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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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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익명 (미확인) | 금, 2019/02/22- 10:17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민족문제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항일음악330곡집』을 배포한 서울시교육청을 비난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연구소의 명예를 손상시킨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의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여명 서울시의원은 지난 18일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 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항일음악330곡집』에 대해 비방 일변도로 문제를 제기해 극우 성향의 일부 인터넷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여명 의원의 주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억설이긴 하나, 이를 방치할 경우 ‘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 왜곡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보고 재발 방지라는 측면에서 엄중히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극우세력의 허위사실 유포와 음해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적극 대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강용석 정미홍 일베회원 방자경 등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 민형사소송에서 잇달아 승소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연구소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명예를 훼손한 여명 의원에 대해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연구소에 일체의 취재나 확인도 없이 여명 의원의 보도자료를 일방적으로 전재하다시피 보도한 극우 인터넷 언론들에 대해서도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는 물론 법적 조치까지 취할 예정이다.

 

다음은 여명 의원의 주장에 대한 연구소의 반론이다.

여명 : 『친일인명사전』은 민문연의 자의적 편집이 짙은 책으로, 친일 명단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테면 명확히 친일행위를 했어도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든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서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명단에 올려놨다든지 하는 심각한 정치편향성 때문이다.

반론 : 『친일인명사전』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여러 단계의 심의 검증을 거쳐 편찬되었으며, 수록 내용에 대해 일일이 전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의 아들이 제기한 배포금지 가처분신청 등 수십 차례의 소송에서 재판부가 일관되게 『친일인명사전』의 공정성을 인정한 데서도 입증된다.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는 지적은 완전한 창작이며 허구이다. 예컨대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선대도 사전에 수록되었으며, 홍 의원은 공개적으로 선대의 친일 행위를 진솔하게 사죄한 바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한 적도 발표한 바도 없으며, 박정희를 보고서에 수록하지 못한 것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와 일본군 예비역 소위임을 입증하는 군인계 등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명 : 『항일음악 330곡집』 역사(시?)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은근슬쩍 수록 돼 있다.

반론 :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항일음악 330곡집>에는 편향적으로 이념을 찬양하거나, 이를 “은근슬쩍 수록”한 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와 만주 일대에서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념과 무관하게 독립을 위한 전면적인 무장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한국과 중국(국민당·공산당)의 연합 항일부대도 존재했다. 특히 중국·만주에서 활동한 한국의 항일무장세력은, 1937년 8월 중일전쟁 직후에 제2차 국공합작으로 성립한 인민혁명군제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합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독립군가 중의 하나가 1939년 가을 발표한 정율성 작곡의 「팔로군 군가」(꽁무 작사)와 「팔로군 행진곡」(꽁무 작사)이다. 정율성은 광주시에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을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이며,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12월 15일 북경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정율성을 언급하며 “중국과 한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한 동지”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명 의원의 ‘공산당 찬양’ 운운은 시대적 배경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사시적인 색깔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명 : 『항일음악 330곡집』 배포의 효과성과 타당성도 의문이다. 이 책을 서울시 내 도서관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일반 국민이 찾아 볼 일이 드문 책이라는 뜻이다. 75,000원이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민문연이 진심으로 이 노래들이 널리 불리길 원한다면 무료 PDF 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면 될일 아닌가? 아니라면 쉽게 팔리지도 않을 책을 교육청을 믿고 발간한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서울시교육청이 민문연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반론 : 『항일음악 330곡집』은 한말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애국가와 계몽가 항일가 독립군가를 최초로 집대성한 책이다. 2017년 광복절에 발간되어 초판 1쇄 1천부가 모두 매진되었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쇄 1,500부를 제작했다. 이 책은 친일·항일음악 연구의 권위자인 고 노동은 중앙대 교수의 필생의 노력이 담긴 유작으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보급을 권장해야 할 가치 있는 책인 것이다. ‘무료 서비스’ ‘재고떨이’ 운운도 무례하고 방자한 언설이 아닐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민간단체이다. 저자의 유족들에게 저작권료도 지급해야 한다. 무료봉사는 여명 본인이 먼저 실천하길 바란다.

