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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할아버지의 눈물…”일본 강제징용 사죄·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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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할아버지의 눈물…”일본 강제징용 사죄·배상해야”

익명 (미확인) | 금, 2019/03/01- 17:29

용산역 광장서 강제징용노동자상 합동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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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1일 서울 용산역에서 열린 강제징용노동자상 합동 참배행사에서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와 이희자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추진협의회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19.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제가 내년이면 100살이 됩니다. 3·1절 날 모여서 이렇게 행사를 해주시니 감사하고 눈물이 납니다.”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는 1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노동자상 합동 참배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선 이춘식 할아버지는 감동에 북받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춘식 할아버지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희자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이춘식 어르신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은데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하신다”며 “함께 투쟁하고 재판에 참여한 동료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신다”고 할아버지의 말씀을 대신 전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난 날을 잊을 수 없다”며 “많은 분의 도움으로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나라 사법부를 존중하지 않는 일본은 정말 파렴치하다”며 즉각적인 배상 이행을 촉구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늘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비극적인 역사를 되돌아보고 억울한 희생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눈물이 마르기 전에, 분노가 힘을 잃기 전에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갈 때 우리 역사는 바로 세워진다”고 강조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70년이 넘도록 미뤄진 미완의 해방을 온전한 해방으로 완성해야 한다”며 “일본의 죄악을 완전히 청산하고 군국주의 부활 책동을 분쇄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거 일본이 우리 민족에 행한 인권 유린에 대한 사죄와 배상 없이 새로운 관계 정립도 불가능하다”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email protected]

<2019-03-0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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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친일청산을 웃음거리로 만든 박흥식 석방

해방 75년이 된 지금까지도 미완의 과제인 친일청산. 이를 한 편의 웃음거리로 만든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친일청산 대상 1호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화신 재벌 박흥식이 1949년 4월 21일 풀려난 일이 그것이다.

고도의 상징성을 띠는 이 사건과 더불어 친일청산은 힘을 잃고 약해졌다. 그 뒤 도리어 공격을 받기까지 했다. ‘빨갱이’들의 음모로 매도되고 사회 퇴행의 원인인 양 치부됐다. 박흥식 석방은 친일청산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를 예고하는 한 편의 그림이었다.

1903년 8월 6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친일파 재벌로 성장한 박흥식이 얼마나 많은 반민족행위를 저질렀는지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세로 길이가 26센티미터이고 글씨가 빽빽한 이 사전에서 웬만한 친일파들은 길어봤자 반 페이지, 유명한 친일파들은 두세 페이지 정도를 차지한다. 그에 비해, 박흥식은 4페이지 하고도 6분의 1 페이지를 차지한다. 사연이 무척 많은 친일파인 것이다.

‘친일청산 대상 1호’ 박흥식의 반민족행위

▲ 화신백화점 터.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출구 근처에 있다. 보신각 맞은편이다. ⓒ 김종성

진남포상업학교를 중퇴한 뒤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16세 나이로 진남포에서 미곡상을 차린 박흥식은 재벌이란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시켰다. ‘박흥식’ 하면 떠오르는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외에도 다종다양한 회사들을 거느렸다.

박흥식은 직물업·제지업·인쇄업·유통업·부동산업과 비행기 제조업까지 경영했다. 거기다가 학교도 설립해 교육사업을 병행했다. 1, 2년마다 한 번씩은 회사를 신설하거나 합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였다.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제약을 받던 시절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한국인이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 밀려 숨도 쉬기 힘들 때였다. 그렇지만 그는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한국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사업 무대를 평안도에서 서울로 옮긴 1926년(23세) 무렵의 박흥식에 관해 <친일인명사전>은 “이 시기 조선총독부 외사과장 다나카 다케오와의 친교를 배경으로 일본 제지회사들과 특약을 맺고 국내의 동아일보사·조선일보사 등과 신문용지 전속구매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상업적 성공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서술한다. 정경유착이 사업 성공의 발판이었던 것이다.

기업인의 친일은 대개 다 기금 헌납 정도에서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흥식은 그렇지 않았다. 사업에서처럼 이 분야에서도 그는 왕성하고 의욕적이었다. 위에 열거한 업종들에 더해 ‘친일업’까지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마치 사업을 하듯이 친일도 열렬히 했다.

박흥식은 총독부에 기금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일본군에 비행기를 제공할 목적으로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까지 직접 차렸다. 또 기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글과 말로도 친일을 했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등에 글을 실어 “대동아경제권 건설을 위해 동아경제블럭을 형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미국과 영국의 격멸을 부르짖으며 학도병에 지원할 것을 종용했다.

또 경성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 활동까지 겸했다. “촉탁보호사는 사상범들이 출옥 후 다시 항일운동에 나서지 못하게 사상적 과오를 청산하고 황도(皇道)정신을 자각하고 충량(忠良)한 황국신민이라는 본연의 자세로 복귀하도록 전향시키는 임무를 담당했다”고 <친일인명사전>은 말한다.

