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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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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2- 01:38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임정 100주년 특집]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 대담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성우 전해리, 이기호, 이항증 선생

[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 세 번째 시간입니다. 세 번째 시간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하 예지숙)> 네, 안녕하세요. 예지숙이라고 합니다.

◇ 이동형> 오늘 해볼 얘기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에 오프닝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독립운동에 남녀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아니겠습니까?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내조나 지원 정도로 생각하면서 보조적 행위로 봤기 때문이고요. 또 한 부분은 이게 전반적으로 일제의 탄압받는 민족 수난사에서 희생의 상징으로만 여성들을 부각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유관순 열사 정도만을 기억하게 된 그런 이유가 됐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후세 사가들의 노력이 부족했다, 이런 점도 있지 않을까요?

◆ 예지숙> 물론이죠. 특히 민족 운동사를 구성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미진했고요. 지금에 있어서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면서 학계 내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죠.

◇ 이동형> 그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 역사를 봐도 남성 중심으로 쓰인 역사가 많으니까요.

◆ 예지숙> 그렇긴 하죠. 여성사, 젠더사,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인 요구에 학자들이 부응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앞장서서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도 당연히 있고요. 유관순 열사도 마찬가지고, 박차정 열사도 마찬가지죠. 게릴라전에 직접 참여했으니까. 이런 분들도 있고, 또 정말로 김구 선생의 아내분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또 남편이나 아들이 잘할 수 있도록 내조를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분들에게도 서훈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 예지숙> 네, 있죠. 활동을 단지 내조나 안사람의 일, 아내의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그런 상황이라고 하는 게 상당히 임시적 상황이고, 더불어서 아직은 아주 적확하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게 굉장히 난민적인 상황인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이분들이 하는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단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아내의 일이라고 하는 것으로 국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특히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 학생들, 또 3.1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학생들, 송죽 결사대, 대한애국부인회, 조선애국부인회 등 굉장히 많습니다. 단체도 있고, 개인도 있고요. 3.1 운동도 이후 임시정부로 이어진 민족 운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들, 한 분, 한 분 정리해주시겠습니까?

◆ 예지숙> 네, 아주 여러분이 있는데요. 일단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에서 활약했던 중심적인 그룹은 여성 학생들 그룹인 것 같고요. 그리고 임시정부 해외 망명가 그룹에 있어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이은숙, 이상룡의 손주 며느리로 알려진 허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상해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이라고, 이분의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다, 하는 정정화, 장강일기라고 하는 회고록을 남기셔서 연구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인데요. 해외 망명 여성운동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동형> 다른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 예지숙> 이외에도 윤희순 열사라든가, 여성 최초의 의병장이라고 하는 윤희순 열사라든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항일 운동에 뛰어든 남자현. 영화의 모델이 되기도 하셨던 분이죠.

◇ 이동형> 전지현 씨의 모델이었죠.

◆ 예지숙> 그렇죠. 그리고 조금 독특한 분들이 있어요. 20년대 후반에 을밀대의 투사라고 당시에 알려졌던, 조선사를 들썩들썩하게 했던 강주룡. 이분은 엘리트가 아니라 하층 여성에서 성장한 여성운동가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 엘리트 그룹이기는 한데, 허정숙, 주세죽,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고, 공간적으로도 넓고, 이념상으로도 넓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 이동형> 허정숙 선생이나 주세죽 선생의 경우에는 여성 운동동도 열심히 했던 분으로 알려졌는데, 강주룡 선생은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다? 이것은 어떤 뜻입니까?

◆ 예지숙> 고공농성을 하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분이 평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파업을 주도하다가 그 파업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하시고, 그게 당시 동아일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여성노동자로서 주목을 크게 받으셨던 분입니다.

◇ 이동형> 작년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언급됐던 분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잘 모르는 것을 보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 같아요. 그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가장 문제 같습니다.

