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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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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2- 01:38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임정 100주년 특집]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 대담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성우 전해리, 이기호, 이항증 선생

[임정 100주년 특집] 3편,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나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 세 번째 시간입니다. 세 번째 시간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움 말씀 주시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예지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하 예지숙)> 네, 안녕하세요. 예지숙이라고 합니다.

◇ 이동형> 오늘 해볼 얘기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앞에 오프닝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독립운동에 남녀가 따로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아니겠습니까?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내조나 지원 정도로 생각하면서 보조적 행위로 봤기 때문이고요. 또 한 부분은 이게 전반적으로 일제의 탄압받는 민족 수난사에서 희생의 상징으로만 여성들을 부각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유관순 열사 정도만을 기억하게 된 그런 이유가 됐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후세 사가들의 노력이 부족했다, 이런 점도 있지 않을까요?

◆ 예지숙> 물론이죠. 특히 민족 운동사를 구성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미진했고요. 지금에 있어서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면서 학계 내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죠.

◇ 이동형> 그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 역사를 봐도 남성 중심으로 쓰인 역사가 많으니까요.

◆ 예지숙> 그렇긴 하죠. 여성사, 젠더사,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인 요구에 학자들이 부응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앞장서서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도 당연히 있고요. 유관순 열사도 마찬가지고, 박차정 열사도 마찬가지죠. 게릴라전에 직접 참여했으니까. 이런 분들도 있고, 또 정말로 김구 선생의 아내분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또 남편이나 아들이 잘할 수 있도록 내조를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분들에게도 서훈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 예지숙> 네, 있죠. 활동을 단지 내조나 안사람의 일, 아내의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그런 상황이라고 하는 게 상당히 임시적 상황이고, 더불어서 아직은 아주 적확하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게 굉장히 난민적인 상황인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이분들이 하는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단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아내의 일이라고 하는 것으로 국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특히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여성 학생들, 또 3.1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 학생들, 송죽 결사대, 대한애국부인회, 조선애국부인회 등 굉장히 많습니다. 단체도 있고, 개인도 있고요. 3.1 운동도 이후 임시정부로 이어진 민족 운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들, 한 분, 한 분 정리해주시겠습니까?

◆ 예지숙> 네, 아주 여러분이 있는데요. 일단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에서 활약했던 중심적인 그룹은 여성 학생들 그룹인 것 같고요. 그리고 임시정부 해외 망명가 그룹에 있어서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이은숙, 이상룡의 손주 며느리로 알려진 허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상해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이라고, 이분의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다, 하는 정정화, 장강일기라고 하는 회고록을 남기셔서 연구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인데요. 해외 망명 여성운동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동형> 다른 분들은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 예지숙> 이외에도 윤희순 열사라든가, 여성 최초의 의병장이라고 하는 윤희순 열사라든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항일 운동에 뛰어든 남자현. 영화의 모델이 되기도 하셨던 분이죠.

◇ 이동형> 전지현 씨의 모델이었죠.

◆ 예지숙> 그렇죠. 그리고 조금 독특한 분들이 있어요. 20년대 후반에 을밀대의 투사라고 당시에 알려졌던, 조선사를 들썩들썩하게 했던 강주룡. 이분은 엘리트가 아니라 하층 여성에서 성장한 여성운동가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 엘리트 그룹이기는 한데, 허정숙, 주세죽,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고, 공간적으로도 넓고, 이념상으로도 넓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 이동형> 허정숙 선생이나 주세죽 선생의 경우에는 여성 운동동도 열심히 했던 분으로 알려졌는데, 강주룡 선생은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갔다? 이것은 어떤 뜻입니까?

◆ 예지숙> 고공농성을 하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분이 평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파업을 주도하다가 그 파업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하시고, 그게 당시 동아일보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여성노동자로서 주목을 크게 받으셨던 분입니다.

◇ 이동형> 작년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언급됐던 분이라고 하는데요. 저도 잘 모르는 것을 보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 같아요. 그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가장 문제 같습니다.

◆ 예지숙> 이분이 또 하층 여성이다 보니까 자료가 워낙 없는 분이기는 한데, 소설로도 재현돼서 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제가 아까 허정숙, 주세죽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대에 여성주의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요. 당시 시대상이 아무래도 봉건적, 남성 위주의 시대상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성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것은 독립운동뿐만 아니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시사점이 있을 것 같아요.