그의 죄상을 죄다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제국주의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도 일하고, 국민총력조선연맹에 가담해 인력과 물자를 전쟁에 동원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 때문에 표창장도 많이 받았다. 조선총독이 주는 공로상은 기본이고, 일본 교육진흥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교육협회장한테서도 상을 받았다. 또 히로히로 일왕(천황)을 직접 만났다. 일본을 위해 웬만큼 공을 세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43년 12월 17일자 <매일신보>에 기고한 ‘배알 1주년 – 지성으로 봉공’에서 박흥식은 “나는 산업경제계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특히 반도 출신으로서는 오직 한 사람으로서 황공하옵게도 배알의 광영에 욕(浴)하였는데, 지척에서 용안을 봉배(奉拜)한 때의 감격은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습니다”라며 ‘배알 1주년’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감격을 표했다. ‘배알의 광영’을 마치 목욕하듯이 뒤집어쓴 것이 그토록 강렬한 감동이 됐던 것이다.

친일파 풀어준 재판부, 무죄 구형한 검사

▲ 반민특위 재판 풍경. ⓒ 위키백과

사업도 많이 하고 돈도 많아서 안 그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인물이 그처럼 글과 말로도 열렬히 친일을 했으니, 반민특위 체포 대상 1호로 선정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격멸을 부르짖었던 그는 체포를 피하고자 미국행 여권을 준비했지만, 1949년 1월 8일 체포돼 독립운동의 상징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언론보도도 ‘첫’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박흥식 체포에 의미를 부여했다. 3일 뒤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 ‘박흥식씨 수감’은 ‘반민법 첫 발동’이라는 부제목 하에 “특위는 10일 공보 제1호로 박 체포 경위를 공식으로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친일청산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직후의 전 민족적인 친일청산 요구가 조만간 충족되리란 기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보수 세력이 반민특위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경찰까지 동원해 총격 테러를 가하는 상황에서, 반민특위가 ‘체포 1호’를 오래 붙들어두기도 힘들었다. 결국 박흥식은 보석(보증석방)으로 풀려나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수면 부족으로 신경이 쇠약하다는 게 보석 결정의 사유였다.

1949년 4월 22일자 <경향신문>은 보석에 반발하는 반민특위 검찰관(검사)들의 집단사퇴 표명을 보도하면서 ‘반민법 운영에 이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과 친일청산의 어두운 운명을 예고하는 ‘이변’으로 이 사건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수면 부족과 신경쇠약을 이유로 친일파를 풀어준 재판부는 욕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뇌물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있었다. 그러자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이 직접 한마디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종인이라는 아홉 살짜리 손자를 둔 김병로 특별재판부장 겸 대법원장은 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검찰관에게는 그러한 사실이 있는지는 모르나 재판관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실은 전혀 없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고 답했다.

그 뒤 박흥식 사건은 세상의 분노를 자아내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담당 검사인 정광호 반민특위 검찰관은 그해 9월 26일 구형 때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의 담당이었던 노일환 검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뒤 사건을 새로 배정 받은 정광호는 유죄가 아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해 9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 ‘박흥식씨에 무죄’에 따르면 정광호가 내세운 무죄 이유는 아래와 같다.

“본인으로서는 피고에 대하여 구형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본다. 원래 반민법의 입법 정신은 일제 잔재를 숙청하는 데 있었으나,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고 따라서 기소 사실은 편중적이었으며, 공소를 기각하려 하였으나 이미 기소된 것이니만큼 부득이 구형하지 않을 수 없는 괴로운 심정을 억제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이상과 같은 구형을 하는 바이다.”

공산주의자들의 농간으로 인해 반민특위가 박흥식을 편파적으로 대했다고 언급한 뒤, 이미 기소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구형할 수밖에 없는 괴로운 심정을 고백한다면서 무죄 선고를 요청했던 것이다.

잠시 뒤의 재판부 선고 때도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재판부 역시 박흥식을 편들었다. 그해 9월 28일자 <경향신문> 기사 ‘반민 피고이던 박흥식씨’에 따르면, 박흥식이 일본을 위해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 활약은 없었으며, 신문에 쓴 글도 타의에 의한 피동적인 것이었을 뿐이라는 무죄 선고 이유가 제시됐다. 세상이 다 아는 박흥식의 친일을 부정할 길이 없으므로 ‘실질적 활약은 없었다’, ‘시켜서 한 일이다’ 등의 논리를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판결 이유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안 도산 선생에게 많은 원조를 했다’는 부분이다. 박흥식이 도산 안창호와 친분을 유지하며 도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덮기 힘든 박흥식의 죄상을 안창호와의 인연으로 가리고자 했던 것이다. 박흥식의 친일 혐의를 벗겨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에게 독립운동가의 영예까지 씌워줄 뻔했던 것이다.

박흥식이 안창호의 수감 생활과 출소 이후를 도운 것은 1938년까지다. 그런데 1937년부터 박흥식은 촉탁보호사를 겸하면서, 출옥한 항일투사들을 회유했다. 박흥식의 안창호 후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대목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라 할 수 있다.

