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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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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익명 (미확인) | 월, 2019/02/11- 12:50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 바로 아이를 잃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에 사는 우리는 유난히도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 곁에서 가슴 치며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먹먹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만한 크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표현대로 그저 ‘빈껍데기’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을 딛고 자식의 죽음 속에서 다른 젊은이들의 그림자까지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음을 개인적 차원에서 닫아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더 이상 괴로울 일은 적다. 그 죽음에서 사회적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쉽사리 구해지지 않는 답과 늘 싸워서 버텨내야 한다. 이유를 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 그건 네 탓이라며 폭언과 저주까지 서슴지 않은 이들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삼성 직업병 사건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49)는 어렵게 그 길을 택한 듯하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인터뷰한다. 어머니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는 갔지만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 바로 아들이 생전에 손팻말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자며 밝혔던 뜻이다. 비정규직을 없애는 일이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이 참혹한 환경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또 목숨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자신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직도 하나뿐인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비정규직 직접 고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차가운 아들 용균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며” 아들이 숨진 지 44일째 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1월27일에는 49재를 지냈다. 도중에 어머니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옆에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앉아 가만히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사진: 국민일보

 

■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김용균 씨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12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지난해 12월11일 용균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3주 동안 한국에서는 하루 2명씩 최소 5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해마다 1000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5년간(2012~2016) 노동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에서 한국은 2위인 멕시코(8.5명)를 제치고 11.35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346건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51개 원청사에서 노동자 1만 명당 숨진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원청보다 8배가 높았다는 실태조사도 있었다. 멀게 갈 것도 없이 불과 1년 전에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비정규직 청년이 숨을 거둬 온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용균씨도 김군과 마찬가지로 먹지도 못한 컵라면을 남겼다. 그의 유품인 탄가루가 어지럽게 묻은 물티슈와 수첩을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이 먹먹했다. 금방이라도 풋내 나는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미세한 석탄가루가 수없이 날려 미끄러운 그 공간은 잡을 난간조차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물웅덩이와 턱과 장애물을 피해 육중한 컨베이어벨트 사이로 수시로 머리를 디밀어야 했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사망한 지 4시간이나 지나 발견된 용균 씨를 구하러 갔을 때는 그가 떨어뜨린 휴대전화의 희미한 불빛이 간신히 그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했다.

용균 씨가 사망하자 업체에서는 “용균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며 뒤집어씌우기부터 했다. 그러나 용균 씨는 긴 죽음의 터널에서 그저 발을 헛디뎠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던 탓이다.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처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용균 씨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머니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그 법 통과를 위해 연말 내내 국회에 있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만나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사흘 동안 국회에서 꼬박 논의 과정을 지켜봤다.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냐”고 호통도 쳤다. “누가 이 법을 가로막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이 통과되고서야 어머니는 태안에 다시 와서 아들 사진 앞에 서서 말했다. “28년간 늘어진 법인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용균이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조금은 할 말이 생겼다고. 용균이 네가 좋은 일을 했다고.”

용균 씨가 피켓을 든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좀 더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거기서 헤어 나오고 싶었으면 저 피켓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용균 씨 잘못이라는 말에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사진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는 사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꼭 옛날 탄광 같았는데, 탄광은 무너져야 사고가 나지만 그곳은 들어가면 금방 사고가 날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10명이 넘게 죽었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걸 보면 “서부발전소 최고 관리자는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용균 씨의 죽음으로 9~10호기는 멈췄지만 여전히 1~8호기에서 용균 씨의 동료들이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친구들도 죽을 것만 같아서 그 친구들을 살려야만 용균이한테 조금이라도 얼굴을 들고 죄를 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비정규직에게도 법은 있었고 안전규정은 있었지만 적용되는 건 없었다. 용균 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지난해에만 28차례에 걸쳐 안전설비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3억 원이 든다며 거부했다. “그냥 인간으로 안 보는 거죠. 그냥 일회용이고 물건인거죠.” 어머니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정규직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은 인간 취급을 안 합니다. 노예 취급 받고 삽니다. 그래서 생명이 위태로워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일하라고 하면 해야만 합니다.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회사(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들 회사를 나가지 않는 한 일해야 된다고 용균이 동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너는 살아야 한다”

사고가 나고 사흘 만에 용균씨의 어머니는 현장조사 공개브리핑에 나와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라고 말했다. 일하던 현장을 가보니 놀고먹는 한이 있어도 보내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비상시 운전을 정지할 수 있는 안전줄이 있었지만 홀로 근무하던 용균씨를 위해 당겨줄 사람이 없었다. 당겼다 하더라도 평소 느슨하게 늘어져 있어 반응속도가 느렸기에 제대로 작동했을지도 의문이었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난 뒤 안전줄은 팽팽하게 고쳐져 있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원청회사를 향해 “너희들은 인간쓰레기”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분노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악하고 험악한 곳에서 일 시킬 수 없어. 최소한의 인간성만큼은 지킬 수 있게 해야 했잖아. 할 수만 있다면 니들도 내 아들처럼, 똑같이 일하고 컨베이어 속에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 그래야 부모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을 느낄 테니까.”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라”고 얘기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다. 구의역 사고 때 숨진 김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책임감 있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된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시킨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이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서민은 아이를 낳아도 돈 있는 사람들의 노예로 살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도 않는 이런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분노에 그치지 않았다. 아들의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끌어안고 “너는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방노동청을 찾아가 1~8호기의 작업도 전면 중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빈소에서 어머니는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람들을 만났다. 산업체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었던 특성화고생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도 만났다. 어머니는 말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라 가슴에 와 닿았다.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했는데 이분들을 만나 살아야 할 목표가 생겼다. 대통령을 만나 아들의 소망을 전하고 억울한 누명 벗겨주고 목숨을 앗아가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싸우고 싶다.”

어머니는 400일이 넘게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 농성을 벌이던 파인텍 노동자들도 찾았다. 좌절하던 노동자들은 어머니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중에 굴뚝을 내려온 그들은 “우리 싸움의 돌파구는 김용균 동지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텨주셔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했던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앞두고 김 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말한다. “하루에 6~7명, 1년에 2000명가량이 안전장치만 갖추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줄 아십니까?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입과 귀를 먹게 하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고 아무런 대항도 못 하도록 해서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용납하면 안 됩니다. 용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나서서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 아들에게 전해 줄 반지

“신기해 가지고요. 작년에 3호기에서 사고가 났을 땐 기사가 조금 뜨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이렇게 많이 떠서….” 용균씨의 동료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균씨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등은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벌여 1000건이 넘는 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발전소에 과징금 6억7000만원을 부과하고 태안화력발전소와 하청업체 책임자를 형사 입건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통과됐지만 정작 용균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상이 아니다.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 업종에 발전사의 컨베이어벨트 점검 노동자는 빠져 있다. 책임자 처벌도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은 없다. 정규직 전환 역시 갈 길이 멀다. 정부는 갑작스럽게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면 전까지 민영화됐던 영역들의 회사에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신중한 입장이다. 설 전에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은 현재까지로는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머니는 “내가 사는 날까지 싸우고 이겨낼 테니 부당한 나라를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구의역 사고 이후 작업 환경이 나아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은 것처럼 내가 싸워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나서 찾은 그의 기숙사 방문 앞에는 생전에 갖고 싶어 했던 ‘반지의 제왕’ 반지가 택배로 배달돼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용균 씨가 그 반지를 사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어머니는 또 마음이 아팠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다면 그 반지 끼워봤을 텐데… 죽은 아니 손가락에 끼워주면 아이는 알까요? 좋아할까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반지의 제왕’ 반지를 사 주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용균 씨에게 반지만큼이나 좋아했을 값진 선물을 이 세상에 남기려고 한다.

