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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2편 “국호를 정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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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100주년 특집] 2편 “국호를 정한 사람들”

익명 (미확인) | 금, 2019/03/15- 13:15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임정 100주년 특집]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2편 ‘국호를 정하다, 대한민국’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 대담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이기호 성우

[임정 100주년 특집] 2편 “국호를 정한 사람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해볼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허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 우리 헌법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헌법의 기초가 된 것이 1919년 4월 11일 독립운동 대표자 27명이 함께 만든 임시헌장인데요. 3.1운동 이후 상해에 모인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을까. 임시헌장에서 민주 공화제 선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이야기를 오늘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 큰 흐름을 쉽게 짚어주실 분.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지난해 광복절 특집 때 뵙고, 우리 방송에 오랜만에 초대했는데요. 그때 방 실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눈 게 반민특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민특위가 왜 실패했는지, 또 반민특위 좌초가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데 오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방학진> 글쎄요, 무덤에 있는 친일파들이 기뻐서 무덤 밖으로 나올 그런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거꾸로 독립운동가들은 지금 통곡하고 계시겠죠.

◇ 이동형> 반민특위의 와해, 실패,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다 입증된 거고, 무엇 때문에 와해됐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많이들 통탄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방학진> 실은 올해가 반민특위가 해체된 지 70년입니다. 49년에 해체됐기 때문에. 반민특위를 만든 곳은 제헌 국회였거든요. 쉽게 말하면, 지금 나경원 의원의 최고참 선배들이 만든 반민특위를 나경원 원내대표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죠.

◇ 이동형> 모든 국민들의 굉장히 큰 전폭적인 지지를 안고 특별법으로 탄생한 것이 반민특위인데, 그것을 지금 부정하는 이야기를 해서 논란이 앞으로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얘기로 다시 들어가 봅시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성격과 의미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이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3.1 운동 직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를 포함해서 여러 정부가 곳곳에 흩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결국은 조선반도에서 독립운동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망명해서 독립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데요. 여러 정부들이 상하이로, 또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인 배경이 있었을까요?

◆ 방학진> 그 당시 상해에는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교민들 자체가 몇 명이 되지 않는 도시였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이. 그렇지만 상해를 굳이 택한 이유는 일단 상해가 국제도시라는 측면이 하나 있고요. 그다음에 특히 여러 나라의 조계가 있는데, 프랑스 조계가, 특히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우호적인 측면이었다는 것도 있었고, 그런데 그 당시에 노령이라든지, 만주 쪽에도 독립운동 단체가 있어서 그쪽으로 기지를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도 있지만,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바로 넘어서면 일본 최강의 부대들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지리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가지 외교적 노선, 안정적인 논의, 이런 차원에서 상해가 선택된 것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거기서 다 모여서 독립운동가들이 앞으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그런 것을 논의한 거죠? 임시의정원.

◆ 방학진> 그렇습니다. 국회죠. 4월 10일이 되면, 임시의정원 100주년이라서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임시의정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아주 잘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 이동형> 여기서 국호와 연호, 또 국채, 임시헌장 채택, 여러 가지가 이루어졌는데, 1919년 4월 10일 밤 10시에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김 신부로 있는 한 주택에 국내외 각지에 있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는데, 그날의 상황을 재현해봤습니다.

◆ 성우>“지난달 3월 1일 국내에서 독립선언을 통해 우리는 독립국임을 천명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이 회의의 명칭을 임시의정원이라고 칭하면 좋겠습니다.” “조소앙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제청합니다.” “의장을 선출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식 의장 1인, 부의장 1인, 서기 2인을 선거하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할 것을 개의합니다.”

◇ 이동형> 조소앙, 신석우 선생의 목소리였는데, 저희가 재현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의장은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 서기에 이광수, 백남칠이 당선. 임시의정원을 설립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4월 11일이 됐습니다. 회의는 계속 이어집니다.