‘반민특위 체포 1호’ 박흥식의 석방은 친일청산의 운명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반민특위에 불들린 여타 친일파들도 박흥식처럼 풀려났고, 친일청산이 도리어 빨갱이들의 음모로 매도됐다. 그렇게 친일청산이 무산된 상태로 벌써 60년 넘게 세월이 흘러버렸다.

박흥식 사건은 친일이 아니라 ‘친일청산’이 청산된 부조리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이 사건은 ‘친일청산은 쉽지 않다’는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친일청산을 지지하는 쪽에는 분노를 주고, 반대하는 쪽에는 희망과 요행을 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박흥식 석방이 상징하는 부조리가 청산될 가능성이 2020년 4월 15일부터 현저히 높아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친일청산의 성공 가능성이 21대 총선을 계기로 한층 더 제고된 것이다.

2016년 촛불혁명 이후로도 친일청산 및 과거사 청산을 계속해서 조롱하고 비웃고 훼방하던 보수세력 상당수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사실상 몰락했다. 저세상에 있을 박흥식과 그 동지들의 얼굴이 어두워질 만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박흥식을 비롯한 친일파들이 다시 한번 불려나와 진짜 심판을 받게 될 날이 조만간 다가오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

<2020-04-2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 풀어준 이유가 수면부족과 신경쇠약?

수, 2020/04/2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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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상 필립보 몬시뇰
(서울=연합뉴스)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5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2020.4.25 [천주교 인천교구 제공]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5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가톨릭계에 따르면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사제로 서품했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과 폐결핵 투병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1963년 뒤늦게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갔다.

그는 반평생을 민주화·사회 운동 현장에 있었다.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 구속됐다.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민문연 이사장 때인 2009년 당시 임헌영 민문연 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을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바쳤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그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ㅍ그를 두고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이면서도 지역 선교와 신앙 교육 등 사목활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몬시뇰은 2018년 12월 회고록 ‘따뜻한 동행’을 펴냈다. 사제가 되기까지 과정을 비롯해 현대사 한복판에서 겪은 일들을 담았다.

2년여 투병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25일 오전 0시 5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빈소는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장지는 인천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email protected]

<2020-04-25>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주화·사회운동’ 헌신 김병상 몬시뇰 선종

※참고기사

☞한겨레: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2018.12.17)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신부 (2008.09.09)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유신독재 반대 민주화운동에 앞장
동일방직사태 굴업도핵폐기장 등 마다않고 사회정의 실천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질곡의 현대사에서 사회 정의와 민주화운동을 실천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병상 몬시뇰 원로사목이 25일 새벽 0시 5분 향년 88세 일기로 선종했다.

고 김병상 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를 비롯한 각 교회 본당이 펼치고 있는 자선운동과 사회복지사업 등의 선교운동을 일군 분이자, 인천 민주화운동의 큰 숲이며 어른이다. 동일방직대책위와 굴업도핵폐기처리장 대책위에 등 김 신부는 시민과 노동자와 함께했다.

고 김병상 몬시뇰

김병상 신부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천주교에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신부에게 교황청이 공로를 인정해 내리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김 몬시뇰은 1932년 충남 공주 교우촌 요골공소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몬시뇰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1948년 서울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와중에 폐결핵에 걸려 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뒀다. 그 뒤 병마를 극복하고 19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다시 1963년 33세 때 서울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는 1969년 12월 13일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 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소신학교 때 전쟁과 피난생활을 겪고 병마와 싸우느라 늦깍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은퇴할 때까지 37년 동안 사제생활하며 기독교 복음과 사회선교, 사회정의 실천에 앞장섰다.

김 몬시뇰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있어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을 균형 있게 이끌어온 사제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교회 밖에서 더욱 폭넓게 알려졌다. 그는 교구 총대리로 재직하던 1977년 유신체제에 맞서다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김 몬시뇰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때부터 그는 천주교 인천교구가 실천했던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다. 앞서 얘기한대로 1977년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76년~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노동자를 보호했다.

김 몬시뇰은 특히 1989년~95년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낼 때 같은 기간 인천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초석을 마련했다.

김 몬시뇰은 목요회 회장으로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을 백지화 했다. 당시 대책위는 인천 지역 재야단체와 학생단체, 주민단체가 대거 결합한 지역 전선 운동기구였다.

