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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회의 "유럽에서 보낸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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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회의 "유럽에서 보낸 열흘"

익명 (미확인) | 금, 2019/01/25- 18:27


* 두 달 전, 정보공개센터는 서울 지역 기초의회들의 해외연수 계획서를 살펴보면서 사전 심사제도가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미리 예고한 바와 같이, 이번에는 지방의회들의 해외연수 보고서들을 살펴보면서 부적절한 연수 내용과 부실한 연수보고서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서울 성북구의회의 2018년 유럽 해외연수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KBS 뉴스 9의 관련 보도를 참고하세요.





 서울 성북구의회는 2018년 11월 3일부터 2018년 11월 13일까지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거치는 유럽 해외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글에서 성북구의회의 연수 일정만 보더라도 '노골적인 관광성 연수'로 의심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로 어떤 연수가 진행되었는지 성북구의회가 공개한 공무국외연수 결과보고서를 통해 찬찬히 따져보려 합니다. 성북구의회가 유럽에서 보낸 열흘 간의 시간, 보고서 내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좌측이 성북구의회의 국외연수 계획서에 실린 일정표, 우측은 국외연수 보고서에 실려 있는 일정표




11월 3일 오후 세시, 인천을 떠난 성북구의원들은 현지 시각 19시 35분에 로마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숙소에 누이면서도, 머릿 속은 앞으로 유럽에서 보낼 시간들을 생각하며 설레지 않았을까요?



다음 날인 11월 4일, 본래 연수 계획서에 따르면 폼페이와 나폴리 지역을 탐방하면서 "문화유산 관광자원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날입니다. 보고서에서도 연수일정표에 폼페이유적과 나폴리에 다녀왔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계획서에서 밝혔던 취지처럼 "관광문화 자원의 활용 방안"에 대한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폼페이, 나폴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단지 일정표에만 표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쉽게 말해서, 연수 첫날부터 그냥 의원들끼리 관광하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11월 5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서에 따르면 이 날은 바티칸 박물관 탐방을 통해 "박물관을 활용한 지역 개발 사례 분석"을 하는 날입니다. 일단 바티칸을 "박물관을 활용한 지역 개발 사례"라고 볼 수 있는지는 제껴두도록 하더라도, 연수 보고서를 살펴보면 바티칸 역시 일정표에만 표시 되어 있을 뿐 다른 언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티칸에 다녀왔지만 보고서에 이런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정표에 따르면 이 날 콜로세움, 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성당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 '로마 관광'에 대해, 보고서에서 김세운 의원이 한 마디하고 있을 뿐, '지역 개발 사례 분석'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김세운 의원의 한 마디마저도 "로마 건축 기술이 뛰어나더라" 수준에 그칩니다. 그나마 그러한 감상 문구 마저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러니, 5일도 '연수'라기 보다는 관광에 그친 셈입니다. 



 

성북구의회가 이탈리아로 떠난 시기, 이탈리아는 폭우로 인한 수해로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11월 6일은 드디어 첫 공식 기관 방문 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로마 시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것과 달리 수해로 인해 시청 방문 일정이 무산됩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선진 경찰행정 서비스 기관을 방문하여 우리의 경찰행정서비스의 문제점과 개선 방법을 찾고자" 로마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로마 경찰서장과 면담을 진행했다고 하구요.




표절 검사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살펴본 결과, 이탈리아 경찰제도에 대한 설명은 대학교 레포트를 긁어온 것이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7페이지에 걸쳐 이탈리아 경찰제도와 한국의 경찰행정서비스에 대해 서술하고, 로마경찰서장과 질의응답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경찰제도에 대한 설명이나 한국의 경찰행정서비스에 대한 서술 모두 대학교 레포트나 백과사전, 관련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짜깁기해 가져온 것에 불과합니다.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를 열심히 나눴습니다.




 두 페이지에 걸친 질의응답 내용 역시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경찰서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사무실에 걸려 있는 상장의 의미는 무엇이냐... 표면적이고 의미 없는 질의응답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지방분권과 더불어 자치경찰제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오랜 자치경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경찰이 바라보는 자치경찰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물어본다던가,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경찰행정서비스는 어떤 특화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혀 준비된 것이 없이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연수 일정의 몇 안되는 '공식 기관 방문'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이 날 일정표를 살펴보면 경찰서 방문 이후, 피오리 광장에 가서 재래시장 견학을 했다고 하지만 보고서에는 별다른 설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음 날인 11월 7일, 연수단은 피렌체로 이동합니다. 원래 계획서에 따르면 이 날 피렌체 의회를 방문하고, 재래시장을 탐방하면서 구도시 개발과 관광자원 활용법에 대해 배우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해 때문인지, 피렌체 의회 방문은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 방문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피렌체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피렌체 중앙시장에 들려, 사진도 찍고 관계자와 간담회도 나누었지만 간담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보고서를 통해서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11월 8일은 밀라노로 향합니다. 피렌체 의회 방문이 취소된 대신, 밀라노 시청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서는 '밀라노 도시먹거리 정책협약(Milan Urban Food Policy Pact)'을 밀라노시의 주요 정책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청 관계자와의 질의응답 내용은 중구난방입니다. 사전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첫 질문으로 밀라노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 묻다가(밀라노 시 만의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합니다), 패션 산업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밀라노 시청에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밀라노시의 재해관제시스템은 어떠한가, 노인복지 정책은 무엇인가, 밀라노 도시먹거리 협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의가 이어집니다. 





오중균 의원이 전북도청의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북구의회가 밀라노시를 방문하게 되었다면, 먼저 밀라노시의 어떤 정책을 배울 것인지 논의한 후에, 그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성북구에서 그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고민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서만 보면 과연 무엇을 벤치마킹하러 밀라노 시청에 방문했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게다가, 개별 의원들의 이름으로 적는 '연수단 총평' 부분에서 밀라노시 방문에 대한 감상을 적은 오중균 의원의 경우 뜬금 없이 연수 기관 브리핑에서는 언급되지도 않았던 MEANING 프로젝트(새로운 거버넌스를 위한 유럽 광역권 연합) 사업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 전북도청의 연수보고서를 베낀 것에 불과합니다. 밀라노 시청에서 과연 뭘 배웠다는 걸까요?





두 문단짜리 연수단 의견도 인터넷언론의 문장들을 베껴썼습니다.




 11월 9일, 성북구의회는 드디어 이탈리아 일정을 마치고 스위스로 향합니다. 계획서에서는 융프라우요흐 등반열차를 타면서, 알프스 보존과 관광열차 사례를 분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산도 없는 성북구에서 무슨 알프스 사례를 이야기하겠다는 것인지 뜬금 없는 상황인데, 역시나 그냥 알프스 관광을 하고 말았는지 보고서에서도 이 날 일정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성북구의회 임태근 의장이 '연수단 의견'에서 스위스의 관광산업에 대해 칭찬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내용 역시 어느 인터넷언론 기사를 그대로 옮겨 쓴 것에 불과합니다. 




 11월 10일, 연수단은 스위스 베른시에 있는 베른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합니다. 선진국의 노인복지 방안에 대해 사례탐구하겠다는 것이 계획서의 설명입니다. 노인복지의 선진국인 스위스에 방문해서, 왜 스위스의 노인복지가 우수한지 알아보겠다는 것이죠.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연수단은 스위스의 사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보고서에서 각종 표와 그림까지 동원하며 스위스 노인복지제도에 대한 설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면 좀 수상합니다. 월간지 <신동아>에 연재된 스위스 교민의 글들을 짜깁기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이쯤 되면 표절을 해도 어떻게 이렇게 여기저기서 잘 찾아냈나, 예술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원문은 "이웃 나라 독일만 가도 종업원들의 친절도가 낮아진다"인데, 표절하면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만 가도..."로 변했습니다.





11월 11일은 프랑스 파리로 이동합니다. 계획서 상으로는 이 날, 파리 주요 지역을 탐방하고 파리의 도시 개발 계획을 견학 체험하겠다고 되어있습니다. 파리 주요 지역 탐방이라며 성북구의원들이 향한 곳은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이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역시나,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개발 계획을 견학체험하겠다면서 왜 관광명소들만 다녀왔을까요? 




도시재생 관련 성북구의회 보고서 설명에 대한 카피킬러 검사 결과입니다.






11월 12일, 드디어 열흘 간의 유럽 연수가 마무리 되는 날입니다. 라데팡스에서 신도시 개발 사례를 배우고, 베르시 빌리지에서 도시 재생에 대해 견학하는 일정입니다. 보고서에서는 도시재생의 개념과 취지,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과 실패 요인들에 대해서 길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역시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국내 문헌들을 이것저것 짜깁기한 내용입니다. 




성북구 장수마을은 도시재생과 마을공동체 사업에 있어서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심각한 문제는,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성북구 장수마을에 대한 설명마저도 네이버캐스트에서 그대로 긁어온 내용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북구의회 의원들이 장수마을과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들은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외국의 사례에 대해서는 짧은 방문으로 모든 것을 공부하기 어려우니 어디선가 긁어온다고 하더라도, 구의원들이 구 관할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 사례에 대해서 자신들의 관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직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다름 없습니다. 성북구의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는 구의원들이, 해외의 선진 사례를 배우러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기껏 프랑스까지 가서 선진 사례를 체험하고 작성한 소감문 역시, 표절입니다. 의원 개인의 이름을 걸고 쓴 소감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김우섭 의원의 경우 라데팡스에 대한 소감을 2003년에 작성된 조선일보 기사에서 짜깁기 했으며, 오중균 의원의 경우 블로그, 기사, 웹진 등의 내용을 '복붙'했습니다.




 이렇게, 성북구의회 의원들의 '유럽에서의 열흘'이 끝났습니다. 성북구의회는 연수목적에 대해 "해외 선진국의 각 지방행정기관에서 추진 중인 사업 중 이탈리아 로마, 밀라노의 행정기관 조직운영, 스위스 베른시의 노인복지시설 운영, 프랑스 라데팡스 및 베르시 지역의 각종 도시개발 및 재생 정책사항 등 우수사례에 대해 직접 현장을 찾아 이를 조사 및 분석함으로서 의원의 의정활동 능력을 배양시키고 구민의 복리증진 향상을 위해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능동적인 의정활동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여러분이 살펴본 열흘 간의 일정이 과연 '의원의 의정활동 능력을 배양'시켜서 '능동적 의정활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성북구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 심사자료 중 일부입니다.



성북구의회가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계획서에 따르면, 9월 21일 여행 참석 대상자를 선정하고, 일주일 후인 9월 28일에 여행 대상지를 선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10월 2일에는 여행 세부일정과 분야 토의 간담회를 개최합니다.


