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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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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익명 (미확인) | 금, 2019/02/22- 16:22

임종국 선생의 생애를 온전하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선생에 대한 사적인 기록이 적은 데다 자료가 없는 시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동안 발표되었던 선생의 글을 최대한 수집해서 단편적이나마 선생의 생을 더듬어 보려 한다.

 

어린 시절
임종국은 1929년 10월 26일 경남 창녕군 창녕읍에서 임문호의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임문호는 천도교 청년 당수와 조선농민사 사장을 지냈고, 당대 대표적인 민족계몽운동가로서 오늘날 흔히 말하는 우파 민족주의자 가운데 중심인물이었다.

일곱 살 때인가, 형무소에 아버지를 면회 간 적이 있다. ‘의식 있는 조선인’이었던 까닭에 (아버지는) 그 후에도 한두 번 더 형무소를 드나들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 젊은이들에게 ‘지원병으로 나가라’는 연설을 했다.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든 이것은 친일행적임에 틀림없다.(<민족정기를 살려야 합니다>, 월간조선 서병욱 차장 대우와의 인터뷰)

아버지의 이런 행적이 소년 종국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때 일이었기에 종국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의 저 밑 어딘가에 아버지의 흔적이 있었을 것이다. 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의 천도교단 내의 직책이 바뀌어 서울로 이사하면서 종국은 재동보통학교를 다녔고, 10대를 신설동에서 보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우리 집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만성루(萬盛樓), 오른쪽에 죽정(竹井)이라는 일인이 살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그 집 기대(畿代)라는 소녀와 가까워져서 흔히 연정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다. 근로동원을 가서 꾀를 피우다 으레 “가찌노고다까라”(조선놈의 씨알머리니까) “아레 요보상다요. ”(저건 조선놈의 종내기야)라는 욕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검도하며 총검술을 배웠다. 배낭에 99식총과 대검을 찬 상급생들이 하늘만큼은 장해 보였다. ”조센진또 멘따이와 다다께바 다다꾸호도아지가 데루“(조선놈하구 명태는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맛이 좋아진다)라는 그 유명한 격언(?)을 들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다. 배급쌀이라고 쌀 반 콩깨묵 반이 나오더니 나중에 쌀알만큼씩 부스러뜨린 국수 종류가 배급되고, 그러자 미구에 해방이 됐다고 세상이 벌컥 뒤집혔다. 나는
해방이 뭔가 하면서 덩달아 좋아했다.
이때 내 나이 17세. 하루는 친구놈한테서 김구 선생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에!~ 너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사람이래!”
“그래? 중국사람이 뭐하러 조선엘 오지?”
“이런 짜아식! 임마 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지금 나는 요즘의 17세에 비해서 그 무렵의 내 정신 연령이 몇 살 쯤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민지 교육 밑에서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을 뿐 한번 회의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한국어를 제외한 모든 관념, 이것을 나는 해방 후에 얻었고 민족이라는 관념도 해방 후에 싹튼 생각이었다. (<자화상> 중에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출판하면서 쓴 글이다. 민족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조금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의 무지와 그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일제의 민족의식 말살정책과 그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과오를 비판하기 위해 극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이리라. 해방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다시 들어보자.

“우리는 졌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예, 조선이 독립하게 돼서 기쁩니다.
이런 소리를 10일 전 그러니까 8월 14일쯤에 했다면 영락없는 헌병대 영창감이었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일본군의 시선에 겁이 나서 나는 얼른 둘러댔었다.
“하지만 애써 싸운 당신네가 졌다는 것을 정말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씹어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20년 후에 만나자!”
(<술과 바꾼 법률책>, 『망국을 할 것인가』)

이 회고는 당시 경험과 훗날의 인식이 합쳐서 재구성됐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일본이 다시 올 것이라는 인식은 1965년 대일 굴욕외교(한일협정)을 겪으면서 위기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위기의식은 그를 ‘친일문제’라는 지난하고 고독한 세계로 들어서도록 했다.

 

방황하는 청년
청소년기의 임종국에 대해선 아직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없다. 다만 이 시기에 그는 시와 소설을 배우는 문학가 지망생이었음은 분명하다. 청년 임종국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다.
전북 장수군에서 경남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육십령 고개가 있다. 이곳에서 그는 인민군에게 잡혀 안의로 가는 수십 리 내리막길을 인민군의 짐을 진 채, 행렬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길가에 즐비한 수십 구의 아군 병사 시체를 보면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위정자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국방과 정치를 어떻게 다루었기에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도 못 돼 이곳 경상도까지 밀린단 말인가. 점심을 평양, 저녁을 신의주서 먹는다더니, 누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죄없는 청춘들만 저렇게 죽어 자빠져야 하는 것인가. 안의에 이르러 인민군 여덟을 무밭에 끌어 묻어준 후 나는 인민군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낙동강을 넘으면 고향인 창녕 땅. 가도 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나는 줄곧 분노로 가슴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술과 바꾼 법률책>)

피난살이 속에서 문학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고려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그 시절 흔히 그렇듯이 가난한 수재라면 출세를 위해 고시라는 유혹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시 준비를 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작용했다. 육십령 고개에서 본 젊은 죽음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고시에 합격하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칼을 휘둘러 나라를 좀먹은 버러지들을 무청 자르듯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고시 준비의 한 이유였다.

시골에 처박혀서 여섯 달 정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민법, 형법 총론, 각론 8권을 송두리째 암기하였다. 판사든 검사든 이미 반 이상은 맡아 놓았다고 기고만장해서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서울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폐허의 도시이자, 먹고 잘 곳조차 마련되지 않은 수도였다. 팔자 좋은 친구들은 인삼, 녹용을 달여 먹으면서 고시를 준비했지만, 그는 밥 세끼 거르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더구나 한 달에 책 한 권을 완전히 외다시피 하는 강행군을 계속하니 체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빈 강의실에 앉아서 형사소송법의 조문을 외면서도 마음은 끼니 걱정, 잠자리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운 좋게 절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고아 아닌 고아로 숙식하던 것도 불가능하게 된 데다 등록금이 없어 학교마저 휴학하게 되었다. 판검사가 되어 썩은 세상을 바로잡아 보겠다던 청년의 꿈은 끝내 잠자리와 끼니 걱정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청년의 가슴속에서 중뿔난 소리가 들려왔다. 타고난 오기라 할까, 반골의 소리가 그를 유혹한 것이다.
권좌에 앉아서 많은 사람을 머리 숙이게 하지 못할 바에야, 내가 많은 사람에게 머리 숙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권력을 내 것으로 못 한다면 대신 자유를 가지면 될 게 아닌가. 권좌에 연연하고 뇌물에 머리 숙이는 치사한 인간이 되느니 철저하게 자유인으로 살자.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뜬구름 한 조각이 되어 권력 대신 하늘만한 자유를 내 것으로 하면서 사는 거다.(<술과 바꾼 법률책>)

