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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학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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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익명 (미확인) | 금, 2019/02/22- 11:21

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개벽론>과 <근대론>을 구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착할 수 있으니까요. 박맹수 교수님께서도 한국 근대의 탄생이 나올 때 개화에서 개벽으로를 제목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근대’는 진부한 주제라고 하면서요. 아마 같은 역사학자라서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막상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일부 독자들이 “근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기를 써주셔서, 학계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근대’가 반드시 진부한 주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근대’ 개념에 대한 재인식과 더불어 ‘개벽’이라는 말도 사회적으로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신비적인 이미지도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지적하신 대로 꼭 ‘근대’라는 번역어에 기대지 않고 곧바로 ‘개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렇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다른 백년, 다시 개벽”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많은 공헌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견문이라는 ‘실증’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개벽’이어서 종래와 같은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학으로서의 개벽학

“개벽학은 미래학이요 지구학이고 동서학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말씀에 개벽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국학은 ‘미래학’이라기보다는 ‘해석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 주력해 왔으니까요. 그것도 바깥에서 빌려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항상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외국의 유명한 학자에게 구하려는 태도도 이러한 학문풍토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난 이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온 관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19세기의 ‘개벽’은 우리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일종의 태도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전도 만들어 본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개척정신은 「삼일독립선언서」의 첫머리에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한다”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개벽학의 첫걸음은 100여 년 전의 미래지향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미래의 주인이라고 하는 ‘주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 이런 의식이 개벽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학으로서의 개벽학

‘지구학’은 전통적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난 2천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우주론을 지난 2백여 년 동안 상실한 것입니다. 한문고전을 보면 거의 모든 우주론이 원기(元氣)에서 시작해서 천지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음양과 오행이 분화되고, 여기에서 다시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순서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절대로 인간이 먼저 나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시대 학문은 기본적으로 ‘지구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학에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는 네트워크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는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나 디지털로 만물이 연결되는 시대의 세계관과 더 잘 부합됩니다. ‘한울’이나 ‘한살림’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개벽학은 이런 천지학적인 우주론, ‘한울학’적인 세계관을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근대인’, ‘개화인’에서 ‘지구인’, ‘개벽인’으로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세계사상사적 의미

“<동서 문명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21세기의 과제가 이미 (동학의) ‘다시 개벽’의 외침과 깨침에 내장되어 있다”는 선생님의 지적은, 윤노빈 식으로 말하면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동학을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혁명’이나 ‘일제에 대한 저항’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몇 년 전에 어느 학술대회에서 동학에 대해 발표하시는 선배 학자의 토론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전히 동학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못 보고 외국의 사례찾기에 급급합니다. 눈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으니까요. 물론 지나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가 배제되니까요. 모두가 양극단입니다. 동학은 우리 것이라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라서 좋은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동서학을 회통시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려고 했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신생철학(1974)의 저자인 윤노빈 선생님도 이 점을 말하고 싶어서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썼을 것입니다.

 

회통과 창조의 정신

동학의 특징이라고 하신 ‘회통’과 ‘창조’는 개벽학의 기본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회통은 중화주의와 같은 중심주의나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주의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발상입니다. 항상 자기가 중심이 되고 타자는 주변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니까요. 일종의 ‘본말’ 관계입니다.

반면에 회통은 본말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려 하는 ‘포함’의 태도입니다. 최치원이 ‘포함삼교’(包含三敎)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타자를 맹목적으로 쫒아가는 ‘축물’(逐物)과는 다릅니다. 장자나 율곡 식으로 말하면 자기를 비우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허심응물’(虛心應物)에 가깝습니다.

창조는 이러한 비움과 회통의 태도에서 가능합니다. 어느 하나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축물의 상태에서는 모방과 추종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근대의 캐슬’과 ‘개화의 아성’으로부터의 탈출이 요구됩니다. ‘근대’라는 정신적 식민지상태, 영혼의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개벽은 이러한 영혼의 해방을 도와주는 일종의 ‘역사적 도우미’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중화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개벽이 탄생했듯이, 지금의 근대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벽의 경험을 참고해야 합니다.

  

개벽교육과 교육개벽

선생님이 <개벽학당>을 구상하신 것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시켜 다가올 개벽사를 개척할 ‘개벽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개벽교육’이자 ‘교육개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취지로 저희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도 오는 3월부터 은덕문화원에서 매달 <개벽포럼>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한 달에 한 명씩 각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개벽하기 위해 실천하신 분들을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도법스님의 <생명평화와 개벽>을 비롯해서,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김경일 총장님의 <원불교와 개벽>, ‘다른 백년’ 이래경 이사장님의 <경제와 개벽>, 연찬문화연구소 이남곡 소장님의 <『논어』와 개벽>, 『역주 용비어천가』의 저자 박창희 선생님의 <세종과 개벽>, 한살림운동을 하신 이병철 선생님의 <살림과 개벽>, 인도에서 오신 원현장 교무님의 <동서융합과 개벽>, 하자센터와 로드스꼴라 김현아‧황지은 선생님의 <교육과 개벽>, ‘토착적 근대론’을 제창하신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종교와 개벽>, 그리고 선생님의 <유라시아와 개벽>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제가 ‘개벽학’을 구상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부딪힌 가장 큰 벽이 ‘실천’ 경험의 부족입니다. 개벽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와 같이 엄밀한 형이상학체계이기보다는, 실학과 같이 현실에 밀착된 일종의 실천학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이론적인 고민도 해 오신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개벽사를 복원하는 것은 문헌공부나 현장답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미래의 개벽학은 실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공허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벽포럼>은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역사적 경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근대기에 ‘개벽’ 경험의 유무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벽’은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만들고, 그것에 입각해서 전국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한 역사적 경험을 말합니다. 한국은 동학개벽에서 삼일개벽을 거쳐 최근의 촛불개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에서 개벽의 경험을 해왔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이런 경험이 부재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일본이 처한 사상적 곤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화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안 보이는 거지요. 150년간 개화의 틀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요.

개화를 못해 식민지를 당했지만 개벽이 일어났던 한국과, 개화가 빨라서 산업화에는 앞섰지만 개벽의 경험이 없었던 일본. 이것이 두 나라의 근대기의 명암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님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일본에서 도덕은 진부하고 한국에서 도덕은 풋풋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빌리면 “일본의 근대는 진부하고 한국의 개벽은 풋풋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이 본 동학

다나카 쇼조

작년 8월 22일자 《아사히신문》에 “메이지유신 150주년” 특집기사로 <근대 일본의 빛과 그림자>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어두움을 말합니다. 15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일본 근대를 성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동학은 문명적”이라고 절찬한 일본 최초의 환경운동가 다나카 쇼조(1841~1913)를 ‘또 하나의 근대’를 지향한 사상가로 평가했습니다. 일본이 선택한 제국적 근대, 침략적 근대가 아닌 생명적 근대, 평화적 근대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박맹수교수와 죠마루 요이치 기자(한일시민동학시행)

이 기사를 쓴 죠마루 요이치(上丸洋一) 기자는 작년 10월에 <한일시민동학기행>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이 기행은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과 박맹수 교수님이 10년 넘게 진행해온 동학답사입니다. 이때 죠마루 기자는 다른 일본시민들과 함께 태안, 공주, 천안 등지의 동학전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은 90이 가까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한국인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죠마루 기자는 이때의 기행을 기사화해서 올해 1월에 5회에 걸쳐 《아사히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이 연재에서 동학을 ‘독자적 근대’를 추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다나카 쇼조를 (서구 근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근대’를 추구한 사상가라고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동학에 비하면 다나카 쇼조는 너무나 외롭습니다. 조직이나 공동체가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쓸쓸하게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벽의 차이입니다. 다나카 쇼조도 동학적으로 말하면 분명 개벽을 추구한 사상가이자 운동가임에 틀림없지만 그를 도와줄 개벽의 동지들이 없었습니다.

