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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신입 변호사의 민변 적응기 (이경재, 조미연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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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신입 변호사의 민변 적응기 (이경재, 조미연 변호사 인터뷰)

익명 (미확인) | 화, 2019/03/12- 16:29

간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로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민변 사무실에서 이경재 변호사님, 조미연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을 핑계로 선배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컨셉에서 조금 벗어나, ‘후배(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변호사님’들을 대표할 수 있는 두 분을 뵙고 싶었지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인정을 닮은, 최순실 변호인과 이름만 같은 이경재입니다.”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두어 시간, 우리 모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재섭 출판소통팀장 : 요즘 변호사님들이 가장 관심가지고 계신 건 뭔가요?

이경재 변호사 : 돈 버는 거요. 하고 싶은 활동을 지금처럼 계속 유지하려면 물질적인 불안이 없어야 할 것 같아요. 개업하면서 지속적으로 민변과 함께하기 위해 내가 할 몫으로 돈을 벌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 거예요. 처음 민변에 가입했을 때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사법농단이었습니다. 제가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법농단 이슈가 막 터졌어요. 내가 앞으로 민변에서, 혹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 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도 가까워서 농성장에 매일 상주하다시피 살다 보니 활동가분들, 변호사 선배님들을 많이 뵙고 좋았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지금은 취업이 가장 중요해요.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요즘 면접기간이거든요.

 

심재섭 팀장 : 두 분,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어떠한가요?

이경재 변호사 : 원래 노동법 및 공익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공감 등 사회단체를 쉽게 접했던 터라 민변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로스쿨 재학당시 이소아 변호사님 등이 학교를 방문하고, 특별회원 가입 등을 권하시기는 했는데, 변호사도 아닌데 ‘변호사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뭔가 불편해서 좀 미뤘어요. 변호사시험을 끝내자마자 마침 김준우 변호사님의 권유도 있었고, 로스클 때부터 알고 있던 최용근 변호사님이 추천도 했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입했어요.

 

심재섭 팀장 : 가입하기 전부터 민변을 좀 알고 계셨군요?

이경재 변호사 : 로스쿨에서 뵈었던 선배들, 민변 변호사님들이 있었어요.

조미연 변호사 : 한승헌 변호사님, 김선수 변호사님처럼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동경해 오던 분들이 있었으니까요. 민변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는 쉽지 않아요. 전 전북에서 로스쿨을 다녔는데, 당시 전주전북지부 민변에서 인권법학회 간담회를 하면서 특별회원을 모집했어요. 그 전에 당연히 가입해야하지 하다가 그 기회에 특별회원으로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최근에 SNS에도 글을 올렸지만, MBC 파업 당시에 신인수 변호사님에 대해서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민석 피디가 ‘현실에서 영웅을 봤다’라는 내용의 글을 썼거든요. 제가 ‘따뜻한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김민석 피디가 소개한 신인수 변호사님 이야기에서 그런 점을 느꼈어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감정적으로 분노하면서 냉철하게 다가가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그런 모습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요즘 김종보, 류하경 변호사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현장연수부터 저랑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배이기도 하고, 활동력도 탁월하셔서 배울 점이 많아요. 사실 민변에서 변호사님들을 보면 꼭 하나씩은 배울 점이 있으시더라고요. 누굴 특정해서 닮고 싶다 할 것 없이 주위에 계신 분들 떠올려보면…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잘 살아가는 모습, 그 활동 자체가 홍보가 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심재섭 팀장 : 법조계에 들어오고자 했을 때 생각했던 모습하고 지금하고 얼마나 같은가요?

조미연 변호사 : 전 로스쿨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검사를 거쳐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프로보노 활성화에 앞장서는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고 썼었어요. 검사라는 조직과 직역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다니고 보다 진지하게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쪽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변호사인데, 변호사가 되면 공익전담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로스쿨 들어오는 애들 3분의 1은 인권, 3분의 1은 IP, 3분의 1은 M&A 하겠다고 한다는 거지요. 그만큼 공익이나 인권이라는 목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쪽 일을 계속 해나가지 못하는 현실이나 로스쿨 단계에서의 진로 설정이 막연하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 같아요. 공익변호사라는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전 공익인권의 분야를 놓지 않겠다는 정도의 결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로스쿨에선 다들 불안하고 막연하긴 해요. 저도 로스쿨에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결정이 있었잖아요. 당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열 받아 있는데 주변 동료들을 보니 어느 누구도 분노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더라고요. 분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적인 변화가 없어 보였어요. 그런 점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마냥 믿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해야 될 일이 있을 것이고, 조금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소명이랄까, 그렇게 접근하기로, 실망을 덜하면서 꾸준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좀 외로웠어요. 저와 같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변호사가 되었고, 민변에 왔지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직업이라 좋았고, 천막농성하면서 만난 활동가분들, 당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길이 맞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에 가입하면서 기대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경재 변호사 : 동료들을 보면 다들 잘하시니깐, 모든 면에서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기대라는 말은 좀 어색하고, 특히 좋아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자진해서 감당하려는 자세였습니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민변 동료들은 그런 면에서 달랐던 것 같아요. 정치, 경제 이슈에 있어서 다수의 지지를 당장 얻지 못하는 주제라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다는 판단한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조미연 변호사 : 인권변호사라는 말에서, 인권이란 말을 떼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굳이 인권변호사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이유는, 변호사라는 일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공익 이슈, 인권을 수호하는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이를 원하는 많은 변호사들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민변이잖아요. 여기에 들어와서 내가 무엇을 원한다, 하고 싶다 이런 생각조차 없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제가 색깔이 없어서 그런지 어떤 방향이나 기대를 말씀드리기가 좀 어색합니다.

