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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덕문 대표 질문에 대한 답-절 주인인 중이 왜 절을 떠나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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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덕문 대표 질문에 대한 답-절 주인인 중이 왜 절을 떠나야 하나요?

익명 (미확인) | 화, 2019/02/12- 23:26

이덕문 대표님께  

우리말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중이 그 절 주인인데, 왜 절을 떠나야 하지요? 절이 싫어지게 만든 자들을 떠나보내야 하지 않나요? 아마 그 중은 절의 주인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니면 생각없는 떠돌이 땡중이던가  

저는 저를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의 한명)”이라고 생각하고 주인(회원)의 의무인 회비를 내왔고, 지부장으로 10년을 헌신했고 회원들의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 운영위원도 하고, 나중엔 (9, 2015.3~2017. 3) 운영위원장도 역임했습니다.  

그동안 민족문제연구소의 대개의 모든 근무자들은 연구소를 열심히 키워오고 세상에 이름을 내고 잘 해왔다고 봅니다. 우리 회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숙원사업인 친일인명사전도, 백년전쟁 비디오도 만들어내고, 역사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여러 일들도 해오면서. 그러면서 세상에 연구소 이름이 알려지고, “회원들이 연구소 취지가 좋다며 늘어나기 시작하고 회비수입도 늘고그래서 지금 그 정도면 크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연구소로 성장했습니다.

랬더니만 어느 시점부터 상근직원들이 배은망덕하게도 주인을 몰라보고 무시하며 저네들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주인들 모르게 몰래 희한한 일들을 꾸며왔던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급기야는 전국에 회원이 13천여 명이 있다고 저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우리들을 회원님이라 칭하더니 어느날, “회원 10이 그동안 십수년 동안을 모든 일을 우리 진짜 (저들에 의하면 가짜) 회원들 몰래 정기총회도 하고 임시총회도 하며 주요 대사들을 처리해왔다는 사실이 들통난 겁니다.  

그렇게 저들 회원 10끼리 몰래 총회를 하고 난 뒤 감독관청에 신고까지 해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전국의 회원들을 모아 정기총회를 또 열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모르는 전국의 진짜 회원들은 그게 진짜 총회인줄 알고 일년에 한번 열리는 총회인데 꼭 가봐야지하면서 전국 지방에서 차를 대절해 올라온 것입니다. 그 법적인 효력도 없는 가짜 총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회원 10‘(등기)이사 5명과 상근자 5이었습니다. 상근자들이 주인인 회원으로 변신해 몰래 주인행세를 한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회원이 10이라니…? 그래서 깜짝 놀라 그럼 당신들이 말하는 회원 10말고, 전국의 회원 13천여 명은 뭐냐라고 물으니 아직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듣기에 저들이 슬쩍 흘리는 말로는, 이제 주인에게 몰래 주인 행세를 한 것이 발각이 되니 이제 와서 우리들 회원(법적 용어로는 사원)”에게 당신들은 사실은 (주인인) “회원(사원)”이 아니라, 단순 기부자 내지는 아무 권리도 없는 후원 회원이었어요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았지요? 우리를 속여 온 거지요? 지난 십여년 동안이나, 완벽하게, 언제까지나 영원히 비밀로 남을 줄 알고?  

그러면 그동안 우리를 주인인 회원(사원)”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의무라며 그동안 빼간 돈 (회비)는 뭡니까? 이거 사기 아닌가요?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구요? 이덕문 미주 회원님, 그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나요?  

– “당신이 이름을 지적하면서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에 당신이 그자리가 욕심이 나서 그런것 같습니다  

이거 이덕문 회원님 생각입니까? 아니면, 집행부 어느 상근자한테 들은 얘기입니까? 하도 여러 군데, 지방에서 여러 회원들에게 똑 같이 듣는 말이라 묻습니다. 어느 지방 소위 원로라는 양반도 제에게 그럽디다. “연구소가 무슨 권한 쟁취하는 데냐? 자리를 맡고 싶으면 정치나 선거에 나가라. 그 원로는 사무국의 어떤 상근자하고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덕문 회원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더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질문들이 똑 같이 유치한지  