그 이후에도 김 몬시뇰은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와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이어갔다. 김 몬시뇰은 2004년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대리를 맡아 활동하다가 2006년 11월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2008년~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참여하며 교회 안팎의 현장에서 기도와 사회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 뒤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요양시설에서 머물다 2020년 4월 25일 새벽 선종했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주관하는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일정은 아래와 같다. 분향소는 인천 중구 답동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이며, 장지는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장례일정] 
– 분향소 :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인천시 동구 박문로 1, 032-765-6961)
 
–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 대중교통편: 제물포 북부역에서 송림동(동화동성당)방향으로 도보 10분, 차로 3분

– 입관예절 : 4월 26일(주일) 오후 2시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입관실)
– 입관 후 미사: 4월 26일(주일) 오후 3시 (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 출관예절: 4월 27일(월요일) 오전 8시 30분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예식실)
– 장례미사: 4월 27일(월요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
– 삼우미사: 4월 29일(수요일) 오전 11시 (하늘의 문 묘역 성직자 묘역)
– 장 지: 인천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

<2020-04-25> 인천투데이

☞기사원문: 민주화운동 큰 숲 천주교 인천교구 김병상 몬시뇰 선종

토, 2020/04/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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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KBS 1TV 4월 28일 화요일 밤 10시 00분

역사저널 그날
262회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 – 반민특위

온 국민의 염원, 친일파 청산
해방 직후 국민들의 염원, 친일파 청산. 그 염원에 답하고자 1948년 10월 제헌헌법에 의거해 국가기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반민특위는 출범 초반부터 강력한 추진력을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검거된 거물급 친일파
온 국민의 주목 속에서 가장 먼저 검거된 친일파는? 조선 제1의 실업가 박흥식.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백화점 화신백화점의 소유주이자, 일제에 전쟁 물자를 기부한 전형적인 식민지 기업가이다. 이후 악질 중의 악질로 꼽히는 친일 경찰 노덕술, 대중에게 영향력이 컸던 문인 이광수 등이 차례로 검거된다. 하지만 그들 중 반성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 심지어 이광수는 일제강점기에 살아있던 모든 사람이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는데…

 

반민특위를 둘러싼 음모
반민특위는 출범 전부터 강력한 반대세력과 싸워야만 했다. 반민특위 출범 전 열린 대규모 반공 시위에서는 친일파를 척결하려는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자’임을 주장하며 반민특위 활동을 반대한다. 또한 반민특위 요원 암살 모의 사건이 발각되기도 하고, 친일 경찰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며 일전불사를 선언한다.
결정적으로 반민특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6.6사건이라 불리는 ‘반민특위 습격사건’. 수십 명의 무장 경찰이 반민족행위자 조사 서류를 압수하고 반민특위 요원들을 납치하는데…

반민특위 방해공작의 배후는?
관제시위, 반민특위 요원 암살 모의, 납치, 국회 프락치 사건 등 반민특위는 수많은 방해공작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을 지지하는 배후가 있었으니,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반민특위 소속의) 특별경찰대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게 명령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또한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을 만나 반민특위 조사 선상에 있는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 중단, 면죄를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무기력해진 반민특위의 요원들은 전원 사임서를 제출한다.

이루지 못한 꿈
반민특위가 취급한 친일 혐의 688건 중 반민 재판에 회부된 인물은 단 41명. 그중 실형을 받은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난다. 그리고 1951년 반민족행위 처벌법은 폐지되고 ‘친일’을 언급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바뀐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4월 2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반민특위’에서 살펴본다.

<2020-04-28> KBS 

☞기사원문: 역사저널 그날 262회 친일파 청산, 이루지 못한 꿈 – 반민특위

화, 2020/04/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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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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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의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해당 도서는 제목과 같이 정치 권력을 ‘몹시 꾸짖는’ 주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서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질곡을 그들의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일제 식민지와 6·25동란, 분단 현실과 군사쿠데타를 거치며 우리 시대 문학은 무엇을 보고 어디에 펜촉을 향하고 있는가 저자는 준엄하게 묻는다.

1편 이호철
냉전 시대의 고정관념 허물기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1950년 6·25전쟁에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울진까지 내려와 국군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고 12월에 월남해 부산에 도착했다. 이후 부산에서 부두 노동자, 제면소 조수, 미군 부대 경비원 등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 갔다. 이 시절 실향민으로서 남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삶의 척박함과 치열한 생존 의식은 그의 소설의 원체험으로 자리하게 된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수, 2020/04/2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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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상임이사 조세열

4월 25일 평생을 민주화와 인권증진에 오롯이 바친 김병상 몬시뇰께서 하느님 곁으로 떠나가셨다.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인천시민모임’ 상임대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등을 맡아 한국사회 곳곳의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를 보듬은 진정한 목자의 삶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는 뒤늦게 인연을 맺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기조로 삼을 것이라던 세간의 예측을 비웃듯, 철저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특히 통일 분야와 과거사 관련 문제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과거사 청산의 제일선에 서있는 민족문제연구소로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오를 정비하고 반동 국면에 대응할 태세를 갖춰야만 했다. 먼저 2대 이사장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별세 이후 공석으로 있던 이사장직에 연구소의 위상에 걸맞은 어른을 모셔 구심을 세워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신부님께서 “인품으로나 신념으로나 이 중책을 감당할 수 있는 훌륭한 분이 계신다”고 귀띔을 해주셨다. 그 분이 바로 김병상 신부님이셨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께서 주선한 자리에서 김병상 신부님은 “도움이 된다면 역할을 다 하겠다”고 흔쾌히 어려운 책임을 맡아 주셨다.

