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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현장이 고픈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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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현장이 고픈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의 이야기

익명 (미확인) | 목, 2019/02/21- 21:14

현장이 고픈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의 이야기

신안염전노예사건, 고양동 풍등화재사건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정규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출판소통팀은 안산 원곡법률사무소를 방문하였다.

서예가 이완 선생께서 손수 써주신 ‘안산 법률사무소’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생의 다른 작품이 걸려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개방형 사무실과 독특한 회의실이 눈에 띈다. 최정규 변호사가 특유의 밝은 웃음으로 출판소통팀을 맞이해주었다.

 

 

심재섭 출판소통팀장 (심) : 인터뷰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원곡 법률사무소엔 처음 와봤는데, 회의실이 특이하네요?

최정규 변호사 (최) : 회의실이라고 해서 만들어놨는데 회의할 일도 별로 없고 그냥 편하게 앉아서 영화도 보고 하자고 해서 꾸며놓은 거죠.

기타도… 기타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거죠… 연주는.. (웃음) 집에 애들 책이 생기다보니까,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제 책이 창고에 널브러져 있더라고요. 안 되겠다, 책을 사무실로 가져와야 겠다, 해서 모인 책들이죠. 법학책은 전혀 없죠. (웃음)

 

 

심 : 사무실은 세 분이서 같이 여신건가요?

처음에는 서치원 변호사님이랑 같이 열었어요. 안산역 건너편에 이주민들이 밀집한 원곡동에서요. 처음 1년은 둘이서 했고, 서치원 변호사님 연수원 동기분인 서창효 변호사님이 사무실에 놀러왔을 때 인연이 되어서 2년차엔 세 명이서 같이 운영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만으로 7년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셋이 동업하다가 작년에 고용변호사를 고용하자라고 이야기가 되어서 지금은 유승희 변호사님과 조영신 변호사님이 함께 일하게 되었어요.

 

심 : 안산에 연고가 있으셨던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법무관을 마치고 2006년도에 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되었는데 첫 발령지가 안산이었어요. 그때 마침 결혼도 하고, 집도 안산으로 구하면서 안산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주민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종교생활도, 이주민을 서포트하는 교회를 찾아보다가 원곡동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곳에서 한글도 가르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런 인연들이 있어서 안산은 제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어요. 그리고 3년 뒤에 서울중앙지부로 발령을 받았죠.

 

그러면서 나름대로 제가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계속 공단 변호사로 있을 것이냐, 나갈 것이냐 하는 거지요. 이주민 근로자들에게 밀접하게 법률지원을 해주면서 현장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법률구조공단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법교육문화센터를 만들어서 다문화가정을 초청하여 강의를 했어요. 제가 사내 강사로 위촉되어 그분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데, 제가 너무 현장의 이야기를 모르는 거예요. 현장의 문제는 이것인데, 공단에서 사건을 진행하며 알고 있는 정보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던거죠. ‘내가 공단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과 그분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 이 간격을 메울 수 있을까?’ 변호사로서 그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가정도 있는 입장이라 공단을 그만두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죠. 2~3년 고민을 하다가 2012년 초에 공단을 그만두고 나왔어요.

제가 파산센터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서치원 변호사님이 마침 연수원을 수료하고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당시에 이주민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원곡동에서 서치원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심 : 그럼 이주민 관련 업무는 공단에 들어가셨을 때부터 접하셨던 건가요?

최 : 그렇죠. 각종 임금사건, 산재사건들을 했어요. 법률구조공단에서 하는 일들은 결코 작은 일들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아주 부분적인 일들이었어요. 이주민 근로자들이 체불임금확인서 한 장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근로시간을 인정받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경찰서, 출입국 등에 가는 일도 밀착해서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런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 나왔는데, 실제로 기회는 무궁무진했어요. 여력이 안 돼서 다 지원하지 못하는 것뿐이더라고요.

 

심 : 그럼 연수원 시절이나 법무관 시절에는 지금 하시는 활동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없으셨던 건가요?

최 : 그렇죠.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있었는데 이주민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어요. 대학교 때 수화동아리를 했고 연수원에 다닐 때 시민단체에서 하는 ‘장애우대학’이라는 곳에서 야간 강의를 한 학기 동안 들었어요. 그 시민단체가 지금은 제가 소장으로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였어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에 비해서 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덜했죠. 만날 접점이 없으니…….

