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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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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익명 (미확인) | 목, 2019/03/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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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423pageㅣ발행일: 2019.03.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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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2016년부터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는 글]

올해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 한국인이 흩어져나갔던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넘칩니다. 역사학계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대체로 이 같이 해마다 반복되는 사건 기념일을 통해서입니다. 이처럼 역사가 국가와 국민의 기억으로 존재하는 한, 역사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올해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유례 없이 매스콤과 각 지자체 행사에서 화려하고 풍성하게 다루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 적폐 청산이라는 민주주의적 격변 덕분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정치가 역사를 지나치게 동원하려 하면 무리한 일이 발생하는 법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남측이 북측과 삼일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기획하려 했으나 좌절된 것을 그 첫 번째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북한 역사서에서는 삼일운동을 러시아혁명과 인민대중의 거족적 반일 항쟁이라고 볼 뿐, 운동을 초기에 주도했던 ‘민족대표’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해서도 ‘파벌 싸움’ ‘사대주의’ ‘민족 상층 분자들이 해외에서 벌인 매국 배족 책동’ 등등으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삼일운동의 결과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탄생하였다고 보는 현 정권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이 삼일운동과 근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무지했거나, 아니면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과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태는, 정부가 국민 청원과 국회 특별법 제정 움직임을 받아들여 유관순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해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한 점입니다. 유관순의 훈격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는 유관순의 당대 독립 운동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해방 이후 그를 프랑스의 잔다르크 같은 인물로 영웅시한 후대인들의 노력의 결과 나타난 것입니다. 민족 해방과 독립에 기여한 공적이 아니라 후대인들이 그의 활동을 어떻게 추앙하고 기억했는가에 따라 서훈을 높인 것이므로 기왕의 공적심사 판례를 깨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관순은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영화, 초중등 교과서, 신문, 라디오 드라마 등등 수많은 역사물에서 높이 추앙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장 서훈을 받은 여타 독립운동가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기억 상황에 따라 독립운동의 공적 평가가 달라진다면 사료를 수집 분석하여 평가를 내리는 역사학은 존재 의의가 없게 됩니다.

물론, 친일 협력 행위자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학교 교육은커녕 생계 유지도 힘들 만큼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국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그 공적에 걸맞게 평가하고 생계와 교육, 사회적 기회 등 모든 면에서 지원하고 보상하고 추앙하는 작업은 당연하고도 올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후대의 대중적 평가에만 따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역사학적 연구 성과에 즉해서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윤소영의 글은 삼일운동의 한 원인으로도 꼽혀 왔던 일제에 의한 고종 독살설이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종의 사망 원인이 독살이 아니라 병사, 즉 뇌출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지원은 삼일운동을 유관순 중심으로 기억하는 태도에서 더 나아가 여학생과 여교사, 간호사, 기생 등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과 구시대에 천대받던 여성의 진출이라는 젠더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삼일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해간 측면에서는 유관순보다 당대에 더 많은 활동을 했던 김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최우석은 삼일운동의 종점을 4월 말, 5월 말, 6월 초 등 세 가지 설이 있음을 밝히고 자신은 6월 초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그 증거로 7월 초부터 만세시위가 서대문 감옥 주변에서만 빈발한 사태를 들었습니다.

