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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배상 이행” 한국 변호인단 내일 신일철주금 3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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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배상 이행” 한국 변호인단 내일 신일철주금 3차 방문

익명 (미확인) | 목, 2019/02/14- 14:30

미쓰비시·후지코시도 방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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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일본의 강제동원 배상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강제동원 공동행동 회원들이 14일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일본정부와 기업의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2.14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아베는 강제동원 인정하고 즉각 사죄하라! 일본기업은 판결에 따라 즉각 배상하라!”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신일철주금, 미쓰비시,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강제동원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했지만 일본 정부의 압력과 기업의 판결이행 거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고 피해자의 뜻을 전하기 위해 15일 피해자 대리인과 지원단이 직접 일본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들은 신일철주금을 두 차례 방문한 바 있으며 미쓰비시와 후지코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소송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세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에도 일본 정부와 기업은 계속해서 판결이행을 거부하고 일본은 판결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이라며 “신일철주금에 판결이행을 요청하기 위해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책임 있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압류로 나아갔고 압류 결정이 난지도 1개월이 지났지만 그런데도 신일철주금은 협의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신일철주금이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매각 명령 신청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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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 일본의 강제동원 배상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강제동원 공동행동 회원들이 14일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일본정부와 기업의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2.14 [email protected]

김 변호사는 “일본 정부는 매각 명령 신청이 일본기업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는 정당한 판결에 대한 이행이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후지코시와 관련, “1심과 항소심에서 동일한 판결이 났음에도 상고하고 있다”며 “후지코시가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존 판결에 근거해서 가집행 절차로 나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과 관련한 역사적 진실은 오직 하나”라며 “일본기업이 이들을 강제동원해서 강제노동시켰다는 명백한 진실이 있는 한 일본기업은 진실에 근거해서 배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영숙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지난 1월 25일 미쓰비시 소송의 원고 김중곤 할아버지가 끝내 배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이 90세가 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는 피해자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이행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이달 말까지 미쓰비시 측에 답변을 요구했는데 답변이 없을 경우 강제집행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15일 오후 2시 15분 일본의 신일철주금, 오후 3시 미쓰비시, 오후 4시 30분 후지코시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또 15일부터 이달 말까지 일본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2019-02-14>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배상 이행” 한국 변호인단 내일 신일철주금 3차 방문 

※관련기사 

SBS뉴스: “대법원판결 이행 촉구” 한국 변호인단 내일 신일철주금 3차 방문 

신안일보: ‘강제징용 소송’ 변호인단, 내일 신일철주금 3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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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회원) 알고 있었던 민문연》

( 임소장은 응답하라)

내가(회원) 낸 회비는 모두 민문연으로 내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도 민문연으로 내었으며그 돈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발간했고 식민지역사박물관도 세우고 빌딩도 우리가(민문연)이 매입 한 줄 알았으며 총회에서 임소장이 23억 빚을 회원들이 갚아 달라고 말한 것에도 이의 없이 들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이렇게 컸구나 뿌듯했다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았는 내용을 보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허상이었다

민문연(사단법인) 하나인 줄 알았는데 관계도 애매한 단체가 몇개나 되고 역사관 기금도, 빌딩구입도 민문연과는 별개요 권리도 전무하다 우리가 낸 회비는 민문연 인건비 경비 등으로도 빠듯하여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 돈을 보태주고 자시고 할 능력도 없다 만일 민문연 돈이 그 재단법인에 넘어 갔다면 큰 회계적 범법이다 식민지박물관도 기금을 기부한 것이라 면 회원(민문연)과는 별개다(조승현 교수)

여기서 생기는 의문

1.구입한 빌딩은 우리 것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산 것도 아니라는데(권리등기에는 민문연 이름 없음) 왜 소장은 총회에서 빌딩구입시 빚 낸 23억원을 우리 회원이 갚아주셔야 한다고 했을까 (조승현교수 말이 맞다면 소장은 당연히 옳지 않다)

2.우리와 전혀 별개라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통합 경과보고와 사업계획을 왜 민문연 총회보고서에 버젓이 올려 놓았나(p46, p67)(이것 역시 조교수 말이 옳다면 소장은 월권행위요 회원을 기만한 처사 아닌가 )