 

심 : 원곡 사무실 간판 옆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간판이 함께 있던데요?

최 : 네, 함께 걸려있죠. 처음 사무실 시작할 때는 장애인에 관한 생각은 못했어요. 2012년 당시에 제가 아는 후배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함께걸음’이라는 잡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후배에게 예전에 장애우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법률위원단에 들어와 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법률 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도에 ‘신안군 염전노예사건’이 터진 거예요. 목포까지 내려가서 법류지원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별로 없던 상황이라 저희에게까지 법률지원요청이 들어왔어요. 사무실을 개업한지 2~3년차 되던 해라 별로 안 바빴어요. (웃음)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할지 몰랐죠. 가해자들과 합의를 하려고 하는데, 피해자를 위해 조언해 줄 변호사가 없다는 거예요. 2014년에 시작했는데 그 법률지원 활동이 아직도 안 끝났어요.

 

심 : 아, 처음에는 합의로 끝내려고 하셨던 건가요?

최 : 네. 그런데 그렇게 끝낼 수가 없었어요. 그때 느꼈던 게 뭐냐면 법률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착수금, 성공보수도 없이 열심히 해서 결국 8천만 원을 합의금으로 받았는데, 1년 후에 피해자께서 노숙자로 다시 나타나신 거예요. 그렇게 받은 돈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서 잃으신 거예요. 그때 법률지원이 끝이 아니란 것을 느꼈죠. 마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경기지소의 소장 자리가 공석이었어요. 연구소에서 이쪽에 학대피해자들을 위한 센터를 3년 동안 센터를 운영하려고 하는데, 지역 연구소가 없어질 상황이니 소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저희 사무실 절반 쓰면 되죠’ 라고 하면서 또 아무 생각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웃음) 지금은 3년이 지났고 다른 사업을 또 맡게 되면서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2년 더 운영되게 되었죠.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살아 있는 지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염전노예피해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돕기 위해서 활동가분들이랑 임대차계약도 같이 하러다니고, 가구도 같이 사러 다니고 했어요. 그 전엔 차라리 염전에 있었던 시절이 그분들에겐 더 행복하진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실제로 염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염주와 피해자들 사이에 양가감정이 있었던 거죠. 가족들에게 버린 받은 분들을 염주들이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해준다는 거예요. 염전 밖의 삶이 염전에서의 삶보다 더 나아야 할 텐데, 우리 사회가 염전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면에서 그분들에게 결국 돈은 의미가 없더라고요. 정말 그분들을 밀착지원해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드려야 했어요, 그러한 영역으로 저희의 활동영역이 확대될 수 있었어요. 법률지원에 멈추지 말고 시민단체와 좀 더 협업을 해보자는 것이 지금 저희의 법률지원 모토가 되었어요.

 

심 : 이주노조 등 이주단체 지원 활동의 경우에도 우연히 시작하신 건가요?

최 : 네, 그것도 우연히 그렇게 되었어요. 이주노조 일을 주로 하시는 마문 감독님이 문화 활동도 같이 하고 계세요. 그 감독님을 예전부터 친분을 갖고 있었는데, 나중에 감독님께서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되셨더라고요. 작년에 ‘투투버스’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공식적으로 그때 처음 지원했어요. 작년 5월, 제주 바다 배 위에서 떠밀린 이주선원들이 있었어요. 그 피해자들을 대리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죠.

장애인 분야 지원만 하다 보니 이주민 분야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마침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생기면서 이주분야의 일들을 더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에서 열었던 강연의 초청 강연자분들과 명함을 주고받고 며칠 후에 그분들이 일하시는 단체에 찾아가서 법류지원을 해드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주민분야와 관련하여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기회가 있으면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게 제주도라도. (웃음) 앞서 말한 제주 이주선원들 피해조사를 받으려고 제주도에 네 번을 갔어요. 새벽 6시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면 공항에서 피해자분들을 렌트카로 모시고 서귀포에 있는 경찰서까지 가요. 통역이 필요하다 보니까 조사가 저녁 7시쯤에나 끝나요. 당일에 올라가야겠다는 일념 하에 조사가 끝나면 밤 9시 반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죠. 그런 미친 짓을 했죠. (웃음)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과하게 활동했죠.

