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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뉴욕vs 서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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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뉴욕vs 서울(4)

익명 (미확인) | 토, 2019/02/16- 11:24

1960년대 미국 대학가의 “짱”을 꼽으라면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록 가수 밥 딜런이나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이들과 함께 대학가에서 비슷한 인기를 누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있었다. 바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스파이더 맨’이다. ‘스파이더 맨’이 타고, 오르고, 뛰어 내린 마천루는 뉴욕 맨해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가 뛰고, 오르내리던 맨해탄에 오늘날의 스카이라인이 형성되는데 약 120여년 정도 걸렸다.

19세기 뉴욕시는 격자형 가로망을 창조하며, 상수와 하수시설, 공원을 조성하며 기반시설 정비 행정을 펼쳤다. 하지만 마스터 플랜 없이 추진하는 도시계획으로 인해 혼란이 발생하자, 진보적 사상가들의 노력으로 더러운 주거조건을 방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임차인 주택법(1901)이 제정되었다. 더 나아가 ‘1916 조닝’을 제정해서 ‘뉴욕 스타일’ 또는 ‘웨딩 케이크’ 형태라는 고유명사로 불리우는 맨해탄 초고층 건축 형태를 주형해 냈다. ‘1916조닝’은 뉴욕에서 탄생하여, 미국의 각 도시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전파되었다. 한국에도 일제식민지시기 1934년 ‘조선시가지 계획령’속에 등장하여 오늘날 까지 한국 도시계획 규제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인연을 갖고있다. 뉴욕시 초고층 건축의 진화를 이룬 ‘1916 조닝’은 계속 발전하여 21세기 각국의 글로벌 도시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니면 20세기의 유물로 기억될 것인가?

 

트리뷴 빌딩 vs 화신백화점

2018년 8월 뉴욕 맨해탄의 초고층 건축 신호탄을 쏘아 올린 기원지를 답사하기 위해서 시청역 주변 답사에 나섰다. 브로드웨이가 시청공원과 만나면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접점에1899년 시청사를 마주보고 세워진 391피트 30층 높이의 ‘파크 로우’ 빌딩이 서 있었다. ‘파크 로우’ 빌딩은 빅토리안 양식을 추구했지만, 외장은 고전주의 양식이었다. ‘파크 로우’빌딩은 건물 중간 중간에 수평성이 강조된 장식적인 띠와 발코니가 있어 이채로웠다. 마천루가 하늘높이 치솟으려는 수직성을 저지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읽혀졌다.

시청 앞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맨해탄의 이미지는 주변에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파도치는 은빛 마천루인 포스트 모더니즘 스타일의 ‘8 스프루스 스트리트’빌딩이 보이고 100년 이상 된 ‘울 월쓰’ (Woolworth Building,1913) 빌딩이 브로드웨이를 경계로 서있는 등 초고층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건축물이 시청공원을 둘러싸면서 품위와  세련미를 동시에 풍기는 퓨전 거리풍경이었다.

뉴욕 맨해탄의 스카이 라인 1세대는 1876-1900년 기간 중에 로우어 맨해탄 에서 시작했다. 1876년 완공된 둥근 지붕을 씌운  260피트 높이의 트리뷴 빌딩은 조적식 구조물로써 10층 높이의 최초의 상업용 건물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혁신적인 건물이었다. 뉴욕 초고층 건물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엘리베이터는 1937년 서울에도 수입되어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종로 화신백화점에 승객용 승강기로 설치되었다. 서울의 고층건물과 뉴욕 맨해탄의 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싯점이 거의 6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오늘날 서울의 모습은 뉴욕 맨해탄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초고층건물이 많이 세워져 있어 선진기술 습득의 모범생임을 실감케 한다.

20세기 들어와 향상된 건설구조기술과 엘리베이터의 효율성으로 초고층 건물이  폭팔적으로 증가하면서 오늘날 맨해탄의 스카이 라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인류사에서 마천루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생산하고 전파하는 역동적인 시기로 기록된다.

 

1916년 조닝 조례 vs 조선시가지 계획령

(왼)플랫 아이론 빌딩, (오)울 월쓰 빌딩

20세기 전환기에 맨해탄은 이미 초고층 건물의 본거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11층 높이의 타워빌딩(1889), 20층 높이의 플랫아이론(Flatiron,1902)건물이 세워지고, 전례 없는 높이의 792 피트의  네오 고딕 양식인 ‘울월쓰 빌딩’이 세워졌다. 하지만 초고층 건물내 채광과 환기의 확보가 커다란 과제였다. 이를 보장하기위해 전면 도로 폭으로부터의 사선제한이라는 장치가 1916년 뉴욕 조닝 조례에 채택되었다. 1916년 뉴욕의 조닝 코드는 현대적인 도시계획제도의 등장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제도는 가로에 도달할 수 있는 일조량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선 후퇴(셋빽)를 규정했고,  대지면적에 대한 비율로 타워를 제한해 자연스럽게 장래 세워질 건물의 형태가 결정되도록 하였다. 1916년 뉴욕 조닝은 맨해탄 초고층 건물의 형태와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낸 아버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16년 뉴욕의 조닝은 미국  도시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전파되어 독일을 포함해 일본에는 1919년 도시계획법, 한국에는 일제 식민지 시기 1934년 ‘조선시가지 계획령’에 채택되어 발전해와 오늘날 한국 도시계획제도의 중요한 근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가지 계획령’속에 채택된 지역제는 최저수준의 위생확보에 국한하였기 때문에 뉴욕의 1916년 조닝 만큼의 완성도를 갖추지 몼한 식민지하의 도시계획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1916년 조닝의 엄격한 제약하에서 세워진 대표적인 건축물이 아르데코 양식의 크라이슬러(1930)와 엠파이어 스테이트(1931)빌딩이다. 바야흐로, 20세기 도시문명을 선도하는 맨해탄에 초고층 건물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하였다.

