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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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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익명 (미확인) | 금, 2019/02/22- 10:17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허위사실 유포한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 의원에 법적 대응 착수

 

민족문제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항일음악330곡집』을 배포한 서울시교육청을 비난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연구소의 명예를 손상시킨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의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여명 서울시의원은 지난 18일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 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항일음악330곡집』에 대해 비방 일변도로 문제를 제기해 극우 성향의 일부 인터넷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여명 의원의 주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억설이긴 하나, 이를 방치할 경우 ‘아니면 말고’ 식의 사실 왜곡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보고 재발 방지라는 측면에서 엄중히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극우세력의 허위사실 유포와 음해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적극 대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강용석 정미홍 일베회원 방자경 등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 민형사소송에서 잇달아 승소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연구소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명예를 훼손한 여명 의원에 대해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연구소에 일체의 취재나 확인도 없이 여명 의원의 보도자료를 일방적으로 전재하다시피 보도한 극우 인터넷 언론들에 대해서도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는 물론 법적 조치까지 취할 예정이다.

 

다음은 여명 의원의 주장에 대한 연구소의 반론이다.

여명 : 『친일인명사전』은 민문연의 자의적 편집이 짙은 책으로, 친일 명단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테면 명확히 친일행위를 했어도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든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서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명단에 올려놨다든지 하는 심각한 정치편향성 때문이다.

반론 : 『친일인명사전』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여러 단계의 심의 검증을 거쳐 편찬되었으며, 수록 내용에 대해 일일이 전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의 아들이 제기한 배포금지 가처분신청 등 수십 차례의 소송에서 재판부가 일관되게 『친일인명사전』의 공정성을 인정한 데서도 입증된다.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는 지적은 완전한 창작이며 허구이다. 예컨대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선대도 사전에 수록되었으며, 홍 의원은 공개적으로 선대의 친일 행위를 진솔하게 사죄한 바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한 적도 발표한 바도 없으며, 박정희를 보고서에 수록하지 못한 것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 혈서와 일본군 예비역 소위임을 입증하는 군인계 등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명 : 『항일음악 330곡집』 역사(시?)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은근슬쩍 수록 돼 있다.

반론 :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항일음악 330곡집>에는 편향적으로 이념을 찬양하거나, 이를 “은근슬쩍 수록”한 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와 만주 일대에서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념과 무관하게 독립을 위한 전면적인 무장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한국과 중국(국민당·공산당)의 연합 항일부대도 존재했다. 특히 중국·만주에서 활동한 한국의 항일무장세력은, 1937년 8월 중일전쟁 직후에 제2차 국공합작으로 성립한 인민혁명군제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합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독립군가 중의 하나가 1939년 가을 발표한 정율성 작곡의 「팔로군 군가」(꽁무 작사)와 「팔로군 행진곡」(꽁무 작사)이다. 정율성은 광주시에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을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이며,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12월 15일 북경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정율성을 언급하며 “중국과 한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한 동지”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명 의원의 ‘공산당 찬양’ 운운은 시대적 배경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사시적인 색깔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명 : 『항일음악 330곡집』 배포의 효과성과 타당성도 의문이다. 이 책을 서울시 내 도서관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일반 국민이 찾아 볼 일이 드문 책이라는 뜻이다. 75,000원이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민문연이 진심으로 이 노래들이 널리 불리길 원한다면 무료 PDF 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면 될일 아닌가? 아니라면 쉽게 팔리지도 않을 책을 교육청을 믿고 발간한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서울시교육청이 민문연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반론 : 『항일음악 330곡집』은 한말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애국가와 계몽가 항일가 독립군가를 최초로 집대성한 책이다. 2017년 광복절에 발간되어 초판 1쇄 1천부가 모두 매진되었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쇄 1,500부를 제작했다. 이 책은 친일·항일음악 연구의 권위자인 고 노동은 중앙대 교수의 필생의 노력이 담긴 유작으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보급을 권장해야 할 가치 있는 책인 것이다. ‘무료 서비스’ ‘재고떨이’ 운운도 무례하고 방자한 언설이 아닐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민간단체이다. 저자의 유족들에게 저작권료도 지급해야 한다. 무료봉사는 여명 본인이 먼저 실천하길 바란다.

