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지역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봄 통권74호

익명 (미확인) | 목, 2019/03/21- 15:09
0206-4

▲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423pageㅣ발행일: 2019.03.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91

바로가기 >>> [도서구매]  ㅣㅣ   [정기구독안내]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2016년부터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는 글]

올해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 한국인이 흩어져나갔던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넘칩니다. 역사학계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대체로 이 같이 해마다 반복되는 사건 기념일을 통해서입니다. 이처럼 역사가 국가와 국민의 기억으로 존재하는 한, 역사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올해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가 유례 없이 매스콤과 각 지자체 행사에서 화려하고 풍성하게 다루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 적폐 청산이라는 민주주의적 격변 덕분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정치가 역사를 지나치게 동원하려 하면 무리한 일이 발생하는 법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남측이 북측과 삼일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기획하려 했으나 좌절된 것을 그 첫 번째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북한 역사서에서는 삼일운동을 러시아혁명과 인민대중의 거족적 반일 항쟁이라고 볼 뿐, 운동을 초기에 주도했던 ‘민족대표’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해서도 ‘파벌 싸움’ ‘사대주의’ ‘민족 상층 분자들이 해외에서 벌인 매국 배족 책동’ 등등으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삼일운동의 결과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탄생하였다고 보는 현 정권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이 삼일운동과 근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무지했거나, 아니면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과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사태는, 정부가 국민 청원과 국회 특별법 제정 움직임을 받아들여 유관순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해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한 점입니다. 유관순의 훈격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는 유관순의 당대 독립 운동에 대한 기여도로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해방 이후 그를 프랑스의 잔다르크 같은 인물로 영웅시한 후대인들의 노력의 결과 나타난 것입니다. 민족 해방과 독립에 기여한 공적이 아니라 후대인들이 그의 활동을 어떻게 추앙하고 기억했는가에 따라 서훈을 높인 것이므로 기왕의 공적심사 판례를 깨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관순은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영화, 초중등 교과서, 신문, 라디오 드라마 등등 수많은 역사물에서 높이 추앙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장 서훈을 받은 여타 독립운동가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대의 기억 상황에 따라 독립운동의 공적 평가가 달라진다면 사료를 수집 분석하여 평가를 내리는 역사학은 존재 의의가 없게 됩니다.

물론, 친일 협력 행위자와 그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학교 교육은커녕 생계 유지도 힘들 만큼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국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그 공적에 걸맞게 평가하고 생계와 교육, 사회적 기회 등 모든 면에서 지원하고 보상하고 추앙하는 작업은 당연하고도 올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후대의 대중적 평가에만 따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호에서는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역사학적 연구 성과에 즉해서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윤소영의 글은 삼일운동의 한 원인으로도 꼽혀 왔던 일제에 의한 고종 독살설이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종의 사망 원인이 독살이 아니라 병사, 즉 뇌출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지원은 삼일운동을 유관순 중심으로 기억하는 태도에서 더 나아가 여학생과 여교사, 간호사, 기생 등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과 구시대에 천대받던 여성의 진출이라는 젠더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삼일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해간 측면에서는 유관순보다 당대에 더 많은 활동을 했던 김마리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최우석은 삼일운동의 종점을 4월 말, 5월 말, 6월 초 등 세 가지 설이 있음을 밝히고 자신은 6월 초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그 증거로 7월 초부터 만세시위가 서대문 감옥 주변에서만 빈발한 사태를 들었습니다.

김지영은 3·1운동과 관련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여러 민족들의 동향을 정리했습니다. 윌슨 미국 대통령은 당초 그가 주장한 민족 자결주의와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존 및 제국의 연방화를 구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의 분리 독립 및 개별 통합 움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3.1운동은 이러한 외부적·내부적 여건이 없었기 때문에 독립국가 건설로 귀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문가 3명을 모시고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좌담회 기록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삼일운동과 그 이전 민중운동과의 차별성,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면서도 지역적 차이가 나타났던 이유, 민중이 만세 시위에 가담한 이유, 일본의 무단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 일본 국내 정치 변동 속에서 문화 정치의 본질과 무단 정치와의 차이에 대한 분석, 독립-자치-참정 3가지 운동의 변별점, 대중의 등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바라보는 관점 등 3시간에 걸쳐 좌담을 나눈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4편의 글 중 두 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반면, 나머지 두 편은 정통성은 언급하지 않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를 운영해가는 주체로 매우 문제가 많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는 것이 역사학계의 현황이므로 양자를 다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나미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임정을 이었다고 했으므로 한국 역사의 시기 구분은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표방했으므로 3.1만세시위가 혁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김기승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부터 좌우합작 정부로서의 성격을 띠었고, 1940년대에 다시 군사, 의회, 정부 차원에서 좌우합작에 성공했다고 하여 민족 대표성을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서 윤대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식 정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망명 정부가 아니라 해방 후 새로 국회를 소집하여 정식 정부를 다시 수립해야 하는 그야말로 ‘임시적’ 정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부라는 명칭 때문에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임시정부 수립 초기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고 합니다. 반병률 역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의 역할에 높은 평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임시정부가 국민 통합 역할을 한 것은 1919년부터 1921년 초까지, 그리고 1942년 좌파 정당이 한국독립당과 합작한 이후 해방 때까지 시기였을 뿐, 나머지 20년간은 붕괴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미주지역 동포들의 애국금을 독점한 이승만의 독재적 리더십과 행동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특기할 사실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효창공원 안의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한 점입니다. 이순우는 파격적인 행사가 열린 이 효창공원의 기막힌 운명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효창공원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로부터 1894∼1940년간 일본군 부대 및 일본인 밀집 거주지, 공원지, 일본군 전사가 충령탑으로 모습을 바꾸다가 해방 후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김구 등 순국한 애국열사의 묘역군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효창운동장 건설과 서삼릉으로의 이장 시도 등으로 굴곡을 겪었던 현장임을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김승태는 주기철과 김길창 두 분 목사의 같은 직업, 달라진 운명을 보여줍니다. 같은 장로교 목사이고, 같은 경상남도 사람이고, 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순교자요, 다른 한 사람은 부일협력자라는 점에서입니다. 김성민은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백산상회 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안희제가 그 외에도 인쇄회사, 협동조합, 중외일보, 발해농장, 대종교 등 순국할 때까지 민족운동의 대열을 지킨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강태구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유한이라는 작곡가의 삶을 소개합니다. 한유한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했는데 이 노래가 한국 초등학교에 실린 유일한 독립군가입니다. 그는 이외에도 항일가극 <아리랑>을 공연하고 광복군 전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작년 이래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빈번해지는 정세에 맞추어 두 개의 통일에세이를 준비했습니다. 강영식은 대북 지원 사업으로 남북 간 산림 협력 사업이 북한의 산림 황폐화, 자연 재해, 식량 부족이라는 연쇄 사슬 형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급하다고 주장합니다. 성염 신부는 로마 교황이 ‘쿠바 미사일 위기’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때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나타날 희망찬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관련해서 세 편의 글이 우리의 눈을 잡아 끕니다. 조수룡은 우리에게 ‘8월 종파사건’으로 알려진 1956년 8월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김일성 독재 체제와 북한-중국-소련의 삼각관계의 기본적 구조를 낳은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은미 역시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400개 이상의 공식 시장이 이미 1960년대부터 존재하면서 오늘날의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면서도 조만간 국가 중심의 거대 유통 시장과 경쟁하면서 소멸할지도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북한 전쟁 고아들의 문제도 언급됩니다. 윤석준은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총 1만 여명의 북한 전쟁 고아들이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등 동유럽 국가들로 입양 또는 수용되었다가 다시 북한으로 복귀당하는 참담한 삶을 추적했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작년 하반기 이래 한국이 또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경고가 빈번하게 나왔습니다. 김용기는 실제로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산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삭감을 막기 위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외에도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본질적 이유에 대한 김준혁의 설명, 한때 전세계를 풍미했던 케인스의 저서에 대한 류동민의 소개 글, 『평양지』 속에 구현된 평양 이미지에 대한 이은주의 해석, 『한국 근대영화사』에 대한 강성률의 서평, 단원 김홍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최열의 최종적 정리, 조선시대 수운 유통의 거점이었던 충주로에 대한 김창회·신동훈의 역사기행 등이 실려 있습니다.

