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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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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2- 01:38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임정 100주년 특집]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 대담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성우 전해리, 이기호, 이항증 선생

[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 세 번째 시간입니다. 세 번째 시간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하 예지숙)> 네, 안녕하세요. 예지숙이라고 합니다.

◇ 이동형> 오늘 해볼 얘기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에 오프닝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독립운동에 남녀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아니겠습니까?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내조나 지원 정도로 생각하면서 보조적 행위로 봤기 때문이고요. 또 한 부분은 이게 전반적으로 일제의 탄압받는 민족 수난사에서 희생의 상징으로만 여성들을 부각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유관순 열사 정도만을 기억하게 된 그런 이유가 됐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후세 사가들의 노력이 부족했다, 이런 점도 있지 않을까요?

◆ 예지숙> 물론이죠. 특히 민족 운동사를 구성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미진했고요. 지금에 있어서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면서 학계 내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죠.

◇ 이동형> 그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 역사를 봐도 남성 중심으로 쓰인 역사가 많으니까요.

◆ 예지숙> 그렇긴 하죠. 여성사, 젠더사,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인 요구에 학자들이 부응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앞장서서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도 당연히 있고요. 유관순 열사도 마찬가지고, 박차정 열사도 마찬가지죠. 게릴라전에 직접 참여했으니까. 이런 분들도 있고, 또 정말로 김구 선생의 아내분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또 남편이나 아들이 잘할 수 있도록 내조를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분들에게도 서훈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 예지숙> 네, 있죠. 활동을 단지 내조나 안사람의 일, 아내의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그런 상황이라고 하는 게 상당히 임시적 상황이고, 더불어서 아직은 아주 적확하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게 굉장히 난민적인 상황인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이분들이 하는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단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아내의 일이라고 하는 것으로 국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특히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 학생들, 또 3.1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학생들, 송죽 결사대, 대한애국부인회, 조선애국부인회 등 굉장히 많습니다. 단체도 있고, 개인도 있고요. 3.1 운동도 이후 임시정부로 이어진 민족 운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들, 한 분, 한 분 정리해주시겠습니까?

◆ 예지숙> 네, 아주 여러분이 있는데요. 일단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에서 활약했던 중심적인 그룹은 여성 학생들 그룹인 것 같고요. 그리고 임시정부 해외 망명가 그룹에 있어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이은숙, 이상룡의 손주 며느리로 알려진 허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상해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이라고, 이분의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다, 하는 정정화, 장강일기라고 하는 회고록을 남기셔서 연구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인데요. 해외 망명 여성운동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동형> 다른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 예지숙> 이외에도 윤희순 열사라든가, 여성 최초의 의병장이라고 하는 윤희순 열사라든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항일 운동에 뛰어든 남자현. 영화의 모델이 되기도 하셨던 분이죠.

◇ 이동형> 전지현 씨의 모델이었죠.

◆ 예지숙> 그렇죠. 그리고 조금 독특한 분들이 있어요. 20년대 후반에 을밀대의 투사라고 당시에 알려졌던, 조선사를 들썩들썩하게 했던 강주룡. 이분은 엘리트가 아니라 하층 여성에서 성장한 여성운동가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 엘리트 그룹이기는 한데, 허정숙, 주세죽,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고, 공간적으로도 넓고, 이념상으로도 넓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 이동형> 허정숙 선생이나 주세죽 선생의 경우에는 여성 운동동도 열심히 했던 분으로 알려졌는데, 강주룡 선생은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다? 이것은 어떤 뜻입니까?

◆ 예지숙> 고공농성을 하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분이 평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파업을 주도하다가 그 파업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하시고, 그게 당시 동아일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여성노동자로서 주목을 크게 받으셨던 분입니다.

◇ 이동형> 작년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언급됐던 분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잘 모르는 것을 보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 같아요. 그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가장 문제 같습니다.

