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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때 일본군 개선식은 왜 용산 벌판에서 벌어졌을까? 과장된 전공(戰功)이 곳곳에 만들어낸 그들의 전승 기념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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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때 일본군 개선식은 왜 용산 벌판에서 벌어졌을까? 과장된 전공(戰功)이 곳곳에 만들어낸 그들의 전승 기념물들

익명 (미확인) | 금, 2019/02/22- 16:54

식민지 비망록 44

청일전쟁 때 일본군 개선식은 왜 용산 벌판에서 벌어졌을까?
– 과장된 전공(戰功)이 곳곳에 만들어낸 그들의 전승 기념물들

이순우 책임연구원

1894년(갑오년) 여름,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감당하지 못한 조선국 정부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맞서 일본도 10년 전 갑신정변의 여파로 맺은 천진조약(天津條約)을 구실로 동시 개입을 적극 시도하면서 끝내 이러한 군사충돌은 바로 이 땅에서 청일전쟁이 촉발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해 6월 8일 청국군은 아산만(牙山灣, 마산포와 백석포)을 통해 상륙하여 아산과 성환 일대에 주둔했고, 일본군은 이보다 하루 늦게 인천항을 거쳐 서울에 들어온 뒤 선발부대인 오시마 혼성여단(大島混成旅團)이 만리창(萬里倉, 효창동 199번지 지점)에 본부를 마련하고 예하 주력부대는 효창원 계곡과 아현리 주변에 포진하였다.

<일청전쟁사진첩> (1895)에 수록된 효창원 만리창 지역의 일본군 숙영지 전경이다.

 

이때 오시마 병력이 한강을 건너 남하하여 청국군의 방어진을 향해 진군함에 따라 7월 29일 새벽 성환의 북쪽 안성도(安城渡, 안성나루;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중리)에서 두 외국 군대 사이에 첫 육상 전투가 벌어졌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일본군은 청국군의 아산 본영까지 점령하고막대한 전리품을 수습하여 서울로 귀환하였고, 다수의 사상자를 낸 청국군은 홍주 방면으로 패주하였다가 강원도 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방식으로 행군하여 8월 하순에 평양(平壤)에 대기하고 있던 자신들의 군영으로 간신히 합류하였다.

1894년 7월 29일 청국군과 일본군의 첫 전투가 벌어진 안성나루의 모습이다. 이 자리에는 나중에 안성교(安城橋)라는 다리가 설치되었다. (남만주철도 경성관리국, <조선지풍광>, 1922)

 

이른바 ‘성환역(成歡役)’으로 표기되는 이 전투에서 크게 이긴 일본군이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이때의 전투 장면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다색인쇄 목판화 기법인 니시키에(錦繪)로 만들어져 대량 보급되었고, 이를 통해 전쟁분위기를 고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여기에는 대개 승승장구하는 일본 군대의 모습이 화려하고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 당시에도 ‘보도사진’이나 ‘종군기자’와 같은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인쇄물로 전환하는 기술이 원활하지 않았으므로, 무엇보다도 속보성(速報性)을 생명으로 하는 전쟁화보와 같은 매체조차 제작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대개 인화사진을 보고 다시 목판화로 그려 찍어내는 기법이 선호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청일전쟁 시기에 관한 자료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묶음 제작된 전쟁사진첩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제작된 목판화 종류의 기록물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수량이 남아 있다.

 

<도쿄아사히신문> 1894년 8월 28일자 부록으로 배포된 ‘일본군 경성 개선식 장면’이다. (이치노헤 쇼코 기증,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그런데 이 와중에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은 드물게도 1894년 8월 28일자의 부록으로 ‘명치 27년(1894년) 8월 5일 아병경성개선지도(我兵京城凱旋之圖)’라는 제목을 붙여 3매 연속 사진을 파노라마 형태로 담아낸 인쇄물을 배포하였다. 이미 20여 일 전의 상황이긴 하지만 생생한 전투소식을 알리는 나름의 전쟁 속보였던 셈이다.

<일청전쟁사진첩> (1895)에 수록된 일본군 개선식 장면이다. 사진촬영자는 조선 인천항에 거주하는 히구치 사이조(樋口宰藏)로 표시되어 있다.

 

여길 보면 벌판의 한쪽에 ‘개선문’이라고 써 붙인 커다란 일본식 녹문(綠門)이 서 있고, 그 앞으로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일본군대가 도열한 상태이며, 그 뒤쪽으로 약간 비탈진 언덕 위에는 구경꾼들이 뒤섞인 모습이 포착된다. 사진의 설명문에 이미 그해 8월 5일의 개선상황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를 단서로 몇 가지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경성부사> 제1권 (1934), 590~591쪽에 이 사진 장면과 딱 일치하는 설명이 수록되어 있었다.