2008년 10월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는 “연구소 출범과 함께 내걸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매진하겠다. 이는 거대한 역사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단초이며 발판”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병상 신부님은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완수함으로써 이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 후 2013년 지병으로 이사장직을 사임하실 때까지 참으로 중요한 순간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물론 전체 역사정의 실천운동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셨다.

▲ 친일인명사전을 백범선생께 헌정하고 나서 기념촬영하는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이명박 정부의 역사왜곡과 시민운동 탄압이 노골화하고 있던 시기에도, 김병상 신부님께서 꿋꿋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셨기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변함없이 가열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강제병합공동행동,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사업 등을 시작하고 기초를 놓은 것이 그 보기이다. 또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하여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개악 저지 투쟁을 전개하고 역사다큐 ‘백년전쟁’을 제작하는 등 수구세력의 역사변조에 전면 대응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김병상 신부님은 종교가 현실을 떠나 존재할 수는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친일문제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사회문제들이 친일 청산 문제와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뿌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맘몬을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이나 오늘의 사회 문제나 다 맘몬을 선택한 결과이다. 회개해 하느님을 선택하는 길, 그게 친일 청산이고 오늘의 사회 문제에서 진짜 벗어나는 길이다.”

가톨릭 교회가 일제침략기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친일인명사전』에 교단의 주요 인사들이 수록된 점을 비난하는 데 대해서도, 교회의 호교론적 변명을 비판하면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일갈하셨다.

불의와 부정에는 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셨지만 실제 우리가 뵌 김병상 신부님은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몸에 배인 온화한 분이었다. 당신께서 “민주화운동과 사목에 기여한 바 없이 대접만 받아 부끄럽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후진들에게도 항상 ‘앞선 자의 오만’을 경계하셨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김병상 신부님은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소중한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후배 성직자들에게 형으로 불릴 정도로 소탈하고 격의 없는 분이기도 하였지만, 우리 연구소 식구들에게는 한 결 같이 인자한 할아버지요 아버지처럼 대해 주셨다. 두 손을 잡아주시던 그 분의 따뜻한 눈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회고록 『따뜻한 동행』에서도 드러나듯 신부님은 정의로우면서도 포용하는 사회를 지향하셨다. 늘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한 따뜻한 동행자셨다. 이제 신부님께서 남기신 뜻을 실천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생전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사회와 역사 정의 실현의 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늘에서도 지켜보시고 저희들이 불의에 맞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함없이 이끌어 주십시오,

목, 2020/04/3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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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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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뉴스1: 북한에서 대동강 숭어국, 꼭 맛보고 오세요 (19.9.29)

저자 이지상은 대륙에 평화가 있다고 믿었다. 평화를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이 시베리아 안내자가 된 이유였다.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북한 전쟁에 대한 공포, 양 체제의 반목으로 인한 대립, 분단에서 기인한 각종 불완전 요소가 상재하는 상태에서 대륙과의 소통은 궁극적 평화의 길에 이를 수 없다고 믿었다.

‘기차의 꽁무니에 걸터앉아 나도 평화가 되어 대륙의 어디든 따라가고 싶’어서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북한의 안내자가 된다면, 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기준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나와 기차로 동행하는 도반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주제를 중심으로 골랐고 공부했다.’

수십 권에 달하는 북한 관련 책들과 기사, 방송,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과 탈북민들의 인터뷰를 섭렵했고, 북한의 생활상과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 북한의 노래와 소설, 시, 인문서적을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런 노력과 열정, 그리움에 자신의 바람(Hope)까지 더해 저자는 북한의 구석구석, 소박한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지상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가수, 시민활동가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 민족음악인 협회 연주 분과장을 지냈고 여러 드라마, 연극, 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1998년 1집 ‘사람이 사는 마을’, 2000년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2002년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6년 4집 ‘기억과 상상’ 2016년 5집 ‘그리움과 연애하다’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2014년 ‘스파시바, 시베리아’를 출간했다. 시노래 운동 ‘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 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으며 성공회대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월, 2020/05/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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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4일 본사서 시상식

제21회 의암대상 수상자에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과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이 선정됐다.의암대상심사위원회는 최근 강원도청에서 심사위를 열어 학술부문에 심철기 학예실장을,공로부문에 이학주 원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철기 학예실장은 국가보훈처 연구원,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연세대 연구교수,독립기념관 연구원 등으로 일하면서 류인석 선생을 비롯한 한말의병운동 연구에 업적을 남겼다.지역사회 의병운동 동향 등을 정리,연속성을 밝히고 재판기록과 당대 신문을 통해 일제의 의병탄압과 계몽운동세력의 의병 인식 등 의병운동의 다양성을 실체적으로 파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학주 원장은 강원대 강사,광주예술대학교 전임강사 등을 역임하며 ‘조선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 등 의암 류인석 선생 관련 저술·논문·집필 학술 연구를 이어온 것 뿐 아니라 강연과 각종 전시회 등을 통해 류인석 선생을 비롯한 한말의병의 활동과 정신을 확산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시상식은 내달 4일 강원도민일보사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금 각 1000만원이 수여된다.