 

 

심 : 어떤 계기가 있으신 건가요? 보통은 연차가 있으신 분들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신데…

최 : 제가 그 일에 맞는 것 같아요.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일하는 게 재미있고요. 이주민 분야나 장애인 분야의 경우에는 활동가분들과 주로 활동을 하는데, 그분들이랑 함께 활동하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활동가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상식적인 이야기예요. 법률가들이 봤을 땐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어요. 법률이 상식에 못 따라가면 해석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게 법률가이지, 법이 이렇고 판례가 이래서 안 된다고만 하는 게 우리의 도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법률적인 판단이 맞느냐’, ‘네가 하는 이야기는 활동가들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은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배우는 법들은 이미 기득권들의 논리가 반영된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판례를 먼저 찾아 볼 일이 아니라 이게 상식적인지 아닌지부터 먼저 판단하고 소장을 내고, 만약 상대편이 판례가 있다고 하면 그 판례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걸 밝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많이 활동하려고 하려고 해요. 그게 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은 참신한 생각을 많이 해요. 신안염전노예 사건 당시에 저희는 임금을 정해둔 것이 없으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청구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활동가들이 노동행위로 착취를 했으면 최저임금 이상을 줘야하고, 농촌에서는 사람구하기도 힘들고 농촌 노임이 도시의 노임보다 높은데 왜 최저임금을 줘야 하느냐는 거예요. 다른 사례를 아무리 찾아봐도 다 최저임금이 기준인거예요. 검사 공소장도 최저임금이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활동가들 이야기가 맞거든요. 노동행위로 착취를 했으면 그것으로 이득을 본 것이고, 노동의 가치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보기 위해서 피해자들을 이용한 건데, 적어도 평균임금은 줘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저희가 생각한 게 아니고 활동가분들이 생각한 거였죠.

처음엔 소멸시효 관련해서도 20년 동안 착취를 당했는데 소멸시효가 10년이에요. 그런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신의칙위반을 주장했는데 다 인정이 안 됐죠. 대법원 판례에서 신의칙 위반으로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제한되는 경우는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그래서 헌법소원을 했죠. 과거사 사건에 관한 국가배상 소멸시효가 헌법불합치가 나와서 이 논리를 적용하자고 했어요. 20년을 착취하고 임금은 10년분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당연한 상식의 논리로 접근했던 거였죠.

우리가 배웠던 알고 있던 법률 지식과 판례에 의심을 갖고 접근하다보니 재밌었어요. 그것이 제가 활동하는 에너지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랑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뭐라도 하나씩 더 건지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현장의 최전선에 있고, 피해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상식적이잖아요. 또 그분들의 이야기가 법으로 되어야 하고요.

전 활동가분들이 편하게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변호사란 어떤 자격 중 하나에 불과한데, 활동가가 훨씬 뛰어난 식견을 가질 수 있고 전 법률 안에서의 식견만 가질 수 있으니, 부단하게 그분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워요. (웃음) 우리나라 판례는 제한되어 있어서 연수원, 로스쿨 나오고 나면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활동가분들의 생각은 굉장히 진보적이라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그런 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심 : 그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시간이 되시나요?

최 : 저희가 시간이 항상 부족한데……. 일반사건도 하거든요. 직원은 있지만 사무장은 없고요.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직원도 없이 (최정규, 서치원, 서창효 변호사) 셋이서 다 했어요. 최저비용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2018년 전까지는 변호사 셋이서 전화 받는 것부터 다 했죠. 그렇게 만 6년이 넘어가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웃음) 작년에 사무보조 하시는 실무관님과 고용변호사 두 분을 채용했죠. 전자소송이 생겨서 사무보조해 줄 사람이 많이 필요 없기도 했고, 구조공단에 있을 때도 변호사 두 명당 보조자 한 명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업무를 처리하는 게 익숙했어요. 나머지 두 분은 변호사 시작하실 때부터 직접 다하셨죠. 그 분들은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하신 거고요. (웃음) 처음부터 직접 다 하면서 바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심 : 그럼 저녁식사는 집에서 못 하시는 건가요?