이렇게 해서 그는 신주 단지 모시듯 하던 법률책을 술과 바꿔 버리고 말았다. 대신 중학 시절의 꿈이었던 문학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말처럼 ‘돌아온 탕아’가 된 것이다. 탕아의 길동무론 이상(李箱)이 함께 했다. 퇴폐와 절망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한 것이 이상이었다. 〈민법총론〉 500 페이지를 한 달 만에 외워버린 천재(?)가 밥과 잠자리 걱정 때문에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자신이야말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아닌가. 이상이 죽은 지 20년이 되었건만 이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하나 없는 때였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을 발굴해서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스로 날지 못한 자신의 꿈을 이상을 통해서 실현시켜 보고자 했음일까.
〈이상론〉을 쓰고 그의 작품을 모아 〈이상전집〉 전3권을 출판하였고 틈틈이 써놓았던 시들을 발표하여 문단에 얼굴을 내민 후 몇 해 동안 술도 약간은 마셨다. 그러나 묵은 신문 잡지에서 이상의 작품을 뒤지면서 알게 된 1930년대의 사회는 그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공해 주었다. 작품인식의 한계성 문제, 즉 한 시대의 작품은 그 시대의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하게 인식할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상투의 시대와 사회를 모르면서 상투꾼들의 생활감정을 말하는 한 결국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밖에 될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문학과 사회의 관련성, 또 그것이 문학사회사의 문제로 발전하면서 그는 이것을 평생의 연구과제로 삼은 것이다. 이리하여 1960년대 초엽에 그는 향토지 경남문학에 <물레방아론>을 발표했다. 문학사회학적 방법으로 나도향의 <물레방아>를 분석한 평론이다. 그는 이런 방법을 신문학 전체에 적용하여 문학사회사를 쓸 작정으로 본격적인 준비작업을 시작하였다. 1910~1945년의 매일신보를 뒤져서 정치 문화 사회면의 기사색인을 완결한 후, 그 작업을 다른 신문 잡지로 확산 시켜갔던 것이다. 2~3년 걸려서 이 작업을 하던 중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준 사건이 일어났다. 1965년 한일회담이 타결된 것이다.

 

친일문학론 출간, 이후 일제침략•배족사 연구에 전념

1965년에 들어서마자 1월부터 제7차 한일회담이 개막, 6월 한일협정 정식 조인, 8월 한일협정 비준안 국회 통과라는 과정에서 보듯이 박정희 정권은 야당과 대학생들을 비롯한 거국적인 반대투쟁을 묵살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말았다.

20년 후인 1965년 여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그 여름은 뜨거운 여름이었다.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더니, 정말 20년 만에 쪽발이 놈들이 다시 몰려오게 되는구나! 그놈들은 일개 병사조차도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장관이란 사람이 ‘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 타령을 하는 판이었다. 이완용이가 될지언정 한일회담을 타결하겠다면 그건 대체 어느 나라를 위한 대체 어느 나라를 위한 한일회담이란 말인가? 
회담이 타결도 되기 전에 그런 타령부터 나온다면, 그것이 타결된 후의 광경은 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밀듯이 일세(日勢)는 침투해 올 것이요, 거기에 영합하는 제2의 이완용이과 박춘금…..얼마든지 또 생각날 것이다. 묵은 친일파들이 비판받는 꼴을 본다면 제2의 이완용과 박춘금이 그래도 조금은 주춤하겠지? 이런 생각에서 나는 『친일문학론』을 쓰기로 작정했다. (중략)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다. 2~3년 걸려서 만들어 둔 신문과 잡지의 게재 작품 기타 문화 사회면의 기사색인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별 카드에 옮겨서 찾아 읽고 비평만 하면 됐던 것이다. 그 기사색인은 문학사회사를 쓰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책인『친일문학론』의 기초자료로 요긴하게 전용된 셈이었다. 그 기사색인 덕분에 『친일문학론』은 복사기가 없던 시대라 자료의 상당 부분을 필사로 옮겨 베끼면서도 원고 2천매 탈고까지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일이 끝나면 다른 문화 분야 및 사회 경제 부분을 원고지 각 2천매씩 2권 정도로 계속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필이 순조로웠던 반면에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문단의 반응은 냉담했고 책은 우선 팔리지 않았다….. 초판 3천 부를 파는 데 10년이 걸리더니 1975년부터 수요가 늘어서 지금 7판째가 찍혀나갔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민족혼이 바로 선다」, 『실록 친일파』)

임종국은 한일협정 체결에 크나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절박한 심정으로 『친일문학론』을 썼던 것이다. 1965년 당시 친일파, 친일문학이란 말 자체가 금기시되는 풍토였다. 이광수, 홍난파, 김은호 등 이름 있는 문필가나 예술인들은 민족문학, 민족음악,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았고 그들에 대한 친일 시비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고 언급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광수, 최남선, 김동환, 모윤숙, 노천명 등 쟁쟁한 문인들의 친일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치밀하게 분석한 그의 고투(苦鬪)는 한국문학사뿐 아니라 한국현대사 연구의 전환을 가져오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이 책이 서점에 배포되자 국내 지성계는 큰 혼란을 겪었고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도 빗발쳤으나 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문학계나 강단에서는 이것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책의 판매도 아주 저조했다. 하지만 임종국은 이 작업을 하면서 친일파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민족사를 가장 크게 그르친 자가 친일파라는 것을 알고 말았다. 패주행렬 속에서 본 젊은 죽음들, 그들을 그 꼴로 만든 장본인이 친일파였다. 제2의 매국 반민법을 폐기한 것도 친일파였다. 한말 가렴주구로 번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제1의 매국을 했고, 총독부에 영합하면서 친일을 했다. 해방 후에도 개과천선은커녕 반민법을 폐기하면서, 독재와 부패 끝에 5․16과 (10월)유신을 불러들였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민족혼이 바로 선다」)

임종국이 존경했던 이광수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친일파였고 또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민족정기를 훼손했으니 그들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래서 그는 문단이 싫어지고 시나 소설을 쓰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임종국이 시를 쓰면 옹졸해진단 말야!’
언제던가 조지훈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말씀이 내 중뿔난 생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었다. 남자 한평생에 붓을 잡았으면 몇 천 장 전적을 쓸 것이지, 원고지 서너 장을 시로 메운다는 것이 따분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역사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서 일제의 침략사와 우리의 반민족사를 쓰자! 이리하여 나는 어느새 이사를 해도 문예지에 주소를 알리지 않는 괴팍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술로 바꾼 법률책」)

임종국은 시인, 문학평론가라는 딱지를 떼고 본격적인 친일․일제침략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길은 아무도 밟아본 적이 없는 길이요, 끝을 알 수 없는 미궁이었다.

1970년대로 들면서 나는 『친일문학론』의 계속작업을 조금씩 진행시켜 왔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엄청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전 2권 4천 매의 계획이 전 8권 2만 매로 늘어나 버렸다. 1년에 2500매씩 써도 8년이니 여생을, 아니 그간의 자료조사기를 15년으로 쳐도 평생을 그 일에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역사를 바로잡아야 민족혼이 바로 선다」)

 