 

뉴욕의 21세기: 허드슨 야드 vs 세운상가

세운상가

뉴욕 ‘1916 조닝’은 파리,런던,보스톤,시카고와 같은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에서 사용하던 고도한계와는 완전히 다른 독창적인 것으로, 개별 건물과 스카이라인을 3차원 형태로 만들어, 웅장한 형태의 오늘날의 맨해탄을 만들었다.

21세기 들어와 뉴욕시는 새로운 성장의 파고에 금융 혜택과 인센티브 조닝을 적용해 ‘허드슨 야드’ 같은 미개발된 맨해탄 지역이 혁신의 에너지를 흡수케 해 하룻 밤만 자고 나면 천지가 개벽하는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면서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였던  세운상가도 뉴욕의  ‘허드슨 야드’ 모델을 적용하여  21세기형 복합 초고층 건물로 다시 솟구쳐 ‘스파이더 맨’이 타고, 오르는 감동을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큰 그림을 그려볼 수는 없을까?

 

조재성

21세기 글로벌도시연구센타 대표/원광대 명예교수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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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포용적 전위주의는 도덕적 생산문화에서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신뢰와 재량 수준의 고양을 유지하는 작업방식뿐만 아니라 특징적이고 까다로운 특성들을 지닌 협력관행의 향상에 있다.

중요한 쟁점은 도덕적 생산기반에서 이러한 변화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문화의 소여인지 아니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과 의식의 특성인지이다. 이러한 변화는 포용적 전위주의를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 심화되고 보급된 지식경제의 도덕적 문화는 변혁적 행동이 닿을 수 없는 운명의 영역으로 남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도덕적 문화는 집단적 창조물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적 문화의 구성 요소와 요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덕적 문화의 강화를 바랄 수 없다.

작업장 내에서 지휘통제에 기초한 노동분업에 대한 접근 방식은 재량의 여지를 봉쇄하고 신뢰를 권력과 감시로 대체한다. 경직된 기계의 작동을 모방하는 작업의 반복적 성격은 생산적인 과업들의 전문화된 집행자들에게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바로 그 계획을 다시 정의할 기회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 고용계약의 암묵적 조건(임노동의 계약적 형태)은 생산과정을 지시할 모든 나머지 재량이 법과 단체협상의 제약 안에서 소유자가 임명한 관리자들에게 유보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기성제도에서 생산적 자원과 기회의 분산적 접근을 조직하는 중요한 법적 장치들은 통일적인 재산권(19세기의 법적 발명품)과 이에 부응하는 계약법상의 장치로서 쌍무적인 미이행계약(간단한 급부로 완결되는 협상의 조건들을 빠짐없이 적시하는 사무적인 거래)이다. 통일적인 재산권과 쌍무적인 미이행계약[쌍무계약]은 공히 권리보유자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적인 재량의 영역(권리의 영역)과 다른 사람의 청구권에 복종해야 하는 주변 영역을 뚜렷하게 분리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무적인 거래와 거의 통제받지 않는 이기심의 영역은 사회적 상호의존성이 매우 두드러지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들(가족, 공동체, 교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의존성에서 더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비축하고 또한 우리는 불완전한 합의를 권력, 교환, 충성이 거리낌 없이 섞이도록 허용하는 사회생활의 부분들(가족과 공동체)에 유보한다.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은 다른 도덕적 문화를 요구하고 그러한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포용적 전위주의가 번창하는 도덕적 환경의 원인이자 그 결과이다. 그러나 포용적 전위주의는 결코 그 자신의 도덕적 기초의 만족스러운 건축가일 수 없다. 그러한 기초도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이어야만 한다.

이 절의 도입부에서 환기시킨 두 가지 보완적 시각(신뢰와 재량의 향상과 우리의 협력적 성향의 강화와 정교화)에서 경제생활의 도덕적 기풍에서의 필요한 변화를 고려해 보겠다.

신뢰와 재량의 향상은 계획이 집행 과정에서 수정됨에 따라 생산적인 업무의 계획수립과 그 집행의 차이를 이완시키고 경쟁에 맡기는 활동과 협력에 맡기는 활동의 차이를 상대화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발전한다.

