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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시장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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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시장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익명 (미확인) | 월, 2019/01/28- 16:22

[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2019 토지공개념]

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시장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장성현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간사 [email protected]

년 초부터 공시지가 문제가 뜨겁다. 주택 가격과 땅값의 기준점이 되는 표준지공시지가 ‧ 표준주택공시가격 열람이 시작되자, 일부 언론에서 또 다시 ‘세금폭탄론’을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공시가격이 전년도보다 급격히 상승했고 이는 세금 폭탄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도 세금폭탄 운운하며 공시가격 현실화 저지에 숟가락을 얹었다.


논리의 근거로 서울 소재 고가단독주택을 내세우고 있다. 서초구 방배동의 A다가구주택의 작년 공시가격은 13억 9,000만원이었고, 올해는 23억 6,000만원으로 10억 원 올랐다고 한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전년도에 비해 211만원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세금폭탄이라는 것이다. 이 주택은 공시가격이 14억원일 뿐이지 실제 가격은 최소 20억원 이상이다. 20억원 짜리 집을 가진 사람이 한 달에 18만원 더 내는 것이 세금 폭탄이라니…

올해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대부분 주택은 재벌 회장과 부동산부자 소유다. 2019년 표준단독주택 가격 1위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B주택이다. B주택의 소유자는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이다. 작년 공시가격은 169억원이고, 올해 공시가격은 270억원으로 60% 상승했다. 보유세는 2억 1,400만원에서 3억 2,100만원으로 오른다. 신세계그룹 이 회장이 소유한 B주택의 시세는 340억원이다. 신세계슈퍼도 아니고 신세계마트도 아닌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340억원짜리 주택의 보유세가 1억여원 오른 게 세금 폭탄이란 말인가…

일반 서민이 보유한 토지와 주택의 상승률은 예년 수준과 비슷하다.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C주택의 작년 공시가격은 1억 1,000만원이다. 올해 공시가격은 상승하지 않았고, 보유세 역시 18만원으로 그대로다. 전남 목포시 산정동 주택의 작년 공시가격은 3억 1,000만원이었다. 올해는 2억 9,000만원으로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보유세도 60만원에서 55만원으로 줄었습니다. 이렇듯, 일부 고가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예년 수준보다 많이 상승한 것은 맞지만,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왜 공시지가 현실화, 다시 말해 공시지가 ‧ 공시가격 현실화가 필요한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기형적인 공시제도를 가지고 있다. 경실련은 여러 차례 실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유형별 살펴보면 공동주택(아파트)은 70~80%, 고가단독주택은 50%, 고가빌딩 및 토지는 20~30%의 시세반영률을 보인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17평 일반아파트의 공시가격은 1억 8,000만원이다. 시세는 2억 5,000만원으로 시세반영률이 72%다. 서울 강남에 있는 24평 고가아파트는 공시가격이 26억원이고 시세는 33억원이다. 시세반영률이 79%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단독주택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소유다.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261억원 시세는 500억원이다. 시세반영률이 52%다. 재벌 빌딩과 그 부지는 시세반영률이 더 낮다. 2014년 현대차가 10조 5,000억원에 인수한 강남구 소재의 한전부지는 공시가격이 2조 7,000억원으로 시세반영률이 26%에 불과하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고가일수록 시세반영률이 떨어진다. 어떤 사람은 100을 갖고도 70에 대한 세금을 내고, 어떤 사람은 100을 갖고도 30에 대한 세금을 낸다. 문제는 돈 없는 일반 서민이 100의 70을 내고 돈 많은 재벌이 100의 30을 낸다는 점이다. 가진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은 조세정책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돈 없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동산 공시제도가 시행된 이후 계속되는 현상이다.

