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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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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익명 (미확인) | 화, 2019/02/12- 21:05

알찬 전시 내용 가득…찾는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아
日관람객 “3·1운동에 한국인 프라이드 대단하다 느껴”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많은 일본인은 3·1 독립운동은커녕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평화적으로 저항한 한국인들의 독립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일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東京).

도쿄에서도 중심가인 신주쿠구(區) 오쿠보의 한국광장 빌딩 7층에는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고려(高麗ㆍ일본발음 고라이)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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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광장 빌딩 7층의 고려박물관에서 일본인들이 주관하는 ‘3ㆍ1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모습.

이곳에서 3·1 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전시회가 지난 6일 시작됐다.

오는 6월 2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아직은 일본인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걸음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 시민들만의 힘으로 2001년 12월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배워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모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700여 명이 연회비로 5천엔(약 5만원)씩을 내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 외에 수시로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전시회를 시작했다.

기획전은 자원봉사 활동가 80여 명이 7~8명씩 한 조를 이루어 매번 한국 역사에 연관된 주제로 마련하는데, 이번 3·1절 기획전은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8명이 매달려 1년 6개월 정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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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에서 이사 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하라다 교코 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박물관 회원 6명을 포함한 14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직접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천안 유관순기념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 제암리순국박물관, 서대문형무소 등 3.1운동 관련 자료를 모을 수 있는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해 총 24장의 패널로 3·1운동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리한 전시물을 내놓았다.

작년까지 고려박물관 이사장을 지낸 뒤 지금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라다 교코(77) 이사는 7일 “모든 멤버들이 함께 공부하고 배우면서 전시 패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봉사자들이 꾸민 전시회라고 했지만 내용은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찼다.

3·1운동 이전의 한일 관계 역사를 먼저 소개한 뒤 3·1 운동 전개 과정, 종교의 역할, 여성의 참가, 제암리 학살사건, 3·1운동 당시의 신문보도와 일본인의 관점, 3·1운동 이후 100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사를 핵심을 빠뜨리지 않고 자료사진까지 곁들여 명료하게 설명했다.

3·1 운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24장의 패널을 훑어가면 한국인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 왜 평화적인 만세 운동에 나섰는지, 일제의 당시 대응은 어땠는지,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엇갈린 시각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3·1운동 관련 기술이 거의 돼 있지 않는 일본 역사교과서 여러 종을 펴놓았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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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 전시장에 펼쳐 놓은 일본 역사교과서. 한국인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인 3·1 운동이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하라다 이사의 설명이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하라다 이사는 “3·1 독립운동 정신에는 동양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면서 “우리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배우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회 시작 이틀째인 7일까지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1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하라다 이사는 “일본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줘야 하는데 몇몇 매체가 문의만 하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다마키 시노(56·고교 영어교사) 씨는 “한국에 여러 차례 갔는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도 둘러본 적이 있다”며 “3·1독립운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프라이드(자긍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방한 때의 인상을 전했다.

다마키 씨와 3·1운동 기획전을 함께 관람한 니와 쇼코(57·고교 일본어 교사) 씨는 “두 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박물관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email protected]

<2019-02-07>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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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승인 받아

친일조각가가 제작한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과 부조물. 정읍시 제공

친일 작가 작품이란 지적을 받아온 전북 정읍시 황토현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을 철거한다.

정읍시는 전봉준 장군 동상 철거에 따른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승인이 완료됐다고 20일 밝혔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10월에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현전적지에 세워진 이 동상은 친일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했다. 이 동상 및 배경 부조 시설물은 높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짙은 청동색으로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이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대표적 친일인물로 나와 그동안 동학관련 단체 등은 철거를 요구해왔다. 친일인명사전에는 “김경승은 1942년 6월3일자 <매일신보>에 ‘더 중대한 문제는 재래 구라파의 작품의 영향과 감상의 각도를 버리고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 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일 것입니다. 나는 이같이 중대한 사명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여 보겠습니다’라는 기고문을 게재할 정도로 친일행적이 뚜렷해, 해방 이후 만들어진 조선미술건설본부에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나온다.