◆ 예지숙> 이분이 또 하층 여성이다 보니까 자료가 워낙 없는 분이기는 한데, 소설로도 재현돼서 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제가 아까 허정숙, 주세죽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대에 여성주의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요. 당시 시대상이 아무래도 봉건적, 남성 위주의 시대상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성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것은 독립운동뿐만 아니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아요.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선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을 변화시키는 일인 거죠. 그러면서 여태까지 우리가 많은 열사들, 독립운동가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분들을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운동사적인 맥락에서 어찌 보면 여성 영웅호걸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읽어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이분들이 민족에 대한 헌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들을 변화시켜냈던 분들이라는 맥락에서도 함께 읽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어봤고요. 지금부터는 몇 분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임천각의 종부 허은 지사가 서훈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여성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한 시조부,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 유고, 시아버지 이준형 선생의 유서 등의 자료에서 공적이 확인됐기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허은 지사의 아들, 이항증 선생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 이항증> “우리 어머니가 서훈받기까지는 참 당신에게 나라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 찾는 데 온갖 고생을 다했다는 것. 우리 할아버지가 일본의 압박에 유서를 써놓고 자결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효가 지극해서 아들인데 부탁하기를 다른 사람 같이 대하지 말고, 아주 무겁게 대하라고 유서에 일부러 썼을 정도죠. 유서 한 장짜리 한 부분입니다. 제일 큰 형님의 이름이 도정입니다. ‘도정이 모친은 효향이 지극하여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무겁게 대하도록 해라.’ 그러니까 독립운동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다른 보통 부인과 같이 대하면 안 된다, 동료로 대하라, 이 말이죠. 특별 지시입니다.”

◇ 이동형> 이항증 선생의 증언을 듣고 왔는데, 저도 고향이 안동이어서 이항증 선생도 동향이니까 오랜만에 정겨운 사투리를 들어서 반갑기도 한데요. 이분 없이 시할아버지 이상룡, 시아버지 이준형, 남편 이병화, 이런 선생들의 독립운동이 과연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예지숙> 네, 거의 불가능했겠죠. 독립운동하면서 밥도 먹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건데요. 그리고 1년 365일 어떤 조직운동을 하거나 사실상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이런 재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들은 당시에 밥하고 빨래한 것이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그래서 유서에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겁게 대하라, 이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리고 이상룡 선생 집안은 이상룡 선생만 독립운동한 것이 아니고, 이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요. 종부로서 당연히 여러 가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허은 지사가 남긴 회고록이 있는데요.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애국지사들의 만주 망명과 정착 과정 당시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 한 대목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때거리는 부족했다. 삼시세끼가 녹록치 않았다. 점심 준비를 위해 어느 때는 중국인에게서 밀을 사다가 마당 땡볕에 앉아서 맷돌로 가루를 내어 반죽해서 국수를 해먹었는데, 고명 거리가 없어서 간장과 파만 넣었다. 양식이 없던 어느 해는 좁쌀도 없어 뜬 좁쌀로 밥을 해먹었는데, 그것으로 밥을 해놓으면 색깔도 벌겋고, 곰팡내가 나서 아주 고약하다. 서간도의 추위는 참으로 엄청나다. 공기도 쨍하게 얼어붙어 어떤 날은 해도 안 보이고 온 천지에 눈서리만 자욱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오로지 매서운 바람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돔’이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할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께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 이동형> 임청각 99칸 대저택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룡 선생 일가인데, 노비도 해방시키고 전 가옥, 전답을 팔아서 독립운동하러 만주로 떠났고, 거기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서 연명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만주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글인 것 같은데요. 아까 우리가 잠깐 정정화 선생님 이야기도 했습니다. 스무 살의 나이로 먼저 상해로 떠난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을 돌보러 갔다가 임시정부 안살림까지 떠맡아서 김구 선생이 조선의 잔다라크다, 라고 칭했던 사람이죠?

