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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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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익명 (미확인) | 화, 2019/02/12- 21:05

알찬 전시 내용 가득…찾는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아
日관람객 “3·1운동에 한국인 프라이드 대단하다 느껴”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많은 일본인은 3·1 독립운동은커녕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평화적으로 저항한 한국인들의 독립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일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東京).

도쿄에서도 중심가인 신주쿠구(區) 오쿠보의 한국광장 빌딩 7층에는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고려(高麗ㆍ일본발음 고라이)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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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광장 빌딩 7층의 고려박물관에서 일본인들이 주관하는 ‘3ㆍ1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모습.

이곳에서 3·1 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전시회가 지난 6일 시작됐다.

오는 6월 2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아직은 일본인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걸음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 시민들만의 힘으로 2001년 12월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배워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모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700여 명이 연회비로 5천엔(약 5만원)씩을 내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 외에 수시로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전시회를 시작했다.

기획전은 자원봉사 활동가 80여 명이 7~8명씩 한 조를 이루어 매번 한국 역사에 연관된 주제로 마련하는데, 이번 3·1절 기획전은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8명이 매달려 1년 6개월 정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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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에서 이사 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하라다 교코 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박물관 회원 6명을 포함한 14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직접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천안 유관순기념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 제암리순국박물관, 서대문형무소 등 3.1운동 관련 자료를 모을 수 있는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해 총 24장의 패널로 3·1운동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리한 전시물을 내놓았다.

작년까지 고려박물관 이사장을 지낸 뒤 지금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라다 교코(77) 이사는 7일 “모든 멤버들이 함께 공부하고 배우면서 전시 패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봉사자들이 꾸민 전시회라고 했지만 내용은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찼다.

3·1운동 이전의 한일 관계 역사를 먼저 소개한 뒤 3·1 운동 전개 과정, 종교의 역할, 여성의 참가, 제암리 학살사건, 3·1운동 당시의 신문보도와 일본인의 관점, 3·1운동 이후 100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사를 핵심을 빠뜨리지 않고 자료사진까지 곁들여 명료하게 설명했다.

3·1 운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24장의 패널을 훑어가면 한국인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 왜 평화적인 만세 운동에 나섰는지, 일제의 당시 대응은 어땠는지,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엇갈린 시각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3·1운동 관련 기술이 거의 돼 있지 않는 일본 역사교과서 여러 종을 펴놓았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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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 전시장에 펼쳐 놓은 일본 역사교과서. 한국인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인 3·1 운동이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하라다 이사의 설명이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하라다 이사는 “3·1 독립운동 정신에는 동양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면서 “우리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배우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회 시작 이틀째인 7일까지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1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하라다 이사는 “일본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줘야 하는데 몇몇 매체가 문의만 하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다마키 시노(56·고교 영어교사) 씨는 “한국에 여러 차례 갔는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도 둘러본 적이 있다”며 “3·1독립운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프라이드(자긍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방한 때의 인상을 전했다.

다마키 씨와 3·1운동 기획전을 함께 관람한 니와 쇼코(57·고교 일본어 교사) 씨는 “두 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박물관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email protected]

<2019-02-07>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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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의원, 친일 인사 기준·청산 용어 등에 문제 제기
오는 12일 임시회서 심의 재개

경남도의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창원=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경남에서 일제잔재 청산 관련 조례안이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해 그 배경에 의문이 쏠린다.

6일 도의회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을 포함한 28명은 ‘경상남도교육청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다.

조례안은 일제 식민통치로 도내 학교에 남아 있는 유·무형 흔적을 청산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유사한 조례는 경남도, 제주도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지만, 해당 조례안은 도의회에서 지난달까지 두 차례 임시회를 거치면서도 교육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조례안이 처음 상정된 지난 3월 16일 제383회 임시회 제1차 교육위원회에서는 청산 대상과 용어 등을 두고 일부 의원의 반대가 이어졌다.

국민의힘 윤성미 의원은 당시 회의에서 “일제잔재에 대한 의미, 기준과 범위가 불분명하다”며 도교육청이 앞서 학교 내 일제잔재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한 점을 문제 삼았다.

