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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다시 개벽의 신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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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다시 개벽의 신바람이-

익명 (미확인) | 금, 2019/01/25- 11:41

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니) 이것을 풀어낼 단서를 찾아주신 것 같아 저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아마도 전통(척사파)과 현대(개화파)라는 양분법으로 단절된 한국사상사에서 ‘근대’(개벽파)라는 연결고리를 찾으셔서 이런 표현을 쓰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사상적 실마리는 역시 ‘개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환 사진2 유상용선생님과
유상용 선생님과~

실제로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개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셨다는 유상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개벽으로 돌아오신 분인데, 그 귀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나는 92년 이래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발달한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야마기시즘’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뿌리찾기’의 과정에서 시작된 탐구와 실천의 한 과정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뿌리찾기 과정에서 도착한 곳은 조선 정신의 용출인 개벽사상이었고, 그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원불교사상을 기반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 작년 말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개벽>으로 -.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여기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울림으로, 나의 느낌으로…”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귀환하신 분과 원광대학교에서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체험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으로부터 개벽학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동학은 일종의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벽적 주체의 정립이며, 한살림은 생산성 중심의 과학농업에서 철학에 기반한 인문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운동이다 등등… 유상용 선생님도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군요.

“요즘 동학‧증산‧원불교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 때 선조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과제와 자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읽고 떠올려 보았다. 특히 최제우 선생은 조선과 동양의 몰락을 감지하고, 유학이 당면한 과제를 알고, 기독교-서학의 내용이 의미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유학이 현상의 관찰에 머물러 초월을 몰랐고, 서학이 초월을 인간 밖에 두어 외화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스스로 기도를 통한 초월적 체험을 시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양쪽의 모순을 극복한 ‘내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조선 문명의 절실한 과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 더욱 선생과 선조들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월의 문제와 관련해서 동학의 입장에서 유학과 서학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왜 개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 시대에 필요한 개벽학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상용 선생님의 소개로 마침 익산에 오신 이남곡 선생님도 함께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어느 사찰에 들어가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밝음을 창출하는 에너지”라는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어둠과의 싸움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밝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과 장일순 선생의 ‘보듬는 혁명론’이 떠올랐습니다. ‘신명’이 바로 ‘밝음의 에너지’이고, ‘신명난다’는 말은 “밝은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나 저항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길은 밝음의 에너지로 상대를 보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남곡 선생님이 작년에 『논어: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의 개정판을 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인드로 『논어』를 독해하셨다면 저로서는 일종의 『개벽논어』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창조성과 도덕성

선생님의 편지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신을 개벽하여 물질을 개벽하자!”는 역발상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개벽은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최제우가 ‘중국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다시 개벽’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성학(聖學)을 술(述)하지 않고 동학(東學)을 작(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중심주의나 민족주의로 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모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가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천도교나 원불교 경전에서 마음/정신의 최고 상태를 ‘자유심’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정신 상태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학문, 새로운 동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뭔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 바로 이남곡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밝음’이나 한국사상에서 말하는 ‘신명’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레카’와도 상통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정신이 개벽되면, 즉 정신이 자유로워지만 창조적인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새로운 물질개벽의 차원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이고, 인문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개벽과 물질개벽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1
세교포럼 박맹수 강연(왼)

물론 정신개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각하여 구세하자”는 자각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창비빌딩에서 있었던 세교포럼에서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이 “문명전환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 세교연구소 고문이신 백낙청 교수님께서 이중과제론적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의 의의는 이 시대를 물질개벽, 즉 자본주의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써 정신개벽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고, 그래서 원불교에는 근대적응(물질개벽)과 근대극복(정신개벽)이라는 이중과제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백낙청교수님의 이중과제론의 내용이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원불교의 개벽론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물질개벽=자본주의”보다는 “물질개벽=과학혁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과학혁명과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강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의 정신개벽을 나타내는 말이 개벽파가 주장한 ‘도덕’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월 최시형이 말하는 ‘도덕문명’(『해월신사법설』「기타」)이나, 소태산 박중빈이 말하는 물질문명과 대비되는 ‘도덕문명’(『대종경』 「교의품」 32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신개벽이라는 말에서 도덕성과 창조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도덕성이 원 문맥에 충실한 개념이고, 선생님이나 백낙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극복하는 정신적 태도나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창조성은 정신개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개벽해서 물질을 개벽하자”는 선생님의 역발상에서의 정신개벽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2