 이틀 후인 10월 4일, 여행사인 베스트투어와 하나투어가 여행 설명회를 개최합니다. 선정기준을 보면 '공식방문기관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정 사유에도 '공식방문기관 수 다수'가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먼저 의원들이 가고 싶은 여행국가를 정한 후에 여행사가 해당 여행지에서 '들릴 만한' 공식 방문기관 코스를 제시하는 순서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우선이 아니라, 의원들이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인지가 먼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행 닷새 전에 열린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 두 명의 구의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가 개최된 날은 10월 29일입니다. 여행 출발일이 11월 3일인데, 날짜가 임박한 닷새 전에야 심사위원회가 열린 것입니다. 이미 여행지도, 방문 코스도, 교통편도 다 결정된 상황에서 심사위원회가 열려봤자, 여행 코스가 적절한지 심사위원회에서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실질적인 심사가 이루어질리가 만무합니다. 6000만원의 세금을 써 떠나는 해외연수에 대한 심사위원회 회의는 30분도 걸리지 않아 끝납니다. 




로마의 지리, 기후, 역사가 궁금해서 연수를 가는건 아닐텐데요...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의 일부입니다. 로마, 피렌체 등 방문지 현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서 무엇을 배워오겠다, 관계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겠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의 지리, 기후, 역사에 대해 백과사전식의 간단한 설명만 써있습니다. 여행 계획서에는 분명 연구조사 간담회를 가졌다고 되어 있으나, 이 간담회에서 뭘 논의했는지 계획서를 통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연수를 통해 무엇을 배워올지도 명확하지 않고, 닷새 전까지 여행지에 대해 사전조사한 자료도 마땅치 않으니 연수 과정에서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나올리가 없습니다.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으니, 충실한 연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어렵겠죠. 결국 연수에 동행한 직원이 총대를 메고 연수 기관에 대한 설명을 작성하고, 의원들은 두 문단 정도 코멘트를 붙이는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그나마 두 문단씩 적는 코멘트도 표절한 의원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살펴 본 바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를 '제대로' 열어야 합니다. 성북구의회의 경우, 공무국외여행 조례에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를 언제 개최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행 14일 전에는 심사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등의 조항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경남 진주시의회의 2018년 공무국외연수 결과보고서



 연수 보고서 역시, 지금처럼 직원이 총대를 메고 작성하고, 의원들은 간단한 소감만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서는 안됩니다. 여행에 참여한 의원 개인 개인이 연수에서 느낀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의정활동에 있어서 연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밝히는 보고서가 되어야 합니다. 경남 진주시의회의 2018년 공무국외연수 보고서의 경우, 전체 분량이 140페이지에 달합니다. 적게는 3페이지에서 많게는 10페이지까지 의원별 연수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어떠느냐를 떠나서, 적어도 지방의원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체 연수에 대한 경험을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계획 단계에서부터 부실 연수가 예정된, 현행 해외연수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안전부에서 전체 지방의원들에 대한 해외연수를 주관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매년 전체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해외연수 계획을 공모 받고, 심사를 거쳐 우수한 계획서를 제출한 지방의원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진행하는 것이 지방의원의 해외연수가 가지는 원 취지를 살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살펴본 서울 지역 기초의회의 해외연수 보고서 중에서, 표절과 부실로 얼룩진 보고서는 성북구의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정보공개센터는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여러 사례를 통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성북구의회로 부터 받은 해외연수 관련 자료를 공유합니다.


2018년 서울 성북구의회 공무국외연수 결과보고서.pdf

2018년 서울 성북구의회 공무국외연수 심의위원회 회의록.hwp

2018년 서울 성북구의회 공무국외연수 심의위원회 심의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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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9일부터 29일까지 지난 9박 11일 간 미국의 시민참여를 통한 정책개발과 지역혁신의 현장을 탐방하기 위해 목민관클럽 소속 3명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21명의 공무원이 미국 동부와 서부를 다녀왔습니다. 일정에 따라 느낀 점들을 기록한 참가자의 후기를 통해 해외연수를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다.


[목민관클럽 미국 해외연수] 결핍, 소통, 격차의 미국을 만나다 ②

여섯째날, 10/24(월) 워싱턴 D.C.와 메릴랜드 주 방문

워싱턴 D.C.에 도착한 첫 날은, 이른 아침부터 미국의회의사당, 백악관, 링컨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등을 탐방하느라 서둘러야 했다.

우리가 도착한 수도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의 정식 명칭은 컬럼비아 특별구이다. 미국의 어느 50개 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행정 구역이다. 워싱턴 D.C.는 원래 컬럼비아 영역의 개별 지자체였는데 1871년 의회 법으로 도시와 이 영토를 컬럼비아 구역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합병하였다. 그 이전의 수도는 뉴욕이었다. 인구는 약 60만 명, 연방주가 아니라 하원의석만 2개이고 대통령선거인단은 3명이 배정돼 있다.

가장 처음 들른 곳은 ‘미국 의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이다. 넓은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 등의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방문 당일은 공사로 인해 막아 놨다. ‘백악관’ 앞을 지나 ‘링컨기념관’에 갔다. 웅장한 석조건물인 기념관에 36개의 기둥이 서있는데, 남북전쟁 당시 36개의 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기둥마다 주 명칭이 새겨져 있다. 그곳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워싱턴기념탑’이 보인다. 국회에 경의를 표하는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높이는 170m에 달한다. 워싱턴 D.C. 모든 건물은 이보다 높을 수 없다.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사이 호수가 있는데,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검프의 애인이 호수 위로 첨벙첨벙 뛰어올 수 있을 정도로 깊지 않다. 기념관 위에 올라서니 바닥에 보인 글자! ‘I HAVE A DREAM’ 그곳은 바로 1963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연설한 자리였다. 그는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68년 암살되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내 흑인 등 소수민족의 인권 말살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링컨기념관을 지나 우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가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19명의 군인 동상과 그들을 비추는 비석. 비석에 비춰진 군인은 38명으로 보인다. 38선 위에서 38개월을 싸운 의미라 한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가 우리를 멈추게 한다. ‘FREEDOM IS NOT FREE’ 정치적 논쟁은 둘째치고라도 고향을 등지고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숨져간 그들의 희생 앞에, 다음 장소로 가야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001

▲ 링컨기념관. 말이 필요 없다. 웅장하다.

002

▲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19명의 동상. 38명의 용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뒤로하고 다음 연수 장소로 향했다. 도시연구소(The Urban Institute)다. 워싱턴 D.C.에는 미국의 씽크탱크를 자임하는 몇몇 연구소가 있다. 1927년 설립된 ‘브루킹스 연구소’는 진보적, 1973년 설립된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우리가 방문한 도시연구소는 중도진보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설립연도는 1968년.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 주도하에 설립됐다. 주로 교통, 건강, 교육, 복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독자 개발한 예산 및 세금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은 미 국세청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직원은 약 500명. 본사는 세금감면 주인 델라웨어에 위치해 있다. 연구소의 수석연구원과 질의응답을 마치고 우리는 워싱턴 D.C. 동쪽에 위치한 메릴랜드 주 의회(General Assembly of Maryland) 사무실을 방문했다.

참고로, 미국 연방의회는 양원제로 상원과 하원이 있다. 상원은 각 주당 인구 상관없이 2명씩 뽑는데 총 50개 주, 100명이다.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1/3씩 선출한다. 상원의 임무는 주로 외교, 국방, 각료인사 등에 집중되어 있다. 상원이 미국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의원이라면 하원은 자신의 선거구 투표자들을 대변하는 의원이다. 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뽑는데 총 435명이 선출된다. 하원의 가장 큰 권한은 예산안 편성권이고, 임기는 2년이다.

연방 의회 뿐만 아니라 주 의회도 양원제이다. 상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 상하의 개념이 아닌 수평적 개념이다. 초창기 번역의 오류라 할까? 메릴랜드 주 의회 상원의원은 47명, 하원의원은 141명이다. 인구의 70%가 백인이고, 한국계 출신은 1% 정도이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 한국인 2세 하원의원 마크 장(MARK S. CHANG)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그와의 면담을 통해 미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과 권익 보호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메릴랜드 주 의회 사무실에는 조지 워싱턴의 친필 사인 문서와 동상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 당시 총사령관으로 전쟁 승리 이후 다시 농부로 돌아가기 위해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는 1783년 귀향 후, 국민들의 요청으로 다시 정치권에 들어와 1789년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는 메릴랜드 주 의회 건물에서 자필 사인하고 퇴임했는데, 그때 서명한 사인 문서와 연설 모습이 동상화 되어 있는 것이다. 부끄러웠다. 우리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200년 국가 앞에서 5,000년 국가의 국민인 나는 잠시 숨고 싶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지금! 변치 않고 반복되는 역사가 야속했다.

일곱째날, 10/25(화) 워싱턴 D.C. 내 시민단체 방문 및 서부로의 이동

오전에 방문한 임파워 디시(Empower DC)는 워싱턴 저소득 주민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NGO단체로, 2003년 설립되어 현재 4명의 상근 활동가가 있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택지 개발과 그로 인한 공공주택 철거 문제다. 이쪽 상황도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정치권에서 별다른 해법 제시를 못하는 상황이라, 해당 주민과 시민단체가 직접 나선 것이다. 그들은 공공주택 철거 중단, 빈집 보수하여 거처 제공, 집수리 기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많은 주민이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기에 남의 일 같지 않다. 임파워 디시 관계자는 “워싱턴 인구가 70만 명인데, 홈리스 인구가 7천명이다.”라고 말했다. 100명중 1명이 홈리스인 셈이다. 화려한 겉모습에 감춰진 미국의 모습이었다. 더 큰 문제는 미 중앙정부건 지방정부건 홈리스 관련 특단의 대책이나 의지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우리의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여덟째날, 10/26(수) 산 호세 주립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시청 방문

캘리포니아에서의 첫 일정은, 산 호세 주립대학(SJSU, San Jose State University)을 방문하여 관내 위치한 커뮤니티 러닝&리더십센터(CCLL) 및 커뮤니버시티(CUCSJ, CommUniverCity-San Jose) 센터장과의 면담 일정이었다. 둘 다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학이 협업하는 중간지원조직이다.

CCLL은 교수님이 센터장을 겸임하고 계신데, 주요 사업 분야는 물길보존 사업, 홈리스 관리, 농업유산 보전 등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학생이 직접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 현장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산 호세 시는 인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영향으로 도시개발에 따른 물길 훼손, 농업 유산 파괴, 집값 상승으로 인한 홈리스 증가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과 시민단체, 시는 시민참여와 서비스러닝 방식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단체 CUCSJ의 주요사업 목표는 시민건강 개선, 대학 진학 분위기 조성, 지역사회 조화 복원이다. 산 호세 시의 일부 지역은 이민자가 많고 80%가 빈곤층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CUCSJ는 전문분야 교수 접촉, 실행 가능 학생 확보, 정부 담당 부서 접촉, 지역 시민사회 접촉 등의 순서로 민·관·학을 연결하여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위와 같은 형태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 중심이라 시민과 대학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다. 은평구의 경우 시민사회는 활발하지만 대학이 없는 상황이 좀 아쉽다.

오후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청을 방문하였다. 백발의 할머니께서 우리 일행에게 시청을 구경시켜주셨다.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정식 공무원이고, 미국 공무원은 정년이 없다고 한다. 라운딩 후 우리는 마크 체스터 챈들러(Mark Chester Chandler) 국제통상단장과 면담하였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에 관해 많은 설명을 했다. 도시인구는 100만 명 미만이지만 인근지역 생활권까지 포함하면 700만 명 정도, 실업률 3~4%로 적으며 아시아인이 전체인구의 36%로 인구 구성이 다양하고 현재는 중국계 미국인이 시장이라고 한다. 인구밀도는 높고 생활비가 비싸며 세계적 IT 기업이 많아 재정적 문제는 거의 없고 시민의 소득 수준도 미국 내 최상위에 속한다고 한다.