 

일본군의 승전소식이 경성에 알려지자 …… 일본인 측에 있어서는 수비군, 공사관원, 거류민 등의 환희는 비할 바가 없었고, 곧장 환영을 협의하여 구용산 문평산(舊龍山 文平山)의 동측 평지에 높이 4장(丈) 가량의 녹문(綠門, 료쿠몬)을 만들어 중앙에 오토리 공사(大鳥公使)가 쓴 ‘개선문(凱旋門, 아산을 바라보는 방향)’과 ‘환영문(歡迎門, 경성을 바라보는 방향)’이란 편액을 걸었다. 8월 5일 공사관원은 소와 술독을 문 옆으로 옮겼고, 일본거류민은 얼음을 멀리 한강 남안까지 운반하여 향응 준비를 전부 마쳤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경성수비의 일본병은 도로의 양측에 나란히 늘어서고, 공병(工兵)은 동작진(銅雀津)에서 강을 건너도록 배를 띄울 준비를 했다. 오토리 공사는 관원들을 거느리고, 칙사 이윤용(勅使 李允用)과 군국기무소(軍國機務所, 군국기무처) 대표 정경원(鄭敬源)은 박홍천록(薄紅淺綠)의 조선예장(
朝鮮禮裝)을 갖추고 개선문 옆에 도착했다.
일군(日軍)은 매일 황혼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수원(水原), 과천(果川) 등으로 주간의 더위를 피하며, 선두에는 조선인 인부가 노획품인 징과 큰북을 난타하고 또 포획품인 황룡기(黃龍旗) 여러 유(旒) 및 엽자(葉字; 葉志超), 섭자(聶字; 聶士成), 위자(魏字), 상자(商字), 풍자(馮字) 등의 문자를 수(繡)로 새긴 군기(軍旗) 27류, 기타 당(幢)이라고 하는 간봉(竿棒), 새깃털을 부착한 장창(長槍) 등 20여 개를 들어올리며, 대포 8문(門)은 소가 이끌었는데 각각에 ‘성환(成歡)의 전리품(戰利品)’, ‘청병 대패(淸兵 大敗)의 증(證)’ 등을 묵서(墨書)한 작은 깃발이 더하였고, 초병(哨兵)이 이를 감시하며 전군이 그 뒤를 따랐다. 처음 출정할 당시 흰색이었던 융의(戎衣, 군복)는 전부 갈색으로 염색되어 있어서 한눈에 보더라도 격전(激戰)의 정도를 떠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오시마 여단장(大島旅團長), 나가오카 참모장(長岡參謀長) 등이 앞서 말에서 내리자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 공사관 통역관)는 이윤용에 의한 국왕전하로부터의 감사위로 칙지(勅旨)를 옮겨 전하고, 정경원의 축사를 통역하였다. 이어서 주객(主客)이 서로 교환(交歡)하는 바가 있었고, 공사는 ‘천황폐하만세’를, 여단장은 ‘조선국대군주만세’, 정경원은 ‘대일본황제폐하만세’를 소리 질러 일동 제창하며 개선의 식을 마쳤다. 때는 정각 오전 9시,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그 빛을 한강변 백사장 위에 정렬한 개선군에게 뿌렸다. 이로부터 분포품(分捕品)을 선두로 하여 전군 진행을 개시하여 선두가 막영지에 도달할 무렵에는 대행리(大行李, 군수품)는 여전히 개선문의 옆에 있었는데, 구불구불한 장사(長蛇)의 부대는 숙숙(肅肅)하게 만리창(萬里倉)을 향하고 군중은 도로의 양측에 운집하여 이 장관을 마주했다. (하략)

 

이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한강을 건너 자신들의 주둔지인 ‘만리창’으로 가는 도중에 ‘개선문’ 앞에서 거창한 의식을 벌이는 장면인 것으로 드러난다. 사진에 포착된 작은 개울은 만초천(蔓草川; 너추내, 너푸내)인 듯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물줄기가 약해보이는 것이 지류(支流)의 한가닥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뒤쪽으로 효창원을 품고 있는 연화봉 자락이 드러난 것으로 보아 개선식장은 대략 지금의 ‘삼각지(三角地)’에 가까운 어느 지점인 것으로 짐작된다.

<경성부사> 제1권(1934)에 수록된 종군화가 쿠보다 베이센의 개선식 삽화이다. 여기에는 이 행사가 벌어진 장소가 ‘문평산 동쪽’이라고 적고 있다.

