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 평소 친일문제에 관심을 갔고 있었는데 마침 1995년 3·1절 무렵 경희대학교 부근 세탁소 2층에 위치한 연구소(당시 이름 반민족문제연구소)에 직접 방문하여 회원 가입을 하였습니다. 1995년이 한일협정 체결 30주년이 되는 해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재평가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연구소도 그때 ‘친일협정, 30년 동안의 굴욕’이라는 학술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할아버지께서 3·1운동 독립유공자라고 알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후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 : 할아버지 함자가 윤영주(1893~1988)입니다. 경상북도 의성 출신인데 3·1운동 당시 26세의 나이로 대구에 있는 동산 기독교성경학교에 재학중이었습니다. 3월 8일 계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대구 시위에 참석한 후 고향인 의성군 금성면 대리동으로 귀향했습니다. 대리동 기독교회 박낙현 목사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했어요. 그리고는 태극기 100여 장과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비밀리에 제작했습니다. 의성군 장날인 3월 18일, 장터에 모인 수천 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지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간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출옥 후 할아버지는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을 하셨는데 ‘불령선인’으로 찍혀 일경에게 항상 감시를 받았습니다. 1988년 96세의 연세로 부산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992년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감시받는 생활이 싫어 만주에 건너가 지내시다 해방 후 귀향했습니다. 의성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는데 좌익활동을 하셨습니다. 1949년 보도연맹으로 대한민국 군경이 보도연맹관련자들 학살할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부산으로 도망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의 학살의 공포를 한평생 트라우마로 안고 사셨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고 잠들었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깨어나 두려움에 떨기도 하셨습니다.
문 : 지난 9월 21일 대법원으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으셨는데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답 : 2001년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국장으로 있을 때 상문고 비리와 관련해 재단 퇴진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2001년 7월 교육청 앞에서 상문고와 관련해 민주 관선 이사 선정과 파견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경찰이 저를 비롯해 전교조 서울시지부장 김재석 용산고 교사(용산고)와 이을재 교사(한천중), 우삼동 교사(신정여상)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2004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2005년 광복절 때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택 교육감 시절이어서 복직이 안 되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두 번째 구속을 당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유로 그동안 복직 발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조희연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된 후, 복직 신청을 하여 서울 숭곡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한두 달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직권 취소로 말미암아 다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2016년 교육부를 상대로 한 임용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두 차례 승소했고 이번에 대법원에서의 확정 판결로 마침내 복직하게 된 것입니다.
문 : 17년 만에 복직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답 : 물론 기쁩니다. 서른 살 무렵인 1985년에 서울 고려대 사대부고 국어교사로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제가 환갑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정년이 1년 5개월쯤 남았습니다. 2015년에 잠깐 재직했던 숭곡중학교로 갈 것 같습니다. 비록 남은 기간이 아주 짧지만 비정상적이고 특권층만을 위한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문 : 전교조 가입은 언제 하셨고 어떤 부문에서 중점적으로 활동하셨습니까?
답 : 1989년 전교조 출범 때부터 활동한 창립멤버입니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교권부장, 조직부장, 부지부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습니다. 제가 전교조에 들어와서 주안점을 둔 것은 사학비리 척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비리재단은 대체로 일제시대 친일파와 닿아 있습니다. 김달하라고 아시죠. 북경에서 밀정짓을 하다가 다물단에 의해 처단된 사람 말입니다. 김달하는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 선생에게 총독부 경학원 부제학 자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김달하의 사위인 조 아무개(초대 교장을 겸함)와 친일교육자 김활란이 공동 설립자로 있었던 동구학원이 대표적인 세습비리사학입니다. 조 아무개의 아들이 현재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2008년 11월 동구여상(현재의 동구마케팅고)에서는 교육청 예산으로 200여 권의 도서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학교측이 국어·역사 교사들이 신청한 <친일파 99인>(연구소 기획) 등 3종의 근현대사 관련책에 대한 구입목록을 무단으로 제외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2014년에는 동구마케팅고 이사장과행정실장의 비리 관련 민원을 교육청에 제기한 교사를 파면하기도 했습니다.
