전하고 광범위한 실행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것은 특정한 가치, 즉 이윤, 경쟁, 무한 축적 등이 보편화되어 사회 곳곳에 스며든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역사의 시작이란 “다른 가치들을 상정하는 것이며, 화폐로 부패된 민주주의,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경쟁으로 부패된 사회적 공동생산 그리고 비시장 공통장을 종획하는 구조조정과는 다른 지평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는 것은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도전과 적대이자, 자본주의를 넘어선 창조의 구성적 과정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지구 전역에서 자본의 폭력에 맞서 일어나는 다양한 투쟁들이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며 다른 삶을 창조하는 과정이기에 역사는 끝난 적이 없다. 역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말하지만 데 안젤리스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사회적 관계들의 체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세계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거대하며, 자본주의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떤 것, 즉 사회적 재생산 체계에 속한 하나의 하위체계에 불과하다.” 이 말을 따른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체계가 모든 것을 에워싼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체계들의 상호관계로 구성된 세계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저자는 이 세계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가치 체계들의 집합으로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가치’라는 것이 우리가 우선시하는 어떤 것이라면, 가치들은 전체 사고 구조로 함께 결합하여 가치 체계를 낳는다. 따라서 이 가치 체계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개념 격자다. 그것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우리가 무엇을 단념해야 하고, 무엇이 바뀔 수 있는지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정의한다.”

세계를 만드는 ‘가치 실천’

데 안젤리스는 이 가치 체계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 가치 실천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가치 실천은 “가치 체계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그것을 (재)생산하는 행동과 과정과 관계망”을 의미한다. 이 가치 실천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개념적으로 그리고 담론적으로 선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선별에 기초하여 행동함으로써” 특정한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가치 체계는 주어져 있다기보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재)생산되며, 상이한 가치들의 추구가 상이한 ‘사회들’을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주택소유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좋은 것’이고 하락은 ‘나쁜 것’이다. 반대로 세입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나쁜 것’이고 하락은 ‘좋은 것’이다. 주택소유자들은 가격을 담합하고 이른바 혐오 시설의 입주를 저지하며 임대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치화하는 것(임대료 및 주택 가격 상승)을 추구함으로써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가치 체계를 넘어 하나의 가치 프로그램이 된다. 저자가 인용하는 맥머트리에 따르면 “하나의 가치 체계 혹은 윤리 체계는 상정된 자신의 가치 구조가 자신을 넘어서는 사고를 배제할 때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다.” 즉 프로그램은 하나의 ‘정상’이 된 사고 체계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 부동산 투자는 화폐를 향한 공통의 욕망 위에서 번성한다.

자본의 외부 : 공통장(commons)

그러나 우리는 임대료와 주택 가격의 상승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 안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고 강제 집행에 맞서며 다른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한 일은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가치 체계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렇게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하나의 전선이 형성되고 그곳에서 다른 사회가, 자본의 외부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렇게 “자본과 다른 것이 되는” 과정, 즉 외부를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른다. 이 공통장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공통장들이 이미 사회 내에 잠재해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삶과 지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과 자원의 많은 부분을 공급하는 수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통장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여 다른 사회를 만듦으로써 우리가 자본 외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러한 외부를 자신의 울타리로 에워싸려 한다. 그 과정이 바로 종획(enclosure)이다.

자본은 종획한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계라면, 자본은 이 체계를 출현시키는 사회적 세력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세력이란 어떤 지향점을 가진 힘들이 연결된 상태를 가리킨다. 자본의 지향점은 바로 무한한 축적이다. 이것을 지향하는 사회적 세력, 자본은 “인간 및 비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스며들기를 열망하며 그 모든 영역을 자신의 행위 양식으로, 따라서 특유의 사회적 관계로, 즉 사물을 가치화하고 그 결과 사물의 질서를 만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식민화한다.” 요컨대 자본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에워싸려 한다. 즉 종획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는 종획을 자본주의의 ‘시초’에 일어난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정상적인’ 축적 과정, 즉 ‘자본 논리’를 강조하지만 저자에게 종획이란 ‘자본 논리’의 지속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세계를 객관적인 법칙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 실천들 간의 투쟁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자본은 자기 보전과 무한한 증식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 세력을 종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의 강조점은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력들이 반대하는 것, 즉 자본주의보다는 그 세력들이 대면하는 것, 즉 자본과 자본의 가치 실천에 맞추어져 있다.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수많은 문헌들이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된 시장이 가져온 참담한 효과를 나열한다. 그것을 상이한 가치 실천들 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싸워야 할 ‘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빈곤과의 싸움’을 언급하는 이들의 발표자료 속에서 빈자는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재현되고, 빈곤은 자본의 세례를 아직 받지 못한 ‘저발전된’ 상태로만 나타난다. 즉 빈자들의 주체적인 실천과 투쟁은 지워지거나 심지어 범죄화되고, ‘역사의 종말’이란 사고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자본은 자신을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실상 그 자신이 그 문제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손쉽게 ‘해결책’,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공통장도 자본으로 흡수될 수 있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른바 공유경제는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는, 혹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는 그 사업들 대부분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업들은 공유, 협력, 나눔 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도시민들의 마주침을 조직하여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공통의 부를 전유한다. 그 부를 생산한 공통인들(commoner) 혹은 공동체는 자신들이 생산한 부로부터 배제된다. 따라서 이 소위 공유 사업들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새로운 종획의 사례다.