윤 의원은 “정부가 공식 인정한 친일 반민족 인사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선정된 1천6명임에도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뭔가”라며 “친일인명사전은 4천389명을 친일 인사로 규정하는데, 판단 기준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 법령이나 근거 없이 조례가 시행되면 도교육청 추진 사업과 같이 일방적 기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추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황재은 의원도 윤 의원 질의 내용을 포함해 조례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친일 인사 명단 발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의힘 조영제 의원은 “(도교육청이 앞서 청산 대상으로 꼽은) 교가들은 동문들이 몇십 년간 부른 익숙한 것이어서 없애라는 데 반발이 많다”며 “일제잔재인지도 몰랐는데 지금 와서 일본을 따르는 사람이 지었다고 교가를 없애야 한다면 언어도단 아닌가”라고도 말했다.

조 의원은 또 조례안에 명시된 일제잔재청산위원회와 관련, “‘위촉직 위원은 (…) 일제잔재에 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교육감이 위촉한다’고 돼 있는데, 주관적 요건에 머물러 편파성을 보일 수 있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용어도 ‘일본은 다 나쁘니까 일본을 다 배척하자’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했다.

같은 당 이병희 의원은 “조례를 만드는 데는 기준, 원칙이 필요하다”며 조례안의 심의 보류를 제안했다.

일제잔재 청산 취지에는 모두 동의하는 만큼 세부적 이견은 조례안 통과 뒤 위원회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조례안 찬성 의견도 이어졌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우리는 (학창시절) 일부 사람들이 친일행위를 했거나 강제징병을 독려하는 시를 썼다는 걸 모르는 상태에서 배운 것들이 있는데, 대한민국 미래를 열어갈 다음 세대는 왜곡되고 편협된 교육을 벗어나 일제잔재 청산과 더불어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당 김성갑 의원도 “일제잔재에 대한 구체적 대상과 범위가 다소 불명확하다고 하는데, 사람들 견해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그걸 명확히 하고 조례를 정하려고 하면 오랜 시간을 두고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일제잔재를 더 빨리 청산해야 함에도 늦은 감이 있다”며 “조례가 통과돼도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구성원들끼리도 서로 조율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정리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송순호 위원장은 “윤 의원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특별법을 만들 때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제외된 사람도, 선택된 사람도 있다. 정치적 협의로 만들어낸 특별법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조례안은 결국 해당 회의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심의 보류 결정됐다.

바로 다음 달 열린 지난 4월 제384회 임시회 때는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조례안 심의는 오는 12일 열릴 제385회 임시회 제1차 교육위원회에서 다시 이뤄진다.

기존 조례안에 반대 의견을 낸 의원들은 일제잔재 청산 대상을 특별법에 따른 친일 인사로 규정한 내용 등을 반영한 수정안을 낼 예정이다.

조례안 상정 직후부터 찬반 의견 차가 컸던 만큼 이번 임시회 때 조례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email protected]

<2021-05-06> 연합뉴스

☞기사원문: 경남 일제잔재 청산 조례안 수개월째 표류…상임위 통과 난관

금, 2021/05/0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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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국가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우상으로 군림하며 가장 가공할 폭력과 살상을 저질러왔다. 국가에게서 우상의 가면을 벗겨내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윤리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수레가 되어야지 국민이 국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우일ㅣ베드로 주교