아들 전태일이 죽은 뒤 노동자의 어머니가 돼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소선 여사가 그랬다. 딸 황유미 씨가 죽은 뒤 11년이 걸려서야 기어이 삼성의 사죄와 책임 인정을 받아낸 아버지 황상기 씨가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아직 고통 속에서 더 이상의 거대한 사회적 비극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용균 씨의 동료와 친구들이 더 이상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 기다리는 벌판 위에 섰다.

어머니는 <시사IN> 인터뷰에서 두렵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가진 걸 다 잃었잖아요. 애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걸 잃었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한들 기쁘지도 않을 겁니다. 저를 위해 산다는 것보다 이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되겠기에 나섰습니다.”

 

■ 참고자료

[시사IN]“아들이 남긴 숙제는 죽음의 고리 끊는 것”

[이투데이] 끝나지 않은 엄마의 싸움…故김용균 어머니 “책임자 처벌해야 장례 치를 것”

[경향신문] 고 김용균씨 어머니 “아들에게 조금은 할말이 생겼다···그런데 이렇게 끝날까 두렵다”

[경향신문] 전태일과 김용균

[오마이뉴스]”그토록 원하던 반지가 왔는데… 죽은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죠?”

[오마이뉴스]”잡아도 소용없는 안전줄…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노컷뉴스]故김용균씨 어머니 “마지막 CCTV보니…얼마나 무서웠을까”

[노컷뉴스]故김용균 어머니 “문재인 대통령 만나서 꼭 듣고 싶은 말은..”

[한겨레] 2명 중 1명이 또 다른 ‘김용균’…“사고 현장 무서워서 못간다”

[한겨레] 최근 3주새 50명 사망…‘김용균’은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한겨레] 사지즉전

[서울신문]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태안화력 고 김용균씨 어머니의 절규

[민중의 소리] “왜 이렇게 뭉그적거립니까” 국회서 울려 퍼진 고 김용균 씨 어머니의 절규

[민중의 소리] 김용균법 국회 통과 지켜본 어머니 “용균이에게 떳떳해진 것 같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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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30일(목), 오후 2시, 서울 신촌 ‘히브루스’에서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가 ‘포스트 사회주의 –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이번 러시아 혁명 기념 학술발표회에서는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정재원 교수, 박철현 교수(이상 국민대), 정이나 교수(부산외국어대),  이한우 교수,  정영철 교수(이상 서강대)의 발표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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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신 내용은 전화(02-3274-0100)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문의하십시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월, 2017/11/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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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금지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요구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

일시·장소 : 2020.1.15(수) 오전 10시, 서울지방노동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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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5.(수) 10:00, 서울지방노동청 앞 '위험의 외주화 금지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 <사진=민주노총>

 

1. 취지와 목적

  • 28년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1월 16일 시행될 예정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이 금지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 확대되는 등 진전이 있었지만, 도급을 금지하는 작업의 범위가 협소하고 원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 등 미흡한 지점도 있음. '김용균 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어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님의 업무, 구의역 정비노동자의 업무는 여전히 도급 금지 대상이 아님.

  • 산업안전법 개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작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포함한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하였고, 고용노동부는 1월 20일까지 답변을 제출해야 함.

  • 국가인권위 권고의 주요 내용 중 위험의 외주화 부분은 <도급 금지 유해 위험작업 범위 확대, 외주화가 제한되는 생명안전업무 기준 마련, 원하청 통합관리제도 확대 및 감독과 처벌강화 방안 등>이며, 노동3권 관련해서는 위장도급 문제 근절을 위한 <대법판례 파견도급기준 반영 및 지침의 상위법령 규정> <파견법 위반 신속한 감독 및 수사 개선방안 마련>과, 노동3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 규정 개정 혹은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 명시,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 방안 마련> 등이 있음.

  • 관련하여 김용균 재단,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40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고용노동부에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함.

 

2. 기자회견 개요

  • 일시 : 2020년 1월15일 오전 10시 

  • 장소 : 서울지방노동청 앞

  • 주최 : 건강한노동세상, 구속노동자후원회, 김용균재단, 남동희망공간,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교육기관, 노동자연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민변 노동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사)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민중당, 반올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사월혁명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생명안전시민넷, 서구민중의집,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사람연대, 인천평화외통일을여는사람들, 일과건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주권자전국회의, 참여연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천주교 한국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형명재단, NCCK인권센터 (40개 단체)

  • 순서
    • 여는 발언 :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

    • 국가 인권위 권고의 의미와  이행 촉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

    • 현장 발언 1. 도급금지 범위 확대 및 원청 책임강화 : 발전 비정규 연대회의 이태성

    • 현장 발언 2. 산안법 무력화 시도 규탄 및 산안법 개정 요구 : 금속노조 노안실장 박세민

    • 현장 발언 3. 간접고용 노동3권 보장  :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 비정규직지부 사무국장 유희원

    • 건강권 단체 발언 : 일과 건강 한인임 사무처장

    •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故김용균 노동자 어머님) 

    • 기자회견문 낭독 


보도자료[https://drive.google.com/file/d/11g9MZJZbFGpZ9dQO4OYSSIVATmEZ7trS/view?u...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노동부는 국가 인권위 권고 즉각 이행하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일할권리 보장하라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진이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불법 파견이 판을 치고, 노조할 권리가 박탈되어 있는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생명, 안전, 노동인권은 철저히 짓밟혀 왔다. 노동부는 하청 노동자들의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즉각 이행하라!  

 

2018년 12월 청년 하청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과 투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1월16일 시행 첫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내세운 산안법 개정안에는 구의역 김군도, 김용균도, 조선하청 노동자도 없었다. 산재사망 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징역형 도입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도 없었다. 하위법령도 후퇴와 개악을 거듭했다. 재벌 대기업 현대제철이 도급금지 업무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등 자본의 산안법 무력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위험의 외주화로 인권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 가치인 생명과 안전이 하청 노동자에게 보장되지 않고’있는 것이다. 

 

개정 산안법과 하위법령의 후퇴와 개악, 자본의 산안법 무력화 공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사고 산재사망이 줄었고, 그것은 정부 대책의 결과라며 자화자찬했다. 지난 수십년의 산재사망 통계에서 해마다 100명, 200명씩 산재사망이 늘었다가 줄었다 널뛰기를 반복해 오는 동안 노동부는 원인분석도 없이 반짝 대책, 땜질 대책을 반복해 왔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산재사고사망 절반감소>를 주창한 첫 해인 2018년에는 200명이 넘게 산재사망이 늘었다. 노동부는 자화자찬 이전에 ‘산재사고사망 절반 감소’ 핵심대책으로 주창해 왔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현장 무력화 대책을 수립하고, 후퇴와 개악을 반복한 산안법과 하위법령의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그 첫 번째 출발이 국가 인권위 권고 이행이다. 