그러나 그 종획의 과정에서 또 다시 투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전선이 그어진다. 공유경제뿐 아니라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례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도시는 공통의 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다. 저자는 그 전장에 뛰어든 혹은 뛰어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관점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Massimo de Angelis, 1960~ )

이스트런던 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이며, 웹 저널 『공통인』(The Commoner)을 2001년에 설립하여 현재까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유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이론부터 현대 지구적 자본주의와 위기의 정치경제, 사회 운동과 공통장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내포된 다양한 위기 국면 안에서 사회적 체계로서의 공통장과 그것의 설계, 회복력, 지속가능성 및 발전 전략을 탐구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과 역학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 운동들이 만들어 낸 무수한 파열과 대안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특히 대안지구화 운동에 주목하면서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공통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만연하게 된 “역사의 종말”이라는 정신에 도전하기 위해 2007년에 『역사의 시작』(갈무리, 2019)을 출간하였다. 이후 10년간 현대 자본주의적 체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유지하면서 그 배경에 있는 공통장을 드러내는 연구에 주력하여 『모든 것은 공통적이다』(2017)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에코페미니즘, 진화생물학, 체계 이론 및 복잡성 이론을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공통장이 단순히 그 속의 자원만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에서 기업, 국가, 다른 공통장 및 사회 운동과 같은 다른 체계들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또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출현을 1920년대 이후 강력한 사회운동의 결과물로 해석한 『케인스주의, 사회 갈등, 그리고 정치경제학』(2000)을 썼다.

옮긴이
권범철 (Kwon Beomchul, 1978~ )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 공통계의 생산과 전유」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메트로폴리스의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Art of Squat. 점거 매뉴얼북』(오아시스프로젝트, 2007)을 함께 편집했으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갈무리, 2014)과 『빚의 마법』(갈무리, 2015), 『로지스틱스』(갈무리, 2017)를 옮겼다.

추천사

『역사의 시작』은 탈근대 자본주의를 “외부”가 없는 총체적인 체계로 바라보는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 도전한다. 데 안젤리스에게 “외부”는 공유와 공생공락 그리고 공통성의 공간 속에서 건재하다. 이것은 삼림 공유지를 보호하는 제3세계 마을의 여성 농부부터 “자유” 소프트웨어와 “안티카피라이트” 라이선스를 만드는 인터넷 활동가에 이르는 지구 전역의 투쟁들에 의해 계속 창조된다. 『역사의 시작』은 이 창조성을 반자본주의적 사고의 중심으로 가져오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그리고 코뮤니즘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자율주의 사상가 ― 이 전통은 네그리와 비르노 같은 인물을 배출한 바 있다 ― 의 새로운 세대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명성을 쌓았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사의 시작』은 엄밀할 뿐 아니라 흥미진진하며, 그 자체가 일종의 지적 혁명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의 『역사의 시작』은 반자본주의 이론에서 큰 발전을 이룬 책이다. 데 안젤리스는 공통장, 종획, 자율, 사회적 재생산 같은 개념들을 그러모아서 자본주의가 자신에 맞선 투쟁에 직면하여 어떻게 살아남고 축적하는지 밝힌다. 이와 동시에 그는 가치, 시초 축적, 자본 같은 맑스주의의 대상화된 개념들을 탈물신화하고 그것들의 살아 있는 정수를 드러낸다. 그는 21세기의 사고와 행동에 유용한 맑스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다. 독자는 반지구화 운동의 슬로건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 대한 풍부하고 선명한 비판과 함께 이 책을 덮는다. 데 안젤리스가 다른 세계, 반자본주의적 세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저자

책 속에서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나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독재 정권과 저임금에 저항했던 한국의 노동자 및 사회 운동의 투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은 지구화의 결정적인 마디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쪽

역사의 시작이란 문제계는 역사의 종말이란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 … 자본주의를 넘어선 실재의 사회적 구성 과정은 창조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 1장 역사의 시작, 23쪽

자본주의가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의 세계의 부분 집합이다. 실제로 일반 체계 이론은 어떤 체계도 부분적 전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만일 그 체계 내에서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 나타나고, 외부에서 보면 그것은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체계의 부분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상이한 규모의 체계들은 서로 맞물려 있고 서로 위계 관계 속에 있다.