 

개벽학 센터의 꿈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학과 관련해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도학과 과학의 병진”이라는 문제제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학으로서의 개벽학의 최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동학과 원불교의 개벽학이 도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홍대용과 최한기의 기학은 과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양자를 회통시키고 융합시키는 철학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학과 개벽학이 만나야 합니다. ‘개벽실학’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개벽실학을 모델로 해서 21세기 개벽학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학은 최신과학의 성과를 반영하고, 도학도 최근의 수양 프로그램을 반영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실험적 작업을 하는 ‘개벽학 센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학과 철학과 과학이 어우러진 개벽학을 디자인하는 작업실 같은 곳 말입니다. 이곳에서 개벽사상을 담은 새로운 민주주의이론도 구상할 수 있을 수 있겠지요. 해원(解冤)의 수양과 경물(敬物)의 윤리와 신명(神明)의 도덕을 겸비한 ‘개벽민주주의.’

 

개벽의 역할분담

유상용선생님과 송지용연구원

마지막으로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에 공동체운동을 하시는 유상용 선생님이 원광대학교에 오셨습니다. 수덕호에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봉황각 커피숍에서 종교문제연구소의 김재익 연구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황명희 연구원, 송지용 연구원과 함께 2시간 가까이 개벽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이었는데, 골자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뿐만 아니라 양자를 잇는 제도개벽도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우리는 모두 제도나 시스템의 영향 하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 커리큘럼에 따라 정신이 개벽되기도 하고 세뇌되기도 합니다. 개벽학당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개벽파가 주로 도덕개벽과 정신개벽에 치중했다면, 개화파는 제도개벽과 물질개벽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가 물질개벽을 강조했다면 민주화는 제도개벽을 강조했습니다. 1987년에 민주화투쟁으로 얻은 직선제가 그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개벽 서울선언

정치나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제도개벽에, 종교나 철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정신개벽에, 과학이나 상업을 하는 분들은 주로 물질개벽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역할이 있고 서로 보완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있든 개벽의 마인드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무엇’을 개벽하느냐보다는 개벽을 ‘한다’는 의식이 중요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면, 그 ‘무엇’을 얻은 순간 개벽이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얻지 못하면 지쳐서 개벽을 포기하게 되고요. 공자는 “배우는데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다”(學無常師)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개벽에 일정한 대상을 두지 않는다”(開闢無常)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하노이에서 보내시는 「삼일개벽선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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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위한 정책은 누가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 19 감염병이라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예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자동차 부품의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도 발생했다. 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불과 0.3° 남았다는 기후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시시각각 우리의 운명을 옥죄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는 온통 부동산 문제로 난리지만, 도무지 그 정확한 해법을 찾지 못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아니, 집권당은 오히려 거꾸로만 간다. 가야 할 길은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길만 가고 있다. 전세상한가 법안 통과 바로 전날 자신의 강남아파트 전세를 그 상한가보다 훨씬 높게 계약했던 청와대 전 정책실장. 가장 ‘공정’하지 못한 행위이며 문자 그대로 ‘정책을 잃은’ 정책실(失)장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거대정당 소속 당 연구소로부터 좋은 정책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늦게까지 불 밝히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연구하는 집현전 선비들을 보고 싶다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답답하고도 특별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현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특수 상황은 기존 방식대로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특별하고 전반적이며 심층적이다. 창조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세종 시대에 있었던 집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집현전에서 불을 밝히며 밤늦게까지 자신의 부동산 이익이나 출세가 아니라 오직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연구하는 그런 선비들이 필요하고 그런 정책기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의 위기를 미리 예측하여 대비하고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를 창출하며 또 우리나라 미래의 먹거리를 개척해나가는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그런 집현전이 절실한 시대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집현전의 연구 기능을 크게 강화하고 당대의 우수한 젊은 인재들을 등용하여 집현전에 소속시켰다. 집현전은 이전에 이미 존재하기는 했지만 사실 역할이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기구였다. 세종은 그러한 집현전을 자신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국책연구 기관으로 삼고자 하였다.

집현전 학사의 자격은 문사(文士)였으며, 그 중에서도 재행(才行)을 지닌 연소한 자를 적임자로 삼았다. 집현전은 그 설치 동기가 학자의 양성과 문풍의 진작에 있었고, 세종 역시 그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육성하였으므로 학문적인 특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세종 대에는 일단 집현전 학사에 임명되면 다른 관직으로 전직(轉職)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학자란 모름지기 평생 정치가가 아니라 연구직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현전 학사들은 집현전 안에서 차례로 승진하여 직제학 또는 부제학에까지 이르렀고, 그 뒤에 육조나 승정원 등으로 진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숙주와 정인지는 이 방침이 정해지기 전에 이미 집현전을 떠나 신분이 풀렸지만, 이후 출세길을 접어야 했던 집현전 학사들에게는 커다란 좌절이기도 하였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자상하게 보살핀 것은 유명하다. 내관을 보내 공부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신숙주에게 옷을 덮어 주게 하는 등 특별하게 대우했지만, 집현전에서의 연구직 종사 원칙은 끝내 풀지 않았다.

세종 중기에 집현전의 정원이 16인에서 32인으로까지 증가되었고, 그 기능이 확대되어 유교주의적 의례와 제도, 문화의 정리 사업인 고제연구(古制硏究)와 편찬사업이 시작됨으로써 가장 활기를 띠었다. 집현전의 고제연구는 의례 및 제도의 실천에서 발생하는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 많았으며, 세종의 각종 시책 추진에 필요한 당면하는 정치 및 제도적인 문제의 해결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각국의 제도와 정책에 대한 연구에 해당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세종은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중국과 우리의 역사에서 치국평천하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뽑아 ‘너무 복잡하지도 말고 너무 간략하지도 않도록’ 그 요점을 정리한 『치평요람(治平要覽)』을 편찬하게 하였다.

세종 후기에 이르러 집현전은 세종의 신병으로 인하여 세자의 정무처리 기관인 첨사원(詹事院)이 설치되면서 집현전 학사들이 종래에 맡아왔던 서연직(書筵職)과 함께 첨사원직까지 거의 전담하게 되어 그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집현전의 언론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강력한 언론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점했으며, 국가 정책의 논의에 참여하는 등 정치 활동도 활발해졌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뛰어넘는 이러한 일,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

차기 대선주자들은 이 집현전 설치를 공약으로 삼아야 한다. 현 정부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착수했으면 한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시작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집현전을 국회에 설치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당리당략으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아 정부 안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 당연히 관료들과도 거리를 둬야 할 것이고, 정치권과도 거리를 두면서 오직 나라와 국민들만 생각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폭넓은 채널과 소통을 통해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뛰어넘는 집현전의 설치, 이것은 시대적 요청이며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준섭

화, 2021/04/2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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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3특별법 개정 촉구 국회앞 1인 시위가 9주차에 접어들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에서 미군정 산하 경찰에 의해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게 73년 9개월이나 된 일이다.

