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독립운동가 아내에게도 훈장을” 독립기념관장의 이유있는 주장

지역

“독립운동가 아내에게도 훈장을” 독립기념관장의 이유있는 주장

익명 (미확인) | 월, 2019/02/18- 18:23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 할 수 있게 도운 여성들 공적도 인정해야”

0218-5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노준희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만인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올해 2019년은 자주독립의 근간과 실체인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다. 이에 정부와 독립기념관,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가 있는 충남 천안시는 기념일을 치르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역사적인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취임 3년차를 맞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을 만났다. 이준식 관장은 영화 <암살>과 육군 창작뮤지컬 <신흥무관학교>로 널리 알려진 독립군 양성기지 지도자이자 한국독립군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다. 또한, 임시정부 간부 출신 여성독립군인 지복영 여사는 지청천 장군의 차녀이자 이 관장의 어머니다.

대를 이은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이준식 관장 역시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활동에 몰두했다. 지난 11일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지금, 이 관장에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3.1운동은 여성과 청소년이 주체로 등장한 계기

–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7개 전시관 중 3개 전시관에서 3월 1일에 맞춰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원본자료를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한 달간 개최한다. 독립선언서, 원본 태극기 등 평소 훼손을 우려해 전시하지 않았던 귀중한 자료들이다.

2월 28일엔 겨레의집 앞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야제’를 크게 열 계획이다. 겨레의집 2층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체험전시관을 별도 오픈한다. 자체적으로는 임시정부 수립 내용까지 담은 해외 순회전시를 LA, 뉴욕, 상하이, 도쿄에서 열 예정이다.

4월엔 임시정부기념사업으로 육군본부, 충남도와 음악회를 열 예정이며 현재 행사를 협의 중이다.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인 4월 11일엔 임시정부 요인 21명을 어진 방식으로 그린 초상화를 특별 전시할 계획이다. 8월엔 국내 최대 규모 무궁화테마공원도 연다.”

– 3. 1운동을 역사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으로 나눠서 설명한다면?
“역사적 관점에선 거족적, 평화지향적 운동이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3.1운동이야말로 한국민주주의의 기원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뒤이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대한민국 기원은 1919년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해석은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이 새로운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성과 청소년이 사회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 3.1운동이었다. 3.1운동 이후 여성과 청소년의 사회 진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 올해 가장 선행돼야 할 연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3.1운동 사망자 수가 6000~8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극히 일부다. 독립기념관은 이런 기록을 빨리 찾아 명단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우리 임시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인정할 뿐만 아니라, 중국 쑨원 정부와 2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폴란드 등 다른 나라들이 승인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도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인식이 있어 이를 불식시키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 외조부 지청천 장군에 대한 기억은?
“내가 태어난 다음 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직접적인 기억은 없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만주 등을 전전하며 독립운동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외할아버지가 더 유명하시고 공적으로 더 큰 일을 하셨지만, 외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도와 가족생계를 책임졌다. 자식들이 성장한 후에는 독립운동에도 직접 참여한 외할머니가 더 인상 깊다. ‘윤용자 여사 외손주’라는 사실이 더 자랑스럽다.”

“기록 위주로 선정하다보니 여성 독립운동가 비율 3%… 관점 자체를 바꿔야”

– “해외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인가.
“자신을 돕는 아내가 없었으면 남편이 밖에 나가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가를 도운 아내의 활동도 넓은 의미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아내들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

지난해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한 여성들이 처음으로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과 석주 이상용 선생의 손자며느리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다행히 회고록을 남겨 기록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비율이 3%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름을 남기는 경우가 적어 기록상으로는 남성이 훨씬 많다. 기록 위주로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면 남성이 많아진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독립운동을 도운 활동 등 독립운동 성격이 포함된 건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여성 포상이 늘고 있으나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 유관순 서훈을 더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유관순 열사의 훈격만 조정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시급한 게 있다. 임시정부 수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훈장을 수여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분이 3등급 훈장을 받기도 했다. 천안 출신 석오 이동녕 선생은 임시정부의 살아 있는 역사다. 임시정부 주석을 3번이나 지냈는데도 2등급 훈격이다. 이런 분들의 훈격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

0218-6

▲ 독립기념관 전경 독립기념관 전경이다. 사진 가운데 우뚝 솟은 겨레의 탑이 보이고 뒤쪽에 겨레의 집이 보인다.ⓒ 독립기념관

“이름 없이 순국한 무명용사 기리는 기념탑 건립해야”

– 독립운동사에서 무장투쟁한 독립군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장투쟁 역사는 60년대에 연구가 활발했다. 그런데 무장투쟁에 참여한 무명독립군을 기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일을 부각하는 데 실패한 거 같다.

무장투쟁 지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름 없이 헌신한 무장독립군이 없었으면 지도자가 빛날 수 있었을까. 직접 총 들고 일본과 맞서 싸운 독립군 무명 독립용사를 기억하고 이들을 기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무명 독립용사를 기리는 기념탑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다닌다.”