 

실제로 <경성부사> 제1권 (1934), 591쪽에는 종군화가(從軍畫家)로 이름을 날린 쿠보다 베이센(久保田米僊, 1852~1906)이 그린 개선식 삽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장소는 구용산 문평산 동측(舊龍山 文平山 東側)”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문평산’은 일제 때 영정(榮町; 지금의 신계동)에 있던 당현(堂峴, 당고개) 일대의 작은 봉우리를 일컫는 용도로 곧잘 사용된 지명이었다. 따라서 문평산의 동쪽이라고 함은 지금의 ‘삼각지’ 언저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1925년 을축대홍수 당시 경정(京町, 지금의 문배동) 일대의 침수상황이다. 사진촬영지점은 ‘문평산’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전면으로 남산 자락과 삼각지 일대가 포착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조선의 홍수>, 1926)

 

이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일본군대가 효창원 일대에 포진한 내력은 그들만의 전쟁기념물을 곳곳에 설치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1929년 6월에 건립된 ‘오시마 혼성여단막영지적(大島混成旅團幕營之跡) 기념비’와 1931년 6월에 건립된 ‘합리비행기발상지지(合理飛行機發祥之地) 기념비’가 바로 그것들이었다.
우선 앞의 것은 1926년 6월 24일에 오시마 혼성여단 전몰장졸을 위한 추도회를 열면서 그 기념으로 ‘오시마 여단주둔지(大島旅團駐屯地)’라고 쓴 표목(標木)을 우선 세웠다가 이를 대체하는 형태로 효창공원 서쪽고지에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뒤의 것은 오시마 여단이 주둔하던 때에 제1야전병원부 육군일등조제수(陸軍一等調劑手)이던 니노미야 츄하치(二宮忠八, 1866~1936)가 이곳에서 비행기의 설계를 떠올려 발표했음을 기리기 위해 효창공립보통학교(청파동 3가 115번지 구역)의 경계면에 접한 동쪽고지에 설치한 비석이었다.

<매일신보> 1912년 11월 20일자에 수록된 ‘마츠자키 대위 기념비’의 낙성식 광경이다. 성환역 후면에 자리한 이 비석의 전면에는 테라우치 총독이 쓴 ‘유방백세(流芳百世)’라는 글씨가 부착되었다.

 

그런데 일제가 세운 청일전쟁 관련 기념물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고, 일본 군인들의 행적이 남겨진 공간마다 이러한 시설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이러한 장소들은 대개 그 지역의 관광명소로 크게 홍보되거나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그들의 전적지 또는 참배의 대상물로 활용되곤 했다.
이러한 종류의 하나로 일찍이 1912년 11월 3일에는 경부선 성환역(成歡驛) 뒤편 언덕에 ‘마츠자키 대위 기념비(松崎大尉記念碑)’가 건립된 바 있었다. 그는 제21연대 제12중대장으로 안성나루전투에서 앞장서 지휘하다가 총탄을 맞아 죽었는데, 이것이 일본군 측의 최초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그의 죽음은 즉시 ‘무부(武夫)의 귀감(龜鑑)’으로 치장되어 전사 장면은 니시키에(錦繪)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급되기도 했다.

마츠자키 대위 기념비 바로 옆에 자리한 ‘육군 나팔수 키구치 코헤이 기념비’의 모습이다. (경기도,
<경기지방의 명승사적>, 1937)

 

마츠자키 기념비가 건립된 장소는 청국군 섭사평(聶士成, 니에쉬청)의 중앙 진지였다가 점령되어 일본군 포병진지로 변한 구릉을 택하여 정했으며, 성환헌병파견소(成歡憲兵派遣所)와 성환보선구사무소(成歡保線區事務所)와 직산군청(稷山郡廳; 1914년에 천안군으로 흡수되어 합병)이 합동으로 건립부지를 조성하는 일을 담당했다고 알려진다. 기념비의 높이는 30여 척(尺)이며, 위쪽에는 데라우치 총독(寺內
總督)이 휘호(揮毫)한 “유방백세(流芳百世)”라는 글씨를 달았고 아래쪽에는 옛 상관이던 오시마 요시마사 자작(大島義昌 子爵)이 쓴 “육군보병대위 마츠자키 나오오미의 비(陸軍步兵大尉 松崎直臣之碑)”라는 석판을 부착하였다.
이와 함께 육군나팔수 기구치 코헤이(陸軍喇叭手 木口小平)의 비석도 마츠자키 기념비 옆에 설치되었다. 그는 안성나루를 건너는 전투과정에서 선두에 서서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나팔을 불면서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헛웃음을 자아내는 일은 당초에 공표된 나팔수의 정체는 시라카미 겐지로(白神源次郞)라는 군인이었고 그의 미담은 이내 소학교의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일본국민의 열광적 추앙을 받았으나, 알고 보니 그는 전투 중에 익사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불과 1년 만에 실제 주인공이 기쿠치 코헤이로 번복되는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1900년 남산 왜성대공원에 건립된 ‘갑오역기념비’의 모습이다.(<한국병합기념첩>, 1910)