외롭고 지루하고 답답한 1인 시위였지만 다른 일도 일어났다. 특별한 유족 증언대회가 노상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88세 1934년생 유족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세 형제가 참여했다. 벌써 네 번이나 참석한 다른 86세 1936년생 유족은 애월면 귀덕리 1구 구장아들이었다. 바보처럼 서 있는 나에게 50년 만에 중학생 동창이 찾아 와 자기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서 15년형을 통지받고 복역하던 불법 수형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놀라고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6년 조성봉 감독이 만든 “빨갱이 사냥”이라는 기록동영상에 경찰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200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모두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뼈아픈 사연들이었다. 유족들의 이런 참여와 적극적 반응은 1998년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가 창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1】

 

민간인학살의 대표적 사례인 제주학살(1947-1954)

다시 말하면 국가는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부와 이행기 정의의 비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주학살(1947-1954)은 어떻게 일어났나?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정부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3권짜리 한국인권사 총서를 냈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대역사였다. 여기에 필자는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이라는 글을 써 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제주학살(1947. 3. 1 – 1954. 9. 21)은 미소 강대국의 한민족 분단과 미군의 남한 점령에서 비롯되었다. 미군은 물리적, 사회경제적 민족분단을 통해 민족자결권을 전면 침해했다. 동시에 미군의 남한점령은 일본에 대한 간접점령 방식이 아닌 직접점령이었다. 특히 미군정 경무부의 철권통치와 미군정의 실정은 남한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추진, 좌우합작을 통해 조선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민족분단과 미군 점령하의 제주섬에서 제주인들은 아래로부터의 자치 기구로써 제주도인민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며 비교적 미군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6년 미군정은 제주섬을 중앙집권국가에 강제 편입시켜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 증강했다.

미군정 4년 시대에 제주학살은 미군정 산하 경찰이 1947년 3월 1일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보다 더 많은 미군정 경찰 병력 증파와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미군 대위가 현장에 존재했던 관덕정 학살에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13개월 동안 2,500여명을 대량 검거하는 반인권 조치를 강행했다.

‘제2의 미국무부’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국제연합 총회 결의에 의해 조선임시위원단 입국과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하는 ‘4월 3일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미군정 산하 경찰과 사설폭력단체의 억압에 대한 민심 폭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단순한 ‘소요’라고 상황을 오판했다. 더욱이 이후 일어난 학살들에 대한 미군정은 미군 연대장의 직접 지휘, 경찰 증강을 통한 물리적 진압, 미군의 군사상 지휘와 통제 책임을 들 수 있다.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 학살은 산간 지역 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1948년 10·17 포고령을 발동하면서 부터였다. 제주학살을 위한 군대와 경찰 출동, 피난민을 향한 군경의 가차(假借) 없는 총살형, 제주도경비사령부 창설과 공세적 운용은 중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명백했다.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들은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의 정당성을 위협받게 되자마자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 국내정치용 초강수로서 학살을 방조, 조장, 지휘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드디어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이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동되었다.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었고, 국기문란이었다. 불법 군사재판과 사체 유기가 빈발했다. 미군 철수 이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은 반공극우보수체제 강화를 위해 ‘잔비’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주민학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제주섬사람들은 애도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은 5·16 군사쿠데타 성공이후 국가 차원의 역사말살은 또다시 강화되었다. 30년이 지나 허위와 기만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이 나왔으나 망각을 강요하는 신군부 독재 등장으로 또다시 진실 찾기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해이후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진실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대학내에서 ‘4·3항쟁’ 논의가 시작되었고, 사건발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4월 운동이 일어났다. ‘4·3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지역 언론 사상 최초의 제주학살 심층기획취재와 장기연재가 이뤄졌다.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4월운동의 전국화, 제주도민학살의 진실과 정의, 인권을 위한 법률 제정운동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3년간 조사한 뒤 제주4·3에 대한 사상 처음으로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이 이루어졌다. 제주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행기 정의 확립의 전시장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2】

많은 국민들은 제주학살(1947-1954)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020년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9주째 진행해 왔다. 그런데 내 앞을 오가는 시민들이 툭 던지는 말이 “4·3은 다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오곤 했다. 말 그대로 제주학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진전되었으나 정작 이들 민간인 학살 피해 인사에 대한 피해회복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고 대답해 주면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 재정과 이행기 정의

지난 2020년 5월 12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만심사소위원회가 열려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러나 회의 막바지에 기획재정부 국장이 부처간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원들은 개정 반대를 노골화했고, 제20대 국회에서의 4·3특별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2021년 예산안은 555조8천억 원이다. 전년 대비 43조5천억 원, 8.5% 증액한 규모이다. 분야별 재원 배분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국방비 예산은 2조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액하였다. 정부는 스마트 강군 기반 구축 및 군 사기진작 지원을 위해 군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예산 규모만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중견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림 1> 2021년 정부 예산안

2020년 인류를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COVID-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엄청난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다. 그런 국가 재정 운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사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국가 채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사정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대위기상황에서도 실물경제운영과 국가 채무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국가채무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봐도 그렇다.【3】

더욱이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상위 15 개국 (1980~2024)를 보아도 한국의 국가채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사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

우리가 생각하고 요구하고 있는 이행기 정의란 다른 게 아니다. 과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가해에 책임이 있다고 확인된 국가권력은 피해인사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회복을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학살(1947-1954)에 대한 3년간의 정부 조사 결과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책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대통령들이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이에 따라 제주학살 피해 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는 게 이번 국회 앞 1인시위의 당면요구사항이다.

국회의원들에게 피눈물을 쏟으며 지나온 한의 세월을 이제 끝장내게 해 주십사 호소한다. 더 이상 이런 노상에서 힘들게 이루어지는 4·3 유족증언을 끝내고 싶다. 국가는 과거 공권력에 의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학살피해를 구제해 줘야 한다. 그래서 불미스런 과거사를 털어내고 미래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75년 된 분단과 냉전의 깊은 상처와 고통, 70년 된 전쟁의 참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번 4·3특별법 전면 개정은 그런 이행기 정의 확립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잘못된 집행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해 구제 입법선례들을 찾아보자. 부산·마산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에 대한 보상법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피해구제 입법도 있다. 거창·산청·함양민간인학살사건 배상법은 2004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발의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국회가 제주도 민간인 학살피해회복을 위한 4·3법 개정 행동에 적극 나서 주어야 한다. 말과 구호가 아니나 행동과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제주4·3”은 중대한 인권침해사안이다. 국회의원들은 이“제주4·3의 중대한 인권침해문제”를“정당과 정파, 이념과 입장을 초월해서 피해 배상하자”는 개정 법안에 대해 동의해 주어야 한다. 인륜에 반하는 범죄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조치를 시행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법률 가치와 정신에 밀접히 부합하는 일이다.