시세에 크게 못 미치는 공시지가는 부동산시장 왜곡의 주요 원인이다. 계속해서 이런 문제를 방치한다면 ‘부동산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결코 바꿀 수 없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하여 조세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기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들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위한다면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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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1,12월호]

경실련 30년, 시민운동, 경제정의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

지난 11월 4일, 경실련 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1989년 경실련은 시민 누구나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시민운동을 지향하며 실사구시의 자세로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민주공동체를 만들어왔다.

경실련 발기선언문(1989.7.8.)은 ‘우리사회의 경제적 불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도시빈민과 농촌에 잔존하고 있는 빈곤은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으며,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계층은 각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투기와 불로소득은 투자 의욕을 소멸하여 경제성장의 토대가 와해되고, 부익부 빈익빈은 양극화로 사회 안정 기반을 해치며, 비윤리적 축적은 공동체 규범과 윤리를 와해시키고 있다’고 당시 우리사회를 진단하였다.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만연한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 재벌의 경제력 집중, 탈세, 불공정 노사관계, 농촌과 중소기업 피폐, 불공정한 소득분배와 같은 경제적 부정의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보았다. 더구나 무주택 세입자들은 뛰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17가족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던 때였다. 이 같은 상황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암울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던 절망의 시기였다.

당시 재야, 학생,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불법과 폭력적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반정부적 행동으로 저항하던 시기에 경실련은 운동의 주체를 ‘시민’으로, 지향을 ‘경제정의’로,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운동하겠다고 나섰다. 많은 사람이 경제정의를 위한 시민운동을 보고 “과연 될까?”라고 반문했다. 이에 경실련은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시민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앞으로 매진할 따름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경실련은 시대적 과제로 ‘모든 국민은 빈곤에서 탈피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은 소멸되어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회균등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결함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금권정치와 정경유착은 철저히 척결되어야 한다. 토지는 생산과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고, 재산증식 수단으로 보유되어서는 안 된다’로 설정하였다. 경실련의 30년은 수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소리 소문 없이 소멸되어가는 속에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버팀목 삼아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무주택세입자를 위한 전월세 계약기간 자동연장 및 공공주택 확충,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토지공개념과 부동산실명제 도입, 정경유착과 검은돈 근절을 위한 금융실명제, 상설 특검제, 관치금융 청산을 위한 한국은행 독립, 부동산을 통한 자산증식을 차단하기 위한 보유세와 상속 및 증여세 강화, 정부 행정 투명성을 위한 행정절차법 및 행정정보공개법 제정, 공직사회개혁을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및 반부패 운동,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와 금산분리 강화, 사회갈등의 해소를 위한 한의약분쟁 조정 등 우리 사회, 경제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경실련은 ‘경실련 30년, 다시 경제정의다’를 다짐하였다. 경실련이 처음 출발했던 그 마음과 열정이 쉼 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지, 조직의 가치의 실현보다는 조직을 유지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수없이 쏟아지는 현안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시민단체로서의 정체성은 올곧게 지키고 있는지, 활동에 비해 이름에 거품은 없는지 등 많은 반성과 평가가 이뤄졌다.

나는 무엇보다도 경실련의 지난 30년 활동이 우리사회에 생소했던 시민운동을 개척하고, 경제와 정의를 모은 경제정의를 사회운동의 중요한 지향으로 이끌었음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다음 30년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시장지배력 남용, 정경유착, 만연한 불로소득, 상실된 기회균등, 불공정한 경쟁질서, 비정규직의 차별, 사유재산권의 과잉보호, 갈등적 노사관계, 조세정의 결손 등을 극복하고, 사람 중심의 경제, 국가기관의 권한과 책임의 균형, 시민을 위한 경제 운용, 차별의 철폐와 불평등 완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수, 2019/11/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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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7,8월호 – 특집. 오늘도 무사히(4)]

산업재해는 왜 은폐되고 있을까?