전교조는 사학비리를 막기 위해 꾸준히 입법 청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2006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무산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는 사립학교법이 재단측에 유리하게 개악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자신이 박정희가 불법으로 탈취한 영남대 이사장으로 재직했었으니 가재는 게편이란 속담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문 : 2015년에 잠깐이나마 복직하셨는데 전교조 해직교사에게 특혜를 줬다는 등 종편과 보수언론으
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지 않으셨나요?
답 : 엄청난 인신공격을 받았지요. 종편과 보수언론에서는 제 과거 발언과 SNS에 올린 글까지 철저히 뒤져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민재판정을 만들어야”와 “세월호 범인 박근혜”입니다. 전자는 김정훈 전교조 전 위원장의 징역 1년 반에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사법부를 비판한 내용입니다. 후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박근혜의 잃어버린 7시간이 없었으면 세월호 최악의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음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TV조선, 채널A 등은 북한식 표현이니 하며 저를 친북 용공분자 혹은 파렴치한으로 몰았습니다. 이러한 종편과 보수언론의 여론몰이로 인해 교육부의 임용 취소 결정이 훨씬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의 이면에는 진보 진영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흠집 내려는 의도도 다분했습니다. 더구나 이 무렵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대통령 명예훼손 사실에 대해 저를 조사하였는데 그후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문 : 요새 이명박·박근혜 집권기의 적폐청산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교육계에서 시급히 청산
해야 할 적폐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시급한 현안은 불공정한 입시제도 개선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동안 교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더 심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입시사정관제도, 자사고·특목고 활성화 등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악화시킨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교육계 적폐를 바로 잡아 참다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현해야 합니다.
한편 박근혜 정권하에서 전교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의 합법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행정통보를 취소하면 바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해고당한 노조 전임자가 50여 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신속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겠습니다.
문 : 끝으로 연구소 회원들께 드릴 당부 말씀은?.
답 :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폐해는 일제 교육제도를 답습한 데서 옵니다. 사학 비리가 대표적이죠. 또 자사고다 특목고다 하여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학제가 시정되어야 하겠습니다. 회원들께서 우리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인간다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성원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창간해 현재까지 17년 동안 역사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잡지입니다. 2016년부터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가 함께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친일·독재 비호세력들이 어줍지 않게 국민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려는 이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관제 역사의 전파를 막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평화적 민주혁명이 세계 평화의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작년 겨울의 전국적인 촛불의 열기는 2017년에 들어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도 한반도를 주목하였고 드물게 한국 민주주의의 재탄생을 부러워하는 촛불혁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지난 몇 년간의 한국 정치의 암울했던 그림자를 생각하면 한결 숨통이 트일 것 같은 희망이 설레는 기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점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의 고공행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금년 여름을 전후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이러한 설레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어 얻는 듯 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도박은 언제라도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드 배치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표시했던 문재인 정부조차도 정권 수립 이후 증폭되고 있는 안보 위기 상황 속에서 사드 배치 반대라는 마지노선에서 한 발 물러난 듯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국제관계의 현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참 명제’는 20세기의 역사가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으며 그러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우리 민족과 국가의 장래뿐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의 파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 겨울 한국의 기층 민중들의 함성에서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촛불의 에네르기와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혁명정신이 어떻게 하면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가을의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을 주는 요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나 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왜 지금 현시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관계의 현실이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면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그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 해법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의 도발은 도대체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과연 북한의 도발에서만 한반도 위기감 조성의 이유와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북한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현 상황에서의 한반도의 위기 상황의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을 것이며, 문제에 대한 해법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1953년부터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제법적으로도 준전시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후 65년이 흘러가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가 준전시지역으로 계속 남아있다는 현실은 사소한 문제점이 불거지더라도 바로 전시지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즉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북한에서도 전후 계속해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에 이러한 요구에 대한 고개를 가로젓고만 있다. 그리고 미국의 아태지역에서의 파트너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오히려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일본 자민당 아베 보수정권의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중국은 ‘대국굴기’의 표상으로 국제관계에서의 중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위해 유독에 한국에게만 압박을 가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인가?