“4·3 해결”은 더 이상의 정쟁의 제물이 아니다.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14개 전국시도의회와 전국교육감협의회가 4·3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 발표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도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심의에 조속히 참여하여 인사치레나 말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정의국가, 공정한 국가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부디 올해 2020년 이내에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이 지체되거나 부실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대비극의 참상이 가해자 측에 의해 왜곡되거나 부정, 폄하되는 몰골을 방치할 수 없다. 피해인사 유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정의 실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하는 이유

2020년 12월 14일부터 제주4·3유족회는 제주와 서울의 시민단체와 함께 4·3 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돌입하였다.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의 날씨에 연세가 많은 제주4·3유족들은 왜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4·3보상요구행동을 선언,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지난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4·3특별법 개정촉구 1인 시위를 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4·3유족들이 직접행동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닥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9주 동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온 덕분인지 제21대 국회에서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11월 17일, 18일 양일간 여야 의원들이 깊이 심의하여 많은 합의를 했다. 그런데 4·3 학살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조문은 잘 되지 못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피해자 권리장전은 민간인 학살이나 강제실종,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이들은 피해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둘째, 이번 4·3특별법 개정의 핵심 중 하나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이 당한 학살 피해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자는 것이다. 국가는 민간인 학살을 가한 이승만 정권시절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4·3학살 피해 유족은 당연히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번 4·3 보상 요구는 학살 피해 유족이 지닌 채권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과거 공권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셋째, 이런 4·3 보상 요구에 대해 기획재정부 담당자는 국가 재정 탓을 하면서 다른 지역의 과거사가 많은데 제주 유족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공무원 말은 학살 피해 유족을 위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매우 부적절하고 옳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피해 유족들이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나서게 된 가장 이유요 배경이다.

넷째, 4·3 유족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려면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함께 4·3보상을 약속한 공약을 지켜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유족에게 거듭 사과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시절 추념식에 참석하여 “제주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지난 11월 3일, 4·3특별법 개정을 “미래입법과제”에 포함시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므로 이제 4·3유족들이 나서서 이런 약속들이 지켜져 서둘러 4·3 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야 할 때라고 보았다.【5】

다섯째, 1947년 3월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지 벌써 73년 9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이번처럼 좋은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4·3보상법으로 개정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유족들이 살아 온 너무나 서럽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제 끝날 낼 때이다. 어떤 이들은 4·3보상이 피해 인들의 희생당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보상을 하게 되면 집안싸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걱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4·3학살 보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은 4·3보상권리를 주장해야만 할 호기이다.

 

【1】 박진우 2020 “70여 년의 한, 4·3특별법 개정 통해 풀어 달라” [현장]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하고 있는 1인 시위자들의 외침

“야만적인 제주4·3학살의 주범이 미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연구를 하는 학자이자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허상수(65)씨는 지난 10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씨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전환비용을 부담해 온 게 사실”이라며 정부 재정 탓을 하며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관료들의 생각과 발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두 분의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마당에 “이제는 기재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행기 정의 확립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의 대승적 조치를 주문하였다.“

【2】 허상수 2019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제2권 국가폭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하여』 pp. 39-79.

목차

1. 민족분단과 미군정 치하의 제주도

 

I. 제주인민위원회

II. 제주도민족민주주의전선

III. 미군정, 제주도를 중앙집권국가에 강제편입

2. 미군정 3년 시대의 제주학살

I.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

II. 관덕정학살에 거도적으로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

III. 미군정 산하 경찰의 2,500여명 대량검거와 3건의 고문치사

IV.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한 ‘4월 3일 인민봉기’

V. 제주학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문제

3.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학살

I.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과 10·17포고령

II.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

III.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

IV. 미군 철수 전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

4.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

I. 5·16 군사쿠데타와 망각의 강요

II. 국가 망각과 연좌제

III. 허위와 기만 그리고 금기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

5. 민주화 이후의 제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 운동

I. 사건발생 40년 만에 시작된 4월 운동

II. 평화적 정권교체와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 제도화

III. 제주4·3에 대한 사상 첫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

【3】 중앙일보 2019. 05. 23 국가채무비율 40% 논쟁, 정해진 기준은 없다. 종합 5면.

【4】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TOP 15 (1980~2024)

【5】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4·3특별법 연내 개정을 약속했다.

 

허상수

화, 2020/12/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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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중앙1호 문건은 중국공산당 중앙이 매년 연초에 발행하는 주요 국가 정책 방침이다. 2004년부터 중앙1호 문건의 주제는 변함없이 삼농이었다. 2018년부터는 향촌진흥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빈곤구제정책의 성공을 선언하고, 중앙정부의 ‘국무원부빈개발영도소조사무소國務院扶貧開發領導小組辦公室’를 향촌진흥국으로 개명하면서, 정책 추진을 보다 본격화하고 있다. 이 조직은 1986년에 설치됐기 때문에, 30여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중점업무를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농촌의 절대빈곤문제가 이제 상대적 빈곤문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의 융합과 같이, 두 주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일이 될 것임이 예견되고 있다. 향촌진흥의 세부 정책들은 이미 농촌 일부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농촌과 도시의 격차나 지역간 격차가 적은 져장성浙江과 광둥성廣東 등의 남방지역이 앞장서고 있다. 이는 지역 농촌의 상대적 인프라, 자연인문환경에 이점이 있어 도시민에 대한 소구력이 높고, 주변에 1,2선 도시가 많아서, 이와 같은 이점을 좇아 농촌으로 이주하려는 도시민들이 많으며, 도시와 농촌을 자매권역화하여 쌍방 인구 유동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상하이, 항저우 등의 1,2선 도시와 져장성浙江省의 모간산莫干山지역 등이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수려하면서도 대도시에서 접근성이 좋아서, 아름다운 농촌美麗鄉村으로 불리며 향촌진흥 정책이 거론되기 이전부터 지방정부의 유인정책과 민간의 수요가 만나 모범적으로 개발이 진행된 곳이다.  

쌍순환전략중 내순환은 내수의 진작을 전제로 하는데, 중국정부는 내수가 원하는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아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 경제위기를 각종 소비우대정책에 의한 농촌 내수진작으로 돌파한 것을 거울삼아, 다시 5억 농민의 소비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고민중이다. 하지만, 농촌 인구 감소와 노령화 등의 문제 때문에, 단기적 소비진작이 아닌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도시 혹은 중소도시로 집중되는 교육과 의료자원이 유발하는 소비를 어떻게 농촌에 배분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있다. 청년 인구가 완전히 성이나 시정부 차원의 지역을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중소도시에 자원을 집중화하여 규모를 키우고, 품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지역적 차원의 자원집중이 불가피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농촌토지의 시장진입 문제, 혹은 오랜기간 유지된 도농이원화 체제에서, 도시민과 농민의 호구제도나 이와 연결된 농촌과 도시의 자원이, 쌍방으로 유동하는 인구에 대해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재분배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들은 모두 모순적인 상황을 불러 일으킨다.   


원톄쥔: 베이징대학 시진핑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연구원 향촌진흥센터 주임

2월23일 충칭重慶일보가 기획한 ‘향촌진흥전략-강연’에서 삼농전문가 원톄쥔 교수가 2021년의 중앙1호문건에 대해서 해설했다.