– 은폐된 산업재해 문제와 해결책 –

오희택 경실련 시민안전위원회 위원장

 

한해 평균 10만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있고,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보다는 육체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5년간 산재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폐되거나 보고되지 않은 산재 건수가 4,600여 건에 이른다. 사업장에 부과된 과태료만 160억 원 정도다. 2017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지만, 관행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드러난 수치일 뿐, 실제 현장에서 산재 은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학술지 ‘산업노동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11∼2017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에 나타난 산재사고 은폐율은 66.6%에 이르고, 이는 실제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보다 2배 정도 규모의 은폐된 산재가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산업재해 은폐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대가를 지급받고 생계를 유지해 나아간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윤추구 논리에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힘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둘째, 법을 준수했을 때보다 법을 위반했을 때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처벌, 작업환경개선 문제, 보험료 상승, PQ(입찰 참가 자격 사전심사) 감점 등 비용 부담을 우려해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처리를 하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산재 은폐 문제가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산업재해의 유형을 보면 정규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발생 비율이 훨씬 높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이 2배 가까이 된다. 비정규직 비율이 1% 증가하면 전체 노동자 1인당 산재 발생 비율이 0.7% 늘어난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이는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된 실증적 근거 자료이다.
기업은 위험한 업무에 대해서 설비를 안전하게 갖추고 전문인력을 투입하여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보다는 업무 자체를 외주화하고 있다. 이를 수주한 영세업체들은 설비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기는커녕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기에 급급하다.
노조 가입자가 1% 증가하면 해당 사업체의 산재 발생 가능성은 0.7% 낮아지며, 발생한 산재의 은폐율은 4.1% 감소한다는 연구 분석 결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단체협상 등을 통해 근로조건 개선 등을 협의해 작업장 안전조치나 노동강도 등 산재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지만,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최근에 산재 사고와 관련한 내용들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극소수의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산재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론화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1.9%이다. 전체 사망자 882명 중 639명, 72.4%가 50대 이상의 노동자다. 건설업은 전체 산업 중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고 고령화가 심각한 산업이다. 산업재해 통계와 학계의 통설이 대부분 일치한다.
건설업의 산업재해와 관련한 대책은 백약이 무효이다. 온갖 대책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한마디로 헛다리를 짚고 있다. 건설업은 다단계 불법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하도급 구조가 많아질수록 밑으로 내려가면 공사비가 삭감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종 시공단계로 내려가면 일명 오야지가 일꾼들을 채용하고 평당, 톤당 단가를 설정하고 시공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애당초 ‘안전, 부실시공 근절’이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 없는 현장이 되어 버린다. 공사비는 삭감될 대로 삭감된 상태에서 현장은 무조건 ‘빨리빨리’라는 조건만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2020년 산재 사망사고 중 추락사고가 328명(37.2%)이다. 대부분이 건설현장 사고임을 알 수 있다. 추락사고는 안전고리만 걸어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추락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현장 내에 안전고리를 걸 수 있는 시설이 없거나 안전고리를 걸면 작업반경이 줄어들기 때문에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가로 공사를 수주한 오야지 입장에서 안전고리 시설을 만들고 작업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저가수주를 만회하려면 장시간 노동, 무리한 공기단축이 기본이다.
건설업은 대표적인 수주산업이다. 수주산업이다 보니 경제 상황에 따라 고용과 실업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인력시장 구조 또한 철저하게 인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다 보니 오야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건설업의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불법하도급 구조를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에 불법하도급 문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하도급은 불법이다. 불법은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불법하도급으로 처벌받았다는 뉴스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건설산업기본법에 직접시공 조항이 일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극한의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고, 건설업의 경우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8조의2(건설공사의 직접 시공)
① 건설사업자는 1건 공사의 금액이 100억 원 이하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미만인 건설공사를 도급받은 경우에는 그 건설공사의 도급금액 산출내역서에 기재된 총 노무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에 따른 노무비 이상에 해당하는 공사를 직접 시공하여야 한다.