◆ 성우> “지금부터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의하도록 합니다.” “의제는 먼저 국호를 정하고, 정부의 관제, 공무원 선출, 헌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정할 것을 동의합니다.” “그러면 제가 국호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겠습니다. 대한 제국의 ‘대한’과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라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지난 경술년 대한 제국의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포기했습니다.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국민이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대한 제국이 사용하던 대한은 그대로 사용하되,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라는 의미를 담아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할 것을 찬성합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이동형>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과정을 들으셨는데요. 여기서도 조소앙, 신석우 선생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두 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방학진> 네, 지금 국호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보통 대한 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이게 순탄한 과정을 통해서 바뀐 것으로 알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히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대한’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있었거든요. 대표적인 분이 몽양 여운형 선생입니다. 쉽게 말하면, 대한 제국은 고종 황제가 만든 이름인데, 우리가 고종 황제, 반봉건을 표방하면서 민주공화국을 만든다는 마당에 황제가 만든 이름을 쓸 수 있겠느냐, 이런 의미로 대한을 거부하셨는데요.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냐면, 신석우나 이런 분은 앞의 대한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앞의 대한이라고 하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국의 나라에서 민국의 나라, 민의 나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표결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낙찰되었는데요. 말씀하신 신석우 선생님은 재밌는 이력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일보의 두 번째 사장님이십니다. 아시지만 조선일보는 최초의 대정 실업 친목회라고 하는 친일단체가 만들었고, 20년대에 신석우가 들어오면서 조선일보가 대단히 사회주의 신문이라고 할 정도의 좋은 논조를 가지고 있었다가 33년도까지 하시는데, 33년도에 조선일보 사장이 방응모가 되면서 조선일보는 우리가 아는 친일 신문으로 일관되게 가는데요. 그런 분이 신석우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고요.

◇ 이동형> 방응모 체제 전에.

◆ 방학진> 여기도 조소앙 선생님을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3균주의라고,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라고 얘기하는 건데요. 우리가 100년 전에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단순히 일본에서의 독립이 아니라 이런 정치, 경제, 교육에서의 균등한 나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든 이론적 기초를 만드신 분이 조소앙 선생이 되겠습니다.

◇ 이동형> 방 실장이 잠깐 언급했는데, 국호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여운형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 갑시다.

◆ 성우>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로서 그 대한 때문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 합병되어 버린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일본에 빼앗긴 나라 이름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 이동형> 들으신 대로 여운형 선생은 대한이라는 국호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것 같네요. 여운형 선생님은 굉장한 웅변 능력이 있거든요. 도쿄 한복판 일본 정치인 앞에서도 압도하는 웅변을 했던 분인데, 여기서는 논쟁에 졌네요?

◆ 방학진> 소수파였습니다. 소수파였던 분이 얼마 안 되는데, 예를 들어서 몽양을 비롯해 가지고 아마 그런 개인적인 입장 차였던 것 같아요. 아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적인 경험들, 이런 속에서 대한민국을 택한 분도 계시고, 그다음에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자신의 이념적인 지향, 출신 지역,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이 있었는데요. 여운형 선생님은 소수파였죠.

◇ 이동형> 이념으로 싸운 것은 이해가 가는데, 출신 지역, 혹은 출신 성분 가지고도 싸웠다면서요?

◆ 방학진> 지역은 아무래도 북쪽에 계신 분들은 고려라고 하는 것, 고구려, 이쪽을 선호하셨던 거죠. 사회주의 이념을 조금 더 지향하셨던 분들은 조선이라고 하셨고요.

◇ 이동형> 국호 말고 또 다른 논쟁이 있었습니까?

◆ 방학진> 3대 논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첫 번째가 국호 논쟁이고, 그다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임시정부라는 형태로 독립 투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정당을 만들어서 독립 투쟁할 것이냐, 이게 두 번째 논쟁점이었고요. 세 번째 논쟁은 구 황실, 전주 이씨. 구 황실을 대우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3대 논쟁이 되겠습니다.

◇ 이동형> 황실 문제도 있었군요. 회의가 그렇게 계속 이어지면서 정부의 관제를 결정하고,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선출이 이어지는데, 어떤 분들이 선출됐죠?

◆ 방학진> 어떻게 보면 이때는 선출됐다기보다 아직은 4월에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실제 9월이나 12월에 가서나 정확한 꼴을 갖추게 되고요. 이때는 서로서로 조각하는 수준입니다. 어떤 자리에는 누구를 앉히자, 어떤 자리에 누구를 모시자,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요.

◇ 이동형> 투표나 이런 것은 없었다고 봐야겠네요?