◆ 예지숙> 네, 그렇죠. 이분 같은 경우는 그러면서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쭉 맡아서 하게 되는데요. 이분 일화 중에 굉장히 중요한 일화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너무 빈곤하고 어렵다 보니까 엄혹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독립운동 자금인데 생활비죠.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경을 굉장히 여러 번 담대하게 넘나들었다고 하는 거죠. 이런 분들을 보면 계속 이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실제 이분들이 임시정부의 굉장히 큰 경제적인 역할도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단지 아내나 안살림이라고 이야기를 또 이 부분에서 그렇게 제한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 이동형> 그리고 의열단 여성투자 박차정. 김원봉의 아내로 알려진 박차정 의사. 박차정 의사는 역시 박차정 혼자만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고, 여기도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그런데 박차정 열사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가 조선의용대 군인이 되어서 자기 남편, 그리고 오빠와 함께 게릴라전투에 참여했었고요. 1939년 2월에 중국 강소성 곤륜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던 중 부상을 당했고, 그 후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44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나중에 남편인 약산 김원봉이 해방 후에 유해를 안고 고향 밀양으로 와서 묘를 마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아까 우리가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김 마리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겠습니다. 김 마리아 같은 여성이 10명만 있었다면, 대한은 독립되었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인물이죠?

◆ 예지숙> 김 마리아는 근대 교육을 일찍이 받은, 3.1 운동을 통해서 등장한 여성 학생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1892년 황해도 장연군 소래라고 하는 지역에서 출생했고요.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소래라고 하는 지역이 워낙에 한국에서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기독교 공동체이고, 여기서 민족운동가들이 많이 나온 지역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소래에서 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정신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19년에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죠. 그리고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그것을 국내에 확산시키기 위해서 국내로 들어와서 광주, 부산, 그다음에 자신의 고향을 돌아다니면서 쭉 3.1 운동을 전국화하게 됩니다. 워낙에 당시 여학교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여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지방으로 퍼져나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근대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분이 3.1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요.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후에는 다시 나와서 계속적으로 저항을 하게 되고, 출옥 후에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해서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으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일을 하죠. 그리고 계속 말씀드리면 그 이후로 상해로 망명을 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이동형> 1919년에 한 번 체포되었고, 이후에도 귀국한 뒤에 또 한 번 체포되고, 두 차례 투옥 중에 받은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에 광복을 불과 1년 앞두고 순국했는데요. 1919년 9월 김 마리아 열사가 작성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취지서를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 “고어에 이르기를 나라를 내 집 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가족의 집이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제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집이 성립하지 못하고, 나라는 국민의 나라이나 국민 중의 한 사람이라고 나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를 보존치 못할 것은 우부우부라도 밝히 알리로다. 오호라.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일분자로 본회가 설립된지 수년 이래로 적의 압박을 입어 어떠한 곤란과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은근히 단체를 이루며 비밀히 규모를 지켜 장래의 국가 성립을 준비하다가 독립국 곤란 중에 부인도 십에 이가 참가하여 세계의 공안을 놀라게 하였으나 이것에 만족함이 아니요.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기로 표준삼고 전진하며 후퇴하지 아니하니 국민성 있는 부인은 용기를 함께 분거하여 이상을 상통할 목적으로 단합을 위주하여 일제히 찬동하심을 천만 위망하나이다.”

◇ 이동형> 김 마리아 여사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할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요. 김 마리아 여사가 한국 저고리 안쪽 앞섶 길이가 달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 예지숙> 그 이유가 고문을 심하게 당하면서 가슴 한 쪽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 이동형>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 김 마리아 여사가 남긴 말인데요. 누구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여전히 이름도 없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가족으로만 기억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분들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후손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끝으로 정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예지숙> 많이 기억을 하고, 국가에서 전반적으로 이것을 제도화하고, 보훈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민사회에서 이런 것을 기억하고요. 그리고 더불어서 여성들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세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겠나.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과 함께 해봤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예지숙> 네, 감사합니다.

<2019-03-21> YTN 

☞기사원문: [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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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病中牧師卽事

 

誰言天路遠(수언천로원)

屈指待君來(굴지대군래)

速死眞良策(속사진양책)

如何擧祝杯(여하거축배)

 

病中의 목사를 찾아 즉흥시를 읊다

 

천당 길이 멀다고 누가 말하는가

그대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소

급하게 죽음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것은 어떻겠소.