― 3장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자본, 86쪽

자본과 구별되며, 생산하는 신체의 필요와 욕망에 뿌리를 둔 가치 실천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과 노는 것과 요리를 하는 것은 결혼식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거나 혹은 철로를 까는 일만큼이나 한 ‘공동체’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맑스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자연의 생산을 우리의 욕구에 적응시킨 형태로 전유하고 있다.

― 5장 생산과 재생산, 123쪽

나는 무역이 훈육을 하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사후 영향을 통해서, 사전 위협을 통해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주체성의 물질적 기반의 연속적인 재구성 과정으로부터.

― 9장 전 지구적 노동 기계, 241쪽

종획은 상품화 과정에서 출현하지만, 공통장 회복과 상품화 반대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가령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략으로, 혹은 공통장과 공동체를 생산하는 실천 전체에 종획을 다시 씌우는 계급 전략으로 말이다.

― 11장 한계 없는 종획, 274쪽

가치는 사람들이 행동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며 담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주어진 척도 단위를 사용하여 측정된다. 상품 가치는 이 중요성이 뒤집어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생산물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다.

― 13장 자본의 가치화와 측정, 335쪽

사실 역사의 시작은 살아져야 한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상호 관계 양식의 구성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 특이성들/파편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 양식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자본의 가치 실천과 그 훈육 시장 외부로 나가는 것의 의미를 그들 사이에서 파악할 수 있다.

― 17장 공통장, 437쪽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8)

1979년에 저자는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세미나실들 안으로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기”라는 기폭장치를 설치했다. 『자본』 1장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는 『자본』이 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해 쓰였으며 우리가 이제 노동자라는 범주를, 주부, 학생, 실업자 그리고 여타의 비임금 노동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8)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에 때맞추어 1994년 1월 1일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하여 1997년 8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빠띠스따 투쟁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흔히 ‘원주민 게릴라들’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사빠띠스따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어떻게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는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 세계에 유통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피와 불의 문자들』(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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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善友(증선우)

 

同生同死約(동생동사약)

盡信固愚痴(진신고우치)

四處盈奸黨(사처영간당)

君余被誕欺(군여피탄기)

 

착하고 어진 벗에게 지어 주다

 

함께 살다 같이 죽자 약속했음을

다 믿으니 정말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간사한 무리 가득한지라

그대도 또 나도 속임을 당하였소.

 

<時調로 改譯>

 

함께 살다 같이 죽자 그리 약속했음을

그대로 다 믿으니 참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奸黨인지라 둘 다 속임당했소.

 

*善友: 착하고  또 어진 벗  *同生: 함께 삶.  함께 남  *同死: 같이  죽음  *愚癡:

매우 어리석고  못남. ≒치욕(癡慾).  삼독(三毒)의 하나. 四相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름 *四處: 사방(四方) *奸黨: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誕欺: 속임. 거짓말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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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9/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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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기에 법원도 최근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지난 9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한국사 교과서 6종의 집필자 12명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연 국가권력은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우리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지, 판결의 쟁점을 짚어보며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명령 항소심 적법 판결  

수정명령,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마법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 2015. 9. 15. 선고. 2015누41441 수정명령취소
판사 지대운(재판장) 강영훈 박창제 

 

 

김선휴 간사

김선휴 참여연대 시민감시팀 간사, 변호사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또는 위탁하여 편찬하고 모든 학교가 이를 반드시 사용하여야 한다. 반면 검정교과서는 민간에서 집필한 도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검정합격을 결정하면, 각 학교가 합격된 검정도서 중 해당 학교에서 사용할 도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다양하고 탄력적인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며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 검정에 합격한 6개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하여 내용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예를 들면, 국군의 거창양민학살을 서술한 부분에 대해 ‘균형 잡힌 서술을 위해 북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실례도 제시하라’, 북한의 주체사상을 소개한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으므로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 노선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대내통합을 위한 체제유지전략이었음을 서술하라’,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 운동’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다’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를 ‘극단으로 치닫는 강압정치’로 수정하라는 것 등이다. 

 

이에 위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므로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고 인정하였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1심판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면서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을 정당화해주었다.