1. 삼농을 국가 안보의 주요 기초로 삼는다

올해 1호문건은 첫마디부터 삼농의 국가 중대전략으로써의 의의를 강조한다. “농업농촌의 발전이 새로운 역사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는 향후 경제 및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든든한 반석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삼농 사업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의 도전을 헤쳐나가기 위한 내공쌓기이며 국가안보의 주요한 기초라는 것을 보여준다.

농업농촌부 부장 탕런졘唐仁建은 2월22일 기자회견장에서 2020년 팬데믹과 세계경제 침체국면에도 불구하고, 3천3백만 농민공들이 고향에 남거나 고향으로 돌아감으로써, 중국 사회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촌이 인력과 자원의 저수지로 기능함으로써,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가져올 미래의 리스크와 불안정성을 생각할 때, 삼농이 사회와 국가의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국가의 종합적인 안보체제에서, 우선 식량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각급 지방정부는 책임지고 이를 지켜야 하고, 농민과 시민을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단위에서는 리더쉽이 양곡확보를 책임지고 “省長米袋子성장쌀가마“ 시단위 (역자주 – 중국의 시市급 행정구역은 한국의 도道규모에 해당한다)에서는 채소 등의 기타 식량을 책임진다는 “市長菜籃子시장채소바구니“ 정책을 관철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로컬푸드가 결합된 푸드플랜을 수립하여, 적절한 수준의 식량자급과 합리적 생산자 수입을 보장하고, 도농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그 다음으로는 토종 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종자의 상업화로 인해, 농민들이 종자를 남기고 키우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고 종자를 지키려는 의식도 사라졌다. 세번째는, 농지의 보호이다. 최근 도시가 팽창하면서 근교의 농지가 대단위 택지로 변경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본보호면적해당 농지를 임야지대로 옮기거나 (역자주 – 중국은 식량안보를 위해 정책적으로 국가가 지적한 일정 면적의 농지를 지켜야 한다. 기존의 농지나 농지에서 지역 향진기업 등의 부지로 사용하던 기본농지를 택지로 바꾸어 개발하고, 대신에 해당면적 만큼 임야 등을 농지로 개간하는 경우가 있다. 도시의 교외지역의 농지가 도시확장에 따라 이렇게 전용되는 경우가 많다), 농가거주지의 합병 (역자주 – 전통적으로 자신이 경작하는 농지 부근에 위치하던 농가주택을 농지로 전환하고, 분산되어 있던 농가를 한곳으로 모아서 아파트와 같은 집단주거형태로 이주시키거나, 주택을 밀집시키는 형태로 개발한다)으로 농민이 경작지에서 먼 곳으로 이주하는 등, 경작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임야지대에서의 농사는, 기계를 이용한 경작, 그리고 인력에 의한 경우 모두 난이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기본농지보호가 형식에 치우침으로써, 실제로는 경작되지 않는 황폐한 농지도 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농민들은 주거지 주변의 텃밭에서 자급할 수준의 농사만 짓고 있는데, 이는 농민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농촌거주민들의 생활방식도 갈수록 시장에 종속되고 있다. 농민도 식품을 구매하고 있고, 그래서 중국 전체의 농산물 수입도 급증하고 있다.

 

2. 중국특색사회주의에 맞는 향촌진흥의 정확한 정치적 방향

지금은 빈곤구제정책을 향촌진흥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시점이다. 당중앙과 각급 당위원회가 책임감있게 실행한 덕택에 빈곤구제정책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촌진흥정책의 실천은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랜 기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위아래가 통일된 사상을 바탕으로 과거의 도시화 중심 정책을 삼농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왜 중국특색사회주의가 지향하는 향촌진흥정책인가 ? 왜냐하면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자본은 고도의 표준화, 집중화, 규모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사회의 국가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크게 훼손시키면서, 기계화한 단작형 대량생산 산업방식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산업화는 유럽의 복지사회주의,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동아시아의 사회자본주의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 모두 대량생산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산업화 단계의 이념이다.   。

비록 중국의 산업자본총량과 금융자본총량은 세계1위이지만, 그 발전방향은 향촌진흥정책 및 생태문명전략과 직접적으로 결합돼 있다. 그래서 국가가 금융자본을 규제하여, 금융을 위한 금융산업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2019년에 제시된 금융공급측개혁은 실물경제를 위해 운용되어야하는 금융의 본령과 목적을 명확하게 한다. 이와 함께 농업의 공급측 개혁을 행함으로써, 이 단계에서 생태문명전략과 향촌진흥정책이 만들어 나가는 생태경제를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농업생산량 증가를 목표로 움직이는 경제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중국특색사회주의에 걸맞는 정확한 정치적 방향성을 가진 향촌진흥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국가의 농업농촌현대화 정책과는 차별화되며, 중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특히, 중국특색사회주의 향촌진흥정책 체계안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며, 량산兩山사상 (역자 주 –綠水青山金山銀山)에 기반하여 생태자원 가치를 입체적, 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3. 중국특색사회주의 농업농촌현대화의 이해

우선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현대화 농업은 하나의 통일된 모델이 아니다. 농업은 자연의 변화, 경제의 변화가 고도로 결합된 결과이다. 현대농업발전 모델을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북미 오세아니아로 대표되는 앵글로아메리칸모델은 대농장을 운영한다. 식민화를 통해서, 광대한 자원을 이용하는 규모화와 자본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기업과 산업화된 정책이 만들어졌다. 두번째는 EU가 대표하는 라인모델이다. 중소형농장이 중심이 되고, 인구증가에 따라 신대륙으로의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인구 밀도가 높고, 자원에 제한이 있다. 현대농업자본화와 생태화가 결합되는 것으로만 유지가능하고, 60%의 농장은 중산층시민이 겸업형태로 운영한다. 이들은 환경운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세번째 모델은 한중일이 대표하는 동아시아 모델이다. 인구밀집도가 높아서 자원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농협과 같은 전국조직을 만들어서, 사회자원의 자본화를 이루고, 삼농의 상대적인 안정을 달성했다.

중국특색사회주의의 농업농촌현대 모델로서 가장 참고할 가치가 높은 것은 중산층 시민들이 주체가 된 라인모델과 농협이 주체가 되는 동아시아 모델이다. 이번 1호문건은 도농융합을 추진하면서, 현급지역縣(역자주 – 한국의 군단위 규모의 지역)을 종합적으로 발전시킨다. 생산자협동조합의 종합적인 심화개혁을 통해, 생산, 소매, 신용의 삼위일체 종합협동조합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집체경제모델을 만들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조직화 수준을 높인 농민경제주체를 육성한다. 이렇게 과거 식민지 대농장 위주의 미국모델을 목표 삼아 만들어 놓은 구조를 서서히 탈피하도록 한다.