근대 역사학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 왔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다 보면 국가와 민족 내부의 불평등과 차별은 종종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한 삼일운동의 의의와 그 소중함을 기억하는 만큼, 조국을 떠나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순국열사들의 고단한 삶을 기리는 만큼,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만큼, 우리 사회 내부의 비정규직 차별,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에도 분노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위원 도면회


차례

04 여는 글
과유불급의 삼일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현창

11 통일에세이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 남북 산림협력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 강영식
로마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 / 성염

29 3·1운동 톺아보기
3·1운동은 언제까지로 보아야하는가 / 최우석
고종독살설과 3·1운동 / 윤소영
젠더사로 읽는 3·1운동 / 이지원
89 3·1운동과 세계정세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및 후속 동유럽 국가의 성립과 비교하여 / 김지영

대한민국임시정부 톺아보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민주공화제에 대한 재고찰 / 이나미
왜, ‘당’이 아니라 ‘정부’인가? / 윤대원
통합임시정부는 왜 붕괴했는가 / 반병률
좌우합작정부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 김기승

145 좌담회
3·1운동 100주년 특별좌담회 – 3·1운동과 한국인의 삶 / 김정인, 도면회, 이정은, 이태훈

199 북한의 이해
북한 역사상 제1대 사건, 1956년 8월전원회의 / 조수룡
북한의 시장, 변화의 중심에 서다 / 정은미
잊혀진 아이들을 기억하기: 동유럽으로 간 북한의 전쟁 고아들 / 윤석준

237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론이 등장하고 부각된 이유 / 김용기
효창원(孝昌園), 아주 오래 지속된 공간수난사의 이력 / 이순우

277 인물로 보는 역사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부일협력의 거두 김길창 목사 / 김승태

[독립운동가열전] 백산 안희제의 민족운동 / 김성민
[독립운동가열전] 조국의 광복을 노래한 작곡가 먼구름 한유한 / 강태구

331 사실 체크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했을까? / 김준혁

345 내일을 여는 책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류동민

355 예인열전

단원 김홍도 작품세계, 단원 김홍도, 살아서 신필,
죽어서는 신선, 고전관학파 회화세계의 완성자 4 / 최열

385 사료의 재발견

『평양지(平壤誌)』에 구현된 평양 / 이은주

389 역사와 공간
조선 수운(水運) 물류의 허브(Hub) -조선 전기 충주목을 찾아서 / 김창회, 신동훈

415 서평
‘근대’영화라는 물음과 답 – 이효인, 정종화, 한상언,
『한국근대영화사 – 1892년에서 1945년까지』(돌베개, 2019) / 강성률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동북아재단서 국제심포지엄…”공동 조사·발굴·감식 이뤄져야”

1106-3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8.1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실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대규모 학술 행사가 6일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는 근대사 연구자와 유골 송환을 위해 노력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가했다.

재단에 따르면 해외에서 사망한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은 약 2만2천명에 달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정부를 통해 들어온 유골은 2천여 위에 불과하다.

강제동원으로 한국을 떠났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외국에 남은 노동자 유골 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 4월 한국에 제공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일본 전역에 산재한 시설 339곳이 조선인 유골 2천798위를 보관 중이지만, 신원이 명확하게 확인된 유골은 167위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은 2004년 한일 정상이 합의해 2008년부터 2년간 423위가 조국으로 돌아와 국립 망향의동산에 안치됐으나, 이후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민화협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해 8월 조선인 유골 송환을 위한 남북일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북 민화협은 지난 3∼4일 금강산에서 만나 유골 송환 공동추진위원회를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추진위원회로 확대하는 안을 논의하고,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1106-4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일본측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2018.11.6

심포지엄에서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이 인권과 존엄의 문제이자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과제이며, 남·북·일 정부와 민간단체가 힘을 합쳐 풀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 특히 강조됐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인 유골의 행방에 대한 조사와 봉환 책무를 방기한 것은 비인도적 처사”라며 “유골 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아직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원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남 소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유골을 봉환하지 못해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에 대해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이 적지 않고, 여러 유골이 합해진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이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남북 정부와 남북 민화협,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위원회가 단일 창구를 이뤄 일본 정부와 교섭하고, 사망자 명부와 유골 실태 자료는 남·북·일이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해외 유골 조사와 봉환에 남과 북이 참여하도록 일본 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골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에 의해 보장되는 인권과 관련된다”며 “같은 일본인이라며 동원했다가 패전으로 방치하는 이율배반적 권리 침해 상태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골 문제를 다루면서 일관해야 할 원칙은 사망자에 대한 존중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은 그들의 죽음을 성찰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 활동가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씨는 동아시아 국가와 미국 정상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전쟁 피해자 유골에 대한 공동 조사와 발굴, 감식을 추진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동북아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유골 문제는 해결이 더디고 어렵겠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11-06>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유골송환은 존엄 문제…남북일 협력 필요”