– “그런 생각이 않이라면 다시는 그런글 올리지 마시고 당신이 만든 단체 잘 운영하셔서 참 여인철씨가 훌륭하신 분이구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단체에 가입 할것입니다 나역시 당신 단체 운영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협조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은 뭘 새로 운영하려고 만든 단체가 아닙니다. 명칭 그대로, 비리와 부정에 휩싸인 민족문제연구소를 바로세우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 회원/일반시민 단체입니다. 이덕문 회원도 민족문제연구소를 바로 세워야겠다는 뜻이 있다면 가입 환영합니다. 연구소 회비를 중단하고 저희 민바행에 회비를 내는 회원도 있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어떤 뚜렷한 계획없이 무조건 과거 몸담았던 단체와 임원들 성명 운운하면서 사퇴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들의 이러한 비리행위는 작년 8월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의 4일간에 걸친 감사(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작년 1214일에 행정처분(미승인 정관 사용에 대해 엄중경고, 기부금 부적정 사용에 대해 기관경고, 그리고 시정조처, 그 결과 이사 5인 전원과 감사 2인 전원에게 경고 처분)을 받게 되었으며 이는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상 2000년 이래 두 번째 있는 일로 연구소를 완전히 믿고 따라온 전국의 13천여명의 회원들에게는 참으로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집행부 임원진/집행부에서는 일체 한마디 반성 또는 사과도 없이 침묵하며 오히려 그동안 문제제기해온 저희 민바행 회원들을 음해 세력이라 깎아 내리며 법적 조치 운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 민족문제연구소의 참 모습이란 말입니까? 오늘의 민족문제연구소를 있게 하신 고 임종국 선생께 부끄럽지도 않단 말입니까?  

저희 민바행은 다시 말씀드리면, 뚜렷한 계획과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오래된 주인인 회원들을 속여 가며 연구소를 비리와 부정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그럼으로써 전국의 회원들에게 치욕을 안겼을 뿐 아니라,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성원해오던 국민의 신망을 저버린 비리의 주범들과 책임자들의 책임을 반드시 묻고 민족문제연구소를 바로세우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 민바행은 “국민 주권”, 아니, 민족문제연구소에 “회원 주권”을 바로세우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 길에 이덕문 대표님도 같이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9. 2. 12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제명자

(9) 운영위원장 여인철  

***************************  

저는 누구를 지지하지 않고 중이 싫으면 절을 나간다고 합니다  

아마 여인철씨도 민족 문제 연구소가 싫고 마음과 뜻이 맞지 않아서 나가시고 당신 마음과 뜻을 생각하시면서 새 단체를 세우셨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시고 단체의 정관이나 계획등등 바로 세워서 참 그사람 여인철씨가 이끄는 단체가 마음에 들고 하시는 사업이 옳다고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 세운 단체에 가입할것입니다  

당신이 이름을 지적하면서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에 당신이 그자리가 욕심이 나서 그런것 같습니다  

당신이 쓴 글 다읽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단한줄입니다 부정 불의 등등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라면 법에서 판결할것입니다 누구누구 일하는 분을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가 탐나서 그런가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않이라면 다시는 그런글 올리지 마시고 당신이 만든 단체 잘 운영하셔서 참 여인철씨가 훌륭하신 분이구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단체에 가입 할것입니다 나역시 당신 단체 운영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협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뚜렷한 계획없이 무조건 과거 몸담았던 단체와 임원들 성명 운운하면서 사퇴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당신네가 만든 단체가 날마다 발전하여 민중의 마음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 전 미주공동대표 이덕문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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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실수로 입금했습니다. 명단에서 삭제좀 부탁드립니다.

2013년 부정선거 주장때부터 주사파들에게 악용당하면서 피해를 많이 본 이석훈이라고 합니다.

실수로 식민지역사박물관 후원하였습니다. 명단에서 삭제좀 부탁드립니다. 문자 메세지도 그만 주시길 바랍니다.

이석훈  010-4335-7501     [email protected]      790812-1######

월, 2018/09/1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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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때미꼬?

민중이지팡이!

글카고

저울사들

칼사들…..동창핸….아나나?

갑장낼보재이,,,,,도미징친구차말로친구

渡美증칭구!

우짜건노 옷사이피고밥사미고잠재구고

 

…..&&&&그마드리  漢다카는데,

 

 

토, 2018/03/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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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자료 보는 참석자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1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시, 서울대인권센터와 승선명부·신문 기사 등 비교·검토
대구 거주 ‘하토가와 후쿠준’, 故 이복순 할머니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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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 섬의 한국인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 함대 기지가 있던 남태평양 ‘트럭섬'(Chuuk Islands)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의 명부와 사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과 함께 미군 전투일지, 호위함 ‘이키노’호의 승선명부, 사진 자료, 1946년 3월 뉴욕타임스 기사 등의 자료를 비교·검토한 끝에 이들 위안부 26명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11일 밝혔다.

시는 “그동안 증언으로만 있었던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트럭섬, 공식 명칭 ‘축(Chuuk)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州) 가운데 하나인 섬으로 태평양 남서쪽에 있다. 일본식 발음인 ‘토라크’를 접한 한국인들은 이곳을 ‘트럭섬’이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자료를 발굴해 조사·분석해 이뤄졌다.