 

국가 인권위원회는 무엇보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위해 도급금지 범위확대를 권고했다. ‘화학적 요인’만을 기준으로 도급금지 대상을 정한 개정 산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물질적 작업요소 등을 반영하여’즉 사고성 재해도 포함하여 도급금지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는 <외주화가 제한되는 생명안전업무의 기준 구체화, 원 하청 통합관리 범위 확대, 엄중한 처벌과 지도감독 방안 마련>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이 위험의 외주화 근절을 첫 번째로 지목한 것에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성과 성찰이 담겨 있다. 경제규모는 세계 11위이면서 산재사망은 1위인 참혹한 현실과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하청 비정규 노동자에게 죽음이 집중되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노동, 시민사회의 준엄한 명령이 담긴 것이다. 죽지 않고 일할권리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인 생명과 안전의 문제이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인권위 권고 이전에 정부의 약속이다. 노동부는 국가인권위 권고를 즉각 수용하고 이행해야 한다. 

 

인권위원회는 또한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파견지침 변경, 불법 파견 신속한 근로감독,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사용자 범위 확대 및 원청 단체교섭 의무 명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 방안> 마련도 권고했다. 그 동안 노동부는 쌓여 가는 대법원 판례와 2006년부터 수차례  지속적으로 제기한 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방치해 왔다. 이제 정부는 국가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는 절절한 요구에 답해야 한다.  

 

지난 11월 발표된 국가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와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국제노동기구의 협약 및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를 바탕으로 제시된 것이다. 즉, 인권위 권고에 대한 이행 여부는 헌법과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태도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인권위의 개선 권고에 대한 정부기관의 수용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노동부는 국가인권위마저 나선 <하청 노동자의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권고를 즉각 수용하고 이행에 나서야 한다.   

 

2020년 1월15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목, 2020/01/16-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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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경제정책의 성공에 대해서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원리를 간략히 설명하고 2018년 예산(안)을 중심으로 2018년에 나타날 주요경제문제를 전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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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11/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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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경제 성장은 ‘신노동자’라는 새로운 집단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3억 명에 육박하는 중국 ‘농민공’을 ‘신노동자’로 지칭해 이 집단의 과도기적 성격과 현황, 전망을 연구한 기록이다. 저자 려도(뤼투)는 중국에서 ‘신노동자’ 연구 시리즈를 차례로 펴내고 있으며,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은 이의 첫 저작이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신노동자’ 관련서다.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그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저자에게 ‘농민공’이 스스로 ‘신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중국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사회학자이자 ‘북경 노동자의 집’ 활동가인 저자는 농촌에 호적을 두고 도시로 와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고용, 임금 등의 노동 과정은 물론 주거, 여가, 가족관계, 생활방식 등 삶의 모습까지 두루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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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백년연구원은 <정책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개혁해야 할 정책 과제를 산업, 금융, 고용/노동, 외교/안보, 안전, 관료제/선거제도 등 분야별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 글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다른백년연구원은 열린 공간, 열띤 토론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백년,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담론을 기획해나갈 것입니다. 

수, 2017/11/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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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장 폐점시켜버려.”

‘프랜차이즈 갑질’에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62)도 이름을 올렸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연 매출 1조 원대에 가맹점 4000개의 프랜차이즈를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다.

‘갑질’을 고발한 가맹점주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 5월 사전 예고도 없이 BBQ 봉은사점을 찾아 주방에 들이닥쳤다. 제지를 받자 “이 XX봐라, 이 XX 해고해”라고 막말·폭언을 했다고 한다. 해당 가맹점주는 본사가 공급한 생닭과 물품에 불만을 많이 제기하던 상황이어서 ‘보복’이 아니었겠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BBQ 측은 그저 ‘격려 방문’이었다고 해명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은 고질적 문제다. 가맹점주에게 물품을 공급하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청구하면서 폭리를 챙긴다. 광고·판촉·할인비용을 떠넘기는 건 예사다. 본사에 로열티를 지불하지만 어디에 쓰는지 알 수도 없다. 불만을 제기하면 바로 가맹 계약 해지 통지서가 날아든다. 프랜차이즈를 일군 ‘회장님’들은 종종 개인 비행으로도 도마 위에 오른다.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은 경비원 폭행,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은 여직원 성추행 혐의를 받아 망신을 샀다.

BBQ는 대기업 소유이거나 글로벌 브랜드 소속 외식업체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외식업체다. 최근 교촌치킨에 밀리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치킨업계 1위도 지켜왔다. 한국적인 프랜차이즈 성공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윤 회장의 폭언 논란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왔다기보다는, 한국적 프랜차이즈 성공 신화가 어떤 토대 아래서 자랄 수 있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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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내 운명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윤홍근 제너시스 BBQ 회장. 회사 곳곳에는 닭 조형물과 닭 그림, 닭 인형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5000개의 닭 모형을 수집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한국경제).

■ 닭은 내 운명, 성공신화를 쓰다

 

윤홍근 회장은 ‘닭은 내 운명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제너시스 BBQ의 회사 곳곳에는 닭 조형물과 닭 그림, 닭 인형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5000개의 닭 모형을 수집했다. 그는 닭무늬 넥타이와 넥타이핀 착용을 즐긴다. “닭튀김 냄새가 엔도르핀 역할을 한다”고도 말한다. 요즘도 하루에 치킨 한 마리씩을 먹는다고 한다.

윤 회장의 태몽도 ‘닭’이었다. 윤 회장의 어머니는 아주 큰 닭이 입에 공을 물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195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머슴만 다섯 명을 부리는 부농 집안에서 자랐다. 집안의 종손이라고 늘 어른 대접을 받았다. 어머니는 그를 늘 ‘장손’이라고 부르며 겸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윤 회장을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윤 회장이 식사를 마친 뒤에야 식사를 한다. 누님과 여동생이 참기름도 못 얻을 때 그에게는 언제나 귀한 음식이 돌아왔다.

한때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여수에서 선박 사업을 했다. 윤 회장이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별세했다. 사업은 부도가 났고 집안은 빚더미에 올랐다. 대대로 천석꾼 부자였던 집안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친구의 설득으로 조선대 무역학과에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입학 뒤에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야간 상고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1982년 학사장교 1기로 임관한 그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의 12사단 최전방에서 복무했다. 장교 시절은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 시기였다. 그는 인근 지역의 학사장교 동기회장을 맡았다. 그가 호출하면 100명 가까운 학사장교들이 달려올 정도였다고 한다. 동기들은 그에게 ‘천도리 군단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1984년 전역을 앞둔 동기생들의 취업을 위해 430명의 이력서를 더플백에 넣고 서울에 올라와 채용 지원서를 접수하기도 할 만큼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윤 회장은 군 복무 뒤 국내 최대 조미료 회사였던 미원(현 대상)에 입사했다. 지방대 출신으로 많은 설움을 겪으면서 이를 악물고 일했다고 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면서 미원의 최고경영자가 되기를 꿈꿨다. 미원의 사업본부 구매과에서 사료용 곡물을 수입하는 업무를 맡았던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고 한다. 곧 능력을 인정받아 사료공장 총무과장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윤 회장이 ‘닭’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미원의 자회사인 닭고기 가공 유통회사 ‘마니커’의 신규사업부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닭고기 수요가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그는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하자고 회사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치킨 프랜차이즈만 200여 개나 되고, 작은 아파트 단지에도 15~20개씩 치킨집이 몰려있을 정도로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이유였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치킨집들은 주로 치킨과 맥주를 같이 파는 호프집이 많았다. 그는 차별화된 맛을 개발하고 호프집에 갈 수 없는 어린이와 주부를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1995년 윤 회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BBQ를 창업해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다. BBQ란 브랜드 이름은 ‘Best Believable Quality’의 약자라고 한다. 자본금 5억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전셋집을 월셋집으로 옮기고 예금과 대출로 1억을 만들었다. 나머지 4억은 주변의 지인과 선후배들에게 2000~5000만 원씩 투자를 받았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사업에 몰두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닭을 먹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한다. 신선한 닭의 느낌을 알고자 생닭까지 수없이 먹었다.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닭고기와 식용유 가격도 올랐고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았다. 그는 원가 인상분을 본사와 가맹점, 닭고기 공급업체가 나눠서 지자고 설득했다. 한 발 더 나가 TV광고까지 하자고 제안했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마저 줄이는 판에 광고비를 증액하자고 하자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 공격적 투자는 다행히 성장의 발판이 됐다. 외환위기로 쏟아져 나온 퇴직자들이 TV에 자주 비치는 BBQ 가맹점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삽시간에 가맹점이 늘었고 외환위기가 마무리되는 1999년 즈음에는 1000개를 돌파했다.