김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2020-04-27> 강원도민일보 

☞기사원문: 제21회 의암대상 수상자에 심철기·이학주씨

월, 2020/05/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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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가짜 독립운동가’ 고발한 김세걸 선생을 보내드리며

▲ 김세걸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는 “카메라”였다. 늘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행사사진 촬영을 도맡았다. ⓒ 김경준

7일 오후 독립운동가 김진성(1914~1961) 선생의 장남 김세걸 선생(72)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어쩌다 독립운동 관련 행사장에서 마주칠 때면 늘 건강한 모습으로 손을 내미는 선생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SNS로 소통하고 영문과 중문으로 된 해외 원서들의 번역 작업에 몰두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선생이기에 급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황망할 따름이었다.

2년 전 가을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선생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김낙용·김병식·김관보·김정수)의 실체를 고발해 그들의 서훈 취소를 끌어냈다. 무려 20년에 걸쳐 국가보훈처와 줄다리기 한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관련기사: 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http://omn.kr/180fq).

감정이 북받쳐올랐던 선생과의 첫 만남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에 대한 기억,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반주 화면에 등장한 현충원 묘역 영상에서 부친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을 발견하고 느꼈던 황당함, 한국으로 건너와 문제의 무덤이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일을 회고하는 선생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정작 선생의 목소리를 기록하던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선생이 20년 동안 겪은 고초를 감히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선생은 중국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편안한 삶이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1997년 조국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돌아온 선생에게 조국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제기하는 선생에게 보훈처 공무원들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귀화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느냐’며 핀잔했다고 한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일을 몰랐던 내가 너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인터뷰 말미에 선생은 힘주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이상 안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올바른 해결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현충원에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진 이들이 66기나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겁니까. 이런 건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합니다.”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181번 묘) ⓒ 김경준

선생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선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짜 독립운동가로 밝혀진 김정수의 묘역을 강제 이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선생은 보훈처로부터 “유족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파묘할 법적 권한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가 나간 지 2년이 흐른 지금도 김정수는 여전히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선생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가짜 독립운동가가 현충원에서 파헤쳐지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것이다.

더욱 아쉽고 원통한 것은 이제야말로 선생의 꿈이 실현될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들을 강제 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친일파 강제이장에 대한 찬·반 설문’에서도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지역구 후보자 73.1%가 찬성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 강제 이장을 허용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친일파뿐만 아니라 가짜 독립운동가로 판명 난 묘역의 강제 이장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떠난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애달프다. 빈소를 찾아 선생의 영정 앞에 향을 사르며 다짐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반드시 현충원에서 친일파와 가짜 독립운동가들을 끌어내겠다고.

빈소를 나오면서 헛헛한 마음에 차영조 선생(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후손)께 전화를 드렸다. ‘영원한 동지’를 잃은 선생의 목소리에도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는 나의 위로에 선생께서는 내게 이렇게 당부했다.

“가신 분은 가신 분이고 남은 우리가 뜻을 잘 이어받아 나갑시다.”

선생의 영면을 기원하며, 남은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 “영원한 동지” 차영조 선생(차리석 선생 후손)과 김세걸 선생(김진성 선생 후손) ⓒ 김경준

덧붙이는 글 | 고인: 김세걸 (향년 72세 / 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빈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0호실
발인: 2020년 5월 10일 오전 9시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상주: 처 안보의, 아들 김해남, 김해응

<2020-05-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의 가짜 독립운동가들 꼭 끌어내겠습니다

화, 2020/05/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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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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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뉴스 ☞뉴스1: [새로나온책] 명시 (19.9.29)

노동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근현대사 속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데 힘써온 안재성의 장편소설.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며 항일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생애를 소설로 재현해낸 작품으로, 조국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꾼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안재성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성트로이카』, 『황금이삭』, 『연안행』, 『사랑의 조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명시』 등의 장편소설과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실종 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식민지 노동자의 벗 이재유』,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윤한봉』 등의 평전, 『한국노동운동사』, 『청계 내 청춘』, 『타오르는 광산』 등의 노동운동 관련 책,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등의 역사책을 펴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화, 2020/05/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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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문당한 선량한 철학자 스피노자와는 대화도 식사도 금지인 데다 2미터 이상 떨어져야만 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전 인류에게 이와 똑같은 ‘고슴도치의 법칙’이란 굴레를 씌워버렸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방역복을 착용해야만 외출이 가능한 재앙으로 번질까 두렵다.

이 유령 같은 괴질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한국은 실로 2차 대전 이후 시민혁명을 가장 많이 치른 민족적 긍지를 높여주고 있다. 이 다행스러운 흐름에 견인차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다른 한편에 이 해괴한 바이러스는 ‘욕망하는 기계’인 돈벌레(黃金虫)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지닌 온갖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 주어 선진국일수록 더 허둥대는 꼴불견을 노정시켰다.