지난 3월28일 일본에서 96세의 재일교포 한 분이 뇌출혈로 타계하였다. 성함은 ‘이학래’, 1925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봄 어느 날 돌연히 마을 면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총독부에서 남방포로감시원 모집이 나왔는데, 네가 가라’는 통보였다. 2년 근무에 월급도 나온다고 했다. 17세 소년은 군인으로 징집되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군속 신분으로 타이와 버마를 잇는 국경지대의 철도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게 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동남아 전선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연합군 포로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포로들 감시를 위해 3천여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동원되었다. 이씨가 배속된 곳은 타이였고 영화 <콰이강의 다리> 이야기로 유명해진 지역이다. 일본군은 포로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끼고 철로를 건설하는 난공사는 많은 포로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씨는 일본군 공병대가 요구하는 노역 인원을 매일 차출하기 위해 포로 측 대표와 자주 충돌하였다. 포로들의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 조약’ 등은 들은 적도 없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구타하는 것이 그가 받은 일본군 교육의 전부였다. 일본군의 도구로 동원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148명은 연합군 전범재판에서 포로 학대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3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씨도 싱가포르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군의 군사재판에서 단 두차례의 공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수 감방에 같이 있던 동료들이 차례로 형장으로 불려 나가는 공포의 수감생활이 8개월 계속되다가 어느 날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수감생활 중 작업 시간이 끝나면 그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덮어씌워진 억울한 운명의 연유를 찾으며 식민지 백성이었던 자신이 ‘가해자’로 둔갑하게 된 경위를 돌아보았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자행한 불의와 부조리에 말할 수 없는 울분을 느꼈다. “내가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역경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전쟁이야말로 모든 해악의 근원이다”라고 그는 수기에 썼다. 이씨는 자신을 전쟁에 가담시킨 천황제 파시즘을 증오하고 만년은 오직 평화를 위한 일을 찾아 나섰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인들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복지와 원호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고립무원이 된 어떤 이들은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55년 조선인 B, C급 전범 70여명은 ‘동진회’라는 자치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원호와 보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 정부는 ‘한일 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며 이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인도 아니면서 ‘전범’이라는 엄청난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조국은 이들을 ‘대일협력자’로 간주하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희생과 죽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절규하다 하나씩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초부터 이씨와 동료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법정 투쟁을 시작하였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우쓰미 아이코씨 등)도 이들을 지원하며 함께 연대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1999년 12월 ‘보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가의 입법정책에 속한 문제’라고 규정짓고 원고 측 패소로 판결하였다. 2008년 5월 일본 국회의 민주당 의원들이 피해자 1인당 300만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법안을 작성하였으나 국회의원 대다수의 무관심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일본제국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다음, 조선의 어린 10대 소년들에게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황국신민의 도리라고 세뇌하고 전쟁터로 징발하였다. 이 소년들은 동남아 밀림 속에서 일본군의 수하가 되어 최악의 철로 공사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을 다그치다가 ‘전범’이라는 끔찍한 혐의로 법정최고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타국 소년들을 데려다가 전쟁 원흉의 죄를 덮어씌웠다. 사형을 당했거나, 장기형을 치르고 평생을 죄인으로 숨어 살았던 이들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부조리의 희생자요 피해자들이다.

이학래씨와 동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하며 즉시 떠오른 것은 미국이 시작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다. 2년 전에 나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민간인들이 한국군에 집단으로 살해당한 곳이다. 벼가 파랗게 자란 들판에 74위의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었다. 이 마을은 본디 남베트남 군인 가족들도 여럿 살고 있었고, 한국군과는 같은 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군이 마을 옆 도로를 따라 행군하던 도중에 마을을 향해 진입해 주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8살 소녀였던 응우옌티탄은 몇몇 생존자 중 하나다. 그녀도 배에 총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어머니와 가족 5명을 모두 잃은 응우옌티탄이 2020년 4월에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4월13일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들도 처음엔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 좀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순박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은 고백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옆에 있던 동료가 적의 총탄에 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 그곳은 지옥으로 변하고 윤리나 이성과 결별한다고. 눈앞에 등장하는 상대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구분할 여유가 없다고.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병사들은 몹시 앓았다. 스스로 자진한 이들도 있다. 아직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에게 말 못 하고 밤중에 혼자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이다.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심판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개인들도 심판받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최고의 권위와 권좌를 보유하기에 이를 심판할 사람이 없다. 역사상 국가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우상으로 군림하며 가장 가공할 폭력과 살상을 저질러왔다. 국가에게서 우상의 가면을 벗겨내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윤리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수레가 되어야지 국민이 국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1-05-06> 한겨레

☞기사원문: [강우일 칼럼] 국가의 죄

토, 2021/05/0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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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31. 충북 박달재 : ‘친일 문인의 두 얼굴’ – 반야월과 ‘종천(從天) 친일파’ 서정주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유명한 옛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다. 박달재는 충북의 충주에서 제천을 잇는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에 거의 다 이르면 있는 고개다. 특히 이 고개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경상도 청년 박달과 이 고개 아랫마을의 금봉이가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가진 곳으로, 인기 작사가 반야월이 이 전설을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이 노래 덕에 이 고개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고개 이름 박달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고개는 한 때는 많은 트럭들의 정체가 일어났던 곳이지만, 이제 박달재터널이 생긴 뒤 통행량이 한적해졌다.