화, 2018/11/06- 15:21
16
0

대전단체 및 졸업생 등 총장후보자 토론회 앞서 기자회견… “3.8민주의거 정신 훼손 말라”

1107-10

4.19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에 맞춰,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과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대전충남4월혁명동지회’ 등은 7일 오후 대전 서구 배재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배재대학교는 하루 빨리 이승만 동상을 자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우리 대전지역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인 ‘3.8 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며 “이는 우리 지역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하여 정면으로 맞서 싸운 4.19 혁명의 선봉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자유당독재와 부정부패에 저항했던 대전지역 학생시위다. 3월 8일 대전고학생 1000여 명과 10일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 등 총 16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대전지역 대표적인 민주의거다.

그동안 대전시에서는 3.8 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지정 위해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 대전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

그럼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것은 대전시민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4.19 혁명에 의해 독재자라는 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자 일부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대학교로서는 유일하게 배재대학교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다”며 “심지어 두 번이나 철거되었던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웠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배재대는 즉각 자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승만 동상 철거는 대학 구성원은 물론, 대전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것이 독재정권에 의롭게 맞서 싸웠던 3.8 민주의거의 대전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도록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규탄발언에 나선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은 “이승만은 친일파를 앞세워 부정부패를 저지르다 온 국민의 저항으로 쫒겨 난 ‘독재자’다. 4.19혁명으로 그는 이미 역사적 단죄를 받았다”며 “배재대는 더 이상 대전지역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을 욕보이는 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 즉각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라”고 밝혔다.

또한 김영진 독립유공자유족회 대전지회 간사는 “이승만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는 물론, 자신과 생각이 다를 것이라는 판단 하나로 보도연맹원 등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그 어떤 법적절차도 없이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간사는 “이런자의 동상이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에 세워둔다는 것은 배재대 학생과 졸업생은 물론, 대전시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배재대의 자진철거를 촉구했다.

배재대 졸업생도 규탄에 나섰다. 2001년 배재대를 졸업한 김인재씨는 “독재자의 동상을 세워놓고 대체 학생들에게 무엇을 배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의 독재를 본받으라는 것인지, 그의 반헌법적 범죄행위를 존경하라는 것인지, 대체 그 의도를 모르겠다”며 “배재대학교는 대전시민과 학생, 졸업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진리의 동산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라”고 말했다.

한편, 배재대학교는 이날 오후 새로운 총장 선출을 위해 후보자 6명이 참여,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총장후보자 초청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2018-11-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여전히 이승만 동상 남아 있는 배재대… “자진 철거해야”

수, 2018/11/07- 18:37
44
0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 “공동대리인단 꾸려 내년 3차 소송 진행 예정”

1107-24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10월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슬찬 기자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을 확정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피해자들이 일본에 첫 소송을 제기한 건 1995년, 한국에 첫 소송을 제기한 건 2005년이다. 그때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났다. 시민단체들은 “이 재판의 싸움엔 긴 역사가 있다”고 강조하며, 이 재판 결과로 피해자들이 겪어온 일생의 고통이 해소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보도하며 ‘배상금’만 부각하는 일부 언론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1억’을 강조하며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에게 소송을 제안하는 ‘소송 브로커’가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주최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소송 변호단 및 한·일 사무국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107-25

▲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10월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날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강제징용 판결 의미를 왜곡하는 일부 인사들의 발언, 언론 보도의 행태를 지적하며 “함부로 말씀하시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공동대표는 30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도와왔다. 그는 “이 소송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제가 그 현장에 있어 잘 안다. 그런데 승소 판결 뒤 언론에 나오는 말들이 모두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했단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수십 년간 소송을 진행했는지 아픔, 슬픔 등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또, 이 공동대표는 20년간 진행해 온 소송을 두고, ‘해당 재판 결과로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처럼,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에서 일한 모든 사람들이 배상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일각의 주장을 비판했다.

이날 그는 일제강점기 신일철주금에서 강제 노역을 한 피해자들의 이름이 담긴 두터운 파일 13개를 보여주었다. 지난 20년간 소송을 진행하며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에서 만난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료였다. 이 대표가 한 명, 한 명 만난 피해자들은 총 200명에 달한다.

1107-26

▲ 일제강점기 신일철주금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파일ⓒ민중의소리

공동대리인단이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소송 이어간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소송을 지원하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에는 대법원 판결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온 변호인단과 단체들은 향후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보장할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우선, 이들은 전국을 다니며 올해 안에 피해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알리고,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지원할 계획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에서 조사한 피해자 실태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지역별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 소송에 대한 의사를 확인해, 소송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향후 소송은 변호사 개인이나 단독 법무법인이 아니라 ‘공동 대리인단’을 꾸려 진행한다. 앞으로 진행될 소송은 2005년 1차 소송, 2012년 2차 소송에 이어 ‘3차 소송’으로 명명된다. 3차 소송 소장 접수는 내년 4월 이전에 이루어질 계획이다.

임 변호사는 “지난주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 브로커’들이 1억 원이라는 점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며 ‘가족 중에 강제징용 피해자가 있다면 소송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적절하지 않은 소송 형태로, 피해자들을 또다시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며 “충분한 정보 제공, 공동대리인단 구성을 통해 안정적으로 피해자의 법에 대한 접근권을 실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1107-27

▲ 7일,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주최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소송 변호단 및 한·일 사무국 기자간담회’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민중의소리

지원단체-대리인단, 가까운 시일 내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 예정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 단체와 변호인단은 가까운 시일 내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해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야노 히데키 사무차장은 신일철주금이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업행동 규범’ 중 ‘규칙을 준수하고 높은 윤리관을 갖고 행동하겠다’(제1항목),‘각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각종 국제 규범·문화·관습 등을 존중하며 사업을 하겠다’(제8항목)는 부분을 언급했다. 그는 “이런 행동 규범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일반적 상식에서 봤을 때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시현 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노예와 같이 생활하며 몸이 망가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들에겐 육체적 손해, 정신적 피해가 있다”며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 중 배상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죄, 책임 인정 등에 대한 부분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가 아닌 특정 기업에 책임을 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신일철주금을 포함한 다른 광역 기업들이 어떻게 과거사 문제와 대면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다할 것인지 이제서야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8-11-0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의 수십 년 고통보다 ‘배상금 1억’에 집중한 사람들