◆ 방학진> 네, 어떻게 보면 투표라기보다 서로의 동의, 제청, 내가 너를 추천하고, 네가 나를 추천하고, 이런 과정이었던 거죠. 그전에 앞서서 국호 논쟁 이외에 정당이냐, 정부냐의 논쟁을 설명드리면, 여운형 선생과 이회영, 신채호, 이런 분들은 정부라는 것보다는 당을 만들자. 러시아 혁명이라든지, 이런 것을 봤을 때 볼셰비키 정당이 러시아 혁명을 이끌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부를 만들면, 서로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누가 장관, 누가 차관, 그다음에 지역을 따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다툼을 할 수 없게끔 정당을 만들자. 또는 이회영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독립운동 투쟁본부를 만들자, 총 본부를 만들자, 이런 식의 논쟁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격론이 있었던 것이 황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나라가 처음에 구 황실을 우대하는 것으로 첫 번째 헌법에 들어가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여운형 선생도 우리가 황제를 부정하면서 혁명을 하고 있는 마당에 황실을 우대하면 될 것이냐, 라고 하는 것이 있었지만, 다수파들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황실에 대해서 극복했지만, 아직 많은 백성들이 황실에 대해서 애환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략·전술 차원에서 아직 황실은 우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황실 우대 조항을 넣게 된 것입니다.

◇ 이동형> 그리고 국무총리하고, 국무위원에는 어떤 분들이 선출됐죠?

◆ 방학진> 그 당시 국무총리가 임시정부에서는 이승만이 되었는데요. 그다음에 국무총리는 나중에 12월에 이동녕 선생님이 오시는데, 바로 이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그 당시 임시정부에서는 최고위의 자리였지만, 이 이승만 씨가 자기가 국무총리하는 것을 거부했죠. 자기는 대통령이지, 나는 국무총리가 최고인 자리에는 안 간다라고 몇 달 몽니를 부렸지만, 그래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노령에 있던 정부, 그다음에 서울에서 만들어진 한성 정부를 어쨌거나 통합해서 가을에는 출범시켜야 한다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고생하신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입니다.

◇ 이동형> 내무총장. 외무총장에 김규식. 그런데 이승만은 왜 그 ‘프레지던트’에 집착했을까요?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대통령 자리에 집착했죠?

◆방학진> 그것에 대해서 본인이 쓴 글은 없지만, 어쨌든 본인은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의 프레지던트다, 라고 누가 인정은 안 했지만, 수시로 명함을 만들어서 뿌리고 다녔다는. 정말 대통령에 집착했던. 아마도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을 본인이 많이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국무총리 이승만 선출에 대해서 반발은 없었습니까?

◆ 방학진> 가장 많이 반발한 것은 우리 단재 신채호 선생이죠. 왜냐하면, 3.1운동 전후에 이승만이 미국 조야에다가 뭐라고 청원서를 냈냐면, 그 당시 국제연맹이죠. 국제연맹이 우리나라를 통치해주십시오. 위임통치 청원서를 낸 것이 알려지죠. 어떻게 독립을 하겠다는 임시정부 사람들이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사람을 최고 지도자로 모실 수 있는가. 그러면서 신채호 선생이 뭐라고 주장하냐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를 판 사람이다. 내가 이승만을 모시는 임시정부에는 절대로 몸담을 수 없다고 해서 박차고 나가셨죠.

◇ 이동형>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았다.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였고요. 결국은 이승만은 떠나죠, 상하이를?

◆ 방학진> 떠나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25년이 되면, 탄핵이 되죠. 임시정부에 의해서.

◇ 이동형> 이승만이 떠난 후 상해 임시정부는 분열하는 모습을 조금 보였는데요. 의정원은 탄핵 발의에 앞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에 전보를 보내 수습을 요청합니다. 당시 의정원이 이승만에게 보낸 전보문과 이승만의 답신을 들어봅시다.

◆ 성우>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정부의 형세가 급하니 유지 방침을 보내시고 난국을 정돈하여 주십시오.” “노백린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니 내각을 다시 조직하고 나의 결재를 받은 후에 실시하시오.”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노백린은 국무총리직에 취임이 불능하고 정부에 각원이 없으니 무정부상태이오. 속히 책임을 이행하시되 5일 안으로 회답하시오.” “당신들이 소란을 일으키면 이곳의 재정수합하는 일이 방해되어서 재정곤란을 당할 터이니 속히 정돈하시오.”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시국이 지극히 어려운데 임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정부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므로 임시 대통령 불신임안이 제출되었으니 의향을 말씀하시오.” “정식 후임자가 나오기 전에는 사면하지 못하겠소.”