여명 : 보다 근본적으로, 민문연이 어떤 단첸가. 요약하자면 ‘해방 후 민족 통일을 이룩했어야 했는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통일 일보 직전의 상황을 깨 부시고 등장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래서 김일성은 통일 한반도를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연합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미국의 힘으로 버틴 이승만 정부는 결국 독재를 하다가 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이 4.19가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북한과 화해의 시대를 여는 듯 했으나 다시 박정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이 굴리고 있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다.’ 라는 비틀어진 역사관을 전투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에게 역사란 노동계급이 승리해야 하는 ‘당위’이고 민족은 절대선(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반(反)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뿌리내리게 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과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있어 역사의 반역자 들이다. 민문연이 이런 세계관으로 <백년전쟁> 이라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라고는 인물 이름밖에 없는 동영상을 다큐멘터리랍시고 제작·배포해 청소년들의 역사관을 오염시킨 것이 대표적 전력이라면 전력이다.

반론 : 여명 의원의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모욕적인 규정은 한마디로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여명 의원이 요약한 바 통일전쟁이니 노동계급의 승리 등의 주장을 한 바가 전혀 없다. 여명 의원은 역사적 사실에 교묘하게 색깔론을 덧씌워 연구소가 김일성에 동조하는 친공·친북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백년전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자행된 공영방송의 이승만 박정희 미화 찬양에 맞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철저히 사실에 기초해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이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권력의 지원 아래 이승만의 유족이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하고 공안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였으나, 국민참여재판에서 연구소가 일방적으로 승소한 데서도 그 객관성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 참고 :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의원 배포 보도자료(2019.2.18. 여명 의원 홈페이지 게시)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 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 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항일음악330곡집』 배포

– 수록곡 중에는 중국 공산당 찬양 노래도 있어

–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치편향성이 심각한 단체로 세금 1억원을 들일 가치 있나 깊은 의문

 

(논평)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3.1운동과, 문재인 정부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각 지자체마다 기념사업이 한창이다. 좋은 일이다. 3.1운동은 지식인들이 포문을 열고 청년들이 앞장섰으며, 점차로 한인 모두의 운동으로 확대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거였다. 특히 전근대국가 조선으로의 회귀가 아닌 근대적 자주독립 국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올해 총 5억 5천여만 원을 투입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시행한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2017년 출판한 『항일음악 330곡집』을 1억 원을 들여 구매, 서울시 모든 학교에 배포한다는 사업이다. 책은 한 권당 75,000원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교육청은 지난 2016년에도 민주당 다수인 서울시의회 의결을 통해 이 단체의 『친일인명사전』 (300,000원)을 서울시 551개 학교에 사업비를 나눠주며 구입하게끔 한 바 있다. 이 『친일인명사전』은 민문연의 자의적 편집이 짙은 책으로, 친일 명단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테면 명확히 친일행위를 했어도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든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서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명단에 올려놨다든지 하는 심각한 정치편향성 때문이다. 그리고 민문연의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우리 아이들이 ‘박정희는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던데요?’ 하는 현실이다. 『항일음악 330곡집』 역사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은근슬쩍 수록 돼 있다.

