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이다30] 겨울밤, 뜨거운 이야기
여야 함께 발의한 청년기본법,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6개월째 국회 표류 중인 청년기본법, 연내 통과 촉구한다
청년기본법 연내 통과로 종합적 청년정책 수립· 시행 근거 마련해야
1만인 서명운동에 이어 55개 단체 및 514인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통과 촉구선언
청년유니온,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참여연대 등 전국의 청년단체들이 구성 한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이하 청년기본법 연석회의)는 11월 14일(수)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청년기본법 연내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지난 1만인 서명운동에 이어 55개 청년단체와 514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통과 촉구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청년기본법 연석회의>는 지난해부터 전국 15개 지역 간담회 및 캠페인, 10,158명의 서명운동, 5개 원내 정당 국회의원 23명과 공동으로 개최한 국회 토론회 등을 진행한바 있습니다. 이에 국회에서는 청년미래특별위원회(위원장 이명수 의원)를 구성하여, 청년기본법 합의안을 합의하였고, 지난 5월 21일 특위에 참여한 18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청년기본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야 의원 합의로 법안이 발의된 지 6개월이 다 되도록 국회 법안 논의가 미진한 상황입니다.
지난 20년 간,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청년이 겪는 삶의 문제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왔습니다. 이미 2016년 말에 시효가 한차례 연장된 바 있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현재 청년을 위한 정책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이 법의 정책 목표는 미취업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만이기에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동안 청년정책은 상황진단과 근본적 검토 없이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반복적으로 갱신해오기만 했습니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시효가 1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또다시 이를 연장하는 것에 그칠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심각한 청년의 현실에 비추어, 청년정책의 종합적 지원근거가 되는 청년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청년기본법 연석회의는 현재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청년기본법이 하루 빨리 제정될 수 있도록 <청년기본법 하반기 국회통과 촉구 선언>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원들에게 전달하고, 연내 통과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별첨 1) 식순 및 현장사진
(별첨 2)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통과 촉구 선언문
(별첨 3) 청년기본법 연내 통과 촉구 선언 단체 및 개인 명단
(별첨 4) 청년기본법 설명자료
별첨 1. 기자회견 식순
기자회견 식순
2018. 11. 14. 수요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
※ 사회: 이정민(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위원)
■ 기자회견 취지설명
○ 청년단체 발언
-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 정당별 청년조직 발언
-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
- 정혜연 정의당 청년본부장
- 김선경 청년민중당 대표
- 우인철 우리미래 대변인
○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통과 촉구 선언문 낭독]
-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배혜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사무국장
○ 퍼포먼스
별첨 2.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통과 촉구 선언문
청년기본법 하반기 국회 통과 촉구 선언
역대 정부가 청년고용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20년 간 엄청난 예산을 들여왔지만, 오히려 청년들이 겪는 삶의 문제는 악화되어 왔습니다. 심각해지는 청년문제의 구조적 배경에는 일자리를 넘어 주거, 자산, 교육, 문화, 부채, 건강, 빈곤 등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단단한 격차와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법인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취업을 원하는 자’로만 청년을 정의하여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수단은 미취업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으로만 한정되는 현실입니다.
현재 중앙정부에서 청년일자리 예산의 비중을 대폭 늘렸습니다.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열악한 임금과 노동환경으로 인해 청년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과,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이 3년 이상 재직할 경우 목돈을 마련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중앙정부의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대표적 정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정도의 근속을 전제로 정부에서 추가적 인건비를 지원하면 청년들이 자연스레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실업난도 해소되고, 청년들의 삶도 개선될 수 있다는 관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현 중앙정부 정책의 한계입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소득이 낮아서 청년들이 힘들어 한다는 단순한 진단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사회가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가 현 청년세대의 삶의 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존의 낡은 방식으론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다시금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취업을 원하는 자’ 만이 청년이 아닌,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청년으로서 당사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충분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청년단체들은 지난 9월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를 결성했습니다. 청년기본법을 제정하여 중앙정부 정년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를 모아내기 1만 명의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기자회견과 국회 토론회를 진행하며 입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7개의 청년기본법안의 국회미래특별위원회이 논의를 거쳐 여야합의안을 마련하고 현재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계류중입니다. 발의 된 청년기본법 여야합의안에 따르면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서 ‘취업을 원하는 자’로 한정된 청년에 대한 규정에서 19세-34세의 보편청년으로 확대되고 국무총리실이 각 부처의 청년정책을 통합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정책시행에 있어서도 고용정책뿐 아니라 일자리, 주거, 부채,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됩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청년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입니다. 이미 17개 지방자치단체들은 청년기본조례제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중앙정부만 남았습니다. 11월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국회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국회는 청년기본법 제정을 바라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하루빨리 청년기본법 제정에 나서야 합니다.