앞서 언급한 군사적 유추를 상기해보자. 지식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작업집단은 정규군보다 비정규군을 더 닮아야만 한다. 그러나 특수작전부대와 같은 비정규군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계속 활동하는 더 큰 군대의 엘리트적이고 보조적인 세력으로 작동하는 것과 정규군 전체가 비정규군의 특성을 조금씩 획득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제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야심적인 의제다. 정규군이 비정규군의 특성을 얻기 위해서는 정규군은 엘리트 부대의 극단적인 유연성과 기동성과 중앙통제를 비율상 확장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조화시켜야만 한다. 아직 어떠한 군대도 달성하지 못한 바로 이 과업을 급진화되고 확산된 지식경제의 수행자들이 성취해야만 한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인지적-교육적 요건과 법적-제도적 요건과 관련하여 진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도덕적 생산문화에서의 변화는 그 초기 단계들을 벗어날 수 없다. 지식경제를 꽃피우기 위해서 다수를 위한 지식경제는 내가 앞서 기술했던 유형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지식경제는 또한 생산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 형태를 배가시키는 시장경제의 제도적 법적 안배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혁신들에 달려 있다. 금융이 수익 중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신규 자산의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지속적으로 사회의 생산적 의제보다는 금융 자체에 더 복무하는 한, 주요한 생산자산의 통제권은 자유로이 이동하는 자본의 대규모 공동자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행사될 것이다. 우리가 생산자원의 분산적 접근 수단, 이른바 재산체제의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은 자유노동의 지배적인 형태로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도덕적 생산문화의 필수적인 변화는 시작되기는 하겠지만 지속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 의식과 관행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와 연계됨으로써 힘을 얻을 것이다.

신뢰와 재량의 수준을 제고할 필요는 간단히 말해서 더 일반적인 요구(기질과 기술을 포함해서 협력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정교화하라는 요구)의 가장 긴급한 결론이다. 비록 제도들이 협력의 의향과 능력에 관련될지라도 그러한 의향과 능력은 순전히 제도적 설계의 피조물은 아니다. 협력적 능력은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독자적인 요소이다. 협력적 능력이 허약하다면 어떠한 제도적 체제도 이러한 체제의 창안자들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협력적 능력이 강력하다면 협력적 능력은 다양한 제도적 체제들을 매개로 유익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 해링턴, 몽테스키외, 비코와 같은 초기 유럽 사회이론가들은 모두 협력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과 이러한 능력은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하였다. 이들은 ‘정신’ 과 ‘덕’과 같은 항목 아래서 협력적 능력을 연구하였다.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 짐멜의 이론에서 보듯이 후속적인 고전적 사회이론은 협력적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변형과 결과를 탐구할 기반을 결여하였다. 협력적 능력이 다양한 체제들의 역사를 관통한다고 말하려면, 이러한 이론적 전통이 부인하는 것(우리가 만들고 살아가는 체제보다 우리 안에 항상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통찰)을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이 사망선고를 받고 난 다음 사회과학의 후기역사에서 협력은 “사회자본”(사회적 결속들의 상대적 밀도)이라는 위축되고 두서없는 형태 속에서 하나의 논제로 다시 등장하였다.

나는 협력체제를 상호작용의 관행적인 상호작용 형태들과 이러한 형식들과 연결된 태도들, 기술들, 가정들 나아가 이러한 형태들이 당연시하고 자신의 기반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법적 안배들의 집합체로 이해한다.

생산방식, 특히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발전에 대한 협력체제의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산출과 생산성에서 협력체제의 다산성을 판단할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이 존재한다.

첫 번째 기준은 협력체제가 최대다수의 경제주체들의 재능과 역량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이들에게 생산적인 자원과 기회에 대한 접근기회를 어느 정도 확장하는 지이다. 일정한 집단들이나 일정한 유형의 개인들에게 도달하는 데 있어서 시장경제를 조직하는 방법 중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방법은 다른 방법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방식으로 도달한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유일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지어 다른 모든 경쟁적 형태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접근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조직 방식조차 여전히 결함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기회와 접근을 추구한다.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해법은 주어진 시장경제에서 (유일한 재산체제와 계약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포함해서) 시장의 유일한 법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일 것이다. 경제적 주도권의 분산에 대한 대안적인 제도적 방식들이 이제 동일한 시장질서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할 것이다.

협력체제의 개선을 판단할 두 번째 기준은 협력체제가 협력의 요건과 혁신의 요건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는지 여부이다. 긴장의 완화는 협력에 대한 모든 접근에서 중요하다. 긴장의 완화는 혁신을 영구화하려는 생산방식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실천적 역량의 발전(경제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그 일단에 불과하다)은 협력하고 동시에 혁신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혁신이 기술적인가 조직적인가 제도적인가 심지어 개념적인가에 상관없이 혁신을 정식화하고 집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혁신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모든 혁신은 기존의 협력체제를 교란시킨다. 혁신은 기존의 협력체제에 참여하는 집단들, 즉 서로 대립하는 노동력의 부문들, 서로 맞서는 노동자, 고용주, 투자자의 기득권과 확립된 기대들을 위협함으로써 체제를 교란시킨다. 혁신의 채택이 상대적인 집단적 위치들에 미치는 효과에서 보자면 모든 혁신은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기술적인 혁신조차도 사회 전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의 참가자들에게도 불확실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들은 기계의 관념과 설계 단계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기계를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가정들의 형태로 이미 시작된다. 실제로 기술에 대한 최상의 사고방법은 자연적 요소와 재료를 우리의 이익을 위해 배치하면서 자연을 변형하는 실험과 협력체제를 재구성하는 실험의 결합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산방식을 다른 생산방식보다 더 선진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성은 그 생산방식이 앞서 말한 두 가지 실험의 결합에서 다른 생산방식보다 낫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실험의 수행에서 배운 교훈을 각각의 실험에서 구체화할 수 있다.