특히 지구 전체를 파멸시킬 가공할 무장력을 과시하는 미국과 그 찰떡 공모자인 일본의 대응책은 국민의 생명 보호가 기본인 국가의 책무를 포기한 무방비에 가깝다. 그런데도 트럼프와 아베는 자신의 지도력에 도취하여 황홀한 나르시시즘의 포로가 되어있는 형국이다. 온 지구인들이 부러워했던 나라가 고작 저런 실체였는데 그간 우리가 속아온 건가, 아니면 코로나19 이전에는 훌륭한 국가체제였으나 이 괴질로 순식간에 변질된 걸까.

미 백악관 코로나19 데스크포스(TF)가 3월 31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최대 24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공식 예측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뉴시스/AP
아베 총리의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있는 마스크 2020.04.07.ⓒ뉴시스/AP

세계 최대의 자기 나라 도시에서는 시신이 썩은 고목처럼 뒹구는 데도 RC-135W정찰기를 한반도에 보내는 한편 B-1B 폭격기는 남중국해를 맴도는 등의 긴장 조성에 더욱 열심인 걸 보면 동아시아에 행여나 평화가 깃들까 조바심 내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19를 아예 중국과 한국 때리기로 삼고자 작심한 듯이 사사건건 생트집을 잡아 물어뜯는 트럼프와 아베의 블랙코미디는 마치 국내의 일베나 태극기 부대 혹은 제1야당과 너무나 닮았다. 동맹은커녕 인간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거기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까지 나서서 장단을 맞춰 노골적인 인종차별 감성을 부추겨 KKK단이 부활하나 싶어 모골이 송연해진다. 더욱 공포스러운 건 그걸 다루는 언론의 태도다. 그 전 같으면 이런 비이성적인 조치를 질타하는 논조가 빗발쳐야 하건만 조용하기만 하다.

과연 저런 게 인류가 피를 흘려 쟁취해온 참된 자유민주주의일까? 한국 같으면 금방 항의 촛불시위가 일어날 법한데 그 반대로 끔찍한 시취(屍臭)가 떠도는 도심 한복판에서 외출과 영업을 허용하라며 총까지 들고 시위하는 지경이니, 돈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황금충의 나라라고 한들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미 국방부가 느닷없이 우주 비행물체를 진짜라고 공개한 것도 어쩌면 인류에게 공포심을 유발하여 지구방위대 사령부 설치를 밑밥 삼아 돈을 울궈낼 궁리는 아닌지 신경과민적 의구심마저 든다. 대선을 앞둔 터라 천문학적인 달러를 풀어대는데, 저 벌충을 필시 남의 나라에서 받아내겠지 싶어 미리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코로나19, 돈벌레로 인간을 변신시킨 신자유주의
그리고 미일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깨달아야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넘어갔을 두 부자 나라의 민낯을 보면서 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미국이나 일본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그 나라들을 모든 가치관의 상석에 놓았던 일부 우리 국민들도 돈이 없어 검사도 못(안) 받는 엉망진창 건강보험체계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이미 9.11 사태 이후 정치적 이성이 마비된 단계로 접어들었고, 일본은 한신(阪神)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원자력 발전소 사태 이후 파시즘 체제로 회귀하려는 독 묻은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판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내려오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코로나19로 실추한 권위와 경제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인류애와 평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진보적인 정치혁신을 감행해야 되건만 오히려 이 두 강대국은 까놓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을 조장하여 엄청난 이득을 챙기려고 혈안이 될 공산이 더 크다. 더욱 비관적인 건 이 두 공룡국가를 변혁시킬 어떤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지도자나 정당이 바뀌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일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세습제 권력으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비전을 갖춘 정치인을 싹수부터 잘라 왔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를 담보해야 할 유엔은 무력하고, 지구의 평화를 외칠만한 러셀이나 사르트르 같은 인류의 양심과 용자도 사라져버린 이 삭막한 시대를 오히려 절호의 기회로 삼아 미일 두 나라의 전쟁상인 기질이 더욱 잔혹해지면서 염려스러운 건 만만한 ‘홍어X’ 한반도가 걸려들까 아찔하기만 하다.

아무리 돌아봐도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려면 남북 당사자끼리가 가장 소중함을 코로나19 사태는 대오각성케 해준다. 이 공감대를 남북이 공유하고 실천하지 않는 한 한반도는 미일 두 강대국의 봉으로 전락하여 계속 시달릴 것이다. 남도, 북도 진작 알고 있던 이 만고의 진리를 제발 코로나19로 재확인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대망한다.

<2020-05-0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의 한반도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②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수, 2020/05/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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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사과문”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과 노조파괴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하지만 삼성 불법사찰 관련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며 비판했다.

‘삼성의 불법사찰에 대한 시민사회공동대응’(이하 공동대응)은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향린교회,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반올림 등이다.

지난 2월 28일 삼성전자와 삼성계열사 17곳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운동연합과 민족문제연구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국여성민우회, 통합진보당 등 10개 시민단체 및 정당을 ‘불온단체’로 규정하고 임직원들의 동의 없이 후원 내용을 열람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중 향린교회는 6월 민주항쟁의 중심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공동대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문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설치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봤다.