3. 총회보고서에 있는 정관은 사단법인법 정관에 배치되는 내용이 많다면서 왜 지금까지 그 잘못된 정관을 민문연의 당연 정관으로 인식하도록 그대로 올려 놓아 회원들이 오해하도록 했는가?이 정도애서만 보아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틀렸다

 ●이제 임소장은 응답하라

(어느 것이 옳은지 회원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2018년 6월 22일

이기자(동부지부)(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금, 2018/06/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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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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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라(2) 

 

이민우 운영위원장, 지난 514일부터 질문을 하고 있는데 답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다시 촉구하면서, 어제(6. 25) 올린 글에서 두번째로 언급한 중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아래와 같이 다시 한번 올리니 답을 주기 바랍니다. 

(질문)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라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이유가 무언가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그러고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가

2018. 6. 25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화, 2018/06/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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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정관에서 회비 납부와 정관 준수를 의무로 정하고 있고
회원은 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사업과 활동에 참여,  자료 이용, 회보 투고를 권리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의무를 정한 정관을 비공개(정보공개청구 공개했지만)했습니다.
심지어 의사록(총회, 이사회)의 공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 비공개도 있을 수 없는일인데
의사록 마저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소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회원이 모르는-절대 알면 안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1만 3천여 회원에게 감춰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연구소에서는 회원이 알면 안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작태를 보고 어떤 회원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연구소에 쓴소리 한다는 이유로 제명하고, 사고지부로 지정하고…..
정관과 의사록도 비공개하고….
앞으로 어떤 역겁고 추한 모습을 더 보여주실 생각입니까?

회원의 기본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외치는 진실과 정의는 무엇입니까?

화, 2018/08/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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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소장 직을 그만둔 후 후임 소장 물색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신의 한 수처럼 모셔 온 분이 바로 한상범 동국대 법대 교수님이었다. 연구소로서는 천군만마요 야구로 치면 믿을만한 구원투수의 등판이었다. 왜냐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법학계에서 한교수님만큼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법학계를지배한일본법학의유산>을 발표해 법학계의 일제잔재청산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일제잔재 무엇이 문제인가>등 제목만보면연구소가 펴낸책 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한교수님은 친일청산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역사법정에세우다><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서 볼수 있듯이 독재와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구원투수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연구소 소장 재임 시절 술을 전혀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1980년대 초 평생 마실 술을 다 드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신군부 시절 불법으로 연행당해 며칠 동안 고초를 겪고 난 뒤 울화가 치밀어 매일 밤 독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법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무법이 횡행하는 시절을 살아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복기, 김기춘, 우병우 등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법꾸라지’들이 난무했기에 교수님은 ????화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라는책을펴내서법기술자들을질타했다.
또한 법 문구를 어렵게 만들고 난해하게 표현하여 특권층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한글헌법 노트><한자숭배 나라망친다>는책을 펴내기도했다.법학자로서보기 드문 한글 사랑으로 한교수님은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재일교포 단체 초청으로 일본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일교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교수님은 원고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잠시 강연하시더니 곧바로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왔으므로 이제부터 한국말로 연설하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신다. 실용에 앞서 자존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민족적 자존 나아가 인간의 존엄은 개성 출신으로서 6·25의 참화를 처절하게 겪어낸 한교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체제에 대한 본능적 저항은 한교수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멀리 지방 출장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외출 때도 늘 작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집일 때가 많다. 한번은 나에게 “시인 중에 누굴 좋아하시나?”라고 물으시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시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회적 모순과 싸운답시고 자칫 거칠고 메마를 수 있는 감정을 다독이며 사회운동의 초심을 지키라는 조언이셨을 것이다.
지방 출장 중에 부득이 한방에서 묵어야 할 때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평판에 올랐던 인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중용되어 지금까지도 몇몇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인물평들을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밖에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로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재판을 받을 당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법적, 역사적으로 박정희의 악행을 거론하며 흉상 철거는 정당하다고 저항권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한교수님은 피고인석에 선 우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제 연구소는 1991년 창립 이래 터 잡고 활동하던 동대문시대를 접고 용산시대를 연다. 동대문시대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했다면 용산시대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과 대중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동대문을 떠나며 가장 어려운 시절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던 한상범 교수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국가보안법? 허~ 참나. 머릿속의 생각을 벌주는 나라가 어딨어?”

방학진 기획실장

화, 2018/01/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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