◇ 이동형> 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탄핵까지 당하는데, 그 훗날 광복 후에 이승만은 일본에 의해서 맥아더를 만나고,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미군과 함께 굉장히 큰 환영을 받고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 백범 선생 같은 경우에, 그러니까 상해 임시정부, 그때는 상해가 아니었습니다만,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는 1차, 2차, 이렇게 나눠서 들어왔는데, 홀대받으면서 들어왔단 말이죠.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겠죠?

◆ 방학진> 그게 한국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먼저 입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은 이승만을 먼저 한국에 들여보낸 것. 그리고 임시정부를 뒤늦게 들여보낸 것. 이것이 미군정의 가장 큰 포석이었고, 지금도 그 포석 속에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 이동형> 오늘 우리가 특집 방송, 두 번째 시간으로 대한민국 국호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 절차를 이야기해드렸는데요. 올해가 3.1운동, 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후손들이 이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한다고 보는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방학진> 네, 3.1운동은 그냥 만세가 아니라 혁명인 것이죠. 프랑스에서는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림으로써 과거 봉건과 단절했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를 혁명함으로써 새로운 나라를 꿈꿨다. 그래서 전주 이 씨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도산 선생의 말에 의하면 2,000만 모두가 황제가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틀을 선언한 곳이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제2편, 국호를 정하다, 대한민국.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참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만,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었잖아요?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분들 아니었어요?

◆ 방학진>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의 아주 좋으신, 마음씨 좋은, 그다음에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는 그런 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고요. 저희는 다음 주에 3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방학진> 네, 고맙습니다.

<2019-03-14>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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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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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에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도를 넘거나 지나치게 되면 독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해서
지금의 고통과 치욕을 경험하고 있나 봅니다…..

저의 물욕에 눈이 멀어서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과 연민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질타와 멸시를 받으며
지난 세월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함세웅 이사장님….
신부님의 명성과 함자를 감히 제 입에 담기도 송구 스럽습니다….저 또한 모태 신앙인 으로서 살면서 주님께 수 없이 죄를 사해 달라고
저의 욕심때문에 생긴 이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극복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매일매일 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죄가 너무나 커서 인지 아직도 주님의 벌은 제 입장에선 정말 가혹 하기만 합니다….

지난 1년여 의 시간동안 IDS라는 단어는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고 피해자들의 소리는 점점 피 맺힌 절규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은 죄를 용서받기에는 아직도 멀었지만 정신을 차려서 많은 수의 피해자분들과 함께하면서 피해보상을 찾기위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서 조금은 희망을 찾아 가는 중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일부 피해자들로 인해서 무참히 짓 밟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30여명이 1만2천명을 대변 할 순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변호사님 또한 자본주의에서 수익 창출을 당연히 하셔야 하는것도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하지만 그 수익 창출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내 모는 형상이 된다면,그리고 신부님을 도와 주시는 분께서
그 일에 앞장 스셔서 이런일이 벌어 진다면 그 동안 쌓아 올리신 명성과 명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자라면서 저희 아버님께서 늘 “너 살자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쳐다도 보지말고 관여도 하지마라”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나름대로 50여년을 살면서 아버님 말씀을 잘 지켜 왔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인범도 변호 받을 권리,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 건 뭐라 하지 않습니다만 지금의 피해자들은 그 어떤 곳으로부터도 변호를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비참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파산신청자들의 법률비용을 가해자인 지점장들로 부터 도움을 받을려고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이게 말이나 됩니까?

존경하는 신부님!
저희들의 눈 먼 욕심을 용서 받거나 위로 받을 수 없다는 건 모든 피해자들이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서른일곱분의 영혼은 아직도 연옥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고 계실겁니다….

감히 신부님께 간절히 간청 드립니다….

정만순 변호사님의 파산변호를 말려 주십시요….건방지게 들리 실수 있으시겠지만 1만2천명의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사람은 명예를 함부로 버리거나 먹칠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희들의 고백성사라 생각 하시고 정의를 바로 세울려고 하는 저희들의 뜻을 헤아려 주시길 진심으로,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신부님 건강 조심 하시고 늘 주님의 은총이 가득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2017년 12월 6일 최명민(프란치스코) 올림

수, 2017/12/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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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IDS 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명입니다.