 

그리고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남산공원(南山公園, 왜성대공원)에는 난데없이 ‘갑오역기념비(甲午役紀念碑)’라는 일종의 추모시설을 겸한 충혼비가 들어섰다. 이 장소가 선택된 것은 청일전쟁 당시 오시마 여단이 포열(砲列)을 펼쳤던 곳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청일전쟁 때 죽은 일본군 전몰자만이 아니라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당시의 조난자에 더하여 1907년 군대해산 당시의 전사자도 모두 합사되었다.
특히, 이 기념비 아래에는 양화진 등지에 가매장되었던 전몰자의 유골을 몰래 옮겨 파묻었던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는데, <경성부사> 제2권(1936), 687~688쪽에는 갑오역기념비의 조성 경위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수원 팔달산 정상에 설치된 ‘코시 소좌 의사지비’의 전경이다. (경기도, <경기지방의 명승사적>, 1937)

 

5월에는 왜성대(倭城臺)에 갑오기념비를 세웠다. 처음에 거류민은 명치 18년(1885년) 이래 임오(壬午) 갑신(甲申)의 양란(兩亂)에 조난된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해마다 제사를 행해 왔으나 명치 29년(1896년) 양화진(楊花鎭)에 가장(假葬, 가매장)한 청일전쟁 때 성환, 중화 등지에서 전몰자의 유골들도 봉납하여 전자와 합사(合祀)하는 기념비를 건립하자는 논의가 관민 사이에 번져, 기부금 3천 원을 갹출하여 주조(鑄造)를 오사카포병공창(大阪砲兵工廠)에 의뢰하고, 장소는 왜성대로 하여 8월 제막식(
除幕式)을 거행했다.
당시 성내에 매골(埋骨)하는 것은 이를 꺼리는 사정이 있었으므로 비밀리에 이 비석 아래에 매몰했다. 지금 경성신사(京城神社) 앞에 있는 ‘갑오역기념(甲午役記念)’의 비가 곧 이것이다.

이밖에 성환 전투와 관련하여 설치된 또 다른 전쟁 기념물로는 경기도 수원의 팔달산 정상 남단에 자리했던 육군소좌 코시 마사츠나(陸軍少佐 古志正綱)의 비석도 있었다. 그는 오시마 혼성여단에 소속된 제21연대 제3대대장으로 부천 오류동(富川 梧柳洞)을 거쳐 성환으로 진군하는 도중에 수원에 머물 때에 치중대(輜重隊, 수송보급부대)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보급품을 운반할 54마리의 군마(軍馬)를 징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야간을 틈타 마부와 함께 군량미를 실은 말들이 모두 도망을 가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해 7월 27일 새벽 팔달산 기슭 수원군청의 뒤쪽 소나무 숲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예외없이 분전(奮戰)을 고취하는 전쟁 미담으로 치환되기에 이르렀고, 30년가량이 지난 1932년 10월 1일 수원재향군인분회(水原在鄕軍人分會)의 주도로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던 것이다. 높이 23척에 달하는 이 비석에는 오시마 혼성여단의 참모였던 나가오카 가이시(長岡外史)의 글씨를 받아 “갑오역 코시 소좌 의사지비(甲午役古志少佐義死之碑)”라는 편액이 부착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결과적으로 그의 자결 또한 끝내 의로운 죽음으로 승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미 30여 년 전에 있었던 청일전쟁 당시 과장된 전공이 만들어낸 전쟁영웅의 이미지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반복 소비되는 상황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일본제국이 벌인 또 다른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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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두차례 소위에 다 참여한 사람은 저밖에 없네요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한데 제가 대전 출장중이라

내일 정도에 간략하게라도 정리해 올리지요

수, 2018/04/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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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사무국에서 올린 자유게시판 글쓰기 기능 원상복구 공지와 관련)

1. [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4. 20 

2. [알림] 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 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무국 4.22 

자유게시판 글쓰기 차단에 대한 사무국의 위 해명을 보며

알림 1 관련:

제가 지난 19일 날 쓴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게시판 글쓰기 차단 유감(아래 참조)에 대한 대응인 듯, 사무국에서 올려놓은 해명 글을 보니 참..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저 글을 쓰기까지 5일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15일 일요일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려하니 글쓰기 버튼이 사라져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게시판 글쓰기를 차단했나 싶었고, 다른 문의할 사안도 있고 해서 그날부터 집행부 사무총장 등에게 못 올리기 시작한 15(일요일)부터 19일 목요일까지 조세열 사무총장에게 전화와 문자를 하루도 안 빠지고 했는데도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없었습니다. 박수현 실장에게도 했고, 임소장님께도 전화와 문자 드렸지만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5일 후 항의글을 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사고인지 조작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가 발생했으면 우선 회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게 우선 아닌가요? 