 

<時調로 改譯>

 

天路 멀다 뉘 말하나 그대를 기다리오

급하게 죽어 버림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건 또한 어떠하겠소.

 

*病中:  병을  앓고  있는  동안  *天路:  천당으로  가는    *屈指:  무엇을    때,

손가락을 꼽음 *速死: 즉사(卽死). 직사(直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良策:

좋은  계책이나  뛰어난  책략.  고유(高猷)ㆍ양계(良計)ㆍ양모(良謀)  *祝杯:

축하하는 뜻으로 마시는 술. 또는 그런 술잔.

 

<2017.7.16, 이우식 지음>

일, 2017/07/16- 07:05
191
0

유튜브에는 조작된 영상이 올라오는게많아서 민족문제홈피에  영상이 있나 찾아 봤는데 없네요 원본영상 볼수 있는곳이 없나요?

토, 2017/07/15- 11:24
288
0

초복날사진은 경남민언련에…

시인소설가수필가경관

그리고

나무수좌모도

나무수우모도

인력노동일기

 

낙동강물요일의

천구백십구년시간…

구형은팔순짬치….

토, 2017/07/15- 08:23
234
0

贈善友(증선우)

 

同生同死約(동생동사약)

盡信固愚痴(진신고우치)

四處盈奸黨(사처영간당)

君余被誕欺(군여피탄기)

 

착하고 어진 벗에게 지어 주다

 

함께 살다 같이 죽자 약속했음을

다 믿으니 정말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간사한 무리 가득한지라

그대도 또 나도 속임을 당하였소.

 

<時調로 改譯>

 

함께 살다 같이 죽자 그리 약속했음을

그대로 다 믿으니 참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奸黨인지라 둘 다 속임당했소.

 

*善友: 착하고  또 어진 벗  *同生: 함께 삶.  함께 남  *同死: 같이  죽음  *愚癡:

매우 어리석고  못남. ≒치욕(癡慾).  삼독(三毒)의 하나. 四相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름 *四處: 사방(四方) *奸黨: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誕欺: 속임. 거짓말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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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세월호'는 어떻게 기록될까?

참사를 둘러싼 역사 전쟁

 

박주민 변호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명언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단순한 사실(a mere fact)이 아니라 이것에 현재의 가치를 부여하여 역사적 사실(a fact of history)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역사가 이렇게 가치 부여가 수반되는 것이기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역사 앞에 "하나의" 혹은 "올바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특히 국가가 그런 수식어를 붙인 '역사'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원래 안 되는 것이지만 만약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의 사고를 호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세력이 역사에 대해 단 하나의 가치관만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더욱 더 좌절되어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애초부터 '올바른 역사'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호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집권 세력이 자국민의 정치적 선호를 바꾸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를 동원해 자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戰)'을 전개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시 정작 12명의 잠수부, 헬기 2대, 군함 2척, 특수보트 6대만이 동원되어 구조 작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0명의 잠수사와 121대의 헬기, 69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온 국민이 믿게 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진실을 드러내고, 국민의 비판을 수용하여 문제를 개선하는 민주주의적 선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정치적 비판과 그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두려워해 진실을 숨기고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악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 그들이 끊임없는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해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사람이 소위 '올바른 역사'란 것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카의 위의 말에 따르면 진실과 동떨어진 것을 역사로 만들려는 것을 막는 싸움은 2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사실을 확정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후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에 속하는 싸움이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만들기 위해 아니 믿게 만들기 위해 참사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진상 규명 작업 자체를 방해하는 세력과의 싸움이다.