– 독립기념관도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있다던데 얼마나 발굴했나. 또 기존 독립유공자가 아닌데 포상을 받은 경우가 있던데, 이는 어떻게 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하라고 했다. 국가보훈처가 독립기념관에 발굴을 위임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361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보훈처에 포상심사를 신청했다. 독립유공자가 아닌데 포상을 받은 경우 회수 절차가 어려워 상훈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포상을 취소할 수 있다. 독립에 기여했다 하더라도 이후 변절한 사실이 확인되면 포상 취소 대상이다.”

– 천안 지역에서 근현대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단체가 생겼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립운동을 기리는 일은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이다. 해방 후 역사가 꼬이다 보니까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의 활동을 보면 역사 정립에 기여한 바가 많고 앞으로 기여할 것이 많다고 본다. 천안만 해도 근현대사의 산 현장인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 곳이 많다. 제대로 정비하고 감춰진 곳을 찾아 알리는 일을 시민이 나서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세운동 최소 200만 참여, 당시 10명에 1명 꼴… 독립운동은 나와 직결된 문제”

– 남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모두 동의하는 역사가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3.1운동과 관련해 김일성 주석과 안중근, 신채호 선생은 남북 모두 긍정한다. 같은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간극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통일을 내다본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역사관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모든 사람을 설득해서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친일인명사전을 낼 때만도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후에는 친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지금은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매우 힘들지만, 차곡차곡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한다.”

– 독립운동이 단지 지나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살아 있는 이야기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만세운동 참여자로 최소 200만 명을 추산한다. 당시 한반도 거주 인구가 1600만 정도였다. 적어도 10명에 1명 꼴로 참여했다는 얘긴데, 친일파 후손이 아니라면 자기 집안 누군가는 만세 시위에 참여했을 것 아닌가.

독립운동은 나와 직결된 문제다. 단순히 100년 전에 일어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라는 사실을 생각하길 바란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우지 않았으면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는 없을지도 모른다.”

– 현실을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모든 젊은이는 다 자기 세대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나도 그랬다. 모든 청년세대의 통과의례 같다. 집 없는 설움과 나라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시야를 넓게 잡고 생각을 크게 해주길 바란다.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싸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일을 위한 투지를 불태우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천안아산신문에도 게재합니다.

<2019-02-1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아내에게도 훈장을” 독립기념관장의 이유있는 주장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일본 시민단체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沖繩)현 본섬 남부 지역에서 새 미군 기지 매립지에 쓸 토사를 채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전몰자 유족 모임’은 오늘(7일) 일본 방위성과 후생노동성을 찾아 “헤노코(邊野古) 연안 매립 공사에 쓸 토사를 희생자 유해가 묻힌 곳에서 채취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서명 용지를 전달했습니다.

서명에는 일본 전역에서 1만 1천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의 피가 스며든 토사를 미군 기지를 만드는 매립에 사용하는 것은 유골이라도 돌아와 달라는 유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이던 1945년 일본군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 남부 등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인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병사 등을 포함해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는 조선인도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으로 동원돼 70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더 많을 수 있고, 이들 대부분은 희생된 주변 지역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絲滿)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이전할 곳인 중부 헤노코 연안의 매립에 쓸 토사 일부를 당시 격전지였던 이토만 등에서 채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지난 3월부터 오키나와 현청 앞에 단식 투쟁 등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대표는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그간 수습된 희생자 7백여 명의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한 후생노동성 주도의 DNA 감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유족들도 DNA 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와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의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황현택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7> KBS NEWS

☞기사원문: “조선인 등 묻힌 토사 채취 반대”…日시민단체, 1만여 명 서명 제출

※관련기사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한겨레: “희생자 유골 섞인 흙으로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인도적 행위”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연합뉴스: 조선인 유골 공사장에 묻히나…日NGO “한미 유족과 반대운동”

목, 2021/07/08- 05:10
0
0

민족문제연구소 “세계유산위, ‘일본에 유감 표명’ 결정문 채택해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故) 서정우씨 등의 영상은 최초로 공개됐다. 2021.7.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혼잣말을 하면서 매일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군함도(하시마·端島) 강제동원 피해자 서정우 씨)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산업시설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다루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 주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전시회를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16일 밝혔다.

전시 영상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열네 살에 하시마 탄광에 동원됐다가 이후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고(故) 서정우(1928∼2001) 씨의 영상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사복형사에게 연행돼 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갔던 손용암(78)씨,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제련소로 강제동원된 류기동(79)·손성춘(76)·이영주(77)씨 영상은 올봄 촬영돼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다.

징용 경험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군수시설에서 탈출하려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잇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가늠될 정도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보통 강제동원을 떠올리면 ‘배고프다’ ‘아프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안다”며 “이번 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게 됐는지, 현장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증언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제공한 영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이 제공한 중국인 포로, POW연구회가 제공한 연합군 포로의 증언 영상을 함께 전시해 강제노동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연구소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2021.7.16 [email protected]

한편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센터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2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군함도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사단은 일본이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일본의 관점뿐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피해자의 시각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일본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르면 이달 2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노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공개한 권고를 지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권고를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1-07-16> 연합뉴스

☞ 기사원문: 피해자 육성 담은 ‘일제 강제동원’ 전시회 서울서 개막

※관련기사

☞뉴스토마토: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등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 증언 공개

☞이투데이: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의 증언

금, 2021/07/16- 23:38
0
0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0
0

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