2003년 발생한 조류독감 사태는 또 다른 위기였다. 소비자들은 닭고기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게 됐고 치킨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윤 회장은 한국치킨외식산업협회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닭고기 이미지 쇄신을 위해 나섰다. 양계협회 등과 손잡고 닭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리면 20억 원을 보상해 준다는 보상금 제도를 도입했다. ‘조류독감’이 아니라 ‘AI’라고 보도해 달라고 각 언론사에 호소했다. 사람들도 흔히 걸리는 ‘독감’이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한다는 이유였다.

윤 회장은 틈만 나면 맥도널드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최고의 프랜차이즈 그룹, ‘천년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맥도널드의 ‘햄버거대학’을 본떠 ‘치킨대학’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윤 회장은 2020년에는 전 세계에 5만 개의 프랜차이즈 지점을 갖겠다고 호언한다. 맥도널드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데 50년이 걸렸지만, BBQ이 성장 속도는 그보다 빨라 25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BBQ는 2003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스페인 등 세계 57개국에 진출했다. 윤 회장은 “고객이 원하면 세계 어디든 간다는 칭기즈칸씩 경영정신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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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영업’과 ‘치즈 통행세’ 등 가맹점에 횡포를 부린 미스터피자의 창업주인 정우현 엠피(MP)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 이것은 상생인가 아닌가

그러나 무리한 해외진출은 BBQ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만 해도 2007년 첫발을 내디뎠지만 한때 120개에 달하던 매장이 30개로 줄었다. 해외사업에서 손실이 누적되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고 2012~2013년에는 순손실을 보기도 했다. 급기야 2014년에는 교촌치킨에 매출 1위 자리를 내줬다.

해외진출과 신사업 확장을 위해 자회사인 bhc치킨을 매각했지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외국계 펀드에 매각된 bhc는 오히려 날개 돋친 듯 사업을 확장해 내갔다. 지난해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에서 모회사였던 BBQ를 제쳤다. 제너시스BBQ는 지난해 매출이 2198억으로 교촌F&B(2911억), bhc(2326억)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가맹점 수도 1500개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지난해에는 가맹점 수를 200개가량 과다 산정해 1700개로 공시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해외진출 외에도 BBQ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에도 주머니 속 송곳처럼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BBQ는 치킨 프랜차이즈 중 창업 비용이 가장 비싸고, 폐점률이 교촌치킨의 10배인 10%가 넘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정위에 자주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9년에는 가맹점이 물품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등 가맹계약서의 불공정 약관이 적발됐다. 2011년에는 가맹점 관리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가맹지역본부에 벌금을 부과했다가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3년에는 본사가 발행한 상품권의 수수료를 가맹점에 떠넘겼다가 시정명령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연 5%의 최저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로 가맹점을 모집했지만 과장 광고임이 드러나 역시 시정명령을 받았다.

가맹점 ‘갑질’도 이미 2007년 즈음에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올리브유가 튀김에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은 있지만, 닭을 튀기는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BBQ의 대표적인 홍보전략이며 성공의 한 축이었다. ‘웰빙’의 바람을 타고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2005년 이 올리브유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기름가격이 1000원 넘게 올랐다. 치킨 가격도 1만1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2000원이나 올렸다. 매출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BBQ는 홍보·판촉 행사를 벌였는데 초콜릿, 돗자리, 우산 등의 판촉물 제작 비용을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가맹점주들에게 떠넘겼다. 저항하는 가맹점주에게는 가차 없이 ‘계약 해지’ 통보를 날렸다.

BBQ의 치킨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도 종종 나온다. 2010년 롯데마트가 5000원대 ‘통큰치킨’을 발표하자 BBQ는 앞장서 비난에 나섰고 결국 판매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BBQ가 너무 비싼 게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역풍을 맞았다. 올해 초에는 배달 앱 수수료 증가와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이유로 모든 메뉴 가격을 10%, 약 2000원가량 기습 인상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가맹점을 위한 인상이라고 했지만, 가맹점으로부터 판매 마리당 500원씩 광고비로 거둬들이겠다고 해 결국 인상분을 본사가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윤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본사가 1원도 가져간 적 없고 가맹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윤 회장은 치킨값의 원가 구성비를 언론에 공개했지만 1만6000원짜리 치킨에 8500~9000원 가까운 돈이 본사에 재료비로 들어간다는 것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은 듯했다.

BBQ가 하면 다른 브랜드들도 따라올 줄 알았지만, 여론의 뭇매가 이어지자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업체까지 생겼다. BBQ의 공격적인 전략이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AI로 인한 닭값 상승이 이유였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는 연간계약으로 공급물량을 받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공정위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불공정 계약 관계 등을 조사한다고 나서자 반나절 만에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BBQ는 ‘싸나이답게’ 가격 인상을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싸나이답게’라는 사과 문구 자체마저도 비판을 받았다. 의사결정은 윗선이 해 놓고 왜 젊은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는 사진을 썼냐는 지적도 나왔다.

치킨값 인상 논란은 엉뚱한 곳까지 불똥이 튀었다. 치킨값 인상 논란이 마무리되자마자 취임한 지 3주밖에 되지 않았던 이성락 제너시스 BBQ 사장이 사임했다. 이 전 사장은 신한은행 부행장과 신한생명 대표를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겉으로는 치킨 가격 인상 논란에 책임을 진 것으로 해석됐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윤 회장이 출근할 때마다 로비에 나와 영접을 해야 했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회의가 많은 등 사내 문화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BBQ가 윤 회장의 개인 카리스마에 의존하다 보니 나오는 잡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에는 수습 1개월 차였던 영업직원이 조회시간에 ‘회장님하고 저만 사원증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가 사표를 종용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회사 분위기가 ‘회장님’을 언급한 것 자체가 사표 감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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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BBQ가맹점 현관 창문에 본사의 ‘갑질’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사진:이데일리).