『항일음악 330곡집』 배포의 효과성과 타당성도 의문이다. 이 책을 서울시 내 도서관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일반 국민이 찾아 볼 일이 드문 책이라는 뜻이다. 75,000원이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민문연이 진심으로 이 노래들이 널리 불리길 원한다면 무료 PDF 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면 될일 아닌가? 아니라면 쉽게 팔리지도 않을 책을 교육청을 믿고 발간한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서울시교육청이 민문연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민문연이 어떤 단첸가. 요약하자면 ‘해방 후 민족 통일을 이룩했어야 했는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통일 일보 직전의 상황을 깨 부시고 등장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래서 김일성은 통일 한반도를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연합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미국의 힘으로 버틴 이승만 정부는 결국 독재를 하다가 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이 4.19가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북한과 화해의 시대를 여는 듯 했으나 다시 박정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이 굴리고 있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다.’ 라는 비틀어진 역사관을 전투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에게 역사란 노동계급이 승리해야 하는 ‘당위’이고 민족은 절대선(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반(反)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뿌리내리게 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과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있어 역사의 반역자 들이다. 민문연이 이런 세계관으로 <백년전쟁> 이라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라고는 인물 이름밖에 없는 동영상을 다큐멘터리랍시고 제작·배포해 청소년들의 역사관을 오염시킨 것이 대표적 전력이라면 전력이다.

이런 단체에 세금 1억 원을 들여 3.1운동 기념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3.1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순국한 열사들에 대한 모욕이다. 전술했듯 3.1운동은 근대적 독립 국가를 향한 열망이었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착취하듯 10%의 귀족이 나머지 90%의 백성을 착취하는 무능하고 잔인한 전근대적 왕조국가로 돌아가고자 함이 아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의미 있는 해다. 단, 그 사업이 타당하고, 효과적이고, 국민정서에 합당한 경우다.

2019. 2. 18

서울시의회 교육위원 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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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諸牧師與僧

 

誰耶蘇孰佛(수야소숙불)

未覺兩非神(미각양비신)

不信終無礙(불신종무애)

能分別假眞(능분별가진)

 

모든 목사와 중에게 告함

 

누가 예수이며 누가 부처이던가

둘 다 神이 아닌 걸 아직 모르네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無礙하여

거짓과 참, 분별할 수 있게 됐네.

 

<時調로 改譯>

 

예수와 佛 그 뉘인가, 둘 다 神이 아닐세

나는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거침이 없어

참됨과 거짓일랑은 분별할 수 있게 됐네.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不信: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 *無礙: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 *分別: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해 가름.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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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SNS 해시태그 운동을 펼쳐 큰 호응을 얻은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제7회 이돈명인권상을 받았다. (이미지 출처 = 초등성평등연구회 페이스북)

초등학교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 모임이 이돈명인권상을 받는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초등학교 교사 13명이 모인 ‘초등성평등연구회’를 제7회 이돈명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월 4일 밝혔다.

이에 대해 초등성평등연구회 서한솔 회원은 “2017년은 이룬 것이 없는 굉장히 고생스러웠던 해였는데, 이돈명인권상 수상은 유일하게 들려온 좋은 소식”이라면서 “여성 인권, 모든 인간의 삶에 관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교육의 역할로 조금 더 나아지게 노력하겠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창립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SNS에서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으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렸다고 소개했다.

또한 천주교인권위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활발한 활동, 자체 연구 제작한 교안의 완성도와 수업 활용도,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 등을 종합해 볼 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실질적 성평등 과제를 초등학교까지 넓혀 사회적 확산효과가 크다”고 시상 이유를 설명했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교과서의 성불평등을 분석하고 재구성하기, 학생들이 접하는 미디어를 젠더(성, Gender)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보기 등을 수업에 적용해 왔고,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성편견 인식과 생리에 관한 수업, 독서교육을 통한 양성평등 수업 등 다양한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

이돈명 변호사(1922-2011)는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사건 변호를 맡는 등 민주화와 천주교 사회운동에 기여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이 변호사를 추모하고 인권의 가치에 대한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2011년 인권상을 만들었다. 2017년 이돈명인권상은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받았다.