미군 전투일지에 따르면 당시 트럭섬에서 귀환한 1만4천298명 가운데 조선인은 3천483명이었다. 이 중 군인이 190명, 해군 노무자가 3천49명, 민간인이 244명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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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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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조선인들은 트럭섬 환초 ‘드블론’이라는 곳에서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이 배에는 조선인 위안부 26명과 아이 3명이 타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946년 3월 2일 자 ‘트럭의 일본인들은 포로가 아니다’라는 제하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사는 “트럭섬 사령관인 해병 준장 로버트 블레이크에 의해 조선인과 27명의 조선인 위안부(Comfort Girls)들이 보내졌다”며 “블레이크 장군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남아서 미국인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른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바다에 빠뜨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는데, 하지만 블레이크 장군은 그러한 일을 듣지 못했다”고 묘사했다.

연구팀은 이 기사가 위안부를 27명이라고 적은 것은 아이 3명 가운데 1명을 위안부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키노호 승선명부를 보면 승객 368명 가운데 조선인 249명, 여성과 아이 29명이 확인된다. 여성 26명과 아이 3명의 이름·직업·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성은 ‘노동자’, 아이는 ‘무직’으로 돼 있다.

시는 “다른 문서와 비교를 통해 이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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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이복순 할머니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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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이름이 적힌 이키노호 승선 명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 [그래픽] ‘트럭섬’으로 끌려간 위안부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이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으로 적혀 있어서 신원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인물이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돼 있는 고(故) 이복순 할머니라는 점을 판명해냈다.

이복순 할머니는 생전 구술자료를 남기지 않고, 1993년 12월 정부에 피해를 신고했을 때에도 간략한 피해 내용만 남겨 삶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이 생전 이복순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이인순 관장에게 트럭섬 위안부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며칠 뒤 할머니의 아들도 이 사진이 자신의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울, 경북 안동, 대구의 공무원들이 자료를 뒤진 결과 하토가와 후쿠준이 할머니의 창씨명이 맞고, 주소지도 예전에 그가 살던 곳과 일치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시는 “할머니의 남편 호적이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계장은 한자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온종일 제적등본을 뒤져 해당 자료를 찾아줬다”고 관계자의 노고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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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이 같은 자료를 종합해보면 이복순 할머니는 1943년 트럭섬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다. 일본 패전 후 그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시 우라가 항으로 갔다.

이 할머니는 이후 도쿄로 갔다가 규슈 후쿠오카 현 하카타 항에서 부산행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26명 가운데 이복순 할머니를 뺀 나머지 25명의 구체적인 신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나머지 할머니들의 신원도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이날 오후 1시 30분 서울시청 신청사 3층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발표한다.

또 지난해부터 2년간 발굴·축적한 일본군 위안부 사료를 바탕으로 내년 1월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1·2권을 출간한다. 내년 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국·중국·일본의 전문가와 단체를 초청해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2017-12-11> 연합뉴스

☞기사원문: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관련기사

☞뉴스1: 일본군 위안부 남태평양 ‘트럭섬’까지 끌려갔다…서울시 첫 확인(종합)

☞민중의소리: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한국NGO신문: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명부, 사진 … 서울시 첫 확인

☞KBS: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첫 확인

※뉴스영상

☞MBC: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화, 2017/12/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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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57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7월 26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제57차 자료기증을 했다. 주요자료는
1942년생 황OO가 경기도 강화국민학교, 강화중학교, 강화여자상업고등학교, 경기도농촌진흥
원 등을 거치면서 받은 상장과 수료증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8월 2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히구치 유이치 공동대표가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해협????, ????재일조선인사연구???? 등 소장자료 10점을 기증하였는데, 일본으로 돌아간 후인
8월 8일, 자택에서 소장자료를 정리하다가 기증자료를 발견하여 <조선신궁연보>(1936), <조선문
학사>(1981) 등 26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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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유족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가지고 있는 사노 미찌오 호우센 대학 교수가 「야스쿠니의 집靖國の家」 문패 1점을 기증했다.
8월 12일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이 <구일본군조선반도출신군인·군속사망자명부>(2017) 1권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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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홍종화 작가가 <혈의 누> 등 도서 3권을 기증했다.

8월 18일 김민철 책임연구원이 단행본 등 다수의 책을 기증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후 현재까지 피폭자들의 권익을 확보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운동에 앞장서 온 곽귀훈 회원(경기동부지부)이 8월 21일 <世界>(2016~2017)
총 14권을 기증했다.

8월 25일 김승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民族日報>(1990) 1권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월, 2017/09/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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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문리

은인아

인은아!!

박교수님이  연구소를  고만 두었다는 집현전들이  사실인지,

그만두었다면,

박교수님의 건강과  원하시는 일  잘되고,

다오메

상경하면,

형제서로만내

함바끄럭

똥술을

(수고 하이소)

 

화, 2018/05/29-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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