또한, 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참여 운동을 벌여왔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행정문서 공개화로 투명성을 확보하는 거라 했다. 관내 NGO는 많지만 커뮤니티 보드 같은 중간지원조직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등 말투와 내용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고위직 공무원의 자신감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시청 앞 공원을 거닐었다. 한눈에 들어온 홈리스만 해도 족히 20여 명이 넘었다. 여기도 워싱턴과 마찬가지로 홈리스 문제에 대해 소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 세계 최고 행정 도시도, 전 세계 최고 IT 도시도 그들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마지막 아홉째날, 10/27(목) 캘리포니아 내 시민단체 방문 및 문화 탐방

오전에 방문한 곳은 NCG(Northern California Grantmakers)이다. 이곳은 북 캘리포니아 NGO와 후원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민간 지원 기관이다. 총 170여 곳의 후원 멤버에는 빌게이츠재단, 클린턴재단, 포드재단 등 민간재단뿐만 아니라 정부 각 부처 등도 포진되어 있다. 후원자가 기부하는 금액은 연 2,000~17,000달러이며, 이 금액은 기관운영, 사업연결, NGO지원 등으로 쓰인다. 연간 총 운영비는 약 200만 달러, 스텝은 15명이며, 40년 전에 설립되었다.

우리와 면담하기 위해 나온 분은 NCG 부총재 ‘푸옹’과 활동가 ‘자스민’이었다. 푸옹은 주로 후원자 관리, 프로젝트 연결, 기관운영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예술인마을 조성사업’을 예로 들었는데, 이는 인근 실리콘밸리의 영향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여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인을 위한 거주공간 마련 프로젝트다. 자스민은 재난구조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집짓기 교육과 임종 대처 방법 전파를, 재난 시에는 자원봉사자 연결과 인명구조 활동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희망제작소나 아름다운재단 같은 단체가 NCG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지진 발생이 잦고 높은 집값의 영향으로 주거와 재난지원에 많은 비중을 둔 것 같다. 특히 홈리스 문제에 있어서는, 공공기관보다 민간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유니언 스퀘어, 금문교 등을 방문하는 문화탐방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는 샌프란시스코 중심가로 뉴욕의 ‘타임 스퀘어(Time Squae)’ 같은 곳이다. 유니언 스퀘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남북전쟁 당시 이곳에서 유니언 측을 지지하는 시위 등이 계속 열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세계 정상이 머무르는 호텔과 각종 행사가 열리는 광장, 쇼핑센터와 공연장 등이 즐비하다. 하지만 가장 큰 명물은 영화 ‘더록’, ‘첨밀밀’, ‘러브인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나온 지상케이블카와 공중선로 전기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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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명물 지상 케이블카! 짓궂은 청년들이 난간에 매달린 채 운행을 즐기고 있다.

캘리포니아 골든 게이트 해협에 위치하여 골든 게이트 브릿지(Golden Gate Bridge)라 불리는 금문교(金門橋)는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연결한다. 1937년에 완공한 이 다리는 총 길이 2,789m에, 기둥간 거리 1,280m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내려다보는 도시와 바다의 어우러진 풍광이 정말 아름다웠다.

결핍, 소통, 격차의 미국을 만나다!

이로써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9박 11일 간 내가 본 미국은 결핍, 소통, 격차 세 단어로 요약된다. 미국인은 역사와 전통 부재라는 ‘결핍’을 ‘소통’을 통한 보존으로 메우고 있었다.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콘텐츠를 채우고 있었다. 오늘날의 ‘그라운드 제로’ 와 ‘하이라인 파크’ 그리고 ‘금문교’ 는 10여 년 간의 민·관·학 소통의 결과이다. 도심 어딜 가든 그 지역의 역사적 인물 동상을 볼 수 있었고, 각 지역 거버넌스 기관과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또한 충분한 소통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의’를 통해 나라를 세운 연방제에서 기인한 것 같다. 대통령 중심제지만 지방분권 제도가 잘 발달한 원인이기도 하다. 각 주가 하나의 나라이고, 주마다 독특한 역사와 시스템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 모두가 ‘소통’을 통해서이다.

‘격차’ 이것은 미국이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홈리스 문제만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평등’보다 ‘자유’, ‘규제’보다 ‘방임’을 우선시한 결과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술개발과 자본축적이라는 큰 선물을 주기도 했지만, 양극화와 인종갈등이라는 난제도 함께 주었다. 샌더스와 트럼프 현상은 이제 표면화된 시작일 뿐이다. 이를 해결하면 지속가능한 아메리카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파국을 맞아할 것이다.

미국처럼 큰 대륙인 중국의 역사를 볼 때, 왕조의 평균 기간은 100년이 채 안 된다. 1,500년 이후 주요 강대국이었던 9개 나라의 평균 패권 기간은 100년으로, 가장 긴 영국이 200년이고 가장 짧은 일본은 50년이다. 미국은 패권국가로 자리 잡은 지 120년 정도 되었다. 지금 미국은 역사적 변곡점이다. 모순과 희망을 함께 본 미국연수, 정말 뜻 깊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사진 : 이주식 은평구청 정책보좌관
정리 : 이민영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 후기 앞 부분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목민관클럽 미국 해외연수] ‘결핍, 소통, 격차의 미국을 만나다 ①’ 보기(클릭)

월, 2016/12/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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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된 기록에 따르면 수백 개의 은행과 자회사 및 지사들이 무려 15,600개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했다.

라이언 치텀(Ryan Chittum), 쎄실 실리스-갈레고(Cécile Schilis-Gallego), 리고베르토 카르바잘(Rigoberto Carvajal) 기자

두 글로벌 기업은 점차 증가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위협적인 소문도 돌았다.

거대 스위스 금융기관인 UBS와 파나마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는 여러 해 동안 상호 이득을 보는 관계로 상대를 받아들여왔다. UBS에는 자신의 금융 자산을 숨기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모색 폰세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자로서 기꺼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미국이 탈세 및 자금 세탁에 대해 형사 기소를 하려 하자, UBS는 피해를 막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은행 이사회는 페이퍼 컴퍼니 비즈니스로부터 빠져 나오고자 했다.

9월 28일 취리히에서 회의가 열린 회의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 UBS가 비밀 계좌 이면의 페이퍼 컴퍼니 소유주들을 확인할 책임은 자신들이 아나라 모색 폰세카에게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모색 폰세카 직원인 디터 부크홀즈(Dieter Buchholz)는 UBS에서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UBS 고객을 위해 만든 일부 페이퍼 컴퍼니들의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 자신들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UBS 간부인 패트릭 큉(Patrick Küng)은 이런 주장에 반대하면서 모색 폰세카가 “스위스 자금세탁법을 위반”했다며당국에 모색 폰세카를 신고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해당 회의를 묘사한 이메일에 나오는 얘기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쥬트도이체 자이퉁(Süddeutsche Zeitung) 및 기타 언론 파트너들이 확보한 1천1백만 건 이상의 모색 폰세카 내부 문서 중에 이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등장한다. 유출된 기록은 UBS –모삭 폰세카 간의 입씨름뿐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은행들이 수퍼 리치와 정치인, 범죄자들의 자산 은닉을 도와주는 페이퍼 컴퍼니 산업의 다른 중개인들과 함께 얼마나 친밀하게 일했는지에 대해 전례 없이 상세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유출된 기록을 분석한 결과, 500 곳이 넘는 은행, 자회사 및 지사들이 모색 폰세카와 함께 거의 15,600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등록했다. 이 중 대다수가 1990년대 이후에 설립되었다.

영국의 거대 금융기업인 HSBC와 자회사들이 세운 페이퍼컴퍼니는 2,300 곳이 넘었고, UBS는 1,100 곳이 넘었다. 이 밖에 모색 폰세카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대규모 은행 중에는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 (979 곳), 로얄 뱅크 오브 캐나다(378곳), 코메르츠방크 (92곳) 및 크레딧 스위스 (1,105곳)도 포함된다.

역외탈세와 관련한 은행들의 역할에 대해 미국의 조사는 UBS 이외의 회사까지 신속하게 확대되었다. 크레딧 스위스는 “고객들이 미신고 계좌를 숨기도록 가짜 법인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운” 범죄 모의 혐의에 대해 2014년 유죄를 인정하고 28억 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스위스 은행 율리우스 바에르(Julius Baer)는 올해 초 5억4천7백만 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스위스의 가장 오래된 은행인 베겔린(Wegelin)은 탈세자들을 도운 혐의로 5천8백만 달러의 벌금을 내고 2013년 폐업했다. UBS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이후 전체적으로 최소 80개의 스위스 은행이 미국에 벌금을 지불했다.

“어떤 경우든, UBS는 고객의 요청으로 함께 일해야 하는 회사의 실소유주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은행 및 비즈니스 관계에 대해 동일하게 엄격한 자금 세탁 금지 규정을 적용한다”라고 UBS 대변인이 성명서에서 밝혔다. 아울러 2010년부터는 “페이퍼 컴퍼니가 설립된 지역의 일부 사법권의 법규 변화와 UBS 내부 정책의 강화 때문”에 고객들을 위한 회사 설립을 “UBS는 적극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모색 폰세카 대변인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로펌들이 준수해야 하는 현존 규칙 및 기준의 엄격한 선을 자주 벗어나는 모든 신규 및 유망 고객에 대해 철저한 자산 실사를 진행한다. 우리 고객 중 다수는 전 세계의 저명하고 평판이 좋은 로펌 및 금융 기관을 통해‘ 찾아오며, 여기에는 자기 고객을 알아야 한다’는 국제 규범 및 자국의 법규의 구속을 받는 주요 대리 은행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아류 자산실사(Due Diligence Lite)

2010년 UBS가 새롭게 천명한 공격적인 자세에 대해 모삭 폰세카는 처음에는 오랜 파트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부크홀즈가 이메일을 통해 긴장감 높았던 회의를 언급하자 모색 폰세카의 제네바 대표인 아드리안 시몬(Adrian Simon)은 이렇게 회신했다. “UBS가 완전히 변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때문에 지금 터무니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적었다.

모색 폰세카의 선임 파트너 3명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졸링거(Christopher Zollinger)는 “UBS가 자기 책임을 밀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UBS와 모색 폰세카는 결국 2010년에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를 생각해냈다. 모색 폰세카는 UBS의 페이퍼 컴퍼니들에 대한 행정 업무를 맡고 UBS 은행 계좌를 유지할 은행 고객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보통 모색 폰세카는 은행 고객들을 위해 만드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관리하기 전에, 고객들이 명백한 범죄행위와 연관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자산실사” 정보의 제공을 은행들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2010년 12월 이메일을 보면, 이제 모색 폰세카는 UBS의 “가벼운 자산실사(DD light)”를 수용하면서, 진정한 소유주에 대한, 그리고 이들이 왜 페이퍼 컴버니를 이용하는지에 대한 훨씬 적은 서류를 요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모색 폰세카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 고객들을 직접 다루게 되며, UBS는 자신과 페이퍼 컴퍼니 세계 사이에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모색 폰세카는 다른 주요 은행들과도 비슷한 합의를 했고, 이에 따라 은행들이 고객의 페이퍼 컴퍼니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게 된 사실을 유출된 문서는 밝히고 있다. “전 UBS 고객에 대한 이 특별 협정이 제네바의 모든 은행에게 확장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모색 폰세카 로펌의 파트너들은 판단했다.