여명 : 보다 근본적으로, 민문연이 어떤 단첸가. 요약하자면 ‘해방 후 민족 통일을 이룩했어야 했는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통일 일보 직전의 상황을 깨 부시고 등장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래서 김일성은 통일 한반도를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연합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미국의 힘으로 버틴 이승만 정부는 결국 독재를 하다가 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이 4.19가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북한과 화해의 시대를 여는 듯 했으나 다시 박정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이 굴리고 있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다.’ 라는 비틀어진 역사관을 전투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에게 역사란 노동계급이 승리해야 하는 ‘당위’이고 민족은 절대선(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반(反)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뿌리내리게 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과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있어 역사의 반역자 들이다. 민문연이 이런 세계관으로 <백년전쟁> 이라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라고는 인물 이름밖에 없는 동영상을 다큐멘터리랍시고 제작·배포해 청소년들의 역사관을 오염시킨 것이 대표적 전력이라면 전력이다.

반론 : 여명 의원의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모욕적인 규정은 한마디로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여명 의원이 요약한 바 통일전쟁이니 노동계급의 승리 등의 주장을 한 바가 전혀 없다. 여명 의원은 역사적 사실에 교묘하게 색깔론을 덧씌워 연구소가 김일성에 동조하는 친공·친북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백년전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자행된 공영방송의 이승만 박정희 미화 찬양에 맞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철저히 사실에 기초해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이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권력의 지원 아래 이승만의 유족이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하고 공안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였으나, 국민참여재판에서 연구소가 일방적으로 승소한 데서도 그 객관성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 참고 :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의원 배포 보도자료(2019.2.18. 여명 의원 홈페이지 게시)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 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 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항일음악330곡집』 배포

– 수록곡 중에는 중국 공산당 찬양 노래도 있어

–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치편향성이 심각한 단체로 세금 1억원을 들일 가치 있나 깊은 의문

 

(논평)

서울시교육청은 운동권역사단체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3.1운동과, 문재인 정부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각 지자체마다 기념사업이 한창이다. 좋은 일이다. 3.1운동은 지식인들이 포문을 열고 청년들이 앞장섰으며, 점차로 한인 모두의 운동으로 확대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거였다. 특히 전근대국가 조선으로의 회귀가 아닌 근대적 자주독립 국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올해 총 5억 5천여만 원을 투입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시행한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2017년 출판한 『항일음악 330곡집』을 1억 원을 들여 구매, 서울시 모든 학교에 배포한다는 사업이다. 책은 한 권당 75,000원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교육청은 지난 2016년에도 민주당 다수인 서울시의회 의결을 통해 이 단체의 『친일인명사전』 (300,000원)을 서울시 551개 학교에 사업비를 나눠주며 구입하게끔 한 바 있다. 이 『친일인명사전』은 민문연의 자의적 편집이 짙은 책으로, 친일 명단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테면 명확히 친일행위를 했어도 민주당 소속이라면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든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서 ‘민문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의 친일 행각을 밝힐 수 없다.’ 고 판단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명단에 올려놨다든지 하는 심각한 정치편향성 때문이다. 그리고 민문연의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우리 아이들이 ‘박정희는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던데요?’ 하는 현실이다. 『항일음악 330곡집』 역사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가 은근슬쩍 수록 돼 있다.