※관련방송

☞KBS: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소송 브로커 우려…“정식 대리인단 구성할 것”


☞YTN: “강제 징용 피해자 모집…추가 소송 예정”


※관련기사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소송, 한일 공동 대리인단 구성한다

수, 2018/11/07- 21:56
92
0

다운로드[보도자료]

제12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언론부문 원희복 경향신문 출판국 부국장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친일인명사전』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2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4 사회·언론 부문 5 등 19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10월 12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 소장을, 언론부문에는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를 제12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 김동명 국민대 교수,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1108-20

▲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

학술부문 수상자인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199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참여해온 활동가이자 2004년부터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과거사 청산에 참여한 연구자이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미결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해산된 뒤에는,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산하 인권평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전모를 밝히는 지난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수상저서인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1백만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의 실태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노작이다. 이 책은 민간인학살의 양상을 유형화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화해위원회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피해상황도 정리해 담았다. 신기철 소장은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외에도 국가폭력과 전쟁범죄를 줄기차게 추적하여 무려 7권에 이르는 역저를 내놓았다. 심사가 시작될 무렵 출간된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는 비록 심사과정에서는 거론된 바 없지만, 금정굴 학살을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사건의 전개와 은폐과정, 기억하기와 해법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 모든 성과들이 저자가 말하듯 ‘죽은 자들을 위한 산 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거둔 놀라운 결실들이다.

1108-10

▲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

언론부문 수상자인 원희복 경향신문 출판부국장은, 오랜 기간 경향신문에 재직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과거사 청산을 위해 헌신해온 중진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독특하게도 역사 전문 기자를 자임해왔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뭇 기자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즐비하건만 역사 그중에서도 과거사 분야와 시민운동이 그의 주 관심사다. 그는 역사와 진실에 대한 망각이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이 원희복 기자가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을 추적 조명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인물탐구와 역사르포로 대별되는데, 인물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고 역사를 조명하여 인물을 드러내는 형태로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이루어져 왔다. 2014년부터 〈주간경향〉에 연재하고 있는 ‘원희복의 인물탐구’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역사정의 민주화 평화통일 등 시대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 데 비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한·중 항일혁명가 부부 김찬·도개손 평전』은 아직 그늘에 가려져 있는 역사의 사각지대를 추적 복원하고 있다.

2015년 주간경향에 연재한 ‘광복 70년 역사르포’는 서대문형무소에서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현장 40여 곳을 발품을 팔아 답사하고 사료를 발굴하여 재구성한 탐사보도이다. 이 기획은 해방에서 4·16참사에 이르는 70년간에 일어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출간한 『촛불민중혁명사』는 촛불항쟁의 연원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그 역사적 성격을 정리 분석한 주목해야 할 역작이다. 특히 항쟁 발생의 주원인으로 박근혜 정권의 무리한 역사전쟁 도발을 꼽고 있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시상식은 11월 9일(금) 오후 7시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제12회 임종국상 시상식
때 : 2017년 11월 9일(금) 오후 7시
곳 :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문의 :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 / www.minjok.or.kr


※수상자 약력

신기철

주요경력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남
1983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입학
1985년 인천에서 노동운동
1989년 영등포 산업선교회 노동자학교 교사
1990년 서울남부금속 노동조합
1995년 ~ 1998년 공단서점 대표
1998년 ~ 2003년 고양시민회 사무국장
2004년 1월~12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전문위원)
2006년 4월 ~ 2010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별정직 사무관)
2013년 5월 ~ 2018년 현재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저서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 인권평화연구소, 2018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인권평화연구소, 2017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인권평화연구소, 2016
《멈춘시간 1950》, 인권평화연구소, 2016
《전쟁범죄》, 인권평화연구소, 2015
《국민은 적이 아니다》, 헤르츠나인, 2014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 자리, 2011

원희복

주요경력
1990년∼현 : 경향신문 기자-차장-부장(전국부장, 편집장)-선임기자/부국장
1999년∼현 : 민족일보진상규명위원회 홍보위원장-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
2006년 : 청와대 국가안전보장자문회의(NSC) 자문위원
2006년 : 민주언론시민상 본상 수상(민족일보 사건 명예회복)
2012년 : 대통령 표창(재난보도 공헌)
2012년 :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2018년 ~ 현 :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자문위원
2018년 ~ 현 :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
2018년 ~ 현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족화해〉 편집인

저서
《촛불민중혁명사》, 말, 2018
《르포히스토리아-서대문형무소에서 팽목항까지》, 한울아카데미, 2016
《사랑할 때와 죽을 때-한·중 항일혁명가부부 김찬·도개손 평전》, 공명, 2015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994

※역대수상자 1108-20

목, 2018/11/08- 11:44
18
0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 “우발적 광기가 아닌 이승만의 조직적 대량학살”

1109-1

▲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인권평화연구소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있는 고봉로에서 가장 높은 곳인 개미고개엔 야트막한 황룡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주민들이 자주 오르는 산책 코스다. 험하지 않은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깊이가 18m가량 되는 수직굴이 나온다. 이곳은 일제시대 금을 캐기 위해 만들어진 금광이지만 지금은 폐광이 된 곳이다. 원래 깊이는 50m가량이었지만 무너지면서 얕아졌다. 이곳을 사람들은 황금을 뜻하는 금(金)과 우물을 뜻하는 정(井)을 써서 ‘금정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곳 ‘금정굴’에선 지난 1995년 9월 집단으로 파묻힌 유골이 다리뼈와 머리뼈 등이 마구 뒤엉킨 모습으로 발굴됐다. 유골 주변에선 시체들을 묶은 통신선과 탄피도 쏟아져 나왔다. 발굴된 유해는 153구였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민간인들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후퇴했던 이승만 정권이 그해 9월 서울과 고양 일대를 수복했다. 국민을 버린 채 자신만 피난에 나섰던 이승만 정권은 경찰과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인민군부역자를 처단하겠다면서 민간인들을 부역자로 몰아 재판도 없이 학살했다. 그 과정에서 고양 일대의 수많은 민간인, 나이 어린 중학생은 물론, 항일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부역자 혹은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뒤 금정굴에 암매장됐다. 유가족들은 자신들도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학살의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왔다. 그러다 용기를 내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45년간 잠들어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비롯된 
우발적 광기가 아니라 
이승만 독재 세력 공범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대량학살”