2010년과 2011년, 모색 폰세카는 크레딧 스위스 및 HSBC와도 고객의 페이퍼 컴퍼니들에 대해 “특별한 관리”를 제공한다고 합의 했다.

프랑스 다국적 금융기관인 소시에떼 제네랄에 대해서는 이 VIP 서비스가 2008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른바 무기명 주식을 사용하는 은행 고객을 위해 설립된 회사에 대해서도 이 서비스가 적용되었다. 무기명 주식을 보유한 기업은 소유주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만약 무기명주가 당신 손 안에 있다면 당신이 소유주이다. 무기명주는 오랫동안 자금세탁 및 기타 부정행위의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점점 더 엄격해지는 규제 아래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이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파일에 따르면, 소시에떼 제네랄은 모색 폰세카에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고객을 위해 매입한 무기명주 기업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밝히기를 거부했다. 모색 폰세카는 이에 동의하고 자산 실사 자료를 전혀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모색 폰세카는 또 소시에떼 제네랄의 페이퍼 컴퍼니들의 주주로 활용할 두 개의 재단을 설립해 당국이 진정한 소유권을 더 알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모색 폰세카는 “(별다른 자산 실사 없이) 분명히 더 높은 위험을 품고 있는…특별히 유동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소시에떼 제네랄에게 더 높은 수수료를 부과했다.

소시에떼 제네랄 대변인은 “무기명주식이 존재하는 관할권에서는 세금과 무관하게 합법적인 기밀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잘 알려진 가족이 진정한 안전상의 위험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 보호가 필요한 경우가 그러하다. 소시에떼 제네랄은 자산 실사 요건을 건너뛰지 않았으며, 모색 폰세카에게 건너뛰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소시에테 제네랄은 모든 회사의 실질 소유주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있으며 알고 있다”고 밝혔다.

크레딧 스위스의 대변인은 2013년 이후로 크레딧 스위스는 “세금 규칙화 프로그램”을 실시해왔으며, 이에 따라 민간 고객들은 세금법을 준수한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크레딧 스위스에게는 은행의 모든 고객이 여러 국가에 광범위한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가족의 부를 정리하는 등의 합법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금융 구조를 사용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모색 폰세카는 “자산실사 절차는 기업 및 사례에 대해 조회를 요청하는 당시 기업을 설립하고자 하는 장소와 그 시기의 실정법에 따라 이뤄진다”고 말했다.

로얄 뱅크 오브 캐나다(RBC) 대변인은 RBC가 “고객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기 위한” 폭넓은 자산실사 절차를 가지고 있으며 “확실히 이해하기 전까지 거래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메르츠 방크는 코멘트를 거부했다.

합법에서 부도덕으로

은행 고객을 위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들 중 다수는 합법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부도덕하거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독재자, 사기꾼 및 마약 밀매자의 간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UBS가 모색 폰세카를 통해 만든 구조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인 무함마드(Muhammad bin Nayef bin Abdulaziz Al Saud)가 지배하는 페이퍼 컴퍼니들로부터 한 브라질 은행의 붕괴 당시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로베르토 비데이라 브란댜오(Roberto Videira Brandão)의 회사, 그리고 미국 사법부로부터 마약 카르텔을 위한 자금 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은행가 출신 탈주자인 마르코 툴리오 엔리케즈(Marco Tulio Henriquez)가 지배하는 회사까지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다.

2011년 2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할 무렵, 모색 폰세카는 시리아 독재자인 바샤르 아사드(Bashar Assad)의 정치 자금 조달원인 억만장자 라미 마크루프(Rami Makhlouf)와 비즈니스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모색 폰세카는 이미 1996년에 마크루프가 HSBC에 은행 계좌를 보유하기 위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주었다. 모색 폰세카는 전쟁이 가까워지자 HSBC에 우려사항을 경고하기 위해 연락했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재무부가 마크루프의 자산을 동결하라고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HSBC는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색 폰세카의 파트너들은 마크루프가 HSBC에게 괜찮다면 모삭 폰세카에게도 괜찮다고 결정했다.

모색 폰세카 파트너인 졸링거는 “만약 잉글랜드의 HSBC 본사가 고객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우리도 그를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내가 아는 한, 혐의(루머)는 있지만 확실한 사실이나 임박한 조사 또는 기소는 없다”고 덧붙였다.

당시 모색 폰세카는 이들이 거절하면 경쟁 로펌에서 그 비즈니스를 가져갈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입장을 바꿔 마크루프와의 관계를 끝냈다.

정치적으로 노출된 인물들은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거부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적절한 위험 분석 및 관리의 문제일 뿐”이라고 모색 폰세카는 성명서에서 밝혔다.

한 회사를 정말 소유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정부와 개인 및 기업들에게 페이퍼 컴퍼니들과 은행 기밀은 모두 방해가 된다. 로스앤젤레스의 베테랑 민간 금융 조사관인 스티브 리(Steve Lee)가 조사하는 사례들은 자주 페이퍼 컴퍼니와 연관이 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마지막 마일’이라고 부르는…실질 소유자의 이름, 주소, 위치에 대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단서가 말라버리거나 없어지거나 혹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은행 기밀 및 기밀 관할권은 나쁜 놈들이 사기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기회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HSBC는 성명서에서 “혐의들은 오래된 것들이다. 일부 사례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난 몇 년에 걸쳐 우리의 중대하고 잘 알려진 개혁이 실행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금융 범죄와 싸우고 제재를 실행하기 위해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속의 영향

유출된 문서를 보면, 고객을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데 개입하는 은행의 관행이 비밀 계좌를 근절하고 탈세자를 잡기 위한 정부의 노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다.

예컨대 2005년 유럽연합은 유럽저축지침(the European Savings Directive)이라는 새로운 법을 시행하면서 은행들에 대해 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고객의 계좌에 대한 세금을 보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지침은 개인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기업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유출 문서는 은행들이 이 제도상의 허점을 포착하고, 세금 보고 목적으로 개인들의 자산을 역외 페이퍼컴퍼니로 이전시키는 상품을 마케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은행과 연관된 기업들이 모색 폰세카에서 급증했다. 2005년 은행들은 파나마에 기반을 둔 모색 폰세카 및 이 로펌의 해외 사무소와 함께 1,814개 페이퍼 컴퍼니의 설립을 도왔다. 이는 2년 전 543개 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은행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의 수는 2005년 이후 몇 년 간 높게 유지됐다. 2005년과 2008년 사이에는 모색 폰세카를 통해 설립한 회사가 설립된 모든 회사의 3개 중 거의 하나 꼴이었다.

유출된 문서는 2009년 시작된 USB와 그 밖의 은행에 대한 미국 당국의 범죄 조사가 은행의 페이퍼 컴퍼니 이용을 줄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달라는 은행들의 요청은 감소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설립된 회사들 중 다수는 폐업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은행들이 페이퍼컴퍼니 비즈니스를 그만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점을 바꾸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일부 은행은 페이퍼 컴퍼니를 페이퍼 컴퍼니 중개인들에게 넘기고 고객들에게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은행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했다.

2013년 모색 폰세카의 한 직원이 크레딧 스위스와 만난 후 남긴 노트에서 크레딧 스위스의 한 은행가는 “현재 트렌드는 변호사들이 구조를 마련하고 은행은 (구조가 아닌) 은행 계좌를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출된 파일은 2010년부터 은행들이 일부 기업들을 은행의 이름으로부터 개별 은행 직원 이름으로 옮기기 시작한 점도 보여준다. 이런 일이 일어난 까닭은 문서상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일례로 2010년 모색 폰세카가 HSBC에 보내는 이메일에서, 해당 로펌은 페이퍼 컴퍼니들을 유다 엘-말레(Judah el-Maleh)와 네심 엘-말레(Nessim el-Maleh)를 포함한 7명의 HSBC 은행가 개인 이름으로 설정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네심 엘-말레는 이후에 또다른 엘-말레 형제와 함께 마약 거래 자금이 HSBC 계좌를 통해 세탁되었던 파리의 대마초-현금 책략 사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유다 엘-말레는 2012년 HSBC에서 해고되었고, 작년 HSBC의 자금세탁 조사 합의 건에서 스위스 검찰의 지목을 받았다. 검사들은 그는 합의 사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0년의 또 다른 예에서, HSBC는 히나메르 SA(Hynamer SA)라는 페이퍼 컴퍼니의 운영을 악셀 스턴(Axel Stern)이라는 이름의 은행 직원에게 이전했다. 히나메르는 파나마에서 2008년 모색 폰세카가 HSBC의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를 위해 만든 회사이다. 히나메르는 아르투로 델 티엠포 마르케스(Arturo del Tiempo Marques)라는 스페인 비즈니스 임원이 소유한 수많은 스위스 은행 계좌 및 다수의 페이퍼 컴퍼니 가운데 하나였다.

2009년 당국은 도미니카의 카우체도항에서 한 화물선을 압수했다. 이 화물선은 스페인의 델 티엠포 회사 중 한 곳으로 화강암을 실어 나르기로 되어있는 화물선이었다. 배에 숨겨진 것은 코카인 1톤이었다. 스페인 법원은 2013년 델 티엠포에 대해 7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HSBC는 2013년 3월까지도 여전히 히나메르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유출된 문서는 또한 신중한 모습도 드러내고 있다. 모색 폰세카의 미팅 노트에 따르면, 2010년 3월 홍콩의 한 HSBC 은행가는 모색 폰세카에게 “통화 내용이 모두 녹음되니, 민감한 일에 대해서는 은행가의 사무실 번호로 연락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HSBC는 미국에게 19억 달러를 벌금으로 내기로 동의하고, 자금세탁 및 제재에 관한 법을 위반했으며 “의도적으로” 적절한 자산실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형사 기소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 5년간의 보호관찰 기간을 두는데 동의했다.