『항일음악 330곡집』 배포의 효과성과 타당성도 의문이다. 이 책을 서울시 내 도서관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일반 국민이 찾아 볼 일이 드문 책이라는 뜻이다. 75,000원이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민문연이 진심으로 이 노래들이 널리 불리길 원한다면 무료 PDF 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면 될일 아닌가? 아니라면 쉽게 팔리지도 않을 책을 교육청을 믿고 발간한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서울시교육청이 민문연의 재고떨이 기구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민문연이 어떤 단첸가. 요약하자면 ‘해방 후 민족 통일을 이룩했어야 했는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통일 일보 직전의 상황을 깨 부시고 등장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래서 김일성은 통일 한반도를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낙동강전선에서 연합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미국의 힘으로 버틴 이승만 정부는 결국 독재를 하다가 학생들에 의해 쫓겨난다. 이후 이 4.19가 통일운동으로 이어져 북한과 화해의 시대를 여는 듯 했으나 다시 박정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이 굴리고 있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다.’ 라는 비틀어진 역사관을 전투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에게 역사란 노동계급이 승리해야 하는 ‘당위’이고 민족은 절대선(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반(反)공산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뿌리내리게 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과 건국 세대, 산업화 세대는 민중사학자들에게 있어 역사의 반역자 들이다. 민문연이 이런 세계관으로 <백년전쟁> 이라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라고는 인물 이름밖에 없는 동영상을 다큐멘터리랍시고 제작·배포해 청소년들의 역사관을 오염시킨 것이 대표적 전력이라면 전력이다.

이런 단체에 세금 1억 원을 들여 3.1운동 기념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3.1운동으로 일제에 의해 순국한 열사들에 대한 모욕이다. 전술했듯 3.1운동은 근대적 독립 국가를 향한 열망이었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착취하듯 10%의 귀족이 나머지 90%의 백성을 착취하는 무능하고 잔인한 전근대적 왕조국가로 돌아가고자 함이 아니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의미 있는 해다. 단, 그 사업이 타당하고, 효과적이고, 국민정서에 합당한 경우다.

2019. 2. 18

서울시의회 교육위원 여 명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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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4/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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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8/0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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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지도위원, 소장자료 75점 기증

10월 16일, 강만길 지도위원(고려대 명예교수)이 북한 방문증명서, 리영희·이우성 선생 등과 주고받은 서신, 2004년 평양 남북학술토론회 관련 자료 등 소장자료 75점을 기증했다. 특히 이번 기증자료에는 강만길 지도위원이 1984년 ‘통일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사업’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을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보고서, 탄원서, 공동성명 등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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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59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9월 19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59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각종 보험증서와 통장, 해방 직후 학교 관련 문서 등이 주를 이룬다. 또한 ????새농민????(1970),????국민독본????(1964),????지방행정????(1964)등박정희 정권기에발행된도서류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목, 2017/11/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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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12

세계는 지금 역사전쟁 중

‘사회는 없다.’ 1979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가 내건 구호다. ‘왜 당신 아버지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말로 바꾸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를 지탱하던 이념과 사회 운영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이 악명 높은 구호는 이후 급물살을 타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지금은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공기업의 민영화, 구조조정, 규제 철폐 또는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자유화, 복지 축소 등의 소란스런 주장들이 바로 이 구호에 담긴 세목들이다.

1950~6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대는 1970년대가 되자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경기는 나쁜데 물가는 상승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고 자본의 이윤율 저하는 심화되었다. 1970년대가 지나면서 이런 경제침체는 ‘자본의 거대한 재구성’과 ‘노동의 국제 분업(화)’를 수반한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의 세계적 위기’가 도래했다. 자본은 이제 그동안 노동계급에게 양보했던 이윤을 회수해 오는 전략을 세우고 과격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실패’라는 그럴듯한 이론을 앞세워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경제를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대두는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이라는 정글 속으로 인간들을 몰아넣는 구호와 다름없었다. 위로부터의 계급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처는 또 하나의 전쟁을 시작했다. 1979년 대처는 사회주의자들을 향해 ‘영국사를 구제받지 못할 운명·억압·실패의 시기로 서술하여 우리의 국가 자존심을 좀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모든 세대가 우리 국가의 역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평가절하 하는 교육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학자와 저술가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기를 가장 암울한 시기로 묘사했다.”고 강조했다. 영국판 역사전쟁을 알리는 신호였다.