집단 학살의 현장이 드러난 뒤에도 유족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투쟁은 계속됐다. 모두가 외면하고, 모두가 침묵하며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묵묵히 싸워온 이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온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고양 지역의 금정굴 사건을 접한 이후 금정굴 사건 진상규명과 나아가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해 온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신기철 소장이다. 신 소장은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일했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마친 지금도 금정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금정굴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고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의 시간을 기록한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를 출간했다. 그는 그동안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멈춘 시간 1950’, ‘전쟁범죄’, 국민은 적이 아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한다’,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을 출간하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진실을 다뤘다. 한국전쟁 전후로 학살당한 민간인 1만4천343명의 명단을 수록한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시상하는 제12회 임종국상 학술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 소장은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에서 금정굴 학살에 대해 “전쟁 상황에서 비롯된 우발적 광기가 아니라 이승만 독재 세력 공범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대량학살”이라고 강조했다.

1109-2

▲ 1995년 10월 금정굴 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들ⓒ인권평화연구소

“그동안 좌우 갈등이라고 
정리해온 개념 역시 국가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거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확인했다”

이 책 1부 학살에선 해방과 식민 과거 청산의 실패, 분단과 독재 체제의 고착, 전쟁 그리고 금정굴 학살을 통해 고양지역에서 살아가던 민중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개하고 있다. 1950년 고양경찰서가 수복되고 치안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이 연행됐다. 끌려간 사람 대부분은 부역 의심을 받는 사람들의 가족이었다. 이후 20일 동안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 의용경찰대, 태극단원 등 60여 명이 번갈아 가며 학살을 저질렀다. 고양 금정굴 사건의 마지막 날인 10월 25일 20명이 학살당하는 현장에는 고양경찰서장까지 직접 가담했다. 금정굴은 고양경찰서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에 위치에 있었으므로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가장 빠른 길인 일산시장 관통로를 지나갔는데,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많아지자 그다음부터는 목격자가 적은 철길로 우회했다. 나중에는 트럭을 이용하여 금정굴 현장으로 이송하기도 했다. 총살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는 경찰관은 이무영 서장을 비롯해 12명이며, 의용경찰대원은 이진 등 26명, 태극단은 단장 이장복 등 20여 명이었다. 학살당한 이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국가 기관의 개입과 활동은 이 학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가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진실을 은폐했다. 학살이 일어난 1950년에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제기돼 관련한 재판이 있었다. 의용경찰대원 25명, 시국대책위원 2명, 경찰관 여러 명이 조사를 받았고 11월8일에는 금정굴 현장검증까지 이루어졌다. 이중 25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11월 20일 8명에 대해서만 공판청구서를 작성하고 나머지 17명을 석방했다. 이들 8명에 대한 재판은 12월 22일 열렸다. 재판 결과 사형 2명, 징역 15년 2명, 징역 10년 1명, 형 면제 3명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금정굴 학살은 은폐되고 전쟁범죄자였던 이승만 정부는 법의 수호자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1109-3

▲ 고양 일산서구 금정굴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소장ⓒ권종술 기자

이런 과정은 “그동안 좌우 갈등이라고 정리해온 개념 역시 국가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거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게 하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 기록을 통해 그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금정굴 학살의 진실, 즉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이를 저질렀고, 왜곡, 은폐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적으로 취급되었던 항일운동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민주주의자,
민중혁명가에 대한 억압의 시대도
절반은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남은 절반은 민중 스스로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때 완성될 것이다.
거짓의 시대를 끝내자.”

2부 진실에선 무려 43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진실 규명 활동과 유해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삭살 사실을 부인하는 국가와 지역 사회의 거짓 그리고 이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과정을 소개했으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진실규명 활동과 중단, 그리고 후속조치 등 남은 과제를 위한 현재의 투쟁을 정리해 담고 있다. 금정굴 사건에 대한 은폐 시도와 학살에 가담한 태극단 활동에 대한 미화 조작은 전두환의 집권 이후 강화됐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태극단의 활동이 반공 교재의 소재가 되어 경기도 내 각 학생들에게 보급됐고, 태극단원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1983년 ‘태극단 투쟁사’를 발간했다. 1984년에는 국방부 영화제작소에서 ‘태극단’ 활동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94년 전쟁기념관 2층에는 수복 전후 태극단원들이 활동한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각종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금정굴 학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사업에 맞서 아직도 “학살이 아닌 처형”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등 학살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학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1109-4

▲ 고양지역 보훈단체 회원들은 지난 8월 고양시의회 의원 사무실 복도에서 ‘고양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였다. 보훈단체의 반대에도 8월31일 고양시 의회 본회의에선 조례안이 시 의원 33명 가운데 찬성 24명, 반대 8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조례안이 만들어진지 8년 만이었다.ⓒ금정굴인권평화재단

신 소장은 말한다. “금정굴 사건은 부역혐의 사건이 개인들 사이의 감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체계적인 공격 때문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금정굴 사건의 진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좌우 대립, 또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대립의 진짜 원인은 우리 사회 안의 거짓, 즉 국가범죄의 진실을 숨기는 것에 있었다.”

이 책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산 자들의 활동 기록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왜 자기 국민들을 학살했을까? 부모라는 이유로, 형이나 동생이라는 이유로 죽여야 했을까?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여야 했을까? 이 ‘평범한 악(evil)’을 숨겨 온 대한민국은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찾아 떠난 28년의 여정은 우리 사회에 던져진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신 소장은 진실을 찾기 위해 떠났던 여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적으로 취급되었던 항일운동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민주주의자, 민중혁명가에 대한 억압의 시대도 절반은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남은 절반은 민중 스스로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때 완성될 것이다. 거짓의 시대를 끝내자.”

<2018-11-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새책]“대한민국은 왜 자기 국민들을 학살했을까?”

