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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논고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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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논고를 시작하며

익명 (미확인) | 월, 2019/03/04- 11:23

* 폴로티 한 장을 위해서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는 2불을 지불하는데, 이를 미국 소비자는 왜 70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가?

* 사람들은 이같은 가격체계에 대해 당연히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학 어디에도, 경제학자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경제학자가 주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현실의 경제현상에 대해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고, 맑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간하였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생산시스템은 사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아니다. 그가 제창한 균형이론,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 숭상하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부론에서 다루는 생산시스템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배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미스는 1820년대 처음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에 대해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 즉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이 거의 7~8년간이나 지속되고 이후 매 10년마다 반복되는 비정상(?)상황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칼 맑스는 영국이 한창 자본주의 금자탑을 쌓고 있던 1860년대에 자본론을 썼다. 그가 목도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는 과정이었고, 그가 생각해낸 이윤율 경향저하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0년, 맑스시대 영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 100년 보다 1.5배는 긴 기간을 지내 오는 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향적 저하론과 무관하게 비교적 자~알 지내고 있으며, 도리어 그 경쟁 상대였던 현실사회주의를 경쟁에서 패퇴시켜 인류유일의 경제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살아 생전에는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채 시작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본원리로서 고전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숭고한 잣구의 한 점 오류도 없이, 경제학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맑스 사후 150년 간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전 세계 8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 유일의 경제시스템이며 어디에나 그의 제조공장을 만들 수 있고, 증권화를 통해 산업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감을 대신하는 기계적 장치로 인하여 자율 생산까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10년마다 불황, 혹은 장기적 만성불황이 일어나고 있고, 전혀 망할 기색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250년간 자본의 철옹성이지만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실제적인 소비자로 등장한 만큼, 그만큼의 지분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 잠깐 다시 처음의 폴로티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학생 때 잠시 안면이 있었던 노동가치설만 가지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미국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엄청난 가치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음식물과 생산이 많아 밭에서 썩히고 있는 농산물과 비교되는 수많은 아프리카 아동들의 굶주림, 이들에게 하루 1불이면 2~3명이 풍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된 상품은 당연히 소비될 것이므로! 이는 맑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품의 개념,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의해 교환되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인터넷 쇼핑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초반에는 모든 생산이 상업자본의 의한 주문생산이 이루어졌다. 즉 1700년대 말에서야 근대적인 소매점이 생겼고, 귀족이 아닌 일반 자본가에게조차 상시적 소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이때부터 산업자본이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여가 지난 1900년대 초중반이후 노동자에게도 전면적인 소비의 기회가 주어진 대량소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인터넷쇼핑 시대, 유통의 힘이 생산을 압도하고 나아가서 소비가 생산을 압도할 준비가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2019년, 우리는 150년 전의 맑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세상, 생산과 분리된 자본의 시대, 국제금융의 시대, 새로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예고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온 가치와 가격에 대한 사고를 보다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 가치와 가격에 기본사고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탐험이 필요하다. 모든 사변이 과학적이려면 그 사변의 근거가 되는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언이 말하는 1800년대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와 많이 다르다. 근대교육이 없던 시절의 노동자들은 신문물과 과학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높은 계층이었다. 현실세상이 변하는 만큼을 사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은 따라 가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주변의 것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학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들도 지배적 계층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들만 보니, 지금 우리 주변의 현상들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그의 기원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대 종교도 생겨날 시점에서는 최고의 과학이며 인간 사고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2000년 전의 사고체계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거듭 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자신만이 가진 것, ‘과학적 사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참으로 게으른 종족이다.

* 일생의 노력으로 새로운 경제학적 사고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원리인 가격과 가치에 대해서, 맑스 사후 150년 지나고도 이윤율저하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는 어째서 붕괴했는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는 현재 어떤 단계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내부에 위치한 화산들은 어느 지점에 있고 어떻게 분출될 것인지 등을 힘 닿는대로 밝혀 보고 싶다. (‘힘되는만큼’에 방점!!! ㅎㅎㅎ)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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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를 올릴 것인가 廟堂折子” 아니면 “저잣거리 객담 江湖段子을 나눌 것인가”: “경험의 돌파력”

경험연구는 지청학자가 1990년대 전력을 기울였던 과제이다. 하지만 다음의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선, 만일 경험연구를 고무한 것이 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왜 1980년대에 먼저 이런 요구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는 매번 좌익지식인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를 대표로 하는 민속학, 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민속학과 인류학을 통해서 기층의 경험에 대해서 직접적인 이해를 형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중국은 “실천은 진리를 경험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말이 있어도,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을 가져오지 못하고 매번 이론에 대한 열기, 문화에 대한 열기만 불러일으켰다. 의도는 일종의 추상적 사상으로 새로운 거대체계를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두번째, 지청학자들은 왜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이론 자원으로 전환하지 않았는가? 1968년 구미의 학생운동은 직접적으로 20세기 서방사회과학의 발전을 낳았다. 상당수 학자들이 직접 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그들은 개인의 의식, 생활방식, 대중문화의 중요성 등을 친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와 국가 등의 범주에 대한 새로운 함의를 사고했다. 독일에서 나치의 발흥은 제2차세계대전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서방인문사회과학에 끼친 영향이 2차대전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킨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일군의 학자들 특히 유럽의 유태인 학자들이 자신이 나치점령시기에 겪은 독특한 경험에 대해서 일련의 문제의식을 품고 깊이 사고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 아렌트의 이론철학 사고와 같이 대단히 개인적 경험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비서구사회에서도, 남아시아학자들이 민족-국가의 이론에 대해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들은 민족독립운동과, 인도-파키스탄의 분할통치를 근거리에서 관찰했을 뿐아니라, 그들의 독립후 사회운동 참여 경력이 특히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독자들도 익숙한 타케우치 요시미竹内好는 루쉰과 마오쩌뚱에 대해서 대단히 독창적인 분석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특히 중일전쟁에 침략군으로 참여한 한명의 병사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경험과 연구대상의 경험간에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독특한 사상이 태어났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개별적인 경험을 모두 포기해 버린다면, 그래서 이런 운동과 전쟁의 처리가 거시적인 역사의 사건으로만 다룬어진다면, 이와같이 경험이 동기가 되는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왜 문화대혁명같이 특수한 경험이 새로운 일련의 사상으로 체화되지 못하는가 ? 주류 담론안에서, 문화혁명이 이미 하나의 오류라고 정리됐고, 토론의 주제는 대개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원인이다. 특히, 자유주의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문화대혁명은 비판의 대상이다. 10억명 중국인의 10년간 생활경험이 충분히 분석되지 못하고 있다. 위루오커遇羅克의 <<혈통론>>은 당시 중국판 인권선언으로 여겨져서 회람됐지만, 거의 아무도 홍위병내부의 서로 다른 그룹들이 당 고급관리의 인정을 받으려고 경쟁한 결과의 일부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런 사고와 경험이 결합될 때만, 우리는 그 본문을 이해할 수 있고, 충분히 그 가치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혁명에 의해서 ‘단절’된 1949년 이전의 학술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면서, 상대적으로 혁명후에 형성된 전통을 무시해왔다. 하지만 이 ‘단절’이야말로 가장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부정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을뿐이다. 그리고 혁명전 학술연구가 생명력 넘치는 자신의 전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당시 학자들의 인생경험과 그들이 사용한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문서형식의 지식만을 과도하게 중시하다보니 배후의 경험과 그 경험이 된 지식을 고찰하지 못했다. 지식 자체의 누적만을 중시하고, 지식이 쌓이는 방식의 전환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다.

<사진5> 우리는 혁명에 의해 ‘단절’된 1949년 이전의 학술전통을 회복하고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단절’ 자체가 대면하고 분석해야할 가장 가치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단절은 반동적 폐기 대상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최소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 주류의 전통사회사상과 아마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하지만 가장 경험을 중시하는 중국문화는 서구로부터 수입된 ‘경험’이라는 분석범주를 일본어를 빌려서 서술된 것이다. 유교사상은 경험을 강조하는데 왜냐하면 ‘실천이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실천을 초월하는 신성한 준칙을 부정한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경험은 예약질서의 실시방식이고, 경험은 간섭의 대상이지 분석의 기초가 아니다. 자위자주自為自主의 범주도 아니다. 우리의 오늘날 사유를 반영하면, 이것은 경험 자체는 의의가 없다는 뜻이다. 이론의 빛 아래서만 진정한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 두번째는 지청의 사회지위와 관련이 있다. 지청은 사회주의체제내부의 불평등관계의 산물이다. 지청은 지식청년, 도시지식청년이라는 문자적 의미이외에도 농촌으로 하방되어 내려간 도시지식청년을 의미한다. 당시 그들의 우월적 지위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박탈당했으며, 그들에게 일종의 무의식적인 지식귀족기질을 부여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마음으로 천하를 품었으나, 단순히 독서와 사고를 즐거움으로 삼고, 자신의 물질생활을 근심거리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고가 진정으로 천하공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지청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들이 정말로 농민들을 인정하고, 농민들을 이해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지청학자는 비록 수많은 관찰을 남겼지만, 자신의 위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에 관찰은 소재로 삼았을뿐 자신의 경험은 새로운 관점속에서 활성화되지 못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경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1990년대 경험연구의 첫번째 임무는 교조주의와 탁상공론에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경험이라는 것은, 경제학 혹은 심지어 자연과학이 말하는 팩트와 데이터에 가까왔다. 객관성과 재현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지청시대는 거시적 통일화 서술을 추구한다.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전면적인 틀을 제공해야할 뿐아니라, 특정한 입장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서술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길 희망했다. 이렇게 경험의 개체성, 주관성, 분열과 충돌이라는 특징때문에 왕왕 소란스러움으로 간주되어 차단당하기도 했다.

<사진6> 지청시대가 추구하는 거시적 통일화 서술. 중국을 해석하기 위한 큰 틀을 제공할뿐더러, 이 서술이 특정입장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지청학술시대의 경험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사회과학에 대해서, 특히 내가 속한 인류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경험은 인류학의 목숨같은 것이다. 하지만 왜 경험이 이론에 우선해야 하는지, 왜 민족지에 경험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강조하는지, 그 배후의 철학과 정치의식의 함의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비인류학자가 보기에, 인류학은 일종의 방법론에 불과하다. 필드조사와 동의어이고, 다른 학과를 위해 중국특색의 소재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 인류학자는 그래서 강조한다. 인류학의 진짜 포부는 자신의 이론 체계를 수립해서, 다른 학과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지금의 체제화 압력하에서 원래 체재화를 가장 반대하는 성격을 갖는 인류학은 반대로 체재화를 당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자원의 획득을 꾀한다. 중국 명문대학의 인류학과 학과장들이 함께 모여 앉으면, 제일 중요한 화제는 첫째, 어떻게 국가가 정한 학과체계안에서 인류학을 2급에서 1급으로 승격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주류 담론과 긴밀하게 결합할 것인가이다 (이런 주류 담론에는 ‘조화’, ‘거버넌스’, 그리고 ‘일대일로’, 당연히 ‘중국학파’가 있다) 인류학을 선전하고 주류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명문대학의 시니어 박사과정 지도교수는 학부과정 신입생들에게 인류학이 어떻게 부자, 권력자를 만들고 역사를 바꾸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지 선전한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외국의 인류학이 역사적으로 국가정보기관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 이것은 (그런 부끄러운 학문적 역사를 갖는) 서구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중국인류학이 이렇게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류학의 원래 임무가, 주류가 보지 못하거나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다중적인 사회모순을 충분히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고, 주류의 관점으로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약자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고, 주변화된 경험을 통해 중심부의 이론에 질문을 던져서, 모두를 주류담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들을 거의 완전히 망각한 것같다.

인류학은 스스로를 항상 주변부에 위치시키기때문에, 전세계 어디서나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류학적 경험관의 발흥이 서방 현대사회과학 발전의 핵심 실마리로 간주될 수도 있다. 코넬이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교과서속의 소위 사회학은 서방공업사회와 근대성에 대한 대답이지만, 여전히 최근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기 위한 것이다. 구미사회학 최초의 목표는 사실 세계성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1881년에 출판된 사회학 교과서의 제목은 “사회학: 민족지를 기초로 함”이었다. 확실히 만일 타문화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왜 자기의 생활과 실천을 고찰대상으로 삼았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처음에 이러한 세계성의 차이는 문화확산론을 통해서 특히 진화론을 가지고 해석됐다. 그래서 말리노프스키의 장기적인, 현지, 참여방식의 조사는 혁명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문화에서의 생활경험이 진화단계의 차이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곤혹스럽게 여겨지거나 혐오스러운 생활방식조차도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지인에게 배워야 한다. 당사자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철학사변안에서는 원래,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삶의 필수 행위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지만, 이런 차이가 충만한, 파편식의 개체경험이야말로 풍부한 함의를 얻을 수 있고, 부단히 새로운 사회과학문제를 발견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의 본질적 특징은 아니다. 반대로, 인류학은 역사의 우연한 현상에서 탄생했다. 이것은 우연히도 유럽사상가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예를 들어 칸트의 ‘내재성’ 사상은, 사회를 주재하는 역량이 외부의 신령이 아니라 사회내부에서 온다고 아는 것, 그리고 영국의 실증주의철학은 귀납적 인지론을 강조한다는 것 등) 유럽 식민운동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만일 그런 사상이 없었다면 식민주의만으로는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인류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식민자들이 미대륙에서 벌인 살륙, 아프리카에서 행한 노예사냥, 그리고 프랑스가 고도과학기술을 이용해 만든 이집트학 모두 인류학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이들이 인류학을 낳은 것도 아니다.

동시에, 어떠한 학과도 사실상 다른 문화를 연구할 수 있다. 만일 학문이 주류 정치, 비즈니스를 위해서 복무해야 한다면, 다른 문화에 대한 국제무역, 비교정치, 군사관계연구가 인류학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인류학이 다른 문화를 중시하는 것은, 그 ‘다름’ 자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학 방식의 경험이 ‘다름’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모든 인류를 연구해야 하므로, 당연히 다양한 문화를 포괄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학 관점에서 각종 차이는 동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인류학적 관점으로는 차이는 본질적으로 마음대로 단순화될 수 없다. 다른 문화는 우리가 다른 경험에 대해서 더 민감한 체험을 하도록 하고, 더 유효하게 자기의 상황을 문제삼도록 만든다. 그래서, 만일 자기자신조차 대상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찮아 보이는 경험까지 질문을 던져가며,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욕망이 없다면, 인류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중국의 민족학자들은 1950년대 수많은 서남부 소수민족에 대한 훌륭한 조사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사회사상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왜 그런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지청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아마도 사회학적 상상의 과잉일지 모른다. 반대로 인류학적 상상력은 부족하다. 미국 사회학자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제창했다. 즉 자기의 인생경험과 사회구조를 연구하고, 역사의 변화와 연관시켜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특히 지청학자들에게는 거의 타고난 능력이다. 개인 생활의 궤적이 국가의 중대한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개인 인생의 의의는 국가의 거대서술안에서만 체현될 수 있었다. 이런 서술바깥에서 어떤 다른 담론체계도 의의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서술바깥으로 벗어나는 대량의 경험은 모두 일상생활의 자잘한 요소밖에 없다.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논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 받은 것들만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은 같은 틀안에서의 반복일뿐 사상적인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인류학적 상상력은 구체적인 인생경험과 곤혹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대안적 생활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경험과 목소리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 반드시 이론화가 되는 것을 기다린 후에야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역사를 추진하다가 생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새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답이 있어서가 아니다” 뜻을 품은 젊은이가 기량을 발휘하는데 방향이 꼭 분명할 필요는 없다. 왜 작은 새에게 반드시 악보가 필요하고 독수리에게 ‘내비’가 꼭 필요하겠나?