시상식은 1월 10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gt;

<2018-01-05> 가톨릭뉴스 

☞기사원문: ‘초등성평등연구회’에 이돈명인권상 

금, 2018/01/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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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0/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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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 우정사업본부 이형철 위원장

04인터뷰어 : 방학진 기획실장 / 정리 : 조한성 선임연구원

지난 7월 12일 우정사업본부는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우표발행심의위원회 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년 기념우표의 발행 계획을 철회했다.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되었던 대표적인 역사적폐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이번 기념우표 발행 철회에는 1년여 간 발행 철회를 끈질기게 요구해온 우정사업본부 소속 공무원노동조합의 가열찬 투쟁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이
에 적극 동참한 바 있다.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철회를 이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 우정사업본부 이형철 위원장을 만났다.

문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 우정사업본부 노조는 어떤 노조인지 소개해 주세요.
답 : 사실 우정사업본부에 노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집배원과 우체국 창구에서 근무하는 분들로 구성된 전국우정노조가 있는데 이분들은 2만 7천여 명 되구요. 저희는 2선에서 행정 관리를 지원하는 행정기술직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입니다. 정 조합원이 5천여 명 되구요, 후원회원까지 포함하면 7천여 명이 됩니다.

문 : 어떻게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년 기념우표 발행 철회 운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답 :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 문제는 작년 9월 국정감사에서 처음 불거졌습니다. 기념우표 발행에 대한 심의는 작년 5월에 있었는데, 심의 사실을 꽁꽁 숨겨놓고 있다가 국정감사에서 심의 사실이랑 발행 계획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된 거죠. 신경민 의원 등이 문제 제기를 하자 우정사업본부는 절차대로 합법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변명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원래 정치적 학술적 종교적 논쟁이 있는 경우에는 우표 발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우표발행심의원회의 회의록을 보니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았고, 사실상 논의자체도 제대로 한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9월 29일 우리 노조는 우정사업본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노조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거쳐서 기념우표 발행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리의 문제제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본부장 등 관리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당시는 박근혜정부가 아직 살아있는 권력이었고 대통령의 아버지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과거에 친일을 했어도 해방 후 조국 근대화에 큰 공로가 있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기까지 하더군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론에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과 최명길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을 통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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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기념우표 발행 철회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였겠군요?

답 : 네. 올해 3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난 후 우리 노조는 4월 3일 다시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념우표 발행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재차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 본부장과 임원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상급단체인 국가공무원노조에 기념우표 발행 문제를 과잉 의전 문제와 함께 우정사업본부 내 적폐사례로 보고하고 공동 투쟁을 요청했습니다. 내부 문제를 외부로 확대시키는 것이었으니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6월 12일 기념우표 발행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우표발행을 책임지는 우편사업단장과 면담하여 발행 취소를 하지 않으면 반대투쟁에 나설 것이고 발행을 강행할시 우표발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6월 13일부터 7월 12일까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고, 국가공무원노조에서는 6월 29일부터 정부세종청사 우정사업본부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6월 22일에는 광화문1번가 국민인수위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규탄 집회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언론사들과 여러 번 인터뷰도 했는데, CBS 권민철 기자가 자세히 다뤄주면서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6월 29일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당시 심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심의위원들의 문제제기로 재심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7월 12일 재심의가 이루어졌는데 장소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피케팅을 했는데 민족문제연구소도 함께 해주셨죠. 원래는 광화문우체국에서 하기로 했었는데 1시간 전에 서울중앙우체국으로 바꿨다고 해요. 우리가 광화문우체국에 모여 있으니 회의 장소를 바꾼 거 같아요. 결국 참석한 심의위원 12명 중에 발행철회 8명, 발행찬성 3명, 기권 1명으로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되었습니다.
투쟁에는 승리했지만 노조 입장에서는 잃은 것도 많았습니다. 우정사업본부장이 8월 16일 퇴임하면서 노사간 이미 합의했던 12개 사항에 대한 사인을 해주지 않고 갔거든요. 적지 않은 희생을 통해 얻은 소중한 승리인 만큼, 아무쪼록 우리의 투쟁이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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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2009년 9월에 민족문제연구소에 가입해주셨는데 어떤 계기로 가입하셨나요?