바로 이지점에서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 국제관계의 미래가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지만, 절대로 전쟁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대전제로 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남북갈등을 긴장해소로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 한국의 촛불혁명이 보여준 민주주의와 평화의 정신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확대되어가는 시발점으로서의 한국의 역할과 행동을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호 <쟁점으로 보는 역사>에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김정인은 한국 근대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민족주의(=내셔널리즘)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근대 한국 민족주의 한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이경구는 정조에 대한 평가와 그 시대의 세도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방적인 칭송이나 비판, 주관적인 폄하나 무조건적인 찬미보다는 그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는 다양한 이해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근대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역사를 고찰하자는 제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에서는 모두 네 편의 글을 모아 보았다. 먼저 박홍서의 글은 2017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감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논하면서 약육강식의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현명한 중재자로서의 한국 정부의 역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대근은 한국 보수 세력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가고 있는 작금의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각각의 보수 정당별로 분석하면서 보수야말로 미래지향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주역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 정해구는 금년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선거의 결과와 그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정해구는 이 글에서 한국의 정치 지평이 지역주의 정치에서 세대정치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불가역적인 것으로 보이며 구태를 벗어난 새로운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또 서영표는 현재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필요한 바람직한 모습은 ‘불만-탈구-저항-연대’를 읽어낼 수 있는 상상력을 갖추기를 권고하고 있다.
이어서 <인물로 보는 역사>에서 먼저 김소남은 반독재민주화에 공헌했던 인물로서 생명협동운동을 주창했던 조한알 장일순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장일순의 생명운동이 한국 현재와 미래의 대안사회를 향한 주목할 만한 운동방향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정호훈은 조선시대 중종대의 학자 김정국에 주목하여 16세기 초 주자학 실천운동을 통해 조선의 규범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한 인물로 평가한다. 이어서 강성률은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에서 한국 근대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이경손과 전창근이라는 두 인물에 주목하고 있다. 같은 영화인이면서도 이경손이 일생동안 항일투쟁으로 일관했던 것에 비해 전창근은 도중에 전향하여 친일행각의 길을 걸어갔다는 역사적 사실과 해방 이후 이들의 행로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빛과 그림자는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체크>에서는 고대사로 눈을 돌려 세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신희권은 풍납토성의 발굴조사 과정을 통해 한성백제시대의 역사 되살리기와 더불어 삼국시대 초기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백승옥의 가야사에 대한 고찰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가야사 연구에 대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역사적 용어의 개념과 가야의 위치와 영역 등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연구를 망라하면서 잘 정리하고 있다. 이어서 박성현은 신라 왕국 월성 발굴과정의 의미와 그 성과에 대해 논하면서 역사의 공간을 복원하고 정비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제언을 행하고 있다.
<내일을 여는 책> 코너에서는 클래식의 재해석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서 중국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한국철학자인 유초하는 고전 ????맹자????에는 현실 개혁의 의지와 미래를 향한 제언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였다. 다시 한 번 고전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다.
이어서 <사료의 재발견>에서는 고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글을 각각 한편씩 실었다. 먼저 강진원은 광개토대왕비 연구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 온 신묘년조 기사에 대해서, 그 동안의 연구의 흐름과 논쟁점에 대해서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는 명언이 있지만, 근대의 제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의 질곡 속에서 역사가 어떻게 곡해되고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왔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록은 국민교육헌장 다시 읽기라는 글을 통해 맹목적 애국주의와 일제시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국민윤리강령’의 문제점 및 박정희 시대의 산물인 국민교육헌장의 확산과 폐기과정을 통해 맹목적 애국주의의 문제점에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
<예인 열전>에서는 18세기 전반기에 활약했던 문사 화가 능호관 이인상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매호 ????내일을 여는 역사????를 펼쳐 볼 때마다 맛볼 수 있는 최열의 <예인 열전>은 누구에게나 필독을 권하고 싶다. 이 번 호에서도 역시 이인상이라는 인물의 인생역정과 예술적 탐미의 세계는 파노라마적인 병풍처럼 3차원의 영상으로 다가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든다. <체험과 증언>에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지원하는 시민운동 평화나비 네트워크에 대한 글을 실었다. 김샘의 글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문제에 대해 대학동아리 네트워크에서 출발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전 시민적인,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부각시키면서 전쟁과 평화를 되새겨보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시각과 입장을 잘 보여준 글이라고 하겠다.