치킨값 인상 국면에서 누리꾼들은 윤 회장이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들춰내기도 했다. 비슷한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극기집회 등을 주도해 왔는데 윤 회장 역시 이에 동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윤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후보 시절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특보 겸 직능위원으로 활동했고, 5·16군사 쿠데타를 기념하는 ‘5·16 민족상’ 산업부문을 수상한 것도 그런 의심을 뒷받침했다.

최근 BBQ는 푸드트럭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청년·영세사업자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려 든다는 뒷말이 나왔다. 업계 안팎에선 치킨값 인상에 이어 ‘푸드트럭’ 역시 윤홍근 회장의 결단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BBQ의 위상이 점차 약화되자 그간 성공신화를 달려온 윤 회장도 조바심이 생겼고 결국 무리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 가족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로 아들에게 편법 증여를 하면서 세금은 단돈 50만 원만 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갑질’ 논란까지 벌어져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이 국면을 또다시 특유의 공세적 방법으로 풀어나갈지는 알 수 없다. 분명 그의 경영술이 통하던 때가 있었고, 또 그를 믿고 따르면서 함께 성장한 가맹점도 있을 테지만 시대가 변한 것만은 사실이다. 윤 회장은 평소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고 강조한다고 한다. 직접 전국을 돌며 가맹점주들과 간담회를 열고, 가맹점주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무언가 공허하다. 불시에 가맹점을 찾아가 본인 소유의 점포인 듯 행동하는 것도, 전세기를 동원해 가맹점주들과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열고 떠들썩하게 노고를 위로하는 것도 확실히 이 시대가 원하는 ‘상생’ 방법은 아닌 듯하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되돌려 주는 것만이 진짜 ‘상생’이 아닐까.

 

목, 2017/11/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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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11월 30일 신촌 히브루스에서 ‘포스트 사회주의 –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다른백년에서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진행된 사회주의 실험을 평가하고, 이를 기초로 향후 전개될 포스트 사회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탐색을 목표로 관련 연구사업을 6개월 여의 기간 동안 진행하였습니다.

   본 발표회는 기간에 진행된 ‘포스트 사회주의’ 연구사업의 최종 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보고서의 최종점검 및 대중적 검증을 목표로 기획되었습니다. 발표회는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성공회대 교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구갑우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다른백년 연구기획의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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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러시아 혁명 이후 진행된 100년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간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문제 삼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으며,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본 발표는 현실사회주의를 대표했던 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북한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국민대 전재원 교수(국민대)는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체제전환’을 주제로 러시아(구 소련) 사회주의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정재원 교수는 과거 구소련 체제의 붕괴요인을 중앙계획경제의 비효율성과 생산자 직접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찾으면서,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는 급속하게 주변부 자본주의화 하면서,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두번째 주제인 ‘중국사회주의의 역사적 전개: 소련 모델, 현실, 제체전환’을 발표한 박철현 교수(국민대)는 중국 사회주의가 초기에 소련모델을 수용하면서 시작하였지만, 서서히 중국적 현실에 맞는 ‘중국식 사회주의로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중국 사회주의는 소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분권적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이는 중국사회가 처한 역사적, 물적 조건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적 성격이 중국 사회주의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하였다.

   세번째 발표는 ‘제3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소고: 쿠바사회주의를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정이나 교수(부산외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이나 교수는 쿠바 사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보건의료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며서, 쿠바 사회주의가 이룩한 보건의료체제의 위대한 성과를 소개하였습니다. 쿠바 사회주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운동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네번째 발표는 ‘베트남의 사회주의와 탈사회주의’를 제목으로 이한우교수(서강대)가 진행하였습니다. 이한우 교수는 현재 베트남 경제에서 국유경제부문이 GDP 대비 30%까지 쪼그라들었으며, 이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민족주의 운동과 통일과정에서 획득한 정당성에 필연적으로 위기가 도래할 것이며, 이는 엘리트 중심의 베트남 사회주의 체제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사회주의의 변화: 이데올로기와 사회사회구조’를 제목으로 정영철 교수(서강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영철 교수는 발표문에서 북한의 사회주의가 ‘주체’사회주의이며, 주체사회주의는 외적으로는 주체사상을 앞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실리주의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공산주의를 먼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체제라는 인식하에 실리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한사회가 더욱 개방적인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발표회에는 50여명이 플로워를 메우며 발표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발표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여전히 의미 있는 성찰과 고찰의 주제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포스트 사회주의’ 보고서에 세미나에서 논의되었던 제안들을 반영하고 보완하여 최종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월, 2017/12/0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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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경환의 죄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많지만 그 중 손에 꼽히는 게 대한민국을 투기공화국으로 만든 것이다. 박근혜와 최경환은 빚 내서 집 사라며 시민들의 등을 떠밀었다. 박근혜와 최경환 덕분에 청약시장은 투전판이 되었고, 대출 규제는 완전히 형해화됐다. 여기에 유례 없는 초저금리가 계속되며 금융위기 이후 소강상태이던 부동산 시장은 2014년 이후 본격적으로 상승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했다. 이젠 강남진입은 고사하고 서울에 변변한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도 중상층 이상이나 가능한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만신창이로 만든 대한민국을 인수받았는데 투기공화국도 인수받은 셈이다. 본디 투기는 예방이 최선이다. 투기라는 괴물이 잠을 깨면 다시 잠재우기가 지난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상황 정확히 진단하고 스마트하게 대응하는 문재인 정부

투기라는 괴물의 발호에 맞서 문재인 정부는 영리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8.2부동산종합대책을 통해 투기심리의 예봉을 무디게 했고, 10.24가계부채대책을 통해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걸 관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거기에 11.29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100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에 공적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정책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일련의 대책을 통해 청약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고, 양도세를 중과하며, 부동산 시장 급등의 주된 원인인 과잉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을 관리하고, 공적 주택을 대거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인상에 나선 한국은행

한편 한국은행이 11월 30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한은의 금리인상은 6년 5개월만의 일인데 시장에서는 한은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측하고 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이자율이 상승하면 자산가격은 하락압력을 받는다. 즉 부동산 시장 안정에 필요한 정책수단들을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주효할 가능성이 한결 커진 것이다.

고율의 보유세를 제외하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에 있어 기준금리 인상에 필적할 만한 정책요인을 찾기 힘든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초저금리 기조가 종식된만큼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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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내건 부동산 관련 공약들. (이미지: 매일경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공급폭탄 등의 재료 대기중인 부동산시장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제도만 있었지 실행한 적은 없었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이러면 투기의 뇌관 역할을 했던 강남의 재건축단지들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내년엔 45만 가구, 2019년엔 41만 가구의 아파트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 물량은 10년 평균 입주량의 두배씩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규모다.

결론적으로 말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유리한 조건은 찾기 힘든 것이다. 수도권 등의 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을 확률이 높다. 다만 실탄이 풍부한 부유층이 밀집한 강남 등 서울의 부촌은 소강상태에 빠질 뿐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보유세가 현실화 되지 않는 한 말이다.

월, 2017/12/0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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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2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법원이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받아들이며 석방했다. 애초 김 전 장관을 구속 기소한 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조사하고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하려던 검찰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피의자 신분으로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의혹의 ‘윗선’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미래 육군의 희망’,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군인’이라 불리며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의 국방·안보 분야에서 모두 중용된 그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그가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국가안보’보다 ‘특정 정권의 안보’에 앞장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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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관진 전 장관 (사진:뉴스1). 오른쪽 사진은 청년장교 시절의 모습.