그런데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 

거기에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인사가, 연구소를 비방하는데 악용하니, 현혹되지 마시라”? 이게 어느적 문법입니까?  이게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의 수준이자 집행부수준이고, ‘민족문제연구소수준인거지요?

회원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구태 언어들을 쏟아내는 오만방자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사무국방학진 사무국장이 다시 돌아왔지요? 

알림 2 관련:

지난 20일부터”? 일시 중지됐다구요? 어처구니 없습니다. 제가 5일을 기다려 저 항의글을 쓴게 19일입니다. 매사에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냥 넘어가니 

컴퓨터 전문가(박사)에게 물어보니 “웃기는 얘깁니다.  그런 일이 갑자기 왜 일어납니까? 손을 대니까 일어나지요…” 합디다. 이번엔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 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해커가 할 일 없어 민문연 홈피에 침입해 들어와 자유게시판 글쓰기버튼을 삭제하고 도망간다?? 프로그램 오류? 그러시겠지요 

여인철이 비판글을 계속 올려대니 보기 싫어서 차단하려고 했다가, 아래의 항의글을 SNS에 올리니 부랴부랴 복구시킨 건 물론 아니었지요? (토요일/일요일에 기꺼이 작업해주신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 사장님께 부디 감사의 말씀을 전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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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게시판 글쓰기 차단 유감 

지난 일요일(4. 15) 민문연 집행부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글쓰기를 막아놨습니다. 혹시 외부인에게 글쓰기를 제한한 것인가 생각해서 회원으로 다시 들어가 시도를 했지만 역시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의에 질문을 보내려했더니 그 질문자체를 수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이제 민족문제연구소가 회원의 글쓰기까지 막는 지경에 이르렀나요?저는 전국의 회원들에게 지금의 민문연 내부사태의 실상을 알리고 바로잡으려 힘들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어 일부 SNS와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통해 저의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 중에서도 극소수가 이용하는 자유게시판 글쓰기까지 막는다?

독재정권의 체제유지 수단인 언론탄압을 연상케하는 조치를 지금 21세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집행부가 취하고 있다니 

저는 이에 문의하고 항의하기위해 조세열 사무총장과 박수현 연구실장에게 며칠간 전화와 문자를 해도 받지 않고, 소장께 해도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거대한 권력집단처럼 되버린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와의 싸움을 혼자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회원의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그런 치졸한 방식으로 저의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제 주장의 부당성에 대해 논박해주십시오.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현주소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조세열 (?) 사무총장 그리고 이 사태를 뒤에서 보고 계실 임헌영 소장님, 부디 회원들과의 유일한 소통 통로인 자유게시판 접근 차단을 중지하십시오 

집행부든 운영위원이든, 아니면 전국의 13,000 회원 중 어떤 누구든 저의 주장이 삿된 것임을 입증하고 제가 설득된다면 저는 공개사과하고 이 싸움을 중단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핵심들과의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2018. 4. 19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9) 여인철

목, 2018/04/26- 00:39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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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동행}

오늘 아침 한겨레21 기사를 읽고 가슴이 참 따뜻한 느낌입니다.

한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의 앞날을 응원하고 칭찬합니다.

그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참 멋진 뒷모습으로 기억할게요. 고맙습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240.html

목, 2018/04/2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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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내일을 여는 역사 팟캐스트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출연 : 방학진, 홍남화, 이득우

목, 2018/04/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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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개정조문 해설 초안을 작성도 제가 했으니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여 글을 올립니다

 

왜 개정을 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이지는 해설에 나와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질문도 내용보다는 정관개정의 경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문서 형태로 운영위에 처음 보고된 것은 20173분기(923) 때입니다. 20169기 규정개정소위를 경과에 넣은 것은 여인철전운영위원장이 같이 논의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냐라고 읽기를 바라서 넣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정도로 사악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간을 읽을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정관개정은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2016년에는 왜 규정개정 소위(위원: 정한봄소위원장, 오홍석, 김재운)가 만들어 졌느냐하는 것입니다. 20159기운영위원회가 출범하고 다룬 안건은 강세형전지부장으로부터 출발한 지부활동과 운영에 관한 건과 여인철운영위원장이 제기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간의 위상과 관계에 관한 문제가 다입니다. 매번 운영위원회가 갈등 속에 수많은 토론을 했고 결론은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였습니다.