협력과 혁신의 요구들은 상호 간에 의존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그러나 두 가지 요구들이 철저하게 모순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긴장의 완전한 해소를 결코 희망할 수 없겠지만, 어떤 협력체제는 이러한 갈등을 줄임으로써 다른 체제와 차이를 만든다. 예컨대, 어떤 협력체제는 불안정에 맞서 안전장치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과 사람, 기계, 기타 자원의 혁신적 재조합을 억제하는 조치들을 분리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협력체제는 사회적 안배들의 가소성을 심화하면서 이러한 가소성이 공포와 불행을 야기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내가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을 논의해온 과정에서 견지한 두 가지 관점(생산적 활동에 허용되고 요구되는 신뢰 및 재량의 향상과, 앞서 기술한 두 가지 기준에 의한 협력체제의 개선)은 중요성과 일반성에서 같지 않다. 전자는 후자의 표현이자 측면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역량을 활용하고 혁신의 필요와 협력의 필요를 화해시키는 방향에서 더 전진하는 협력체제는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서(재량) 기존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또한 참여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상호적 취약성과 불확실성(신뢰)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을 담대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보호와 기부재원의 배경 아래서 그렇게 요구할 것이다.

발전되고 확산된 지식경제의 도덕적 조건에 관한 이와 같은 비전의 중심에는 우리가 카이저에게 돌리는 것(타자와의 관계가 도구적인 것으로 그치는 이기적 교환의 영역)과 신에게 돌리는 것(칸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리가 타자를 목적 자체로 처우하는 연대에 대한 우리의 실험의 영역) 사이에 어떤 극명하고 무제약적인 모순을 부인하는 견해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이기심과 야망이 조금이라도 완화된다거나 또는 가장 친밀한 삶의 영역에 관습적으로 유보해온 상호인격적인 참여의 희망을 우리가 경제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식경제의 융성을 통한 생산력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생산의 도덕적 문화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견해이다.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도달하게 되는 문제는 우리가 도덕적 기반을 집단행동이이나 법적, 제도적 혁신을 통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를 발전시킬 수 있다.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문화적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적적이고 결합적인 효과를 통해 이러한 변화에 기여하는 기획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획들을 경제활동에 대한 반향을 포함하여 경제의 외부에서 협력적 능력을 강화하는 기획, 협력 및 혁신의 필요와 영구혁신에 우호적인 협력체제를 향한 운동 간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기획, 협력체제와 그 배후의 제도적 안배들이 최대다수의 경제주체들에게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기획 등 세 가지 항목으로 묶어 보겠다. 첫 번째 기획은 문화와 정치에서의 변화를, 두 번째 기획은 노동시장에서 안정성과 유연성의 관계를, 세 번째 기획은 시장경제의 조직방식과 이러한 시장경제가 계약과 재산권을 통해 분산적인 경제활동의 조건들을 형성하는 방식을 각기 다룬다.

경제 외부에서 협력적 능력의 강화는 경제 내부에서의 협력적 능력의 강화에 이를 것이다. 일상적 경험의 전반적 기조는 사람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을 가르칠 것이다. 특히나 세 가지 [경제외적인] 영역에서 협력의 장애물들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협력의 능력과 의지를 강화하고자 시도하는 사회혁신의 사례들을 이제 검토해보겠다. 각 사례들은 독자적으로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들 달성하는 데 일조한다. 그러한 사례들은 또한 경제활동의 도덕적 기풍에 예측 가능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경제 외부의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경험을 변화시킨다.

첫 번째 사례는 교육의 협력적 성격이다. 우리가 학교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학교들 사이에서도 교사와 학생들 간의 협력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을 협력적으로 수행하고 청년들에게 상호 간의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책임을 공유하도록 자극한다면, 협력의 충동은 개인의 형성 과정 초기에 착근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앞서 내가 서술했던 행정적 포드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취지에서 공공 서비스의 비영리적 공급과정에 국가와 나란히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것이다. 국가 외부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행동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폭력을 억압하는 경찰과 더불어 공동체의 자체 조직을 보완하면서 (서비스 제공자들 또는 사회단체들의 연합들을 매개로) 건강과 교육의 협력적 제공을 통해 대중과 시민사회 자체를 동시에 형성할 수 있다. 세 번째 사례는 신체 건강한 모든 성인이 생산체제 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원칙의 일반화이다. 자발적인 혹은 의무적인 사회봉사 활동은 정책적 법적 구조틀을 수립하여 이러한 노력이 사회적 연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협력과 혁신의 필요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면서 양자 간의 상호의존성을 활용하는 안배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러한 제도적 안배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제도적 안배들이 개념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순에 해당하지 않는 어떤 과업을 성취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제도와 관행들을 도전과 재구성에 실현 가능한 최대로 개방하면서 역량 향상적인 (경제적 교육적) 기부재원을 개인에게 제공하도록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개인의 안전장치들을 설계하는 과업이다.

이러한 과업을 제도적인 형태로 고려하기 전에 먼저 이를 심리적인 표현에서 생각해보자. 자신과 타인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려면 개인은 항구적이고 마비적인 공포 속에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은 또한 순응에서 벗어나도록 충격을 받아야만 한다. 개인의 습관적인 행동형태는 주변의 모든 변화에서 도전을 받아야만 한다. 그가 겪어온 경험이 굴성(屈性)을 보임에 따라 경험의 성질은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습관과 순응은 생명력의 적들이다.