▲ 2018. 11. 사법적폐청산 국민대회 참가 사진

 

심재섭 팀장 : 특별히 색이 없다고 말씀하시기에는, 지난 1년 가까이 민변의 많은 모임과 사업에 참여하셨어요. 엄청 특징적인 거잖아요. 어느 모임에 계시지요?

조미연 변호사 : 노동위, 민생위, 아동위, 여성위하고 사무처에서 회원팀을 하고 있어요. 봉변님(이경재 변호사님이 동기들 사이에서 불리우는 애칭)은 노동위, 소수자위, 환경위, 여성위 또 뭐 있더라…

심재섭 팀장 : 엄청 많잖아요.

이경재 변호사 :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심재섭 팀장 : 동기들은 다른 길을 찾아 가잖아요. 취직을 하든, 개업을 하든… 그런데 이렇게 민변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동력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그러니까 철이 안 들어서 그렇지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분들이 보면 진짜 쟤들 뭐하는 애들이냐 할 것 같기도 해요.

이경재 변호사 : 다들 가입하게 된 사연들이 있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그냥 재밌어 보이는 곳은 다 한 거예요. 이렇게 오래 유지될지는 몰랐어요. 제가 취업하고 싶은 곳의 채용이 최근까지 없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있어요. 사실 변호사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어렵다는 현실을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도 얼마든지 어려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1년 정도 취업을 미루었다고 하여도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을 민변에서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것을 포기하고 민변에 있었다, 이런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변호사를 하면 당연히 생계와 공익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민변에 참여하는 것이 특별히 무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인 것이든 아니든 마음속으로 얼마 정도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거요. 한 2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수습 끝나고 10월 지나서 하나 둘 취업하게 되면 민변에서 뵐 수 있는 동기들 숫자도 줄어드는데 (변시) 7회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첫째는 저 때문이죠.

조미연 변호사 : 와, 이거 진심이다.

이경재 변호사 : 농담이구요. 다들 서로 애정이 있어요. 독특한, 나름대로 특색 있는 분들이 있어요. 고시공부를 오래 한 분이 있고, 학생운동에 투신하신 분들도 있고, 오랫동안 나름대로 스텝을 제대로 밟아서 로스쿨 가신 분들도 있구요. 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긴 정말 쉽지 않고 동기분들과 만난 게 행운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성인이 되어 만난 모임에서 특히 변호사 모임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받아주는 게 쉽지 않은데, 서로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잘 들어주더라고요. 운이 좋았던 거죠. 사법농단 때 농성장을 지키면서 많이 얼굴 뵙고, 농성장 해단하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단체톡방도 소소하게 많이 있고, 오프라인에서도 그러니까 민변 행사가 있으면 자주 만나고 해요. 노동위원회의 경우 매주 회의를 하면서 매주 얼굴 보고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기도 하죠.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특별히 나오라고 독려한 게 아니고 자율적으로 다들 결합하시는데 얼굴 한 번 더 볼 때마다 더 친밀해지는 기회가 되는 거죠.

심재섭 팀장 : 나오라고 두 분께서 독려를 하시는 거군요?

조미연 변호사 :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그냥 다들 시간 되시면 참여해 주세요. 그래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두 분이 참여하는 사업, 소송, 행사들이 많잖아요. 전 처음에 초임인 내가 여기에 참여해도 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두 분은 어떠세요?

이경재 변호사 :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입장에서 내가 이걸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참여를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요. 저는 제가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집회나 회의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만 하자고 맘을 먹는 것이에요. 저희도 두려움은 있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참여하는 게 맞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머릿수를 채우다보면 어느 순간 긴 호흡을 함께할 수 있다고 김선수 변호사님이 말씀해주셔서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재, 조미연 두 변호사는 지난해 사법농단 진상규명,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저지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위 사진은 릴레이 1인 시위 당시 모습.

 

심재섭 팀장 : 이런 것은 어때요? 집회나 회의를 참가하기로 했는데 나만 참석하게 되는 경우, 송무를 맡았는데 실제 같이 일을 하는 분들이 나와 같은 초임인 경우…

조미연 변호사 : 실제로 민변에서 미진한 부분들이 그런 점인 것 같아요. 사업에 들어갔을 때 맡게 되는 업무가 생각보다 무거운 업무인 경우도 있고, 역량 밖이라고 느껴질 경우가 있죠. 책임감 있게 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겠죠. 선배들의 약간의 도움이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아요. 신입설문조사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나타났죠.

심재섭 팀장 : 신입설문조사요?


조미연 변호사 : 네, 이번에 회원팀에서 신입회원들을 대상으로 민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저는 민변 회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회원팀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원팀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신입의 입장에서 신입의 목소리를 모아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담으려고 설문조사를 시작했어요. 34분 정도가 설문을 해주셨는데, 지금 주제에 관한 것이 있어요. 신입 회원분들이 민변 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바빠서이고요, 그 다음 이유로는 민변에서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민변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막연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 부족해서라고 해요. 첫 번째 바빠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머지 이유는 신입회원의 입장에서 새로운 조직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기존 구성원들의 역할을 고민하게 해주는 유의미한 답변이라고 봐요.

이경재 변호사 : 바쁘다는 건 좀…….