◆ 예지숙> 이분이 또 하층 여성이다 보니까 자료가 워낙 없는 분이기는 한데, 소설로도 재현돼서 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제가 아까 허정숙, 주세죽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대에 여성주의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요. 당시 시대상이 아무래도 봉건적, 남성 위주의 시대상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성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것은 독립운동뿐만 아니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아요.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선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을 변화시키는 일인 거죠. 그러면서 여태까지 우리가 많은 열사들, 독립운동가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분들을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운동사적인 맥락에서 어찌 보면 여성 영웅호걸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읽어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이분들이 민족에 대한 헌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들을 변화시켜냈던 분들이라는 맥락에서도 함께 읽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어봤고요. 지금부터는 몇 분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임천각의 종부 허은 지사가 서훈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여성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한 시조부,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 유고, 시아버지 이준형 선생의 유서 등의 자료에서 공적이 확인됐기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허은 지사의 아들, 이항증 선생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 이항증> “우리 어머니가 서훈받기까지는 참 당신에게 나라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 찾는 데 온갖 고생을 다했다는 것. 우리 할아버지가 일본의 압박에 유서를 써놓고 자결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효가 지극해서 아들인데 부탁하기를 다른 사람 같이 대하지 말고, 아주 무겁게 대하라고 유서에 일부러 썼을 정도죠. 유서 한 장짜리 한 부분입니다. 제일 큰 형님의 이름이 도정입니다. ‘도정이 모친은 효향이 지극하여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무겁게 대하도록 해라.’ 그러니까 독립운동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다른 보통 부인과 같이 대하면 안 된다, 동료로 대하라, 이 말이죠. 특별 지시입니다.”

◇ 이동형> 이항증 선생의 증언을 듣고 왔는데, 저도 고향이 안동이어서 이항증 선생도 동향이니까 오랜만에 정겨운 사투리를 들어서 반갑기도 한데요. 이분 없이 시할아버지 이상룡, 시아버지 이준형, 남편 이병화, 이런 선생들의 독립운동이 과연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예지숙> 네, 거의 불가능했겠죠. 독립운동하면서 밥도 먹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건데요. 그리고 1년 365일 어떤 조직운동을 하거나 사실상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이런 재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들은 당시에 밥하고 빨래한 것이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그래서 유서에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겁게 대하라, 이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리고 이상룡 선생 집안은 이상룡 선생만 독립운동한 것이 아니고, 이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요. 종부로서 당연히 여러 가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허은 지사가 남긴 회고록이 있는데요.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애국지사들의 만주 망명과 정착 과정 당시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 한 대목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때거리는 부족했다. 삼시세끼가 녹록치 않았다. 점심 준비를 위해 어느 때는 중국인에게서 밀을 사다가 마당 땡볕에 앉아서 맷돌로 가루를 내어 반죽해서 국수를 해먹었는데, 고명 거리가 없어서 간장과 파만 넣었다. 양식이 없던 어느 해는 좁쌀도 없어 뜬 좁쌀로 밥을 해먹었는데, 그것으로 밥을 해놓으면 색깔도 벌겋고, 곰팡내가 나서 아주 고약하다. 서간도의 추위는 참으로 엄청나다. 공기도 쨍하게 얼어붙어 어떤 날은 해도 안 보이고 온 천지에 눈서리만 자욱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오로지 매서운 바람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돔’이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할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께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 이동형> 임청각 99칸 대저택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룡 선생 일가인데, 노비도 해방시키고 전 가옥, 전답을 팔아서 독립운동하러 만주로 떠났고, 거기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서 연명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만주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글인 것 같은데요. 아까 우리가 잠깐 정정화 선생님 이야기도 했습니다. 스무 살의 나이로 먼저 상해로 떠난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을 돌보러 갔다가 임시정부 안살림까지 떠맡아서 김구 선생이 조선의 잔다라크다, 라고 칭했던 사람이죠?