 

4. ‘새로운 이념’으로 개혁을 심화하여 새로운 국면을 창조한다 

1호 문건은 농촌의 재산권제도와 생산요소 시장화 메커니즘을 개선할 것을 주문한다. 농촌발전의 내적 동력을 충분히 활성화시켜야 한다. 건전한 토지경영권장기임대(流轉) 서비스 체계를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농촌 집체가 경영에 사용할 수 있는 건설용지를 시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토지삼권분립 (역자 주 – 소유권, 수익권, 경영권) 등  정책의 실시에 따라, 농촌재산권 개혁이 계속 진전되고 있고, 적지 않은 농민들이 농지와 택지 등 경영권 장기임대로, 안정적인 자산성 수입을 얻고 있다. 하지만, 3,4선이하의 도시 및 현급지역은 토지와 주택 공급 과잉현상도 있어서, 심지어는 전체 현인구의 정상 수요의 2배가 넘는 건설면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현縣정부 재정내 부채율을 높이고, 현내 금융시장 리스크를 증가시킨다. 개혁도 점차 위험요소가 많고 난이도가 높은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래서, 시급하게 당의 량산사상을 제대로 이해시켜야 한다. 과거 생태문명전략 이전의 농촌재산권개혁은 대개 산업자본이 성장하면서 농촌에서 평면화된 토지, 주택, 노동력 등의 각각의 자원요소들을 쪼개어 약탈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오늘날의 농촌재산권개혁은 생태문명안의 새로운 이념에 따라서, 새로운 국면의 제도 혁신에 적응하도록 변신해야 한다.

생태문명 전략하의 생태경제수요는 평면을 탈피한 입체적인 생태자원의 통합적인 개발방법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를 “공간의 정의 空間正義”라고 칭하되 이에 상응하는 개혁은 종합적일 수 밖에 없다. 생태문명의 기초위에서 재산권개혁중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올해 1호문건은 재차 녹색발전과 생태를 보호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 자체가 생태화 요소시장의 공간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산수임전호초山水林田湖草와 같은 자연생태 요소를 하나로 묶어 ‘생명공동체‘라고 이름지었다. 이러한 공간생태자원은 량산이념하의 새로운 생산성 요소이다. 그리고 쪼갤 수 없는 입체성, 종합성을 가지고 있으며 표준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과거 수십년간 이어져온 양적성장에 맞는 시장개념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이미 여러 곳에서 새로운 개혁적 실천과 과거의 낡은 제도간에 복잡한 양상의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각지역 각부문마다 1호문건의 향촌건설행동을 관철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득권구조를 조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만 개혁을 심화할 수있다.

 

5. “원활한 도농경제순환”으로 내수를 진작하는 정책의 중점사항

문건과 시진핑 총서기가 강조하는 “새로운 단계, 새로운 이념, 새로운 방식”은 다음 문장과 관련이 있다 “발전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한다. 여기서 관건은 삼농이고, 농업농촌의 약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도농이 함께 발전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새로운 발전의 방식을 만들고, 삼농이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여, 농촌의 내수를 빠르게 확대시켜야 한다.  도농경제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현재 직면한 국내외의 각종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기초는 삼농의 지원이다. 시급히 농업의 기반을 안정화시켜 삼농의 기초를 수호해야 한다. “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도농의 협력을 활성화시키고, 원활한 도농경제순환을 통해 농촌 내수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도농융합전략이 향촌진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1호 문건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새로운 발전 방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잠재력은 삼농에 숨어 있다. 농촌의 수요를 시급히 확대할 필요가 있고, 도농경제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치 소의 코뚜레를 잡아 끄는 것과 같다. 농민 소비가 최근 계속 하락하고 있다. 어림잡아 농촌인구 40%의 소비 금액이 도시지역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5억이 넘는 농촌 거주자의 노령화와 이에 따른 수입의 하락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생산에 종사하는 노동력 대부분이 노년이고, 인력시장에서는 노동생산력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을 제고할 수 없다. 도농융합을 통해 도농경제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만, 농촌의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그래서, 농민은 그냥 농민이 아니고, 농촌은 그냥 농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1호 문건 전반부에서 다루는 통합적인 체제개혁이 필요하다. 두가지 상반되는 양쪽 방향으로의 종합적 시책이 필요하다.

첫째는 도농의 두 요소 시장을 융합하기 위해 필요한 ‘삼변三變개혁 (자원은 자산으로, 자금은 자본으로, 농민은 주주로 세가지 변화를 추구한다)’을 추진해야 한다. 123차산업을 융합하고, 농민이 신형집체경제의 자산변화속에서 장기적인 자산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서 농민이 시민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역량과 연대하여 창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입을 늘리게 한다.

둘째, 관련부서의 전략적 사고방식을 강화해야 한다. 현급이하의  소도시지역에 발생하는 과잉 부동산 부채를 막아야 한다. 의료, 교육자원이 도시로 집중됨에 따라서, 수입이 적은 농민도 도시에 집을 사고, 농민들의 소비가 다시 도시로 이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농민의 수입이 적어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농민의 고정소비조차 도시의 통계로 잡히게 된다. 가장 좋은 예가 교육부문이다. 농촌학교를 병합하고, 교육자원을 비농업지역의 소도시로 집중시키면서, 농촌학생들도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게 된다. 관련된 소비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소비가 모두 도시의 소비 통계에 포함된다. 의료도 마찬가지이다. 농민이 도시의 병원을 찾는데 의료서비스가 시장화되면서 비용도 증가하고, 도시 소비 통계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소도시의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농촌의 소비가 이전한 것과 연관이 깊다. 이번 1호문건은 ‘향촌건설행동’을 강조하고있는데, 이 안에는 현급지역경제의 종합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도농융합 발전의 조율과 같은 정책적 요구가 미래수요를 고려하는 개혁의 내용이다. 생태문명과 향촌진흥전략의 종합적인 관철만이 자원이 지나치게 도시로 집중되는 폐단을 개선할 수 있다.

5억이 넘는 방대한 인구의 시장을 어떻게 해야 되살릴 수 있을까? 중앙1호문건이 여러방면에서 연관된 상층부의 설계를 제시하고 있다. 도농융합을 강조하고, 구빈지역의 5년 과도기도 설정하여, 기존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도록 한다. 그리고 실제 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구빈정책이 시작한, 빈곤농촌지역 소득증대의 지속가능한 메커니즘의 구현과 향촌진흥을 결합하는 것이고, 저수입군이 안정된 수입원을 얻도록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건속에서 특별히 두가지 요소시장의 유동을 언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농촌에 남은 농민의 현재 지출수입구조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도농융합 정책을 관철하여, 원하는 농민은 도시에 갈수 있도록 지원하고, 반대로 시민이 농촌으로 가서 농민과 함께 창업하는 것을 돕는다. 동시에 농촌에서, 다양한 주체가 자주적으로 금융, 물류, 그리고 부동산을 개발하게 하고, 문화교육 등의 업태가 혁신을 통해서 발전한다. 이렇게 농촌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강삼각지대는 져장浙江성과 상하이가 하나의 권역이 되어, 상하이 시민들이 져장성 농촌으로 들어가 종합적인 개혁적 발전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과거 빈곤한 산간지역의 주민들의 수입이 늘고, 도시로 이주한 경우도 많다.  동시에, 상하이 시민들을 중심으로 외지인들이 대규모로 농촌으로 내려가 도시의 소비여력을 농촌으로 이전했다. 그래서, 도농간의 자원요소가 쌍방향으로 유동함으로써, 농촌소비의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오늘날, 농업에만 의존하는 1차산업은 실질적으로 농민의 수입을 늘릴 수 없다. 비록 많은 곳에서 많은 이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효율이 상당히 낮다. 이에 대해 중앙1호문건은 현급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경제의 가치 증대분이 농민에게 더 많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생산자들이 123차산업융합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123456차산업과 같이 다양한 업태의 융합을 추구해야 한다. 농민이 주체가 되는 종합협동조합이 이러한 산업에 진출해야 한다. 마을집체법인화제도개혁을 지속하여, 자원성 자산을 지분화하고 현단위縣 플랫폼 회사가 이를 인수하여, 현급에서 다양한 업태를 발전시킬 때만이 유효하게 농민의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다.