자료수집, 생활 방편으로서의 글쓰기

1970년부터 임종국은 본격적인 자료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원고료와 인세의 상당 부분을 자료 구입비에 쏟았고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안 다닌 곳이 없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를 비롯한 각 대학 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지에서 매일 살다시피 하면서 복사기도 없던 시절이어서 일일이 필사했다. 이른바 ‘임종국카드’라 불리는 1만 5천여 매의 친일인명카드는 이때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친일파 연구는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한 실증적인 연구였다. 아무리 신빙성 있는 증언이 있다 해도 일제시대 문헌자료에 나오지 않는다면 증거자료로 채택하지 않았다. 연구주제가 친일경력을 파헤치는 것이니 만큼 철저한 고증이 없다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의 지나치리만치 꼼꼼하고 실증적인 연구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의 첫 성과는 1977년 8월 <대화>에 처음 게재되고 수정 보강하여 <해방전후사의 인식1>(1979)에 실린 「일제말 친일군상의 실태」였다. 76쪽에 달하는 이 글은 친일파 연구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임종국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일제하 전 분야에서 활동한 친일파들과 친일단체를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10년간에 걸쳐 총독부문서와 관보, 각급 관공서 자료와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기사, 삼천리, 동양지광 등 잡지 등에서 모은 자료를 집약하여 전체적인 친일군상의 윤곽을 잡아놓은 것이다. 이 글은 이후 후학들에게 친일파 연구의 전범(典範)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 남긴 관련 글들은 다음과 같다.
「중추원참의」(<월간중앙>(이하 동일) 1973.5), 「징용」(1974.1), 「학도지원병」(1974.3), 「일제 고등계형사」(1974.8), 「일제하의 인력, 물자 이렇게 수탈됐다(1976.5), 「조선주둔군사령부」(1978.8).
임종국은 고려대학교를 마친 이후 별다른 직장 없이 여기저기 출판사를 옮겨 다녔다. 고시공부때 부실한 식사로 몸이 허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체질상 직장생활이 맞지 않았다. 직장이라 할 만한 것은 2년 정도 근무한 신구문화사가 전부라 할 수 있다. 한편 늦게 장가든 임종국은 가솔까지 딸려 항상 생활이 넉넉지 않았다. 그동안 펴낸 책들의 인세와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여 받은 원고료가 수입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침략사와 친일배족사 자료를 수집하는 와중에 틈틈이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요구하는 글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신여성시대의 굵직한 연애사」(<여성동아> 1967.11), 「개화의 발자취-단발령 야화」(<여성동아> 1968.1), 「명기열전-기생풍속도」(<여성동아> 1969.1), 「해방전야-빼앗긴 시절의 이야기」(<여학생> 1971), 「여학생풍물지-품삯 받고 다니던 학교」(<여학생>), 「광고면에 나타난 사회의 변천」(<독서신문> 1971.3.21), 「사회풍속야사-최초의 요정 정문루」(<세대> 1971.5), 「일화로 엮은 돈이야기」(<신여원> 1973.7), 「정절과 슬기의 설화」(<신여원> 1973.12), 「개벽지 야화」(<소설문예> 1977.8),
「윤심덕과 사의 찬미-좌절과 허무의 엘레지」(<여고시대> 1979.4) 등등 다양한 주제의 방대한 원고를 갖가지 매체에 발표했다. 이런 글들이 쉽사리 읽히는 읽을거리라지만 허투루 볼 수 없는 내용이다. 당시 문화사나 풍속사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에도 임종국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사회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그 자체의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데 노력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미 축적해 놓은 문헌학적 자료와 함께 동시대상의 박학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근대 한국문학에 대한 문학사회사적 분석도 병행해 나갔다. 기존에 발표했던 문학비평을 묶어 <한국문학의 사회사>(1974)를 출간한 이후에도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의 기수-채만식」(1976.11), 「관념적 상상의 문학-전영택의 ‘화수분’과 ‘소’」(1976.12), 「지식인의 비극과 좌절 ‘김강사와 T교수’」(1977.3), 「역사를 통한 현실참여-박종화의 현실과 참여」(1977.6), 「민족으로 일관한 리얼리스트-‘북간도’의 작가 안수길」(1977.7), 「정의와 고발의 농촌작가-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기타」(1977.12) 등등 한국근대문학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정력적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요산재에서의 왕성한 집필활동

10년간에 걸친 자료수집과 주변 지식 축적을 기반으로 하여 1980년대에 들어 임종국의 연구는 드디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이 무렵 그는 40여 년간 살아온 서울을 떠나 천안으로 이사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기도 했고 또한 일제침략과 친일파 연구와 집필에 오로지 전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천안 교외에 외딴집을 짓고 스스로 요산재(樂山齋)라 이름 붙였다. 요산재는 이후 임종국의 영면 직전까지 일제침략사와 친일배족사 연구의 요람이자 산실이었다.

1982년 첫 결실로 <일제침략과 친일파>가 나왔다. 임종국은 서문에서 이 책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일제침략의 근간인 사상침략・자원침략․대륙침략의 세 측면과 그에 관련된 친일상을 기술했으나, 그것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임은 우선에 필자가 잘 알고 있다. 종교침략․문화침략․경제침략․교육침략 기타에 걸친 병자수호조약 이래 70년의 친일을 어떻게 조감 할 것인가?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 문제이지만, 이 책이 다룬 세 측면에 대해서만은 그런대로 개요는 서술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제침략과 친일파>는 본문에서 서술한 세 측면을 기둥으로 해서, 종교침략․문화침략 기타가 그 기둥을 보좌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후 1984년에 일제총독부 고관들의 침략 이면사를 다룬 <밤의 일제침략사>를, 1985년에 강화도 조약 이후 70년간 일제의 사상탄압을 연구한 <일제하의 사상탄압>을 출간했다. 1987년에 그는 일제하 각계각층의 저명인사 72명이 쓴 108편의 친일 글을 엮어 <친일논설선집>을 펴냈다. 머리말에서 그는 과거의 친일논설을 새로이 발굴하여 드러내는 작업의 의미를 “민족의 제단 앞에서 허물 있는 자는 허물을 벗어 도약의 제수로 바칠 것이며, 허물 없는 자는 그것
을 음복하되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썼다. 단기간 이만한 분량의 논설을 엮을 수 있었던 것도 기존의 치밀한 자료 축적 결과였던 것이다.
1977년의 「일제말의 친일군상 실태」부터 1987년의 <친일논설선집>까지 여러 저작과 수많은 논설을 통해 친일문제와 일제침략사를 다루어 왔는데, 뭔가 부족한 점이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친일문제를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해 ‘친일파총사’(전10권)를 구상하였다. 총론, 사상침략과 친일파, 정치침략과 친일파, 해방 이후 친일파, 경제침략과 친일파, 문화침략과 친일파, 만주․중국침략, 동양종교, 서양종교, 사회・교육침략과 친일파로 나누고 총론부터 1권씩 차근차근 쓰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8년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2>를 내놓고 나서 그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다. 원래 건강 때문에 천안 벽지로 이사한 것인데 그동안의 무리한 집필과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인해 몸을 돌보지 못해 지병인 폐기종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지막 작업이 될지 모를 ‘친일파총사’ 발간을 성사시키고자 그는 몇몇 역사전공자를 접촉하여 공동 연구작업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쓸쓸한 죽음, 새로운 시작

임종국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환갑을 겨우 넘긴 1989년 11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타계소식을 듣고 그의 빈소에 여러 지인들과 연구자들이 찾아왔으나 그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임종국의 생애는 반골, ‘중뿔난 짓’만 골라하는 삶이었다. 그것은 일체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나왔다.
“이제 친일문학론을 쓰면서 나는 나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 준 그 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신라 고구려의 핏줄기인 줄 알았던들 나는!”(자화상, <친일문학론>). 기성의 관념과 지식, 역사 심지어 자신의 의식을 부정하고 나서야 새로운 길이 열렸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부터 그는 각성되었고 그의 각성은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과 새로운 역사 쓰기, 아울러 그에 걸맞은 치열한 삶을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그가 당시 각광받고 있던 독립운동사를 차치하고 민족사의 오욕을 밝히는 친일연구에 몰두한 것은 ‘민족사를 가장 그르친 것은 친일파’라고 한 그의 올바른 역사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숱한 자료를 뒤져서 한 장 두 장 쓴 15,000매에 달하는 친일인명카드는 민족사에 바치는 묘비명이었다. 그의 깊고 넓은 연구 성과는 이후 친일문제와 일제침략사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고, 일반인들에게 오욕의 역사를 드러내어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게 하는 교과서가 되었다.
선생이 가신 지 16년이 지난 2005년 10월, 화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뒤늦게나마 선생의 지난하고 치열했던 작업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또한 그해 3월 임종국기념사업회가 발족하여 11월 임종국 선생을 기리는 ‘임종국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를 내었다. 아직도 친일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엄존한 현실 속에서 선생의 유지를 널리 알리고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가는 것이 선생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리라.(2006년 작성)

김민철・박광종 연구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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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거수기,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죄를 묻는다.
민문연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과 ‘백년전쟁’은 어느 특정인의 업적도 아니고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도 없다. 오롯이 수많은 회원과 시민의 성금 5천원, 만원 정성을 모아 이뤄낸 20년 염원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사무국 방학진에 의해 만들어진 몇몇 지부장 (소위 ‘방학진 키즈’)들은 그 빛나는 결과물들이 마치 집행부 몇 사람의 업적인 양 그들을 숭배하고 있다.