 

김 전 장관은 1949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해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했다. 생도때부터 군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매 기수 1명만 선발하는 독일(당시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해 1학년을 마친 뒤 독일 육사에서 3년간 위탁교육을 받았다. 학사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독일 육사를 다녀온 뒤 임관한 장교들이 보통 대학 위탁교육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하는데 이를 거부한 일은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 서울대 위탁교육 기회가 있었지만 “군인이 되려고 육사를 간 거지 서울대 가려고 한 게 아니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공식 학력이 고졸이었지만, 이후 정부에 시정을 요구해 대학 졸업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초급장교 시절 보병학교 교관을 하며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며 ‘미래 육군의 희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는 ‘뼛속까지 군인’의 모습을 이어갔다. 야전군 지휘관 시절부터 집무실에 북한 최고 지도자와 인민군 책임자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자신이 상대할 ‘적’을 마음에 항상 두겠다는 뜻이었다. 사진들이 자신의 등을 지켜보는 것을 생각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의 과거 군생활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군인 정신’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 탄탄대로  걸어

이러한 면모로 그는 역대 정부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육군본부 기참부장(소장)과 2군단장(중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 3군사령관(대장)으로 거침없이 나아갔고, 2006년 11월 군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에 올랐다. 2008년 전역했지만 2010년 12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옷을 벗자,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공관에 짐을 빼고 떠날 준비를 했지만 후임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며 유임됐다. 전·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이어가는 이례적인 사례였다. 2014년 6월에 세월호 참사 뒤 사퇴한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뒤를 이었다.

 
 이 당시 ‘북한이 싫어하는 김관진’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장관 재임 뒤 “북한이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한다”, “도발 원점 타격” 등 대북 강경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2011년 1월 신년사격인 장관 지휘서신 1호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의 한 대목인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역시 김관진’이라는 평가가 따랐고, 대북 강경론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을 열광케 했다. 이에 북한에서도 김관진 실장을 김관진놈이라고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훈련 때 목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놓고 훈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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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사이버사령부가 2011~2013년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을 영웅화하기 위해 영화 포스터 등을 이용해 만든 합성 사진.

 하지만 군인으로서 그의 이력은 과대 포장됐고 ‘관운’이 좋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가 육군 3군 사령관이던 2005년 예하 부대인 28사단 530GP(전초기지)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장병 8명이 숨졌고, 국방부 장관 재임 중에는 제2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 북한군 노크 귀순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하지만 그는 책임을 지지 않고, 합동참모의장, 국방부 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군 인사 문제에서도 전횡을 부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장군 인사 절차 및 여망’ 보고서를 열람하고 최근 공개한 내용을 보면, “김 장관이 독일 유학파(일명 독사파) 출신 등 연고가 있는 인물들을 무리하게 진급시켜 장관 인맥 대 비장관 장교들 간 갈등을 초래한다”, “육사 35∼42기 독일 유학파 출신 7명 중 교수나 무관을 제외한 5명이 1, 2계급씩 진급했다”등이 보고서에 담겨 있었다. 당시 부임 6개월 만에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전격 경질된 배경이 이 보고서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실제로 최근 공관병 갑질 사건을 야기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도 독일 육사출신이고, 군 사이버사 댓글공작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도 독일 육사 출신이다. 

 

 권력과 거리를 좁히며 승승장구한 그에게 현재 붙는 꼬리표는 ‘정치개입’이다. 그는 4년 전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의혹에 대해 국회에 “그런 사실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시종일관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과 국회를 통해 공개된 사실을 보면, 그는 특정인과 진보성향, 야권 인사들에 대해 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블로그 글을 통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온라인 심리전’을 벌인 것을 매일 보고 받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공개한 군 사이버사 심리전단 요원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김 전 장관이 군 사이버사로부터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 재임 초기부터 3년 동안 거의 매일 보고를 받은 정황이 나타난다. 
 게다가 군 사이버사령부는 ‘윗선’인 김 전 장관을 영웅화하는 합성사진들도 온라인에 뿌렸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등에 김 전 장관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나 포스터를 만들어 온라인에 올리고, “북한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분” 같은 류의 댓글들 달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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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받을 때의 김관진 전 장관.

 

정권의 이익 대변하며 재빠른 변신 

결국 그가 부여잡고 있던 것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였을까? 군 사이버사의 정치개입 외에도 그가 정권의 이익을 대변한 모습은 곳곳에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합참의장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서에 직접 서명을 하며 전작권 환수를 지지했던 김 전 장관은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입장을 뒤집었다. 노무현 정부가 2012년을 전작권 환수 시기로 합의한 것을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3년 더 연기했는데,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전작권 환수가 2012년의 국가 안보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시기가 연장된 것”이라며 당시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전작권 전환 논의될 시점에 저(당시 합참의장)를 포함해 군에서는 현재 안보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맞지 않다고 건의를 많이 했다”며 노무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 오찬 건배사에서 ‘전작권 환수에 전군이 힘을 모아 확실히 추진하겠다’라고 했던 분”이라고 인사청문회 야당 위원들의 비판이 따라왔다.

 그는 자신을 ‘참군인’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안보’를 위해 해온 일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짙은 그림자로 남아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금기를 깨버린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개입 의혹, 2017년 9월로 예정돼 있던 배치 시점을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 요청해 앞당겼다는 ‘사드 알박기’ 논란 등 그와 연관된 사건들은 여전히 실체를 규명할 여지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일선에서 ‘국가안보’라는 가치에 매달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장병들의 명예에 그의 몰락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지금도 사관생도의 신조는 ‘참군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김 전 장관이 다시 되새겨야 할 내용 같다. 

목, 2017/11/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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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강생들 중 거의 대부분이 경제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매우 부러워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학부생 시절 경제학을 공부할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경제에 대하여 발언할 자격을 취득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무지하게도 내가 강의하는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 수업 도중 경제 현상과 관련된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경제학이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한국 학생들의 경제학 공부와 관련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대학에서 수년간 경제학 강의를 수강한 대부분의 학생들보다 내가 경제학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수강생들에게 경제 이론의 기초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그들이 수강하는 ‘경제학’ 수업에서 토머스 홉스, 아담 스미스, 막스 베버, 칼 마르크스, 존 케인스와 같은 고전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토마 피케티 같은 현대 경제 평론가들의 주요 저서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놀랐다. 단순한 문학 교수에 불과한 나도 그러한 모든 경제 이론가들의 주요 작품 중 적어도 일부는 읽었다. 한 학생은 경제학 교과서에 경제학의 주요 이론을 간략하게 소개한 구절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 경제학의 본질 빠진 수학문제 풀이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 수업은 경제학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고급 수학을 이용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으로 구성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금리 및 적자 문제에서부터 인플레이션과 가치에 이르는 경제학의 ‘사실들’을 마치 제2 열역학 법칙이나 중력 법칙과 같은 자연 법칙처럼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에서 정의된 인간 활동과 관련하여 그러한 가정의 타당성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고사하고 인식론적 또는 형이상학적 고려 없이 단순한 계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경제학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엄청난 추측을 하고 있다.

나는 수강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시점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결국 수많은 사상가들을 통해 경제학에는 가장 제한된 의미에서만 ‘법칙’이 존재하고, 전체적인 경제 개념은 문화적으로 너무 구체적이며 정치 및 관행들로부터 영향을 받음으로써 경제학은 문학이나 미술사만큼만 과학적인 영역이라는 매우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논쟁이 전개되었다.