최 : 아뇨, 전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 반대예요. 전 밤 9시에 자서 새벽 3~4시에 일어나요. 아이들이 많이 어려서 같이 자거든요. 오늘도 이 인터뷰 끝나면 바로 집에 갈 거예요. 집에 가서 밥 먹고 아이들이랑 놀다가 9시쯤 자죠. 물론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제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심 : 그럼 사무실에 오는 시간은 언제이세요?

최 : 오늘처럼 일정이 있는 게 아니면 사무실엔 안 와요. 괜히 전기세만 더 나온다고. (웃음) 컴퓨터도 노트북을 써요. 오늘 같은 경우는 아침 9시에 미팅이 있어서 새벽 5시쯤 여의도 24시간 카페에 가서 일을 하다가 미팅에 갔어요. 의뢰인 분들이 본인이 있는 곳에 변호사가 와주기를 많이 원하시기도 해요. 특히 저는 장애인분들을 주로 상대하다보니 안산까지 오라고 하기 힘들죠. 저희는 재판도 안산에서 많이 없고 거의 전국이기도 하고요, 전국이 저희 사무실이에요. 또 요즘은 메신저도 있으니까 한국에 있을 필요도 없죠. 만나면 괜히 얼굴만 붉히지.(웃음) 그리고 오히려 사무실이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사무실에 변호사방도 없어요. 처음부터 변호사 세 명이서 좀 더 소통하자는 의미에서 방을 안 만들었어요. 장단점이 있죠.

▲ 원곡 법률사무소 사무실. 회의실은 있지만 변호사 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함께 일하고 있다.

 

심 : 최근 민변 가입하신 신입회원 분들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이 변호사로서 원하는 바를 가지고 오시는 경우가 많고 실현할 방법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점들에 관해서 조언해주실 만한 것이 있을까요?

최 : 만약 경제적 안정을 생각한다면 고용변호사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공익소송을 하면서 개업변호사가 안정됐다, 이러면 이상한 거죠. (웃음) 안정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굶어죽기야 하겠어요? 의뢰인이 돈이 없다고 한다면 법원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저희(세 변호사)의 처음 생각은 3~4명 정도의 의뢰인을 만난다면 사무실 운영을 최저로는 할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우리는 소매잖아요, 도매가 아니라. 기업을 대리하면 도매를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지금 보험사 상대로 소송을 많이 해요. 보험 회사가 아닌 보험 소비자 대리를 하려니까 힘든 거죠. 소매를 하면서 안정을 찾기는 힘들어요. 의료소송도 의료법인이 아닌 소비자를 대리해요. 의료법인을 대리하던 곳이 환자를 진정으로 대리하긴 힘들겠죠. 보험회사를 대리하던 변호사가 보험 소비자를 대리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게 왜 불공정하냐면 의료법인이나 보험회사는 저가의 비용으로 그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요. 그런데 소비자는 돈을 더 주면서 전문적인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힘들어요. 소수자를 대리하려면 소매로 사건을 가져와야 해서 사건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이게 광고를 한다고 해서 유명해질 수도 없는 거에요. 소매로 사건을 가져오면서 안정을 찾기는 힘이들죠. 그래도 안정적이니까 고용변호사 쓰는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저희는 매달 적자가 나지 않을까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요.

그래서 처음 목표한 것들을 실현하는 데에 경제적 안정의 고민이 문제가 된다면, 원래 그 둘이 같이 가기 어렵다고 처음부터 생각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결국 선택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공익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약자’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있었는데, 개업변호사를 하면서 그런 고정관념을 깨게 된 것 같아요. 매우 다양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심 : 출판소통팀에서 하는 새해 첫 인터뷰인데요, 혹시 변호사님의 새해 소망이 있다면요?

최 : 그러게요. 뭐가 있을까요? 새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을 정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 이제까지 제가 너무 ‘일’을 중심으로 지냈어요. 일에 있어서 제가 너무 일 중심으로 한 것 같아서, 관계중심으로 활동하지 못했죠. 최근에 친한 활동가 분이 둘째를 낳으셨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둘째를 가지셨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좀 더 인간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제한되다보니 쉽지는 않아요. 올해에는 좀 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중에 남는 건, 사람 밖에 없잖아요.