설령 친일인명사전과 백년전쟁 등 여러 성과물들에 그들의 열정이 더해졌다 하여도 그들의 부정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자고로 시민단체 제1의 덕목은 올바른 도덕성이며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드높은 가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민족문제연구소 현 집행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몇 사람은 초심을 잃고 그 덕목을 상실한지 오래다.

여기에는 집행부 핵심 몇몇의 부정한 행위에 눈 감고 있는 현 운영위원장 이민우 이하, 집행부에 의해 선임된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부화뇌동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를 유린한 왜놈들보다 그에 부역한 반민족 친일파의 죄를 더 용서 할 수 없듯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수뇌부의 부정한 행위를 목격하고도 감싸며 부화뇌동하는, 집행부 거수기가 되어있는 꼭두각시 지부장들의 죄를 더 크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집행부의 들러리, 거수기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 이민우와 들러리 지부장들은 답하라!

회원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운영하는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비민주적 부정행위와 회원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에 대해 저항하기는커녕 방조내지 동조하는 것에 대해 진정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전 강남서초 지부장 정 한봄
9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토, 2018/06/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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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시오! 

1.

10대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운영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적어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전체 회원의 대표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이 반 회원적이며,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회원들이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사안에 대해 단 한번도 답을 한 적이 없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위원장이다 

이민우 위원장은 과연 연구소의 주인이 회원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운영위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3. 24 ‘유신정관으로의 정관개정. 글쓴이가 왜 유신정관이라고 명명했는지는 이미 발표한 성명서 등에서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유신정관으로의 개악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은 추락했으며, 따라서 운영위원회가 대표하는 회원들의 권한(‘회원주권’) 또한 추락한 상태이다. 이것이 운영위원회에서 스스로 한 일이다 

이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게 성가시고 마뜩치 않았던 집행부가 오랜 세월 갈망하던 상황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에서는 공히 정관개정을 감수했다는 조모 교수의 말을 빌려, “법률상 요건에 맞게 한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한다. 법률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설령 그것이 맞다 해도, 그러면 운영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치욕스럽게 집행부 밑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는지, 주인인 회원의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해 보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얼 했는가? “법이 그렇다니 그냥 순순히 집행부 요구대로 회원배가 운동이나 해서 돈이나 걷어주고, 집행부 밑에 지원기구로 들어가자한 건가? 지금 딱 그 짝이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 아니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이사회(집행부)이다.”  

모든 것은 이제 주인인 회원(운영위원회)에게 묻지 않고도, 아니, 이미 회원은 주인이 아니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집행부 의도대로 이사회에서 뚝딱 결정하면 그만이다. 운영위원회가 아무런 실권이 없(어졌)으니 집행부 세상이 됐다 

이제 회원은 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돈은 내되, 아무런 권한이 없으니 주인일 수 없다. 그것이 이번 정관개정이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반 회원적, 반주인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오히려 그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조직적이라고, 연구소 음해세력이라며 돌팔매에 험담/흑색선전 공격이다. 심지어 제명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준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언제 연구소의 수준이 이렇게 급전직하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와 지부장의 모임인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인데…  

이 엄청난 일을 이민우의 10대 운영위원회가 이뤄냈다. “회원이 주인이다라는, 연구소 창립 이래 면면히 흐르던 회원 주권정신을 하루아침에 반납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10대 운영위원회고 이민우 운영위원장이다. 젊은 날 사무국장을 지낸 친정에 대한 보은인가 

내일 운영위원회 워크샵을 12일로 연다는데, 무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기 바란다 

이민우 운영위원장 스스로가 집행부의 보조’, ‘지원기구로 만든 운영위원회가 어떻게 하면 집행부를 위해 더 잘 봉사할 수 있는지 여러 운영위원들과 함께 머리를 짜내보기 바란다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답게. ㅎ ㅎ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이 체면 봐주지 말고, 속 끓이지 말고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 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3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토, 2018/06/23-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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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려박물관회원들, 독립기념관 등 3.1운동 유적지 답사

“내년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인에게 3·1만세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면서 내년 전시에 대한 구상과 해당 기관의 자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2) 이사장은 이번 방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어제(21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을 방문한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무더운 날씨 속에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 현장을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일제침략 시 만행의 현장과 기억 공간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무한한 참회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통역 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자는, 가는 곳마다 메모 노트를 꺼내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려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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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생가 유관순 생가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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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방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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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의병 전시실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일본인들에게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 알릴 것”

이번에 방한한 일본인들은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연구소 회원들로, 이들은 특별히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3·1운동 100돌 전시 준비위원회’를 꾸렸으며 전시기획을 위한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방한한 것이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지난 27년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건물을 빌리고 자원봉사로 고려박물관을 꾸려오면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다.

이들은 “침략의 역사는 없다”고 잡아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맞서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각종 전시와 강연 등을 27년간 지속해왔다.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3·1만세 운동 정신”을 알리려는 기획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내년 100돌을 맞아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생각입니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행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한국의 3·1만세운동 정신의 현대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방한 목적대로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3·1만세운동 유적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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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박물관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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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이윤옥

이들은 유관순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아우내 장터의 함성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으며,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을 둘러보던 날은 토속 음식인 청국장 등을 먹으며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이들은 3일째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 답사를 마치고 상경하여 한국외대 세미나실에서 기자로부터 3·1만세운동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의를 늦은 시각까지 듣는 열의를 보였다.

이번 3·1만세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씨는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년 전시 때 한국의 유관기관의 자료를 협조 받아 제대로 된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오야기 준이치(青柳純一)씨는 “저는 독립기념관 뒤뜰에 전시 중인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들이 저지른 잔혹사에 참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 아베 정권은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저 개인이라도 한국인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 보면서 참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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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리교회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을 둘러 본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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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건물 독립기념관 야외공원에는 해체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철통같았던 조선통치를 기억하며 그 악행에 대한 사죄를 했다. ⓒ 이윤옥

이번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방한 일정에는 박미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컸으며 아울러 <신한국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등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3박 4일 일정에 동행하여 한일 사이 우정을 쌓았다. 특히 수원박물관 이동근 학예연구사와 독립기념관 윤소영 선임연구위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 등의 친절한 응대와 향후 적극적인 협조 의사에 대해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회원들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기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많은 단체 등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순수한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일에 우리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이사장 하라다 교오코)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 28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자는 2014년(1월~3월)과 2016년(11월~2017년 2월), 2회에 걸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과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 등을 했다.

*고려박물관은 도쿄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에 있으며 전화는 03-5272-3510이다. 이곳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일본인 회원들도 거의 한국어가 가능하다.


글: 이윤옥(koya26) 편집: 박혜경(jdishkys)

<2018-06-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만세운동 100돌 전시’ 위해 한국 찾은 일본인들

토, 2018/06/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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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혹했던 시절 독립을 꿈꾸며 항일운동을 하셨던 선조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습니다.

일, 2018/06/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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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 주권정신을 무너뜨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 

1.