케인즈
존 메이너드 케인즈

모든 경제학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제학 연구의 근본적인 철학적 및 역사적 원칙 즉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사회, 국가, 돈, 상거래를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가와 그러한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것을 생산했는가에 대한 소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에는 ‘경제’의 개념이 각 전문가나 또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제학 학문에서 금융 및 상업 활동의 윤리적 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고려를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학은 천문학 연구처럼 가치중립적인 분야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기능 및 결과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인간적인 기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와 거의 유사한 영역이다.

경제학은 정치와 유사한 영역으로 봐야

이처럼 경제학 윤리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나만의 고유한 관점은 아니다. 서양의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부터 동양의 맹자에 이르는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경제 및 정치의 윤리적 요소를 오랫동안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다. 나는 어떻게 경제학 연구가 도덕 철학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쨌든 현재 한국은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은 학생들이 수학에 초점을 맞춘 경제학 수업을 통해 배우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현재 논의하는 것이 한국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세계 무역 체제의 붕괴나 고립주의 및 민족주의 영역 아니면 빈부격차의 가속화 문제이든 간에 관계없이 다음 세대는 심각한 문화적,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수학 방정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가망은 없다.

다음 세대가 미래에 직면하게 될 복잡한 문제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경제학을 마치 미적분의 형태처럼 가르치는 것이 향후 그들에게 끔찍한 해를 끼칠 것 같아 두렵다.

수, 2017/11/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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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눈길을 끄는 부동산 관련 기사는 두 개였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기사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가구의 실질소득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는데 그나마 +를 기록한 명목소득도 부동산 등 재산소득의 폭증 때문이라는 기사다.

한국감정원의 23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일 조사 기준 서울지역의 주간 아파트 가격은 0.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8·2 대책 발표 이후 최대폭 상승이다. 이번 상승은 송파구(0.13%→ 0.45%), 강남구(0.22%→0.31%), 서초구(0.10%→0.15%), 강동구(0.05%→0.15%) 등 이른바 강남벨트가 견인했다. 물론 거래량 자체가 급락한 상태라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도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8·2 대책 이후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발표해 부동산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천명하고 대책 중 일부는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이 확 잡히지 않는 현상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재산소득 증가 대부분 부동산 폭등  때문

서울 집값이 상승세를 이어가면 당연히 부동산 부자들의 소득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통계청의 23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전국·명목 기준)은 453만7천192원으로 1년 전보다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목소득이 이럴 뿐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8분기 연속 감소 상태다. 주목할 대목은 명목소득의 증가도 재산소득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재산소득은 무려 34.4%나 폭증한 반면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은 6.2%와 1.6%증가에 머물렀다. 재산소득의 폭증은 부동산과 주식 폭등에 기인한 것인데, 부동산과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소득 상위 20%에 포진해 있다. 자산가격의 대폭등은 부자들의 지갑만 두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이 양극화의 근본원인인 건 대한민국만의 현실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는 대한민국보다 더 심하다. 사람 중심의 새로운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3인(조시 라이언-콜린스, 토비 로이드, 로리 맥팔렌)의 영국 경제학자들이 함께 쓴 <땅과 집값의 경제학>(원제 Rethinking the Economics of Land and Housing, 2017)은 부동산이 삶의 경계를 가르는 구분선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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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실질소득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를 기록한 명목소득도 부동산 등 재산소득의 폭증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부동산 부자들만 살 찌고 있는 것이다.(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땅과 집값의 경제학>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대체불가능하고 가치는 증가하는 땅이라는 재화가 사유화되고, 토지사유제 하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지주가 독점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20세기말 경제사회적 활로를 찾지 못한 정부와 시민들이 부동산(땅과 주택)가격의 상승에서 경제사회적 출구를 찾았고, 그런 집단적 움직임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및 이에 기반한 금융증권화와 맞물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그리고 이젠 주요 선진국에서 어디에, 어떤 유형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부의 결정적인 척도가 되었고 불평등의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국토보유세 3종 세트 도입해야

주거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저자들은 땅과 집이 야기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들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땅과 부동산의 소유 형태를 다양하게 하는 방법(토지의 공적소유, 토지의 강제수용, 사유지 투자와 핸드 풀링, 지역공동체의 토지소유와 비시장 모형들), 조세제도 개혁(토지세와 재산세 증세), 대출과 관련된 금융시스템 개혁(금융 규제와 신용규제 제도 시행, 은행부문의 구조 개혁 시도, 정부주택과 주택투자은행 증가, 은행부채 금융의 대체수단 마련), 다양한 주택 보유형태의 구축(차별화된 보유형태의 시행, 판매가치률 제한, 저비용 임대주택 보급), 개발계획 시스템의 개혁, 경제이론과 국민계정의 변화 시도(경제이론에 땅의 역할을 포함, 국민계정에 땅을 포함, 공공부문 부채의 측정)등이 그것이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에는 부동산 문제의 근본원인이라 할 지대를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공적으로 환수하는 방법에 대한 정책대안들이 이미 제출된 상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김윤상 명예교수가 제안한 지대이자차액세(지대 중에서 매입지가의 원리금을 초과하는 부분만 세금으로 환수하는 방안)과 전강수 교수 등이 제안한 국토보유세 3종 세트(종부세를 폐지하고 국토보유세라는 세목을 신설하는 것으로, 국토보유세는 토지에만 보유세를 누진적으로 부과하며, 징수된 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토지배당 형식으로 지급한다. 지급의 형식은 현금이 아니라 지역상품권이나 지역화폐다)방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이 지대이자차액세 및 국토보유세 3종 세트를 정책에 반영한다면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과 작별하는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딛게 될 것이다.

 

 

 

 

 

화, 2017/11/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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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1주년을 맞이해 사단법인 다른백년에서 백년포럼 시즌3 2번째 포럼을 개최합니다.

‘한반도 평화 구축 방안’이라는 다른백년 어젠다 시리즈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나리오들 2nd-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 데탕트‘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양국체제’를 한반도평화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김상준 경희대학교 교수의 발제에 대해 이남곡 소장(연찬문화연구소), 김누리 교수(중앙대학교), 이일영 교수(한신대학교), 남문희 전문기자(시사인)가 토론을 벌입니다.

일시 : 12월 7일 오후 3~6시

장소 :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20호

참가신청 : https://goo.gl/YcwY6p

 

궁금하신 내용은 전화(02-3274-0100)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문의하십시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다른백년-포스터_

월, 2017/11/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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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에 걸친 한국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방안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군사충돌의 위험이 닥쳐오는 와중에서도, 아직 종결되지 않은 미국의 가장 오랜 전쟁이자 세계사에서 가장 유혈이 낭자했던 전쟁의 진실에 관하여 미국 국민은 거의 모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추진했던 1953년의 휴전협정, 최소 200만에서 최대 400만 명의 군인 및 민간인의 죽음을 불러왔던 3년간의 “치안활동(police action)”을 중단하는 그 휴전협정은 오래 전에 잊혔다. 미국과 남한 및 이들의 유엔 동맹국들과 북한의 군사 지도자들 간에 체결된 이 협정은, 냉전 초기에 벌어졌던 이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정식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 간 합의의 일환으로, 플루토늄을 함유하는 사용 후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1994년 11월 영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출발에 앞서 미국 국무부 관리가 이처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관하여 내게 상기시켜 주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장소로 난방 설비를 가져가면 어떻겠느냐고 국무부 관리에게 제안했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보장조치(IAEA safeguards) 속에서, 한겨울에 고준위 방사능 연료봉을 격납용기에 넣는 북한 사람들에게 난방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국무부 관리는 화를 냈다. 적대행위가 종료된 지 40년이나 지났지만 적에게 어떠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강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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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가게 되는 씨앗은 미국이 1953년의 휴전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듦으로써 뿌려졌다. 1957년부터 미국은 협정의 핵심 조항, 즉 더 이상의 무기를 한반도에 반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위반했다.