※ 관련기사

☞경향신문: 올해 ‘임종국상’ 수상자에 원희복·신기철씨

☞통일뉴스: 9일 제12회 임종국상 시상식…신기철.원희복 수상

☞연합뉴스: 제12회 임종국상 수상자에 신기철·원희복씨

☞프레시안: 제12회 임종국상에 신기철 소장·원희복 기자

금, 2018/11/09- 16:29
24
0

집회·토론회로 한국 대법원판결 알리기 주력…韓 시민단체와 연대

1111-10

▲ 일본 시민단체들, ‘강제동원문제 해결’위해 공동행동 결성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들이 모여 만든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1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스페이스 단포포’에서 결성집회를 열고 있다. 2018.11.11 [email protected]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과거청산의 기회로 삼자며 연합 단체를 발족했다.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 보상입법을 위한 일한공동행동 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1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스페이스 단포포’에서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을 발족하는 집회를 열었다.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단체는 이외에도 나가사키(長崎)·히로시마(廣島)·나고야(名古屋) 미쓰비시(三菱) 강제동원소송지원 3단체, 일본제철 전(前)징용공 피해를 지원하는 모임,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포럼 평화·인권·환경,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연결하는 모임 등이다.

공동행동은 지난 8월 한국 시민단체들이 만든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과 연대해 강제징용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1111-11

▲ ‘징용 판결’ 한일대립 고조 (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구체적으로 공동행동은 ▲대법원판결 내용과 의미를 알리고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집회 개최 ▲기업(신일철주금)에 대한 대법원판결 수용과 배상 요구 ▲토론회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한 대법원판결 지지 등의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공동행동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의 호소를 인정하고 신일철주금에 배상을 명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냈다”며 “1965년 이후 기다려온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 회복 기회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강제3원, 강제노동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꾀할 때”라며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 단체들이 연대하기 위해 공동행동을 결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행동의 제안자 중 한 명인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씨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남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끈기 있게 운동을 전개하겠다”며 “이를 통해 한일 관계의 재정립을 꾀하는 한편 과거청산에 기초한 북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1111-12

▲ 일본 시민단체들, ‘강제동원문제 해결’위해 공동행동 결성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들이 모여 만든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1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스페이스 단포포’에서 결성집회를 열고 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2018-11-11> 연합뉴스

☞기사원문: 日 시민단체, 강제동원문제 해결 위해 뭉쳤다…”지금이 기회”

※관련기사

☞한겨레: 한-일 시민단체, ‘강제징용 문제 진정 해결’ 공동행동

☞KBS: 日 시민단체, 강제동원문제 해결 위해 뭉쳤다…“지금이 기회”

일, 2018/11/11- 20:04
53
0

//

(아래 글은 8순이 다 되신 서울동부지부 이기자 선생께서,

민문연 집행부의 그동안 20년 가까이 회원들 몰래 2중 정관(신고용 정관과 운영정관)을 만들어 “(이사 5인과 직원을 포함하여) 회원 10명”으로 총회와 임시총회를 통해 연구소 주요의사결정을 해온 어처구니없고 기만적인 행각에 대해 지난 10월 12일에 올린 비판글인데

이우식이라는 정체를 알수 없는 자의 허접한 글들에 의해 계속 밀려나며 회원님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매  전국의 1만3천여 회원 여러분들의 주목을 호소하며 다시 올립니다.

지난 3월 24일 전국의 회원을 모아 숙대에서 정기총회를 열기 전인 3월 8일 이미 소위 “회원 10명”이 모여서 정기총회를 열었으며 (1년에 정기총회를 두번 열어온 민문연) 연구소 집행부는 이를 교육청에 신고했으나,

정작 3월 24일 전국에서 수백명을 모아 연 ‘진짜’ 정기총회는 교육청에 신고도 안 했습니다.

따라서 전국 각지에서 총회를 위해 올라온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날 참석해서 결정한 사안들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이 총회 공지를 받고 참석한 총회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가짜’ 총회였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시민단체가 있습니까?  이 사안을 전국 각 지부, 회원님들께 전파해 주십시오.)

⟪민문연 회원의 권리는 어디로 사라졌나?》

●민문연 회원은 단 10명?

 

우리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대강 1만3천여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은 단 10명이라고 말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녀. 정신 나갔나봐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신 나간자의 말이 아니고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등록된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민문연의 총회회의록에서 놀랍게도 사실로 들어났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회의록.

회의일시: 2018년 3월 8일

회의장소: 민족문제연구소 3층

회원총수: 10명(함, 윤, 임. 조. 신. 김, 박, 박, 방, 이)

임원총수 : 5명 (함, 윤,………)

출석회원 : 9명( 함 . 윤. 임……….)

정관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법정수에 달하는 회원이 출석. 본 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밝힌 후 개회를 선언하고….라고 기록.

 

●민족문제연구소 임시총회회의록

회의일시: 2018년 4월 24일

회원총수: 10명(함, 윤, 임…..)

임원총수: 5명(함, 윤. 임 ….. )

출석회원: 10명

논의사항 : 감사선임.(최ㅇㅇ 감사)

법정수에 달해 본 임시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

 

회원 총수가 10명이고 적법하다고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못 들은 말이겠지 정신 나간 소리이길 바랐던 두려움이 정확한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민문연의 1만3천명의 회원은 어디로 가고 단지 10명만 회원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늘 회원이라고 말해오던 1만 3천여 회원, 우리는 무엇입니까?

회원이 아니라면 비회원? 후원회원? 유령? 그런데 유령들이 회비를 내다니 돈 나오는 “자동출금기’ 란 말 인가요? ㅇ이사님의 말씀은 나머지회회원은 모두 후원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비회원이나 후원회원도 다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않습니다. 후원회원이란 권리와 의무는 가지지 않고 다만 그 뜻에 찬동하여 후원금을 내는 회원을 말합니다. 권리가 없으니 총회에 참석해 주장이나 의견을 말할 수도 없고 어떤 요구나 이의도 제기할 수 없으며 선거권, 피선거권도 없으니 지부장, 운영위원장을 선거도 못하고,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회비를 내고 싶으면 내고 꼭 내야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관에는 후원회원이란 말이 없습니다.

 

1만3천여명이 비회원, 후원회원이라면 회비를 꼭 내야하는 의무가 없어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만일 1만3천비회원(후원회원)이 회비를 안낸다면 민문연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30여명의 상근자 급여를 어떻게 지불할 것이며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비용, 운영비는 어떻게 쓸 수 있겠습니까?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 당당한 회원 10명이 다달이 1억여원을 내게해서 상근자 급여를 주고 경비를 쓰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빌딩 매입 시 빚진 22억도 회원이 갚아주어야 한다고 했으니(3.24.총회서 임소장) 그 회원10명이 갚아주시겠습까?

 

회원 10명이 불가능하다구요?

당연히 벅차서 불가능 하겠죠?