중국사회과학 지청시대의 종결은 한 세대 현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분기점으로써 연대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헤겔식 역사철학 의의상의 ‘시대’의 종언일 뿐이다. 시대는 여기서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명확한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운동을 의미한다. 역사의 방향에 대한 자신감을 체현한다. 역사적 사명감과 이에 기반한 집체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80년대의 신세대 80年代的新一輩”라는 한때 전 중국에서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역자주 – 年轻的朋友来相会라는 곡명을 가지고 있으며, 가사중에 80년대의 신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아름다운 조국을 건설하자는 내용), 이런 시대정신의 최후의 상징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사진7> 오늘날과 1980년대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과학과 관료시스템의 지식청년시대가 끝나는 동시에, 이들 중 일부가 고위 정치가가 됐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의 청년시절 사진.

후지청시대에 생물학적 나이로 규정되는 세대로는, 소위 70치링허우, 80빠링허우 등등이 우리의 시간의식을 주도하게 됐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우리의 중요한 경험이 된다. 체제화된 학술연구가 도시중산층계급과 그 자녀들이 갖게 된 중산층 신분의 채널이 된다. 공무원그룹이 전문화된 이익집단으로서 사회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도시중산층 출신의 젊은 연구자들은 일상경험에 대해서 아마 더 민감할 수도 있다. 예전처럼, 지나치게 크게 판단하고 과장된 방안의 연구방식을 제안하는 것에 더 많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공무원도 거대한 독자讀者그룹이 된다. 그들은 이론 해설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경험을 묘사한 연구결과를 선호한다. 레거시 매체의 권위와 공신력이 하락하고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들이 풍부하고 생동감있는 경험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과학과 인문연구 및 기타문예형식이 서로 결합된 탐색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소비자들은 모두 잠재적 혁명가가 될 수도 있다. 온갖 속물적인 광고 카피의 배후가 새로운 이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모든 이가 소비자로 변하고, 모든 곳이 광고 장소로 바뀔수록, 이런 상상력이 필요해진다. 단지, 혁명의 잠재력과 새로운 생각이 외부에서 강요된 신념이 아닌, 일상생활경험내부의 모순, 소외와 다양성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지청시대에 비해서, 아마 오늘날 우리가 보다 편안하게 (자기) 경험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다가서서, 다시 (자기) 경험속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후지청학자들이, 스스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고, 자기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자기 문제도 정확히 파악하고, 누구를 위해서 연구하고, 누구를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지금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가 당신을 근심케 한다면, 당신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일필일획으로 대안적인 목소리를 그려내는 것일 것이다. 이 목소리는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구체적 생활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벼락소리처럼, 모호하지만 바탕이 있고, 대지의 다른 구석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모여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잠재적 흐름이 된다.

(3/3)

 

샹뺘오 项飙

옥스포드대학교 인류학과

 

이글은 <<문화종횡文化縱橫>> 2015년12월호에 실렸으며, 저작권은 문화종횡에 속한다. 

원문링크

https://mp.weixin.qq.com/s/KYkgtq_1fIMIbKVCwZRYZg

목, 2021/05/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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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언영색의 이벤트 정치로 일관하다

엄동설한의 그 차디찬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끈질기게 전개했던 처절한 촛불항쟁의 과실은 고스란히 정당으로 넘어갔다. 그 정당은 촛불시민들을 철저히 배제시킨 채 권력을 독점하였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에서 드러나듯 그 정치세력은 너무도 무능했다. 사실 부동산 문제만이 아니라 여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유사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치권은 관료들에 의존하여 그 말과 의도에 적응해간 과정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개혁은 고사하고 모든 정책과 방향이 현상 유지와 기득권 편향이라는 퇴행적 행태로 수렴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수행했던 것은 오로지 표와 지지율만 추구하면서 유명무실한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이벤트 정치’를 구사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시민들의 결사적인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했지만, 정당과 정치세력의 철저한 무능으로 그 권력은 고스란히 관료에게 넘어갔다. 결국 촛불항쟁은 관료들에게 권력을 넘겨준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4.19 항쟁부터 1979년 부마항쟁, 80년 항쟁, 87년 6월항쟁 그리고 이번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항상 어김없이 그래왔다. 필자도 도저히 이런 항쟁은 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누구도 시민들에게 더 이상 항쟁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성찰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할 다각적인 대응 전략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무능한 정당, 실질적 정책정당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없는가?

이 글에서는 국회 개혁의 주제에 맞춰 우선 정당의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대응 전략을 제기하고자 한다.

독일에서 연방의회의 운영은 대체로 정당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독일 정당의 정책 전문성은 정당의 전문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당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논의들이 중요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들의 역할이 대단히 활성화되고 있다.

독일의 입법과정은 정당을 통하여 매개되며, 의회의 정책결정은 정당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사안마다 의원총회를 소집 운영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고 또 참여 의원이 많으면 심도 있는 논의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독일 의회는 입법 활동과 정책전문성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즉, 위원회에서 정당 간에 협상을 개시하기 전에 각 정당이 상임위원회별로 특정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의 진행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고 소그룹 소속 의원들과 교섭단체 정책 연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해당 상임위의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한 주제 당 6주에서 6개월까지 연구한다. 이렇게 특정 주제를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당연히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은 연방의회 소속이며, 이들의 채용, 보수 등은 교섭단체가 관할한다. 이들 정책 전문위원들은 분야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로서 정당에 소속되어 의원과 정당을 긴밀하게 지원, 보좌한다. 대부분 행정부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대부분이며, 자부심이 강하고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회 전문위원은 정당에 소속되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상임위원회란 정당 간 정책경쟁의 장(場)이다. 그러므로 상임위원회를 지원하는 입법조직 역시 정당의 개입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다. 그리하여 상임위를 지원하는 전문가 조직은 미국식처럼 정당 소속이거나 독일식처럼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 제도는 우리 국회를 허구화시키고 왜곡시켜온 핵심적 적폐이다. 현재의 국회 전문위원제도는 결국 행정 지원관료가 국회의 입법과정을 장악하고 결국 국회의 입법권을 허구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써 국회는 본분을 잃고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이제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독일 의회 방식으로 정책전문위원을 정당에 소속시켜야 한다. 현재로선 과도기 해법으로 국회 전문위원이 정당에 소속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우선 1단계로 수석전문위원을 정당에 소속시킨다. 수석 전문위원은 별정직 1급이므로 지금 당장 정당에 소속시켜도 커다란 무리가 없다(이 점에 관련하여 현재 정당 소속이면서도 국회 별정직공무원 신분으로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의 경우에 준하여 적용할 수 있다 – 국회법 제34조).

2단계로 6개월 내지 1년여 시차를 두고 2급 전문위원도 정당에 소속시킨다. 물론 현재의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은 모두 상임위에 배속시킨다.

다시 3단계에서 위원회 지원 조직의 대부분을 정당에 소속시킨다.

최종적으로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 지원 정책전문위원을 총 200명 정도로 구성한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들은 국회에서 예산이 지출되는 약 100명의 정책전문가를 보유하게 된다.

이는 상임위 활동을 활성화하는 방안일 뿐 아니라 정당의 정책 전문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방법이고, 나아가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지며, 결국 이 땅의 의회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방법으로써 현재 유명무실한 정당은 실질적인 정책정당에 성큼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바라건대, 단 한 가지라도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 암울한 이 땅에도 한 줄기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소준섭

화, 2021/05/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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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얘기하면 긍정적이고 즐거운 얘기를 쓰기 어렵다. 그래도 흥미있고 눈길이 가는 애기를 쓰고 싶은데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는 필자가 사는 마을 얘기를 전하려고 한다. 우리 마을도 여느 농촌마을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크게 재미를 전달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또 다른 마을 이야기가 있기도 해서 독자들에게 농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우리 마을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에 있는 마을이다. 이 지역은 6개 리가 이웃하며 살고 있는 지역이다. 춘천호가 사북면의 다른 지역과 경계를 짓고 석봉산과 용화산 그리고 삿갓봉과 수리봉이 화천과 신북읍, 춘천시내 지역과 경계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호수와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지역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 마을은 초등학교과 농협, 보건진료소를 같이 이용하고 407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다른 지역과 통하고 있다.

6개 리의 마을 전체 인구는 9백 여명 정도 되는데 그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0% 정도 된다. 20대가 60여 명, 30대가 40여 명 정도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거주는 하지 않고 주소만 두고 있다. 40대도 백 명 정도 되지만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비거주 등록인구를 빼면 절반 이상이 노인들인 경로우대마을(?)이라 할 수 있다.

농촌노인들은 나이들어도 살던 곳에서 계속 사시고 싶어한다. 간혹 자식들이 모시려고 해서 자식들 집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다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답답하다는 게 이유인데 그럴 것이 도시에 가면 자식부부는 일하러 나가고 손주들은 학교에 가니 노인만 남아서 감옥같은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잘 견뎌야 한달 정도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면 편안함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농협까지 4~5키로 걷는 건 일도 아니었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혹은 경운기를 몰고 농협출입을 하며 이웃 분들을 만났지만 연로하여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농협이나 마을회관 출입도 힘들다.

우리 마을에는 별빛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마을사업을 하는 조직이 있다. 이 협동조합은 마을 원주민들과 외지에서 들어온 이주민들 그리고 시내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함께 실무자로 일하고 있다. 별빛사회적협동조합은 크게 세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하나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하교하면 모두 센터에 와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한다. 또 하나는 농촌유학센터이다. 마을 초등학교에는 현재 열 한명의 유학생이 있다. 이들은 서울 등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인데 우리 마을 초등학교로 전학온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1년 정도 시골에서 살며 학교를 다닐 예정으로 오는데 대부분 졸업하고 돌아간다.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 농촌유학센터이다. 아이들은 두, 세 명씩 농가에 위탁되어 생활하며 초등학교를 다니고 하교하면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같이하고 끝나면 농가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건강과 부모와의 연락, 농가 관리, 학교에서의 생활 및 학교와의 관계 등을 관리하는 일이 유학센터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이들기 좋은 마을’(일명 나좋을) 팀이 있다. 마을의 노인을을 돌보는 사업을 하는 팀이다. 오늘은 나좋을 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마을에서 컸고 노인들은 마을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농촌의 아이들은 이제 태어나지도 않고 그나마 몇 안되는 아이들은 마을에 초등학교가 없어져 먼 거리를 학교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한다. 마을사람들은 아이들이 마을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노인들은 자식의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손자를 돌보고 마을과 자식들의 부양을 받다가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자식들 다 떠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걷는 것 조차 힘드니 마실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별빛협동조합에서 나좋을 팀을 만든 건 자식들이 돌보고 마을에서 늙어가던 노년을 지금도 잘 유지해 보자는 것이다.

나좋을 팀에는 세대공감센터와 우리마을119 센터가 있다.

세대공감센터는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70세 이상 노인들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불편한 것은 없는지 체크도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반찬공급도 하고 아이들과 점심식사도 같이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센터 식당에서 한 달에 한번씩 무료 점심식사를 해서 마을 노인들이 백 여명 이상씩 모여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중단이 되면서 반찬 배달과 점심식사 같이하기를 하게 되었다. 또 우리마을119 센터는 주거 환경 개선을 도와준다. 변기 고장이나 수도고장, 씽크대나 배선 고장 등 소소한 주거불편을 해결해 준다. 재료비가 3만원 이하이면 무료로 고쳐준다. 지난 해에는 집안의 전등을 모두 LED등으로 바꿔 주었고, 변기 옆에 안전핸들을 부착해서 앉고 일어설 때 짚을 수 있도록 했다. 수자원공사의 도움을 받아 의사 1명, 간호사 1명, 코디네이터 한명이 팀을 짜 마을 순회 방문 진료도 하였다.

이렇게 마을에서 마을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마을 뿐 아니라 모든 농촌 마을이 이렇게 마을에서 노인들이 함께 잘 사시다가 마을에서 동네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집 문을 나서면 공기좋은 자연을 만나고 텃밭에서 가벼운 노동을 지속하며 이웃사람들과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며 행복이 뭔지 따지지도 않고 사시다가 가벼운 치매가 왔다고 혹은 자녀들이 들여다 보기 어렵다고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건 감옥행이나 마찬가지다. 한번 마을과 격리되어 요양원으로 보내지면 돌아가실 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

이런 마을이 유지될 수 있는 농촌지원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이들어서 편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실 수 있고 비어가는 농촌에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고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실무자들도 생긴다.

우리 별빛 협동조합은 강원랜드에서 지원받은 11인승 차가 한 대 있다. 어디서 차 한 대를 더 지원받을 수 있다면 노인돌봄 서비스를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농촌에는 다양한 일손이 필요하지만 거주할 집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한다. 노인들이 같이 밥먹고 더불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노인 돌봄 시설도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기본소득, 기본주택 같은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공동주택이나 기본소득, 농촌형 돌봄 서비스 지원 같은 사업을 농촌에도 시행하면 도시보다 적은 비용으로 노인들을 돌볼 수 있다.

마을에서 마을을 돌보는 것이 농촌 노인들이 행복하게 살다 가시는 길이다.

이 분들이 행복한 게 뭔지 모르고 잘 사시다 돌아가시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요즘 이런 농촌형 지역사회통합돌봄 서비스를 하는 지역들과 전국네트워킹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에서 통합돌봄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 대부분 예산이나 사업의 지속성이 불투명한데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농촌형 돌봄을 지속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돌봄의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 1월에 실었던 ‘살처분과 과잉 육식 – 산안마을을 보호하라’ 글에 나오는 산안마을 동물복지농장의 닭들은 결국 모두 살처분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간의 식탐으로 인한 공장형 축산 방식은 동물 전염병이 쉽게 전염됩니다. 가축전염병 과잉대응 – 3km 이내 살처분 처리 방식으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산안농장 닭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재욱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전 소장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목, 2021/05/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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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가장 보통 젊은이’들, 입을 열기 시작하다

매년 중국의 대입학력고사인 ‘까오카오高考‘에 응시하는 인원은 현재 약 천만명 수준에 이르고, 이중 절반이상이 전문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다. 한때 매년 2천만명 넘게 출생하던 중국에서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2천년 이후 매년 천오백만명 정도가 태어나고 있으며, 작년에는 가까스로 천만명을 넘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80년대 출생한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한 2천년대부터는 중국의 대다수 대학들도 엘리트가 아닌, 대중교육기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의 이본二本 학생”은 과거 한국의 전후기 모집처럼 응모 시기에 맞춰 일본一本, 이본二本, 삼본三本으로 구분되며,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본 즉 ’비명문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황덩 작가의 논픽션 문학 작품이다. 그가 십년 넘게 비즈니스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광둥금융학원은 광둥성 광저우시에 위치한 대학인데, 금융계 전문대학으로 오랜 기간 운영되다가, 정부의 대학정원 확대 방침에 따라, 2천년대 초반에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됐다. 대부분의 이본 대학과 마찬가지로, 주로 학교가 소재한 성省내 출신인 자신의 학생들을 저자는 중국의 ’가장 보통 젊은이들‘로 부른다.