제네바 합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1994년 봄과 여름에 미국은, 첫 번째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는 북한과 충돌하게 되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기초한 김일성을 직접 만나는 외교력을 발휘한 덕분에 세계는 벼랑 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4년 10월 12일 서명된 제네바 합의의 대체적인 윤곽은 바로 이러한 노력으로부터 나왔다. 이 합의는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과 맺은 유일한 정부 간 협정이다.

제네바 합의는 양국 사이의 비확산 협정으로, 한국전쟁의 종식으로 가는 문을 열 수도 있었다.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하는 대가로 중유의 공급과 경제협력 그리고 두 기의 현대식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데에 북한이 동의했다. 궁극적으로는 당시 북한의 핵시설을 해체하고 사용 후 연료를 북한 외부로 반출한다는 것이었다. 남한은 두 기의 경수로 건설을 준비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두 번째 임기에 접어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통령 자문이었던 웬디 셔먼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제거한다는 북한과의 합의가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의해 뒤집어지기 전까지 “거의 타결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은 공화당 의원 다수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리고 1995년 하원을 차지한 공화당은 협상을 결렬시킬 결정적 장애물을 투척했다. 북한으로 향하는 중유의 선적과 플루토늄 함유 물질의 확보를 방해했던 것이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클린턴 행정부의 노력은 북한 정권의 교체라는 노골적인 정책으로 대체되었다. 부시는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악의 축”을 구성하는 국가라고 선언했다. 부시는 9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요구하는 국가안보정책을 이야기하면서 명확하게 북한을 지목했다.

2002년 10월 북미 양자회담에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에게 “우라늄 농축 비밀 프로그램을 중지하지 않으면 가혹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던 배경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여전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1999년 당시 미국 의회와 언론이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철저하게 이행하여 8년간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안전조치는 경수로 건설이 충분하게 진행되는 시점까지 연기될 것이며 그 지체가 위험해 보일 경우 합의를 수정할 수 있음이 제네바 합의에 명시되었다. 설리반의 최후통첩이 나온 직후, 북한은 사용 후 핵연료에 관한 보호조치를 중단하고 플루토늄 추출과 핵무기 생산을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던 바로 그 시기에 전면적 위기의 불이 당겨진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관련 교착상태를 해소하려던 부시 행정부의 노력, 이른바 6자회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미국의 완강한 고집, 그리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협상에 들어갈 수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아니면 말고” 식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북한으로서도 2000년 선거 이후 얼마나 갑작스럽게 합의가 뒤집혔는지를 기억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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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12일 서명된 제네바 합의. 이 합의는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과 맺은 유일한 정부 간 협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보유를 향한 노력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전략적 인내‘라고 일컫는 오바마의 정책은 대체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특히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한미 군사훈련 기간의 연장은 북한의 강력한 도발을 불러왔다. 북한 정권의 궤멸을 목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 벌이고 있는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시위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더욱 강력한 핵실험만 가속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북한을 다루는 문제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가게 되는 씨앗은 미국이 1953년의 휴전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때 뿌려졌다. 1957년부터 미국은 협정의 핵심 조항(제13항의 네 번째)을 위반했다. 해당 항목은 더 이상의 무기를 한반도에 반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결국 수천 개의 전술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핵포탄, 미사일 핵탄두, 지하관통 폭탄, 바추카 핵포탄, (20킬로톤) 핵배낭 등이 포함된다. 199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는 모든 전술 핵무기를 철수했다. 그러나 전술 핵무기 철수 이전의 34년간 미국은 핵무기 경쟁을 촉발해왔다. 한반도에 주둔하는 자국 군대를 통해서 말이다! 남한에 쌓여가는 대량의 핵무기는 북한으로 하여금 서울을 궤멸할 수 있는 재래식 포대를 전진배치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현재 남한의 일부 군사 지도자들이 미국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 핵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미국 핵무기의 존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급증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 했다. 당시는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 불렸던 시기로, 1천명 이상의 한국군과 75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특히 북한군은 1968년 미 해군의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1명의 승조원을 살해하고 82명을 인질로 잡았다. 결국 푸에블로호는 미국에 반환되지 않았다.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통해 불가침 조약에 이를 것을 요구해왔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를 번번이 일축해왔는데, 주한미군의 축소를 통해 남한에 대한 공격을 배가하려는 북한의 속임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잭슨 딜(Jackson Diehl)은 북한이 실제로는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같은 정서에 공감을 표했다. 북한이 “정당방위를 위한 핵무기를 협상 테이블에 결코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김인룡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딜은 편리하게도 “미국이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한”이라는 김인룡의 중대한 경고를 생략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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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켜보는 모습.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지난 15년 동안 북한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의 규모가 커지고 그 기간이 길어졌다. 코메디센트럴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데일리쇼(Daily Show)의 진행자 트레버 노아(Trevor Noah)는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6자 회담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에게 군사훈련에 관해 질문했다. 힐이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한 적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힐이 잘못 알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16년 3월의 군사훈련에는 “선제적인 군사행동”과 “북한 지도부를 표적으로 하는 특수부대의 참수작전”이 포함되었으며 이 계획에 미국과 남한이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서 미국의 군사 전문가는 이 같은 계획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계획이 실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말했다.

매년 이루어지는 전쟁대비훈련은 계획이 실행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건, 임박한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북한 주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잔인한 억압을 영구화하거나 심지어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우리는, 한국전쟁 중 미군 항공기가 떨어뜨린 네이팜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학살됐는지에 관해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선전하는 것을 보았다. 1953년 무렵 미군의 폭격은 북한의 거의 모든 건물을 파괴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딘 러스크(Dean Rusk)는 “움직이는 북한의 모든 것, 서 있는 모든 건물”에 폭탄을 투하했다고 말했다. 이후 수년 동안 북한 정권은 주민의 대피훈련에 사용할 방대한 지하터널을 건설했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북한 정권의 교체를 실속 없이 추구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폐기했던 순간 그 다리는 무너졌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늘려야 할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고 이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줬을 뿐이다. 최근 틸러슨(Tillerson)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틸러슨의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트위터 메시지, 그리고 전직 군사정보 관료들의 무력위협 속에 묻혀 버렸다.

결국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양측의 직접 협상과 선의의 표시를 수반할 것이다. 한미일의 군사훈련 축소 혹은 중지와,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시험의 유예 등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군사력과 경제제재가 북한 정권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 미국 국방관료들로부터 커다란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의 성립과 붕괴로부터, 정권교체의 추구가 지니는 함정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냉전의 끝자락을 평화적으로 마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제 핵군비통제협정(nuclear arms control agreement)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품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든 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 2017/12/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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