또한, “지난 연말 선고된 삼성노조파괴사건 판결 이후, 삼성의 지속적인 불법사찰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고 피해자가 입은 유무형의 손해를 배상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수차례 삼성에게 요구해왔지만, 삼성은 여전히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5월 12일 낮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삼성 이재용 사과 관련 삼성불법사찰 단체의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email protected]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삼성물산(구 삼성에버랜드)은 여전히 노조파괴 공범으로 나란히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노조와만 교섭을 진행하며 민주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파과 전략에 따라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에 있었던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이 진정성 없다는 것이다.

공동대응은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뒤에 숨어 허울뿐인 사과문 발표를 반복하지 말고 진짜 사과를 하라”면서, “진정한 준법은 과거의 범죄에 대해 법대로 처벌받고 현재의 범죄를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 피해자구제대책마련 등 요구사항에 충실히 답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대노총은 6일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직후 관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노총은 ‘문제는 ‘실천’이다’라는 논평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이고 있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한 ‘노동3권’ 중 교섭권을 도외시 하는 행위”라면서, “삼성은 노동조합 활동을 확실히 보장하라. 지금 삼성에게는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사과는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위해 불법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은 그간 ‘무노조 정책’의 핵심 피해자인 김용희, 이재용 해고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과와 복직, 보상이 되어야 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 발표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루어 진 것인 바, 이후 재판에서 사법적으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오늘 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2020-05-12> 참여와혁신 

☞기사원문: 삼성 불법사찰 관련 시민사회단체, “이재용 사과, 진정성 없다”

수, 2020/05/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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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박물관서 세계기록 유산 5·18 기록물 등 전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특별전 개막식 [광주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국가 기관이 최초로 주최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개막했다.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 40주년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식이 이날 오후 서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용섭 시장,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안병욱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특별전은 국가기록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등 국가 기관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5·18 기념재단, 전남대 5·18연구소 등 광주 지역 기관이 공동 주최했다.

특별전은 4개 공간에서 ▲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정부 기록물 ▲ 국방부와 광주 동구청이 생산한 상황일지·통행증, 계엄군의 군복·군화·진압봉 ▲ 1980년 제작된 일본 판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광주의 피에타’ ▲ 당시 시민들이 생산한 문서 등을 선보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인 시민들의 일기, 취재 수첩, 성명서 등 실물자료는 그동안 5·18 기록관에서만 전시된 것들로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1층과 3층의 기획전시실, 역사 회랑, 역사 마당 등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19일 제주4·3 평화기념관, 27일 5·18 기록관에서도 특별전이 개막한다.

주진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장은 “광주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소중한 자료들의 서울 전시를 통해 당시 광주시민의 눈물을 공감함으로써 광주의 역사가 올바르게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5-12> 연합뉴스 

☞기사원문: 국가 기관 첫 주최 5·18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개막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5·18 정신을 오롯이 담은 특별 전시회가 개막했다.국가기관이 최초로 개최하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특별전이 12일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관련기사 

☞위키트리: 서울에서 제주까지전국에 울려 퍼지는 5·18 민중의 함성 

☞뉴시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5·18 40주년 특별전, 서울 개막 

☞아시아경제: 5·18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서울서 개막

수, 2020/05/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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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1부] [2부]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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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금, 2020/05/1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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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역사 청산, 올바른 문화 후손에 전달

전남 광양시가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설치한 단죄문 [광양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광양=뉴시스]김석훈 기자 = 전남 광양시는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비석 앞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14일 광양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정조정위원회 자문회의와 시의회 의원간담회를 통해 ‘유당공원 내 친일논란 비석정비’의견을 수렴했다.

시는 이어 지난 2월 문화유산보호관위원회를 열어 유당공원 내 국권침탈 협력자 친일인물 이근호와 조예석 등 비석 2기에 대해 단죄문을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단죄문에는 이들이 일제 국권침탈 협력자라고 명시했다.

이근호(1861~1923)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으로 1902년 제5대 전라남도 관찰사 겸 전라남도 재판소 판사를 지내 ‘관찰사이공근호청덕애민비(觀察使李公根澔淸德愛民碑)’가 건립됐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앞장선 공로가 인정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일제 강점하 반민족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 등재된 인물이다.

조예석(1861~?)은 1902년부터 전라남도 관찰부 광양 군수로 부임하면서 ‘행군수조후예석휼민선정비(行郡守趙侯禮錫恤民善政碑)’가 건립됐지만,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에 관계한 조선 관리들에게 일본 정부가 수여한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

2009년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광양시 김복덕 문화예술과장은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해당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적시해 친일행적을 시민들과 유당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5-14> 뉴시스 

☞기사원문: 광양시, 유당공원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양시, 친일인사 이근호·조예석 기념비에 단죄문 

☞아시아경제: 광양시,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유당공원 내 설치 

☞한국시민기자협회: 광양시, 유당공원 내 친일인물 기념비에 단죄문 설치

토, 2020/05/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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