◆ 예지숙> 네, 그렇죠. 이분 같은 경우는 그러면서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쭉 맡아서 하게 되는데요. 이분 일화 중에 굉장히 중요한 일화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너무 빈곤하고 어렵다 보니까 엄혹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독립운동 자금인데 생활비죠.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경을 굉장히 여러 번 담대하게 넘나들었다고 하는 거죠. 이런 분들을 보면 계속 이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실제 이분들이 임시정부의 굉장히 큰 경제적인 역할도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단지 아내나 안살림이라고 이야기를 또 이 부분에서 그렇게 제한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 이동형> 그리고 의열단 여성투자 박차정. 김원봉의 아내로 알려진 박차정 의사. 박차정 의사는 역시 박차정 혼자만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고, 여기도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그런데 박차정 열사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가 조선의용대 군인이 되어서 자기 남편, 그리고 오빠와 함께 게릴라전투에 참여했었고요. 1939년 2월에 중국 강소성 곤륜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던 중 부상을 당했고, 그 후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44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나중에 남편인 약산 김원봉이 해방 후에 유해를 안고 고향 밀양으로 와서 묘를 마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아까 우리가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김 마리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겠습니다. 김 마리아 같은 여성이 10명만 있었다면, 대한은 독립되었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인물이죠?

◆ 예지숙> 김 마리아는 근대 교육을 일찍이 받은, 3.1 운동을 통해서 등장한 여성 학생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1892년 황해도 장연군 소래라고 하는 지역에서 출생했고요.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소래라고 하는 지역이 워낙에 한국에서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기독교 공동체이고, 여기서 민족운동가들이 많이 나온 지역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소래에서 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정신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19년에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죠. 그리고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그것을 국내에 확산시키기 위해서 국내로 들어와서 광주, 부산, 그다음에 자신의 고향을 돌아다니면서 쭉 3.1 운동을 전국화하게 됩니다. 워낙에 당시 여학교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여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지방으로 퍼져나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근대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분이 3.1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요.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후에는 다시 나와서 계속적으로 저항을 하게 되고, 출옥 후에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해서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으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일을 하죠. 그리고 계속 말씀드리면 그 이후로 상해로 망명을 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이동형> 1919년에 한 번 체포되었고, 이후에도 귀국한 뒤에 또 한 번 체포되고, 두 차례 투옥 중에 받은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에 광복을 불과 1년 앞두고 순국했는데요. 1919년 9월 김 마리아 열사가 작성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취지서를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 “고어에 이르기를 나라를 내 집 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가족의 집이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제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집이 성립하지 못하고, 나라는 국민의 나라이나 국민 중의 한 사람이라고 나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를 보존치 못할 것은 우부우부라도 밝히 알리로다. 오호라.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일분자로 본회가 설립된지 수년 이래로 적의 압박을 입어 어떠한 곤란과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은근히 단체를 이루며 비밀히 규모를 지켜 장래의 국가 성립을 준비하다가 독립국 곤란 중에 부인도 십에 이가 참가하여 세계의 공안을 놀라게 하였으나 이것에 만족함이 아니요.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기로 표준삼고 전진하며 후퇴하지 아니하니 국민성 있는 부인은 용기를 함께 분거하여 이상을 상통할 목적으로 단합을 위주하여 일제히 찬동하심을 천만 위망하나이다.”

◇ 이동형> 김 마리아 여사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할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요. 김 마리아 여사가 한국 저고리 안쪽 앞섶 길이가 달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 예지숙> 그 이유가 고문을 심하게 당하면서 가슴 한 쪽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 이동형>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 김 마리아 여사가 남긴 말인데요. 누구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여전히 이름도 없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가족으로만 기억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분들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후손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끝으로 정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예지숙> 많이 기억을 하고, 국가에서 전반적으로 이것을 제도화하고, 보훈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민사회에서 이런 것을 기억하고요. 그리고 더불어서 여성들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세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겠나.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과 함께 해봤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예지숙> 네, 감사합니다.