 

이 세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여러 시도들을 벌여왔다. 우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충분한 권한이 부여된 조사 기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방해했다. 이후 600만 명이 넘는 국민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지도 못한 채 풍찬노숙을 견뎌냈던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열망의 일부가 담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하기까지 하였으나 이에 대해서도 거부권이라는 비상한 방법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가 요청한 조사 예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만 집행하였고, 내년 예산도 세월호 특조위가 요청한 예산액 중 31%만 배정하려 하고 있다. 파견하기로 했던 공무원들도 제때 파견하지 않았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하기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를 하였건만 이제는 말을 바꾸어 연장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는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실관계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둘 수는 없다. 1863년 영국에서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전 세계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하철 사고는 단 3건인데 이 중 2건이 우리나라 그것도 대구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가 밥 먹듯이 아니 황당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참사 때마다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현장 실무 책임자만이 책임을 지는 소위 '꼬리 자르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과 그를 통한 참사의 재발 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참사가 단순한 사고로만 역사적으로 기록되도록 만들어 왔던 것이 참사가 재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리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고, 세월호 참사의 의미가 제대로 기록되게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시한 연장과 조사에 필요한 예산의 확보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세월호특조위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수사권과 기소권은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제한 없이 청문회를 할 수 있고, 특검도 2번이나 요청할 수 있다. 과거의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역사적 왜곡은 중단될 수 있을 것이고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당시 해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그를 통해 진상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역사를 통해 후대와 현세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느냐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생한 그리고 진행 중인 사건들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일도 역사를 둘러싼 전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이때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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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11/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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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人君南北對話

 

止爭尋活路(지쟁심활로)

南北本同民(남북본동민)

共滅何邦待(공멸하방대)

休誇美日親(휴과미일친)

 

나라님께 남북 대화를 권함

 

다툼을 멈추고서 살길을 찾으소서

남북은 본디부터 같은 백성입니다

共滅하기를 어떤 나라 기다릴까요

저 미국, 일본과 친함 자랑 마소서.

 

<時調로 改譯>

 

다툼 대신 살길 찾소 남북 同民입니다

함께 망해 버리길 어떤 나라 바랄까요

美日과 썩 친하다며 자랑 따위 마소서.

 

*人君: 나라님 *活路: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共滅: 함께 사라지거나 멸망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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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老僧嘲大佛事

 

未識無爲道(미식무위도)

平生作苦勞(평생작고로)

虛心誰妄說(허심수망설)
佛恐放霜刀(불공방상도)

 

늙은 중을 만나 큰 佛事를 조롱하다

 

無爲의 道를 아직도 알지 못하니

평생 괴롬과 또 수고로움을 짓네

虛心하다 함은 그 누구 妄言인고

부처가 겁내니 시퍼런 칼 놓으라.

 

<時調로 改譯>

 

無爲之道를 모르니 평생 苦勞를 짓네

虛心하다고 함은 그 누구의 妄言인고

부처가 두려워하니 시퍼런 칼 놓으라.

 

*佛事: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 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 ≒법사(法事).

법업(法業)  *未識:  미지(未知).  아직  알지  못함 *苦勞: 괴로움과  수고로움.

신로(辛勞) *虛心: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 *妄說: 망언(妄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고  망령되게  말함. 또는 그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선 칼.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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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

월, 2017/07/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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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國巡廻說法僧

 

汝口終成佛(여구종성불)

全無所不知(전무소부지)

呼神能斥鬼(호신능척귀)

直答解衆疑(직답해중의)

 

전국을 돌며 설법하는 스님

 

그대의 입이 마침내 成佛을 하여

아시지 못하는 바가 전혀 없구나

神을 부르고 鬼도 능히 물리치며

즉시 답하여 뭇사람 의심도 푼다.

 

<時調로 改譯>

 

입으로 成佛을 하여 마침내 無所不知라

저 神을 막 불러 대고 鬼도 썩 물리치며

물음에 直答으로써 뭇사람 의심도 푼다.

 

*全無: 전혀 없음 *無所不知: 모르는 것이  없음  *直答: 즉답(卽答).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아니하고서 직접 대답함 *衆疑: 여러 사람이 품은 의심.

 

<2017.7.14, 이우식 지음>

금, 2017/07/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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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맞은 대전수요문화제


“굴욕적 한일합의 당장 무효화하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
“역사적폐 끝까지 청산하자!”