◆ 예지숙> 그렇죠. 여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체로 선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을 변화시키는 일인 거죠. 그러면서 여태까지 우리가 많은 열사들, 독립운동가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분들을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운동사적인 맥락에서 어찌 보면 여성 영웅호걸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읽어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이분들이 민족에 대한 헌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여성 규범이라고 하는 것들을 변화시켜냈던 분들이라는 맥락에서도 함께 읽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어봤고요. 지금부터는 몇 분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임천각의 종부 허은 지사가 서훈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여성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한 시조부,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 유고, 시아버지 이준형 선생의 유서 등의 자료에서 공적이 확인됐기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해서 허은 지사의 아들, 이항증 선생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 이항증> “우리 어머니가 서훈받기까지는 참 당신에게 나라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 찾는 데 온갖 고생을 다했다는 것. 우리 할아버지가 일본의 압박에 유서를 써놓고 자결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효가 지극해서 아들인데 부탁하기를 다른 사람 같이 대하지 말고, 아주 무겁게 대하라고 유서에 일부러 썼을 정도죠. 유서 한 장짜리 한 부분입니다. 제일 큰 형님의 이름이 도정입니다. ‘도정이 모친은 효향이 지극하여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무겁게 대하도록 해라.’ 그러니까 독립운동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다른 보통 부인과 같이 대하면 안 된다, 동료로 대하라, 이 말이죠. 특별 지시입니다.”

◇ 이동형> 이항증 선생의 증언을 듣고 왔는데, 저도 고향이 안동이어서 이항증 선생도 동향이니까 오랜만에 정겨운 사투리를 들어서 반갑기도 한데요. 이분 없이 시할아버지 이상룡, 시아버지 이준형, 남편 이병화, 이런 선생들의 독립운동이 과연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예지숙> 네, 거의 불가능했겠죠. 독립운동하면서 밥도 먹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건데요. 그리고 1년 365일 어떤 조직운동을 하거나 사실상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이런 재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들은 당시에 밥하고 빨래한 것이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그래서 유서에서 우리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겁게 대하라, 이런 이야기를 했겠죠. 그리고 이상룡 선생 집안은 이상룡 선생만 독립운동한 것이 아니고, 이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요. 종부로서 당연히 여러 가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허은 지사가 남긴 회고록이 있는데요.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애국지사들의 만주 망명과 정착 과정 당시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 한 대목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때거리는 부족했다. 삼시세끼가 녹록치 않았다. 점심 준비를 위해 어느 때는 중국인에게서 밀을 사다가 마당 땡볕에 앉아서 맷돌로 가루를 내어 반죽해서 국수를 해먹었는데, 고명 거리가 없어서 간장과 파만 넣었다. 양식이 없던 어느 해는 좁쌀도 없어 뜬 좁쌀로 밥을 해먹었는데, 그것으로 밥을 해놓으면 색깔도 벌겋고, 곰팡내가 나서 아주 고약하다. 서간도의 추위는 참으로 엄청나다. 공기도 쨍하게 얼어붙어 어떤 날은 해도 안 보이고 온 천지에 눈서리만 자욱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오로지 매서운 바람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돔’이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할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께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 이동형> 임청각 99칸 대저택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룡 선생 일가인데, 노비도 해방시키고 전 가옥, 전답을 팔아서 독립운동하러 만주로 떠났고, 거기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서 연명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만주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글인 것 같은데요. 아까 우리가 잠깐 정정화 선생님 이야기도 했습니다. 스무 살의 나이로 먼저 상해로 떠난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을 돌보러 갔다가 임시정부 안살림까지 떠맡아서 김구 선생이 조선의 잔다라크다, 라고 칭했던 사람이죠?

◆ 예지숙> 네, 그렇죠. 이분 같은 경우는 그러면서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쭉 맡아서 하게 되는데요. 이분 일화 중에 굉장히 중요한 일화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너무 빈곤하고 어렵다 보니까 엄혹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독립운동 자금인데 생활비죠.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경을 굉장히 여러 번 담대하게 넘나들었다고 하는 거죠. 이런 분들을 보면 계속 이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실제 이분들이 임시정부의 굉장히 큰 경제적인 역할도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단지 아내나 안살림이라고 이야기를 또 이 부분에서 그렇게 제한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 이동형> 그리고 의열단 여성투자 박차정. 김원봉의 아내로 알려진 박차정 의사. 박차정 의사는 역시 박차정 혼자만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고, 여기도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그런데 박차정 열사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가 조선의용대 군인이 되어서 자기 남편, 그리고 오빠와 함께 게릴라전투에 참여했었고요. 1939년 2월에 중국 강소성 곤륜산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던 중 부상을 당했고, 그 후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44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나중에 남편인 약산 김원봉이 해방 후에 유해를 안고 고향 밀양으로 와서 묘를 마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아까 우리가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김 마리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겠습니다. 김 마리아 같은 여성이 10명만 있었다면, 대한은 독립되었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인물이죠?