개인은 안전과 능력을 향유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의 안전과 능력은 사회경제적 생활의 동결(凍結)을 조건으로 획득되거나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의 안전과 능력은 일단 필수적인 보호이익과 권능의 안식처에서 확보되지만 개인을 둘러싼 사회와 문화가 변하는 것을 지켜보려는 의향의 이면임에 틀림없다.

개인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의 일부는 자신의 성격(경직되고 습관적인 자아 형태와 그 존재방식)에 대한 저항이며, 이러한 저항은 경화된 인성형태 안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상황에서 우리를 구제한다. 그러나 사회와 그 경제 질서로서는 그 해법은 사회경제적 생활의 가소성(可塑性)-도전과 변화에 대한 개방성-에 대한 통제 요소들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안전과 능력의 보증을 제외시키는 것이다. 가소성에 대한 일정 정도의 간섭은 피할 수 없다. 안전과 능력을 보장하는 권리와 편익들은 비교적 안정적이어야 한다. 즉 그러한 권리와 편익은 단기적 정치의 의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외는 상대적인 제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보증과 기부재원의 내용과 범위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증과 기부재원을 최상으로 발전시킬 수단도 항상 논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적 의제를 더 훌륭하게 확장하기 위하여 더욱 많은 것을 더욱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하여 정치적 경쟁과 사회적 실험의 의제에서 어떤 것을 제외한다. 우리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식과 함께 혁신이 초래하는 불안정에 맞선 안전에 대한 의식을 사회경제적 생활의 기성형태를 보존하는 데에 허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경제, 사회, 심지어 주체의) 변화를 가로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권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개별 노동자-시민의 안전장치와 기부재원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방향에서 운동의 작은 단초적인 사례는 유연안전성이라는 딱지가 붙은 역사적 사민주의의 현대적 개혁이다. 유연안전성은 노동과 관련된 권리와 편익을 특정한 직업보유에 종속시키기보다는 완전히 휴대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러한 권리와 편익을 다시 규정한 것이다. 유연안전성의 제안자들은 이를 오늘날 가장 부유한 나라의 통치 엘리트들이 가진 지배적인 기획(유럽식 사회보호와 미국식 경제적 유연성의 조화)의 일부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유연안전성을 이와 달리 영구혁신의 충동을 내부화하는 협력체제들을 발전시키려는 더욱 광범위한 기획에서 하나의 계기이자 하나의 단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우리가 목표를 이렇게 다시 규정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병행하는 기획들을 통해 다양한 수단으로 이 목표를 추구해야만 한다. 첫 번째 기획은 예컨대 출생시에 모든 사람에게 그가 삶의 전환점마다 융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상속분, 즉 사회의 생산자산에 대한 지분을 제공함으로써 안전장치와 기부재원의 패키지를 발전시킬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기획은 변화의 기회로서 위기[전쟁이나 경제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회의 기성 구조를 단편적이지만 누적적인 재구성에 더 개방함으로써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을 동시에 재정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기획은 특정한 순간 또는 특정한 쟁점과 관련하여 충돌할 소지도 있다. 그러나 똑같은 비전이 두 가지 기획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전면적인 모순이나 지속적인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어떤 단일한 조직도 만인의 잠재력이나 모든 경제적 실험 노선의 가치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비인격적 옮음(right)의 어떠한 체계도 좋음(good)의 실질적 관념들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인격적인 옮음의 체계는 공상적이고 위험한 중립성의 이상을 모순과 시정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유용하고 가치 있는 목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산적 경제의 이상도 자연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즉,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연적인 체계가 없음은 물론이고 시장질서의 확정적이고 전(全)목적적인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19세기에 가장 순수하고 비타협적인 형태로 발전하였고 그 이후 사법과 법리에서 중심적 지위를 결코 상실한 적이 없는 재산권과 계약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고전적 자유주의 법학]은 사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경제적 사고를 우리가 사유하고, 수립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경제적 기획을 우리가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자연적인 법률 언어가 아니다. 그러한 특정한 접근 방법은 제한적인 언어일 뿐이고 이러한 접근에 유리하게 동원된 중립성과 탄력성의 구실로 더욱더 제약적으로 되었다.