조미연 변호사 : 그쵸, 바쁘다는 건 핑계일 수 있죠. 그런데 한정된 시간에서 민변을 우선할 수 있도록, 조금 접근하기 편하게 선배 회원들이 손을 내밀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두 분 변호사님께서 그간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으셨더라고요. 이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감사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두 분의 의견은 어때요. 기존 선배 변호사님들이 이런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민변이 다른 법조조직에 비해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적인 양태가 가끔 보일 때가 있어요. 그게 활동의 방향에 관한 거라면,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 유연한 태도들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은 단위에서의 관계요. 평등하고 대등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일을 같이 하는 데에 있어서 경력과 경험의 차이를 기초로 한 효율적인 협업을 잘 구분해서 둘 다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예를 들어 대등한 관계라는 점이 업무수행까지 적용되면 꼭 필요한 지시 내지 조언이 생략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실질적인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초임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방치되었단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 서면으로 된 산출물에 대해서, 선배들께서 어려워서든지 다른 이유에서든지 피드백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관심으로 이해될 수 있겠죠. 애정을 가지고 후배들을 많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떠한 실수가 있을 때 확실하게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미연 변호사 : 신입 회원들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 하셨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많이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경재 변호사 : 후배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성인이잖아요.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말했을 때 싫어하시는 선배 변호사들은 없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그럼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 정도로 하면 좋겠어요.

 

심재섭 팀장 : 뉴스레터는 많이 보셨나요? 어떤 파트가 가장 재미있으셨나요?

이경재 변호사 : 전 인터뷰를 주로 봐요. 인터뷰를 제일 좋아하고요.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우리 서로 개인적인 일들을 묻지 않는 편이잖아요, 그래도 궁금할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요.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더라구요. 그런 점들, 보통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개인의 인생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여서 좋은 것 같아요. 최근 인터뷰 중에 최정규 변호사님 편 정말 좋았어요. 업무적으로도 종종 뵙는데,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던 차에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니까 좋더라구요.

조미연 변호사 : 저도 최정규 변호사님 인터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뉴스레터를 잘 못 봐요.

심재섭 변호사: 안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미연 변호사: 음… 귀차니즘인 것 같아요. 다 글이니까. 일하면서도 글을 보고 글을 쓰는데, 대부분의 소식이 글로 오니까 더 핑계거리가 되지요. 같은 소식이라도 영상으로 오게 되면 더 먼저 보게 될 것 같아요. 정보를 수집할 때, 간단한 문자, 짧은 영상이 우선이고, 장문의 글은 그 다음. 만약에 하드카피 문헌이라면 가장 늦게 손이 가요.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문제라, 출판소통팀에서 내용이나 구성이나 부족한건 아니지요. 혹시 여력이 된다면, 출판소통팀에서 SNS나 영상 컨텐츠적으로 접근을 좀 더 한다면 회원들이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아요. 짧은 글이라던지, 짧은 영상들을 더 넣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민변이 해야 할 역할 중 진중함이 있을 텐데, 영상으로 할 땐 한계가 있을 순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시도부터 하면 좋지 않을까요? 여전히 글이 길다는 느낌은 받고 있어요. 임팩트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뉴스레터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마치 우리 출판소통팀 회의 시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선배 변호사님께서 모임에 대한 애정으로 많이 읽어주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최신의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면)에는 좀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 회비는 부담이 되시나요?

조미연 변호사 :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절대적인 숫자가 크다고 할 수는 없는데, 변회(서울변호사협회) 회비도 있고요, 민변에 들어오는 변호사님들이라면 개별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꼭 민변 회비만 떼어서 보긴 어렵고 월 지출 총액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심재섭 팀장 : 앞으로의 계획은 어때요?

조미연 변호사: 첫 직장을 잡는 거죠. 꼭 가고 싶은 직장이 있어요. 민변에서 신입회원으로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직장에서 변호사로서의 처음을 제대로 다지고 싶어요. 거기에 하나 더 생각한다면 민변 회원으로서 긴 호흡법 연습하기가 있어요.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고 하지만 그걸 10년, 20년 머릿수만 채울 수는 없잖아요. 그것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1년차 때에는 머릿수 채우기로 정신없이 보냈는데,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하고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설프게 마음만 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도움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4월에 새로 합격하시는 변호사님들, 또 그 뒤의 변호사님들께 제가 선배님들에게 받았던 느낌을 똑같이 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춰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처음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1년을 넘겨서도 초기의 활동력과 애정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갈수록 변호사의 고용‘시장’이 어려워지고, 법률시장 자체가 팍팍해져 가는 현실에서 신입회원들이 빨리 방향을 달리 정하고 민변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합니다. 오히려 탈회하지 않는 마음이 고맙지요.