◆ 예지숙> 김 마리아는 근대 교육을 일찍이 받은, 3.1 운동을 통해서 등장한 여성 학생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1892년 황해도 장연군 소래라고 하는 지역에서 출생했고요. 이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소래라고 하는 지역이 워낙에 한국에서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기독교 공동체이고, 여기서 민족운동가들이 많이 나온 지역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소래에서 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정신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19년에 2.8 독립선언을 주도하죠. 그리고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그것을 국내에 확산시키기 위해서 국내로 들어와서 광주, 부산, 그다음에 자신의 고향을 돌아다니면서 쭉 3.1 운동을 전국화하게 됩니다. 워낙에 당시 여학교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여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지방으로 퍼져나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근대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분이 3.1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고요.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후에는 다시 나와서 계속적으로 저항을 하게 되고, 출옥 후에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해서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으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일을 하죠. 그리고 계속 말씀드리면 그 이후로 상해로 망명을 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이동형> 1919년에 한 번 체포되었고, 이후에도 귀국한 뒤에 또 한 번 체포되고, 두 차례 투옥 중에 받은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에 광복을 불과 1년 앞두고 순국했는데요. 1919년 9월 김 마리아 열사가 작성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취지서를 들어보겠습니다.

◆ 성우> “고어에 이르기를 나라를 내 집 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가족의 집이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제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집이 성립하지 못하고, 나라는 국민의 나라이나 국민 중의 한 사람이라고 나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를 보존치 못할 것은 우부우부라도 밝히 알리로다. 오호라.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일분자로 본회가 설립된지 수년 이래로 적의 압박을 입어 어떠한 곤란과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은근히 단체를 이루며 비밀히 규모를 지켜 장래의 국가 성립을 준비하다가 독립국 곤란 중에 부인도 십에 이가 참가하여 세계의 공안을 놀라게 하였으나 이것에 만족함이 아니요.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기로 표준삼고 전진하며 후퇴하지 아니하니 국민성 있는 부인은 용기를 함께 분거하여 이상을 상통할 목적으로 단합을 위주하여 일제히 찬동하심을 천만 위망하나이다.”

◇ 이동형> 김 마리아 여사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할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요. 김 마리아 여사가 한국 저고리 안쪽 앞섶 길이가 달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 예지숙> 그 이유가 고문을 심하게 당하면서 가슴 한 쪽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 이동형>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 김 마리아 여사가 남긴 말인데요. 누구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했음에도 여전히 이름도 없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가족으로만 기억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분들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후손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끝으로 정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예지숙> 많이 기억을 하고, 국가에서 전반적으로 이것을 제도화하고, 보훈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시민사회에서 이런 것을 기억하고요. 그리고 더불어서 여성들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세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독립운동에 남녀가 어디 있겠나. 민족문제연구소 예지숙 연구원과 함께 해봤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예지숙> 네, 감사합니다.

<2019-03-21>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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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0/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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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대 위험없는 군사옵션, 과연 존재하는가?
(연합뉴스tv)

[앵커]
미국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 방안이 존재한다 이렇게 언급했는데요.

이외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북한과 관련된 강경 발언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군사옵션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재선 정치안보 전문기자 연결합니다. 이재선 기자!

계속 강경발언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미중정상회담 직전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실험, 미사일발사 때마다 강경발언들을 쏟아왔습니다.

지난 8월 “화염과 분노”, “가만두지 않을 것” 등의 발언들이 이어졌고 유엔 대북 제재안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한 옵션에는 전술핵배치·참수작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과연 그러한 옵션이 가능할까요?

[기자]
이중 참수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과거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할 때 미군 특수부대가 들어갔죠.

네이비 실 팀이 들어갔는데 이런 특수부대가 평양에 들어가서 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작년 아프간에서 탈레반 지도자 만수르를 제거할 때는 스텔스 무인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로 해서 참수작전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과연 서울은 어떻게 되겠는가가 문제입니다.

결국 공격형 무인기를 동원하는 군사옵션을 선택한다고 할 때 북한의 지도부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가 됩니다.