시장을 조직할 때 어떤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낫다. 어떤 방식들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의 자원과 기회에 대한 더욱 분산적인 접근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방식들은 또한 경제적 분산을 제도적이고 법적으로 형성하는 데에서 발명과 실험을 허용하기 때문에 더 나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장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분산적 경제활동을 위한 수단의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재산권과 계약의 체제에서도 다양성과 실험의 여지가 클수록, 시장 조직이 특정한 집단, 계급, 경제주체들 및 생산활동 직군들에게 기득권을 제공하게 될 개연성은 그만큼 작아진다. 각 재산체제(달리 말하면, 생산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을 조직하는 각각의 방법)는 서로 다른 유형의 행위자와 이해관계를 우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개방성의 최적 보장은 시장근본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한 시장형태를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형태로 성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형태들(재산과 계약의 많은 체제들)이 동일한 시장경제와 동일한 법체계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하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대체로 소수의 편익을 위한 단일한 시장형태의 구축 결과는 협력적 의지와 능력의 강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기업이나 경제에서 나아가 국가 전체 차원에서) 공통 대의의 함양에 대해 정당한 의구심을 던질 것이다. 연대의 이상을 위한 기본 쟁점은 언제나 그 구조적 가정들(분산적 활동의 기회를 풍부하게 간직한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을 통해 연대의 이상이 당연시하는 것)을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연대 방침의 해악은 불변적이고 심지어 인식조차 안 된 제도적 틀에 부여된 후광으로 복무해온 것이다. 협력의 요구는 갈등을 완충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예컨대, 협력의 요구는 특히 20세기 양차대전의 간전기 국면에서 유럽 정치와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발생하였다. 즉, 기업과 경제부문 전체에서 노동자와 소유자의 협력을 촉구하는 방식은 계급갈등을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조화로 전환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국가의 시야에서 노동의 전투성과 사회주의적 선동에 맞서는 무기로 봉사하였다. 그러한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발전되고 확산된 지식경제가 의존해야만 하는 도덕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약화시키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협력체제의 향상에서 수용할 만한 유일한 형식은 이러한 오류를 회피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오류를 회피하기 위해서 협력체제는 시장경제의 유일하고 배타적인 조직 방식에 의해 포획되는 상황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한 저항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협력체제는 분산된 경제적 활동 및 생산적 자원과 기회들에 대한 분산된 접근이 동일한 시장경제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하도록 구조화하는 대안적 방식들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시장의 제도적 재구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금 논의해 보겠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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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21/08/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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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전세계적으로 지식경제는 선진 제조업, (종종 선진 제조업과 결부된) 지식집약적인 서비스, 정밀공학, 과학적 영농 등 고립된 전위 부문들로 한정되어 있다. 지식경제는 제조업과의 독점적인 연관성을 상실했지만 각 부문에서는 여전히 프린지로 남았다.

지식경제와 여타 생산체계를 분리하는 경계선은 실제로 항상 다공성(多孔性)을 띤다. 전위 부문과 기타 부분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경제활동 및 경제능력의 잠재 영역에서는 유출(leakage)이 존재한다. 많은 요인들이 그러한 누출에 기여한다.

지식경제 기업들이 판매하는 지식집약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출시는 그러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숙련기술의 전파를 요구한다. 지식경제의 기술과 관행이 과학사에서 친숙한 유추와 일반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산 라인과 새로운 소비 분야로 확장됨으로써 그러한 기술과 관행은 발전한다. 외국의 전위 부문을 모방하고 자신의 전위 부문을 발전시키려고 안달하는 정부는 지식경제를 그 다공성 주변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우대하는 개방적이고 실험친화적인 규제접근을 학습한다.

이와 같은 보급의 촉진요소들을 감안할 때 지식경제가 번창하는 프린지들로 대체로 지속적으로 한정되고 또한 결과적으로 지식경제의 가장 심오한 속성들의 표현과 더 큰 잠재력의 성취가 억제되어 왔다는 사정은 더욱 더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다음 절에서 주장하려는 바와 같이, 지식경제의 국한성은 축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유출이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방식과 생산역량의 향상을 위한 첫 번째 조치라고 판명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출은 새로운 생산방식의 심오하고 확산된 형태를 향한 운동의 출발점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유출은 자생적으로 그와 같은 출발점으로 복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적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행동해야만 한다. 이러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때까지 포용적 지식경제는 요원한 목표로 머문다.

지식경제의 상대적 고립성은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고립상태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립상태의 자연스러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의 제한성으로 인해 규모의존적인 기술과 대량생산의 절차를 흡수하지 못하게 된 전통적 소기업을 예외로 하고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은 경제의 모든 부분의 변혁에 급속도로 영향을 미쳤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과 달리 지식경제는 어떤 특정 분야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특징적인 기술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거의 모든 규모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지식경제의 역량은 소기업의 세계가 다른 사유들로 지식경제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기업의 세계를 지식경제에 개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경제가 고립적인 전위 부문들에 국한되는 현상은 완고하게 지속되어 왔다.

지식경제는 고립성을 회피하지 않은 채 제조업에의 국한성에서 탈피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어떠한 경제체제들에서도 경제 전반적인 입지를 구축하지 않은 채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들과의 독점적인 관계도 극복했다. 대량생산의 절정기에 자본집약적 경제와 노동집약적 경제 사이의 교역은 국제적 노동분업의 축일뿐만 아니라 국제통상론의 핵심적인 분석 주제였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공장제 대량생산)은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에 집중되었다. 더 원시적인 노동집약적인 생산은 나머지 국가들(개발도상국이라는 광대한 주변부)에서 지배적이었다.