이번 두 분 변호사님과의 대화에서 민변에 대한 사랑, 변호사 직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변호사님이 신입 회원의 모든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신입 변호사님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공감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년 활동 사진 한 장을 달라는 출판소통팀의 요청에 이경재 변호사님이 아래 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보낸 모든 사진을 실어달라는 이경재 변호사님의 요청에 답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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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최근 일본의 WTO제소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 국회에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7월 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지난 5월 21일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관련,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재 조치를 둘러싼 각종 쟁점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함에 따라 장하나 의원실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차일드세이브, 한국YWCA연합회, 한살림서울 주최로 진행되었다. 장하나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서영교 의원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됐다. 토론장에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가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관련된 첨예한 사안임을 증명하듯,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9" align="alignnone" width="3163"]ⓒ이연희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국회의원(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 우)  ⓒ이연희[/caption] 이날 토론회의 골자가 된 사안은 내용인 즉,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원전 오염수 유출 등 방사능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됨에 따라 2013년 9월, ①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②방사능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에는 스트론튬 등 기타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며, ③세슘 기준을 기존 370Bq/kg에서 100Bq/kg로 강화하는 내용의 임시특별조치를 시행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 양이 연간 8만여t에 달했지만 특별조치 시행 후인 지난해에는 3만t 전후로 수입량이 급감했다. 그러자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식품·동식물 위생검역(SPS) 위원회 등에서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WTO제소 근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 등 관련된 쟁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이 《일본 식품의 방사능오염과 한국 식품수입정책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첫 발제를 맡았다. 김혜정 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2013년 9.6특별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우리 정부 당국은 일본산 식품 수입에 대한 제한조치가 없었다”라고 지적하며, “9.6조치 이후 방사능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 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일본이 WTO에 제소하기 이전부터 ‘잠정적인 조치’라며 수입금지조치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3" align="alignnone" width="2829"]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발제를 맡은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caption] 이어 김혜정 위원장은 “일본에서는 세슘이 불검출 된 사례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일본의 세슘 기준치(kg 당 100Bq)의 절반인 50Bq 이하 검출량에 대해선 불검출로 공표하는 일본의 방사능오염 식품 정책 ‘스크리닝 법’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체적인 조사 없이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와 정보에 의존하여 수입해제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WTO 제소 움직임에 대비한 민간 중심의 전문가위원회의 일본 현지조사도 일본 정부의 안내에 따라 단 2차례만 샘플 검사를 시행했으며 검사내용과 결과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후쿠시마 오염 실태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으로 발제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노주희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본의 WTO협정 위반 제소와 관련, 일본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한국이 시행하고 있는 규제조치의 근거인 세계무역기구(WTO)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이하 'SPS 협정’)에서 정의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 조치’)임을 설명했다. 우선 SPS 조치와 관련, 한국은 방사성 물질 오염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조치에 관한 국제표준이 없다고 보고, 예외조항으로서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잠정조치가 허용되는 기준은 제한적으로,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잠정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위험평가를 통한 과학적 증명이라는 요건을 포함하여 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는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무역제한만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비례원칙, 위험평가를 수반한 과학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원칙과,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일관성 유지원칙, 다른 회원국이 회원국의 SPS 조치가 관련 국제표준에 근거하지 않거나, 그러한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요구할 때에 해명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해명 제공 의무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잠정적 예방조치’의 경우에는 위에서 다루고 있는 엄격한 요건에서 면제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정당화 하는 데 실패하고, 이러한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또는 사안의 속성상 그렇게 대비하기 어려웠던 한국 정부로서는 WTO 분쟁에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노주희 변호사의 판단이다. 노주희 변호사는 “SPS 규정과 관련, WTO에 제소된 사안들에 대한 판례는 거의 다 피소국이 패소하거나 타협하여 결론지어졌다”고 말하며, “한국 정부에 대해 일본이 강력하게 나오는 것은 전세계적인 일본산 수산물 규제 정책에 방어막을 깨려는 목적”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와 최대한의 전문적 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0" align="alignnone" width="960"] ⓒ이연희 ⓒ이연희[/caption] 발제에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사실사과의 이수두 과장,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 차일드세이브의 최경숙 대표, 한살림서울 식생활위원회 박준경 위원장, 토론회의 제목이 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적 수입금지 조치의 쟁점과 정책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작성한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정민정 조사관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수두 과장은 “식약처는 특별규제 이후 강화된 조치로 안전한 검역체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며, “정부는 규제를 해제한다고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수두 과장의 발언 이후, 최경숙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4년 동안 시민 스스로가 감시센터를 설립하고 평범한 주부들이 방사능 지식인이 되어 애쓰는 동안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에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박준경 위원장은 “한살림과 같은 생협 등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방사성물질 자주기준을 마련하여 식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안전한 먹거리 문제는 생협단체만 노력해야할 것이 아니다”라며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의 역할에 대하여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이어 정민정 조사관은 조사연구서와 발언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대만·중국·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도 이미 한국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한국 내에서 방사능 피해자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자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등 근거를 들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의 국제법적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적발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 위장이나 허위표기 등을 막기 위해 검역 절차와 유통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객관적 위험평가를 위해 필요한 추가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WTO 제소에 동요되지 않는 장기적 식품안전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며 정부당국에 정책적 과제를 제시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도 참석한 시민들과 패널들은 질의응답을 통하여 ‘방사능이라는 말 자체가 언어폭력’, ‘일본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는데 왜 우리가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언행을 보인 이재기 위원장 등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위원회의 부적절한 인사구성과, 정부부처의 책임 방기 등에 대해 질타하는 등 이날 토론회는 청문회를 방불케하는 날카로운 질의와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마무리 되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8" align="alignnone" width="640"]ⓒ이연희 ⓒ이연희[/caption]  
금, 2015/07/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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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이슈로 뜨겁다. 동성애와 동성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동성애자 군인들은 군형법 추행죄로 대거 잡혀갔고, 이번 10월 제주퀴어문화축제와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지자체로부터 미풍양속이란 이유로 장소가 불허됐다.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포함해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캐비닛 안에 잠겨있다. 성 소수자와 전혀 친근해 보이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민변 6개월 차인 새내기 박한희 변호사를 민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차게 대화를 이어가지만, 수줍은 웃음이 돋보이는 ‘트랜스젠더 여성’ 박한희 변호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최은빈 : 국내에서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로서, 혹시 남다른 고충이나 보람이 있으신가요.

박한희 :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하리수씨 같은 연예인이나, 유흥업, 예체능 등이 대표가 됐어요. 변호사라는 전문직 또는 사무직에서는 대표가 안 됐고요. 그런데 제 기사는 그게 화제가 됐던 것 같아요. 페북에 알려지면서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한 친구는 기사를 보고 트랜스젠더도 변호사가 할 수 있다고 부모님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고 하더라고요. 퀴어문화축제에 갔을 때도 젊은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와서 기사를 보고 감동 받아서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다고 하고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한 선택이 어쨌든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제가 한 선택도 나이가 많은 분들로부터 롤 모델을 받았던 거잖아요. “저도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끼면서 보람이 된 것 같아요.