특히 몸체는 격문을 든 농민군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머리는 죄수처럼 맨상투로 돼 있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한 동상 뒤의 부조에도 죽창·농기구를 들고 싸움터로 나가는 비장한 농민군의 표정 등이 보이지 않아 역사적·예술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이에 따라 시는 시민과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동상 철거를 결정했고, 철거된 동상은 박물관으로 옮기기로 했다. 시는 예산 12억원을 확보했다. 다음달 공모를 거쳐 내년 5월 완성을 목표로 추진할 방침이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오는 7월 동상 철거 이후 새롭게 제작할 동상은 각계 전문가 자문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사상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읍 황토현전적지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관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장소로, 1981년 12월 사적 제295호로 지정됐다. 정부는 황토현전승일을 기리기 위해 오랜 논란 끝에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2018년에 제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열고 있다.

박임근 기자 [email protected]

<2021-04-20>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작가가 제작한 ‘전봉준 장군 동상’ 철거한다

화, 2021/04/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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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월, 2021/04/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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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목, 2021/04/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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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2차 소송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2차 소송’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2021.4.27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일본 정부를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취지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각하한 법원 판결에 시민사회단체가 “반인권·반평화·반역사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정의기억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28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투쟁은 판결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처럼 밝혔다. 기자회견엔 총 40개 단체가 연명했다.

위안부 ‘2차 소송’에서 피해자(원고) 측 대리인이었던 김예지 변호사는 “이 사건 소는 피해자들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더이상 외교적 해결 방법은 없다는 판단하에 법원에 마지막 구제를 구하는 것이었다”며 “재판부는 소송의 의미를 완전히 간과한 채 헌법 질서에 반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함으로써 일본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국가면제(주권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으로, 2차 소송 재판부는 이 원칙을 적용해 소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김 변호사는 “물론 국가면제라는 관습법이 있기 때문에 소송 요건이 갖춰졌는지 다퉈야 할 것이 예상됐으나 이 사건처럼 다른 구제 수단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예외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봐서 소 제기가 이뤄졌던 것”이라며 “법원이 국가면제를 적용한 건 국제인권법 질서에서 보장되는 사법접근권, 자국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영구히 배제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최근 판결이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을 복권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재판부는 이 소송을 촉발한 박근혜 정권의 2015 한일 정부 간 합의가 엄연한 국가 간 합의로서 지금도 유효하고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며 “항소해 일본 정부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5월 말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안보문제, 백신문제 등을 구실로 미국 압력에서 섣불리 타협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2021-04-28> 연합뉴스

☞기사원문: “위안부 2차 소송 각하는 반인권·반평화·반역사적 판결”

금, 2021/04/3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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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구슬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모 할머니가 지난 2일 별세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 할머니가 지난 2일 오후 10시쯤 별세했다고 3일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모 할머니가 지난 2일 별세했다. (사진=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정의연에 따르면 1929년 충청북도에서 태어난 윤 할머니는 13세가 되던 1941년 일본 군인들이 할아버지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저항하다가 트럭에 실려 일본으로 끌려갔다.

윤 할머니는 일본 시모노세키 방적 회사에서 3년 정도 일하다가 히로시마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온갖 수난을 겪었다. 해방 후 부산으로 귀국한 윤 할머니는 1993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정의연은 “윤모 할머니는 해외 증언, 수요시위 참가 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셨다”며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할머니와 유족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날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윤 할머니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정 장관은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떠나보내게 돼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생존 피해자 분들께서 건강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한 사업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5명에서 14명으로 줄었다.

한편 지난 4월21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생 소송(2차 소송)에서 각하 판결로 사실상 패소했다.

이에 정의기억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총 40개의 시민단체는 항소를 추진하고 나섰다.

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4월28일 서울시 중구 정동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외면하고 국가면제(주권면제)를 이유로 일본의 손을 들어준 판결에 참담하다”며 2차 소송 각하를 규탄, 항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021-05-03> 이데일리

☞기사원문: 위안부 피해 할머니 1명 별세…남은 생존자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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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1/05/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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