한국식 표현대로 하자면, 영국의 역사가들은 좌파사관에 물들어 있으며, 역사교과서는 자학사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하고 자랑스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 역사를 학대하는 교과서는 폐기되어야 한다며 역사교과서를 공격했다.

기존 역사교육을 ‘자학사관’으로 몰아붙인 이 주장은 영국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역시 로널드 레이건이 정권을 잡자 위로부터의 계급전쟁과 역사전쟁이 동시에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지배계급의 역사전쟁이 ‘역사수정주의’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진행되었다. 역사수정주의의 핵심은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1985년의 ‘비트부르크 사건’은 독일의 과거, 즉 나치에 대한 기억을 변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85년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 방문 때 일반 독일군인 뿐만 아니라 무장친위대도 묻혀 있는 비트부르크 묘지를 방문해 헌화했다. 이 방문을 두고 미국과 독일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레이건은 결국 유대인 강제수용소에도 헌화하는 형식으로 논란을 무마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거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젊은이들 또한 나치의 희생자입니다. …… 그들도 강제수용소의 희생자와 똑같은 희생자입니다.” 무장친위대를 일반 독일병사와 같이 취급한 것을 넘어 희생자로 다루었다. 가해의 상대화를 넘어 희생자로 둔갑시킨 이 발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수정주의 견해나 보수세력의 역사공격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미 보수세력의 역사교과서 공격과 역사전쟁은 10년 후 대양을 건너 일본에서도 같은 양상을 띠고 벌어졌다. 세계화라는 물결과 더불어 역사전쟁도 세계화의 흐름을 탄 것일까. 이른바 ‘자유주의사관론자’들이라 불리는 일본판 뉴라이트는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으면서 역사전쟁을 집요하게 벌였다.

기존 역사교과서를 자학사관으로 공격 → 권력을 이용한 정책 개악(정책 변경) → 극우 교과서 제작
→ 교사의 교재 채택권 박탈과 권력을 동원하여 학생들에게 강요(채택 과정)

교과서 공격과 정책 변경, 극우 교과서 제작과 배포, 어디서 많이 본 경로와 방식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 뉴라이트와 보수세력이 벌였던 역사전쟁, 그것과 판박이다. 십 수 년간 일본의 뉴라이트가 밟았던 과정을 우리의 보수세력이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대표적인 공격 대상은 일본군‘위안부’와 난징대학살 기술이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와 마찬가지로 일본 뉴라이트는 처음에는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했다. 김학순 할머니가 역사의 증인으로 ‘커밍아웃’하자 이제는 매춘이라 몰아붙였으며, 교육에 부적절함을 내세워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의 요구는 성공했고, 역사교과서에 대한 권력의 간섭은 더 커졌다.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만큼 교과서 서술도 후퇴했다. 일본의 한 비평가는 이들의 역사관을 ‘구린내 나는 것에 뚜껑을 덮고 좋은 점만을 가르치는 신황국사관’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역사전쟁과 파국 그리고 식민지역사박물관