이어서 <예술과 현실의 소통>에서는 서유리의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이상호·전정호, 응답하라 1987>의 전시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은 1980년대의 민중미술의 흐름과 실천을 현재적인 시점에서 잘 농축한 글이라고 하겠다.
끝으로 <역사와 공간>에서는 공간으로서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정요근은 전라남도의 해제반도와 망운반도를 직접 걸어 다니며 공간으로서의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의 흔적을 입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정요근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연속적인 답사기는 늘 신선하고 재미있다. 김창회와 신동훈의 글은 조선 전기의 상주목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답사기행이다. 경상도의 이름의 유래의 한 공간이기도 한 상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전근대의 번영의 공간이 근대에 들어와 위축되어 간 역사적 흐름을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는 글이라고 여겨진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가 부침을 거듭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역사의 주역은 사람이며, 인간이 역사의 행로를 좌우한다는 것, 즉 역사는 인간들의 선택에 의해서 유지, 발전하기도 했고 쇠퇴하고 멸망하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의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흐름과 방향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것이 해당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지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7년 가을을 맞이하면서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국가의 모습이 우리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로 확산되기를, 그리고 한국에서의 평화로운 민주주의혁명이 세계의 평화를 이어지는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편집위원 서민교
목 차
1. 여는 글/서민교
2. 쟁점으로 보는 역사
-하나이되 여럿인 민족주의/김정인
-정조와 세도정치 이해를 위한 세 가지 고려/이경구
3. 지금 우리는?
-미중관계와 한반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박홍서
-보수는 어디로?/이대근
-19대 대통령선거 결과와 그 의미: 지역주의 정치에서 세대정치로/정해구
-2017년 한국의 진보정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서영표
4. 인물로 보는 역사
[반독재민주화열전] 조한알 장일순의 삶과 운동론/김소남
[조선의 사상가 열전] 김정국, 주자학의 규범으로 조선을 바꾸려 하다/정호훈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이경손과 전창근 -동지에서 상반된 길로/강성률
5. 사실 체크
-풍납토성과 한성백제의 역사/신희권
-가야의 개념, 그리고 그 위치와 영역/백승옥
-경주 월성 발굴의 의미와 성과/박성현
6. 내일을 여는 책
-『맹자』, 현실개혁의 의지와 미래개척의 희망을 담아/ 유초하
7. 사료의 재발견
-광개토왕비 연구의 어제와 오늘 -신묘년조 문제를 중심으로- / 강진원(정호섭->여호규->강진원)
-‘조국과 민족에 너를 바치라’ : 국민교육헌장 다시 읽기/ 이상록(황병주->이상록)
8. 예인열전
-이인상, 기이한 별품의 사기화가(士氣畵家) 1/최열
9. 체험과 증언
-평화나비, 당신과 손잡기까지/김샘
10. 예술과 현실의 소통
-이탈과 변이의 미술: 6월 항쟁 30주년 기념 <이상호·전정호, 응답하라 1987> 전시에 대하여/서유리
11. 역사와 공간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땅, 해제반도와 망운반도/정요근
‘팔달지구(八達之衢)’, 그 과거의 영광 -답사 기행: 조선 전기 상주목을 찾아서- /김창회·신동훈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 혁명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청산의 의무가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가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책임자 조사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광주학살은 돌발사건이 아니었다. 군은 제주 4·3사건,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다시 제암리 사건,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해방 이후 군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들이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역대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었다. 제주 4·3사건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니 광주학살의 진상 규명은 더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이어져야 한다. 군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본군 잔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독립군의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28일 언급한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립운동의 정점은 무장투쟁이다.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인 1920년에 이미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군’을 창설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17일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다. 광복군이 있었기에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국군의 창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잇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친일군인들이 장악한 군은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에서 1956년에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육군 제3사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한 1950년 10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적혀 있다. 북진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 국시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북진을 기념하는 날로서 국군의 날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게다가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사단장은 친일군인이던 정일권과 이종찬이었다. 제3사단은 백색테러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사단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제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친일파와 정치깡패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던 이승만정권다운 일이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립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로 삼아야 하며 그 일환으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령으로 정해지는 기념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가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국경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 부처 차원에서 기념하는 ‘각종 기념일’이다. 각종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국군의 날은 각종 기념일에 속한다. 그러니 대통령령만 고치면 국군의 날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쾌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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