나의이본학생 – 황덩

74년생인 황덩은 광둥성 북쪽에 위치한 내륙지역 후난성의 가난한 농촌 출신인데, 본인이 후난의 한 이본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당시 관행대로 국가가 지정해준 국영기업에서 사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90년대 경제개혁의 한파속에 문을 닫은 대부분의 국영기업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인지, 일본(명문)대학인 우한대학, 중산대학에서 각각 석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그는 자신이 십여년간 이어 가르친 80호우, 90호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정리하게 된 일종의 구술사 기록과, 작문 지도 등을 통해서 이해한 그들의 구체적 인생 경험을 하나 하나 들여다 본다. 여기에 자신이 속한 70호우 대학 동기 동창들의 생애를 덮어 씌워 보면, 중국이 가장 급속한 변화를 겪은 개혁개방 후 지난 40여년 동안의 세 ‘청년세대’의 경험이 인공위성에서 들여다 본 장강의 거대한 물줄기처럼 굽이쳐 흐른다. 70호우는 농촌출신이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한 가성비 높은 마지막 고등교육 세대였다. 80호우는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얻게 될 도시에서 집을 구매한 결정 여부가 중산층 진입을 가르게 된 희비극의 세대였다. 90호우는 이미 벼락같이 올라버린 집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어진 탓인지, 늘 성적에 조바심하면서도, 조금만 수업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무심하게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구는, 한국의 사회학자 엄기호가 얘기했던 ‘단속세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기시감이 든다. 마치, 한국의 50호우부터 90호우의 이야기가 압축돼 있는 것 같다. 일선 도시의 90호우 이야기는 아프게 동시대적이다.

다시 급강하해서, 이름이 호명된 모든 학생들이 들려주는 낱낱의 이야기로 빠져들면, 잔물결들에 부서지는 기포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린다. 2020년 발간 직후 큰 화제가 된 이 책은,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끈, 서바이벌 음악예능프로에 출연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광둥성 출신의 언더 그라운드 롹밴드 우탸오런五條人의 모습과도 은근히 겹치는 바가 있다. 가난한 지방, 현성縣城 (한국이라면 군청소재지에 해당하는) 출신에, 중국인 대부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지역 방언인 차오저우화로 자기 사는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 놓는 이들은 약속된 곡대신 즉흥적으로 다른 곡을 연주하는 방송사고를 치고도 너무나 태연히 행동했다. 무대를 떠나며 오히려 방송스태프를 위로하는 이들의 태도가 광둥의 동네 청년들 옷차림인 플립플롭 & 가죽자켓과 너무도 잘어울렸다. 그들의 대표곡중 하나인 ‘지구의’의 가사가 또 절묘했다. “立足世界. 放眼海丰 세계에 서서, 하이펑 (그들의 고향인)을 바라보다.”

14억 인구의 무게와 5천년 역사의 지층에 까마득하게 묻혀버린 중국의 보통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황덩의 문학사 수업에 참여한 덕에,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삶의 언어를 연결하는 마법을 발견한 한 90호우 학생이 증언한다. “현재 중국 사회를 둘러 보면, GDP2위로 올라선 우리 나라가 자랑스럽긴 하죠, 하지만, 시대를 거슬러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분투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하나뿐인 삶이 어디에 놓이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 값지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광둥이라는 지역의 문화적 특성, 그리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이, 광둥에 와서 느끼는 위화감을 함께 관찰하면서 현대 중국을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따로 한 장을 할애해서, 남방사회의 특질이 매우 두드러진 챠오샨 지역,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 위상으로 홍콩을 능가해버린, 션전 출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절반에 불과한 ‘보통대학생’의 이야기가 비진학 청년과 농촌 청년들을 홀대하고 있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황덩 작가는 2016년 발간된, 자신과 남편의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비장한 톤으로 들려준 책 ‘대지의 친족들’로 이미 명성을 얻은 논픽션 전문 작가이다. 그의 전공 분야가 향촌사회와 향촌문학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가 극도의 진실성을 갖게되는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 인용한 중국 사회학과 인류학의 비조인 페이샤오퉁费孝通의 주장과, 이에 영향을 받은 중국 사회과학계의 풍토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책에서 서술하는 것은 모두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사회과학 연구는 반드시 필드에 기반함으로써 탁상공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보편성을 희생할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 3월1일에 발표된 중국 교육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고등교육 기관 입학률은 54.4%에 달한다 (해당 학령인구대비, 전체 학생수 비율. 2021년 전체 모집인원은 900만명 가량이라고 한다)

■ 5월11일 발표된 2020년 중국 인구센서스 자료

■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목, 2021/06/0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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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무처가 국회의 주인’? 아전이 권력을 농단하는 꼴

몇 년 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지원부서는 폐쇄적이다. 언터처블이다. 행정부의 감사감찰, 수사기능이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었다. 국회사무처란 문자 그대로 국회의 ‘사무’를 담당하는 보조기관일 뿐이다. 그런 국회사무처가 국회의 주인 행세를 한다는 것은 약간 과장해 말하자면 “아전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일들은 주인이 주인답지 못할 때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名實相符), 국회의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의회 시스템에서 행정 사무관리 업무를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연상케 하는 제2의 관료체제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바로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입법관료가 대표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에 대한 입법지원 기구라는 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독일의회의 사무처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6급 이하’로 구성된 공무원들이 맡은 바 ‘사무’ 업무를 수행하며 의회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국회사무처는 본연의 ‘보조’ 업무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국 의회의 경우, 1946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고 입법지원 조직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켰다. 우리도 이를 모델로 하여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가칭 ‘입법부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현 국회 행정조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진정한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국회공무원 조직을 정립시켜야 한다.

 

미국 의회의 전문성은 유능한 입법지원 조직에서 나온다

어느 나라든 의회의 의원들은 국가 중요 정책의 결정권을 가지며, 그 활동 결과는 국가와 국민에게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하여 의원들은 그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 요청되며 이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란 기본적으로 전문성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국민을 대표하는 대표자로 선출되었고, 정치활동에도 매우 바쁜 정치인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시간과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대표들을 도와 정책과 전문성의 분야를 높여주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입법지원 기구이다. 다시 말하면, 입법지원 기구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의회의 전문성을 확보하여 의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적 장치’라고 규정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입법지원 기구의 형태는 미국 의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입법지원 기구 규모는 2007년 현재 회계감사원(GAO) 3,159명, 의회예산처(CBO) 235명, 의회도서관 4,302명, 의회조사처(CRS) 700명이다. 이밖에 의원 보좌관, 상임위 스태프, 기타 행정 보조원까지 합하면 약 2만 4,000명의 엄청난 규모이다.

의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의회는 행정부에 비견되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회의 전문성 확보는 곧 의회의 기능 회복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리하여 입법지원 조직에서는 대체로 일반 행정가(Generalist)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를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원 법제실은 35명의 법제관과 15명의 법제보조직원으로 구성되는데, 법제관은 모두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으로 이뤄진다. 미 의회 입법지원 기관들은 행정부보다 우수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규직 임용을 기본으로 하며, 행정부보다 높은 급여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행정부와 비교하여 교육수준, 재임기간, 급여수준이 모두 상대적으로 높다.

 

회계감사원, 의회예산처, 의회조사처행정부를 능가하는 의회의 입법지원조직

먼저 의회예산처(CBO)는 전문직 직원의 70% 이상이 경제학이나 공공정책 분야 전문가로서 구성된다. 행정부 산하 예산관리국과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후적으로 볼 때 의회예산처 예측의 정확도가 예산관리국보다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 의회는 이 의회예산처의 활동을 배경으로 하여 예산에 대해 실질적으로 심의할 수 있게 된다.

회계감사원(GAO)의 경우,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당시 의회지도자들은 예산 감시기관이 행정부의 외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래 재무부 관할 하에 있었던 회계 감사 기능을 의회에 이전시켰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활동에 의한 예산절감, 비용절약, 지출연기, 수입증대 등 재정적 이익은 엄청난 수준이다. 1998년도의 그 재정적 이익은 197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회계감사원이 사용하는 예산(약 4억 달러)의 매 1달러 당 49 달러에 해당한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한편 1900년대 초,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의회지도자들은 의회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별도의 의회조사처를 설치하였다. 의회조사처의 인력구성은 700명 중 연구요원(Analyst)이 400명 정도로 대부분 석ㆍ박사이며, 미국 공무원 등급(GS) 13~15 등급에 해당한다. 의회조사처의 직원 채용은 필요한 직위를 적시에 선발하며 다양한 방식에 의해 이뤄진다. 2007년의 경우, 모두 82개 직위에 대한 채용이 이뤄졌는데, 이 중 72개는 전문직과 행정직이었고 10개 직위는 지원부서의 직위였다. 2007년 상근 직위 중 6개는 ‘대통령 공공관리 펠로우 프로그램(PMF: Presidential Management Fellow program)’, 즉 석ㆍ박사를 대상으로 하는 우수인재 유치 프로그램에 의해 채용이 이뤄졌고, 다른 6개 직위는 로스쿨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가 채용 프로그램에 의해 채용되었다. 이 방식에 의해 채용되기 위해서는 인터뷰와 서류 심사를 거쳐 미법무부에서 실시하는 심층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시험 방식에 의한 채용은 일반 행정직 이외에 드물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못한 국회, 그것은 국회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존립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국회를 허수아비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권력이 만들어낸 구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입법관료에 의존하는 빈 깡통 국회, 일은 하지 않고 군림만 하는 국회. 그것을 국회라 말할 수 없다.

‘사무보조’ 업무에 충실한 국회사무처, 입법지원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국회 입법지원 기구, 국민이 부여한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국회의원. 이렇게 ‘정명(正名)’이 정확하게 구현되는 것, 그것이 “국회다운 국회”의 선결조건이다.

 

소준섭

화, 2021/06/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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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이라는 문제

“현대중국의 영토기준으로, 역사상의 중국을 설정해서는 안된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관할하던 지방정권이 아니다. 토번(티벳)도 당나라의 일부가 아니었다”. “조선(반도)과 월남의 문화와 제도는 중국 내륙이나 변경의 소수민족보다 훨씬 더 중국에 가까왔다. 하지만, 두 나라는 독립왕조 성립후, 중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학에는 거자오광(葛兆光), 거젠슝(葛劍雄)이라는 동성의 두 저명한 역사학자가 있다. 각각, 사상사와 문화사 그리고 역사지리학과 이민사 전문가인 두 사람의 또다른 공통점은 “과연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오랜 동안 천착해왔다는 것이다. 2011년 출간직후 한국어 번역본도 나온 <이 중국에 거하라>, 1994년에 출간된 <통일과 분열>은 그들의 대표작들로써 위와 같이 역사상의 고구려에 대한 관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준고전급 반열에 들어갈만한 예전 책들을 굳이 소개한 것은,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문화분쟁과 관련한 몇가지 오해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같은 신조어는 동북공정에서 비롯한 것일 터인데, 한국에서는 중국사람이라면 민관이 합심하여 한민족과 한반도를 중국에 흡수통합하려는 야망에 불타오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꼭둑각시같은 중국학자들은 당연히 이 국가대사에 협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지식인이나 지식대중들은 그리 우매하지 않다. 이 책들은 전문학술서적이 아닌 대중교양서일뿐더러, 두 사람의 강연은 중국의 유튜브격인 삐리삐리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거자오광 연구팀이 연재중이며 책으로 출간도 준비중인 <중국에서 출발하는 세계사>  칸리샹(看理想)오디오 강연시리즈는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가장 ‘핫’한 콘텐츠중 하나이다.

이 중국에 거하라 – 거자오광

ᅠ사실 두 거교수의 관점과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정협위원이자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교육부사회과학위원회에 속한 거졘슝교수가 왕이 부장을 비롯한 외교부 간부들에게 정책 조언을 할만큼 관방의 입장도 수용하는 반면 거자오광 교수는 철저히 민간의 학술적 입장을 대변한다. 그래서, 거자오광 교수의 대표저작들은 영어, 일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외국과의 학술교류도 잦은 편이다. 그는 작년에도 도쿄대학과의 온라인 학술교류를 통해 청나라의 최전성기인 건륭제의 팔순축하연이라는 역사적 외교이벤트를, 중국, 조선을 포함한 이웃나라들, 글로벌이라는 세가지 관점으로 분석한다. 당시 황제의 만기친람형 권력이 지나쳐, 민간의 활력을 억제하는 상황이, 청나라의 쇠퇴로 이어졌음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남겼다. 시진핑 정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강연은 유튜브뿐 아니라 삐리삐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거졘슝은 학술로서의 역사와 정책에 활용되는 응용으로서의 역사를 나누어 설명한다. 그는 고대부터 티벳이나 신장지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중국 사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의 학술적 주장은 엄밀한 고증을 토대로 한다. 중국 역사상 통일보다는 분열된 상황이 민중의 이익에 부합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청이 황실의 종교적 연대, 유목민족간의 연대를 통해, 신장, 시장, 몽골과 같은 변경지역을 국토의 일부로 삼았고, 이를 이어받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영토의 주권을 보유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양보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속도로나 철도와 같은 교통수단의 강화, 한족 이민정책을 통해, 이를 공고히 할 것을  주장한다.

ᅠ거자오광은 2004년작인 <고대중국문화강의>에서도 중국인들의 천하관이 유아독존적이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한 생각을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한 탓에 반半식민지의 고통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주체성이 강조된 중국과  외부시각속에 자기객관화한 중국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족중심의 중국이라는 민족국가의식은, 송나라부터 본격화되어, 도시에서 농촌으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그리고 상층에서 하층으로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 온 실체를 지니고 있다. 그는 중국의 지역연구를 통해서 아래로부터, 혹은 탈근대, 후기식민지주의, 혹은 동아시아 관점을 통해 위로부터 ‘중국사’를  해체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서구와 일본이 자기 이익을 위해, 중국을 분열시키려한 역사의 경험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시아를 중국과 등치시키며, 서방의 타자와 거칠게 비교하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한자로 기록된,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이웃 나라의 역사적 시각으로 섬세하게 중국을 살피고자 하는 노력도 최근 10여년간 지속해 왔다. 그래서 한중일 지식인들이 함께 참여해 온 공동역사교과서나 동아시아 담론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다.