<2019-03-21>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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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운음

홍익미술대학 출신의 SNS 1인 미디어 만화가로서 고 노무현대통령 캐릭터를 이용한 만화와 일러스트 등을 그리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정치역정을 다룬 웹툰 ????노공이산????과 캐릭터 일러스트 모음집 ????바보 노공화????가 있으며, 청진기를 들고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이태준, 김필순, 박서양, 황에스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만화 <조국의 심장을 지켜라>를 펴냈다.

금, 2018/04/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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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봉 아산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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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낯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산시 조 아무개 시의원의 소개로 전화하게 됐다며 자신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아산 유족회장이라고 밝힌 뒤 유해발굴의 어려움을 말하며 아산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용을 알기에 도와드리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산지회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을 공동체에서 상영한 것,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충남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것, 홍성유해발굴에 몇 번 참석, 한국전쟁기 아산지역 학살지를 유족과 증언해 주실 분을 모셔다 다시 확인하고 증언들을 추가로 수집한 것 등이 전부다.
그러던 중 아산지역 유해발굴에 필요한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성, 진주에 이어서 마침내 이곳 아산에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의 예산을 지원 받아 배방읍 폐금광 학살지를 발굴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발굴공동조사단으로부터 유해발굴계획을 듣고 아산대책위를 별도로 구성하고 우리 연구소 아산지회가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유해발굴작업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16일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제를 올린 뒤 시굴의 첫 삽을 떴다. 첫 삽을 뜬 이곳은 그때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학살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리라고 증언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유해가 나오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노인의 무덤이었다. 당시를 증언해주시던 분들은 그때 너무 어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을 틀렸을지 모른다는 말씀이 전부였다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불안해하며 여기저기 산을 파고 뒤지다가 3일을 모두 보내고 말았다. 논의 끝에 하루를 더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해를 찾지 못하던 우리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작해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였다.
시굴 마지막 날이다. 오후 들어 마지막 한 군데만 더 파보고 없으면 철수하기로 하고 굴삭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던 중 ‘중지’라는 외침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검은 흙이 보이고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살피다가 누군가 “사람 뼈예요” “유해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 우연일까? 하늘에서 하얀 꽃가루 같은 눈이 하얗게 내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가. 68년의 어둠이 빛을 만나는 이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도 없이 하얀 눈이 한참을 내렸다. 이렇듯 어렵사리 학살당한 피해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2018년 2월 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유해들이 어둠속에서 밖으로 한 구 두 구 나오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 얽히고 일그러진 불탄 유해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열 살도 안 된 코흘리개가 어떻게 인민군에 부역을 했단 말인가. 어미의 등에 업힌 젖도 못 뗀 갓난아기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치아가 모두 닳아버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어떻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두 눈으로, 두 손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늘 이곳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바로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월 31일 40여 일을 발굴한 끝에 바닥에 맨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발굴 종료를 선언했다. 마지막 유해를 수습한 뒤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유족이 함께한 가운데 제를 올렸다. 어느 유족이 술을 따르다 마침내 오열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왜… 왜 여기에 계신 거예요. 무엇 때문에… 아버지.” 제를 지내던 발굴터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버지를 68년 동안이나 참혹한 어둠 속에 있게 한 것도 모자라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자식에게조차 숨긴 채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오다 이렇게 처참하고도 허망한 유골로 만났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설화산 산기슭 골짜기에 천년을 두고 울어줄 한맺힌 절규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유족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내서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 열일 제쳐놓고 발굴에 매달린 발굴공동조사단, 산으로 점심을 준비해 날라주던 아산대책위, 발굴이 끝날 쯤 발굴장비 철수와 감식장으로 유해를 옮기는 힘든 순간에 기꺼이 달려왔던 연구소 천안지회 회원들과 멀리 부천지회 회원들, 본부 상근자들, 심지어 카메라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영상팀과 기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40여 일을 함께했기에 유해발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아산에는 학살지가 여러 곳이 더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산의 모든 학살지가 발굴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발굴이 마무리되면 추모관을 건립하여 아산의 아픈 흑역사를 잊지 않도록 알리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이 아니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전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진달래 피는 봄이 남녘과 북녘에 함께 왔다. 그토록 그리던 봄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이 우리를 옥죄던 이념의 깊디깊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함께 치유하는 시작점이 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를 손 모아 기다린다.