김지영은 3·1운동과 관련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들의 동향을 정리했습니다. 윌슨 미국 대통령은 당초 그가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와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존 및 제국의 연방화를 구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의 분리 독립 및 개별 통합 움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3.1운동은 이러한 외부적·내부적 여건이 없었기 때문에 독립국가 건설로 귀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문가 3명을 모시고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좌담회 기록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삼일운동과 그 이전 민중운동과의 차별성,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면서도 지역적 차이가 나타났던 이유, 민중이 만세 시위에 가담한 이유, 일본의 무단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 일본 국내 정치 변동 속에서 문화 정치의 본질과 무단 정치와의 차이에 대한 분석, 독립-자치-참정 3가지 운동의 변별점, 대중의 등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바라보는 관점 등 3시간에 걸쳐 좌담을 나눈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4편의 글 중 두 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반면, 나머지 두 편은 정통성은 언급하지 않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를 운영해가는 주체로 매우 문제가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는 것이 역사학계의 현황이므로 양자를 다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나미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임정을 이었다고 했으므로 한국 역사의 시기 구분은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표방했으므로 3.1만세시위가 혁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김기승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부터 좌우합작 정부로서의 성격을 띠었고, 1940년대에 다시 군사, 의회, 정부 차원에서 좌우합작에 성공했다고 하여 민족 대표성을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서 윤대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식 정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망명 정부가 아니라 해방 후 새로 국회를 소집하여 정식 정부를 다시 수립해야 하는 그야말로 ‘임시적’ 정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부라는 명칭 때문에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임시정부 수립 초기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고 합니다. 반병률 역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의 역할에 높은 평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임시정부가 국민 통합 역할을 한 것은 1919년부터 1921년 초까지, 그리고 1942년 좌파 정당이 한국독립당과 합작한 이후 해방 때까지 시기였을 뿐, 나머지 20년간은 붕괴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미주지역 동포들의 애국금을 독점한 이승만의 독재적 리더십과 행동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실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효창공원 안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점입니다. 이순우는 파격적인 행사가 열린 이 효창공원의 기막힌 운명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효창공원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로부터 1894∼1940년간 일본군 부대 및 일본인 밀집 거주지, 공원지, 일본군 전사가 충령탑으로 모습을 바꾸다가 해방 후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김구 등 순국한 애국열사의 묘역군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효창운동장 건설과 서삼릉으로의 이장 시도 등으로 굴곡을 겪었던 현장임을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김승태는 주기철과 김길창 두 분 목사의 같은 직업, 달라진 운명을 보여줍니다. 같은 장로교 목사이고, 같은 경상남도 사람이고, 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순교자요, 다른 한 사람은 부일협력자라는 점에서입니다. 김성민은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백산상회 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안희제가 그 외에도 인쇄회사, 협동조합, 중외일보, 발해농장, 대종교 등 순국할 때까지 민족운동의 대열을 지킨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강태구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유한이라는 작곡가의 삶을 소개합니다. 한유한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노래가 한국 초등학교에 실린 유일한 독립군가입니다. 그는 이외에도 항일가극 <아리랑>을 공연하고 광복군 전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작년 이래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빈번해지는 정세에 맞추어 두 개의 통일에세이를 준비했습니다. 강영식은 대북 지원 사업으로 남북 간 산림 협력 사업이 북한의 산림 황폐화, 자연 재해, 식량 부족이라는 연쇄 사슬 형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성염 신부는 로마 교황이 ‘쿠바 미사일 위기’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때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나타날 희망찬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해서 세 편의 글이 우리의 눈을 잡아 끕니다. 조수룡은 우리에게 ‘8월 종파사건’으로 알려진 1956년 8월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김일성 독재 체제와 북한-중국-소련의 삼각관계의 기본적 구조를 낳은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은미 역시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400개 이상의 공식 시장이 이미 1960년대부터 존재하면서 오늘날의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면서도 조만간 국가 중심의 거대 유통 시장과 경쟁하면서 소멸할지도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북한 전쟁 고아들의 문제도 언급됩니다. 윤석준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총 1만 여명의 북한 전쟁 고아들이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등 동유럽 국가들로 입양 또는 수용되었다가 다시 북한으로 복귀당하는 참담한 삶을 추적했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작년 하반기 이래 한국이 또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경고가 빈번하게 나왔습니다. 김용기는 실제로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산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삭감을 막기 위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외에도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본질적 이유에 대한 김준혁의 설명, 한때 전세계를 풍미했던 케인스의 저서에 대한 류동민의 소개 글, 『평양지』 속에 구현된 평양 이미지에 대한 이은주의 해석, 『한국 근대영화사』에 대한 강성률의 서평, 단원 김홍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최열의 최종적 정리, 조선시대 수운 유통의 거점이었던 충주로에 대한 김창회·신동훈의 역사기행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근대 역사학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 왔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다 보면 국가와 민족 내부의 불평등과 차별은 종종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한 삼일운동의 의의와 그 소중함을 기억하는 만큼, 조국을 떠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순국열사들의 고단한 삶을 기리는 만큼,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만큼, 우리 사회 내부의 비정규직 차별,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에도 분노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위원 도면회


차례

04 여는 글
과유불급의 삼일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현창

11 통일에세이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 남북 산림협력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 강영식
로마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 / 성염