10대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운영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전체 회원의 대표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이 반 회원적이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회원들이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사안에 대해 단 한 번도 답을 한 적이 없는데, 운영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회원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이민우 위원장은 과연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회원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운영위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임기 중에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3. 24 ‘유신정관으로의 정관개정. 본인이 왜 유신정관이라고 명명했는지는 이미 324일에 발표한 성명서 등에서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유신정관으로의 개악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뿐만 아니라 지부(회원)의 역할과 위상 또한 추락했으며, 따라서 운영위원회가 대표하는 회원들의 권한(‘회원주권’) 또한 부존재 상태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에서는 정관개정을 법률적으로 감수했다는 법학자 조 모 씨의 말을 빌려, “법률상 요건에 맞게 한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한다 

법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논리인 것 같은데, 백보를 양보해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러면 그 오랜 세월동안 회원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운영위원회의 ()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치욕스럽게 집행부의 지원기구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했어야 했는지, 주인이어야 할 회원의 빼앗긴 권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다른 방도는 없는지 등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해 보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얼 했는가? “법이 그렇다니 그냥 순순히 집행부 요구대로 회원배가 운동이나 해서 돈이나 걷어주고, 집행부 밑으로 들어가자한 건가? 지금 딱 그 짝이다 

이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집행부 핵심 상근자들이 오랜 세월 갈망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민우 위원장은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 운영위원장으로서 그런 집행부의 오랜 ‘숙원사업’을 대신해서 이루어주고 싶었나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 아니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이사회(집행부)”이다 

모든 것은 이제 주인인 회원(운영위원회)에게 묻지 않고도, 아니, 회원은 이미 주인이 아니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집행부 의도대로 이사회에서 뚝딱 결정하면 그만이다. 운영위원회가 아무런 실권이 없(어졌)으니 견제없는 집행부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회원은 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돈은 내되,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것이 이번 정관개정이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전국의 회원들은 이 상황을 용인할 것인가 

그런 반 회원적, 반 주인적 결정을 내리고도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라고 집행부와 운영위원회는 되뇌고 있으니, 이건 너무 뻔뻔하고 무책임한 거 아닌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운영위원 총사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원들이 깨어있다면 이민우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운영위원들은 당장이라도 탄핵당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그러고도 오히려 그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 조직적이라거니, 연구소 음해세력이라거니 돌팔매질에 험담/헐뜯기 공격중이다. 나는 심지어 제명까지 당했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험담과 헐뜯기 공격 수준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언급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 말을 퍼뜨리고 있다. 언제 연구소의 수준이 이렇게 추락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의 조직인 집행부와, 전국의 지부장들의 조직인 운영위원회인데…  

그렇게 운영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스스로 추락시키고 회원이 주인이라는, 연구소 창립 이래 면면히 흐르던 회원 주권정신을 회원들의 동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반납하는 위업(?)을 이룬 이민우 운영위원장과 10대 운영위원회, 그리고 특히 (단순히 법적 감수를 맡은 조 모 교수를 제외하고) 김재운 부장을 비롯한 규정개정소위 위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에 죄인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이제 남은 수순은 존재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운영위원회의 해체나 단순 후원회로의 전환, 또는 운영위원회가 이사회 기능을 대체하는 것, 아니면 회원에 의한 집행부/운영위원회 탄핵의 길 외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민우 운영위원장, 그리고 집행부 숙원사업인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집행부를 운영위원회라는 족쇄로부터의 대리 해방시킨 김재운 지부장, 두 사람은 젊은 날을 사무국장으로 보낸 친정에 대한 보은을 이제 다했는가? 민족문제연구소에 남아 할 일이 더 있는가 

(본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든 어디에든 올려주길 바란다. )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꼭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 체면 봐주지 말고, 속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월, 2018/06/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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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初 ‘산업유산’ 日보고서 논의…결의문 초안, 정보센터 엉뚱한곳 건립 지적 없어
日 시민단체 회원국들에 자국 비판 ‘의견서’…”군국주의 찬미하는 역사인식”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이 ‘군함도'(端島·하시마)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유네스코(UNESCO)에 제출했던 ‘꼼수’ 보고서가 제대로 된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졌다.

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는 24일 개막해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제42차 회의에서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제출했던 ‘보전상황 보고서’에 대해 논의한다.

연합뉴스가 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위원회 사무국이 마련한 ‘결의문’ 초안에는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이 보고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빠져있었다.

강제징용 관련 역사를 소개하는 정보센터를 현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에 설립하겠다는 ‘꼼수’나 강제성을 삭제한 표현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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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의 꼼수…”군함도서 조선인 강제노역 없었다 ‘증언’공개 검토” (CG) [연합뉴스TV 제공]

대신 초안은 ‘역사적인 문서 등에 대한 더 많은 조사’를 ‘요청 사항’으로 제시했고 정보센터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장려’ 사항으로 “(유산)시설의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작업을 할 때 최선의 국제관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논의 과정에서 초안의 내용이 바뀔 수는 있지만, 그대로 통과되면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시 약속했던 후속조치를 향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명분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에는 의장국 바레인과 부의장국 중국, 브라질, 스페인, 짐바브웨, 아제르바이잔 등 21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속해 있다. 회원국이었던 한국은 작년 12월1일부로 임기가 종료됐다. 이번 회의에서 메이지 유산 관련 안건은 다음달 초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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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섬’ 군함도 기록사진…목포 김대중기념관서 전시
(목포=연합뉴스)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강제노역 실상을 기록한 이재갑 작가의 사진을 내년 3월 30일까지 전시한다. 사진은 이 작가가 기록한 군함도의 모습. 2017.12.26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던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은 하시마 탄광과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등 조선인들이 강제노동한 현장 7곳을 포함한 23개 산업 시설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정보센터 건립 등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과 달리 ‘보전상황 보고서’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군함도가 있는 규슈(九州) 지역이 아니라 1천㎞ 이상 떨어진 도쿄(東京)에 설치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한국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또한 보고서에서 강제노동 조선인에 대해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중,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하며 유산 등재 당시 한일 양국 정부가 합의한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빼기도 했다.

이 보고서가 위원회에 제출됐을 때 우리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하며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강제 노역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성실히, 그리고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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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보고서가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별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지자 양심적인 일본 시민단체들은 최근 회의 개막을 앞두고 회원국들에 성명서를 배포하며 보고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어서 주목된다.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지난 20일 “일본 정부는 보고서는 위원회가 강제노동을 비롯한 ‘역사의 전모’를 밝히도록 권고한 것에 대해 충실한 이행 계획을 담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회원국들에 보냈다.

이들 단체는 “보고서는 강제 노역 피해자를 산업을 지원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도쿄에 세계유산정보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은 도쿄가 세계유산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과 관련이 없어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군국주의의 역사를 찬미하는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던 곳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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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제출했던 ‘보전상황 보고서’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초안. 파란색 네모 부분이 강제 징용 관련 부분에 대한 요구 사항이다. 이 초안은 ‘역사적인 문서 등에 대한 더 많은 조사’를 ‘요청 사항’으로 제시했고 정보센터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장려’ 사항으로 “(유산)시설의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작업을 할 때 최선의 국제관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적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mail protected]

<2018-06-25> 연합뉴스

☞기사원문: 군함도 日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세계유산위 초안 지적 빠져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한일시민단체, 일본정부의 ‘메이지산업유산 보전보고서’에 대한 공동의견서 제출에 대한 보도 협조 요청.

☞SBS: 군함도 일본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세계유산위 초안 지적 빠져

☞서울경제: 군함도 日 ‘꼼수’ 보고서 수용 우려…조선인 등의 강제노동 문제 다시 도마 위

☞연합뉴스: 韓日,군함도 조선인 강제징용·노역 인정 둘러싼 2차외교전 개막

월, 2018/06/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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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政府追敍國民勳章無窮花章于故金鍾泌

 

堂誰罵倒(일당수매도)

同類滿朝家(동류만조가)

愛國皆虛語(애국개허어)

生成敗爛芽(생성패란아)

 

정부에서 故김종필에게 국민 훈장 無窮花章을 追敍함을 탄식함

 

이완용을 뉘 욕하며 나무라나

같은 무리가 朝廷에 가득하네

애국을 부르짖지만 다 헛소리

썩어 문드러짐의 싹이 생겼네.

 

<時調로 改譯>

 

이완용 뉘 욕하나 같은 무리 朝廷 가득

나라 사랑 떠들지만 다 실속 없는 빈말

오호라! 저 敗爛의 싹 생겨나고 말았네.