금, 2018/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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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수회원

 

망국의 수난 그 피해자 안점순님 이승을 떠나시다

북상한다는 벚꽃은 오는 길이 더디지만
그래도 개나리는 노랑 치맛자락으로 기찻길 치렁치렁 치장하였네
아직은 이른 봄날 3월 30일
서둘러 떠나시는 님 붙잡지 못하는 우리 서러운 봄날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짐이 필연이라지만
끝까지 풀지 못한 매듭이 있어
떠나고 보냄은 너무 아쉬운 작별입니다.
“가해자 전범국 일본은 나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이승을 지키는 우리가 님을 기억하고 풀겠습니다.
편하게 가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일본제국 침략전쟁범죄 일본군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나라 없는 백성이라
납치와 강제연행, 감금과 폭행으로 목숨보다 소중한 정절을 짓밟히어
여성의 순결을 상실하고 인간의 존엄까지 박살났네
망국의 수난사를 온몸에다 새기고 천신만고 찾아오니
그리던 살붙이도 손사래치고 정다운 이웃들도 외면했네
전사는 죽어도 훈장이라도 남지만
살아 돌아온 ‘위안부’는 손가락질 따돌림이라
끌려가고 짓밟히고 버려지고 외면해도
죽지 못해 사는 질긴 목숨은 웬수보다 더 미운 네 팔자였네
아―! 누가 나보다 더 서러운 사람 있겠는가!
그토록 힘든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신 안점순 님의 숭고한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이승을 지키는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정직한 과거청산 정의로운 역사화해를 위하여

한일양국은 뗄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다. 한일양국의 선린우호는 서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일본제국이 멀지 않은 과거에 불의한 침략전쟁을 벌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주었던 전범국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범국 일본은 피침략국이 당한 수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 수모와 치욕을 함께 기억하고 선린우호가 회복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악한 착상으로 피식민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연행하여 감금 폭행한 반인륜적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국가가 주도하여 실행하였다.
패전 70년 만에 분명하고 성의있는 사죄도 없이 20만 피해자 1인당 5만원 정도 되는 10억 엔이란 돈을 내놓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우기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야만적 전쟁범죄를 반성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슬그머니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시켜 놓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강행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과거 불법 침략이 전쟁범죄로 판명났음에도 아직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교과서로 차세대에게 왜곡된 역사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선린우호를 저해하고 분쟁을 야기하려는 오만무례한 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침략야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일 양국의 정직한 과거청산과 정의로운 역사화해로 평화공존의 길을 함께 가면서 소중한 동반자로 동행하기를 기대한다.

2018.3.31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 길’ 김판수 두손모음

금, 2018/04/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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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금, 2018/04/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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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ㅇ경씨와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최종승리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12일, 조희대 대법관을 재판장으로 한 대법관 4명의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방ㅇ경씨의 상고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내려진 “5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과 3심까지 모두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ㅇ경씨는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방ㅇ경씨의 트윗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ㅇ경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ㅇ경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전 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ㅇ경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이후 대법원에 보낸 상고이유서도 연구소에 대해 “대한민국에 적대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과 궤를 같이 하여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단체에 불과” 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라 방ㅇ경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은 현재 진행중이며 5월에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방ㅇ경씨는 얼마전 가수 겸 작곡가인 윤상씨를 비난하는 트위터를 날렸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방모씨는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라는 비난성 트위터를 날렸으나 윤상씨 본명이 이윤상 이란 것이 알려지며 역대급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금, 2018/04/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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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무국