답 : 당시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사회적 이슈이기도 했구요. 처음 민족문제연구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정래의 <한강>에서 임종국 선생님의 이름을 발견하면서였어요. 얼마나 대단한 분이길래 소설에 실명으로 등장할까, 궁금한 마음에 임종국 선생님이 쓴 『친일문학론』도 구해 읽고, 인터넷도 뒤져봤어요. 그런데 그분이 친일연구를 하다가 자기 아버지의 친일 사실을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묻자, 친일연구서를 쓴다면서 나를 빼면 그 책은 죽은 책이 된다고 하셨다고 해요. 이런 분을 기리는 단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문 : 원래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답 : 학창시절엔 그다지 역사에 관심은 없었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박물관 같은 데를 자주 갔어요. 박물관에 가서 책도 사주고 그러다 보니 아들이 전북대 사학과에 들어가더라구요. (웃음) 원래 저희 아버지가 역사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을 보면 좀 그렇더라구요.

문 : 요즘 시대 화두가 적폐청산인데 앞으로 우정사업본부 노조의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요?

답 : 제가 지난번에 민족문제연구소 여름수련회에 참가하면서 아산 현충사 표준영정 문제에 대해 처음 알게 됐어요. 이런 문제도 공무원들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데요. 문화재청 출신인 국가공무원노조 안정섭 위원장과 얘기를 나눠보니 표준영정 문제도 담당이 문화체육부와 문화재청으로 나눠져 있어서 사정이 복잡하더라구요. 그래도 해당 부처 일이니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얼마 전에 안정섭 위원장이 저와 함께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8월 15일 국가공무원노조에서 친일청산과 표준영정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문 : 노조측에서 친일청산운동에 적극 나서 주시니 저희로선 큰 힘이 되네요.

답 : 사실 지금까지 노동조합운동을 하면서 노조가 사회적 이슈에 적극 동참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흔히 노조들이 처우개선이나 연금문제 같이 자기 문제에만 매몰될 때가 많은데요. 그럴 경우 국민들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통하지가 않거든요. 저희가 작년부터 계속 얘기해온 것이 우리 노동조합도 뭔가 사회적인 이슈에 참여하고 국민들이 호응할 수 있는 일에 함께 나서야 우리들이 우리의 문제를 풀어갈 때 국민들에게 부탁도 할 수 있는 거라는 거예요. 이번 박정희 기념 우표 발행 취소 운동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 우리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국회의원실, 언론과 힘을 합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문 : 국가공무원노조는 26개 부‧처‧청의 노조가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연구소가 적폐청산, 친일파 청산 문제를 다룰 때 대개 첫 번째 부딪치는 곳이 공무원조직인데,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연구소도 국가공무원노조와 연대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답 : 네, 표준영정 문제가 두 번째 연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교부도 우리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지부니까 야스쿠니 문제도 다룰 수 있을 거구요. 앞으로 우리 공무원노조도 민족문제연구소와 연대해 친일청산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월, 2017/09/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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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비망록 30

<매일신보> 1937년 6월 22일자의 지면에는 임사일(林士一)이라는 사람이 기고한 연재물 「창의문 밖의 기억」 첫 회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기사는 그 다음달 7월 2일에 이르기까지 6회에 걸쳐 분할 연재되었는데, 창의문 밖을 벗어나 부암동 중턱의 무계동천과 윤웅렬 별장에서 시작하여 석파정을 거치고 골짜기 아래의 부침바위, 세검정, 연융대, 홍지문, 보도각 백불(白佛) 일대를 죽 탐방하는 행로가 그려져 있다.
이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듯 아닌 듯 이 일대의 옛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이 연재물에는 여기저기 채석장에 관한 언급이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 1937년 6월 27일자에 수록된 ‘4회’ 연재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묘사되어 있다.