향촌산업은 어떻게 더 많은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과거에 향촌산업은 관련기관에 의해, 투자자가 자원점유를 확대하는 것을 지원하고, 농업외부의 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방식은 물량이 증대하는 초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농업의 산업 가치사슬이 길어지면서, 결국 생산자의 수입은 감소하게 된다. 혹은 구조적 과잉 때문에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하고 도주하여 부채만이 지역에 부담으로 남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식민지의 대농장 경영방식을 제외하고, 중소규모 농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서구 선진국의 모델은 대기업이 농업의 산업화를 진행하여, 수익의 90% 이상을 투자자에게 환원하고, 생산자에게는 10%만 남기는 불공평한 구조이다.

그래서 농민이 향촌진흥정책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되도록, 중앙1호문건은 현급경제의 구조를 통합적으로 설계할 것을 주문한다. 생산, 유통, 신용의 삼위일체 종합협동조합을 통해서 123차산업을 융합시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듯이, 다양한 우대 정책을 통해서 농민의 조직화 수준을 높이고, 모든 산업 수익이 현과 마을에 남도록 한다. 이를 통해, 농민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산업을 현지역 내에 남게 해야 한다. 과거 현지역 개혁의 함정은 가치사슬내에서 ‘외부자본이익’을 낳는 금융, 보험, 물류 등 제3산업의 증가분이 모두 현의 바깥에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외부의 자본이익에 대한 종합적 개혁이 필요하다. 즉 자원요소 및 수익 유실의 원인을 파악하고 현향촌縣鄉村의 삼급 기층 지역을 묶어서 향촌건설행동을 실행해야 한다. 현이 한 단위가 되는 전역적인 공간생태자원의 개발이 이러한 생태경제체계에서 로컬라이제이션의 주요한 내용이 된다. 이것은 농업농촌이 과거의 양적 발전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농융합의 거대한 흐름속에, 사회의 인력과 자원이 농촌으로 내려와 발전을 촉진하게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듯이 123차산업이 융합함으로써 농민의 수입이 올라가고, 농촌의 소비도 늘게 된다.

 

김유익

목, 2021/04/0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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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회 선배들은 지금 국회와 달랐다

1948년 8월 25일 오전 9시 반, 제헌의회 제48차 본회의가 열려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비롯한 법안을 논의하였다. 특별법기초위원회 김웅진 위원장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목부터 시작하여 제1조, 제2조, 제3조……. 각 조문마다 차례차례 낭독하고 이어 모든 의원들이 발언권을 얻어 논의하고 토론하여 마지막에 조문에 대한 투표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가령 제2조 조문이 투표 끝에 결정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게 기나긴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의원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였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 다음날 다시 동일한 시각에 속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힘이 강하다

유진홍 의원 지금 제2조를 가지고 벌써 두 시간이나 토론했습니다. 법원 원 정신이라는 것은 현행범 범죄자의 징계요, 장래를 경계하는 것이 법의 원 정신입니다.

….중략….

김장열 의원 제2조 말단에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는 문구를 「재산 및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로 수정하는 것을 동의합니다.

…중략….

이석주 의원 2조도 역시 1조와 같이 준엄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정기를 살리지 못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1조는 매국적이고 2조는 매국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작(受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에 와서 그 재산을 반만큼 몰수해서 그 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 자들이 그 재산의 위력을 가지고서 우리 조선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독립을 방해한 그 효력이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그 재산의 힘을 가지고 무슨 장난이 있을지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요. 그러므로 그 재산을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수정안을 찬성합니다.

부의장 김동원 가부 묻겠습니다. 이 동의를 잠깐 낭독할텐데 자세히 듣고 표결해주십시오.

(기록원 낭독 – 제2조 중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으로 수정할 것)

부의장 김동원 2조에 대한 수정안입니다. 수정안을 낭독해드렸는데 거기 대해 묻겠습니다.

(거수 표결)

재석 145, 가가 88, 부가 15, 그 수정안은 가결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제2조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의장 김동원 제2조는 전부 수정 통과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아닙니다. 일부만 수정되었지 전체 수정된 것이 아닙니다.

부의장 김동원 그러면 지금 수정 동의한 이 말씀하세요. 제2조는 전체 수정한 것인지 전부 수정한 것인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장열 의원 그 재산권 전체를 말한 것입니다.

부의장 김동원 제3조를 낭독할 테니까 들으세요.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정안이 있습니다. 김명동 의원 외 12인의 수정안이 있습니다. 나와 말씀해주시오.

 

이날 특별법기초위원회 김웅진 위원장은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목부터 시작해 제1조, 제2조, 제3조, 각 조문을 차례차례 낭독했다. 이어 수많은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논의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조문에 대한 투표를 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제2조 조문이 투표 끝에 결정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는 기나긴 논의가 진행됐다. 그 속에서 의원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 다음날 같은 시각에 본회의를 속개하도록 했다.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선배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법안을 검토하고 토론하고 결정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선배들을 본받아 대의권 그리고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 입법시스템으로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의원이 직접 검토해야 협치도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공무원이 ‘검토’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우리 국회밖에 없다. 어느 나라 의회든 당연히 국회의원이 검토하고 토론하고 심사한다. 그것이 곧 국회의 본업이고, 또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이다.

위의 표는 2018년 6월 27일 진행된 독일연방의회 법사위 제19차 회의 일정 공지사항이다. 원래 독일의회에서 위원회 법안심의는 비공개이지만 중요사안에 대한 공청회는 공개된다. 이 회의는 낙태광고금지제한에 관한 형법개정법안 공청회를 겸한 법안심의회의다.

a) 법안은 자유민주당*FDP가 발의한 법안이고, b) 법안은 좌파당*Linke가 발의한 법안이다. 옆의 빨간 박스에서 Berichterstatter/in는 검토보고자를 의미한다. Abg.는 의원(Abgeordnete/r)의 약자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검토보고는 각 당의 의원들이 수행하고 있다. 의원명은 기민당/기사당, 사민당, 대안독일당, 자민당, 좌파당, 녹색당의 순서다.【1】

 

협치, 과연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한국 정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협치’를 말하고 주문한다. 그러나 ‘협치’란 그저 단순히 당사자들과 참여자들이 생각을 바꾼다고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잠시 우리에게 ‘상식’으로 굳어져버린 방식을 바꿔 생각해보자. 바로 이 지점에서 국회의 본령인 입법과정 그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 구조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일하는 시간은 없고, 싸우는 시간은 많다. 그러나 만약 우리 국회가 독일 의회의 전문 검토보고 의원처럼 입법과정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즉 법안의 발의부터 검토 그리고 심의와 의결까지 다른 교섭단체 의원들과 함께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접촉하고 논의하게 된다면 사정은 크게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의원들은 다른 정당의 소속 의원들과도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토론하며 필연적으로 상호 소통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활동은 일상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말하는 ‘협치’도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다.