 

3. 한국학과 신동학

마지막 부분에서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하자!”는 선생님의 제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제가 ‘개벽사’라는 사상사 서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실천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실천이나 현장을 우선시하는 분들과 저 같은 연구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틀을 바꾸고 싶습니다. 척사와 개화, 유학과 서학에 치우친 한국학에서 ‘척사-개화-개벽’이 천지인(天地人) 삼재처럼 균형이 잡힌, ‘유학-서학-동학’이 삼발이처럼 정립된, 그런 한국학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학이 동아시아라는 전통적 배경이고, 서학이 세계라는 현대적 환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적 풍토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외되고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현재적 풍토는 잊혀지고 무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벽이라는 근대였습니다. 이 폄하되고 경시된 한국적 근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균형잡힌 한국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천도 방향을 상실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의 근대를 제외한 유학 중심의 ‘전통과 현대’라는 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동학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동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근대의 탄생』의 출간을 인연으로, 한평생 실천현장에 몸담고 계셨던 실천가들을 만나 뵙고, 아울러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극을 받고서, 저도 비로소 실천에 대한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년이 문헌연구-사상연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실천현장에 계셨던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학’의 정립과 실천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4. 언어의 한계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제기해 주신 ‘일본의 개벽’이니 ‘토착적 근대’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답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연히 지적하신대로 일본의 개벽파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개벽파라고 할만한 운동은 희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도 동의하시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개벽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이 안도 쇼에키와 같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한국 개벽의 원형이나 시작이 일본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동학=개벽’의 가장 큰 사상사적 의의는 중국적 성인질서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안도 쇼에키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도 쇼에키는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이 제가 ‘근대=자본주의’와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한국은 세계 안에 있지만요-.). 그래서 근대의 기준이나 내용을 규정할 때에도 저로서는 중국(유학)과의 관계가 중요해지고요. 마치 서양 근대가 중세(신학)와의 관계 속에서 나왔듯이 말입니다. 단지 관점이 달라서 표현이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근대’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라는 말을 한국의 ‘개벽’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해서, 그 상대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성적 근대’니 ‘자생적 근대’라는 말을 썼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의 ‘개벽’과 유사한 현상을,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현상을 일본사상사에서 찾아서 적용해 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듯이, 한국의 개벽과 일본의 개벽도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니 하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기에 굳이 ‘토착’이니 ‘비서구’니 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가령 김치가 한국의 토착음식이라고 할 때, 김치의 재료나 요소가 한국에만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해외에도 김치가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치가 한국만의 음식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김치라는 음식이 나온 고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지만요.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라는 말도 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보편이니 지구화니 글로벌이라는 말에 의해서 놓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로컬이나 지역이나 특수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전공이 한국사상사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벽에 대해 쓰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개벽에 대해 호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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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신향촌건설운동 20주년을 맞아, 원톄쥔 교수가 운동의 회고와 함께 그 이론적 배경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맛보기’에 해당하는 이 짧은 비디오 강연에서는, 신향촌건설운동의 큰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이론 다섯가지를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초래한 직접적 압력과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각종 지정학적 대응,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혐중분위기와 함께, 최근 홍콩보안법 통과는 미국과 서방을 대체하는 대안 거대담론의 제시자로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크게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 교수와 그의 추종자/찬동자들은 중국의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관방/시장과 민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이론들은,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큰 틀에서는 생태문명 건설, 구체적으로는 로컬라이제이션과 향촌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각급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에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내용들이, 중국 바깥 세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다양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위협론을 반박할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원톄쥔 교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 (근)현대경제사의 실전적 분석과 정책수립/실천, 민간대안운동 경험을 그 재료로 삼는 2~30년 이상의 실천과 10년간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세계체제속에서의 비용전가론이나 농촌균형발전론은 중국내에서도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돼온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명파생론’은 그의 전문적 연구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최근의 고민으로, 학계의 활발한 논의대상으로 격상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 다음 이론인  ‘제도파생론’과 함께, 이 주장들은 서구 학계의 중국문명/ 정부 비판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외부세계와의 열린 논쟁의 과정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고민, 형이상학적 논의는 그의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생태문명’의 기반사상이나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량슈밍’사상 등에 주목하는 중국 바깥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를 궁금하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연이, 도덕경을 직접 언급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역시 정확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삼농문제는 개발도상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의 삼농문제는 1990년대 급진적인 현대화 개혁이래, 중국사회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2001년 이래 신향촌건설운동을 진행하면서, 삼농문제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20년간, “민생을 보호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다원화를 제창한다”라는 생태문명 이념을 받들어 오며, 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이 선도해서, 사회 각계층이 스스로 참여하고, 기층민중과 함께, 향토문화가 결합된 실천적 사회개량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중국 곳곳에 실천 현장이 생겨났다.