조기 사망 보고

유출 문서는 금융-기밀 비즈니스에 대한 과거의 ‘사망 선고’ 기사들이 이 비즈니스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91년에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는 “비밀 계좌가 오래가지 못할 것”라고 보도했다. 10년 뒤 포브스(Forbes)는 “프라이빗 뱅킹: 고이 잠드소서”라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은행 기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탈세 및 자금 세탁과의 전쟁은 최근 몇 년 사이 더 심해졌고, 시스템은 교묘하게 적응해서 특정 시점에서 금융 시스템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자금을 이전하고 있다. 따라서 당국은 은행 및 부유한 고객들과 새로운 현장에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게 되었다. 역외 탈세 남용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국가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예컨대 2013년 4월, 모색 폰세카의 한 직원은 크레딧 스위스의 은행가인 필리페 두들러(Philippe Dudler)를 만났다. 모색 폰세카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두들러는 모색 폰세카에게 “마이애미의 금융 비밀이 잘 지켜지고, 델라웨어 기업들은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 묻지 않으며, 세금 사기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 은행 계좌에 대해서…미국 정부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독일 고객들이 자산을 마이애미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딧 스위스는 지난 3년 간 요건을 강화해 왔다고 밝혔다. 크레딧 스위스는 만약 고객이 “납세 규정 준수” 증거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은행 거래 관계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2013년 2월, UBS 프라이빗 뱅킹 도이칠란트 AG는 밀톤 데 올리베이라 리라 필로(Milton de Oliveira Lyra Filho)라는 브라질인을 소유주로 해서 파나마에 베닐슨(Venilson Corp.)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리라 필로는 브라질 상원의장 레난 칼례이로스(Renan Calheiros)와 친밀한, 인맥이 좋은 로비스트로서 2015년 스캔들 당시 해외 페이퍼 컴퍼니들을 통해 수천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의회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스캔들은 브라질 우편 노동자들을 위한 포스탈리스 연금 펀드와 관련해서 작년에 발생한 스캔들이다. UBS와 모색 폰세카는 리라 필로의 이름이 2011년 브라질 관광청의 부정 이득 스캔들 당시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었다. 릴라 필로는 코멘트 요청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으며, 기소되지는 않았다.

UBS는 2010년 부로 고객을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일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문서는 UBS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고객들을 위해 25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화, 2016/04/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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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에 대해 보도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인을 표적 삼아 비난하거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세도피처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1% 특권층이 그 과실을 누리는 동안 나라의 과세 기반이 침식되고,결국 평범한 납세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적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의도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행태를 보면 정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진다.

PTL/CTN 자료, HSBC 스위스계좌 명단, 모색 폰세카 자료에 모두 등장하는 한국인

뉴스타파는 2013년 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사인 PTL과 CTN의 유출 문서를 토대로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에 대한 연속 보도를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스위스 HSBC 유출 문서를 확보해 스위스 비밀 계좌를 가진 한국인들에 대해 보도했다. 이 두 번의 유출 문서에 등장한 한국인이 있었다. 57세 박OO씨였다. 그런데 그 박 씨가 이번에 유출된 모색 폰세카의 자료에 또 등장했다.

세 군데 유출 문서에서 드러난 박 씨의 행적을 종합해보면, 1) 박 씨는 1999년에 스위스 HSBC에 비밀 계좌를 만들었고,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최고 예치 금액은 100억 원에 달했다. 2) 지난 2005년 1월에는 모색 폰세카 싱가폴 지점을 통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베젤 컨설턴시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고, 3) 2008년 8월에는 홍콩 UBS를 통해 역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당카 홀딩스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뒤 자신과 자녀 두 명을 이사로 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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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작은 신발 공장을 운영한다는 박 씨가 각각 다른 중개업체를 통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여러 개 만들고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에 백억 원대의 거액을 보유한 배경은 뭔지,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세청이 박 씨의 수상한 행적을 제대로 조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국세청은 아무리 수상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개별 납세자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버티고 있다.

삼성 본관 주소 스위스 계좌 소유 김형도 전무, 아버지도 삼성맨으로 드러나

뉴스타파가 지난해 6월 보도한, 삼성 본관 26층 임원실을 주소로 한 스위스 비밀 계좌의 소유주인 삼성 중공업 김형도 전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뉴스타파 취재 당시 아버지의 유산으로 스위스 비밀 계좌를 물려 받았으며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스타파의 후속 취재 결과 그의 아버지 역시 삼성 건설의 리비아 지사장, 제일기획 전무 이사를 거친 삼성 임원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스위스 비밀 계좌가 삼성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국세청이 그와 관련된 조사를 했는지는 역시 확인할 수 없다.

국세청은 지난 2013년 뉴스타파가 공개한 조세도피처 관련 한국인 가운데 몇 명을 조사했고 세금을 얼마나 추징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1년 반이 지난 2014년 10월에야 182명 가운데 조사한 것은 48명, 형사 고소를 한 것은 3명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났지만, 이마저도 국세청이 직접 밝힌 게 아니라 감사원이 국세청을 감사한 감사 결과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발의된 역외탈세방지법안, 대부분 무산

뉴스타파가 2013년 조세도피처 프로젝트를 연속 보도한 이후 국회에서는 조세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고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법안이 논의됐다.

우선 해외 계좌 신고제도의 경우, 10억 원 이상일 경우에만 신고 의무가 있는 것을 5억 원 이상일 경우 신고하도록 기준선을 5억 원으로 낮추는 법안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미국의 경우 신고 기준선은 1만 달러, 일본은 부동산을 포함해 5천만 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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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해외 신고 대상인 재산의 범위를 현금, 주식, 채권 등 현금성 자산으로 국한하지 말고 회사의 소유 지분, 지적 재산권, 부동산까지 확대하자는 법안 역시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형법의 공소 시효에 해당하는 국세 부과 제척 기한을 연장하자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이를 무기한으로 연장하든지, 아니면 조세 당국이 탈세 사실을 알게된 날로부터 1년으로 연장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세금 관련 자료를 보관해야 하다는 기업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기존의 10년을 15년으로 연장하는 데 그쳤다.

이 밖에 조세 포탈 사실을 알게 된 금융 회사 임직원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 조력자 처벌을 강화해서 역외 탈세를 막으려 했던 법안 역시 무산됐다.

한국 정부는 역외 탈세 방지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세계 여러 나라는 현재 역외 탈세를 막고, 조세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2009년부터 전국민의 소득과 재산, 그리고 세금 납부 실적을 온라인에 공개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미국은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재산을 자동으로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부 여당, 조세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진정으로 역외 탈세와 자금 유출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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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지하 경제를 들춰내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역외 탈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던 새누리당은 19대 회기 내내 역외 탈세 방지 법안에 대한 어깃장만 놓았으면서도 이번 20대 총선에서 또 다시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금, 2016/04/0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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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바오로-수녀님-리본-640x148   어림잡아 50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는 생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치명적인 농업정책 때문에 오늘날 농부들은 과거의 다섯 배가 넘는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농업 합리화, 기계화, 대형화 – 그렇지 않으면 농사 포기’에 저항하여 생태농경을 실천하는 한 뙈기의 땅, 농약을 뿌려대지 않는 전답은 그야말로 희망의 터전이 됩니다. 유기농으로 가꾼 땅은 현재 위협을 당하고 있는 종種을 위한 삶의 공간입니다. 생태적 농경에서는 해충으로 인한 피해액이나 살충제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차라리 농약을 쓰지 않으면 과일이 더 맛있고 튼실합니다. 모든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저 무한한 식물계와 동물계에 대한 애정으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걸까요? 자연의 품에서 모든 생명이 어떻게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사람은 화학 보조제를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건강한 먹을거리는 건강한 땅에서만 자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말 그대로 적용됩니다.  

농부가 무슨 필요 있나. 우리에게 마트가 있지 않는가

잘못된 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인 비용의 보조금을 내세워 위용을 과시합니다. 이러한 농업정책으로 식료품 공장과 화학 산업, 서민의 돈주머니 사정에는 득이 되겠지만 식료품의 질은 떨어지고, 사람들의 건강은 악화되고(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반은 식생활과 관련됩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자연과 소규모 농가는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농업의 공업화로 인한 폐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식수 오염, 물고기의 떼죽음,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식료품, 광우병, 돼지 구제역 등. 대다수의 농민들이 산업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했습니다.  

농사꾼이 살림꾼이 된다면

유기농을 실천하는 농부들은 자연을 존경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녹색 아이디어로 흑자를 내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 사회와 경제를 향해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현대 농업의 새로운 주도 이념은 농사꾼이 살림꾼이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의 질을 생산합니다. 그들은 물과 동물을 보호하고, 문화를 선도하고, 자연경관을 돌봅니다. 앞으로, 그들은 창조적인 기업가로서 원료 및 에너지 공급에 책임을 맡고 있고 관광산업까지도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미래적 농업을 통해서 수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농부들이 죽어나가는 지금의 현실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3374" align="aligncenter" width="640"]생태 농업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피에르 라비© Guillaume ATGER / Divergence pour l’Express 생태 농업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피에르 라비© Guillaume ATGER / Divergence pour l’Express[/caption]  

농업의 생태적 전환

1996년 6월 스위스에는 정치적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체 농업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국민 77.6%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던 사람은 새로운 농법을 받아들이든지 보조금을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농업과 결별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도입하려는 스위스 국민의 열망이 표출된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3376" align="aligncenter" width="640"]스위스 생태적 농업 스위스 생태적 농업[/caption]   새로운 농업 모델로 지금 화학공장의 중역들은 낭패를 보게 될 것이지만, 그 밖의 모든 사람들, 가축들, 식물들, 토지, 물, 공기, 모든 생명, 특히 우리의 건강은 새로운 농업의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은 농산물과 자연 축산으로 키워 잡은 고기는 약간 비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저렴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좀 더 현명하게 따져본다면 바이오 농경, 생태적 농법으로 길러낸 식료품이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눈으로 보면 생태적 농경의 미래 유기농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농업 없이 미래 없다

21세기에는 지금 남아 있는 에너지자원의 대부분이 소비될 뿐만 아니라 천연원료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새로운 생태적 경제를 위해서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 외에도 재생 가능한 원료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태양 원료와 태양에너지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연스러운 순환경제, 즉 지속 가능성도 그만큼 가까이 옵니다. 그렇게 되면 농업은 다시금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이 됩니다. 농업이 국가경제의 최우선 부문이라는 말이 지금까지는 경제학 교재에서나 나오는 이론에 불과했지만 미래의 순환경제에서는 실제로 농업이 선두자리를 탈환할 것이고 농업 부문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태양 세기의 개척자

짚, 나뭇가지, 거름 등의 유기적 ‘쓰레기’를 바이오가스나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부는 순환경제로 나아가는 첫 발을 내딛는 셈입니다. 거름은 에너지원, 천연비료, 천연 식물 보호제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바이오 거름을 식물 잎에 직접 뿌리면 해충이나 진균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면역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거름을 여전히 환경문제로 단정 짓고 그것을 자본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 부끄럽습니다. 거름을 다양하게 사용하게 되면 우리의 농업은 화학 산업의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이오가스 지역의 생태화란 그 지역에서 원료와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지역에 있는 자본을 활용하고 그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에너지 및 원료의 토대를 바꾸는 작업이 성공을 거둘 때 비로소 국가경제와 세계경제가 지속 가능한 체계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자율적이고 지속성 있는 태양에너지, 태양 원료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갈취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계 평화를 확고히 하는 데도 이바지합니다. 바이오 농사꾼은 태양 세기의 개척자가 됩니다. 그들은 자연에 영혼을 되돌려줍니다.  