2017년 고등교육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중국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역사교과서 논의를 순수 민간협력에 의한 출판 프로젝트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기반이 됐던 반서구진영으로의 결집을 호소하는 침략적 아시아주의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주로 일본의 학자들이 제기한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동아시아 담론이 상정하는 역사상의 동아시아 공동체가 오히려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닌지, 정확히 어떤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지 묻는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처럼 근대에 이르러서야 민족국가 개념이 형성된 유럽과 달리, 17세기 중엽이후 동아시아는 이미 각 나라가 자신만의 민족 주체성을 강화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국은 또, 언어나 문화가 동일한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복잡한 다원일체성을 가진 제국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주변 국가와 한통으로 묶기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국가와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 그래서, 백영서와 거자오광의 주장을 함께 살핀 이케가미 요시히코는 그가 미래지향적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토론에 대해서는 열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동아시아 논단으로의 초대, <공생의 길과 핵심현장>이 이끄는 세계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김유익

목, 2021/06/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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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 정치평론가인 벤 샤피로는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라는 책에서 미국이 두 동강났다고 보았다. 즉 미국인들은 여러 번 국가적 이혼을 고려해 왔다. 미국이 건국한 것은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결혼이었을 뿐 사랑의 결실로 인한 결혼이 아니었다는 진단이다. 분열주의자들은 미국을 지켜 온 연합주의자들을 내침으로써 미국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우익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볼 때 그동안 미국의 철학, 미국의 문화, 미국의 역사가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이란 첫째, 개인의 양도할 수 없고, 소중한 자연권, 둘째, 법 앞의 평등, 셋째, 개인의 자연권을 지키고, 법 앞의 평등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는 원리이다. 미국의 문화란 첫째, 타인의 권리에 대한 폭넓은 관용, 둘째, 튼튼한 사회적 기관들 social institutions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를 간직, 셋째,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소란스러운 일등을 감당, 넷째,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격려하여 이들의 행위를 보상해 온 특징적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의 역사란 미국 정부 및 사회 기관들을 통해 미국의 철학과 문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성취해 나가는 이야기를 말한다(벤 샤피로 저·노태정 옮김 『미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 분열주의로 얼룩진 미국의 철학, 문화, 역사』 기파랑 34-39쪽).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특히 다른 어느 영역보다 뒤쳐져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 정치부문은 어떤 점에서 정체와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보수야당으로부터 거센 돌풍이 일어났다.

38살 국회의원 지망생인 이준석의 제1야당 대표 당선은 그 자체로 놀랍고 신선한 정치적 변화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반대를 위한 반대, 막말정치, 지역연고정치, 반공우익 극단주의정치에만 의존해 왔던 정당이 한국 민주주의 진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정당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만약 신임 야당 대표가 기성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결집하여 세력을 모아내며 마치 이 기회에 정권교체도 할 수 있다는 포부를 드러낸 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미 2020년 12월말쯤 여론조사 결과를 찾아보면 정권유지론보다 정권교체론이 앞서가고 있었다. 여기에 지난 4월의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야당 승리는 국민의힘으로 하여금 정권교체의 기회가 다가왔다고 여길 만 하게 되었다.

이런 야당 승리에 나름대로 기여해 온 이준석 대표는 상계동에서 살다가 목동으로 이사를 가서 월촌중학교를 다녔다. 이 대표의 가족은 상계동도 뜨는 지역이었지만 좋은 학군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준석은 하버드대에 추가 입학하게 되자 과기원을 중퇴하고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 낸 국가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다 온 뒤 벤처 창업과 교육봉사활동을 했다.

20·30세대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준석의 정치적 삶은 순탄치 않았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1년 12월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 비대위에 이준석 말고도 김종인, 이상돈 등이 박근혜의 요청으로 참여했고, 이들은 대통령 권력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준석은 3회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이 사이 무려 여섯 번이나 당적을 옮겨 다녔다.

<표 1> 이준석의 당적 변경

심지어 그는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었으나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당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 역시 현실정치의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았다. 이준석의 당직변화를 보면 현재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볼 때 제1야당이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부침을 거듭해 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즉 이명박계와 박근혜계 정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정당을 만들었다가 이름을 바꾸면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별별 짓을 다해왔는지 눈에 띠지 않을 수 었다.

이준석은 정치변화 속도가 사회변화 속도에 뒤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의 정치적 꿈은 정치를 확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정책을 바꾸고 싶었던 게 20대 정치인 시절의 순진한 수준이었다. 현실정치를 겪고 나서 쓴 책에서 이준석은 15개 쟁점들을 나열했으나 실현가능성이나 정책의제로써 제도화에 성공한 것은 확인해 볼 수 없었다(이준석 2012 『어린 놈이 정치를』. 중앙M&B).

이제 그의 말대로 공존을 중시하는 ‘비빔밥 정치’는 어떤 장애물을 넘어야 할까? 당선 수락연설에서 그는 ‘공존’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그리고 당의 지상과제는 대선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나경원이 경선과정에서 용강로에서 모든 걸 녹여내자고 주장하자 자신은 당을 ‘샐러드 볼’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비빔밥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첫째, 그는 야권 지지세를 자당 내부로 끌어 들일 수 있을까? 현재 시중 여론조사 1위로 달리고 있는 법무부 외청 책임자를 어느 시점에서 입당시킬 수 있을지 뜸을 들이고 있다. 오는 8월에 출발한다는 당내 경선 버스는 경선에 참여할 인기가 높은 특정 후보를 기다리지 않고 정시에 출발시키겠다고 말했다. 흔히 생각하듯이 문제의 그 인물을 직접 찾아가고 쫓아가서 영입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정해진 경선 시한을 정해놓고 당에 들어오려면 오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 검사출신 인기인은 제3지대에서 창당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정당인 국민의힘을 통해 편하고 안전한 쉬운 길을 택할 것인지 정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등장을 기다리는 지지자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의 정치검사역을 감행함으로써 일약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 윤석렬씨는 정작 현직을 떠나서는 정치외곽을 돌며 간보는 언동만 하고 있다. 여러 분야 전문가를 만나고,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등 이제에 와서야 특수부 검사 이외의 세상공부를 하고 있다.

(장나래 2021 외곽 돌며 간접화법 일방 메시지, 윤석열의 ‘간보기 정치’. 6. 4.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97984.html)

그러나 정작 그의 육성으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무엇인지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반사회적 논조로 악명이 높은 조선동아일보 출신 언론인을 대변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윤씨 자신의 정치 앞날이 어떤 것인지 짐작케 하는 일들이 이제 일어나고 있다.

둘째, 이 대표는 과거 새로운 정치의 상징으로 불렸던 대통령 후보 경력의 경쟁자가 대표로 있는 정당과의 합당을 잘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국민의 힘 대표 경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요구는 한 마디로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며 정권 교체하라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당선 가능한 인물을 공천하는 것이야말로 이 대표가 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안철수와 이준석은 같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직을 놓고 선거전을 치룬 견원지간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제 당대당 합당을 위해 협상을 해야 할 관계가 되었다. 아마 이 합당의 협상 자체는 다른 현역의원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합당을 성사시킬 것인지 아니면 어떤 구실과 명분으로 합당을 하는데 실패할 것인지 이제 곧 그 성패 여부가 갈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안철수로써는 큰 정당을 찾아 자신의 정치적 승부를 내는 호기를 연출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유력 경쟁자에 밀려 다시 한번 남의 손이나 들어주는 정치 조력자로 뒤처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철수는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에게 양보했고, 대통령 후보를 문재인에게 양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는 외부 인사 영입과 타당과의 합당뿐만 아니라 당내 유력 대권후보들을 공정한 경선과정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이 대표는 미국 유학중이었음에도 방학기간에 유승민 의원 인턴생활을 했었다. 이번 경선과정에서도 유승민 의원계 현역의원들의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유승민 의원에 대한 보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원희룔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경선 참여를 주문해야만 한다. 당내 역학관계로 살펴보자면 원지사야말로 이 대표 당선을 통해 가장 큰 정치적 수혜를 입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넷째, 그는 두 개의 시장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끌어 들일 수 있을까? 정치는 선택의 미학이다. 전 비대위원장을 당내로 복귀시키는 일만큼 전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을 복당시켜야 할 터인데 과연 조화의 정치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 이 대표와 같이 당무를 맡게 된 최고위원 면면부터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2> 국민의힘 최고위원, 2021. 6. 11 현재.

이 대표가 선임한 청년 지분 최고위원을 빼고 그와 손발을 맞춰 줄 최고위원이 적을 뿐만 아니라 막말을 내뱉는 데 누구 못지않은 인물들이 포진해 있는 게 현재 국민의힘 최고위원 진용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당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정객들이 이대표 주위에 앉아 있어서 과연 ‘하나의 팀’으로써 대선후보 경선과 2022년 대선과 지선을 잘 치러낼지 의문이다.

이밖에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줄기차게 시행을 촉구하고 있는 기본소독,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말하는 소득·주거·돌봄·의료·문화체육·환경·교육·노동 8대 신복지 정책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야 대안정당으로써 자기역할을 다하는 셈이 될 것이다. 거대 집권여당에 맞서서 국민대중을 사로잡을 획기적 정책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현실정치는 정치과정의 투명성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가능한 책임정치를 실현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의회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이 얼마나 패도정치, 폭군정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였는지 우리는 보아왔다. 의회 경험이 전무한 야당 대표는 김종인, 김무성, 유승민과 같은 선임 정치 멘토들의 입김에 휘말릴 수도 없지 않다.

이 대표가 하기에 따라서 국민의힘이 무정견 정당에서 정책정당으로, 무책임정당에서 책임정당으로, 2030세대정당에서 국민대중정당으로 일대 전환하게 될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선거를 시행하는 때마다 조령모개하며 창당을 거듭해 왔던 도깨비정당의 신기루 대표에 머물 것인지 미국의 공화당이나 일본의 자유민주당, 독일의 기독교민주당처럼 수명이 길고 지속가능성을 띤 100년 정당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적어도 공당의 대표라면 분단체제, 냉전구조, 정전구조, 반공체제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정당정치세력으로써의 비전과 희망을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바꾸면서 대남통일전선전략을 포기하듯이 과거 국민의힘이 보여왔던 완고한 반공보수 극단주의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안보외교평화정책을 수립, 추진할지도 미지수이다.

현실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려 세울 것인가? 2016년 9월까지만 해도 너무나 견고했던 박근혜를 향했던 콘크리트 지지층이 어떻게 균열·와해·분열되었는지 그 이유와 사정을 헤아려 이제부터라도 발본적 성찰과 반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여전히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고 무죄를 외치며 다녔던 태극기 모독집단의 행태에 대한 전면 사과부터 단행해야 할 것이다. 무턱대고 집권세력과 현실정치를 부정하며 혐오의 정치, 허무주의 정치, 극단주의 정치를 반복했던 국기 모독 집단과의 단절과 경계, 전면 부인조치부터 이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길만이 100년 동안 이 땅의 공론장을 지배해 온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류의 극단적 보수주의 우파 논조에서 벗어나 21세기에 걸맞는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정당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준석 개인은 어떤 사정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유학을 갔으면서도 박사학위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집중력의 한계라고 말 할 수도 있으나 그의 이런 성과 부실은 벤처사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미 어떤 이는 그가 낡은 정치의 폐기물을 폐기하는 데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하는 듯하다. 나름대로 이준석과 여러 번 말을 섞어 본 한 논객이 대중매체에서 주장하는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그의 앞날은 믿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 진중권 “이준석, 철학 없어…자라며 가진 편견이 신념 돼” / JTBC 썰전라이브, 2021. 6. 8.].

이 대표는 그동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타령하고 있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은 소리가 어디 또 있을까?

그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일은 대중매체에 나가서 순발력을 발휘하여 내뱉는 언변이었다. 말로 흥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별 다른 정치적 경험이 없으면서도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에서 얻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대통령까지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를 트럼프에 빗대어 한 마디하는 청년정치인이 있을 정도이다(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인터뷰 “이준석, 기득권과 투쟁의 드라마 썼으나 트럼프 선동 정치와 흡사”, 2021-06-01.).

이미 이준석 대표체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즉 리더쉽 한계, 당운영상의 문제, 정치철학의 문제, 대선후보 관리상의 문제, 스타 징크스 등의 이유로 제 역할을 다히 못하고 말 것이라는 말이 나온 상태이다[(생중계) 이준석 당대표 조기 하차할 수밖에 없는 까닭?, 2021. 6. 11].

이준석 현상을 낳게 한 건 20대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무너진 현재의 희망과 좌절된 미래가 정치적 분노로 결집되어 표출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준석 개인의 정치적 진출만이 아니라 절망하고 있는 2030세대들의 추락하고 있는 위상을 바로 잡아주지 않는 한 이런 세대교체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들이 많은 성찰과 변화를 하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는 부동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허상수

목, 2021/06/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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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판세는 과거 정동영이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왔을 때의 상황과 동일하다. 당시 정동영 대 이명박 비율은 26.2% 대 48. 7%였다. 지금의 국면은 그때 지지율 판세와 거의 판박이다. 참고로 오세훈 대 박영선의 서울 시장 선거는 57% 대 39%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문제가 나왔을 때 민주당은 이제 선거는 이겼다며 환호작약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를 얘기하며 공격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이미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을 결심하고 있었고, 그 요지부동의 대중 앞에는 백약이 무효였다. 대중들에게 심판할 대상은 야당이 아니라 오로지 집권여당이었기 때문이었다. 향후 대선은 이 서울시장 선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부족했고 또 안이했다

물론 착시 현상이 있을 수 있다. 6대 4 정도의 지지율 차이라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실제 개인이 느끼는 체감 여론은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여론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사실 열 명 중 아홉 명이 아니고 여섯 명 대 네 명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느끼기에는 언뜻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요즘은 페이스북, 카톡 등 각종 SNS를 통해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기 때문에 온라인상의 여론이 전체 여론의 추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또 그 폐쇄적 소통공간에서 각종 아전인수식 논리가 백출하므로 오판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진보 진영 사람들은 흔히 “야당 저쪽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데”라는 생각만 하면서 “설마……” 혹은 “그래도 잘 되겠지”라는 ‘근거는 없는’ 낙관론을 지니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희망일 뿐, 대중들은 “집권여당이 나쁜 놈들”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설사 야당 쪽을 나쁜 놈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보다 집권여당이 더 미운 것이고 더 나쁜 놈이라 생각하며, 그래서 절대 심판해야겠다는 것이다.

역사와 현실 앞에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부족했고 또 안이했다.

 

민주당, 완전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대선 희망 전무하다

윤석열이 완주하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윤석열이 나오지 못한다고 할 경우에도 철두철미 정권교체가 목표인 대중들은 윤석열이 아닌, 다른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또 앞으로 이준석의 여러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속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이준석에 대해 실망하고 심지어 지지를 철회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민주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대중들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좌절감이 너무 크고 엄중하다.

민주당은 이제까지 야당의 존재 자체로 존립하고 그것이 민주당을 지탱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전혀 그렇지 않게 된 상황이다. 민주당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대중의 지지를 쟁취해야 한다.