 

그걸 몰라서 회원 10명으로 축소요술을 부렸나요? 지금까지 민문연을 든든히 지켜온 주인을 밀쳐내고서 권리는 그 10명 회원이 독점하고 “돈내는 의무는 1만3천 비회원?(후원회원?)이 져라“ 이런 염치없는 말을 할려구요?

아니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네요

회원총수가 해가 다르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1997년엔 106명.

1999년도에는 100명이었다가

2003년 3월15일 총회 회의록에는 10명

2003년11월 임시총회:20명.

2018년 3월 8일 10명 정기총회

회원총수가 이렇게 정신없게 늘어났다 줄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정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믿었던 민문연이 이러하다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민문연을 지탱시키는 근본 뿌리

만문연이 운영되는 근본 힘은 무엇입니까? 돈 아닌가요?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민문연을 지탱시켜 왔습니다 든든하게 민문연을 떠받쳐 온 주인이요 근본 이었습니다 대체 왜 이 주인을 의무도 권리도 없는 비회원(후원회원)으로 강등시켰나요? 단 10명만 남겨두고.

민주주의 이 나라에서 가장 숭고한 뜻과 높은 가치를 자랑했던 민문연이 가장 비 민주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숨기고 기망해도 숭고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회비는 믿음이고 정성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매국을 청산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뜻이 숭고하고 정의로와 어느 단체보다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창립 때부터, 10년 20년을 꾸준히 기쁜 마음으로 회비를 내어왔고 역사박물관 건립 기금도 내 형편으로는 벅찬 금액이라 월부로 나누어 내면서도 가슴 뿌듯하고 기뻣습니다.

돈은 많다고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곧 정성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 벅차게 돈을 냈을 지라도 마냥 즐거운 것은 그만큼 만문연이 자랑스러웠고 정의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보람과 긍지가 배반과 배신으로 돌아와 아무 권리도 없는 후원회원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십 수년의 열정이 회원권리 박탈로 돌아올 줄이야.

 

●회원의 권리

고작 회비 1〜2만원 내고 무슨 권리를 얘기 하느냐고? 회원의 권리 의무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합니다 마치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나 적게 내는 사람이나 평등하게 투표권이 하나이듯이.

 

우리가 성의껏 회비를 내는 것은 자랑스런 민문연이 잘 되기를 바라며 낸 것이지 권리만을 위해서 낸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도 몰래 회원의 권리가 전부 박탈당하고 후원회원이나 비회원으로 강등시키 버렸다면 어느 회원이 분노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입회할 때 분명히 회원입회서(가입서) 썼습니다. 이사장님 귀하께. 그동암 회비를 내었으니 이사회 인준을 받은 권리 의무를 함께 가지는 민문연의 당연한 회원이었음을 떳떳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적인 절차도. 공적인 동의도 받지않고 비밀리에 회원의 자격을 박탈한 일이 정당한 일인가? 오랫동안 회원들을 속인 일이 정의로운 일인가요

회원의 권리는 단순 개인의 권리보다 전체의 권리가 참으로 중요힌 것입니다. 그것은 민문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기 때문입니다.

민문연이 부정 부폐하지 않도록 감시 제어하는 동력인 것입니다. ‘제어 받지 않는 권력은 부폐하기 쉽다’ 는 말을 상기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문연을 지탱시켜온 근본이요 주인이며 정당하도록 지킬 수 있는 최후 보루를 깡그리 없애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심히 두렵습니다. 회원이 이 사실을 일고 분노해 회비을 안내게 된다면 민문연이 지탱 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무서운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예상 못할 만큼 아둔한 것인가요 아니면 바보같은 회원들이니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민문연의 회원이 권리가 하나도 없는 후원회원이면 민문연음 주인 10명의 것이라 우리는 법적으로는 아무말도 못하는 외인이고 55억 빌당도 10명 이사님들이 주인이라 빌딩을 사고 팔아도 법적으로 권리 전무함으로 아무말도 못하는 유령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우민화 시켜 아무말도 못하게 해놓고 마음대로 끌고가는 경우와 똑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맑고 투명해야 할 단체.

정의로운 단체라면 그 경영도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주인인 회원의 동의도 없이 정당한 민주적 절차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자격을 박탈하는 기망행위가 정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회원을 헌 신짝처럼 취급하는데도 계속 믿음을 가지고 좋아라 할수 있을까요?

 

●이중정관/ 한 달에 두 번의 정기총회

 

지난 2018년 3월24일 정기총회는 미리 모든 회원에게 공고 되었고 숙대강당에서 전국에서 2백여명이 참석해 총회를 했다

당연히 공고도 했고 전국 각지서 200여명이 참석한 24일의 총회가, 적법하고 정당한 총회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지도관청에 총회회의록을 제출한 것은 3원 24일의 총회회의록이 아니고 3웡8일 9명이 모여한 회의록을 제출했다. 이건 사실과 배치되는 것이고 분명한 허위 사실을 보고한 허위보고요 확실항 범법행위다.

3월 8일 9명이 모여 명색이 정기총회라고 회의록까지 보고까지 해 놓고 16일 후에 또 정기총회를 연다고 공고를 하고 정기총회를 여는 것을 무슨 짓인가?. 한 달에 두 번의 정기총회라

 

이건 가짜 총회?! 회원을 속이는 면피성 가짜총회란 말인가?

 

그것도 모르고 총회에 참석하려고 지방에서도 기차로, 버스로 헐레벌떡 참석한 회원들을 이렇게 속여도 되는 것인가?

운영용 정관과 신고용 정관 두개의 정관을 두고 이리왔다 저리 갔다 이중 플레이를 하며 회원을 속여 온 것도 적법하고 정의로운 일입니까?

한나라에 두 개의 헌법이 있을 수 없듯이 정관도 하나여야 정상아닌가요 두 정관 어느것도 비정상입니다. 법적으로 신고도 하지않고 승인도 받지않은 운영정관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정관도 아니요 법젇으로 신고 했다는 신고용 정관도 총회의 인준도 받지 않은 것이 어떻게 정당한 정관인가요 불법이요 비정상적인 두개의 정관으로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을 어떻게 정의롭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회원의 분노

정성스레 회비내고 모든 행사에 충실히 참석하던 회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믿었던 그 문민연이 감쪽같이 우리의 권리를 박탈해 버리고 기망해도 계속 믿고 사랑하리라 생각하는가? 열성껏 회비내고

권리와 의무를 지는 당연한 민문연의 회원이라 생각했던 회원들은 권리는 하나도 없이 돈만 내라는 후원회원으로 밀어낸 처사에 말 할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

후원회원이라면 아무 권리도 없는데 지부장은 무었이고 운영위원도 유령 일뿐이다 권리도 없는 휴원회원을 제명처분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참으로 코메디 같은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이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대체 누가 왜 이렇게 했을까

혹 다른 단체도 그렇게들 하니까 따라했다고 하거나 쉽고 돈이 적게 들어서 그랬다고 말할 것인가?