2016년 9월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이 되고

그 이후 모집책이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저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그동안 너무 신뢰했었던 사람이기에

이 일에 대해 모든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되고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려

이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전액은 아니더라도 단돈 얼마라도 제발 변제를 해주었으면…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양파껍질같이 하나하나 들어날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제발…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5:16
83
0

안녕하세요  정만순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IDS fx 마진 사업과 셰일 가스 사업에 투자한 1만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1년 넘게 고통받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세상을 등진 분들이 37명입니다.

피해자들의 최종 목표는 투자금을 다시 돌려 받는것일겁니다. 김성훈과 사측은 이를 악용하여 책임지겠다 변제하겠다 피해자를 무시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파산이라니요.

그동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수많은 의로운일을 행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피해자들의 눈물을 헤아려주셔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세요.

피해자들은 파산이 결정되면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일이 또 일어 날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변호사님의 현명하시고 의로우신 판단으로 파산을 꼭 막아주세요.

눈물로 호소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 2017/12/06- 14:57
27
0

안녕하세요 저는 IDS 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명입니다.
2016년 9월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이 되고
그 이후 모집책이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얘기해온 변제는 모두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록 전액은 아니더라도 단돈 얼마라도 되찾아보고자 법적으로 발버둥쳐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이런 사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피해금 일부의 회복은 커녕,

그 일부라도 복구하고자 법원과 변호사에게 쏟아부은 돈까지 모두 먼지처럼 날려갈 생각에

살아갈 한줄기 희망마저 사라져감에 미쳐버릴것만 같습니다.
제발…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김성훈은 파산을 통해 그 모든 책임을 면제 받아서는 안됩니다…

도와주십시오 제발…

수, 2017/12/06- 17:37
104
0

IDS 홀딩스 사건의 피해자 입니다.

희대의 사건으로 일컫어지는 김성훈 사기사건으로

하루도 맘 편할 날없이 지내고 있는 요즘인데,

파산신청 이야기가오가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더 옥죄고 있습니다.

법앞에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시어

1만 2천명의 피해자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주세요.

김성훈의 파산신청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부탁입니다.

수, 2017/12/06- 17:28
110
0

“제2의 조희팔” IDS홀딩스 사건의 피해자의 한사람으로
거대 사기사건에 휘말려 삶이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제해준다고 해서 기다렸고
기다렸고 또 기다렸지만
단 한푼의 변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12,000명의 피해금에 대한 파산을
극히 일부인 29명의 파산신청인이 대표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닙니다

수, 2017/12/06- 16:01
112
0

IDS는 온갖 권력비리의 표본 입니다!!

인터넷에서만 이라도 검색을 하면 정치인,경찰,언론인 등등 연루 안된곳이 없을 정도 입니다!!

이러한 연결로 인해서 사기주범은 최초 재판때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 됐습니다!!700억원의 사기를 쳤는데도 말입니다!

이일로 인해서 사기공범들은 죄는 있지만 큰 죄는 아니라라며 대대적 홍보를 하여 우매한 피해자가 더 양산되는 꼴이 됐습니다

물론 저희들도 일말의 반성과 책임을 면 할 수 없는건 인정 합니다…

아직도 이 적폐는 소위”윗선”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디 조사하고 적폐청산을 간곡히 요청 합니다!!

변호사님께서 변호를 하시는건 당연한 일 입니다 하지만 파산을 시켜서 피해자들 돈 찾는다는건 정말 무리라는건 변호사님께서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부디 파산변호를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고 처음 이 연구소에 오실 때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으시길 바랍니다..부탁 드립니다

수, 2017/12/06- 16:23
53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6
11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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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안녕하세요. 사기는 남의 일인줄 알고 살았던 IDS 피해자 입니다.

16년 9월 IDS 대표 김성훈이 구속되고

IDS 가 불법 다단계 조직임이 밝혀진 상황에서, 단 한번도 변제가 행동으로

이루어 진적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감언이설로 피해자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뇨~

피해자가 1만명이 넘는데, 고작 29명이 파산을 신청해서 김성훈에게

1조가까운 피해금의 면죄부를 준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고, 반성한다면 피해회복을 위해

행동을 해야 하는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세요

 

 

수, 2017/12/06- 20:55
61
0

IDS 피해자 입니다.