일각에서 이른바 ‘친문 후보 추대론’도 나오지만, 그것은 한 마디로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대중들은 바로 문재인 정부, 현 집권여당에 염증을 내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반드시 대선에서 끌어내리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민주당이 향후 얼마나 ‘친문’의 색채를 지워낼 수 있느냐가 바로 차기 대선의 관건이다.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그 실행은 실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설사 민주당 후보가 철저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대중들은 불신의 색안경을 쓰고 민주당을 바라본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 정도로 민주당은 절체절명의 벽 앞에 서 있다.

행동하는 자에게만 기회가 있다.

 

소준섭

화, 2021/06/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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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 필사의 투쟁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생존의 기술을 체득하였고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 이런 평가가 정설로 굳어져왔다. 그러나, 2017년 대북제재 강화와 2019년 코로나봉쇄 이후 북한의 극단적인 봉쇄가 식량위기를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인민들의 생존상황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지는 ㅌ`가운데, 김정은총비서는 지난 2021년 4월에 있었던 제 6차 당세포비서 대회에서 제 2 고난의 행군선언을 선언하였다.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왜 부정했던 고난의 행군을 김정은 총비서는 다시 언급하게 되었을까?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김정은총비서의 고난의 행군 선언을 “사생결단의 배짱과 공격전의 정신, 전화위복의 전략”이라고 정의하였지만 이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관측은 제 2고난의 행군언급은 김정은 정권의 ‘대중적 공포정치’의 예고판이라고 보고 있다. 기실 제 2 고난의 행군 이야기가 외부에서 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2018년부터이며 국정원은 2018년도부터 제 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안보리 결의 2375호(2017년 9월 )과 2397호(2017,12월22일)의 효과이다. UN 안보리 대북결의에서 대북원유공급을 전보다 75%나 줄이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북한경제가 어려워지면서 2018년 신년사에서 이를 엄혹한 도전에 부닥쳤다고 표현한 바가 있다.

이번 고난의 행군선언은 북조선 역사상 세 번째의 고난의 행군이다. 첫 번째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1938년 말~1939년 초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면서 항일투쟁을 했던 역사적 경험을 말하고, 그 이후 북한 권력층이 고난의 행군 언급시는 사상과 정신력으로 강인하게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의미가 되었다.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은 1996년 1월 1일 김정일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고난의 행군을 말한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 이는 1990년대 계속되는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경제난, 기아를 극복하고 사회적 이탈을 막으며 체제 수호를 하자는 정신을 의미한다. 반면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고난의 행군의 기억은 1990년대 중반 북한사회가 경험한 대규모의 ‘기아와 아사(餓死)’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을 통해 감지되는 최근 북한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현지소식은 다음과 같다.

 

과거와는 달라진 북한사회 죽음의 양상: 조용한 고독사나 소리없는 아사가 늘어난다

지난 2020년에도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함경북도에서 30여명 발생하여 북한 당국에서 인민반이 이러한 노인들을 장악해서 돌봐주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었다. 데일리NK소식통에 의하면, “최근에 함경북도 인민위원회는 이번 태풍 기간에만 36명의 노인들이 집에서 홀로 사망했다는 통계자료를 통보하면서 이에 대한 조치로 동사무소들에서 노인들을 책임지고 돌봐줄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도에 북한을 떠난 북한출신 주민들은 배급을 못 받아 쓰러져 죽는 사람들은 없어졌으나, 식량과 땔감이 없어서 죽어가는 조용한 고독사는 꽤 있다고 전한다. 과거 고난의 행군시절 대규모 배급의 일제 미공급사태로 죽던 것과는 달리 소리없이 조용히 죽는다는 것이다. 음독, 가족단위의 자살 등 생활고로 인한 죽음들은 그냥 병으로 죽었다고 포장된다. 공화국인민은 자살을 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북한사회에서 기아로 인한 죽음은 남부끄러운 일이기에 그들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죽는 길을 선택한다.

 

20214월의 평양, 배급이 끊기다

평양은 배급을 준다는 점에서 특권적 지위를 점해왔고, 평양시민이 되는 것은 북한인민들의 로망이었다. 왜 평양은 로망인가? 평양을 제외한 다른 도시지역에서 배급은 이미 주지 않은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평양은 배급을 주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2021년 4월 이후 현재까지 평양시에서 공민에게 배급이 전혀 없었다고 보도되었다. 10일 데일리NK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2021년 4월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 즈음 열흘치 배급이 나온 후 두 달 동안 평양 배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평양 시내 배급소에 보관돼 있는 식량도 없는 상태다. 최근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배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교화소 등 구금시설 출소자로 당장 생계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지방에서 평양으로 근무지를 이전한 안전원(경찰)과 군인들조차 배급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 방역과 아사의 기로 사이: 삭주군 봉쇄령 해제 사례

자신의 국민들이 굶주려죽는 것을 좋아할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삭주군에서 밀수로 인해 내렸던 봉쇄령이 아사자로 인해 풀린 사례는 기아와 방역봉쇄 사이에서 인민들의 생존을 위해 봉쇄를 푼 사례이다. 코로나 봉쇄를 어기고 밀수를 해서 군 전역에 봉쇄령을 내렸던 삭주군은 봉쇄로 인해 아사자들이 속출하자 삭주군의 인민반장들은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세대가 늘어나던 찰나에 굶어 죽는 사례까지 나타나자 동사무소와 동 담당 주재원(안전원)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주민 내부 동향을 보고하고 봉쇄 해제를 건의했다.

이 같은 동향 보고는 동당비서를 통해 군당에도 전달됐고, 군당은 곧바로 “이러다가는 주민들이 다 굶어 죽을 판이다. 지금 노인이나 어린이가 있는 집들이 특히 어렵다. 배급을 주던지 열어야(봉쇄를 풀어야) 한다”면서 중앙비상방역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중앙비상방역위원회는 삭주군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참작해 봉쇄령을 해제했다.

 

북한 송금: 다급한 탈북자들과 수척해진 가족사진

지금 탈북민들의 마음은 굶주리고 있을 북한 가족들로 인해 마음이 그 어느때보다 다급하다. 탈북민들이 자신들이 북한에 돈을 들여보낸 후에 가족들의 사진을 한 장 받게 된다. 가족들은 그들이 보낸 돈을 들고 있고 수척한 기색으로 서있다. 탈북민들은 수심에 찬 얼굴로 가족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들의 얼굴이 얼마나 상했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나야 원래의 얼굴을 모르니 얼마나 상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말랐다는 것은 알겠다. 어찌 모든 북한인들은 그렇게 작고 말랐나.

지난 20여년간 탈북민들이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때 보안관련 북한 내부 감시자들은 은근히 협조적이었다. 대한민국에 온 탈북자들이 가족에게 돈을 보내면 그 돈의 일부를 감시자들과 나누어 먹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새로 채택하고 주민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나서면서 외부 특히 대한민국과의 불법전화 일제단속이 유례없이 강화되었고, 탈북민들은 돈을 북한 내부 가족에 보내는 데 있어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당국이 김정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또 다시 불법 손전화기(중국 휴대전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되었으며, 불법 손전화기로 한국과 연계하거나 내부 정보를 유출할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엄중한 경고가 있었다.

”지난 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불법 손전화기로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과 연계하거나 돈을 받아쓰는 행위를 ‘반사회주의,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로 규정한데 이어 이를 철저히 대책할 데 대한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5월초에 내려졌다”면서 ”이 지시에 따라 당, 보위성, 사회안전성 합동검열조가 편성되고 불법 손전화를 가지고 한국과 연계하거나 한국에 있는 가족, 친척들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이번처럼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한국과 통화하거나 송금을 받는 행위를 거론하며 완전 차단할 데 대해 지시하기는 처음이어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최근 한국에 사는 탈북민들의 심정은 가족들 생각에 초조하기 이를데 없다. 요즘 북조선 전 인민이 유례없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대한민국에 가장 많이 오는 혜산시 주민들의 경우에도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어 코로나감염증 사태로 국경이 원천 봉쇄되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 북한내부로 송금을 보내려면 50%정도를 송금수수료로 내거나 아예 송금이 전해지지 않아도 좋다는 각오로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온 탈북민들일수록 일을 가리지 않고 일감을 찾아 전국을 떠돌다시피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다. 북한 내부의 가족들의 생계는 막연하고 자신으로 인해 탈북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힌 가족들을 위해 돈을 보내려고 한다. 현재 나 자신의 앞날이나 육체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소액이나마 북한 가족에게 보내야만 한다는 절박성이 이들의 여윈 육체를 오늘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 민중들의 생계의 어려움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재난은 2017년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로부터 비롯되었다. 북한당국과 미국, 핵을 가지고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북한의 인민들은 더욱 극단적인 생존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무력한 방관자인 우리역시 상황으로 몰고 가는 데에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2020년부터 코로나 방역봉쇄 조치가 겹쳐지면서 더욱 갈수록 북한인민들의 생존은 악화일로를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다. 북한당국이 코로나 봉쇄를 풀수 있는 보건환경을 만들도록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도 저도 어렵다면 북한내부의 엄중한 상황에서 더 이상 굶주려 죽는 사람이 없도록 일단 쌀이라도 보내야 한다. 북측 민중의 궁핍과 고통에 대한 시민적 연대 없이 한반도의 일상의 평화는 가능한가? 우리 자신을 뒤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북한의 1990년대 중반 기아(飢餓)를 떠올리는 평가들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기본적으로 일상적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입장’과 ‘주민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석된다.

지난 30여년 동안 이미 북한민중들은 생존을 위해 지난한 식량투쟁을 벌여왔기에 고난의 행군이 선포된 이후에 앞으로 어느 정도의 궁핍과 굶주림이 기다릴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김화순

화, 2021/06/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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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이 양제츠를 바라보며 전세계에 선언했다. “차이나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이야.” 그런 속보이는 연기가 아니라, 진솔하게 덩치 큰 오랜 이웃에게 묻고 싶다. 새로운 ‘중화문명’은 어떻게 홍콩과 신장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가 ? 한·중 양국 간에 중화주의를 넘어선 공정한 관계 맺기가 가능할까?

방법으로서의 자기 – 샹뱌오와의 대화

한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학자들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공공지식인’이라 불리던 일군의 학자들이 중국에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 하방을 경험한 ‘지식청년세대’로 불린다. 시진핑도 이들 세대에 속한다. 대표격인 신좌파 지식인 왕후이汪暉는 “중국사회주의와 근대성 문제”를 한국의 창비에서 중국보다 2년 먼저 발표했다. 굴기한 대국의 자의식이 커지는만큼 옛 친구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탓인지, 아니면 자국내 검열의 강화탓인지, 지식인들의 왕래가 드물어졌다. 우선 중국내 목소리가 작아진 것을 보면 후자의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이제 대화의 상대가 사라진 것일까?

중국의 스타문화인 쉬즐유엔이 후지식청년세대를 대표할 새로운 공공지식인으로 샹뱌오를 불러냈다. 2019년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 ‘13야오十三邀’에 초청한 것이 우선 세간의 화제가 됐다. 동시에 기획된 대담집이 작년에 출간된 <방법으로서의 자기>이다.

“13야오 샹뱌오 인터뷰 동영상”

https://v.qq.com/x/cover/mzc00200c5sxk4p/o3026pze76s.html

제목으로부터 아시아의 근대성을 선구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일본의 루쉰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책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매우 평이한 언어로 기술돼 있다. 학부 2학년부터 6년간 작성한 민족지를 기초로한 석사논문 <경계를 넘나드는 커뮤니티 – 베이징‘저쟝촌’의 생활사>가 단박에 중국인문학의 고전이 돼, 베이징 대학의 천재로 불리던 현 옥스포드대학 인류학과 교수 샹뱌오는 대중과 소통할 때 난해한 현대 서구이론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향신鄉紳‘의 관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교조적 논리가 아니라 자기의 부근에 존재하는 문제에 개입해, 생활의 맛이 우러나는 언어로 독립적인 서사를 만든다. 그로부터 출발해 세계에 대한 비젼을 그려낸다. 글로 쓰는 대신 대담 방식을 사용한 것도, 이렇게 명료해진 개념만이 자신의 목소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샹뱌오의 석사논문이 유명해진 것은 관점의 전환때문만은 아니다. 샹뱌오가 6년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개입하며, 세심히 기록하고 분석한 것은, 철옹성처럼 보이는 중국의 국가 시스템의 구멍을 비집고, 중국의 유동하는 ‘민간’이 만들어낸 역동성있는 소사회였기 때문이다. ‘민간의 자치와 결집‘이라는 근사한 명제만으로는 담기 부족한 날것의 생명력이 느껴지는데다, 전통적 인간관계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몇년전 출간된 개정증보판에 추가된 서문에는 중국 사회의 규범화, 제도화가 이미 근대적 위생의 관념으로 이 미생물적 사회를 정리해버렸다는 암울한 보고가 추가돼 있다. 이것은 국가와 자본의 동학의 결과이지만, 목적론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근대화의 귀결로 보는 것이 더 공정할듯 하다. 전가의 보도처럼 신자유주의나 전체주의의 유령을 소환할 때마다, 모든 서사의 디테일이 사라지고, 비극적 허무주의 아니면 공허한 혁명의 구호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담집 어찌보면 산만해 보이는데다 구멍이 뻥뚫려 있다. 80년대 중국 전역은 개혁개방의 ‘문화열’로 온 나라가 들떠있었다. 80년대 후반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술회하는 그의 대학생활은 92년 시작되는 캠퍼스 생활에 앞선 일년간의 병영 군사훈련으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홍콩문제도 입질이 오기에 낚싯대를 당기니 빈바늘만 딸려온다. 책에 인용된 과거의 글들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고 나서야 무릎을 쳤다. ‘Occupy Central 센트럴 점령’당시 홍콩을 근거리에서 관찰하던 그는 중국내의 음모론적 관점을 비판하고, 천안문사태의 후과가 홍콩사태의 한 원인이 됐음을 밝히는 동시에, 두 체제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중층적 역사를 근거로, 홍콩시민들의 급진적 요구도 자제를 당부한다.

“홍콩 대중운동의 민주화 요구와 정당정치”

http://platformc.kr/2019/09/%ed%99%8d%ec%bd%a9-%eb%8c%80%ec%a4%91%ec%9a%b4%eb%8f%99%ec%9d%98-%eb%af%bc%ec%a3%bc%ed%99%94-%ec%9a%94%ea%b5%ac%ec%99%80-%ec%a0%95%eb%8b%b9%ec%a0%95%ec%b9%98/

비록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연구대상인 동시에 스스로 유동하는 경계인인 그의 자리가 지금은 꽉 막혀버린 중국의 안팎을 연결할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다. 정치경제학과 문사철에 기반한 하나의 대서사에 익숙하던 선배들과 달리, 인류학자인 그는 생활속의 수많은 작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을 제안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탈출구 없는 초경쟁사회가 된 중국에서, 그는 개인과 국가만 존재하는 가운데 중간이 되는 사회 ‘부근’이 사라진 것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 이것을 우리 식으로 풀자면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공동체이고, 조선의 선비에 해당하는 향신은 마을의 어른이다. 동아시아 인류학자들의 관점이 모이는 지점에서 다시 대화가 재개될 것이다.