새로운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출현은 세계의 노동분업에서 현저한 변화와 동시에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적 전위는 세계의 모든 주요 경제체제들, 즉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들뿐만 아니라 주요한 개발도상국들(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서도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경제체제들의 선진적인 부분들은 기술, 자원뿐만 아니라 사람, 절차,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크든 작든 서로 간에 직접적으로 교통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어떤 경제주체들과 세력들보다 이러한 전위들의 네트워크가 세계경제의 지배세력으로 간주될 자격을 더 잘 갖추고 있다. 그에 비해 국제금융은 부차적인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적인 노동분업에서 드러나는 지식경제의 국제적인 입지는 지식경제가 현재 국한되어 있는 프린지들에 포획된 상황이 제기하는 수수께끼를 심화시킬 뿐이다. 지식경제는 모든 주요한 경제체제뿐만 아니라 각 주요한 경제체제의 모든 부문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식경제는 여전히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경제의 국한성과 연관된 세력들은 경제적 침체를 우대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협력한다. 생산성 증가의 둔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지식경제의 고립성에 대한 대가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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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6/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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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노조, 한국노총은 30일(화) 오후 2시,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2021 주목해야 할 국민연금기금운용 전망과 과제: 국민신뢰 회복방안과 수탁자책임 활성화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2. 국민연금기금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세력에 의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용당하는 등 국민적 신뢰가 상당히 훼손된 바 있습니다. 이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금운용체계 상설화 및 체계개편이 일부 추진된 바 있으나 여전히 개선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황입니다. 기금규모가 1,000조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기금은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략적 자산배분 방식 개선 및 신규자산군 개발, 국내자본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조절하는 문제, 해외자산 및 대체투자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방안 마련, 수탁자책임 활성화의 기반이 되는 적극적 주주활동 강화 등 다양한 내용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이에 국민연금기금운용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노동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참여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수탁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을 고민하는 자리로 토론회를 마련하였습니다. 기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끝.

 

[첨부] 토론회 개요

2021년 주목해야할 국민연금기금운용 전망과 정책과제
-국민신뢰 회복방안과 수탁자책임 활성화를 중심으로-

작성자: 한국노총 김정목 정책차장(21.03.15.)

⑴ 취지 및 배경
한국노총은 올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정책과제들을 묶어 ‘2021년 국민들이 주목해야할 정책개혁과제’ 연속토론회를 진행하려 함. 이 중 첫 번째 주제로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전망과 과제’를 다루는 토론회를 추진하고자 함. 지난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 이후부터 제기된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해 그동안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상설화 및 체계개편 등을 추진한 바 있음.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황임. 기금규모가 1000조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기금운용의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략적 자산배분방식 개선 및 신규자산군 개발과 국내자본시장에 대한 파급효과를 조절하는 문제, 해외자산 확대 및 대체투자 확대 등 관련 리스크 관리 방안 마련, 수탁자책임 활성화로 소위 경영활동의 개선이 필요한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강화 등 다양한 영역의 개선방안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임.
상기된 내용을 다루고자 2021년 국민연금기금운용의 현재 상황을 전문가로 하여금 진단케하고 향후 노동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함.

⑵ 구성
ㅇ일시: 2021년 3월 30일(화) 14:00 ~ 16:30

ㅇ장소: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

ㅇ주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ㅇ공동주최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김성주, 정춘숙, 강선우, 김주영, 최혜영

ㅇ좌장 : 정용건│금융감시센터 대표

ㅇ발제
① 국민연금기금운용 현황과 과제: 원종현│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② 국민신뢰 제고를 위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성화 방향: 이상훈│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ㅇ토론
① 박기영│한국노총 사무처장
② 류제강│KB금융노조 위원장
③ 정해식│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④ 조윤남│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
⑤ 최봉근│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ㅇ포스터

The post ‘2021 주목해야 할 국민연금기금운용 전망과 과제’ 토론회 개최 appeared first on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금, 2021/03/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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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개혁이 또 다시 좌초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6/1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종시 세종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하나의 안을 내놓으면 논의가 경직될 수 있다며 21대 국회가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가닥을 잡아주길 기대하고, 아니면 다음 대선에서 주요 아젠다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발언하며 지난해 10월 “단일안을 제출하겠다”던 발언을 뒤집었다. 연금제도 개혁을 책임진 소관부처의 수장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참으로 무책임한 행태이다. 이에 연금행동은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통해 시민의 노후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후퇴를 방관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속히 공적연금강화의 제도개혁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국가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공적연금제도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무연금, 저연금에 놓여 더 이상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을때까지 열악한 노동시장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자의 78%는 월 50만 원 미만의 연금을 받고 있다. 해고와 퇴사가 빈번한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특성상 연금액과 밀접한 가입기간 전망도 서구와 달리 길지 않을 것이기에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2028년까지 연금 소득대체율은 지속적으로 삭감될 예정이기에 더욱 우려가 크다. 

 