사건 이 후 왜 이리도 이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친일파 적폐와 김성훈의 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통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말과 글로써 백성을 기만했다.
2. 국가와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다.
3.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아직도 잘먹고 잘산다.
4. 지식층 권력층과 규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사기 피해자들은)매일같이 피빨리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는 확고 합니다. 그것이 친일파 적폐이든 사회 전반의 적폐이든…
다만, 피해자 구제는 요원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의 파산 변호를 맡으신 변호사님…
변호는 자유입니다.
다만, 이 사회가 아직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니까요.
또한, 이번 변호를 통해 얻은 금전도 자유입니다.
다만, 친일파의 더러운 돈과 김상훈의 돈이 다르지 않음을 피해자들은 아니까요.

부디, 파산을 통해 1/n 구제가 합리적이라는 논리에 현옥되지 마시고, 또한 적폐의 우두 머리인 김성훈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지 마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다시한번 생각하시고, 백성들과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변호를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수, 2017/12/06- 20:39
334
0

정만순변호사님

저는 어디에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하는 ids피해자의 한사람입니다

김성훈은 정관계 로비까지하며 1조원이라는 피해금을 키우고

 

지금 1년 3개월동안 변제한다 속이며 피해자들을 기만해왔습니다

김성훈은 평생을 피해자들 변제를 위해 살아도 모자랍니다

저는 돈만 잃은것이 아닙니다. 1년3개월동안 가정도 파탄이 났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치료도하며 힘든시간을 버티고있습니다

김성훈은 피해자들에게 파산을 통해 변제한다 이상한 말을합니다

그 돈음 피해자들것인데 자기것인냥 변제한다 떠들어댑니다

정만순 변호사님께서는 이런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아실거라봅니다

변호하고 계신 파산신청이 1만명의 피해자들에게 어떤 일로 다가올지

생각해주십시요  저는 김성훈이 파산하는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가정을 망쳐놓은 파괴범이요 사기꾼입니다

이런자를 돕는 일을 부디 멈춰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 2017/12/06- 19:08
76
0

저는 IDS 홀딩스의 피해자입니다.
Ids
홀딩스는 2심에서 15년형을 받은 금융다단계로 37명이 목숨을 잃은 사기사건 입니다.

김성훈은 입으로만 피해자들한테 변제한다. 할수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에게는 단한푼도 변제 하지 않고,지금도 피해자들을 계속 죽이고 있습니다.

피해 변제를 받기위해 집중하기에도 모자른 시간에 김성훈의 파산을 막기 위해 저희는 생업을 뒤로하고 진정서와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성훈의 파산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김성훈의 파산은 김성훈의 파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공범자들.. 지점장과 본부장 모집책들도 파산 신청을 할겁니다.
그리고 사기를 진행 중인 많은 금융사기꾼들의 표본이 될것입니다.

소수의 피해자들과 파산을 진행중인 정만순 변호사님,
부디 부당한 파산으로 더이상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수, 2017/12/06- 18:57
16
0

 

정만순 변호사님께

IDS홀딩스 사건은 제2의 조희팔사건이라고 불리우며 피해자 1만2178명, 피해액 1조 969억원에 달하는 사건입니다.

현재 IDS  홀딩스 대표 김성훈은 2심 징역 15년 구형을 받았으며 현재는 대법원 상고 중입니다.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변제해 주면 무죄를 증명할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텐데도 여전히 피해자의 피해금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할뿐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꼼수로 1년 5개월이나 변제를 미뤄오고 있으며 오직 자기 살길만은 모색하고 있는 사기꾼 입니다.

가짜 변제안, 자산가치도 증명 되지 않은 회사의 주식변제안 그리고 최근에는 파산신청까지 진행하며 여전히 피해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시대의 사기꾼 입니다.

김성훈의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1만여명의 피해자들은 끝없는 괴로움으로 힘들어 할것이며 사기꾼과 그 공범자들은 또다시 이런 유사한  사기를 치며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 것입니다.

왜 변호사님은 이런 일에 사기꾼 김성훈편이 되시려는지요?

피해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고

김성훈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목, 2017/12/07-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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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