 

아마 규정개정소위가 자기 역할을 다했다면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과 비슷한 결론이 났을 것입니다. 운영위원회 위상을 가지고 회의 때마다 각 주장이 존재했었고 다수의 운영위원은 지금과 같은 주장을 해 왔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했을 뿐 논의는 지속돼 왔고 규정 개정으로 명확히 하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정개정소위원회는 한차례 회의 후 정한봄 전지부장의 막말 파문으로 김재운 오홍석 위원이 소위 위원을 사퇴했고 더 이상의 논의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노선 또는 두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 다수의 운영위원들이 현재의 내용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다고 집행부에 의해 운영위원 전체가 굴복하여 하수인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관개정은 오랜시간 고민과 논의의 결과물입니다. 내용에 관해서도 할말은 많으나 기존에 정리한 해설서로 대신합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목, 2018/04/2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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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4월 15일, 일요일부터 조세열 사무총장, 박수현 실장(일부에서 총장직무대행이라는 소문이 들림), 박한용 실장, 그리고 임헌영 소장님한테까지 전화와 문자를 계속 해왔는데, 오늘까지 10여일에 걸쳐 한번도 소통이 안 되었습니다.

대체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집행부를 이끌어 가시는 주요 보직자 분들이 저와의 전화통화를 10일 넘게 거부하고 답이 없으신건지 의아합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소문에 의하면 ‘사퇴’를 했다는데 그 사퇴의 의미가 무언지, 사무총장이라는 ‘보직’ 사퇴인지 아니면 연구소 ‘퇴직’을 의미하는 사퇴인지.  사퇴를 했다면 왜 공지가 없는지.

그리고 박한용 실장은 4월 1일부로 연구소를 ‘사직’해서 나갔다는데 느닷없는 ‘사직’의 이유는 뭔지?

박한용 실장의 사퇴(사직)는 연구소 ‘민족사랑’지 4월호에 공지를 올리면서 조세열 사무총장의 ‘사퇴’는 밝히지 않는 이유는 뭔지…집행부의 연구소 운영이 떳떳하거나 투명치 않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이 느껴집니다.  이제라도 통화나 문자로 답을 바랍니다.
2018. 4. 25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9대) 여인철

목, 2018/04/26- 12:2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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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답변은 운영위원회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질문하신 것이 글에서도 밝혔지만 규정개정 경위에 대한 것이라 제가 적격이겠다 싶어 글을 쓴 것입니다. 저 또한 서명에 동참 사람이기에 책임있는 답변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답을 한 것입니다

2.
여인철 전위원장이 규정개정에 참여했는데 이제 다른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16년에는 어떠한 결정도 한바가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언급한 이유는 운영위 내에 다른 주장이 존재하였던 것과 여러 형태로 어떨 때는 격렬하게 어떨 때는 논의테이블에서 대립하기도 하면서 논의를 해왔고 규정을 개정하여 명확히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배경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서명에 참여한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전 위원장이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소의 문제를 외부에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여론을 조성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연구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조직 파괴행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3.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1달만에 게시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 신중하게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당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려 합니다.

  4.
규정개정소위원회는 민족문제연구소 정관운영위원회 내규를 다루는 소위였습니다. 그래서 작명을 을 따서 규정개정으로 하였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정관(이사회 의결, 총회 승인사항) 개정의견을 이사회에 요청한 것이고,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은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의결하였습니다. 총회에서는 정관만 다루어 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설을 붙임하여 게시한 것입니다.

  5.
정관에 나타나는 쟁점은 3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은 해설을 붙였으니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운영위원회는 임원 선출에 있어서 추천권을 갖는다.’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임원 추천이 운영위원회만이 가지는 배타적 고유권한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란이 되었습니다. 운영위원회 뿐 아니라 이사장이나 이사회도 임원 추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 규정을 개정하기 전이라도 운영위원회 권한에 관한 사항이니 운영위원회 결정으로 유권해석을 하자고 하였으나, 처리하지 못하고 내규 개정할 때 함께 다루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임원추천이 운영위원회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해서 여인철 전 위원장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임원은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의결해야 한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영위원의 다수가 여러 안 중에 데 좋겠다고 하는 안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것입니다. 공식 기구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전문성과 다양한 의견을 가진 회원들이 참여하는 논의 단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구소 발전의 원동력이 될테니까요. 이후에는 규정개정 소위나 다양한 사업 단위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정관 개정은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에 관해서는 누구라도 만나서 책임있게 설명하고 또 다른 견해도 들을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는 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이번 사태는 정관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 모두 저의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목, 2018/04/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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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김점구입니다.