담장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더 이상 남의 회사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우리 회사 직원이 되어야 한다. 외주화가 아닌 직접 가동,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아닌 직접 시공 구조로 나가야만 근본적인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재해 은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수, 2021/07/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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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시사포커스4]

다시, 문제는 신뢰다

김일한 통일협회 운영위원 /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교수
[email protected]

 

1997년 6월,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의 대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회담 결과가 ‘결렬이 아니다’ ‘양국정상이 새로운 대화를 준비하기로 했다’ 등등의 관전평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합의’를 전제로 한 회담이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결렬이 맞습니다. 양국간에 ‘구체적인 합의안이 있었다’ 그러나 ‘문턱이 높아졌다’ 등등의 이유도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합의안’에 사인이 없다면 역시 결렬이 맞습니다.

‘완전한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단계적 해결’을 제시한 북한의 입장이 결국 회담을 무산시킨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결국 문제는 다시 ‘신뢰’의 부족이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봅니다. 우리는 늦었지만 차분하게 북한과 미국의 신뢰문제를 다시 제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한의 중재자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22년 전인 1997년 6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호텔에서는 작은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일간에 걸친 회의는 전쟁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포함해서 양국의 책임자들이 모여 과연 전쟁은 피할 수 없었는지, 전쟁이 확전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는 자리였습니다. 미국측 대표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하노이 대화의 교훈을 강조합니다.

“하노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게을리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다시 북미협상으로 돌아오면, 둘 사이에는 여전히 건너지 못할 불신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해서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폐기하라고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할 것이라고 맞섭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과정을, 북한은 미국의 관계정상화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2년전 메트로폴호텔 대화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새로운 파국을 준비하기 보다는 오래된 미래를 다시 복기하는 것이 양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양국은 차분하게 서두르지 말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절대적인 대화의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새로운 북미협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집단제재에서 독자제재로, 외통수 정국의 새로운 상상력

완전한 비핵화를 신뢰하지 않는 미국과, 시간을 두고 관계정상화 이행 약속을 확인하겠다는 북한 사이에 대치상황은 퇴로가 없어 보입니다. 양국의 빅딜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UN의 대북한 집단제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제재해결 방법에 대한 양국간의 믿을 만한 약속과 이행 로드맵 없이는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UN 집단제재를 안보리이사국 각각의 독자제재로 전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만한 해법입니다. 견고한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가 손상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스냅백(snapback) 장치를 통해 조건부 해제가 가능할 겁니다. 대신 북한은 가시적인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이상의 조건에서 진행되는 비핵화와 관계정상화가 양국의 ‘신뢰대화’와 병행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한국역할론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면 어떻고, 트럼프의 푸들이면 어떻습니까. 이 땅에서 전쟁만 없앨 수 있다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 따위 말장난이 대수겠습니까.

중재자 없이 진행된 중국과 베트남의 대미 관계정상화 과정을 기억하실 겁니다. 분단 70여년 만에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과의 신뢰있는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책임있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어렵지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입니다.

흉물스런 철조망이,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이 국경선인줄 알고 살아온 남북한의 국민들에게 새로운 한반도의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수, 2019/03/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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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시사포커스(3)]

경찰권 비대화 방치하는 자치경찰제 도입안 철회해야

 

조성훈 정책국 간사

지난 7월 30일 당·정·청은 합의를 통해 자치경찰 조직을 국가경찰에서 분리하지 않고 사무만 분리하는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의 국가경찰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자치사무만 분담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국가경찰의 권한 분산과 지역 밀착 경찰 서비스 제공이라는 자치경찰의 도입 취지와 매우 동떨어져 있다. 정부·여당은 조직을 분산하지 않은 이유를 예산 절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자치경찰을 도입하지 않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통과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권의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자치경찰제의 후퇴는 경찰 권력의 비대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권력기관 개혁 방향과도 배치된다. 이해 당사자인 경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논의과정과 의견수렴도 부족한 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방향은 개혁의 실패와 제도의 왜곡으로 이어져 치안 공백과 인권침해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비대해진 경찰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권한의 분산과 통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조직과 사무의 분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치경찰은 경찰의 조직과 사무를 분산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국가경찰은 수사를, 자치경찰은 지역 특성과 주민수요를 반영하는 생활 밀착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대화된 경찰권의 분산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 조직을 분리·신설하고 사무에 해당하는 인력을 과감하게 이관해야 한다.