 

*追敍: 죽은 뒤에 官等을 올리거나 勳章  따위를  줌 *國民勳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功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나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의  다섯

등급이  있다  *一堂:  이완용의    *李完用:  조선  高宗  때의  친일파(1858~1926). 

字는 경덕(敬德). 號는 일당(一堂). 1910년에 총리대신으로 정부의 전권 위원이

되어 韓日倂合條約을 체결하는 등 민족을 반역하였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伯爵

을 받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 *罵倒: 심하게 욕하며 나무람  *同類:

같은 무리 *朝家: 조정(朝廷) *虛語: 虛言. 실속 없는 빈말 *敗爛: 썩어 문드러짐.

 

<2018.6.25, 이우식 지음>

월, 2018/06/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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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2) 

 

이민우 운영위원장, 지난 514일부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촉구하면서, 어제(6. 25) 올린 글에서 두번째로 언급한 중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라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유가 무언가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화, 2018/06/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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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취소되어야 한다>
김종필이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누리다 갔다.  법적 단죄도, 역사의 단죄도 없이 편히 살다 고이 눈을 감았다.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은 죄악이 얼만데, 그 죗값을 한 푼도 치루지 않고 갔다.  그래서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을 단 한명도 단죄하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위에 두텁디 두터운 한 켜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 쌓인다.

김종필의 죄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으나, 그는 4.19 민주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으며 이 나라에 군사독재라는 포악한 괴물을 풀어 온 나라를 수십년 피맺힌 고통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으로서 공작정치, 정보정치를 펴며 지식인, 학생 등 각계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 탄압하며 불구로 만들거나 저승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품격도 자존도 흥정대상으로 삼았던 용서받지 못할 자이다.

그와 박정희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부터 훼손되고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해 아직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반민주 세력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구부러지고 더러워지고 퇴행했는가?

그런 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면 살아가며 슬퍼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돈다.  ‘국민’훈장이라니?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자는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더구나 민간인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라니?  나라꽃 ‘무궁화’가 그에게 어울리는가?

일각에서는 ‘족적’과 ‘예우’를 말하는 모양이나 ‘족적’도 어떤 족적인지가 중요하고 예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그의 족적을 기려 예우를 하려면 차라리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며 살다간 이름 없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족적을 기리고 예우하라.

우리 ‘국민’에게는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려는 DNA가 있는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사후에 면죄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이 본다면 굳이 선행을 하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니 살아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한국인의 율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못했는데 반민주 청산도 못한다면 어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사거와 함께 그의 죄명이 다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한 스크롤 되는 마당에 그런 자에게 최고의 훈장을 준다는 건 과거에 그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국민을, 그리고 역사를 얕보는 행위다.  거기에 ‘촛불’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부디 한평생 ‘허업’을 좇으며 살았던 한명의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사거에 정치적 저울질을 함으로써 이 정권의 정체성이 무언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그리고 역사의식이 어떤지 의심받을 짓 하지 말고,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들이 이 정권에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서, 한눈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라.  ‘촛불’의 명령대로 강단있게 가라.

2018. 6. 25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범태,  여인철

(어제 제가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화, 2018/06/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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邦之羞辱(방지수욕)

 

忘置邦羞辱(망치방수욕)

民無奮發心(민무분발심)

唯私唯利己(유사유이기)

嘆此拙儒吟(탄차졸유음)

 

나라의 수치와 모욕

 

나라 수치와 모욕 까맣게 잊으니

백성에겐 분발하는 맘 따위 없네

오로지 私에 또 오로지 이기심뿐

이를 탄식하며 못난 선비 읊는다.

 

<時調로 改譯>

 

수치, 모욕 잊으니 분발의 그 맘 없네

오직 사사로움에 또 오로지 이기심뿐

이것을 탄식하면서 못난 선비 읊는다.

 

*羞辱: 부끄럽고 욕됨 *忘置: 망각(妄却). 亡失.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 *奮發心:

마음과 힘을 다해 떨쳐 일어나려는 마음 *利己: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함.

 

<2018년 6월, 이우식 지음>

화, 2018/06/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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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정치공작의 달인이며  박정희 독재정권때부터 쭉 2인자로 권력휘두르며 국민탄압하고

부정축재로 어마어마하게 우리세금 도둑질한 김종필이 죽었고

매국노 김종필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할것같다는 국가보훈처 소식을 접한뒤

벌은 못줄망정 상을주면 누가 나라위해 애국을 할것인지 한심하여 훈장수여 반대로 이글을 올린다
요사이 일본이 고등학교 책까지 독도를 자기네땅이라 올리는 역사왜곡에 우리정부서 강력항의했다는데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를 일본이 이렇게 역사왜곡하며 우기게 된것은

1965년 일본뇌물받은 매국적이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있어
서울시에 친일매국노며 살인독재하며 부정축재자인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

우리세금으로 동상을 세우자는 바보같은 의견과 매국노 동상은 절대 않된다는 의견이 대립

찬반회의를 열기로 했다는데 이는 친일매국노가 불법쿠테타로 대통령까지 해먹은것도 국가망신 치욕으로
일정때 자신의 출세위해 일왕에게 진충보국 견마지로 라고 일본의 개나 말이되어 일본에 충성하겠다고 혈서쓰고

일본장교 입대후 만주서 우리 독립군 토벌때는 제일먼저 앞장서서 독립군 죽였다던 악질매국노 다까끼 마사오
불법쿠테타 성공후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앞바다를 일본이 요구한대로

1965년 친일매국노인 일본면장 아들인 김종필시켜 한일협정서에

독도부근 바다를 동해나 영해에서 고의로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조카사위 김종필과 박정희였고

박정희는 대신 일본서 6600만불을 뇌물로 받은것이 미국CIA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으며

역시 김종필도 일본정부 뇌물전달자로 박정희의 만주일본군 장교 군대동료인 세지마 류조와 접촉을 자주하였고
당시 한일간 독도분쟁으로 국민감정이 들끓자 미국에 독도를 폭파해 없애달라고 부탁한 박정희와 김종필이었으며

그래서 미국이 독도를 공군폭격연습장으로 이용 암반덩어리인 독도에 엄청난 큰 금이 가게 만든것으로

일본은 만약 한국땅이라면 한국정부가 왜 미국에 부탁해 독도를 폭파해달라고 부탁했겠냐고 분쟁빌미를 제공한것이었으며
1999년 제2한일어업협정도 DJP연합정부때 실세총리인 자민련 김종필이

제2한일어업협정을 일본에 손해보게는 협정하지말라는 평민당 김대중대통령의 만류와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사자라고 어업인들이 김종필을 제2한일어업협정 책임자로 나서는걸 반대한다는데도

김종필이 고집부리며 자민련소속 김선길을 해수부장관 앉힌뒤

어업선은 고기잡는선이지 국경선이 아니라고 김대중과 국민을 속이고
일본의 독도침략 주장에 유리하게 독도까지 일본어업선을 그은 제2한일어업협정맺은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매국노와 맺은 어업협정을 무효화시키고 박정희에게 뇌물준 한일협정도 뇌물공여 불법이므로 무효인것이며
박정희는 일본침략배상도 다른나라에 비해 말도않돼는 싸구려로 하곤 그돈마저도 횡령해 정치자금으로 사용

이백만명 정도 끌려가 수십만명 학살당한 강제징용과 이십만명 끌려가 성범죄 숨기려고 다 학살하고

삼백여명만 운좋게 살아돌아온 위안부할머님과 전국서 쌀과 금괴등 엄청난 재물을 약탈당하고도

피해자들 피해배상 한푼도 못받았고 위안부할머님들 눈물나게 만든 더러운 매국노 박정희부녀와 가족들이며
쿠테타 집권후 1963년 만주일본군 총통으로 박정희 직속상관이던 기시를 찾아가 일본을 위해 충성하겠다 경례하며