이번엔 한국 차례이다. 2003년 집권한 노무현정부가 ‘포괄적인 과거청산’ 정책을 추진하자 보수세력과 뉴라이트는 반격에 나섰다. 그들의 반격은 정치권력에 이어 사회문화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공식 기억마저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작가 이문열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자식들’과 경제사학자 이영훈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이라는 비난을 시작으로 보수세력은 연일 ‘자학사관’, ‘종북좌파사관’이라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공격은 크게 두 영역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과거사 위원회를 때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근현대 역사교과서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과거사 위원회들은 세금을 낭비한다느니 과거를 들춰내서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등의 이데올로기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공세를 부담스러워한 위원회들은 가능하면 조용하게 진상규명에 전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용한 진상규명’은 위원회가 사회와 소통하며 과거청산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소극적으로 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편 교과서 때리기는 주로 검정 교과서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금성사 교과서에 집중되었다. 공격의 이유는 금성사 교과서가 종북좌파사관에 빠져 있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학대하고 있는 이른바 ‘자학사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권력을 이용한 보수세력의 역사공격이 노골화되었다. 한시적인 국가기구였던 위원회들은 정해진 시한이 끝나자마자 연장 논의도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기간이 남았던 위원회도 위원들을 보수주의자들로 바꿔 위원회 설립 취지를 훼손시키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일을 벌였다. 위원회가 권고한 과거청산 후속조치들은 거의 대부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국가 권력에 의한 과거청산의 중단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역사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하고, 집필지침을 개악시켰다. 여기에 B급 뉴라이트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보급하려고 했다. 시민사회는 강력하게 반대했고, 교학사 교과서는 시장에서 참패했다. 교과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인데다 이승만, 박정희 등 특정인물을 미화하기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권력의 뒷배를 받고서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뒤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역사정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마음대로’였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반대하고, 교육부장관,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조차 검정제로도 충분히 역사교과서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국정제를 강행할 필요도 실익도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다수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국정화 추진은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바라는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문제 이전에 그동안 한국사회가 성취한 민주적 가치나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폭정이었다. 아버지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복권시키기 위해서,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통령이라는 공권력을 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한 것이다. 반민주적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박근혜 개인의 아집과 독선이 빚어낸 일탈이자 병적 행위이다. 여기에 한국판 역사전쟁의 특징이 있다. 0828-13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전쟁은 과거 자신들이 누렸던 권력과 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함으로써 현재의 지배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현실의 모순에 눈을 감게 하여 불평등과 부정의가 자연스런 현상이며 현재가 최상의 상태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려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도 담겨 있다. 이 점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근혜의 고집은 거기에서 훨씬 더 나갔다. 교과서 국정화는 그렇게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개인의 독선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은 종료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전쟁은 파국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착시다. 국정화가 폐기되었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그동안 집필지침의 강제와 수정 요구의 확대로 교과서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침해받았고 내용은 더 나빠졌다. 이걸 다시 정상화시키고 민주적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보수세력이 벌인 역사전쟁터가 또 한군데 있다. 바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자학사관’에 대응하는 ‘자긍사관’을 심어주고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홍보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건립되었다. 보수 정부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만든 목적이나 과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월러스가 이야기한 내용을 떠올린다.

박물관들은 자본가의 역사적 사명을 정당화하고, 자본가의 권위에 일종의 자연주의불가피성을 보태주는 상투적인 역사 파악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마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물관들이 역사를 은폐하는 방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원과 발전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역사적 기록에서 착취·인종차별·성차별 그리고 계급투쟁을 지워버림으로써, 광범위한 기반을 갖고 있는 대항적 전통과 민중문화를 은폐함으로써,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역사의 형성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박물관들은 관람객이 과거나 미래의 대안적 사회체제들을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도록 했다.”(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박물관의 본질을 명쾌하게 지적한 글이 또 있을까. 물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와 비판을 받아 애초의 박물관 전시 구성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위주의 역사, 발전 중심의 전시, 너무나 진부한 성공한 이야기들, 그리고 구색 갖추기에 동원된 약자들의 땀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피가 무덤덤하게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과연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규범과 가치를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온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지금의 역사교과서가 그렇듯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박제화된 과거의 기억 창고 이상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은 먼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운영과 구성부터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전시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야 비로소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들이 살아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원은 받지만 운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그나마 제 이름에 맞는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성숙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박물관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한, 역사교과서가 국가의 검정을 받는 한 국가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박물관과 교과서로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 사회가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것은 근본적인 한계이자 인간 조건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수자들의 목소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수많은 ‘난쟁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약자들의 연대와 불의에 저항한 시민들과 그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광장, 보수세력의 집요한 역사전쟁을 막아내고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보루, 여러분과 나의 이야기가 역사로 재현되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가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월, 2017/08/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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