먼저 답변에 감사드리고 문의, 의견, 제안 드립니다.

1.
제 문의는 운영위원회의 게시물에 대한 것이고, 저는 운영위원장님께 문의드렸습니다.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이유는 특정 운영위원이 아닌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공식 답변을 듣고 차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운영위원회의 공식 입장 여부를 다투는)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답변을 운영위원회의 공식 답변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답변 부탁드리며,
답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제안 하겠습니다.

2.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4월 24일 자 게시물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에서는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라고 밝히셨고
같은날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에서도 정관을 대상으로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이 제안되고 논의되는 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면서, 이유도 없이 연구소 지도부와 집행부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여인철 전 위원장이 불과 몇 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할 정도로 기억력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의 의도성도 의심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그러한 행간을 읽을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의문을 가지는 회원이 많은지 적은지는 그 누구도 확인 또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저와 같이 의문을 갖는 회원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이 양측이 극단의 대립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단어 하나 말 한마디는 현 상황의 원인과 배경을 궁금해하는 회원들은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 게시물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저는 제 게시글이 혹여라도 제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여러 번 다시 읽어보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단어나 문장은 최대한 수정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3.
운영위원회의 게시물은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이 주장하는 의혹 또는 문제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공식적인 글이기 때문에 정확해야 하고, 오해의 소지도 없어야 합니다.

또한,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면 정확한 팩트를 근거로 반박하여 회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밝히실 때 충분히 고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운영위원회는 4월 24일에 올린 게시물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에서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라고 밝혔고
같은 날 올린 게시물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에서도 <정관>을 대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답변을 보면 <정관>이 아니라 <규정>을 대상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이고, 그마저 ‘정한봄 전 지부장의 막말 파문’으로 오홍석, 김재운 위원이 사퇴하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는 현 정관 개정 건과 무관합니다.

결론적으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4월 24일 자 두 개의 게시물을 통해 가진 의문 가운데 하나인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관>도 아닌 <규정>을 논의했고 그마저 중간에 중단된 2016년도 9기 운영위원회를 논의 과정에 포함한 운영위원회의 의도성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5.
여인철 전 위원장의 표현 즉,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 청산’ ‘하수인’ ‘집행부의 들러리’ ‘지부회원의 자율과 권위를 무시하는 폭거’ 등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회원도 있고 적절했다고 생각하는 회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영위원회는 여인철 전 위원장을 향해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 ‘수준이하의 낮 부끄러운 행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여인철씨의 음모적 속성’ 등으로 표현했고 이에 대해서도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회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는 표현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러한 표현을 쓸 정도로 제기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인철 전 위원장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히셔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극단의 표현을 주고받으며 논쟁하는 것은 우리 연구소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고, 현 상황을 해결하는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6.
총회 이후 우리 정관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자구 수정이 필요한 조항은 물론 독소조항이라고 할 만한 조항도 일부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운영위원회 뿐만 아니라 일반 회원도 참여하는 임시 기구를 신설하여 논의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 신설을 제안합니다.

목, 2018/04/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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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 문의에 대해 답변 주신 김재운 운영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저는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사적 의견을 듣고자 문의한 것이 아닙니다.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된 글에 의견을 밝히고 의문이 있어 이민우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것입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이 당시 상황을 100% 완벽하게 알고 있더라도, 운영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사견일뿐입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의 답변은 참고만 할뿐 그 어떤 판단을 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
이민우 운영위원장님!!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은 <정관 개정의 건> 자체가 아니라 (일반 회원은 알 수 없는) 해묵은 갈등이 표출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몇 년전 대충의 내막은 들었지만,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연히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회를 전후하여 일어난 여러 상황을 보면서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현직 운영위원이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다투는 모습은 제가 알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모습을 목도하는 회원들은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운영위원은 각 지부 회원을 대표하고, 운영위원회는 회원을 대표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식 기구입니다.

운영위원회는 현 상황에 대하여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 해소가 아니라 의문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위원장님께 의견을 밝히고 문의와 제안을 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이 없습니다.

위원장님이 본 게시판을 매일 확인하지 못해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

제 게시물을 위원장님께 전달하셔서 위원장님이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원장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2018.4.26

회원 김점구

목, 2018/04/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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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개정 경과가 궁금할 줄 알았는데….

운영위원장님의 생각이 궁금한 거였나요.

운영위원회의 입장은 다시 회의를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텐데

운영위원장님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메모해서 문자 주세요.

전달하겠습니다

금, 2018/04/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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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대담하고 폭넓은 인정의 정치가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의 두 손을 맞잡았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외세의 간섭으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분단된 세월이 70년이 넘어간다.