기시의 명령대로 미군과 일본군 또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박정희도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일본서 금괴등 뇌물받아 독일처럼 갈라야할 일본대신 조선을 가르고 한국인 생명을 완전 무시한 더러운 미국이였고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얼마전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독도침략처럼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태생이 기회주의자인 박정희는 해방후 친일매국노를 처벌하자 집에 못오고 신분숨긴채 떠돌다

이승만이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하는 미국을 편들자 독립군과 애국지사 애국국민이 조국분단 반대하니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 정부요직과 군경찰 간부로 기용하고 친일파가 만든 서북청년단 동원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4.3사태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암살과 학살할때
박정희도 군입대후엔 공산당 간부인 친형 박상희지시로 비밀리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맏아 간첩질도 하였고

나중 여순반란사건 공산당 책임자로 검거되자 만주일본장교 출신으로 같이 독립군 죽이던 조사관 백선엽과 김창룡에게

자기형 친구와 군대내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여 같은 일본장교라 봐주고 국군에 복직까지 시켜줘
나중에 조카사위 김종필 동기들시켜 쿠테타 벌일때도 실패하면 튀려고

용산국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술먹다 성공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였고

쿠테타 성공후에 백선엽을 특별대우하여 백선엽이 인천서 인천대통령이란 별칭으로 불법으로 권력휘둘렀고

남의 땅까지 헐값주고 강제로 빼앗아 선인학원 재단차려 학사비리로 부정축재하였으며
또 박정희 재임기간은 저개발 동양이 선진국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 모두 발전할때인데도

기업과 짜고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근로자 착취하게하고 월급 올려달래도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며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후 나라경제 살려야할 이익금중 세금낼돈을 국가정보원장 이후락시켜 기업서 모금하여

경제살려야할 세금낼돈 60억불을 스위스은행에 숨겨논 박정희로

그래서 경제못살려 당시 아시아 동양서 최저수준 경제못살리곤 많이살렷다고 국민속인것으로
기회주의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도 장면정부가 세운 계회표보고 따라했지만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도둑질로 경제못살리자 마침 북한이 한국보다 훨씬잘살자

북한의 천리마운동을 본따서 새마을운동도 만들어 노력하는척한 기회주의자로

[박정희 죽은뒤 미프레이져 청문회서 이후락 아들 증언과 박정희집권 당시 세계 경제발전도표 아시아순위 참조]
무소불위 권력휘둘러 윤정희등 연애인들 다부르고 김삼화란 유부녀 강간에

안양예고 고등학생까지 반강제로 데려와 겁탈하고 우리세금으로 입막음하다가

22살 여대생끼고 놀던날 부하총에 즉결 처형된 매국노 박정희였고
또 월남참전용사들 목숨값과 독일파견 간호사월급에서도 일부 횡령한돈과

기업서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돈으로 청와대 금고서 나온 금은보화와 외화 채권등 트럭 몇차 분량과

육영재단 MBC주식 영남대학과 별도로 최태민과 최순실과 박근혜가 도둑질한것중

독일검찰이 발견한것만도 수십조로 보인다하고
뽕쟁이 박지만회사도 은행서 15조원 불법대출 돈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간 김우중이 차려준 뇌물로 박지만 회사도 환수해야하고

그외 친인척들 부정축재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으로 금액이 엄청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조카사위 김종필은 전두환이 집권후 부정축재자로 조사할때도 엄청난 부정축재 들통났었고

한보그룹에 부정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넣고 뇌물받은 김종필로 부정대출금을 우리세금으로 메꾸었으며

또 그외 친인척들까지 백조원이넘게 한국서 세금도둑질한 패륜적인 매국노 집안으로
한보그룹 백억대 뇌물을 김종필 계좌서 발견한 함승희 검사와 김종필이 빅딜해

얼마전까지 친박단체인 함승희가 부정특혜 정선카-지노 사장보며 띵가 띵가하던 진짜 도둑들이며

진짜 최고의 악질매국노로 국립묘지에 안장도 반대하며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인 매국노 박정희묘도 국립묘지서 파내야하며

현재도 일본서 간첩처럼 돈받고 일본위해 역사왜곡과 일본침략 미화하는 뉴라이트를 일본간첩으로 처벌해야한다

 

화, 2018/06/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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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전다방(역사를 전하는 수다방)

민족주의자들의 비밀결사 흥업구락부 2편

“신간회와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화, 2018/06/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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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3)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 위원장의 아래 첨부의 글,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의 내용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악의에 가득 찬 흑색선전물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번에 올린 아래 질문에 대해 아직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3.

또 한가지, 지난 5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이사회를 다녀와서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꼭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 체면 봐주지 말고, 속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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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6/2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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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수업협동조합에서

2018 여름집중수련을 진행합니다.

상세 내용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blog.naver.com/happy_tao

명상 입문자를 위한 프로그램

선 수행 기본과정 “명상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명상 안내”

마음의 원리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개개인의 상태에 맞춘 1:1 인터뷰 및 수행지도

삶에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자기치유법 훈련

● 기간

[제26차] 7월 29일 (일) – 8월 4일 (토) / 6박 7일

[제27차] 8월 20일 (월) – 8월 26일 (일) / 6박 7일

● 안내자 : 혜봉(명상수행학교 행복수업 교장)

● 참가비 : 36만원

청춘멘탈강화프로젝트 “청춘들의 쉼과 인생 로드맵”

인생의 기로에 놓인 청년들을 위한 자기성찰 명상 프로그램.

멘토와의 질의응답과 자기만의 꿈과 비전을 찾아가도록 안내.

‘알아차림과 쉼’을 주제로 행복수업의 명상 안내자들이 진행함.

● 기간 : 8월 13일 (월) – 8월 19일 (일) / 6박 7일

● 대상 : 20-30대 미혼 청년

● 안내자 : 박태희/무위(행복수업 명상 안내자)

● 내용 : 명상 배우기 / 나의 꿈 / 영화를 통한 알아차림 / 마음 나누기

● 참가비 : 13만2천원 (수련에 필요한 6박 7일 체류비)

행복수업협동조합

[깨어있는마음 . 깨어있는행복 . 깨어있는공동체]

– 불교의 철학을 기반으로 심리학, 인문학, 과학적 원리를 통합한 마음 수행법을 공부합니다.

– 종교, 성별, 문화를 넘어 청년, 중장년, 노년층 등 전 세대가 함께 소통하며 공감하며 활동합니다.

– 수행에서 자각한 것들을 실제 삶과 일, 관계 속에서 적용하며, 삶과 수행을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 블로그 : blog.naver.com/happy_tao

■ 카페 : cafe.naver.com/happyclassmc

■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간호대로 11-30, 2층

■ 전화 : 010-4292-3578

수, 2018/06/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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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정치공작의 달인이며  박정희 독재정권때부터 쭉 2인자로 중앙정보부 만들어 고문등 국민탄압하고

일본뇌물과 우리세금과 자민련후보 공천값등등 불법정치자금을 어마어마하게 도둑질한 김종필이 죽었고

매국노 김종필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할것같다는 국가보훈처 소식을 접한뒤

벌은 못줄망정 상을주면 누가 나라위해 애국을 할것인지 한심하여 훈장수여 반대로 이글을 올린다
요사이 일본이 고등학교 책까지 독도를 자기네땅이라 올리는 역사왜곡에 우리정부서 강력항의했다는데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를 일본이 이렇게 역사왜곡하며 우기게 된것은

1965년 일본뇌물받은 매국적이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있어
서울시에 친일매국노며 살인독재하며 부정축재자인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

우리세금으로 동상을 세우자는 바보같은 의견과 매국노 동상은 절대 않된다는 의견이 대립

찬반회의를 열기로 했다는데 이는 친일매국노가 불법쿠테타로 대통령까지 해먹은것도 국가망신 치욕으로
일정때 자신의 출세위해 일왕에게 진충보국 견마지로 라고 일본의 개나 말이되어 일본에 충성하겠다고 혈서쓰고