의미있는 길을 걷고자 하는 동지들과 함께 읽고 싶다며, 최정규 변호사가 평소 힘이 들 때 가끔 꺼내어 본다고 말했던 시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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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위] 건강하고 안전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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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낙동강에 건설된 보로 인하여 담수가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지하수 수위 상승으로 주변 농작물이 습해 피해를 입고 있으며, 보로 단절된 어류 생태계와 수질오염으로 어족자원의 고갈이 발생되어 어민들의 피해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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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산업사회는 각종 화학물질을 이용한 상품의 제조행위가 필연적입니다. 문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화학물질이 관리체계의 부실로 인하여 국민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침묵의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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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려 하고, 그 동안 정부는 기업의 생산비용 절감과 생산활동의 용이성을 위해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추진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먹고 마시며, 직접 피부에 닿는 상품들로 인한 국민의 건강침해였습니다.

환경보건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진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가능하게 하였던 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입법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대응Cgzz0q-UgAEQc5T

ⓒJTBC

 

2017년 봄을 기억하시나요? 유난히 뿌연 그 하늘과 답답한공기!

환경보건위원회는 미세먼지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미세먼지 대응 TF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원인에 대한 스터디, 현행 법제도에 대한 분석, 미세먼지 주범으로 불리우는 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 이외에도 주변 토양과 대기오염을 야기하여 인근 주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에 대해 소송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위한 Blue SKY 소송!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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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Ulchin NPP from.wikipedia

 

기저발전을 담당하고 있는 핵발전소는 운영 과정에서 방사선 노출 위험이 상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처리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더구나, 발전을 통해 확보한 전력의 송전을 위한 송전탑 문제는 밀양 사태에서 확인하였듯이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중앙집중적 에너지 발전시스템의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대대적인 에너지생산소비체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환경보건위원회는 갑상선암 소송과 울진1호기 수명연장취소소송, 신고리5,6호기 중단을 위한 법률 대응 등 우리 사회의 에너지시스템 변화를 위한 법률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금, 2017/09/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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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시대를 여는 울산시민 1000인 대토론회> 참가

지난 9월 24일 울산에서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 주최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시대를 여는 울산시민 1000인 대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시민사회, 노동단체, 정당, 마을모임 등 210개 참가단체와 가족들이 함께 하는 행사였습니다. 민변 울산지부는 [신고리 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출범한 지난 7월 19일부터 참가단체로 함께 하면서 지부장 김병수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사무국장 장석대 변호사가 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하였고, 당일 토론에는 정기호, 장석대, 신지현변호사등이 가족과 함께 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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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인 토론]은 당시 진행되던 정부의 공론화절차 관련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핵심쟁점에 대한 입장을 토의하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한 울산시민들의 결의의 장”이라는 취지로 개최되었으며, 성인 870여명, 청년 30여명, 청소년 30여명,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어린이 100여명등이 참여하여 각 조당 10명 내외로 총 100개 조가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울산지역 곳곳에서 각계가 참여하는 탈핵릴레이토론이 115회 개최되었고, [1000인 토론]은 각 릴레이토론의 성과를 종합하여 탈핵결의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40분간 진행된 선택토론에서는 “핵발전소 주변 서생면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이주, 건강, 생존권, 보상문제 등)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주제로, 이후 40분간 이어진 공통 토론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날까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무엇인지”등에 대한 토론 등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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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 신고리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로 결론을 내려 아쉽기는 하지만, 울산지역에서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가하는 형태로 ‘핵발전소의 문제점과 탈핵의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고, 이후 실질적인 탈핵활동’까지 이어지는 등 나름대로 탈핵운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월, 2017/11/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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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최근 활동 소식

– 장경욱 변호사

1. 제8회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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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는 지난 6월 6일 덕성여대에서 개최된 제8회 6.15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6.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부터 매년 열린 체육대회에 우리 위원회는 참가에 의의를 두고 꾸준히 참가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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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된 중대한 전환적 국면이 열린 올해 참가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6.15공동선언 18주년 기념에 더하여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다짐하는 뜻깊은 행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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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축사 중인 채희준 통일위원장