29 3·1운동 톺아보기
3·1운동은 언제까지로 보아야하는가 / 최우석
고종독살설과 3·1운동 / 윤소영
젠더사로 읽는 3·1운동 / 이지원
89 3·1운동과 세계정세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및 후속 동유럽 국가의 성립과 비교하여 / 김지영

대한민국임시정부 톺아보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민주공화제에 대한 재고찰 / 이나미
왜, ‘당’이 아니라 ‘정부’인가? / 윤대원
통합임시정부는 왜 붕괴했는가 / 반병률
좌우합작정부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 김기승

145 좌담회
3·1운동 100주년 특별좌담회 – 3·1운동과 한국인의 삶 / 김정인, 도면회, 이정은, 이태훈

199 북한의 이해
북한 역사상 제1대 사건, 1956년 8월전원회의 / 조수룡
북한의 시장, 변화의 중심에 서다 / 정은미
잊혀진 아이들을 기억하기: 동유럽으로 간 북한의 전쟁 고아들 / 윤석준

237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론이 등장하고 부각된 이유 / 김용기
효창원(孝昌園), 아주 오래 지속된 공간수난사의 이력 / 이순우

277 인물로 보는 역사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부일협력의 거두 김길창 목사 / 김승태

[독립운동가열전] 백산 안희제의 민족운동 / 김성민
[독립운동가열전] 조국의 광복을 노래한 작곡가 먼구름 한유한 / 강태구

331 사실 체크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했을까? / 김준혁

345 내일을 여는 책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류동민

355 예인열전

단원 김홍도 작품세계, 단원 김홍도, 살아서 신필,
죽어서는 신선, 고전관학파 회화세계의 완성자 4 / 최열

385 사료의 재발견

『평양지(平壤誌)』에 구현된 평양 / 이은주

389 역사와 공간
조선 수운(水運) 물류의 허브(Hub) -조선 전기 충주목을 찾아서 / 김창회, 신동훈

415 서평
‘근대’영화라는 물음과 답 – 이효인, 정종화, 한상언,
『한국근대영화사 – 1892년에서 1945년까지』(돌베개, 2019) / 강성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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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나쁜 합의’인가?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6·12 싱가포르 1차 조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한 센토사 합의를 두고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완승”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만남 자체로 큰 성과이며 70년간의 적대관계를 종식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핵폐기의 방식과 시한 등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얼핏 전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CVID에 집착하여 공동성명을 ‘나쁜 합의’로 단정하는 것은 이번 회담의 역사적 함의와 과거 사례와의 차별성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미간의 극한 대립은 냉전구도와 한국전쟁의 후유증에서 비롯한 바 크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일관된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다. 그것은 남한이 1990년 소련과, 1992년 중국과 수교한 반면, 미·일과 북한의 관계 수립은 이제 걸음마 단계인데서도 쉽게 드러난다. 한·미·일 대 북·중·러,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결이라는 전통적 관점으로는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지점이어서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후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센토사 합의에는 이러한 비대칭적 구도를 해소하고 정상적인 관계로 전환한다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합의문만을 보더라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북한은 핵이라는 유형의 자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데 그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억류 미국인들을 석방하였으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도 약속했다. 미국은 전면전을 가정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으로 이에 화답한 모양새다. 사실상 단계별 동시적 행동원칙에 입각한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의 조치가 구체적이고 종국적인 데 비해 미국은 비전만 제시하고 언제든 원상복구가 가능한 대응만 하고 있는 형국으로 읽힌다. 평화협정 체결과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국교 정상화 등 정작 북한이 원하는 것은 모두 전제가 있는 후순위의 과제일 뿐이라는 점에서 결코 기울어진 협상은 아니었다고 봐야 옳다.