또한 현재안에 따르면 자치경찰은 신분이 국가직으로 시·도경찰청과 경찰서의 지휘를 받는다. 시도지사가 임명하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를 통해 자치사무에 대한 별도 통제 장치가 있지만 시·도 자치경찰위원 2명에 대한 추천권을 국가경찰에 두고 있어 지방자치에 입각한 실효적인 위원회 작동이 가능한지 의문이 크다. 국가경찰이 개입하고 관여할 수 있는 구조로는 진정한 자치경찰이라고 할 수 없다.

자치경찰은 경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경찰개혁의 이름을 붙이기엔 미흡 수준을 넘어 초라한 지경이다. 국가경찰의 권한의 대부분은 그대로 둔 채,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 방안, 수사의 독립성을 담보할 방안, 정보경찰의 폐단에 대한 개혁 방안 등이 담기지 않았다. 이러한 말뿐인 경찰개혁안으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로 거듭나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권침해 등 과거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수사의 독립성 확보,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를 통한 경찰의 민주적 통제 장치 마련과 정보경찰 폐단 극복 등의 과제를 담은 개혁안이 조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오랜 기간 행해왔던 국민의 인권침해, 정치 경찰의 모습을 목도해왔기 때문에 결코 과거의 폐단을 답습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바 자치경찰의 핵심은 지역 특성과 주민수요를 반영하는 생활 밀착형 치안서비스 제공이다. 지역과 주민이 배제된다면 이름만 자치경찰에 머물고 말 것이다. 따라서 당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찰 권력의 비대화가 심히 우려된다. 자치경찰은 노무현 정부에서 첫 논의가 시작되어 제주자치경찰이 시범모델로 탄생했다. 그러나 논의만 십수 년째… 자치경찰 도입에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자치경찰로서 희망을 보여줬던 제주자치경찰대만 폐지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자치경찰 방안이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정은 자치경찰의 도입 취지를 다시금 살펴야 한다.

금, 2020/09/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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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7,8월호-우리들이야기(2)][전문가칼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의 이름을 바꿔보면 어떨까?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라’

최근 특히, 야당의 대권 주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이에 적극 동조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가부 폐지 관련 청원이 등장했는데, 과도한 여성인권 정책으로 인해 남녀 갈등만 심화하고 남녀평등 대신 남성 혐오가 실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이 부처가 여성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며 젠더 감수성에 맞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 여전히 필요한 부서라고 되받아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을 남성과의 대결적 구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어느 한쪽도 차별받지 않는 공정한 사회의 실현이 여성가족부 설치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영어 표기도 ‘성평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돼 있음을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의 이러한 주장에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만일 양성의 평등한 사회 건립을 목적으로 했다면 왜 애초에 ‘양성평등부’로 명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했다면 남성과의 대립구도 속에 여성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부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그러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왜 영어로는 ‘양성평등’으로 표기해 놓고 정작 우리말로는 ‘여성’으로 표기하는 데 그쳤는지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들어 필요하다면 ‘여성부’보다는 ‘성평등부’나 ‘양성평등부’로 개선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늦었지만 뒤늦게라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여성부’에서 점차 ‘양성평등부’, ‘젠더부’와 같은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는 추세임을 볼 수 있다. 사실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법적 권리, 교육의 기회가 현격하게 떨어져서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한 여성만을 위한 정책 시행이 불가피하였으므로 ‘여성부’라는 명칭을 채택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였다. 뉴질랜드(여성부, Ministry of women)와 독일(가사·노인·여성·청소년부)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후 여기에 ‘평등’의 개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여성·평등 장관(Minister for Women and Equalities)’, 프랑스의 경우 ‘남녀평등 및 기회균등 담당 장관)’이 그 예가 된다.