고충은 사실 이게 최초이자 지금은 혼자잖아요. 그래서 “저로서 과잉대표 되지 않을까?” 그런 부담이 있는 거 같아요. 이거는 꼭 트랜스젠더 변호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나가도 트랜스젠더를 실제를 본 사람이라고 질문을 하면 거의 손 드는 사람이 없어요. 한두 명 정도. 그 사람들은 살면서 제가 실제로 눈앞에 처음 보는 트랜스젠더인거에요.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나라는 존재 행동 하나하나가 트랜스젠더 전체의 문제로 해석되지 않겠냐는 조심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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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얀 : 성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약자성을 깨닫고, 이것을 극복한 과정이 궁금해요.

박한희 : 저도 못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고, 무기력한 것도 많았어요. 남들과 다르다고 정체화한 건 중학생 때 13~14살 때였는데, 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한 28살부터였나 싶어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존재고, 이렇게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게 길었어요. 그에 따라 고충도 많았죠. 회사도 다녔지만,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중간에 다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바뀐 계기는 “더 이상 이렇게는 살기는 싫다”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건 29~30살 넘어가는 로스쿨 겨울방학이었는데,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서 의미가 있을까? 계속 숨기고, 감추고, 피해 다녀야 하나?”라는 억울함이 있었죠. 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내가 개인적으로 잘못한 건 사실상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는 데는 나만의 결정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도움들이 있었어요. 두 명 정도가 있는데, 한 명은 저보다 6살 많은 트랜스젠더 언니에요. 그 언니는 남자로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에서 커밍아웃했어요. 휴직하고 수술을 받고 성별정정을 해서 여자로 복직했고요. 지금도 그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 언니를 지금까지 안 건 벌써 10년 정도 되는데, 그분을 알면서 저도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 커밍아웃하는 것과 회사 안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건 난이도가 천지 차이거든요.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지 않겠구나”를 느꼈어요.

다른 하나는, 로스쿨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법조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과연 나 같은 성 소수자가 받아들여질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때 상담을 했던 분이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님이었어요. 저는 희망법에 상담 메일을 보냈고, 한가람 변호사님이 저한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변호사님은 자신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주변 동성애자 친구들과 후배들도 많이 있지만, 다 커밍아웃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오히려 운동하면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줬죠. 그때의 대화가 지금 제가 희망법에서 하는 일이기도 해요. 성 소수자를 위해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죠.

류태광 : 대한민국에서 MTF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여쭙고 싶어요.

박한희 :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MTF 트랜스젠더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운동적으로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말을 요즘 쓰고 있어요. MTF이라는 말 자체가 기정성별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안 쓰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많았어요.

그리고 사실 차별은 되게 개별적이에요. 똑같은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차별은 개개인에 따라 상황이 어떤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트랜지션(성별 이행)을 얼마나 했는지, 수술은 했는지, 성별정정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이런 차별을 겪는다’를 나를 기준으로 일반화할 수 없어요. 일단 제 기준으로는 저는 수술을 하지 않았고, 할 생각이 없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한국체계 내에서는 법성별을 바꿀 수 없는 상태고, 법적 성별은 남성이고 주민등록번호도 1번이에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신분증적 차별인 것 같아요. 신분증을 내세울 때, 내가 어디에 뭘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은행을 간다든지, 병원을 간다든지, 인터넷에 무엇을 가입할 때도 남성이라고 적어야 가입이 되니까요. 주민등록증은 항상 갖고 다녀야 뭘 할 수 있잖아요. 번호도 항상 입력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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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다는 게 법적인 차별에서 큰 것 같고요. 특히 저는 다행히 하는 일 자체가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이게 취업이랑 연관이 되거든요. 취업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성별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취업이 많이 안 돼요. 자기가 여성적으로 보이지만 법정 성별이 남성이니까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면접에서 떨어지고, “당신은 왜 주민등록번호가 이래요?” 라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정규직 이런 곳은 사실상 취업하기가 아주 어렵고요, 서류에서부터 떨어지거나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실제로 붙은 다음에 알게 되어서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으로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이 불안정해요. 또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판단하는 게 성별인 것 같아요. 가령 “남자야?, 여자야?”, “재 그거 아니야 그거?” 등. 제가 생각하기에 한 3~4개월에 한 번씩 겪는 것 같아요. 되게 비일비재한 것 같아요.

류태광 : 방금도 언급됐지만, ‘성 정체성’은 외관상 드러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박탈당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자연히 빈곤에 더욱 취약할 것 같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한희 : 실제로 2014년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성 소수자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거든요, 전체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실제 트랜스젠더 집단의 평균소득이 가장 낮게 나왔어요. 일본에서도 성소수자 직장 환경 실태 조사를 하는데 항상 트랜스젠더 집단이 가장 수입이 낮고 이직률이 높고 근속기간이 짧은 것으로 나와요.

이게 악순환인데 우리나라는 수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돈을 벌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했으니까 성별정정이 안돼요. 그래서 취업을 못 해요. 취업을 못 하니까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해요. 그러니까 취업을 못 해요. 이게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20대의 10년을 거의 돈 모으는 데에 쓰게 되죠. 비정규직이나 공장 일 하거나 알바하면서 모아야 하니까 5~6년, 길게는 10년, 이렇게 걸려서 그 일 하나만 하는 경우도 많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은 되게 복합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당연하고, 불필요하게 이력서에서 성별 표시를 안 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굳이 사람이 살면서 법적으로 성별이 요구되는 직장도 있겠지만 그게 꼭 필요하지 않은 직장도 있잖아요. 성별정정 요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죠.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빈곤이나 취업, 노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경원 :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요건과 관련해 법률이든지 판례든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지금 현재로선.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요건으로 허가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그보다 엄격하면 허가를 안 해주는 나라고요. 대법원의 경우 성별정정은 위에서 허가해주는 거고, 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판단 기준을 굉장히 엄격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가장 큰 틀은 이게 권리라는 걸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법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 거기서 도출되는 게 내가 나의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다른 사람과 차이 없이 내가 원하는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요. 세계 인권 선언에서도 그렇고 우리 헌법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걸 권리라고 생각하고 출발하면 의문이 되는 거죠. “그러면 이게 내 권리인데,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것도 수술하고, 저것도 수술하고, 이것도 고쳐야 해? 이게 정말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정당한 요건이야?“