[앵커]
지금 한미 정보력이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기자]
그것이 바로 킬체인 개념인데 북한의 지도부 움직임을 과연 포착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앵커]
실패할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기자]
실패를 하게 될 경우 서울은 전면전을 피하기 힘듭니다. 전쟁 직후 8분안에 수만개의 북한 방사포가 서울을 날라옵니다. 8분안에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평소 대피훈련을 해온 주한미군 가족들과 외교관 등일 것입니다.

결국 참수작전이 조금이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전면전이 벌어지고 10분안에 수도권 2300만명 중 절반이상에 위험에 노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왜 참수작전을 언급하는 것인가요?

[기자]
일종의 북한에 대한 협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말들이 자주 언급될수록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발언들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발언들이 북한 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도 불안감을 주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9월 9일 북한 행사장을 폭격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었죠?

다행히 아무일이 없이 지나갔지만 이런 발언들이 자주 있게 될 경우 오히려 북한을 더 자극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빈도를 높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발언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전쟁에 대한 불감증이 오히려 커져서 막상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누구도 대처할 수 없게 될 것이고요.

[앵커]
그렇군요. 이번 시간은 서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대북군사옵션이 가능한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일, 2017/10/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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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리석은 인간”, “하찮다”고 표현해
(선데이저널=채수영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어리석은 인간(노로마,???)”, “하찮다(쯔마라나이,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유럽(프랑스)의 유명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일본 소식통의 주장을 인용하여 아베 총리가 최근 진행된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극렬히 비난했다고 전했다.

‘일본회의’는 일본 우익 최대로비단체로 1997년 우파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 결성한 조직이다.

현재 아베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각료가 일본회의 멤버로 있으며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천왕제 부활, 국민주권 부정), 헌법 개정, 국방의 충실(재무장), 애국 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아베 총리는 이 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가로지른 것을 두고 북핵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을 지적했다.

최근 8월 29일과 9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가면서 일본은 경보시스템을 발동하고 홋카이도 지방 대피훈련을 벌린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을 혼란에 빠트린 것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표현하면서 한국이 현재 북한 핵, 미사일문제에 대한 뽀족한 수가 없는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아베 총리는 ‘일본회의’에서 한일위안부합의 역시 재논의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하찮다(쯔마라나이)’고 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위안부합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7일에도 위안부 합의 변경과 관련해 “골대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 합의한 것이 전부다”라고 위안부 합의 변경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일본대사관 뒤 소녀상을 옮길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정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아베 총리는 2013년 11월 한국을 두고 “어리석은 국가”라는 망언을 쏟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하찮다”라고 표현한 것 역시 과거 입장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7-09-20)

 

 

 


일, 2017/10/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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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님께 요청 드릴 사항 2가지가 있어서 게시판에 글 남깁니다.

1. 박정희가 일제때 활동했던 사진과 기록(어느 문헌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지) 그리고 해방 후 빨치산

행적에 대한 사본을(원본 명시)  우편으로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요청 드리는 이유는 제 70 노모가 박정희(박근혜) 숭배자(일명 박사모)라 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기록,

뉴스 매체가 조작이라면서 신뢰하질 않습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 개소리의 진원지인 유튜브 관련 박사모 관련 사이트는 왜 이리 신뢰하는지 참…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담긴 사진과 기록 내용, 해방 후  빨치산 행적을 공식 문서로 해 확인시켜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 메일로 받는 방법도 확인해 볼 수 있으나 정확한 기록에 의한 것이 더 확실한 팩트로 전달할 수 있기에

부탁 드립니다.  보내주실 주소는 제 개인 정보란의 집 주소(인천)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사 비용 및 우편요금이 발생한다면 납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2. 핸드폰 기기 변경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재 다운로드 하려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존 핸드폰 기기(아이폰6s plus)에서 10,000으로 구매했는데 기기 변경(LG G6)하고 다시 받으려고 하니

다시 10,000을 납부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서… ㅠㅠ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기기 정보와 인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연결하여 기기 변동이나 전화번호

변경시에도 다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 2017/10/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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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에필로그

수, 2017/10/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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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0/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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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10/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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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수리온부터 사드까지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군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이경주ㅣ종합편집: 문석진ㅣ타이틀: 이정온ㅣ카메라: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ㅣ메이크업 : 강도겸ㅣ기술: 박성영 ㅣ연출: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 한겨레TV <2017.10.17>

☞기사원문: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 (안보)

※ 관련영상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 (경찰)<2017.10.10>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 (검찰과 국정원) <2017.9.26>

화, 2017/10/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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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10/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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