땅은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마르 4,28)”

미래의 경제와 농업은 새로운, 그러나 아주 오래된 성장 개념, 즉 진정한 성장이란 ‘저절로’ 자라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합니다. 어쩌면 예수는 이 ‘저절로’라는 말을 가지고, 하느님은 창조자이기 보다는 창조의 힘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는 셈입니다. 그 하느님은 특정 종교, 특정 교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식물과 동물, 물과 바람, 대지와 바다,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글 │ 성가소비녀회 최바오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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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6/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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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국가별 실험

 

 

서정희 |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에 대한 세계적 관심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본소득이라는 제도에 대한 구상과 언급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혹자는 250년 전 토마스 페인의 복지기금창설 주장이 기본소득 개념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500년 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기본소득의 최초 변론을 찾기도 한다. 기본소득의 기원은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만큼 다양한 용어(사회배당(National or Social Dividend), 보장소득(Guaranteed Income), 시민소득(Citizen’s Income), 보편적 보조금(Universal Grant), 사회수당 또는 데모그랜트(Demogrant), 연간보장소득(Guaranteed Annual Income), 국가 보너스(State Bonus))로 제기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현실적 방안이 제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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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겨레신문(2017.1.3.)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매달 71만 원 그냥 준다"

 

최근 노동시장의 불안정에서 비롯된 전통적인 사회보장 제도의 비정합성 문제가 나타나고, 알파고, 제4차 혁명, 인지 자본주의 등으로 노동 없는 혹은 대폭 줄어든 미래가 예견되면서 현재까지의 사회보장 제도가 이후에도 동일한 형태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들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제기들에 대한 한 가지 해결방안으로 기본소득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제도를 시행하거나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는 상당하다.

 

 

지금까지 시행된 기본소득의 현실적 실험

 

 

기본소득의 개념적 구상은 오랜 역사가 존재하지만, 현실적인 실현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그 구체적인 방식 역시 기본소득의 원칙들에 모두 부합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나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한 사례는 미국 알래스카 주의 ‘영구기금배당금’(Alaska Permanent Fund Dividend: PFD), 나미비아의 기본소득 시범사업, 인도의 마디아프라데시 주(Madhya Pradesh)의 기본소득 시범사업,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캐나다의 1970년대의 도핀 지역에서의 민컴(Mincome), 우간다와 케냐의 민간자선단체의 기브다이렉틀리(GiveGirectly) 등이 있다.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NIT) 제도까지 기본소득의 변형으로 포함한다면 그 시행 사례는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미국에서의 부의 소득세 시범사업까지 확대된다.

 

 

이 중 급여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적절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의 원칙들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받는 제도는 미국 알래스카 주의 영구기금배당금 제도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1982년부터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수입의 25%로 기금을 조성해 모든 주민들에게 나누어준다. 배당금 신청일 이전 알래스카 주에 1년 이상 거주하기만 했다면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1984년 연 331.29달러(약 35만 원)에서 출발해서 2015년 연 2,072달러(약 230만 원)의 배당금을 모든 주민들이 배당받았다. 급여 수준에서 최저생계를 보장할 만큼의 충분성이 확보되지는 않았지만 알래스카 주는 미국 내에서 가장 낮은 빈곤율과 가장 낮은 소득불평등도를 자랑한다.

 

 

다른 국가들의 제도들의 경우 급여 수급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제한적이기도 하고(나미비아 특정 지역의 60살 이하 거주자 930명, 캐나다 도핀 지역의 1,000여명), 시기가 특정 기간 동안 제한되기도 하고(나미비아 2008~2012년, 2013년~2015년, 캐나다 1974~1979년, 인도 2010~2011년), 운영주체가 민간기관이라는 점에서 급여 액수와 대상이 언제든 변경될 수 있어 안정적이지 않다는(우간다와 케냐 자선단체 GiveWell) 등의 한계를 안고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원칙인 수급자격의 무조건성, 수급대상의 보편성, 급여의 적절성, 개인 단위의 개별성 등이 온전하게 구현된 현실적인 기본소득 제도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기본소득의 세계적 실험

 

 

최근 기본소득을 국가 정책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제안들이 급부상하였다. 그동안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이 제안되고 부분적으로 실현된 데에 반해 최근의 시도들은 선진국들이 주를 이룬다. 2016년 스위스는 기본소득 실현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탈리아의 리보르노 시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하였다. 2017년에는 핀란드와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시범사업을 통해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한다.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제도가 실험되는 이유는 저개발 국가들이 주로 빈곤 퇴치 및 완화에 초점을 맞추어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했던 것에 비해 보다 다채롭다. 그리고 개별 국가의 정치 경제적 상황, 기존 사회복지 제도들의 정합성, 대중적 동의수준 등에 따라 각각의 시범사업의 구체적 형태들 역시 다양하다.

 

 

스위스

스위스는 2016년 기본소득을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2006년 기본소득시민운동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2008년 ‘기본소득, 하나의 문화충격’이라는 영화가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2013년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13만 명의 서명을 받아 헌법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국민투표는 부결되기는 하였으나 전국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일련의 과정에서 전체 국민들이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대한 원칙적인 고민을 해 보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냈다.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은 현재 자본주의 구조와 노동시장 그리고 복지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현 시기 생산력의 발전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산물의 양으로 본다면 이 풍요로운 시기에 빈곤과 결핍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시에 어떤 부조리함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생산물이 남아도는 풍요로운 사회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물건을 파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장구조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물건들을 구매할 수 없다.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은 풍요로운 시기의 결핍의 문제를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개인들의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유급 노동 중심의 노동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다가오는 노동 없는 미래에 대비하며, 자신의 삶이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자고 주장한다.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제안된 기본소득 안은 스위스의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289만 원), 미성년자에게 650스위스프랑(약 75만 원)의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 액수는 스위스 국내총생산의 약 30%에 해당하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고, 기존 복지제도의 축소와 이민자의 대량 유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스위스 국민투표는 부결되었다. 그럼에도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이 제기했던 근본적인 문제들 그리고 기본소득 원칙들에 대한 제안들은 여전히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들로 남아있다.

 

 

핀란드

핀란드 정부는 2016년 기본소득을 실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험설계 안을 마련하는 등의 준비 작업을 거쳐 2017년 1월부터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복지수당을 받는 25~58세 국민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2017년 1월부터 2018년까지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0만 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 이유는 그간의 기본소득 실험이 일부 지자체에 국한되었던 반면 핀란드의 실험은 국가 차원에서 도입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의 동의를 모두 얻어냈다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우파 정부인 시필라 내각(Sipilä Cabinet)은 기본소득 실험에 관한 법안 심의과정에서 “기본소득 실험은 노동생활(working life)의 변화를 향상시킴으로써 사회보장 제도를 개혁하고, 참여와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사회보장 제도를 점검하고, 관료제 비용을 줄이고, 공적 재원과 관련하여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현재의 복잡한 사회보장 급여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실업보장법에 근거하여 기본수당 혹은 노동시장지원을 받는 25~58세의 사람으로 기본소득 급여대상자를 한정시키고, 기본소득 제도의 주요 목적으로 ‘고용촉진’을 명문화하고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평가 기준 역시 기본소득이 고용을 촉진시키는 지 아닌지로 제시하였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기본소득 제도가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모두 동의하는 측면이 있고, 모두 반대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장 보편적인 사회보장 제도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 제도가 보편성과 무조건성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우파의 반대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 기본소득 제도는 개인의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켜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고, 복지급여 대상자의 근로의욕을 줄이지 않는다는 측면 때문에 우파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기본소득의 효과를 근로의욕에 한정시켜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전국적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려되기도 하고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특히 기본소득 급여 대상자를 근로연령대인 25~58세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 그 중에서도 실업자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의 국소적인 실험에서 벗어나 전국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점, 기여경력 등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2016년 2월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기본소득 시범사업 연구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예산 약속을 공표하고, 6월 캐나다에서 기본소득을 알리는 활동을 10년 이상 해 온 휴 시걸 전 상원의원을 프로젝트 특별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2016년 11월 기본소득 실험의 설계 및 운영에 관한 종합보고서가 발표되고 2017년 1월 주민의견수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가 발표한 기본소득 실험 설계 안은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참가자들에게 매달 최소 1,320달러(온타리오 주의 저소득 기준선의 75% 선)를 기준으로 참가자의 소득이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부족분에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NIT) 방식이다. 장애인 참가자에게는 500달러의 추가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킹스턴 지역 상원의원을 지낸 휴 시걸(Hugh Segal)은 부의 소득세 방식의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이유가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지에서 정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하는 반면, 부의 소득세 방식을 실험하는 국가가 한 곳도 없기 때문에 부의 소득세 방식인 경우 어떤 효과를 낳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캐나다의 시범사업은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시범사업과 달리 독창적인 측면이 보이는데, 이는 기본소득 실험의 효과를 매우 다각도로 규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목표는 기본소득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의 기본소득 실험 목표는 ① 건강과 관련된 결과(1차 진료기관 방문 수, 응급실 및 병원 등의 방문 횟수, 처방전 약 사용 횟수 등), ② 삶의 선택들(훈련, 가족 형성, 출산 결정, 동거형태, 육아 시간 등), ③ 교육성과(참가자들과 자녀들의 고등교육 이수, 교육과정 속성과 수 등), ④ 노동행위, 구직, 고용지위(유급 노동 시간, 종사한 일자리 수, 노동시장에서 받은 소득, 구직활동에 참여한 기간과 강도 등) ⑤ 지역사회 수준에서의 영향, ⑥ 직접적인 행정비용 절감 혹은 다른 복지급여 대체 비용, ⑦ 식량 안보 상태의 변화, ⑧ 시민권과 포섭에 대한 인식, ⑨ 유동성 및 주택 관련 제도들에 대한 영향, ⑩ 기본소득보장과 여타 복지 프로그램(캐나다 아동수당 등)과의 상호작용으로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측정되고, 그 방식도 계량화된 수치 이외에 참여자들과의 구체적인 인터뷰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본소득은 기여경력도, 소득수준도, 노동참여 여부도 따지지 않고 지급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삶의 많은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은 이 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액의 현금지급 방식이 아니라 부의 소득세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캐나다의 실험은 기본소득 실험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보편성 및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들을 위배하는 부의 소득세 방식은 결과적 평등을 보다 잘 실현할 수 있는 빈곤 정책의 하위 범주이지 기본소득 제도가 아니다.

 

 

 

 

어떤 기본소득을 꿈꿀 것인가

 

 

기본소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개념을 상상하고 만들어내고 제도로 구체화하려고 노력하는 등 상당한 시도들을 해 왔다. 실현된 혹은 실현하고자 하는 기본소득 실험들은 실험의 목표와 구체적인 정책의 방식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고, 그 다양성만큼이나 장점과 한계를 모두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 이제 우리 차례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어떤 방식의 기본소득 제도를 꿈꿀 것인가?

 

 


 

[참고문헌]

BIEN(2016). “History of Basic Income.”

김교성(2016). 이 시대 복지국가의 쓸모?!: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비판사회정책, 52.