일본장교 입대후 만주서 우리 독립군 토벌때는 제일먼저 앞장서서 독립군 죽였다던 악질매국노 다까끼 마사오
불법쿠테타 성공후 조선시대부터 우리땅이던 독도앞바다를 일본이 요구한대로

1965년 친일매국노인 일본면장 아들인 김종필시켜 한일협정서에

독도부근 바다를 동해나 영해에서 고의로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조카사위 김종필과 박정희였고

박정희는 대신 일본서 6600만불을 뇌물로 받은것이 미국CIA 보고서에 기록되어있으며

역시 김종필도 일본정부 뇌물전달자로 박정희의 만주일본군 장교 군대동료인 세지마 류조와 접촉을 자주하였고
당시 한일간 독도분쟁으로 우리국민감정이 들끓자 김종필이 일본외상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하자 먼저 제안했고

그후 박정희는 미국무장관 러스크에게 독도를 폭파해 없애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그래서 미국이 독도를 공군폭격연습장으로 이용 암반덩어리인 독도에 엄청난 큰 금이 가게 만든것으로

일본은 만약 한국땅이라면 한국정부가 왜 미국에 독도를 폭파해달라고 부탁했겠냐고 분쟁빌미를 제공한것이었으며

굴욕적 한일협정 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김종필에 모든 책임씌우고 미국으로 도피시키곤 데모하는 한국인 탄압하였으며
1999년 제2한일어업협정도 DJP연합정부때 실세총리인 자민련 김종필이

제2한일어업협정을 일본에 손해보게는 협정하지말라는 평민당 김대중대통령의 만류와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사자라고 어업인들이 김종필을 제2한일어업협정 책임자로 나서는걸 반대한다는데도

김종필이 고집부리며 자민련소속 김선길을 해수부장관 앉힌뒤

어업선은 고기잡는선이지 국경선이 아니라고 김대중과 국민을 속이고
일본의 독도침략 주장에 유리하게 독도까지 일본어업선을 그은 제2 한일어업협정 맺은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매국노와 맺은 어업협정을 무효화시키고 박정희에게 뇌물준 한일협정도 뇌물공여 불법이므로 무효인것이며
박정희는 일본침략배상도 다른나라에 비해 말도않돼는 싸구려로 하곤 그돈마저도 횡령해 정치자금으로 사용

이백만명 정도 끌려가 수십만명 학살당한 강제징용과 이십만명 끌려가 성범죄 숨기려고 다 학살하고

삼백여명만 운좋게 살아돌아온 위안부할머님과 전국서 쌀과 금괴등 엄청난 재물을 약탈당하고도

피해자들 피해배상 한푼도 못받았고 위안부할머님들 눈물나게 만든 더러운 매국노 박정희부녀와 가족들이며
쿠테타 집권후 1963년 만주일본군 총통으로 박정희 직속상관이던 기시를 찾아가 일본을 위해 충성하겠다 경례하며

기시의 명령대로 미군과 일본군 또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 점령후

남북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박정희도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미국은 일본이 약탈한 엄청난 금괴등 뇌물받은후 독일처럼 갈라야할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시키고

6.25같은 전쟁을 또 일으킨뒤 불리하면 핵까지 쏟아부으려던 한국인 생명을 완전 무시한 더러운 미국이였고

한국인 멸종 계획한 기시와 박정희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브루스 커밍스교수가 미국무부 비밀문서에서 열람후 발표한 사실]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얼마전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독도침략처럼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태생이 기회주의자인 박정희는 해방후 친일매국노를 처벌하자 집에 못오고 신분숨긴채 떠돌다

이승만이 전범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하는 미국을 편들자 독립군과 애국지사 애국국민이 조국분단 반대하니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 정부요직과 군경찰 간부로 기용하고 친일파가 만든 서북청년단 동원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4.3사태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암살과 학살할때
박정희도 군입대후엔 공산당 간부인 친형 박상희지시로 비밀리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맏아 간첩질도 하였고

여순반란사건 공산당 책임자로 검거되자 만주일본장교 출신으로 같이 독립군 죽이던 조사관 백선엽과 김창룡에게

자기형 친구와 군대내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여 같은 일본장교라 봐주고 국군에 복직까지 시켜줘
나중에 조카사위 김종필 동기들시켜 쿠테타 벌일때도 실패하면 튀려고

용산국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술먹다 성공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였고

쿠테타 성공후에 백선엽을 특별대우하여 백선엽이 인천서 인천대통령이란 별칭으로 불법으로 권력휘둘렀고

남의 땅까지 헐값주고 강제로 빼앗아 선인학원 재단차려 학사비리로 부정축재하였으며
또 박정희 재임기간은 저개발 동양이 선진국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 모두 발전할때인데도

기업과 짜고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근로자 착취하게하고 월급 올려달래도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며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후 나라경제 살려야할 이익금중 세금낼돈을 국가정보원장 이후락등시켜 기업서 모금하여

경제살려야할 세금낼돈 60억불을 스위스은행에 숨겨논 박정희로

그래서 경제못살려 당시 아시아 동양서 최저수준 경제못살리곤 많이살렷다고 국민속인것으로
기회주의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도 장면정부가 세운 계회표보고 따라했지만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도둑질로 경제못살리자 마침 북한이 한국보다 훨씬잘살자

북한의 천리마운동을 본따서 새마을운동도 만들어 노력하는척한 기회주의자로

[박정희 죽은뒤 미프레이져 청문회서 이후락 아들 증언과 박정희집권 당시 세계 경제발전도표 아시아순위 참조]
무소불위 권력휘둘러 윤정희등 연애인들 다부르고 김삼화란 유부녀 강간에

안양예고 고등학생까지 반강제로 데려와 겁탈하고 우리세금으로 입막음하다가

22살 여대생끼고 놀던날 부하총에 즉결 처형된 매국노 박정희였고
또 월남참전용사들 목숨값과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월급도 미리 받아써서 한국도 못나오게하고 일부 횡령한돈과

기업서 정경유착 근로자 착취한돈으로 청와대 금고서 나온 금은보화와 외화 채권등 트럭 몇차 분량과

육영재단 MBC주식 영남대학과 별도로 최태민과 최순실과 박근혜가 도둑질한것중

독일에 은닉한 부정축재금중 독일검찰이 발견한것만도 십조원 이상으로 보인다하고
뽕쟁이 박지만회사도 은행서 15조원 불법대출후 돈빼돌리고

베트남으로 도망가 호화생활하는 대우그룹 김우중이 차려준 뇌물로 박지만 회사도 환수해야하고

그외 친인척들 부정축재까지 합치면 천문학적으로 금액이 엄청나지만

 

그중 대표적인 조카사위 김종필은 전두환이 집권후 부정축재자로 조사할때도 엄청난 부정축재 들통났었고

한보그룹에 부정대출해주도록 은행에 압력넣고 뇌물받은 김종필로 부정대출금을 우리세금으로 메꾸었으며

또 그외 친인척들까지 백조원이넘게 한국서 세금도둑질한 패륜적인 매국노 집안으로
은행돈 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간 한보그룹 백억대 뇌물을 김종필 계좌서 발견한 함승희 검사와 김종필이 빅딜해

얼마전까지 친박단체인 함승희가 부정입사등 국영기업 정선카-지노 사장보며 띵가 띵가하던 진짜 도둑들이며

진짜 최고의 악질매국노로 국립묘지에 안장도 반대하며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인 매국노 박정희묘도 국립묘지서 파내야하며

현재도 일본서 간첩처럼 돈받고 일본위해 역사왜곡과 일본침략 미화하는 뉴라이트를 일본간첩으로 처벌해야한다

 

수, 2018/06/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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