결국, 프레임을 먼저 바꾸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애썼으니까 위에서 허가해주는 게 아니라, ‘너희 권리를 제한할 건데 이런 거로 제한하는 게 정당화될까‘라고 고민해야 하죠. 그래서 국제적인 추세는 최근에 아르헨티나 덴마크 몰타 등 6개 나라는 아무 조건이 없어요. 일종의 신고에요. 내가 ’성별을 바꿉니다‘라고 신고를 하면 ’바꿔줄게‘ 이런 식이에요. 가령 덴마크 같은 경우는 성별을 바꾼다고 하면 6개월 정도 숙련 기간을 둬요. 아일랜드는 이런 숙련 기간도 없어요. 아마 동성혼이 점차 늘어나는 것처럼 자기 결정권에 기반을 둔 성별정정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가 결정해서 하는 성별정정. 그쪽으로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우리도 언젠가는 한번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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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 외과 수술 자체가 되게 위험하고 평균 수명도 확 줄어든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이렇게 법이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박한희 : 수술이 되게 위험하진 않아요. 수명이 확 떨어지지도 않고요. 트랜스젠더 오해 중의 하나가 ‘오래 못 산다’가 있는데, 모든 외과수술이 당연히 위험성이 있고 신체적 부담도 있지만 죽는 수술은 아니잖아요. 그것과 비슷하죠. 그렇지만 국가가 그런 수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돼요. 우리 헌법은 신체의 자유와 운전성을 보장하는데 내 신체를 국가가 훼손하겠다는 거죠. 네가 너처럼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너한테 수술을 강제해서 너의 신체를 훼손하겠다는 거니까요. 사실상 국가가 외과수술을 강요하는 거예요. 이게 생식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옛날에 우생학적 절차처럼 국가가 불임수술을 강제하는 것과 같죠. 실제로 작년에 스웨덴 판결에서 트랜스젠더 수술 여건을 없애는 동시에 그동안 수술을 받았던 트랜스젠더에게 국가 배상을 해줬어요.

김민주 : 비교법적으로, 비교사회학적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성별정정과 관련해 특히 모자란 점이 어떤 지점이라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우리나라가 가장 특히 모자란 점은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요건인데, 우리나라는 미성년자가 성별정정을 못해요.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사실 이건 법적으로도 말이 안 돼요. 성인의 법률 행위가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행위죠. 심지어 법원에 따라서 이건 판사 재량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곳은 10년 전에 이혼한 아버지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해요. 다행히 최근 몇몇 법원들은 사유서를 제출하면 대체는 해줘요. 사람에 따라서 수술을 위한 돈은 사실 모으면 돼요. 그러나 부모님의 설득은 자기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부모님이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로 허가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요건 자체가 있는 건 정말 이상해요. 이건 정말 한국만 있거든요. 일본도 없는데 이게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최은빈 :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위해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신건가요?

박한희 : 사실 변호사는 성 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법조인이 된 건 좀 두루뭉술해요. 들으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회사 다니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삼성엔지니어링 건설회사를 2년 다녔는데, 거기 규율이 되게 심하거든요. 항상 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해요. 머리가 귀만 덮어도 선배가 지나가면서 “한희씨 머리 좀 잘라야겠는데? 미용실 좀 갔다 오지.” 이래요. 저는 그런 것들이 되게 싫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로스쿨이나 의전을 생각했어요. 전문직을 가지면 좀 자유롭잖아요. 그러면서 나 같은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전문직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뭘까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의사는 정신과 의사를 생각했고, 변호사는 법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의전과 로스쿨을 놓고 비교를 했는데, 의대를 다니는 친구가 의대는 규율이 빡세다 하더라고요. 의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머리도 못 기르고, 슬리퍼도 금지하고, 반바지도 못 입게 하고요. 그래서 의대는 가면 안 되겠다, 회사랑 다를 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로스쿨을 가자고 선택했어요. 당시에는 운동적인 차원까지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단지 내가 변호사를 직업으로 가지면, 사무실을 차렸을 때 어떤 형태로든 성 소수자 의뢰인에게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정도였죠. 제가 이렇게 직접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류태광 : 6개월은 짧으면 짧은 기간인데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소송을 수행하셨다면 소송이 있을까요?

박한희 : 제가 처음 희망법에 들어와서 했던 게 기지국 수사에 대한 위헌 소송이에요. ‘통신비밀 보호법 제13조’ 또 ‘기지국 수사’라고, 소위 말하는 검찰이나 경찰이 사건 현장 인근에 일어난 모든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수사가 있어요. 이게 희망법에서 2013년 첫 헌법소송을 했던 건데, 사실상 헌재에서 계속 묶어두고 있다가 이번에 공개변론을 열었어요. 제가 들어온 7월에요. 주심은 한가람 변호사님이었는데, 변호사님이 이거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 간지 일주일 됐는데, 헌법 소원 변론 요지서를 써오라고 했어요. 정말… 변시할때도 그런 건 안 쓰거든요. (일동웃음) 헌법재판소 변론 요지서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써오라고 해서 써와서, 첨삭 받고 고치고 고쳐서, 어떻게 했어요. 성 소수자 인권은 저도 알고 있고 활동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건 정보 인권적인 내용이니까 개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7월이면 대통령을 탄핵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인데, 말로만 듣던, 그 대법정에 공개변론을 하러 간 거예요, 제가. 저는 아직 수습이니까 방청석에 앉아 있었지만, 어쨌든 2개월 만에 거기 간 거니까, 엄청 떨렸죠. 그래서 가족들한테 전화하니까 너 벌써 거기 가냐고 하더라고요. (일동웃음) 왜냐하면 헌법 소송은 안 하면 정말 안하거든요. 본인이 의도하지 않으면 안 하게 되니까요.