다니엘 헤니, 필립 코브체(2015). 원성철 역(2016). 기본소득, 자유와 정의가 만나다: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의 논리와 실천. 오롯.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홈페이지

 

 

수, 2017/03/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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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가 지난 2011년 김경준 씨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간 경위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뉴스타파는 ‘140억 송금’이 결정된 스위스 검찰 결정문을 입수했다. 또 다스와 김경준 측이 맺은 비밀합의의 과정과 내용이 적힌 김 씨의 누나이자 옵셔널 횡령사건 관련자인 에리카 김의 진술서도 확보했다. 다스 140억 원 송금과 관련된 미국과 스위스의 공식 문서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위스 제네바 주검찰이 작성한 결정문에는 김경준 씨 소유 계좌가 있는 크레딧 스위스은행에 “한화 140억 원을 이체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다스와 김경준 측 변호인의 서명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양측이 합의한 내용을 스위스 검찰이 집행한 문서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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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가 김경준 측으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간 건 2011년 2월 1일. 김경준 씨 소유기업인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의 크레딧 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갔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스위스 제네바 주검찰의 결정문에는 “이 계좌에 대한 대한 동결조치를 즉각 해제하고, 동시에 계좌에 있는 돈 가운데 140억 원을 다스의 외환은행 계좌로 송금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법원 비용 10만 프랑은 합의 당사자인 다스와 김경준 측이 나눠서 내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제네바 주검찰의 결정문 말미에는 관련자들의 서명이 들어 있다. 검찰 관계자 2명과 함께 다스와 김경준 씨측 변호사의 이름도 확인된다. 다스와 김경준 씨측이 소송이나 재판 결과가 아닌, 당사자 합의를 거쳐 돈을 주고 받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그러나 2004년부터 옵셔널벤처스 횡령사건의 변호를 맡아 미국에서 김경준 남매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온 메리 리 변호사는 “이 합의와 송금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 당사자인 옵셔널측은 이 합의가 이뤄진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주검찰이 김경준 측 계좌에 대한 동결을 해제하라는 명령을 할 수는 있어요. 양측이 합의하면서 형사사건의 성립요건이 사라졌으니까요. 그런데 합의 당사자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스위스 검찰이 은행에 이체까지 명령했다는 건 좀 이상하죠. 직권을 남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스가 140억원을 가져간 사실을 저희는 알지도 못했어요. 140억 송금이 있은 직후인 2011년 2월 25일 옵셔널 횡령사건 관련자인 에리카 김씨가 한국에 들어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뉴스를 보면서 직감은 했어요. ‘다스가 결국은 김경준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갔구나.’ 그냥 알겠더라고요.

메리리 옵셔널벤처스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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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다스 140억 원 송금과 관련된 입장을 듣기 위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김경준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1월 3일, 김 씨는 5시간이 넘는 인터뷰 중 상당 시간을 다스 140억 원 송금과 관련된 설명에 할애했다. 그는 “다스와 합의를 거쳐 140억 원을 준 것은 맞지만, 사실상 다스의 계속된 협박에 못 이겨 돈을 빼앗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다스에 보낸 140억원은 안 줘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같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기 때문에 그 돈은 사라진 겁니다. 그런데 다스 측은 자신들의 투자금을 받아내겠다며 온갖 소송을 다하고 나와 우리 가족을 협박했습니다. 가족의 취업을 방해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저희 가족은 다스의 소송과 협박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돈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가족을 협박한 사람은 다스와 이명박 측 변호사들입니다.

김경준 / 전 BBK 대표

뉴스타파는 스위스 제네바 주검찰의 결정문 외에도 다스 140억 원 송금과 관련해 김경준 씨측이 미국 연방법원에 낸 문서도 확인했다. 2012년 5월 15일 김경준 씨의 누나이자 옵셔널벤처스 횡령사건의 핵심관계자인 에리카 김이 미국 연방법원에 낸 진술서다. 에리카 김은 다스와 옵셔널이 미국과 스위스에서 제기한 소송의 피의자였다. 다음은 에리카 김의 진술서 내용 중 일부다.

다스 측과 2011년 1~2월 사이 합의해 140억원을 보냈다. 송금과 동시에 다스는 김경준 측을 상대로 한 형사고소를 취하했다.

에리카 김의 미국 연방법원 진술서 중 일부

이 진술서에서 주목할 부분은 다스와 김경준 씨측이 합의를 맺은 시점이다. 이 시기 전후에 미국과 스위스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면, 합의의 배경과 목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다스와 김경준 씨측이 합의를 이루기 직전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중요한 판결 두 개가 나왔다. 김경준 남매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다스와 옵셔널벤처스, 그리고 김경준 측이 서로 소송을 통해 가리라는 판결(2010년 12월 15일)과 옵셔널벤처스가 2001년 한국에서 벌어진 횡령사건의 유일한 피해자로 김경준 씨측으로부터 371억 원의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미국 연방법원 판결(2011년 1월 4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판결이 김경준 씨측은 물론 다스에게도 치명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두 판결이 그대로 집행된다면, 김경준 씨측이 미국과 스위스에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모두 옵셔널벤처스로 넘어갈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스와 김경준 씨측의 ‘140억 원 협상’은 양측의 이런 절박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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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최근 2개의 수사팀을 꾸리고 다스와 관련된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그 중 다스 140억 원 송금과 관련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가 맡고 있다. 수사의 핵심은 140억 원 송금 과정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이 관여했는지 여부다. 이미 다스 측 변호사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LA총영사로 임명됐던 미국변호사 김재수씨가 총영사 재직 당시 140억 원 송금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상태다.


취재 : 최문호 한상진 송원근 강민수 임보영 김지윤
촬영 : 최형석 김기철 김남범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화, 2018/01/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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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 의심을 받고 있는 차량용 시트 제조회사 다스. 이 회사가 2011년 BBK 전 대표 김경준 씨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간 사건이 논란거리다.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핵심 의혹은 다스 140억 원을 받아간 것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당시 이명박 정부가 이 과정에 부당한 개입을 했는지 여부다. ‘다스 140억 원 송금’ 문제로만 알려진 이 사건의 배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일단 한국과 미국, 그리고 스위스로 이어진 14년 동안의 ‘소송 전쟁’ 이 이면에 있다. 각종 의혹까지 더하면 거의 미로 수준이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미국-스위스로 이어진 14년 소송

2001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BBK, LKe뱅크 같은 회사들을 공동운영했던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이하 옵셔널)라는 회사를 이용해 370억 원이 넘는 돈을 횡령해 미국을 거쳐 스위스로 보냈다. 그리고 그해 12월 김경준은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러자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던 다스가 투자금 중 140억 원을 돌려달라며 김경준 남매 등을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다. 김경준의 옵셔널 횡령금이 원래 자기들 돈이라는 주장이었다. 이후 시간을 두고 횡령을 당한 옵셔널도 미국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진행된 소송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하나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김경준 남매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가 나선 몰수청구 사건이고, 또 하나는 다스와 옵셔널이 개별적으로 김경준 남매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횡령금 반환소송)이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 정부가 김 씨 남매를 상대로 몰수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 피해를 주장하던 다스와 옵셔널은 각자 길을 달리했다. 다스는 사실상 미국 소송을 포기하고 돈이 숨겨진 스위스로 달려갔다. 반면 옵셔널은 미국에서 진행되던 민사소송에 집중했다.

다스 140억 원 송금 사건은 미국과 스위스에서 이런 소송들이 진행되던 중에 벌어진 느닷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다스가 140억 원을 받아가기 직전 옵셔널이 미국 소송에서 승리, 김경준으로부터 371억 원을 반환받을 권리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반면 다스는 스위스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민·형사고소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소송에서 승소한 옵셔널이 가져가야 할 돈을 패소한 다스가 받아 갔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뉴스타파는 지난 두 달여 동안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취재를 통해, 위에서 설명한 각종 소송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송 자료와 판결문들을 입수했다. 또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 씨, 지난 14년간 다스와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온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를 미국 LA에서 만나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은 다스 140억 원 송금 의혹을 풀어줄 결정적 장면 3개를 확인했다.

결정적 장면 1. 스위스로 간 다스… 그리고 거짓말

다스가 김경준을 상대로 140억 원을 받아내기 위해 스위스로 간 것은 2007년 3월이다. 같은 달 미국 연방정부가 김씨 일가를 상대로 한 재산몰수 청구소송에서 패소하자, 곧장 김경준의 돈이 있는 스위스로 달려갔다. 그러나 다스의 스위스 소송은 쉽지 않았다. 스위스 연방 검찰은 다스가 낸 첫 형사고소(김경준 남매 재산동결 요청이 포함됨)를 기각했다. 그러나 다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에 같은 고소를 다시 제기했다. 제네바 주 검찰은 다스의 고소를 받아들여 김경준 남매의 자산을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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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2007년 당시 다스가 스위스에 낸 고소장 2개를 확보해 분석했다. 먼저 두 문서에서 모두 다스는 자신이 김경준 남매 횡령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확인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피해자로 공동소송 계약까지 맺었던 옵셔널에 대한 언급은 고소장 어디에도 없었다. 문서만으로 보면, 다스는 김경준 횡령 사건의 유일한 피해자이자 채권자처럼 보였다. 다스의 첫 거짓말이었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스가 스위스 검찰을 속였다는 것이다.

다스는 한 번도 김경준 측을 상대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옵셔널의 입장을 마치 자기들 것처럼 만들어 스위스 검찰을 움직였어요. 그리고 결국은 비밀합의를 맺고 김경준 재산을 가져갔죠. 다스는 옵셔널의 가면을 쓰고 스위스에서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겁니다.

메리 리 변호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앞서 설명대로, 다스가 제네바에서 김경준 측을 고소한 것은 2007년 3월이다. 그리고 다스가 김경준 씨에게서 140억 원을 받아간 것은 2011년 2월이었다. 그럼 이들은 언제, 어떻게 합의를 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2012년 5월 김경준의 누나이자 옵셔널 횡령사건에 관여한(미국 연방법원에서 김경준과 에리카 김 등은 횡령죄가 최종 확정됨) 에리카 김이 미국 법원에 낸 진술서에 있다. 3장짜리 진술서에는 다스와 김경준이 “2011년 1~2월경 합의를 했다”고 적혀 있다. 3년 가까이 싸우다 갑자기 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대체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진은 14년 동안의 소송기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판결문 두 개를 찾아냈다. 다스와 김경준 간 비밀합의가 있기 직전,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판결 모두 다스와 김경준에게는 절대 불리하고, 옵셔널에는 유리한 것이었다.

절박해진 다스-김경준이 택한 길은 비밀합의

2010년 12월 15일, 미국 연방 항소법원은 미국과 스위스에 있는 김경준 남매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다스와 옵셔널, 그리고 김경준이 소송을 통해 가리라고 판결한다. 2006년 김경준 남매가 승소했던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2011년 1월 4일에는 역시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김경준 남매 등에 대한 횡령죄를 최종 확정하면서, 옵셔널에 횡령금 37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역시 2008년 김경준이 승소한 1심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다스와 김경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두 판결이 집행된다면 미국과 스위스에 있던 김경준 재산은 모두 옵셔널 손에 들어갈 상황이었다. 다스와 김경준의 비밀합의 이면에는 이런 절박한 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 에리카 김 미국 연방법원 진술서

▲ 에리카 김 미국 연방법원 진술서

다스-김경준 입장에서는 최악의 판결이었을 거에요. 몰수청구 사건에서 연방법원이 3자간에 소유권을 다투라고 했지만, 이미 371억 원의 판결채권을 받아놓은 옵셔널을 상대로 다스와 김경준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죠. 결국 절박한 상황이 된 양측이 옵셔널을 배제한 채 비밀합의를 맺고 이 문제를 끝냈다고 생각해요.