그 긴 세월동안 우리민족이 겪어야했던 세월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던가. 남에서는 일제의 잔제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군정의 통치 받았고, 오늘날에는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며 껍데기만 자주독립국가의 모양새를 갖춘 정도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이명박에 이르는 분단적폐 세력에 의해 미국으로부터 대리 통치를 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죽임 당했던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 완성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현을 위한 발자욱에는 우리 민중들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가 함께 한다. 수 많은 고문과 탄압 그리고 학살의 배후에는 언제나 미국이 승인, 방조, 묵인한 사실이 있다.

한반도 이남에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분단적폐 세력을 등용하여 대리정권을 세워 통치한 학살자 미국! 범죄집단 주한미군을 이 땅에 주둔시켜 남북의 화해와 단결을 끝까지 방해하려는 미국!

그런 미국과의 판갈이 싸움에서 73년 동안 북은 끝까지 싸웠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핵무력완성 국가로 세계적인 지위가 달라졌다. 전 세계 민중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행보에 주목하며 사회주의 강국, 핵무력 강국의 북과의 교류만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이 우리민족의 자랑으로 되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이 같은 세계질서를 증명한다. 또한 미치광이 장사꾼 트럼프조차 김정은 위원장에게 꼼짝달싹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너무나 통쾌한 모습이다.

여전히 외세의 영향으로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 크게, 대담하게, 따뜻하며 진정성 넘치는 손을 끝까지 내밀어 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의 깊이는 어디에 있는가! 핵무력 완성으로 세계를 좌우하는 정치력을 확보한 북이 여전히 분단적폐 세력들이 활개치고, 미국의 입김에 눈치보는 남을 한 품에 안아 두 손 내밀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분단으로 고통받는 남북해외 전민족의 민중들의 삶을 지켜 내고자하는 마음이 아닐까.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여전히 북 사회와 김정은 위원장의 참된 면모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 27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그리고 합의된 선언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북 사회와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어린 마음을 제대로 알기 시작해야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인정의 정치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4. 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민족의 핵무력을 더욱 공고히 하며, 남과 북의 지혜를 모아 전체 한반도에 분단적폐세력을 몰아내고 학살자 미국의 죄 값을 받아내자!

 

금, 2018/04/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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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연구소에서 자유게시판 이용을 의도적으로 막은 사실이 전혀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4월 26일에도 게시 글이 등록되지 않고 순서가 바뀌는 등 오류가 발생한다고 한 회원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부에서는 해결이 어려워 전문가들의 진단을 받아 근본 대책을 강구하려 합니다. 앞으로 문제가 있을 때는 담당자인 저에게 알려 주시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금, 2018/04/27- 17:15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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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글을 정관 개정 과정을 궁금해 하는 것으로 읽으셨다면 제가 표현이 부족해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관 개정 경과를 문의한 이유는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두 개의 게시물에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425일자 게시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minjok.or.kr/archives/97379)

정관 개정 과정은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였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저는 지금 혼란 그 자체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수년동안 운영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쌍방이 극단의 표현까지 동원하며 다투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엇이 진실입니까?

2.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요?
실망이란 무엇인가 바라던 일이나 뜻이 원하는바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알아보는 제게 실망하신 것인가요?
저는 오로지 전.현직 운영위원이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다투는 문제의 원인과 배경이 궁금할 뿐입니다.

실망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다른 궁금한 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3.
지금 운영위원장님 개인의 생각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제가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이유도 앞선 게시물에서 충분히 밝혔습니다.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회를 대표합니다.
저는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운영위원장님께 묻는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이 아니라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누구한테 들어야 할까요?

4.
운영위원장님께 드리는 글은 게시판에 올렸고,
지난 게시물에서는 김재운 운영위원님께 전달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5.
사적 의견이지만 김재운 운영위원님께서 말씀해주신 정관 개정 과정은 많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모르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알고 계시는 일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기 당부드립니다.

6.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분은 운영위원장님입니다.
운영위원장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해결 노력을 촉구합니다.

금, 2018/04/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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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구님이 요청하신 것은 25일 글에서도 제일 끝에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요청했으며 두 번째 글에서도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 기구 신설을 제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정관개정에 대하여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궁금한 것은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사태를 연구소의 갈등과 원인과 배경이 부닥히는 것이라고 보신다면 저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연구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조직 파괴행위라고 보고 있거든요. 운영위원회의 입장문도 그러한 입장에서 발표된 것이구요.

지금 연구소에 위해를 끼치려는 시도에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연구소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 뜻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금, 2018/04/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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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8/04/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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