이날 체육대회 개막식 축사에서 채희준 통일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올해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일에 반드시 국가보안법 장례식을 치르자며 국가보안법폐지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번 6.15체육대회에 참가한 단체는 우리 위원회를 비롯하여 통일뉴스, 범민련 남측본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중민주당,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6.15합창단까지 모두 7개 단체였습니다. 이날 덕성여대 운동장에 모인 각 단체 회원들은 축구, 피구, 단체줄넘기, 이어달리기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렸습니다. 체육대회를 위해 각 단체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술과 음식을 함께 들며 서로 친분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친 후에는 흥겨운 대화와 노래가 가득한 뒷풀이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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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원회에서는 채희준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 위원들(심재환, 양승봉, 장경욱 위원) 만큼이나 가족들의 참가(채 위원장의 가족 3명과 장 위원의 가족 2명)가 더 많았습니다. 또한 우리 위원회 위원들로부터 국가보안법사건 변론을 받은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거 참가하였습니다. 유우성씨 가족이 전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홍강철씨, 허성일씨 등이 참가하여 우리 위원회 소속으로 각 종목경기와 응원에 열성을 다했습니다.

이날 체육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채 위원장의 딸(초등학교 4학년)과 장 위원의 아들 장(중학교 1학년)이 선수로 참여한 단체줄넘기에서 전체 2등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성인 참가자들(채 위원장, 양승봉, 장경욱 위원 부부)과 함께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한 마음, 한 뜻으로 22번 단체줄넘기를 성공하였습니다. 어린 미래세대의 거친 호흡을 들었던 단체줄넘기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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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교포 초청강연회

지난 6월 8일 우리 위원회는 민변 대회의실에서 재미동포 목회자 최재영 목사와 재미 언론인 박대명 선생을 초청하여 4.27 판문점 선언시대를 맞이한 국내외 정세변화의 전망을 들어보는 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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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강연자들의 강연은 북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4. 27 남북정상회담과 6. 12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힘에 대해 강연자들은 한미동맹이 추동했던 최대한의 압박과 재제정책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국내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을 부정했습니다. 현하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도래하고 있는 긴장완화(평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은 오랜 기간 대북제재와 압박 속에 핵무력을 완성한 북의 역량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고, 미국(트럼프 대통령)조차 북미 간 핵전쟁의 위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종전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관계정상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 지도자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핵실험 중단 등 비핵화 조치는 평화협정의 체결에 의한 주한미군철수를 담보하기 위한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북의 능동적이고 선제적 조치로서, 세계 비핵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특히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시기 남북에 끼친 전쟁피해에 대해 천문학적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확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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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8. 최재영 목사 국가보안법 위반 출석요구 규탄 기자회견

남북을 수시로 오가며 분단의 질곡을 깨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애써온 최재영 목사는 방한 기간 중 초청강연 당일 오전을 비롯해 2차에 걸쳐 보안경찰들로부터 국가보안법위반 조사를 받았습니다. 과거 북을 방문하여 활동한 것을 트집 잡은 것입니다. 10.4 선언 5주년 기념토론회 참석, 정전협정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종전과 평화협정 촉구, 재북 인사 묘역 묘비사진 등 제공, 방북 과정에서 유엔 주재 북 대사관과 일정 조율 등 혐의 내용 어느 것이나 판문점 선언에 비추어 볼 때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판문점 선언을 합의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이번 최재영 목사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공안탄압은 문재인 정권의 일관성 없고 이중적 대북인식과 대북정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을 받는 가운데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위협을 무릅쓰고 초청강연을 해주신 강연자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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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초청강연회와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는 서울대 최종길 교수 사건에 연루되어 독일에서 33년 동안 들어오지 못 하시다가 참여정부 때 입국하였으나 3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인천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입국을 거부당하고 독일로 쫓겨 가신 김성수 박사님께서 참석하셔서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목, 2018/06/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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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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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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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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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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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 참가기

전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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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이하 ‘위원회’)는 제네바 현지 시각으로 2018. 2. 22. 대한민국 정부가 제출한 제8차 국가이행보고서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이하 ‘여성위’)는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위원회 제7차 대한민국 정부 심의에 참석하여 대응한 이래로 위원회 권고 사항의 국내이행 여부에 관한 모니터링을 하였고, 지난 2월에 열렸던 제8차 정부심의에도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여성위 소속 변호사들(류민희, 박인숙, 장보람, 전민경)이 위 심의 대응을 위하여 조직된 한국 NGO 단체 대응팀에 결합하여 스위스 제네바 현지활동을 마친바, 이하에서 위원회 제8차 대한민국 심의참가 소식을 간략하게 전해드리려 합니다.