     고령화 되어가는 한국사회의 인구구조 역시 높은 노인부양비로 이어져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노동자는 기여금을 공제했음에도 사업장 체납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영세자영자 등 지역가입자의 납부예외와 체납의 증가로 국민연금 사각지대 확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등 제도에 포괄되지 못한 국민의 노후문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 땅에 태어난 국민이 열심히 노동시장에 참여한 이후 안심하고 노동시장에서 은퇴하여 인간다운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사항인 소득대체율 상향과 이에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  및 가입자 확대를 위한 법률 및 제도개혁을 즉시 단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혁을 또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한 것은 그동안의 과정을 망각한 것과 다름 없다. 2018년 10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에서 여러 사회적 주체들이 모여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쟁점사항이었던 연금급여의 적절성, 지속가능성 과제로 대표되는 소득대체율 – 보험료율은 소득대체율 45% 동결 및 보험료 3% 단계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과반수 이상의 다수안과 소수안 2개 등 3개 안으로 합의에 실패했으나 국민신뢰제고, 보험료지원 및 크레딧 등 사각지대 해소, 기초연금 내실화, 연금개혁의 사회적 논의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은 연금특위 민간위원 전원의 일치로 권고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사정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을 국민에게 약속하고 집권한 현 정부는 경사노위의 논의 결과를 반영한 정부법률개정안 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였다. 당연한 결과로 이후 연금제도 개혁은 미진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 보험료율의 논의와 처리가 없었으며 경사노위 권고문으로 발표된 내용 중에도 납부재개자에게 1년간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논의되거나 처리되지 못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개혁으로 시민의 노후를 지켜야 한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문재인 정부가 지지율에 연연하여 제도개혁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21대 총선을 통하여 정부 여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개혁입법을 완수할 수 있도록  무려 180석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몰아 줬다. 이제 단독으로 모든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정부 여당이 더 이상 연금제도개혁을 회피한다면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제도개혁의 기반이 될 국민신뢰제고의 법 개정, 그동안 제대로 사회적 기여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부분을 정상화하는 출산, 군복무 크레딧 확대, 코로나 19로 심화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영세지역가입자 및 저소득 노동자 보험료 지원, 체납사업장 노동자 구제 및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제도 포괄, 현재와 미래세대의 저급여 문제완화를 위한 소득대체율 삭감 중단, 제도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정책 마련 등 어렵더라도 차근차근 제도개혁에 나서는 것이 정공법이다. 각자도생으로 일부 계층만 적정한 노후를 맞이하고 다수는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는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정부와 국회는 지금 당장 든든한 공적연금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개혁에 착수해야한다.

 

2020년 6월 18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붙임: 성명 원문

The post [논평]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개혁으로 시민의 노후를 지켜야 한다. appeared first on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목, 2020/06/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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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공동체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다태국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정상회의에서 아세안 10개국과 한···호주·뉴질랜드·인도 6개국(인도는 추후 참여)이 참여하는 자유무역 경제공동체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이다.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상개시를 선언하고, 28차례 공식협상과 16차례의 장관회의, 3차례 정상회의를 개최한 지 7년 만이다향후 시장개방 등 미세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타결 후 공동서명을 추진키로 했다아울러 수준 높은 상호호혜적 협정을 통한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무역시스템 조성공평한 경제발전과 아시아 경제통합 심화에 대한 기여 등 RCEP의 지향점을 재확인했다바야흐로 하나의 아시아공영의 아시아를 향한 꿈, ‘아시안 드림은 현실의 실천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말했다새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로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는 아세안+3 정상회의 자체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이기기 위해 창설됐음을 짚은 것이자현재 범람하는 배타적 국가주의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아시아를 덮친 IMF 외환위기가 바람부는 날이었고현재 보호무역주의가 바람부는 날이며한반도 전쟁의 종식과 한반도의 평화번영이 달려있는 현 정세가 바람부는 날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집을 짓는 것이 순탄하진 않았다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도 냉전체제가 짓눌렀다냉전이 해체되는 1980년대 말에 아시아경제공동체가 제안된 적이 있으나미국과 유럽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199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 13개국 간 포괄적인 협력을 위한 비전을 도출하기 위해 각국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동아시아비전그룹을 제안했다. ‘동아시아비전그룹의 최종보고서, ‘평화·번영·발전(3P:Peace, Prosperity and Progress)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다음 해 채택됐다. 2001년 부르나이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설치 타당성과 방안을 검토하도록 산하 각료회의에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공동체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바야흐로 하나의 아시아, 공영의 아시아를 향한 꿈, ‘아시안 드림’이 현실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태국 방콕의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아시아는 아시아를 자각했다.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며 동아시아 통합운동의 물꼬를 트게 된다. EU와 달리 금융협력부터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동아시아에서 금융협력이 일어나고 TPP, RCEP, CJK(한중일) FTA, AIIB 등 거대자유무역협정(Mega Free Trade Deal) 협상 및 개발금융기구 창설 등이 이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주체적인 통합노력에 비해 동북아시아의 그것은 참으로 부족했다미국과 일본의 태도 때문이었지만한반도의 냉전이 통합을 가로막는 구조물이었다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경제통합은 요원하다.

다행히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금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열린다면이는 세계사적인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중간수준의 실질적 합의 즉핵동결과 종전선언 그리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가 교환될 수 있고더불어 완전한 북핵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를 최종목표로 천명할 것이라는 점에서다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를이념과 체제의 대결장이었던 한반도를평화지대로 경제협력지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벌크달러 북한반입을 허용하면서 대북제재 해제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이다미래는 분명히 밝다.

무엇보다도동아시아의 거대한 통합운동에 북한이 참여토록 해야 한다북한 역시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마땅하다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본격적 개방이 북한경제 회생의 지름길이며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기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가령 버클리대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는 북한 나진·선봉과 중국 창지투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를 묶는 동북아자연경제권(Natural Economic Territory:NET) 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부존 자원상태와 지리적 근접성으로 볼 때 하나의 경제권으로 개발된다면 상호발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교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적·다자간·남북한 경제협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개발은행’ 설립을 통해 공적자금과 민간자본을 통크게 결집하고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발전을 경영하는빅 픽쳐가 준비될 때이다

 

중기이코노미, 2019년 11월 5일자와 동시 게재된 글입니다.

최민식

중기이코노미 객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동아시아신경제이니셔티브 이사장

수, 2019/11/0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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