류태광 : 정치, 경제, 언론 등 산적한 적폐가 많기 때문에 성 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주장도 일각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주장에 하시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박한희 : 성 소수자 인권이라는 게 마치 성 소수자만 챙기는 것 같지만, 어떤 인권이 하나의 인권으로 분리 돼서 떼놓고 단계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인권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차별도 사회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죠. 소수자 인권이 말하는 건 결국 차별이에요, 사회적인 차별.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차별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 왜 나중이 있고 지금이 있죠? 오히려 그게 가장 큰 적폐가 아닌가. 권력적 차별이나 경제적 차별, 노동 차별 등이 다 복합해서 일어난 게 이전 정권의 문제였는데, 그 차별이라는 적폐를 무시한 상태에서 사회적 경제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겠느냐 싶어요. 사실 그건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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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 법조인으로서 성 소수자 인권 실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성 소수자 운동 전체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저번 제네바 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 가서 얘기한 건데, 일차적으로는 군형법 추행죄죠. 우리나라는 징집국가로써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고 그 군대 문화의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기 때문에 군형법 추행죄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사회적 조항이에요. 군형법이 지금은 처벌하고 있지만, 처벌을 안 한다고 해도 성 소수자는 언제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이등 시민이 될 수 있는 상징적인 조항이기 때문에 이거는 무조건 없애야 할 조항이에요.

두 번째로는 입법과제로써 얘기할 수 있는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건 벌써 10년째 얘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제정이 안 되고 있어요.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은 기본 틀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아니라는 걸 약속받고, 동시에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틀이 깔려야지, 그때부터 최소한 구체적인 제도적 보장으로 무엇이 필요할지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평등이라는 틀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뽑자면, 과제로써 하고 싶은 건 교육. 교육부에서 만든 국가 수준의 성평등 성교육 표준안은 성 소수자 얘기가 전혀 없어요. 사실 우리는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안에 대해 계속 폐지 운동을 하고 있어요. 표준안은 ‘동성애는 인권의 문제이므로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음’이라고 앞에 써놨어요. 동성애는 인권과 사회 이런 데서 가르치지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죠. 교육현장에서 교육이 되어야지, 그 사람들이 나중에 더 자라서 어떤 의견을 실제로 낼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김민주 :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십 년 째 공회전하고 있는데 이 제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박한희 : 되게 복합적이겠죠. 사실 처음에 가로막은 건 재계와 교회의 반대였어요. 교회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아니었죠. 오히려 재계의 반대가 최종적일 거라 생각해요. 비정규직 차별 금지나 학력 차별 금지 등 지금 나오는 블라인드 채용처럼 이런 걸 하면 저항감이 있으니까요.

정부랑 국회가 의지가 없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실 필요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부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차별이라는 게 지금 되게 복잡한 문제라서요. 사회적으로 우리가 평등이 아직 확산이 안 됐을 수도 있어요.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는 동의하지만, 어떤 게 정말 차별받지 않는지에 대한 의식도 필요한 거니까요. 사실 그걸 끌어올려야 하는 정부는 사회적 논란,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동력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노동, 장애, 이주, 성 소수자, 거의 모든 분야의 114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어요. 전방위적으로 캠페인과 서명운동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대중인식 개선과 차별이 뭔지에 대한 간담회도 하고, 정부 대상으로 법안을 만드는 것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공회전하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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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광 : 얼마 전 지자체가 제주퀴어문화축제나 퀴어여성체육대회를 위한 장소를 불허한 사건이 있었는데, 성 소수자 차별은 아직도 가시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박한희 :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오늘이 집행정지기일이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건 제가 직접 하지는 않았고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제가 기획단이에요. 제가 차별받은 당사자에요. (일동 웃음) 불허 통보를 받고 실제로 면담도 갔어요. 이건 지금 인권위 진정을 써서 내서 인권위 진정에 들어가 있는 상태고요. 얼마 전에 궐기대회도 했었는데, 그것도 항의하는 것이었죠.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살면서 너무나 편하게 가는 체육대회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허를 당한 것은 일상에서 차별을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체육대회는 학교 운동회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 열리거든요. 이런 것들을 좀 더 의미를 살리고 얘기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건지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일을 당하니까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내가 무슨 차별을 받는지 확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넓은 권리에서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와 닿지 않는데, ‘내가 공을 차고 싶은데 못 차게 한다.’라고 하면 피부로 느껴지니까, 좀 더 얘기할 수 있고 의미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도 있는 것 같고요.