미국과 일본의 국민 여론은 다수가 북한과의 대화를 찬성하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여기에는 지난날의 시행착오와 오랜 불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낙관적인 요소들도 여럿 눈에 띈다. 우선 북·미 정상의 강력한 해결 의지와 상호간의 신뢰가 있으며, 남·북·미 간 다양한 대화 채널이 열려 있고, 협상과정에서 신속하고 선제적인 조치가 뒤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체제상 최고지도자가 공공연하게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정책을 철회하기도 쉽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핵보유와 경제발전의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불가피한 선택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완전한 비핵화’는 이미 ‘불가역적’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해본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북미 간 교섭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신뢰의 부족이었다. 평화를 목표로 협상을 하면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표현대로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지속한다는 것은 국제외교의 행동규범에도 어긋난다. 이율배반적이며 명분도 서지 않는 일이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의 필요보다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은 북미 간에 진행되고 있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오른 적이 없는 주제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철저히 미국 우선주의와 실용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는 동맹도 우방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보수적 분석가들의 ‘가치동맹’이라든지 ‘혈맹’을 무시한다는 따위의 고식적 표현이 더욱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는 근대 외세의 개입으로 결국 망국에 이르는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좋은 전쟁이 있을 수 없듯이 항상 이득이 되는 선량한 외국군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평화체제가 굳건해진다면 외국군이 굳이 주둔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때 가서는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완충지대 나아가 중립지대로 기능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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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연합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물론 한반도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대응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변수가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는 마련되었으며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 또 해리스 주한 미 대사 내정자의 “한반도의 전반적인 풍경이 달라졌다”는 말이 수사에 그치는 표현만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퇴행하지 않도록 운전자 조정자에서 한 걸음 더해 설계자 또는 촉진자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선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70년 만에 얻은 절호의 기회를 전력을 다해 살려나가야 한다. 앞장서서 청사진을 제시하고 북한과 미국을 견인해야 한다. CVID든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든 결국은 CVIP(완전하고 가시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번영)를 위한 것일 게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핵심 관건은 군사와 경제 그리고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다자안전보장체제를 구축하는 일일 것이며 일차적 목표는 동북아경제공동체의 창설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정치권에도 주문하고 싶다. 7회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보수 야권은 이제라도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세 변화에 조응해야 한다. 국회의 판문점 선언 비준과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 지지결의안 채택은 그 첫걸음이다. 그렇게 해야 미국 의회에도 무어라 주문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018-06-18> 프레시안

☞기사원문: 국회의 ‘北美정상선언’ 지지결의안이 필요하다

월, 2018/06/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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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투브를 통해 프레이저 보고서를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고 몰랏던걸 많이 알게 됏습니다

근데 2는 검색을 해보니 아직 영상이 없는거 같더라구요.

부탁드리겟습니다 (__)

일, 2017/07/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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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회 회원인 박노정 시인이 7월 4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시인의 부고기사가 여러 언론에 났지만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쓴 기사 제목에 가장 공감이 간다.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 별세〉.
박 시인을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박 시인이 ????진주신문????대표이사 시절 그의 소개로 진주의 어른인 남성(南星) 김장하 선생을 만났으니 아마도 1990년대 후반으로 짐작한다.

▲ 박노정 시인./경남도민일보DB

????진주신문????은1990년진주시민들이모여창간한신문으로지역의수구적인여론에맞서 정론직필 그리고 ‘진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정신을 ‘신분해방운동인 형평, 임진왜란 때 2차례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서 민관군이 일체가 돼 보여준 주체, 남명 조식 선생의 호의’ 등 3가지를 꼽았다.
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이사뿐아니라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진주민예총회장,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를 빼놓고 진주의 시민운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있던 2005년 5월, 박 시인은 지역의 후배들과 함께 진주성 촉석루 옆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내 박 시인을 포함해 4명이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선고가 부당하다며 모두 노역장 유치를 자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벌금 대납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당시 4명의 벌금은 2,000만원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성금이 이보다 더 많은 2,370만원이나 모아졌다. 박 시인 등은 나중에 이 성금 중 일부를 연구소 진주지회 결성(2012년 3월) 자금으로 내놓았다. 실제로 박 시인은 연구소 진주지회의 숨은 설계자였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시절이던1990년대초부터논개영정폐출운동을시작해 2008년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그린 새로운 논개 영정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박 시인은 2006년에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을 만들어 진주 출신 친일가수 남인수의 이름을 딴 ‘남인수 가요제’를 ‘진주 가요제’로 바꾸기도 했고 ‘을사늑약 100년 남북공동사진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친일잔재 지도’ 제작도 추진했다. 이처럼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의 일생은 올바른 ‘진주정신’의 발굴과 계승이었다.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방학진 기획실장

 

수, 2018/08/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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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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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을 가지고 가서

호의호식해놓고…

지금 깐빵에 있는 인간!

죄를 뉘우치고 돈을  갚을 생각은 커녕

파산으로 배째라 하는 인간!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닌 행동을 하는 인간!

그리고 많은 서민들은 눈물과 괴로움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목, 2017/12/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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