이제는 거의 버려진 이곳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유는 반야월 때문이다. 그는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불린 탁월한 작사가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등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히트곡을 작사했고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진 작사가로 알려졌다. 이 곳 박달재에도 박달과 금봉이의 사랑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 동상이외에 ‘박달재 노래비’라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노래비 옆에 세워져 있는 작은 팻말이다. 2016년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설치한 하얀 이 팻말은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라는 제목 아래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이 고개를 넘어가다 우연히 이를 발견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땅에 이 같은 친일 고발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친일군인 김백일의 ‘친일행위처단비’는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는 김백일 동상 옆에 세워져 있다).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 /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 / 피 뛰는 일억일심 함성을 쳐라 /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 장병아 / 총후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 올려라 히노마루 빛나는 국기 (…)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그는 이 같은 가사로 ‘일억일심’을 작사하고 직접 노래 부르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으며, 사망 2년 전인 2010년 국회 간담회에서 일제 지배 하의 친일 행각에 대해 사과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 박달재에 있는 작사가 반야월의 ‘박달재노래비’ 옆에는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는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손호철
▲ 가수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 고발판 ⓒ손호철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계속 권력을 잡으면서 친일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금기로 남아왔다. 임종국 교수가 1966년 발표한 역사적인 <친일문학론>을 발표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 문제는 최근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등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1991년 임종국의 뜻을 살려 민족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작업을 벌여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 차원에서도 2005년 뒤늦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이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제1차 106명, 제2차 195명, 제3차 705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장교를 지원했던 박정희는 제외됐다. 이들 중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사람으로 유명한 친일 고문 경찰 노덕술 등 225명은 정부로부터 훈장 등 서훈을 받았는데, 2019년 현재 25명에 대한 서훈이 취소됐고 노덕술 등 200명에 대한 서훈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 천안에 설치되어 있는 친일문학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흉상 ⓒ손호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겨울 설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 전북 고창의 선운사다. 선운사에서 바다 쪽으로 올라가 기막힌 전망의 언덕 위에 폐교를 잘 정비한 건물 옥상에 서서 바다가 내려다보면, 누구나 다 아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이곳이 서정주 문학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시인’,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시인’, ‘시의 정부(政府)’라는 칭송을 받지만, 친일인명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도 오른 대표적인 친일 문인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칭송했으며, 그래도 솔직하게 사과를 한 반야월과 달리 기이한 변명을 늘어놓는 등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곡학아세의 큰 어른’이었다. 아니, ‘학문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니 곡문아세(曲文阿世)의 큰 어른’이다.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져야 할 것인가?

(…)

인제 겨우 스무 살인 벗아, 나도 너처럼 하고 싶구나.

나도 총을 메고 머언 남방과 북방을

포연과 탄우를 뚫고 가보고 싶구나.

그는 ‘우리말의 달인’답게 뛰어난 문장력으로 젊은이들에게 징병을 권유했다. 가미가제까지 찬양한 서정주는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에도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 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고 “이것이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라고 생각해, 이 같은 하늘의 뜻을 따른 ‘종천(從天) 친일파’라는 기이한 변명을 펼쳤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친일 행각을 솔직히 사과한 반야월은 최소한의 양심은 가진 것이다.

서정주의 ‘곡문아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에게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는 생일 축시를 바치기도 했다. 이렇게 찬양한 것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서정주는 “하도 깡패같이 굴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을 안 죽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의 ‘후학’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전집을 발간하면서 “생전에 시집으로 발표한 작품만 수록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웃기는 변명 아래 그의 친일시들을 뺀 것이다.

▲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 서정주 문학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서정주의 흉상 ⓒ손호철
▲ 서정주문학관에 쓰여 있는 서정주의 업적에 대한 설명 ⓒ손호철

나는 친일과 죽고 죽이는 이념 대립을 강요당했던 일제와 해방정국에 청년으로 살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개 필부가 아니라 지도자나 지식인은 달라야 한다.

뤼시엥 골드만이란 프랑스의 철학자는, 한 인간은 연구할 때 그 시대가 불가피하게 한계지우는 ‘한계 의식’이 있고 그 시대에도 가능했던 ‘가능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이광수가 친일 한 것을 평가할 때, 순수 가정으로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면 친일은 ‘한계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나 장준하 등 반일 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은 그 시대에도 가능한 ‘가능 의식’이지 한계 의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중 <서유기>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한국사 주요 인물을 만나는데, 이광수를 만나 친일 행각을 다그치자 이광수는 흐느끼며 “나에게 단파 라듸오만 있었다면” 하며 흐느낀다. ‘단파 라듸오’가 있어 미국이 내보내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면 미국이 이기고 있는 것을 알고 친일하지 않고 버티다가 민족적 영웅이 됐을 텐데, ‘단파 라듸오’가 없어 일본의 선전처럼 일본이 이기는 줄 알고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파 라디오를 생각하며 고창을 떠났다.