최근 들어 여성부를 신설하는 나라들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여성부’ 대신에 ‘젠더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성 역할과 성 정체성이 생물학적으로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젠더(gender)’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칠레의 ‘여성·젠더평등부’, 잠비아의 ‘젠더부(Ministry of Gender)’, 모리셔스의 ‘젠더평등·가족복지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Welfare)’, 남수단의 ‘젠더·사회복지·종교문제부(Ministry of Gender, Social Welfare and Religious Affairs)’ 등이 그 예이다.

한편 여성가족부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늘 명칭을 고쳤으면 하는 부처가 있는데, 그것은 ‘법무부’이다. 법무부(法務部)란 글자 그대로 법적 사무를 처리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겠지만, 지구상에 ‘법무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자문화권의 서너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모든 나라들에서는 ‘법무부’라 칭하지 않고 ‘정의부’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예를 보면 주요 언어권 국가들에서 모두 예외 없이 ‘정의부’라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이란 사회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체계이므로 이를 담당하는 행정부 내 기관의 이름을 ‘정의부’라고 명명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을 정도로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고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언어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사피어(E.Sapir)와 호어프(B.Whorf)는 우리는 언어가 노출시키고 분절시켜 놓은 세계만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인간의 생각은 절대적으로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광주사태’로부터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름을 고치기 위해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정의부’라는 명칭을 쓰게 되면 법의 목적인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만일 우리가 ‘법무부’라는 명칭은 쓰게 되면 법의 목적인 ‘정의’가 아니라 법의 수단인 법적 업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법무부’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그 기관을 기능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함으로써 법의 본질적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양은, 서양과 달리, 법보다 도덕을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제재에 의한 법적인 처리보다는 감화에 의한 도덕적 조처를 우위에 두는 태도가 발달해 왔다. 그래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온정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법적 제재에 나서지 못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서구, 특히 미국의 보수주의는 정의를 악에 대한 응징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죄와 벌이라는 프레임 속에 밀어 넣어 매우 강력한 처벌을 정당화하고 있다.

혹시 ‘법무부’라는 표현이 한국인에게 법을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체계가 아니라 단지 법적인 업무라는 프레임에 넣음으로써, 온정주의적 사고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에 기여하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지나친 비약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정의부’와 달리 ‘법무부’는 대체로 한자문화권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명칭이다. 대만은 우리와 동일한 ‘법무부(法務部)’이고, 일본은 ‘법무성(法務省)’, 중국은 ‘사법부(司法部)’이다. 다언어사회인 싱가포르의 경우도 말레이어 Kementerian Undang-Undang, 중국어 律政部, 타밀어가 모두 법무부에 해당한다. 다만 한자문화권이 아닌 나라로서는 예외적으로 인도네시아가 ‘법과 인권부(Kementerian Hukum dan Hak Asasi Manusia)’로 명명하여 이와 동일하다.

앞서 보았듯이 서양에서는 ‘법무(legal affairs)’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카리브해의 소국 바하마와 바베이도스(Barbados) 정도에서 법무부(Office of the Attorney General and Ministry of Legal Affairs)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자문화권이 아닌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정의부’를 택하고 있으며, 태국 과 필리핀(타갈로그어, Kagawaran ng Katarungan)의 경우도 ‘정의부’를 채택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 부처의 이름을 지을 때 수단보다는 그 부처가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명명하는 것이 어떨까? ‘여성부’보다는 ‘양성평등부’로, ‘법무부’보다는 ‘정의부’로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의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목, 2021/07/2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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