일, 2018/04/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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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雩南李承晩崇仰輩

 

雩南臨政敵(우남임정적)

國父可當耶(국부가당야)

問罪過完用(문죄과완용)

多功或莫誇(다공혹막과)

 

雩南 이승만을 崇仰하는 무리에게 고함

 

이승만은 임시 정부 敵이었느니

國父라 일컬음이 可當키나 한가

罪를 물은즉 이완용보다 더하니

功이 많다, 或 자랑 따위는 말라.

 

<時調로 改譯>

 

臨政의 敵이었느니 國父 호칭 可當한가

그의 罪를 물은 바, 저 이완용도 넘으니

공적이 多大하다며 혹 자랑하지는 말라.

 

*雩南: 이승만의 號 *崇仰: 공경하여 우러러봄 *臨政: ‘임시 정부’를 줄여

이르는 말  *國父: 나라의 아버지란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

*可當: 대체로 사리에 맞음 *問罪: 죄(罪)를 캐내어 물음.

 

<2016.9.26, 이우식 지음>

월, 2018/04/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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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NK Goodbye My Love, North Korea 연출 김소영│2017│Documentary│89min 38sec│HD│Color│16:9│stereo 언어 : 러시아어/한국어|자막 : 한국어, 영어 배급: (주)시네마달 SYNOPSIS 8명의 북한 청년들이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김일성 체제 비판 후 유라시아로 망명해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 등으로 다른 세상과 만난다 8명의 북한 청년들이 ..
월, 2018/04/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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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10기운영위원회(위원장 이민우) 김순흥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 2017년 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 정관개정안 심의 이사회에 회부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개정 이유〉
1) 분기별(년 4회)로 열리는 운영위원회가 일상 업무를 심의 의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장과 운영위원장 사무총장 운영위부위원장 5인과 실국장 5인으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매월 개최하여 그 공백을 메우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해 결정한다는 취지이다. 이는 집행부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참여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담보하는 내용인 것이다.
2) 임원은 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 등이다. 그런데 ‘임원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는 운영위원회 조항을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이 마치 위원회의 배타적 독점적 권한인양 고집함에 따라 이사장 이사들의 임원추천권을 부인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는 상급 기구인 이사회의 재량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법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에 통례에 준해 임원은 이사장 이사 운영위 등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총회에서 인준하는 과정이 합리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3) 지부사업 중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 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지부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것으로 하였다. 지부총회의 주요안건은 예결산 및 사업계획 수립과 지부장 선출이다. 지부장은 운영위 인준과 이사장 임명을 거쳐야하므로 당연히 운영위원회 승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목적사업 외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유는 강세형 전 전남동부지부장의 사례와 같이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전혀 다른 정치적 사업에만 집착하여 지부를 형해화하고 회원들의 이탈을 조장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문을 구체화함으로써, 연구소 본연의 과제를 방기하거나 지지자 몇 사람으로 총회를 열고 그 결과를 회원의 총의로 분식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소결〉
정관개정은 2016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개정소위에서 마련한 초안을 여러 차례 운영위에서 논의를 하고 제출된 의견을 수렴하여 개정소위에서 재검토한 뒤 다시 운영위 심의를 거쳐(만장일치 통과)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정관 개정은 업무의 효율성 및 운영위와 집행부의 소통을 위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운영위원회가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논의해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여인철 전임위원장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외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개정 정관으로 인해 사무총장의 1인지배체제가 되었다는 소설에 가까운 망상은 동정이 갈 정도로 평가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여인철 씨는 정관 개정의 본의를 왜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해 둔다. 

화, 2018/04/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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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4/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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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민문연에 가입한 새내기입니다.