비록 다른 모임에 그런 경우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결코 따라 해선 안된다 왜냐면 민문연은 어느 단체보다도 정의로운 단체니까. 편리하게 쉽게 하려고 불법을 따라 해서도 절대로 안 된다 국법을 어긴 매국을 바로 잡으려는 민문연이 법을 어겨서야 되겠는가 이건 단순한 기망 사건이 아니라 확실한 범법행위다 지금 민문연의 이런 상황을 임종국선생님께서 보신다면 잘 했다고 하실까 통탄해하시며 얼마나 괴로워 하실지 가슴이 아프다

이제 우리는 속임, 비논리, 비정상, 비민주로 범벅이 된 민문연.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 밝혀 규명하고 불법 기망을 걷어내고 맑고 정명한 민문연이 되도록 반드시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착실히 회비내고 정성으로 도왔던 바보스런 회원일지라도 이제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12일자

이기자(서울동부지부)

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일, 2018/11/11- 23:10
42
0

자유 게시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도록 萬人에게 허락된 공간입니다. 내가 올린 漢詩를 ‘허접한

글’이라고 폄하하고 나를 향해 ‘정체를 알 수 없는 者’라고 하셨는데요, 이 자유 게시판이 ‘만주벌판’님의 소유

입니까? 내가 올린 漢詩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 홈페이지의 자유 게시판을 담당하는 분이 진즉 조치를 취했을

게 아닙니까? 말씀을 삼가하시고 상대방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나도 앞으로는 이 홈페이지

의 성격에 맞는 작품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8/11/12- 08:15
18
0

1109-1
1109-2
1109-2-1
1109-3
1109-4
1109-5
1109-6
1109-7
1109-8
1109-9
1109-10
1109-11
1109-12
1109-13
1109-14
1109-14-1
1109-15
1109-17
1109-18
1109-16
1109-19
1109-21

1109-20

월, 2018/11/12- 15:18
38
0

직원 면담 요청 거부… 경비회사 직원이 입장 전달
변호인단 “비겁하다…신일철주금 한국 재산 압류 절차 밟겠다”

1112-3

▲ 신일철주금 항의방문하는 한일 시민단체·강제징용 피해자측 변호인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측 변호인이 12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민철 집행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2018.11.12 [email protected]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손해배상을 촉구하고자 일본 도쿄(東京)의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본사를 찾았지만 사실상 문전박대당했다.

재판의 원고측(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인 임재성·김세은 변호사는 이날 오전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했다.

이들은 이번 소송의 원고 중 이미 고인이 된 세 명의 영정 사진과 생존해 있지만 고령인 이춘식(94) 씨의 사진을 들고 신일철주금 본사 건물에 들어갔다.

강제징용 소송의 판결 결과를 받아들여 배상하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들고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 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은 자사 직원이 아닌 용역 경비회사 직원을 보내 입장을 설명했다.

1112-3-1

▲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질문 답하는 피해자측 변호인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지난달 한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았지만 사실상 문전박대당했다. 2018.11.12 [email protected]

경비회사 직원은 신일철주금 총무과의 지시로 밝히는 입장이라며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이(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상당히 유감이다. (한일간) 외교 교섭의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겠다”라고 준비해온 메모를 읽었다.

경비회사측은 요청서에 대해서는 “리셉션 데스크에 놓고가면 보관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신일철주금측에 전달할지 언급하지 않았다.

변호인 등은 재차 신일철주금측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요청서를 전달하지 못한 채 30분만에 건물을 나왔다.

임재성 변호사는 건물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돌아가신 (원고)세 분과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원고)를 대신해서 온 것이니 요구서라도 받아가라고 했지만 놓고가라고만 했다”며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큰 빌딩(본사 건물)을 만드는 데에는 원고 네 분의 젊은 날의 고생과 희생이 있었다”며 “최소한 이 사람들(원고들)의 목소리라면 내려와서 받아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1112-4

▲ 일본,한국·중국 강제징용 피해자 차별 배상 (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임 변호사는 “신일철주금이 (배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했다”며 “협상에도 응하지 않음에 따라 신일철주금의 한국내 재산 압류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측은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RN’의 주식을 압류할 방침이다. 신일철주금은 2007년 설립된 이 회사의 주식 30%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철주금은 지난달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하지만, 배상을 이행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112-5

▲ 일본 시민 활동가들,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유인물 배표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12일 오전 출근시간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 주변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신일철주금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2018.11.12 [email protected]

이 회사는 2012년 주주총회에서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법률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용할 방침을 밝혔지만, 정작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는 “일본 정부의 대응 상황 등에 입각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배상 불가’ 방침을 따를 뜻을 밝히고 있다.

이 회사의 2~3분기 매출은 2조9천34억엔(약 28조8천74억원), 순이익은 1천412억엔(약1조4천8억원)이나 된다.

일본 정부는 신일철주금 외에도 한국에서 비슷한 소송을 제기당한 자국 회사에 배상과 화해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이날 오전 출근시간대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신일철주금이 손해배상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이날 변호인 등의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과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유인물 배포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

1112-7

▲ 한국 변호인단의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에 몰린 한일 취재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지난달 한국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측 변호인들이 12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하기 앞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이날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는 한국과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 2018.11.12 [email protected]

<2018-11-12> 연합뉴스

☞기사원문: 영정들고 갔는데…징용피해자 변호인 ‘문전박대’한 신일철주금(종합)

※관련기사

☞경향신문: 징용피해자 변호인들 ‘문전박대’한 신일철주금

☞서울신문: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 도쿄 신일철주금서 문전박대

☞한국일보: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 도쿄 신일철주금서 문전박대

월, 2018/11/12- 16:54
53
0

일레븐달

월례회

어시장

수정횟집

그여패

해안희집도 이슴

ㅇㅗ마이고 경상횡재들에게 고함

오마이고경상

모교일

ㅁㅓㅁ춰버린 한반도의 진도

백두에서한라까지   오마이고경상도 함꾸메

화, 2018/11/13- 06:36
6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