2018년 11월 14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별첨 3. 청년기본법 연내 통과 촉구 선언 단체 및 개인 명단
[단체]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유니온(서울,경기,인천,대구,경남,부산,광주), 심오한연구소,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나눔자리문화공동체, 청년광장, 청년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봄누리, (사)청년문화허브, 부산청년들, 부산청년포럼, 수원청미래충전소, 전주청년들, 아모틱협동조합, 시흥청년아티스트, 청년고리,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제주청년네트워크, 제주청년협동조합, 고양청년네트워크파티, 작은자유,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광주 청년센터 The 숲, 수원시 청년지원센터, 대구시 청년센터, 우리미래,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청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대학생위원회, 정의당 청년본부, 청년민중당, 꿈틀프로젝트 , 부천연대 청년위원회 오늘 [ON:L], 노무현재단, 부산청정넷, 서울청년민중당, 리드미, 고양시청년협의체, 시흥시청년정책협의체, 서울혁신파크유니온, 내지갑연구소, 빚쟁이유니온, 길:드, 대구청년빚쟁이네트워크, 깨끗한인연청연, 매니페스토청년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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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_ 우리들의 일그러진 대학
어느 교수의
부끄러운 고백
글.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비판과 저항의 근거지였던 대학은 사라졌다
대개 젊은이들은 도전적이며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된다. 가진 것,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수화된 소위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새로운 세대는 항상 골칫거리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세대 사이의 갈등은 사회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기본 동력이었다. 삶의 굴레로부터 조금이라도 덜 구속된 청년들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생각과 실천은 사회가 ‘현재’에 붙들려 정체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었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뒤의 세대가 자신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봉쇄하지는 않았다.
봉쇄하지 않았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뒤에 오는 세대의 비판과 저항은 더 거세지면서 ‘혁명적’ 변화에의 열망이 생겨나곤 했다. 더 길게 보면 ‘혁명’은 언제나 ‘혁명 이후’의 질서를 동반하는 것이었고 질서는 언제나 그 안에 혁명의 계기들을 포함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대학은 청년세대의 비판과 저항이 지탱할 수 있는 근거지 중의 하나였다. 이미 보수화되어 기성세대의 주축이 되어 버린 과거 민주화세대가 착각하는 것처럼 대학 자체가 순수한 학문의 정신에 투철한 상아탑이라서, 대학 교수들이 학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지식인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편에 서 있다. 대학이 비판과 저항의 진지일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이 봉쇄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의 비판정신과 저항행동 그 자체에 의해 가능했을 뿐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한때 한국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던 사람들, 스스로 민주화를 성취한 세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청년세대가 가지는, 지금까지는 결코 막을 수 없었던 저항과 비판의 정신을 매우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온통 ‘경쟁’과 ‘효율’의 구호로 가득 차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것. 허접하고 두서없는 주장을 훈계조로 이야기하는 강의를 건너뛰고 루소, 마르크스, 레닌의 책을 읽고, 때때로 낮술을 마시며 한국 사회의 성격과 혁명을 이야기하던 ‘대학생’은 대학에서 사라졌다. 사회에서 알아준다고 하는 소위 명문대를 나와도 ‘먹고살기’ 위한 일자리를 찾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턴자리, 계약직으로라도 일하기 위해서는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야 하기 때문이다. 결석하면 사유서와 병원 진단서를 첨부하면서까지 학점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에 굴종하는 대학 그리고 교수들
기가 막힌 일은 정부에서 이런 세태를 부채질한다는 것에 있다. 감사를 한답시고 출석부 관리여부를 ‘꼼꼼히’ 검토한다. 교수들에게 그런 것이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의의 자율권은 점점 더 줄어든다.전자시스템으로 출결석이 체크되고, 강의는 ‘교수법’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된다. ‘잘 가르치는 것’은 학문적인 토론과 비판적 사고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획일화된 모듈에 맞추어 ‘단편적인’ 지식 (차라리 정보라고 하자)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돈줄을 쥐락펴락’하면서 취업률을 재정지원의 중요 기준으로 제시한다. 대학을 기업처럼 생각하는 정부에 독재 시절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 굴종적인 태도로 그것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대학들은 이제 학생상담마저도 ‘건당’ 얼마로 계산하여 수당을 지급하는 ‘만행’을 공모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온갖 대학 지원 사업들은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 내용은 텅 비어있고 구색만 갖추면 되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훌륭히’ 통과한 고위 공무원들은 ‘말 안 들으면 돈 안 줄 거야’, ‘질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 숫자나 불려’라는 천박한 발상을 온갖 화려한 말들로 은폐하는 발군의 실력만은 갖추고 있다.