실상 인왕산 주변을 살펴보면 예전에 채석장으로 사용한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홍제동 쪽에 자리한 문화촌현대아파트 104동의 후면에도 바로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쌈지마당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남은 작은 공터가 보이고, 그 동편에 절개지 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광경에서 이곳이 한때 채석장이던 공간임을 실감하게 된다.

 

20서울 홍제동 문화촌현대아파트 104동의 후면에 자리한 쌈지마당놀이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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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홍제동 채석장의 한쪽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입상의 모습

가만히 살펴보니 한쪽 바위면에는 가히 이곳의 명물이라고 할 만한 ‘마애관음보살입상’ 한 구가 새겨진 모습도 눈에 띈다. 기껏해야 반세기 남짓 그 안쪽 시기에 만들어졌을 이 보살상이 정확하게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조성된 것인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듣기로는 1972년 이후 1994년까지 문화촌현대아파트 101동 자리에 사현사(沙峴寺)라는 사찰이 옮겨와 있던 기간에 이 절에 다니는 독실한 신자가 이를 조성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곳 홍제동 채석장은 어떤 내력을 지닌 곳이었을까? 이 장소에 관해서는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의 부록으로 간행되던 <통보(通報)> 제118호(1942년 6월 18일자)에 탐방기 하나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현지보고(2) 착암공양성소」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 글을 쓴 목적에 대해 “본란은 고도국방건설을 목표로 조선 내에 약동하는 각종 시설을 있는 그대로 평이 간명하게 소개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홍제정(弘濟町)의 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려, 오른쪽으로 꺾어 야채밭을 반천(半粁, 500미터) 남짓 나아가면 눈앞에 황색 빛을 띤 밝은 건물이 나타난다. 경성부 홍제정 산(山) 1번지, 이런 복잡한 지번인 ‘조선총독부 착암공양성소(鑿岩工養成所)’. 산금반도(産金半島), 지하자원 적극 개발의 요청에 응하여 소화 13년(1938년) 8월 1일에 개설된 광산전사(鑛山戰士)의 연성도장(鍊成道場)이다.
4월, 8월, 12월, 1년을 3기로 나눠 1기에 약 4개월, 이미 530여 명의 졸업자를 배출한 이 양성소에는 지금 제12기생, 이번 4월 입소한 50여 명의 젊은 산남(山男, 산사나이)들이 착암부(鑿岩夫)로서 홀로서는 어봉공(御奉公)의 날을 마음에 그려가면서, 인왕산 뒤편 암벽에 묵묵히 수행의 투혼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중략)
매일 아침 6시 기상, 7시 아침밥, 궁성요배,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 라디오체조를 행하고 발랄하게 현장으로 향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소장인 키노(木野) 본부(本府) 산금과장(産金課長)의 수양훈화가 행해진다. 1일 8시간의 실습을 마치고 숙사로 돌아오면 즐거운 저녁밥이다. 그리고 밤은 녹초가 되어 피곤해진 몸으로, 내일의, 또 한 번 큰 미래의 설계를 그리면서 유쾌한 잠자리로 빠져들어 간다. 그리하여 4개월, 배우고 익힌 이 팔뚝에 착암기를 힘차게 쥐고, 지하자원개발의 기운찬 광산전사로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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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홍제정에 착암공양성소가 개설될 예정임을 알리는 <매일신보> 1938년 5월 28일자 보도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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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보> 제118호(1942.6.15)에 수록된 착암공양성소 실습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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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8년 11월 16일자에 수록된 착암공양성소 입소허가자 명단을 살펴보면, 전체 50명 가운데 일본인은 9명에 불과하고 절대다수는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홍제동 산 1번지’는 실상 인왕산의 서쪽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번이다. 이 가운데 지금의 홍제동 채석장 터 일대에 들어선 것이 ‘착암공양성소’였던 것이다. 공기착암기와 전기착암기를 다루는 숙련공을 배출하는 실습교육장인 이곳은 일제가 1937년에 추진한 이른바 ‘산금(産金) 5개년 계획’과 관련하여 만들어졌다.