 

*이 글의 축약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얻어, 다른백년에도 옮깁니다.

 

김유익

목, 2021/07/0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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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대립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이 모두 대권에 나선다. 홍남기 부총리는 여전히 자기 ‘신념’에 가득차 있다.

윤석열, 최재형, 홍남기

 

정치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공직사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현재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자기 사람으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두 명의 비서관에 불과하다. 실제 관료 출신의 차관이 해당 부처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실권을 가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 관료집단은 정치인 등 강력한 외부세력을 견제, 통제하면서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관철시켜 나가는 치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개혁 성향의 장관이 부임하게 되면 일부러 국외 출장을 비롯하여 각종 외부 행사나 기관장 회의 등으로만 스케줄을 잡아 아예 내부 문제를 생각할 시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지자체 단체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그들은 “물 위에 뜬 한 방울의 기름”에 불과하다. 또 그저 자리만 탐하는 탐욕스러운 정권 주변의 낙하산이 공공기관장으로 내려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들은 관료집단의 ‘노리개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관료들을 통제할 효과적인 기제와 수단이 부재한 상태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검찰이나 기재부는 자기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고 이 나라를 실제로 움직인다고 ‘확신’한다. 경제부총리 홍남기가 거듭 자신의 신념 내지 고집을 꺾지 않는 것도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볼멘소리가 계속 나오게 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윤석열과 최재형 그리고 김동연이 대통령이나 정치를 우습게 생각하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 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료가 주인 되는 주권재관()’의 나라

검찰조직을 ‘칼’을 쥐고 휘둘러도, 기재부가 ‘창고’를 움켜쥐고 권세 부려도 이 나라의 정치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복마전 LH 사태 역시 정치는 끝내 제압하지 못하며, 많은 공공기관들이 성과급을 조작하면서 국민 혈세를 착복해도 손을 쓰지 못한다. 아니 그들에게 항상 끌려다닌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는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한 채 그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하고 있다. 구조적 관점에 살펴보면, 정권이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러니 정권은 잡았으되 곳간 열쇠와 부엌살림은 계속 공무원 집사에게 맡기게 되는 ‘청와대 하숙생 신세’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관료집단은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주인이며, 관료집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철칙은 불변하다.

 

고위공무원을 정무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선진국들

미국에서는 ‘정무직(政務職)’의 임명 범주가 대단히 넓다. 즉, 대통령과 정부가 바뀌면 정부 국장급까지 정무직(political appointees)으로서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최고위층 공무원은 EL-Ⅰ에서 EL-Ⅴ까지 5등급으로 분류된다(EL= Executive Level).

EL-Ⅰ: Secretary(장관)

EL-Ⅱ: Deputy Secretary(부장관)

EL-Ⅲ: Under Secretary(차관)

EL-Ⅳ: Assistant Secretary(차관보)

EL-Ⅴ: Deputy Assistant Secretary(국장급)

프랑스 역시 중앙부처의 국장,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의 직위가 정치적 임명직(자유재량 임명직)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 심사를 거쳐 특별 채용하는 등 총 7만 여 개의 직위를 임명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3조, 「국가공무원지위에 관한 법률」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은 “중앙 행정부 국장은 국무회의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이 실제로 국장급 이상의 직위를 모두 직접 임명한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대통령의 정무직공무원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은 통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인 기존 경력직 공무원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우리 언론은 자주 말단 직급부터 차관이나 장관까지 올라가는 ‘입지전적 인물’이 많다는 뉴스를 ‘미담’으로 소개한다. ‘늘공’과 ‘어공’ 논리에 언제나 ‘어공’의 폐해만 특별하게 강조된다. 이는 우리 공직사회 후진성 반영의 역설일 뿐이다.

우리 공직사회는 현대적 공직 시스템의 표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일제 강점기 이래 철밥통의 신분보장과 외부 진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독점을 내용으로 하는 일제 강점기 ‘봉건적’ 공무원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이다.

 

정당과 공직 시스템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독일에서는 정당에 고위 공직군이 연계되고 소속된다. 독일에서 정부의 정치적 의도 및 목표와 지속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관직에 취임하는 정치적 임용직 관료는 언제든지 이유를 명시하지 않고도 해임(Einstweiliger Ruhestand)할 수 있다.

독일에서 이렇게 고위공직자에 대한 해임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 수립 후 이전 시대에 임명되었던 행정부의 ‘왕당파 공무원’들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이때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용된 관료는 해임에 대한 불복 신청의 권리가 없으며, 이에 대해 연방정부 인사위원회 및 연방의회는 관여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용된 이들 관료들은 정당에 소속된다. 각 정당에 소속된 수백 명 규모의 정책 전문위원들은 많은 경우 행정부 근무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정책 전문가로서의 높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정책 전문위원 외에도 에버트재단이나 아데나워재단 등 각 정당의 정치재단에 소속되어 직무를 수행하는 그룹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 공직 시스템 개혁 없이 우리 사회 전진 없다

관료집단이 전문가라는 선입견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전문가(specialist)로 임용된 것이 아니라 단순 시험에 의해 임용되는 일반행정가(generalist)이며, 더구나 1~2년 주기로 순환 근무하기 때문에 전문가로 평가하기 어렵다. 오직 내부 정보와 인맥에 의존하여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로 ‘대접’받아온 측면이 강하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존재하는 각계각층의 전문가 그룹을 공직에 적극 기용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공직사회가 관료들만의 “그들만의 리그”로 독점되거나 일반인 “접근금지 구역”의 독점물로 전락되어선 안 된다. 민간부문이 부족한 부분은 그간 공직사회의 폐쇄성으로 공직으로의 진입이 강제로 차단되어 초래된 공직 경험이다. 이들에게 공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공직사회의 독점이 해소되고 민간과 공공 간의 건강한 교류가 이뤄지면서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관료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현재의 고위 공직 시스템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고위 공직을 정무직으로 전환하거나 독일처럼 정치적 임용에 의한 정당 소속화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최하위직부터 최상위까지 모든 공직이 “접근금지 구역”의 영역으로 차단된 폐쇄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관료주의의 온상으로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전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동되고 있다. 이는 주권재민과 책임정치의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위반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 독점적 공직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전진할 수 없다.

화, 2021/07/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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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보수정당인 국민의 힘조차 기본소득을 언급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기본소득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에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자본주의사회를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강조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본래 취지와 목적은 자본주의를 위기로부터 구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하는데 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알려나갈 때에는 그 무엇보다 인권적 의의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여기에서는 기본소득과 인권과의 관계에만 국한해서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기본소득은 곧 인권이다

인권(人權)【1】은 크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제1세대 인권)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제2세대 인권)로 구분할 수 있다. 정치권력에 의한 폭압이 심했던 과거에는 주로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강조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더 강조되고 있다. 즉 진정으로 인권이 실현되려면 국가권력으로부터 탄압이나 박해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들은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는 등 국가를 위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국민들을 위해 어떤 의무를 수행해야 할까? 그 무엇보다 생존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이것은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 것처럼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임을 의미한다.

먼 과거부터 각종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겨왔다. 조선 시대에도 흉년이 들면 양곡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예전에는 쌀이 곧 사회적 생존을 의미했기에 국가는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도록 만들 의무를 수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사회는 쌀만으로 사회적 생존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최소한의 생계비, 즉 최저생계비가 있어야만 사회적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는 마땅히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줌으로써 사회적 생존을 책임지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가장에게 생존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밥을 달라, 옷을 사달라, 학교에 보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가족(혹은 가장)에게는 가족 구성원들의 생존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은 국가에 대해 생존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민의 생존을 보장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인권에는 생존권이 포함되므로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기본소득제는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 인권을 책임지는 기본장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인간은 살 권리가 있다! … 이 살아갈 권리, 즉 의식주가 보장되고 의료혜택, 교육 등을 받을 권리는 어떤 조건에 의해서도 … 결코 제한되어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신성불가침한 권리이다.’【2】라는 심리학자 프롬의 말처럼 기본소득은 곧 인권이다.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

어떤 이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기본소득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생존 불안이나 위기를 겪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를 그냥 죽게 내버려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도 죽게 내버려두고 있을까? 즉 그들은 자기 가족 중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어린 자녀나 늙은 부모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어죽도록 방치하고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노동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에게 생존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일까? 최소한 자신의 가족만큼은 생존의 권리, 인권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회구성원들을 생존의 권리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 이하의 존재처럼 여기고 있다. 오직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만이 생존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우리 가족만 인간이다!). 반면에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들이 존엄한 인간이며 그들을 인간답게 대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모두가 인간이다!). 이것은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 여부가 이웃들 나아가 인간을 인권의 하나인 생존의 권리를 가진 존엄한 존재로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르는 척도임을 보여준다.

심리학자 프롬은 기본소득【3】과 관련해 생존의 권리가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조차 인정해주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애초부터 강조해온 바이며, 많은 원시부족들이 실천하고 있는 매우 오랜 규범이다. 인간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느냐 다하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지닌다. 이는 우리가 반려동물에게는 인정하면서 같은 인간에게는 인정하지 않는 권리이다.【4】

그의 말처럼 생존의 권리는 반려동물에게도 인정되는 권리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것은 이웃들, 인간을 반려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대우하겠다는 것과 같다.

 

기본소득과 삶의 자유

인권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에게 인권이 있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자본주의국가들은 명목상으로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생존조차 버거운 사람에게 “마음껏 해외여행을 할 자유가 있다”거나 “강남의 아파트를 살 자유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존권에 대한 위협 혹은 생존 불안은 마치 블랙홀처럼 자유를 집어삼키고 빼앗아가는 주범이다. 즉 생존 불안에 사로잡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자유란 먼 나라의 이야기이고 사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존 불안으로 인해 심각하게 자유가 침해당하는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담보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누리게 해줄 수 있다. 여기에서는 지면관계상 두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자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이다. 누군가가 상품 선택의 자유, 여행지 선택의 자유 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그를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는 자기의 삶,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할 수 있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생존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자유에 채워진 생존 불안이라는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해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 한국인들은 돈과 무관하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 혹은 사회적 의의가 있는 직업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한다. 생존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직장에 취직하고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한국 사회는 명목상으로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생존 불안으로 인해 실질적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제는 생존 불안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이 돈과 무관하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유를 뒷받침해줄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당연히 즐겁고 행복해질 것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는 창의성, 열정 등이 넘실거리는 흥겹고 활력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과감한 도전과 모험, 창의성과 혁신은 실패하면 굶어죽는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이 아니라 실패해도 죽을 일은 없다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기본소득과 인간존엄성

기본소득이 자유에 미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효과는 그것이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데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란 다소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한테 지배당하거나 착취당하지 않을 자유, 학대당하지 않을 자유(갑질, 차별, 무시당하지 않을 자유 등)처럼 인간관계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 최악의 고통을 경험한다.

과거에는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침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지배층의 폭압이었다. 예를 들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침해하는 기본원인은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정치였다. 반면에 오늘날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생존 불안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과거와 같은 독재정권의 폭압은 별로 경험하지 않지만 극심해진 생존 불안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난폭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생존 불안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타인의 생존권에 영향을 미칠 힘이 있는 사람들은 갑질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반면 생존권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갑질을 당해도 저항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생존 불안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침해당해도 저항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한국인들 중에서 갑질을 당한 경험이 전혀 없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10%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갑질 피해 경험자 중의 80%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라고 답변했다【5】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갑질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저항하기보다는 참고 넘어가는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겠지만, 생존 불안 때문이다. 갑질이나 성추행을 당했을 때 저항하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해고당해 굶어죽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저항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를 각각의 개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생존 불안에 시달린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는 평등한 관계를 맺기 힘들고 그들에 의해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당하더라도 저항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직장상사한테 갑질을 당하는 직장인, 대학교수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대학원생, 부모한테 학대를 당하는 자식은 생존 불안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가 모두에게 생존이 가능한 정도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준다면 사람들은 “내가 왜 당신의 갑질을 참아야 해? 자르고 싶으면 잘라! 기본소득이 있는데 죽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갑질이나 성추행에 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갑질을 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은 갑질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각종 조직이 민주화되고 분위기가 건전해질 것이다. 즉 사람들이 서로를 평등한 존재로 바라보며 서로 존중하는 정상적이고 건전한 인간관계가 일반화되고 각종 조직을 포함하는 사회 전반이 민주화될 수 있을 것이다.

폭압적인 국가권력에 의한 인간관계에서의 자유 박탈은 줄어든 반면 생존 불안을 매개로 한 인간관계에서의 자유 박탈이 극심해진 오늘날에는 기본소득이 없이는 인간관계에서의 자유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자유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유라고 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장치, 인간 존엄성을 지켜주는 보루, 저항권의 뒷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프롬은 기본소득이 인간관계에서의 자유를 가능하게 해준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능 있고 야망이 있는 젊은이들은 다른 종류의 직업을 택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이며 젊은이들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더 이상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이것은 물론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 , 행동을 금하는 정치적 억압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말이다.)【6】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기본소득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반드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을 뒷받침해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국민은 국가에 대해 기본소득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국민에게는 국가가 기본소득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 그런 반인권적인 국가를 개혁할 권리도 있다.

 

【1】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프롬/문국주 역, 1981, 『불복종에 관하여(On Disobedience)』, 범우사, 1996, 119쪽

【3】 그는 ‘최저생계비 제도’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내용적으로 오늘날의 기본소득과 같다.

【4】 프롬/문국주 역, 1981, 『불복종에 관하여(On Disobedience)』, 범우사, 1996, 117쪽

【5】 권혁용 외, 『여론으로 본 한국사회의 불평등』, 2019, 매일경제신문사, 77/85쪽

【6】 프롬/문국주 역, 1981, 『불복종에 관하여(On Disobedience)』, 범우사, 1996, 119쪽

 

김태형

목, 2021/07/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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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최병성 목사의 기고문 <산림청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 국민 생명 위험하다>이 오마이뉴스에 발표된 이후 산림청의 대규모 벌목을 둘러싸고 커다란 논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성환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반론] ‘나무를 베면 안된다’는 함정을 넘어>라는 기고문을 발표하한 바 있다.

필자는 이메일 아이디도 나무(namoo)라고 쓰고 있을 정도로 평소 나무에 나름 큰 애정을 가져왔다. 또 그간 10여 년 동안 가로수에 대한 과도한 가지치기를 시행하는 각 구청과 시청에 계속하여 민원을 제기해왔던 터라 김 의원의 기고문과 그것을 둘러싼 동향에 대하여 당연히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김의원 기고문에 대한 여러 구체적 반론들이 제시되었다

김성환 의원의 기고문이 발표된 뒤 그에 대해 원 기고자인 최병성 목사의 반론 기고문도 두 편 발표되었고, 다른 기고자의 반론도 나왔으며 환경단체의 입장도 이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 의원은 그 뒤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처음 쓴 그 기고문의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 기고문의 몇 가지 중요한 팩트(fact)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반론이 제기된 상태이다.