외화내빈, 빛 좋은 개살구로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는 법안발의 남발 현상 역시 다른 나라 의회의 경우처럼 당연히 정당 내부에서 의원들과 당 소속 정책전문위원의 논의를 거쳐 충분히 사전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법안발의가 남발되어 상임위원회가 한 차례 회를 열 때마다 법안이 수십, 수백 건 첩첩산중 쌓임으로써 정작 필수불가결한 법안에 대한 심의와 의결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기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중국의 전국인대도 법안 검토는 대표가 직접 한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원들은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문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먼저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초선의원의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고칠 의사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점을 알고서도 눈을 감는 것이다.

의원들은 비록 자신들 대신 공무원들이 법안을 검토하는 것이 자신의 권한을 크게 축소, 훼손시키는 것이지만, 우선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고 또 실제 그 일을 자기가 직접 하려면 시간상 능력상 힘들고 귀찮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실 본심은 안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하는 척만 하면서(더구나 사람들은 대개 여기에 속아 넘어간다!) 실제로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결국 모두 공무원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우리가 입만 열면 ‘독재국가’라면서 단칼에 무시하는 중국에는 전국인대(全國人代)【2】, 즉 전국인민대표 조직 중에 ‘전문위원회’라는 위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국회 공무원이 담당하는 그러한 전문위원회가 아니다. 바로 대표자, 즉 전국인민대표 중에서 전문가 출신의 대표들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전문위원회이다.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무능한 그리고 국민에게 봉사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되고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국회가 되어야 한다.

 

【1】 수년 전에 필자가 한 인터넷매체에 국회 검토보고제를 비롯해 기고문을 연재하고 있을 때 국회사무처의 한 간부가 해당 매체에 이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 게재 중단을 종용한 일이 있었다. 그 간부는 문제의 이메일에서 국회의원이 검토보고를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필자의 글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전문위원의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제도를 문제시하면서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이 검토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검토보고제도는 그 법안의 타당성 여부, 문제점, 심사방향 등을 검토하여 보고하는 것인데, 이를 법안을 제출한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검토보고제도의 취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차치하더라도, 문장 자체부터 전혀 다듬어지지 않는 등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그의 주장은 의회에서의 검토보고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인식 결여, 현재의 관행에 대한 근거 없는 맹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2】 여기 ‘전국인대’는 흔히 ‘전인대’로 칭해지지만, 중국에서는 반드시 ‘전국인대’라 부른다. 명칭은 관계자들의 시각과 요구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수, 2020/08/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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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무력화’는 역대 군사정권의 최대 관심사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국회는 역대 독재정권의 눈엣가시였다.

국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허수아비로 만들고자하는 시도는 이승만 정부 때부터 국회프락치 사건 등을 비롯하여 지속적으로 존재해왔고, 그 움직임은 박정희 · 전두환 군사정권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었다. 실제 이들 군사정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국회였다. 1961년의 5·16 쿠데타를 비롯하여 1972년 유신 선포 그리고 1980년 전두환의 5·17 계엄확대는 모두 “모든 정치활동의 금지”를 선포하면서 일차적으로 국회의 움직임을 일체 봉쇄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특히 유신헌법에 의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간선제로 변경하였다. 또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유정회(유신정우회)’라는 이름으로 임명하고 대통령이 헌법의 기본권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 등을 시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국회 해산권과 모든 법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가지게 되는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이 혼자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장악하였다. 또한 대통령 임기도 6년으로 연장하고 중임 및 연임 제한도 철폐하여 사실상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국회의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폐지하고 대통령에게 헌법개정권과 국회 해산권도 부여하였다. 나아가 유신 헌법은 대통령을 행정, 입법, 사법의 삼부(三府) 위에 군림하는 ‘국가 영도자’로서의 ‘국가 원수(元首)’로 규정하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국회 권한의 약화라는 과제는 지속적으로 정권의 최대 관심사였고 제1의 역점 사업이었다.

 

오늘 우리 국회 난맥상의 뿌리는 군사정권의 국회 왜곡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의 국회는 독재 권력, 더욱 구체적으로는 군사정권이 얽어놓은 족쇄에 포획되어 있다.

실제 초선으로 여의도에 입성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인사할 곳도 많고 보고도 많이 받아야 하고 가볼 곳도 많고 등등……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1년쯤 되어야 비로소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임위원회의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나름 성실하게 법안을 심사하여 의결해봤자 ‘제2원(院)’으로 불리는 법사위에서 백년하청 묶어 놓을 수도 있고, 때로는 아예 내용까지 수정해버린다. 의원 위에 의원 있고, 상임위 위에 법사위 있는 꼴이다.

법사위의 이러한 ‘제2원’으로서의 높은 위상은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완성되었다. 또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어 막 상임위 일이 손에 잡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이제 상임위를 바꿔야 한다. 의장 역시 임기 2년이다. 사실 2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금방 흘러가버린다. 2년 임기란 실제 ‘의식’과 행사만 치르다가 보내기 딱 좋은 기간이다. 세계의 어느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상임위 위원의 2년 임기제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매년 10월이면 국감, 즉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국감이지만, 의원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국감 두 달 동안 그리고 국감 준비에 한두 달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세계 어느 의회에도 국정감사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에게 입법이란 문자 그대로 본업이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이 원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입법권한이야말로 의회와 의원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에서는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의원이 그 법안을 충실하게 제정하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보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법률에 의해, 구체적으로 국회법의 규정에 의해, 법안에 대한 모든 검토 권한이 모조리 국회 공무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가히 ‘비(非)의회적 제도’ 아니 ‘반의회적 제도’라 불러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이러한 ‘비정상적’ 제도는 당연히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국회 공무원에 법안 검토 권한을 부여한’ 오늘의 이러한 제도는 국회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통제하고자 한 박정희, 전두환 독재 권력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것이다.

그래서 국회란 외부에서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이지만, 정작 입법이라는 본업과 관련해서는 할 수 있는 게 실제로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하여 결국 국회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으로 전락해버렸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국회는 군사독재 권력이 의도한 바대로 족쇄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군사정권이 남긴 국회적폐의 청산이 국회개혁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지금 국회 개혁의 핵심은 역대 군사정권이 국회를 무력화하고 통제하기 위해 왜곡시킨 제도적 족쇄 장치들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데 있다. 그 제도적 족쇄 장치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큰 문제는 이제까지 누차 강조했듯 의회제도의 기본과 원칙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교란시키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이다. 이외에도 국회 운영상의 족쇄 정치인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권한, 상임위 위원의 2년 임기제도와 국회의장 2년 임기제 그리고 국감제도 등도 모두 군사독재가 남긴 적폐들이다.

이제 군사정권이 왜곡시킨 이러한 비정상적인 제도들을 폐지하고 개혁함으로써 의회제도의 보편적 규범을 복원시켜내야 한다. 그것이 곧 국회가 진정 의회다운 의회로서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 국회도 불신의 깊은 늪을 벗어나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권력이 왜곡시켜놓은 ‘국회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국회 개혁의 시작점이자 그 본질이며 핵심이다.

 

소준섭

화, 2020/08/1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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