메리 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다스 140억 원 송금이 있기 전, 이미 김경준 남매의 스위스 재산에 대해 미국 법원은 동결을 명령한 상태였다. 따라서 누구도 법원의 허락이 없이는 함부로 계좌에서 돈을 빼거나 넣지 못하는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계좌동결 조치에 대해선 관련 당사자들도 아무 이견이 없었다. 느닷없는 비밀합의로 돈을 주고받은 다스와 김경준도 마찬가지였다. 140억 원 송금이 있기 네 달 전인 2010년 10월까지도 다스 측 변호사는 미국 연방법원에서 판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위스 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나요?) 돈이 있죠. 몰수대상이 됐던 (김경준 측의) 자산은 여전히 미국 연방법원의 관할권 내에 남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회복(횡령금 회수)하려면 그것(연방법원의 판단)밖에는 길이 없죠.

다스 측 변호사 / 2010년 미국 연방법원 속기록

“누나 처넣겠다고 협박, 가족 취업도 방해”

그러나 위 진술이 있고 정확히 넉 달 뒤, 다스는 김경준과 합의해 돈을 빼 간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1월 3일 미국 LA에서 진행된 김경준 씨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여러 개 던졌다. 그러나 그는 “다스 140억 원 송금과 옵셔널 승소 판결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스와의 협상은 수년 전부터 진행됐고, 공교롭게도 옵셔널벤처스의 승소 판결 즈음에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왜 승소한 옵셔널이 아닌 패소한 다스와 협상을 했나요?

사실이 아닙니다.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 어떤 부분이 잘못됐나요?

다스와의 협상은 옵셔널과 관련이 없습니다. 다스와는 수년 전부터 협상을 해 왔습니다.

– 옵셔널과는 합의를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1심에서 이겼기 때문에, 그리고 옵셔널의 요구금액이 너무 컸습니다.

-다스에게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다스와 옵셔널 같은 조건이었는데. 혹시 옵셔널은 만만한 상대라서 협상 가치를 못 느낀 게 아닌가요?

난 협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협상을 해요. 다스와 협상을 한 이유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으로부터의 지속적인 협박, 천문학적인 소송비용 때문입니다. 이명박 측은 누나(에리카 김)를 쳐 넣겠다고 했고, 실제로 가족의 취업을 방해했어요. 협박한 사람은 다스 변호사였어요.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결정적 장면 2. 발뺌, 거짓말…미국 법정서 벌어진 ‘막장 청문회’

2011년 5월 2일 미국 LA에 있는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옵셔널 횡령 사건을 2004년부터 꾸준히 맡아온 콜린스 판사가 이 사건 관련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청문회였다. 김경준, 다스 그리고 옵셔널 측 변호사 외에도 연방 검사까지 불려나왔다. 콜린스 판사는 다스가 김경준 측과 비밀합의를 맺고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스위스에 있던 김경준 자금 140억 원을 가져간 사실에 분노했다. 다스와 김경준 측 변호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발뺌하기 바빴고, 연방 검사는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댔다. 청문회를 지켜봤던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너희들(관련 변호사들) 다 와’, ‘지금부터 너희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물어볼게’,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숨기면 형사 기소를 각오해’, 이런 말을 판사가 계속했어요, 호통을 치면서. 그 자리에는 연방검사까지 불러 나왔어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놀라서 달려왔죠. 콜린스 판사는 책상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어요. 판사라는 직책 때문에 참으면서, 정말 끙끙거리면서, 감정을 절제하면서 말을 하는 상황이었죠.

메리 리 / 옵셔널 측 변호사

앞서 설명한 대로, 다스와 김경준 간의 돈거래가 있기 전인 2007년 초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 남매의 미국과 스위스 재산을 동결한 상태였다. 판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소송 당사자들이 아무런 상의 없이 무시한 셈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뉴스타파는 메리리 변호사가 말한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청문회 속기록을 찾아봤다. 다음은 속기록 내용 중 일부다.

▲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판사 : 오늘은 판결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질문할 것이 너무 많네요. 김경준이 다스에 140억 원을 송금한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먼저 다스 변호인에게 묻겠습니다. 김경준과 다스 간에 합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다스 변호인 A :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용을 잘 모릅니다. 저보다는 김경준 씨 변호인이 답변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판사 : 왜 그렇죠? 당신도 이 합의에 참여했나요?
다스 변호사 A : 저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판사 : 그럼 합의에 참여한 다스 측 변호사는 누굽니까. 앞으로 나와 보세요. 왜 140억 원 송금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나요?
다스 변호사 B : 그래야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그래요? 그럼 김경준 측 변호사 앞으로 나오세요. 당신은 이 합의에서 김경준을 대리했나요?
김경준 변호사 : 아닙니다.
판사 : 다스 측 변호사는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하는데요?
김경준 변호인 : 저는 합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만 참여했습니다.

2011년 5월 2일 미국연방법원 청문회

화가 난 판사가 “다스가 가져간 140억 원을 다시 미국 법원에 가져다 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다스 측 변호사는 이를 거부했다. 참다못한 판사는 연방 검사를 불러 해결책을 찾으라고 종용했다.

판사 : 다스 측 변호사에게 요점만 묻겠습니다. 우리 법원은 스위스 계좌가 동결된 채 유지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모두 끝날 때까지 140억 원을 다시 법원에 맡기는 게 어떤 지 다스 측에 물어보세요.
다스 변호사 : 다스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다스는 스위스 법정에서 성공적으로 승소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판사 : 검사 나와 보세요. 당신 생각에는 이 시점에서 미국 연방법원이 자금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나요?
연방검사 : 글쎄요. 만약 법원이 정부로 하여금 이 건을 조사하도록 명령한다면, 정부는 연방판사가 발부한 다른 모든 명령과 마찬가지로 사건조사에 착수할 겁니다.
판사 : 옵셔널벤처스 측은 혹시 법원에 요청할 것이 있나요?
옵셔널 변호사 : 법원이 자금을 반환하도록 명령해야 한다고 봅니다. 알렉산드리아 계좌에 있는 자금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수익을 냈는지에 대한 내역서를 받아내야 합니다.

2011년 5월 2일 미국연방법원 청문회

이 청문회 모습은 당시 다스와 김경준 간의 돈거래가 미국 연방법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범죄행위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2007년 미국 연방법원이 김경준 일가의 재산을 동결하고 이후 김경준과 다스 측이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다스와 김경준 측이 모두 미국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침해, 혹은 기만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정적 장면 3. 스위스 검찰은 왜 140억 송금을 지시했나

– 2011년 2월 다스에 보낸 140억 원은 줘야 할 돈이었나요? 아니면 안 줘도 되는 돈이었나요?

엄밀하게 따지면 안 줘도 되는 돈을 준 겁니다. 같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는데, 그 책임을 내가 다 져야 한다는 겁니다.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다스가 김경준으로부터 140억 원을 받아가도록 만든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의 결정문. 취재진은 다스가 미국 법원에 낸 각종 서면자료 더미에서 결정문을 찾아냈다. 스위스 제네바 주 검찰과 다스, 그리고 김경준 측 변호인이 서명한 문서였다. 문서에는 “다스가 김경준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해 계좌동결을 해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제네바 검찰은 김경준 소유기업인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계좌가 있던 크레딧 스위스 은행에 “140억 원 송금을 다스 계좌로 송금하라”고 명령하는 내용도 확인됐다. 이례적인 조치였다. 옵셔널 측 메리리 변호사는 검찰이 은행에 직접 송금을 지시하는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결정문을 보면, 스위스 검찰은 구체적 명령을 해줘요. 압류됐던 계좌를 즉시 풀고 다스로 돈을 내주라고, 크레딧 스위스한테 명령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검사가 은행에 이런 명령을 할 수가 있냐는 거죠. 계좌동결을 해제하는 명령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은행에 구체적인 송금 명령까지 검사가 해요. 문제가 있는 거죠.

메리 리 /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2011년 다스가 김경준 측으로부터 비밀합의를 통해 140억 원을 가져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유독 다스만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을 받아낸 건 맞는데 이면합의 같은 건 없었다는 주장이다. 확인이 가능한 다스의 가장 최근 입장은 이렇다.

다스의 140억 원 환수는 미국소송과 별개로 스위스 검찰의 결정에 의거 강제 이체된 것이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김경준과의 거래설은 허위사실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2017년 9월

그러나 합의의 또 다른 당사자인 김경준 씨는 이미 여러 차례 다스와의 이면합의를 인정한 상태다. 지난 1월 3일 미국 LA에서 가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도 김경준 씨는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다만 거래의 조건, 즉 다스와 맺은 이면합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결정문을 설명하고 있는 메리 리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 결정문을 설명하고 있는 메리 리 옵셔널벤처스 측 변호사

그럼 다스는 대체 왜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합의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다스가 140억 원을 받아갈 당시는 이명박 정권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미 다스 140억 원 송금사건에 당시 이명박 정부 인사가 관련된 사실이 확인된 상태다.

다스의 변호사였으며 LA 총영사를 지낸 김재수 씨가 총영사 재직시절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명박 정권이 정치 권력을 이용해 이런 불법적인 돈거래를 사실상 성사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뉴스타파는 이 의문투성이 송금과 관련된 입장을 듣기 위해 다스 본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 의문, 김경준의 스위스 계좌 잔고

다스 140억 원 송금사건과 관련해 마지막 남은 궁금증은 과연 김경준 남매의 스위스 계좌 2개(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에리카 김)에 얼마나 많은 돈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의문은 ‘스위스 계좌에 140억 원 이상이 있었고 김경준 측과 다스가 옵셔널 몰래 이 돈을 나눠 가졌다’는 의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스가 2007년 3월 스위스 연방 검찰에 낸 첫 고소장에는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남아 있었다. 고소장에는 김경준 측이 스위스로 빼돌린 자금의 규모가 1530만 달러가 넘는다고 적혀 있다. 또 에리카 김이 90만 달러를 스위스로 보내려고 시도했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FBI의 수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다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김경준 씨는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스위스에 있던 돈은 140억 원이 전부라는 것이다.

-(스위스)알렉산드리아 계좌에는 돈이 얼마나 있었나요?

그 정도(140억 원) 밖에 없었어요.

– 계좌가 두 개인데. 에리카 김 명의 계좌에는 얼마나 있었나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김경준 / 전 BBK 대표, 2018년 1월 3일 미국 LA에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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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확인 결과, 다스 140억 원 송금은 거짓말과 왜곡, 그리고 갈취로 이뤄졌다. 돈과 권력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졌고, 그 결과 횡령한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다스 140억 원 송금은 현재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국민들은 다스가 왜, 무슨 자격으로 140억 원을 가져갔는지, 그리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진실 규명 기회를 놓친 검찰이 이번엔 의혹을 풀어줄 수 있을지, 국민들은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취재 최문호 한상진 송원근 강민수 임보영 김지윤
촬영 최형석
편집 윤석민
CG 정동우

목, 2018/01/1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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