 

 

2.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유엔 주요 조약기구 9개 중 하나로, 1981년에 발효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하 ‘협약’)에 기반하여, 동 협약의 이행을 위한 진전 사항들을 심의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84년에 위 협약을 비준하였고(이듬해 1월 26일에 협약 발효), 이에 따라 1986년 2월에 제1차 정부보고서를 제출한 이래, 2015년에 제8차 정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제8차 정부보고서에 대하여 지난 2월 22일에 위원회의 본 심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3. 2018년 제8차 정부심의에 대한 국내 NGO의 대응

 

위원회는 정부에 대한 본 심의에 앞서, 사전심의과정을 통하여 본 심의에서 주로 다룰 쟁점목록(List of Issues)을 도출하는데, 이 쟁점목록에 대하여 정부가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정부는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서를 지난해 12월 초에 제출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여성인권단체(총 15개 여성단체)들은 정부의 답변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작성하고, 지난 2월 초에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또한 민변 여성위를 비롯한 6개의 인권단체들(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은 본 심의 대응을 위한 ‘NGO 참가단’ 모임을 꾸려, 작년 12월부터 본 심의 대응을 준비하였고, 본 심의 기간동안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정부 심의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NGO 참가단’은 위원회의 NGO 미팅(Informal Public Meeting)에서의 구두발언(Oral statement), 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NGO Lunch Briefing)개최 및 개별면담을 통하여 위원들에게 한국의 여성인권 현황을 전달하고,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 인권 상황 개선과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권고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현지 활동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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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일) : 위원회와 NGO간담회 준비 워크샵 (IWRAW-AP NGO 워크샵)

 2/19(월) : 위원들과의 심의 대상 4개국 NGO 간담회 (Informal Public Meeting_NGO)

 2/21(수) : 위원들과의 한국 NGO 간담회 (NGO Lunch Briefing)

 2/22(목) : 위원회 한국 제8차 본 심의 모니터링

 2/23(금) : NGO 참가단 활동 결과 보고 및 마무리 작업

 

 

4. 본 심의 주요 내용

 

본 심의에서 다루어진 주요 내용은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2)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에 관한 대책을 포함한 다양한 젠더 폭력 문제,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에 대한 논의,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5) 취약계층 여성인권,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으로, 위 내용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주요 여성인권 현안이 협약의 조항 순서에 따라 다루어 졌습니다.

 

위원회 위원들은 한국 여성 인권 현실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인권단체가 작성한 NGO 보고서 및 NGO 참가단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보다 깊게 파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 대표단에게 협약의 이행여부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1) 위원회의 질의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위원회는, 한국이 본 협약의 선택의정서(협약 위반 사항에 대하여 개인이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인진정절차’를 담은 의정서)를 채택한 몇 안 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 한국정부의 여성차별을 대상으로 한 개인진정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국내의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협약 상의 권리침해절차(개인진정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2005년 「성차별금지법」 폐지 이후, 성차별 방지 관련 법률의 부재함을 지적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위원회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2) 젠더에 기반한 폭력 문제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은 전 세계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위원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기반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지적사항은 ① 한국의 「형법」 제297조가 강간죄의 성립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아니라, 가해자의 폭행 및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강간죄의 성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 ② 피해자들이 어렵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소를 하여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가 남발되어 2차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 ③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거나, 이를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하는 등의 사이버 성폭력이 새롭게 문제되고 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나, 조직 내에서 문제제기를 할 경우 가해자가 징계처벌을 받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괴롭힘의 대상이 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현실로 인하여, 문제제가 자체가 되는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정부의 정책적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 문제

위원회는 또한 여성의 임신중단에 관하여, 모자보건법에 따라 강간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낙태가 허용될 뿐, 여전히 낙태는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형법으로 낙태를 처벌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으며,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고비용 · 비위생적인 불법시술을 받거나 온라인에 유통되는 위험한 약물에 의존하고 있고, 후유증이나 의료사고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을 꼬집으며 정부에 낙태죄 비범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부재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 :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부의 SRHR에 관한 정책이 임신을 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트렌스젠더나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SRHR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간을 마련하고, 당사자들의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하였습니다.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여성 고용부분에 대한 질문에서, 위원회는 한국이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성 격차 지수 순위를 매긴 144개국 가운데 123위이며, 성별임금격차는 37%로서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는 점을 제시하며, 국내 성별임금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지난 회기 동안 정부가 이행했던 개선책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동시에 여성임금노동자 중 41%는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26.9%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있어서,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64%로 매우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하였습니다.