친일청산과 이승만 박정희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용기 있게 발표한 민문연에 평소에 품고 있던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뒤늦게나마 후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보인 민문연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민족 자존의 대의를 위하여 일한다는 분들의 회의 진행 모습은 전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참가한 회원들 중 많은 분들도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총회에서 받은 충격과, 그리고 반대자들을 제명하겠다는 후속조치에 대단히 실망하였습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곳에서 저들과 똑같이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나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 회비 감축을 하고자 합니다. 최소 회비인 월 1만원으로 감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민문연이 촛불시민의 수준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때에, 타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다시 증액하고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민족의 등불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전 김영수

 

 

화, 2018/04/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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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4편; 임시정부의 활동과 좌절 그리고 이승만의 패악질’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구요
목요일은 ‘미리 가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화, 2018/04/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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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댓글 달기 기능은

일부러 뺀 것입니까?

일부러 뺐을 리는 없겠지요?

연구소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테니까요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1만여 회원들만의 연구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고 또 정말 어려울 때 3000원 5000원 후원했으며, 혹 금전적 후원을 못해도 마음으로 성원하고 사랑하며 지지한 많은 국민 또는 시민들의 연구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위한 열린게시판에서 게시된 사안과 의견에 대하여 당연히 읽은 이의 의견을 달거나 의문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홈페이지는 댓글 다는 기능이 없습니다.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입니까?

자칭? 완벽에 가깝다는 연구소가

어느 연구소보다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헌신적인 전문 상근 담당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면서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웃겠지요?

이 글을 읽는 즉시 빼야만 했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기능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1만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찾아와서

전 국민이 찾아와서

각자 연구소에 대한 칭찬도 격려도 비판도 생각도 말하고 공유하는 연구소가 되고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한시바삐 댓글달기 기능을 살려 주세요

수, 2018/04/2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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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賀全琫準將軍之銅像建立

 

腐邦東學起(부방동학기)

義血大男兒(의혈대남아)

亂政今綿歷(난정금면력)

民號立像碑(민호입상비)

 

전봉준 장군의 銅像 건립을 삼가 賀禮하며

 

푹 썩은 나라에 東學이 일어났으니

정의의 피를 흘리신 큰 男兒였도다

어지러운 정치 지금도 죽 이어지니

民은 부르짖으며 銅像과 碑 세운다.

 

*全琫準: 조선 후기  東學  농민 운동의 지도자(1855~1895).  初名ㆍ字는  명숙

(明叔). 號는 해몽(海夢). 고부 군수 趙秉甲의 수탈에 항거하여 농민 운동

일으켜 猛威를 떨쳤으나, 官軍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義血: 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 *亂政: 어지러운  정치 *綿歷: 쉬지  않고  계속됨.

 

<2018.4.24, 이우식 지음>

수, 2018/04/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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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김점구입니다

지난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개 회원인 제가 상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쌍방의 주장을 듣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판단은 보류하고 있습니다.
쌍방의 주장을 보면 
서로 극단에 서 있고, 서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동안 들리는 소문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 저를 탓하며, 회원으로서 현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극단적 상황이 2018년 3월 24일 총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몇 년에 걸친 대립과 갈등이 커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판단 보류입니다.

총회에 대한 소감은 이전에 밝혔으므로 생략하고
4월 24일 자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 건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관에서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크게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운영위원회가 게시한 글에 따르면 정관 개정 건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부터 논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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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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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10기 제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여 이사회에 회부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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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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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은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가 이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인철  전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당시(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제안되거나 의견이 모아졌다면,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 또는 의혹제기는 터무니없고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인철 위원장 자신이 책임자로서 관여했던 규정개정소위를 부정하는 작태이고, 자신이 시작한 일을 남에게 탓을 돌리려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하여 제안 또는 논의가 없었다면 굳이 여인철 전 위원장을 개정 과정에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관 개정의 연혁을 소개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과정을 모르는 회원의 입장에서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소개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의도했다면 현 운영위원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8/04/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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