이 당시 중일전쟁의 발발로 전시체제가 본격화하면서 광물자원의 확보가 더욱 긴요한 상황이 되었고, 그 가운데 특히 금(金)은 결제수단으로서 전통적인 위상과 더불어 장차 ‘동아공영권(東亞共榮圈)’ 내에서 기준화폐로 사용될 엔화(圓貨)의 통화 신용유지를 위해서라도 증산의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금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안을 집중 강구하여 1936년 기준 연간 20톤 규모이던 것을 5년 사이에 연간 75톤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국책(國策)으로 삼게 되었다.
1938년 5월 12일에 공포된 제령 제20호 조선중요광물증산령(朝鮮重要鑛物增産令)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금을 비롯한 주요 전시 광물자원의 생산은 대개 함량미달로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놀려두고 있던 저품위 광산을 개발하거나 매광(賣鑛)을 촉진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이를 위해 조선총독이 중요광물을 목적으로 하는 광업권자에 대해 사업의 착수 또는 사업의 계속을 명령할 수 있다거나 중요광물의 증산을 꾀하기 위해 산금장려비와 시설보조비를 지급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이 법령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총독부 식산국(殖産局) 내에는 종래의 광산과에서 산금과(産金課)를 분리 신설하여 산금정책을 전담하게 하였고, 이때 착암공양성소도 함께 만들어 산금과장에게 이곳의 운영을 맡겼다. 착암공양성소의 설치 이유는 무엇보다도 실무적으로 원활한 금 생산을 위해서는 광산도로의 개설, 송전시설의 보강, 착암공과 광부의 알선이 뒷받침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매일신보> 1938년 7월 31일자에 수록된 개소식 관련 보도내용을 보면, 착암공양성소가 홍제동 일대에 설정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일찍이 총독부에서 그 개소를 준비중이던 착암공양성소는 키노(木野) 산금과장을 소장으로 하여 부내 홍제정 발파연구소(發破硏究所)의 일부를 빌려서 8월 1일부터 개소하기로 되었다. 강습생은 응모자 250명 중에서 50명이 전형 결정되어 이미 양성소 전용의 압기기공장(壓氣機工場) 75마력도 완성하여 이것을 요하는 착암기는 부내 각 판매점에서 다투어가며 기부신청이 있어 벌써 십 수 대가 준비되어 있다. 여길 보면 착암공양성소가 들어선 곳은 원래 발파연구소가 있던 구역이라고 되어 있다. 광산개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발파연구소는 1936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화약의 제조 및 취급과 관계된 이유로 애당초 총독부 식산국이 아닌 ‘경무국(警務局)’의 소관 기관으로 설정되었다.

25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홍제내리가 발파연구소 후보지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매일신보> 1936년 7월 3일자 보도내용

그후 산금장려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이에 발맞춰 1940년 7월에 부설기관인 ‘발파기술원양성소(發破技術員養成所)’가 정식으로 설립되기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광산과 기타 공사장에서 종사할 발파기술원들을 체계적으로 배출하기 위해 20명 남짓 선발된 교육생을 대상으로 6개월 간에 걸쳐 화약 종류의 취급과 발파법에 관한 교육이 이뤄졌다.
이처럼 두 기관이 하나의 공간에 들어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폭약을 터뜨리고 또한 착암기로 쉴 새 없이 뚫어대니 아무리 바위산인들 어찌 온전할 리가 있었겠는가.
지금에야 어찌 어찌 세월이 흘러 그 앞에 들어선 아파트 숲으로 인해 조금은 시야에서 가려진 형국이지만,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이곳의 속살을 대면하게 되면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생채기들이 이토록 많았던가 하는 점을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목, 2017/11/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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