 

이미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의 내용을 교육부장관이 수정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이는 근본적으로 ‘국가권력이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국가권력의 교육내용 개입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면,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와 요건이 필요한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국가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 규정한 헌법에서부터 찾아보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의 위 규정은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의 기초인 만큼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 받지 않도록 교육자나 교육전문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관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행정권력에 의한 교육내용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요구 또한 위 헌법규정에서 도출된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도 “국정교과서제도는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하여 교과내용 및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어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위 헌법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헌재 1992. 11. 12. 89헌마88 결정).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나타내는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이와 같은 기본 관점을 전제로, 이 사건 판결이 과연 이러한 헌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쟁점 ① 법률유보원칙 : 검정 권한이 있다면 수정 명령을 내릴 권한도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쟁점은 법률유보원칙 위반 여부, 즉 교육부장관의 이 사건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인지 여부이다.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1항은 교육부장관에게 검정도서의 ‘수정’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령의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은 교과용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교과용 도서의 ‘수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 때문에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정권한’에는 본질적으로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쉽게 말해 ‘검정은 수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검정’의 근거규정인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수정명령’의 근거조항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 사건 수정명령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수정명령권한까지도 검정권한에 포함된다는 해석은,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를 너무 확대해서 해석한 것은 아닐까. 검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한 취지는 헌법이 천명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대법원 2011두21485 판결 참조). 그렇다면 국가의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는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개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향(내용의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확대 해석하기보다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쟁점 ② 절차적 적법성: 검정절차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가? 

 

행정부와 법원의 판단대로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교육부장관의 검정권한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와 같은 수정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이 사건 수정명령은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친 것인지 여부가 두 번째 쟁점이다.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에 대해서는 2013년 대법원에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역시 검정을 마친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내린 수정명령을 다툰 사안이었는데, “(수정명령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므로 검정절차상의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시하였던 것이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두21485 판결 참조). 
 

이 사건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교육부장관은 새로운 검정절차를 다시 거치지는 않았고, 대신 ‘수정심의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하여 심의를 진행한 뒤 수정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이 ‘수정심의위원회’의 위원 선정방식, 위원구성, 소집절차와 심의방식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라고 인정하였다. 심의기간이 비교적 단기간이라거나 수정심의회의 심의사항 및 수정심의회 위원의 인적사항이 비공개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지나치게 형식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있어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그 절차의 보장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위 2011두21485 판결에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행정청이 수정명령을 통하여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잠탈할 수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절차와 ‘유사한 외관’을 갖춘 절차를 거쳤다는 점만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여야 한다. 따라서 법원은 단순히 수정심의회의 의사/의결정족수, 기초심사와 본심사의 분리운영, 위원의 분리구성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와 거의 유사하게 이루어졌다는 외관의 판단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수정심의회 절차의 투명성, 수정심의회 구성원의 다양성, 교육행정권력으로부터의 일정한 독립성, 심의회 내에서의 충실한 토론과 의견 개진 및 이를 위한 충분한 기간 등이 확보된 절차였는지, 그래서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지를 더욱 면밀하게 판단했어야 한다. 재판이 있기 전까지 수정심의회 및 그 사전절차에 대해 거의 공개되지 않았고, 재판과정에서도 그 절차의 부실함, 불투명성이 드러났음에도 절차적 적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단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쟁점 ③ 재량 일탈·남용: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 수 있는 재량?

 

이 사건 판결의 마지막 쟁점은 재량의 일탈·남용 여부, 즉 이 사건 수정명령이 교육부장관에게 주어진 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판단이다. 

법원은 검정권한에 포함된 수정권한을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명령은 ‘교육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적합한 것’으로 바꾸도록 하는 범위에서만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 수정명령들이 “오해 또는 오인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없애거나 고치도록 한 것”,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서술의 비중을 다른 쟁점과 균형이 맞는 수준으로 늘리기 위한 것”, “학생들에게 보다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재량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르면 법원은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해 검정도서로서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본 것은 아니다. 다만 법원이 보기에는 수정명령이 서술의 균형을 맞추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향이기 때문에 수정명령대로 고쳐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사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한 정도라면 불과 3개월 전 더욱 엄격하게 진행된 검정절차에서 합격했을 리도 만무하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A)과 수정명령의 내용(B)에 대한 선호나 가치평가를 떠나서, 만약 A와 B 모두 검정교과서로서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면, A를 반드시 B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수정명령은 ‘교육적합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A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B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검정교과서 제도 하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속 강조하는 바와 같이 헌법정신과 검정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적합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서술의 순서나 분량, 자료의 취사선택, 세부적 표현 등은 역사학자이자 교육전문가인 저자들에게 맡겨진 자율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명백하게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도 아닌 검정합격도서에 대해, 교육부가 지엽적인 서술 순서나 세부적인 표현까지 고치도록 명령하는 것을 재량의 이름으로 허용한다면, 이는 결국 검정교과서 제도를 수정명령을 통해 국정교과서와 같이 운영할 수 있는 재량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 

 

바람직한 해결을 기대하며 

 

사실 문제의 발단은 첫 번째 쟁점인 법률유보원칙 위반에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교과서제도에 대해 법률단계에서 전혀 정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보니, 수정권한의 존부와 범위, 필요한 절차가 모두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정권의 자의적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교과서제도의 중요한 내용들을 법률의 단계에 구체화시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와 같은 입법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면, 법원은 존재하는 법령을 최대한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석함으로써 행정권의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제동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보다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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