 

5) 취약계층 여성인권

위원회는 이주, 난민 여성의 국적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아동 출생 등록 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결혼하지 않은 이주여성의 자녀가 무국적 상태의 위험이 놓여 있는 점을 비롯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이 한국인 고용주와 관리자로부터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나 언어제약 및 체류자격 불안으로 인하여 가해자로부터 쉽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였습니다. 또한 탈북여성의 고용과 관련하여 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교육은 서울 1곳으로, 지방의 탈북여성은 이러한 혜택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성평등 및 인권교육 등도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후속조치에 불과함을 지적하였습니다.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관하여 위원회는, 종전의 일본 정부 심의에서 ‘(일본)정부가 조속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피해자 배상조치를 실시하고 가해자를 기소하도록 하며, 이러한 범죄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포함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할 것을 반복적으로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심의에서 일본군 성노예 이슈가 제기된 것은 금번 회기가 처음으로, 피해자 중심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난 한일합의를 비판하며, 2015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도출된 ‘화해치유재단’의 존속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후속조치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2) 정부 답변

 

이처럼 위원회의 질의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토대로 날카롭게 진행되었다면, 정부의 답변은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그대로 읽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이미 정부가 위원회에 사전에 제출한 정부 보고서 및 답변서의 내용과 일치하여서, 일부 위원은 ‘정부대표단이 기존에 제출한 정부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이행 계획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면 위원회가 왜 굳이 모여서 정부의 답변을 들어야 하냐’며 정부를 향하여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동 협약이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교차적 차별을 모두 철폐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즉각적인 이행을 국가의무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고 있다는 위원의 질문에 대하여, 정부는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하여서, 정부가 과연 위원회의 권고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최종 권고의 주요 내용

 

위와 같이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정부의 불성실한 답변이 오갔던 가운데, 지난 3월 9일,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제8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및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배치할 것
  • 지방정부의 성별영향분석 평가 제도를 강화하고, 성 인지 예결산 협의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 할 것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피해자의 성 이력을 사법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금지할 것
  •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효과적인 관리 감독 체계를 확립 할 것
  • 탈북 여성들에 대한 적절한 상담 등 적절한 재원을 탈북여성센터에 제공할 것
  • 팔레르모 의정서 기준에 상응하는 포괄적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할 것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생존자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한 진실과 정의 배상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공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즉각적으로 추진할 것
  •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여성할당제의 강제이행 조치를 마련할 것
  • 이주 여성의 귀화 절차 기간을 축소하고 한국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 및 관행을 폐지 할 것
  •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 동일임금 조항의 엄격한 시행 및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할 것
  • 남녀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공사기업에서의 임금공시제를 시행할 것
  •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관련 법제도를 개선할 것
  • 건강보험 등 트렌스젠더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비자발적 의료조치가 발생되지 않도록 할 것
  • 낙태 비범죄화 및 수술 이후의 질 높은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
  •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혼청구 시 이혼 결정 이전에 가해자와 강제로 화해나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할 것
  • 비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호를 확대할 것
  •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아젠다의 이행과정에서 실질적인 성 평등을 실현할 것

 

 

6.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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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현장에서의 일주일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NGO 브리핑 자료, 런치브리핑

자료, 제안 질문지, 제안 권고문 등을 작성하고 다듬으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이 위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지, NGO 보고서의 내용 역시 오늘날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이 오갔습니다. 이러한 고민들로 인하여 NGO 참가단은 결국 제네바 현장에서, 한국에서 준비해왔던 작업을 뒤집고 새로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의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힘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여성단체에서 참여하신 대표단 분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여성인권 문제에 대하여 압축적으로 공부하고 논의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본 심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지내는 동안, 위원회의 최종권고문도 나왔고 이 권고문을 토대로 한 토론회도 개최하며 권고사항에 대한 사회적 공유 작업도 시작되었습니다. 최종권고들은 다음 회기의 정부 심의 전까지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할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여성인권단체들은 정부에 그 이행을 촉구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로 인하여 한국사회에서의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 한 발 더 가까워지길 바래봅니다.

금, 2018/03/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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