이를테면, 사유림 벌목은 산림청과 무관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비롯하여 이른바 ’30년 이상 숲의 탄소흡수량 감소론’에 대해서도 나무와 토지에 축적되어있는 탄소량은 계산하지 않았고, 이밖에도 임도 건설을 비롯해 벌목과 운송, 가공,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탄소 배출 그리고 벌목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다양한 생물종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들이 지적되었다. 그러면서 결국 국민 혈세가 묘목공급, 풀베기, 가지치기 등을 담당하는 산림조합과 산림법인 등의 배만 불려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관료사회와의 관계가 정부여당의 유능과 무능을 결정한다

김 의원의 해당 기고문은 5개에 이르는 표와 그림 모두 국립산림과학원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산림청 측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공무원들과 ‘정치’의 관계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는 우리 사회 운용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한다. 물론 공무원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무원들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우리 공직 사회에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이 아직 적지 않고 조직이기주의와 관료주의의 병폐도 여전히 온존하고 있으며, 부정부패의 사슬 역시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직 사회에 대한 올바른 관리 및 적절한 통제는 ‘정치’의 중요한 과제이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용하는가에 따라 ‘정치’ 그리고 결국 정부의 유능과 무능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김 의원은 지금도 해당 기고문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수정할 내용이 있는지 그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며, 기고문을 발표한 기고자로서도 마땅히 지녀야 할 의무일 것이다.

필자가 이 문제를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방식으로 관료들의 보고서에 대한 ‘재점검’ 과정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비로소 ‘정치’와 관료사회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소준섭

토, 2021/07/1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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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십년 동안 농민들과 농업 전문가들은 우리 농업에 대해 희망적인 얘길 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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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소득이 적다. 소득이 적으면 일이 편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일도 고되다. 사람은 의지하며 모여 살아야 하는데 농촌에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농업 저소득, 농촌 공동화, 농민 재생산지수 0.05 이하, 농지의 대부분 비농민 소유

농업에 대해 얘기하면 주로 이런 얘기이다. 농업 정책이나 공약을 거는 사람들은 ‘농촌에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온갖 소릴 다 하지만 결국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악순환만 계속되고 내리막만 내려가고 있다.

농업이 힘들다는 얘길 해 왔지만 올해처럼 어려운 해도 없었을 것 같다. 봄부터 비가 자주 와서 결실과 성장에 지장을 주는 건 자연현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동안 우리 농업 노동력을 지탱해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에 빗장이 걸리면서 일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힘들다는 소리가 나온다.

우리 농업도 이제 기계화가 많이 진행되어 쌀 농사는 거의 기계가 다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던 시절에는 일꾼 한사람이 하루에 논 2백 평을 심으면 잘 심는다 했는데 지금은 승용이앙기 한 대가 하루에 30~40명 분의 일을 해치운다. 밭농사도 파종기가 있어서 씨를 심거나 모종을 심는 걸 기계가 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가 하기 어려운 일도 있는데 감자나 마늘, 양파를 캐는 건 기계가 하지만 이를 골라서 자루에 담는건 사람이 해야 한다. 또 이런 일들은 거의 전국에서 동시에 이루어져 수확기에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데 올해는 일꾼이 모자라 구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꾼을 공급하는 인력회사는 배짱을 튕기며 일꾼을 보낸다. 2~3년전만 해도 일꾼 하루 품값이 6~7만원 했는데 올해는 13만원에도 구하기가 어렵고 어떤 지역에서는 일꾼 한 명에 20만원까지 했다고도 한다.

또 일꾼을 맞춰놓았다고 오전 오후 참이며 아이스 커피, 맥주까지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끝내 일꾼이 안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얘기는 일반 언론에는 보도도 되지 않는다. 농업계 전문지에서나 볼 수 있는데 도시 사는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니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의 뉴스일 뿐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한다고 일부 지자체나 정부가 내놓은 농촌인력중개센터 확충이나 도농 인력중개센터 운영, 파견근로 시범 도입 등은 실제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인건비가 올라서 생산비가 오르면 시장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농산물 가격은 그 만큼 오르지 않으니 규모가 적은 농가는 농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언제 원상으로 회복될지 알 수 없다. 국민의 70%가 백시늘 접종하면 집단면역이 되어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들었는데 영국이나 이스라엘 사례를 보면 그런 기대도 어려울 듯하다. 설사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 해도 농업노동자로 들어오는 나라에서도 같은 상황이어야 하는데 변종 코오나가 계속 발생하면서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는 들어오기 어렵고 농촌의 농민들은 계속 줄어가는 상황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면 중장기 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촌에 가려면 주거가 확보되어야 한다. 우리 마을은 도시에서 이사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집이 없어서 빈 집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집 지을 돈은 없고 농촌에 와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공공임대주택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정책입안자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도시에 세울 궁리만 하고 있다.

농촌에도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싸게 임대를 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농업노동을 하여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면 농촌으로 이사 오려는 사람들이 쉽게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풀려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도 지금과 같은 주거 환경은 그들에게도 너무 열악하다.

충북 괴산에서는 면마다 10가구가 살 수 있는 공동임대주택을 지어 면의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키는 가정과 그 지역으로 귀촌하는 가정에게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지자체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중앙정부와 농어촌공사 그리고 지자체가 협력하여 추진하면 빠르게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농업노동자, 농촌 주민들을 늘리기 위해 기본주택, 기본소득, 기본대출은 농어촌에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한 때 농촌의 비어있는 집을 수리해서 귀농 귀촌인을 위한 집으로 임대해 주는 사업을 시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편리함에 익숙해 있는 도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은 수리해도 익숙해진 편리함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면의 중심지 마을 특히 학교가 있는 마을에 우선적으로 공공임대주택 건립을 시행해 나가야 한다.

이 건축 기간에 이사 올 사람들을 공모하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고 교류하고 마을과 함께 사는 법을 훈련해서 원주민들과 발생할 갈등을 줄여야 한다. 또 원주민들도 이사 올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경계하지 말고 마을 주민으로 함께 살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고 이들을 맞이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치밀하게 그러나 속도있게 준비하고 추진할 일이다. 우리 농촌 미래 5년, 10년을 준비하는 일이다.

지난 달에 이어 농촌기본소득과 기본주택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 농촌의 절박함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이다.

지난 달에 쓴 시평 ‘마을에서 마을을 돌보다’에 독자 한 분이 응답을 주셨다. 자기 마을에는 마을사업을 할 젊은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냐고.

춘천 별빛 마을 같이 아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돌봄 사업을 하려면 마을 활동가를 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직 그런 의지가 있고 활동력이 있는 40,50대가 마을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70대 이상이 사는 마을은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노인들이 마지막까지 자존감을 유지하며 마을에서 살 수 있는 방안을 지자체가 모색해야 한다. 마을에서도 지자체가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서 행정과 주민이 협력하는 사업을 모색해야 한다.

 

이재욱

화, 2021/07/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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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 광저우시 변두리의 한 마을에 거주하는 ‘문화교류 활동가’이다. 5년전 중국에 건너 올 때는 하자센터에서 배운 마을생태주의, 여성주의, 스스로 공부한 탈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동아시아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야심’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당연히 만만치 않아, 모두 ‘장기과제’로 돌려버리고, 지금은 한가하게 중국책이나 인터넷글들을 읽으며 소일하고 있다. 일년전 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하는 중국인 아내와 결혼도 했고, 주변엔 모두 중국인 친구들뿐이다. 코비드 때문에 국경넘어 왕래를 못하니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외부세계’를 만난다. 아주 오래전엔 십년 넘게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며,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생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의 소속감에 기대 ‘명예백인’노릇도 하고, 반대로 회사안의 백인중심주의에 분노하며 이에 대항하는 범아시아주의를 상상하기도 했다. 중국대신 태국으로 갈까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현지인들과 ‘깊은 문화적 이해’에 기반한 ‘평등한 관계’를 맺을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래도 중국에 건너올 때 우리의 앞선 시민의식을 “널리 알려 교화하자”는 숨은 의도도 있었으니, 여전히 “아시아의 유일한 근대국가 한국민”이라는 우월감은 포기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모하던 자잘한 프로젝트들이 하나둘 실패하면서 서서히 키워오던 감각이 있다. 작년 봄, 코비드 락다운은 그 감각을 온전히 의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층을 나눠 살며 함께 너른 마당을 가진 주택을 공유하는 중국인 중산층 가족과 석달간 집과 마을에 갇혀 있었다. 가족과 국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고, 그들의 관점을 내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다케우치 요시미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중국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국을 내안으로 품어 되감는 것도 소통이 전제가 돼야 한다.

때문에, 나는 작년부터 한국내에 고조되기 시작한 반중정서를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역으로, 중국에는 딱히 반한이라 할만한 대중적 정서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긴장했다. 일반적인 중국인들은 한국내의 반중정서를 알지 못한다. 언론이 콕집어서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중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고, 아마도 자기편을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중국 정부가 역풍을 우려해 언론을 통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주류언론은 조선구마사 논란에 대해서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한국에 대한 보도가, 이를테면 N번방사건 같은 대개 부정적인 뉴스 일변도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즉, 어느 정도 실상을 파악하고 있는 중국 언론인들의 한국에 대한 불만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나는 추측했다. 이 와중에 잠시 중국 언론의 입질에도 오른 김치, 한복 논쟁은 오히려 해프닝에 가까왔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한중 ‘배틀’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고, 나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이 전투에 참전하는 중국인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궁금해져서 직접 검색을 해보았다. 감정섞인 선동이나 일부 사실의 과장과 왜곡 등을 걷어내고 보면, 그 요체는 “한국인들이 많은 중국전통문화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를 포함한 주위 친구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런 생각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중국인들에게 막연하게나마 오랜 기간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절이고, 공자가 실은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식의 상고사와 관련한 ‘족보논쟁’들도 있었다.

와중에 조선구마사 사건에 반응하는 한국주류 미디어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그동안 코비드 중국책임론에 휘말리지 않고 중국에 대한 감정적 비난을 자제해오던 개혁과 중도 성향의 일부 매체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특히 문제라 생각했다. 이런 화법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애국주의 네티즌을 비판하던 논리의 거울이미지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의 부당한 내용 간섭도 아닌데, 중국 브랜드 음식이 PPL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됐다는 몇몇 드라마의 사례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한 중국의 네티즌이 한국 식품회사가 냉동만두를 코리안푸드라며 해외에 수출하는 것을 중국문화 강탈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어이없다고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체보도와 페이스북 여론을 살피며 무슨무슨 공정이라는 일련의 신조어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한국인들의 큰 불만이 동북공정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알았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중국인들이 민관합심하여 한국의 역사를 중국내 소수민족 역사로 치부하거나, 나중에는 한국을 예전의 속국처럼 부리려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음도 깨달았다.

이런 한국인들의 두려움과 불만은 한한령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기때문에 지난 5년간 더 많이 누적되어 왔다. 시진핑 집권 이후 강화된 중국의 내부 독재와 외부에 대한 강경노선은 중국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전문가들에게조차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다. 중국 정부의 “조종을 받는 샤오펀홍 현상”은 한국 사회과학계의 분석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이다. 중국발 팬데믹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최근 몇년간 미국이 앞장서고 서구사회가 거드는 형태로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홍콩, 신장 등의 문제도 새로운 미움의 이유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인들이 막연히 품게된 반중 감정이 왜 과도하다고 생각하는지 하나씩 설명해보려한다.

한국인은 중국인이 세상 모든 문화가 중국에서 비롯했다는 ‘만물중국기원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자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농담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딱 댓구를 이루는 ‘한국의 중국전통문화강탈설’처럼 과장돼 있다. 신장지역 주식인 낭이 피자도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할지 몰라도, 정색하고 그런 주장을 할 중국인은 많지 않다.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김치에 대한 도발은 아마 가장 한국인을 자극하는 소재일 것이다.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존재 때문에, ‘챠오시엔파오차이’라는 표현을 할 수는 있어도, 영어명 차이니즈 캐비지인 배추가 중국에서 건너갔으니, 중국 음식이라 생떼쓰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 그들도 중국에서 김치를 맛보려면, 한식당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안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사천식 파오차이같은 다양한 절임음식, 발효음식이 있기 때문에, 그리 김치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오해에서 비롯한 불만 때문에 몽니를 부리는 일부 네티즌들이 있을뿐이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거의 신경쓰지 않는 강릉단오절과 남방 중국인들의 국민명절중 하나인 단오절은 기원만 같을뿐 별 관계가 없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대다수 중국인들을 흥분하게 하는 쟁점과 대다수 한국인들을 화나게 하는 이슈는 같은 것이 아니다. 중국인의 것은 중국인에게 한국인의 것은 한국인에게 돌리면 될 일이다.

동북공정의 실상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돼 있다.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 참고하려고 아내도 예전에 한부를 사 둔 중국의 저명한 역사지리학자 탄치샹의 <중국역사지리집>(1981)은 현재 국제표준으로 인정되는 지도집이다. 이에 따르면, 한4군 멸망 후, 한반도 북부는 ‘중국 역대왕조의 영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만주지역에 대해 우리 사학계와 이견이 있다지만, 공개된 학술적 논쟁이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탄치샹의 직계 제자이고 중국 교육부 사회과학위원회 위원인 거졘슝 푸단대학 교수도 그의 대표작 <통일과 분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선(반도)과 월남의 문화와 제도는 중국 내륙이나 변경의 소수민족보다 훨씬 더 중국에 가까왔다. 하지만, 두 나라는 독립왕조 성립후, 중국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역시 푸단대학의 저명한 중국문화사 전문가 거자오광 교수는 <이 중국에 거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현대중국의 영토기준으로, 역사상의 중국을 설정해서는 안된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관할하던 지방정권이 아니다. 토번(티벳)도 당나라의 일부가 아니었다.”

혹시해서, 20년 넘게 진행중인 한중일 청소년 역사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가 친구가 된, 상하이 민항중학교 역사교사 판선생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봤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고요.” “그게 뭐죠, 동북지역 개발 프로젝트인가요 ? 역사선생인 제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죠” 헛웃음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 확인했다. “그러니까, 중국 학교에서 고구려를 중국의 역대 지방정권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는 거죠 ?” “당연히 아니죠. 중국 역사에서 가르칠 내용만 해도 너무 많아서 바빠 죽을 지경이예요” 그는 인터넷으로 동북공정을 검색해 본 후,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동북공정이란 이름을 들어 본 중국인은 10만명도 안될 거예요.” 빠링80허우인 둥베이 출신의 ‘절친’ 아무에게 물어봤을 때도, 황당하다는 표정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걸 대체 누가 신경쓴데요?”