아직 ‘최소한의’(정말 글자 그대로 최소한이다)의 자존심은 남아 있는 교수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어디서? 삼삼오오 모여 앉은 술자리에서,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그러고 나서 연봉을 결정하는 논문 편수를 어떻게라도 ‘불리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편수 불리는 데 ‘발군의 실력’을 가진 동료교수에게 시비를 건다.
대학이, 그리고 교수들이 터득한,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청년 세대의 비판과 저항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기예는 이렇게 스스로를 화폐와 시장의 논리에 종속시키면서 얻어진 것이다. 지금의 교육이 어떻게 도래할 미래 역사를 왜곡할지는 걱정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시장과 화폐의 강력한 논리 앞에 어떻게 생존할지, 어떻게 하면 자기가 속한 학과의 이익을 보존할지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이해관계에 압도당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 속 원숭이가 되어가면서도 스스로를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착각하는 것 자체가 ‘종속’의 지표다. 이렇게 촘촘한 ‘자본주의적’ 권력망에 포획된 ‘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보수적’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한 다음 세대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충분히 비판적이지 않다고, 충분히 자율적이지 않다고.
"사회가 온통 ‘경쟁’과 ‘효율’의 구호로 가득 차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것. 허접하고 두서없는 주장을 훈계조로 이야기하는 강의를 건너뛰고 루소, 마르크스, 레닌의 책을 읽고, 때때로 낮술을 마시며 한국 사회의 성격과 혁명을 이야기하던 ‘대학생’은 대학에서 사라졌다."
지성인이라는 착각, 전문가라는 위선에 망가져가
차라리 뻔뻔한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대학교수들은 멍청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힘도 권력이라고 학생, 조교, 시간강사에 ‘갑질’하는 것을 보면 영악하고 뻔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굳게 믿는 것을 보면 아둔하다.
금전적 보상을 위해 논문을 ‘가공하고’ 연구비에 ‘민감한’ 것을 보면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존재 근거인 대학의 기초를 허문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각자의 연구실에서는 ‘권력’을 성토하고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대학이 잠식당하는 것을 한탄한다. 그러나 누군가와 연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정치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멍청하고,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들의 영향력은 대학을 망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망치고 있다. 정부의 중요한 결정과정에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가적 지위’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위는 평범한 시민들의 필요, 욕구, 열망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무시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정작 그들 스스로는 전문가적 ‘정보’를 왜곡하면서까지 정부와 기업의 구미에 맞게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그렇게 한다.
결국 전문가들이 만든 교육 체계는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타자와의 공감과, 나를 넘어서 집단의 이익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키워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오직 옆의 동료 인간을 밟고 경쟁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숙명’이다. 그런 현실은 아무리 불합리할지라도 적응해야 하는 조건이다. 비판과 저항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감과 유대, 연대의 토대는 허물어져 간다.
부끄럽다. 대학이 대학답지 않고 교수가 교수답지 않는 사회에서 대학 교수로 ‘살아내야’하는 자의 자기고백이기에 너무나 부끄럽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본다. 아무리 권력의 망이 촘촘해도 청년세대의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완전히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약한 개인의 정신은 비관에 빠져 있지만 말이다.
특집. 우리들의 일그러진 대학 2019년 1-2월 합본호 월간 참여사회
1. 어느 교수의 부끄러운 고백 서영표
2. 그들이 대학을 사유하는 법 김정인
3. 대학 카스트제도 맨 아래, 대학원생이 있다 신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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