최새얀 : 로스쿨에서도 LGBTQ를 삶으로 사는 법조인들도 많을 텐데, 미리 경험한 입장에서 예비 퀴어 법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한희 : 할 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로스쿨이 생기면서, 로스쿨이 LGBT퀴어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실제로 많이 가거든요. 일종의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거죠. 전문직이라는 직업적 안정성, 사무직을 가졌을 때 비해서 전문직을 가졌을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로스쿨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도 이 법조에서 끝날 것으로 생각했어요. 로스쿨을 들어왔지만 들어와서 커밍아웃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로스쿨 들어온 이유는 그냥 커밍아웃 안 하고, 남자 변호사로 살면서 성 소수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왔어요. 실제로 저 주변에 그냥 법조인이 아닌 커뮤니티의 트랜스젠더분들도 “너 커밍아웃하면 끝난다, 너 법조계에서 대체 어떻게 커밍아웃할 것이냐, 말이 되냐“라고 했는데, 끝나진 않더라고요. 당연히 그게 항상 좋은 결과로 나온다고 볼 순 없지만, 그냥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게이 같은 경우에는 게이 법조회라고 있어요. 퍽퍽한 법조계 현실에서 게이다움을 잃지 말기 위한 게이 법조회가 있거든요. 한 오십 몇 명 있어요. 혹시 게이분이면, 거기를 가입해도 좋고. LGBT 법조회도 만들고 싶은데 아직 못 만들고 있지만, 아마 점점 만들어질 거예요. 현재 로스쿨생이나 현직 법조인을 대상으로 여름마다 ‘LGBTI 법률가대회’도 있어요. LGBTI 법률가들도 법조회의 형태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고요. 어쨌든 본인이 항상 모든 걸 드러내고 살 순 없지만, 어떻게든 숨을 틀 수 있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 그런 것들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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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빈 :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따로 있으셨나요? 질문지에 없어서 아쉬웠던 점,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신가요?

박한희 : 저희 희망법은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일동 웃음) 민변 회원분들 많이 후원해주세요.

월, 2017/11/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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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정기총회 감사 인사말

 

- 회장 한택근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제28차 민변 정기총회가 2015.5.30.-31. 양일간에 걸쳐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132명의 회원과 6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역대 최다 참석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제28차 정기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식전 행사에서는 모임이 ‘회원 1,000명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고, 모임의 진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에서는 모임의 임원선출에 관한 회칙 규정을 정비하였고, 조직의 중·장기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발전기금 사용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집행부는 안건을 통과시켜 주신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임의 발전을 위해 배전을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아가 이번 정기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회원 분들의 뜨거운 열망과 헌신적 활동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일어나 ‘회원 천명 시대를 맞는 모임의 특별결의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민주사회를 향한 회원들의 결의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모임은 중대한 도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밖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인권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정기총회에서 보여주신 회원 여러분의 열망과 결의에서 찾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사무처는 회원 여러분의 헌신과 지혜가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넘실대는 ‘민주사회’로의 여정은 한시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민변의 자랑스러운 선배님, 동료 및 후배 회원 모두 깊은 동지애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 2015/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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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입법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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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는 지금, 핵사고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하여 탈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 등 많은 국가들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쇄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고정적인 가격으로 매입해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제일 효과적인 제도로 알려져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채택하여 재생에너지를 확대해간다면 핵발전소와 기후변화의 주범 석탄화력발전소 또한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 햇빛모아 탈핵하자!! - 이번 제 20대 국회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반드시 정책입법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을 모아주세요 :D

* 문의: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02-735-7067)

서명 주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가톨릭환경연대, 경주핵안전연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나눔문화, 노동자연대, 녹색교통운동, 녹색연합, 대안교육연대,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 동해안탈핵천주교연대, 두레생협연합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시민연합,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방사능시대우리가그린내일, 보건의료단체연합, 불교환경연대, 사회민주주의센터, 사회진보연대, 삼각산재미난학교,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새날희망연대, 생명살림연구소, 생명평화마중물, 생태지평, 성미산학교,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시민평화포럼,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서울아이쿱생협,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나눔과평화, 에너지전환, 에너지정의행동, 에코붓다, 에코생협, 여성민우회, 여성환경연대,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공동행동,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영덕핵발전소반대포항시민연대, 원불교환경연대, 의료생협연합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학생행진, 정치소비자연대, 차일드세이브,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천도교한울연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청년초록네트워크, 초록교육연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태양의학교,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하자작업장학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살림연합회, 합천평화의집, 핵발전소확산반대경남시민행동, 핵없는세상,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핵없는세상을위한의사회, 핵으로부터안전하게살고싶은울진사람들,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환경과공해연구회,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일, 2016/04/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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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초청강연 후기

 

- 권오훈 회원

 

6월 25일 열린 민변 6월 월례회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초청강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민변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강연에서는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하여 남북 관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통일 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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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993년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1998년 국민의 정부 당시 통일부 차관, 2002년 참여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북한과의 장관급 회담 등 북한 문제에 관한 주요 실무를 직접 담당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장관급 회담 당시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 내용을 비롯하여 공동 선언에 대한 협상 과정 등 고위급 회담 당시의 뒷이야기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향후 예측 등을 정세현 전 장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3명의 대통령이 진행한 통일 정책을 모두 수행한 정세현 전 장관은 통일 정책에 있어서는 김영삼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 큰 차이가 없으며, 바람직한 통일 정책은 결국 북한과의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의 핵심은 모두 6. 15. 선언에 담겨 있으므로, 진보나 보수를 불문하고 6. 15. 선언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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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일 정책은 단순히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의 치열한 정치, 외교적 대립 안에서 이해되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G2를 형성하려 하고 있으며, 군사, 경제적으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로도 외연을 넓히려 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의 문제를 쉽사리 미국 및 일본 등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남한도 중국, 미국 나아가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의 외교적 조율을 통해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을 배제하다가는 통일 문제에서 주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벌써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 통일을 제외하고 논할 수가 없는 만큼, 통일에 대한 한국 정부, 나아가 국내 전문가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정세현 전 장관의 강연을 통해, 남북 문제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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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통일위원회에서는 남북법제팀,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등 통일 관련 활동을 통해 북한 및 남한의 관련 제도를 이해하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 분들의 많음 참여 부탁 드립니다.

금, 2015/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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