<2021-05-17> 프레시안

☞ 기사원문: ‘친일’ 반야월‧서정주, 같지만 달랐다

월, 2021/05/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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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승 광복회 고문 변호사]

가정의 달 5월에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누구나 귀에 익을 정겹고 뭉클한 선율의 이 노래의 제목은 “어머니의 마음”인데, 현제명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반역행위를 일삼았던 이흥렬 숙명여대 음대학장이 작곡한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음악인들이 어떻게 친일반민족행위를 했을까? 음악인들은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대화악단 등 친일활동을 위한 음악인단체를 조직하여 일본국민가요를 조선에 보급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정책을 도왔고, 각종 음악회를 개최하여 모금한 수익금을 일제의 전쟁군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공장, 광산 등을 돌며 위문음악공연을 함으로써 생산을 독려하였을 뿐 아니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국민과 학생들에게 징용 및 학병 지원을 독려하였고, 구로야 샤이민(현제명), 나오키 오키이찌오(이흥렬), 모리카와 준(홍난파) 등 일제의 창씨개명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에 협력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친일반민족행각을 가장 적극적 주도적으로 자행했던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재명과 이흥렬인데, 이들은 해방 후에는 자신들의 미국 유학경력 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친미반공으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신해서 서울대 음대학장, 숙대 음대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대통령 문화훈장 등 음악계의 행정가, 교육자, 원로, 실력자로서 죽을 때까지 권위와 명예를 누렸고, 현재 음악계는 이들이 배출한 제자나 후진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어떠한 비판도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현제명과 이흥렬은 2001년부터 8년 동안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선정한 일제 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에 포함되어 2009년 11월 8일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특히 현제명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705명에 포함되었음에도 이들의 후진들이 국내 문화예술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명성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그 예로 현재 서울대 음대건물에는 현제명의 흉상이 있다.

이들은 이처럼 해방 후 감쪽같이 변신하여 음악계 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학교, 기관으로부터 교가 등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모양인데, 그 결과 전국 138개 학교들의 교가가 이흥렬 작곡이고, 14개 학교 교가가 현제명 작곡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교가부터가 현제명 작곡인데 그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7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된 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울대에서는 이를 바꾸자는 목소리조차 없다.

참고로, 위와 같이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를 갖고 있는 대학들은 서울대 외에도 경북대, 성균관대, 국민대, 경희대, 홍익대, 동국대, 한국외대, 단국대, 인하대, 숭실대 등 전국 29개 학교에 이른다는 언론보도(YTN)가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수도 없이 불러봤을 군가 “진짜 사나이”도 위 대표적 친일파 이흥렬의 작곡이다. 이흥렬은 “진짜 사나이”를 작곡하면서 부끄럽지 않았을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라는 가사의 군가를 작곡하면서 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파시즘 세력으로부터 식민지 또는 점령지에서 해방된 민족ㆍ국가들은 새나라를 재건하는 작업을“민족을 배반하고 국민을 학대한 자들”을 처단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고 재판소 등 처벌기관을 설치한 나라는 22개국이고 이와 관련하여 제정한 법률은 총 63개에 이르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ㆍ중국ㆍ일본ㆍ북한ㆍ필리핀 등 5개국이고, 유럽은 독일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덴마크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노르웨이ㆍ그리스ㆍ이탈리아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ㆍ헝가리ㆍ유고슬라비아ㆍ에스토니아ㆍ소련 등 17개 국가다.

위와 같은 반역자 처벌의 정신은 벨기에 정부가 1944년 5월 6일 공포한 <전시에 국가의 국외 안보에 반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국적과 일정한 권리를 박탈하고 정지하는 사안에 관한 명령>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조국을 배신한 자는 그가 절대로 다시 해를 끼치기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그리고 신속히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국회에서 친일반역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제정하고, 반민법을 집행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까지 구성하였으나, 1949년 6월 친일파 세력의 반격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친일반역자 단죄는 실패하였고 단 한 명의 반역자도 처벌하지 못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반민특위가 와해되어 친일반역세력의 단죄에서 실패한 지 72년이 되는 해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조국을 배반하고 동족을 해친 친일반역자들 중 생존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반역자들에 대한 단죄는 미완의 역사로 묻어두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이 어떤 반민족행위를 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함으로써 그런 자들이 죽은 후까지 명예를 누리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날 가능한 최소한의 과거사 청산이 아닐까 싶다.

정철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법학과 ▷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광복회 고문변호사 ▷한국입법학회 회장

<2021-05-17> 아주경제

☞기사원문: [정철승 칼럼] 음악계의 친일반역자들

목, 2021/05/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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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5/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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