한한령때문에 대중국 문화콘텐츠 수출이 차질을 빚은 것은 사실이다. 아마 한류의 영향을 받는 화장품 같은 소비재 수출도 타격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국 수출총액은 꾸준한 편이고, 한국이 G8에 들어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국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중국내 샤이한류팬들은 꾸준히 인터넷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류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소재의 드라마가 한국에서 시즌을 시작하면,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중국의 일류매체에 앞다퉈 공들인 평이 실린다. 한국 매체들이 평을 내기도 전이다. 최근엔 ‘자산어보’와 ‘무브투헤븐’에 대한 평이 눈길을 끌었다. 예전과 같은 압도적 한류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한한령보다는 지난 5년간 중국의 자체 콘텐츠 생산능력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중국 콘텐츠 소비자 시장은 일본, 홍콩, 타이완, 영미, 심지어 타이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까지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전 세계 콘텐츠의 춘추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력이 풍부해 어떤 나라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든 언어능력을 갖춘 ‘덕후’들이 신속하게 자막을 제공한다. 콘텐츠 구매여력이 높은 대도시의 밀레니얼 세대 힙스터들은 일본문화를 선호한다. 중산층이 늘면서 오래된 선진국의 삶을 동경하고, 경쟁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데 ‘소확행’ 원조 국가인 일본콘텐츠가 제격이다. 물론 Z세대는 한류를 더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으니 두고 볼일이다.

현재 중국산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핵심인력들인 빠링허우 세대는 망가와 아니메를 보고 자랐다. 72년 중일 수교후, 홍콩과 타이완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가 일찌감치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화적 감수성을 의미하는 소위 ‘2차원(평면)’문화가 있다. 중국판 유튜브라 할 수 있는 삐리삐리에 지난 10년간 온갖 하위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하던 이들이, 이제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미 5억명의 독자를 확보하는 규모로 성장한 웹소설 시장이 드라마와 영화의 풍부한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무협물 등의 전통적 강점을 살려 해외에도 진출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무협판타지드라마 샨허링의 원작은 BL웹소설이다. ‘과환세계’라는 전문잡지 40년 역사를 가진 SF는 휴고상을 수상한 ‘삼체’의 소설가 류츠신이 있다. 2019년 개봉한 중국 최초의 본격 SF영화 ‘유랑지구’가ᅠ역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미중간의 우주개발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AI를 비롯한 각종 첨단 IT 기술이 새로운 생활문화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컬SF문화가 성숙해 나간다. 2020년 중국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드라마, ‘침묵의 진상’과 ‘은밀한 구석’의 원작자 즈진쳔은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로 불리는 추리소설 작가이다. 중국 콘텐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검열로 한쪽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인터넷모바일 문화와 궁합이 잘맞는 장르물들이 매우 발달돼 있고, 검열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현실풍자나 이상적 세계에 대한 희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상역사극, 역사판타지물 혹은 촨유에穿越라 불리는 역사타임슬립물들이 인기가 있다. 한국드라마 ‘철인왕후’의 원작이 이런 장르의 중국 웹소설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얼마전부터 한국드라마 중국시장외 판권의 구매를 재개한 중국의 3대OTT 아이여우텅愛優騰은 모두 인터내셔널 버젼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중국 콘텐츠들이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기세가 만만치 않다. 아직도ᅠ중국이 유일하게 한국 콘텐츠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부문은 예능일 것이다. 광고주의 심한 압력때문에 창작대신 손쉽게 베끼는 관행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는 소위 중국판 예능2.0으로 불리는 창작물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올해 초에 인기를 끈 ‘희극신생활’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복-한푸 논쟁을 불러왔던 중국 청년들의 자국 전통문화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자. 이들의 전통문화 애착은 샤오펀홍들의 맹목적인 선호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에 의한 다양한 문화소비 혹은 학습열로 보는 것이 옳다. 지금 중국 청년들에게 타임슬립을 해서 어느 시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송宋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송대는 산업과 상업이 발달해 매우 부유했고, 그 결과 한족 문화가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하지만 문약하여, 요, 서하같은 북방 민족국가들과 대등한 국가간 협정을 맺으며 중화-오랑캐라는 유아독존적 천하관을 최초로 탈피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팽창주의에 기대 한당漢唐 시기를 그리워하던 분위기속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상황이라고 송대 전문가 베이징대 자오둥메이 교수는 설명한다. 삐리삐리의 콰녠완후이는 12월31일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며 인터넷상에서 일체감을 느끼는 버라이어티쇼이다. 국풍이라 불리는 전통문화관련 콘텐츠도 인기가 많지만, 한쪽에선 코스프레차림의 사용자가 일본어로 아니메 주제가를 부르기도 하고, 해리포터나 왕좌의 게임부터 톰과 제리에 이르는 서구의 인기 콘텐츠를 가공해서(이 과정은 畜生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껑'(밈의 중국어 표현)으로 즐기기도 하는 혼종적 문화를 선보인다. 중국 청년들의 전통문화 사랑을 단순하게 애국주의로 등치시킬 수 없는 증거이다. 중국 청년들의 이런 자국 문화 사랑을 보면서, 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열기라든가, 최근 K-방역이나 BTS 등을 자랑스러워 하는 한국 청년들을 떠올린다. 2017년 발표된 런민대학 류하이롱 교수의 “국가가 아이돌이 될 때: 신매체와 팬덤 민족주의의 탄생”이라는 논문이 있다. 그에 따르면 샤오펀홍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일종의 공동체적 행태와 문화는 그들이 관용, 개방, 강대, 독립과 같이 긍정적 가치를 투사해서 환상으로 빚은 국가라는 아이돌을 숭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아이돌을 BTS로 치환시켜보면, 아미의 그것과도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샤오펀홍이 한국 네티즌들과 다투며 이런 인터넷 공동체 문화를 배웠다는 분석 기사도 봤다. 자기애적ᅠ국뽕과 적으로 간주되는 타자에 대한 공격성은 문제가 되지만, 크게 보면 오랜 기간 가져왔던 서구와 선진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콰녠완후이의 톰과제리 畜生: 고전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화면에 중국 전통악기인 나발 등을 배경음악으로 연주한다. <출처: https://liii.ink/O8tdVHTclF5M_f>그렇다고 세대를 초월하여 중화주의로도 표현되는 이들의 공격성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다. 나는 15년전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중국인에게 겪은 매우 불쾌한 경험이 있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유학생출신 이민자였는데, 다국적 기업의 베이징 사무소에 출장을 와있던 차에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초면인 나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람들은 왜 한자를 버리는 등 ‘취한화去漢化'(중국 문화 배척)를 하는 거죠 ?” 당시, 한글전용론과 한자병기론이 오랜 기간 사회적 논쟁이 돼오기도 했었고, 나는 한자병기론쪽에 살짝 기울어 있던 터였지만, 우리 민족과 국가의 언어 사용에 대해서, 간섭하려는 그의 무례한 문화패권주의에 놀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최근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중국인들에게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즉, 왜 한한령限韓令따위를 만들어 세계가 인정하는 우월한 한류 콘텐츠를 받아들이지 않냐고 중국인들을 원망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중국 문화계가 항상 한류 콘텐츠를 카피한다고 심하게 조롱한다. 따지고 보면, 근년들어 급증한 중국인들의 과도한 전통문화 ‘저작권 집착’은 한국인들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현대의 대중문화 선진국”인 한국과 “전통문명 강국”인 중국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셈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인데, 한중양국은 오랜 기간 이웃으로 지낸 탓에 마음속 깊은 곳에 서로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감정들이 차곡이 쌓여있다. 한중일 삼국간에 교차되는 이런 복잡한 감정은 깊이를 알 수없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예절범절은 치명적인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의 아픈 곳은 될수록 돌려서 지적하는 습관을 유지해왔다.

서구사회의 인정을 갈구하며, 명예백인의 관점으로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는 관행은 일본이나 한국만의 전매특허도 아니다. 중국인들 자신이 여전히 스스로를 그렇게 검열하고 규정한다. 신발도 태우고, 외국인이 중국여자를 약탈해간다는 인터넷상의 쇼비니즘적 애국주의 선동이 난무하지만 미국인이나 백인들이 중국에서 정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반대로, 미국에서 특히 약자인 아시아 여성과 노인들에 대한 물리적 가해가 빈번해진다. 일년전 친한 중국 청년이 내가 중국인 아내와 사귄다는 것을 알게 돼 덕담을 건네면서, 한편으로 노골적 적개심을 드러낸 것은,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흑인과 라틴아메리칸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실제 미국에서 아시안을 폭행하는 것은 흑인과 라티노가 많다고 한다. 중국의 대학교수들이 점수를 따기 위한 두가지 기준은 연구결과가 링따오 (당 지도자)의 칭찬을 받거나, SCI에 등재된 저널에 실려 서구학계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정신분열적으로 들리는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물리적, 담론적 권력이 여전히 하나의 촘촘하고 완고한 위계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신장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2009년 광둥에서 일하던 위구르족 청년이 한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유언비어때문에, 한족 남성노동자들이 위구르족 노동자들을 집단구타하면서 촉발됐다. 오늘날 중국에서 주류 한족이 비한화된 소수민족들을 구조적 혹은 비구조적으로 차별하는 모습은 미국내의 인종차별과 평행세계처럼 보인다. 상대방의 차별은 눈에 들어오지만, 나의 부조리는 애써 들추고 싶지 않다. 일대일로상에 놓인 저개발국가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족 중국인들에게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다. 내가 사는 광저우는 당나라 시기 아랍과 페르시아 상인들이 십만명 넘게 거주하던 천년역사의 무역항이지만,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온 보따리장사들이 워낙 많아 ‘초콜릿도시’라 불린다. 지독하게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호칭이 시사하듯, 매년 불법체류 단속활동속에 사상자가 발생하고 인권침해가 벌어진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아 나는 차마 중국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못하겠다.

“가족의 구성원리가 국가로 확장되고, 국가의 통치가 가족의 윤리로 내면화된 유교적 가국家國시스템이 중국에선 이천년간 단절없이 이어져왔다”. 신천하주의로 유명한 화둥사범대학교의 중국역사문화연구자 쉬지린 교수의 설명이다. 많은 보통 중국인들은 국가의 사회에 대한 과도한 간섭을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염려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보건데, 국가의 인권침해나 언론과 학문의 자유훼손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공산주의 보다는 이러한 전통관념때문이다. ”중국역사에서도 왕위를 찬탈하거나 왕조가 교체되는 일이 빈번했지만, 상징적 아버지를 살해하는 시부弒父 설화는 나타의 이야기처럼 극히 예외적으로만 존재한다. 각색된 현대판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에는 이 이야기조차 아버지의 사랑에 감화돼 자신을 희생하는 유교적 서사로 완전히 뒤집혀서 표현된다.” 주위의 독립예술가들과 젊은 라깡연구자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것을 단순히 ‘전근대‘라는 한마디로 딱지붙이는 순간, 이들의 내적합리성을 이해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민주공화국 대통령 문재인을 “유교적 군자의 윤리를 현현한 현군”으로 간주하며 칭송하거나, 으뜸가는 그의 지지자이자 ”인류의 모든 문명은 남성이 여성을 매료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킹왕짱마초‘ 김어준이 ’리버럴‘ 민주당의 매일 아침대변인 노릇을 하는 모습은 어떤가? 임명직 공무원인 검찰의 수장 윤석열이 선거대신 유사과거제라 할 수 있는 고시를 통해 무소불위의 상징권력을 획득한 덕에 자의적 법실천을 남용해도 여론에 힘입어 유력한 대권주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을 설명할 방법도 함께 사라진다.

중국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 고대설화를 편집하여 만든, 명나라때의 6대기서중 하나인 봉신연의에 나타哪吒의 이야기가 있다. 나타는 부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나중에 자신을 배신한 아버지에게 격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출처: http://kr.people.com.cn/n3/2019/0730/c310297-9601643-7.html>

중국의 문제는 실재하지만, 서구의 문제제기를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의 독립된 관점과 관찰을 통해 묻고 따져야 현실의 울퉁불퉁한 디테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언론자유침해라는 미국 의회의 주장은 얼마나 진실에 가깝나? 이것은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인가 아닌가 ?

끝으로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비대칭의 문제가 있다. 그들과 우리의 의식속 가장 오래되고 깊은 곳의 중화주의가 발현할 때마다 아픔이 되살아난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후지이 다케시는 얼마전 그의 페이스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와 가해는 비대칭적이다. 피해는 개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겪게 되지만, 가해는 대부분이 자리와 위치의 효과이다. 그래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간생략)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주체성의 결여이지만…” 이를 한중관계에 적용해 보자면, 중국이 중화주의의 가해자로서 특별히 구체적 잘못을 범하지 않아도 한국은 항상 피해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중국이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자리와 위치’를 마음쓸 정도의 ‘문명국’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나는 잘모르겠다. 인류의 역사속에 그게 가능했다면, 서구인들이 지금처럼 비서구인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지성에게 완전히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새로운 세대의 중국 공공지식인으로 불리는 옥스포드의 인류학자 샹뱌오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특별한 자랑거리가 아닌 그저 운명일뿐이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철저히 씹어 삼켜야 한다.“

이 그림은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출처: https://theycantalk.com/image/641238503847559168>

같은 이치로 우리도 스스로 주체성을 강화해 피해의식을 탈피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강대국 중국의 위협을 거론하지만 한국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감히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기술이든 제도이든 문화든 중국이 양뿐 아니라 질까지 수월성을 확보해 한국을 추월하는 미래상인 것 같다. 근대이전처럼 중국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국격의 재역전 상황을 상상하기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가 굳이 비교의 대상이 되기 힘들 정도로 큰 스케일을 가진 이웃 나라와 무의미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제넘은 의견이지만,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 ”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묻고 따지는 우리 자신의 생각습관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유사역사학과도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고대 만주벌판과 북중국의 유령을 찾아헤매며 우리가 폐위된 적장자임을 호소하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세계로 국한할 때나 아름답다. 이를 현실역사로 끌어들여, 물리적 영토 욕심으로 발전시키면, 중국인들에게 제국주의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뿐이다.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가 한국인 연구자도 참여하고 있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협력하여 2020년 네이쳐 커뮤니케이션과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2020년 중국내 10대 과학기술업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만주의 홍산문화유적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현대 북중국 한족, 일본민족, 한민족과 비교한 유전자 비교 검사 결과를 보면, 누가 더 멀고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의미한 논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위 중화민족, 그중에서도 한족은 중국 인류학의 비조 페이샤오퉁이 제시했듯 다원일체성으로 표현되는 매우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한민족의 너다섯배 이상 깊고 넓은 족보를 정리하기 위해 스스로 이미 머리가 터지는데 우리가 성급히 논쟁에 끼어드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바심하지 말고, 지금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내 아내는 한국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 빠링허우 세대이고, 조경디자이너인 자신의 일이 ‘생활미학’과 관련이 있다보니 일본문화에 훨씬 더 호감이 많다. 그가 나와 결혼한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어로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그는 짬날 때마다 한국어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한다. 나는 일에 쫓겨 늘 바쁜 그가 한국어 공부에도 매달리는 것이 안쓰러워 나중에 같이 한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나는 한중의 시민들이 이웃 나라에 대해 추상적이고 막연한 감정을 갖는 것이 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떤 계기로 상대방의 구체적인 무언가에 관심을 갖게 되든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할 기회를 갖게 됐을 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도 아니라면 차라리 서로 무관심한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 이글의 요약판이 시사인에 게재되었습니다. 시사인의 동의하에 축약되지 않은 원문을 다른백년에도 전재합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778

목, 2021/07/1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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