7월 12일, 20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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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저녁 7시, 대전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가 20차를 맞았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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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사람이 살면서 3가지 만남이 필요하다”며, 이 3가지 만남을 ‘자기 자신과 냉철한 만남’,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만남을 위해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고, 더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통일이라며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카이스트 내에 작은 소녀상 건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카이스트 소셜메이커의 정지윤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알이야 한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노예 범죄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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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회원과 조합원들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임재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피플큐브’의 최준호, 김관영 회원과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백장현, 김요진 조합원도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최준호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SNS를 타고 퍼지는데도 일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은 고개를 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장현씨는 “위안부 범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가혹한 일”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김관영씨도 “일본이 용서를 구하고, 국가에서 사과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요진씨는 ‘난 알아요’ 곡으로 노래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진 대표는 군함도로 대표되는 강제 징용의 사례를 들며,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사실과 끔찍했던 광경들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인 일본만 피하려고 한다”며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청년회에서는 군함도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피해 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직접 만들어 문화제 주변에 전시했고, 올해 11월에는 군함도를 직접 다녀와 강제징용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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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과 시민들. ⓒ 임재근

보릿고개에 입 하나 덜자고 나선 길이었다.
떨어져 살아도 고향 쪽 하늘 바라보면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겠지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한 줌 빛줄기 들지 않는 열차 속에서
겁먹은 표정의 앳된 얼굴의 마주 앉은 낯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이제 공장 가면 돈 많이 벌어
고향 집에 흰 눈처럼 소복한 솜옷 보내자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자기는 이불 보내고 싶어요
수줍게 웃었지…

양보규 대전지역 희망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땅 위에’란 제목의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는 독립영화 ‘우리 학교’ 삽입곡인 ‘우리’와 통일 노래인 ‘경의선 타고’를 부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통일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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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대전민중의힘 소속 단체 대표자들. 왼쪽부터 김원진 대전청년회 대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정선 공동대표,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최명진 대표,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민주노총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 대전민중의꿈 김창근 상임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수요문화제는 ‘평화나비대전행동’이 주최하는 데,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이 돌아가며 주관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 수요문화제는 대전민중의힘이 주관했고,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대전수요문화제는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다. 다음 수요문화제는 8월 9일에 개최된다.

임재근 기자

<2017-07-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모두 가혹하고 끔찍.. 일본은 사과하라”

목, 2017/07/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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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 8화 – 2부 「이게 실화냐?」 
“연구소 단독-이준열사 집터 발굴”

팟빵에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7/07/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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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이준 열사 집터 표석 제막식 자료집]

 

이준 열사 순국일에 집터 표석 제막식 거행

 

▲ (좌) 이준 집터’ 표석 (시안), (우) 이준 열사의 집터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안국동 152번지 구역의 현재 모습

헤이그특사사건 11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준 열사가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될 당시에 거주했던 곳에 그를 기리는 집터 표석이 설치된다. 그간 이준 열사가 생전에 안국동에 살았던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주소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각종 문헌자료를 조사해 최초로 지번(안국동 152번지)을 확인한 결과, 덕성학원 재단 건물인 해영회관이 헤이그특사로 파견될 당시 이준 열사가 거주했던 집터임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표석 설치를 신청하였고,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이번에 집터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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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면 위에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자료이다. (『경성부일필매 지형명세도』,1929)

표석 문안에는 이곳이 1907년 당시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점 이외에 1905년 이준의 부인 이일정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명기하였다.

표석 제막식은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가 되는 7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덕성학원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리며, 제막행사는 1시 40분에 해영회관 1층(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전면에서 거행된다. 이번 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준 열사 유족대표로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명예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이에 앞서 낮 12시 3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준 열사의 생애와 이준 집터에 관한 사료 소개와 전시해설이 있을 예정이다. (재)리준만국평화재단(이사장 이양재)에서 제공하는 전시유물에는 이준 열사의 유묵(遺墨) 2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목, 2017/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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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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