 신농촌건설로부터,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식품안전으로부터, 안전한 문화, 안전한 생태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향촌건설참여자들의 분투는 쉼이 없었다: 향촌건설에서, 도농교류, 국제교류에 이르기까지, 사회공익에서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재육성에서, 농민과의 협력, 농민공지원, 사회적 생태농업 (커뮤니티 지원 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향토문화부흥, 향촌건설연구에서 향촌종합발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이십년간, 다양한 사회적 모색이 지속돼 왔다.  


향촌건설사상이론체계

여러분들에게 우리 향촌건설의 실천과정중에 만들어진 이론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60세부터 시작하여 이제 70세에 이를 때까지, 우리 연구진들과 함께,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론체계는 5개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이 5개 관점에 대한 연구는 어떻든,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연구 그룹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유지해왔다. 이것이 우리 연구의 태도에 일관되게 반영이 돼 있다.

중국전통문화는 근대 자연과학과 같이 분과가 명확하게 나뉘어 그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선, 큰 틀을 만들어, 전체적인 대략의 얼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지금 강조하는 생태문명 전략의 전환과도 관련이 있다. 21세기를 맞아, 갈수록 공업화,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초래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 큰 방향성의 전환이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생태자원이란 단어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극단적으로 다양화한 자원체계이고, 그 요소들이 함께 묶여 있어서, 하나 하나 분리해 낼 수도 없다. 현재 중국의 국가지도자가 강조하는 ‘양산사상兩山思想’ (역자주: 시진핑이 녹수청산綠水青山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고 한 표현을 이르는 말, 환경생태자원이 경제적 가치도 가진다는 의미)은, 산과 물, 전답, 숲, 호수, 풀 등의 자원이 종합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원을 쪼개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 가치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생태자원은 구조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원래 시장 논리로 명확하게 분절될 수 없는 자원이다. 전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생태 시스템이다. 인류는 공업화 시대에 생태자원을 생산요소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공업화와 도시화는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토지는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이렇게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황무지로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매년 감소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개발은 이렇게 토지를 평면자원으로만 인식한다. 그 토지안에 자라는 나무, 풀, 서식하는 동물 등은 토지 자원 관점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제거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 다양성 자원은 사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인류 사회와 매우 고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우선 생태문명 전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상의식 측면에서 개명돼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최근 향촌건설이 강조해온 일련의 기본이념과도 통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상무형大象無形, 대음희성大音希聲 (도덕경 41장)을 강조해 왔다. 만일 당신이 한마리 코끼리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특히나 체계적으로 코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할 것이고, 배를 만지면, 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무형은, elephant 즉 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라, 커다란 객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중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전략이 결합적으로 말하는 물과 숲, 전답 등을 아우르는 생태자원은 또한 구조적으로 쪼개서 분석할 수 없는, 담론상 하나의 객관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상무형을 강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원화사회구조속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때, 무성무식無聲無息 (출전: 시경,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음)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외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농촌에 가서 수많은 향촌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현장이 생겨났는가?” 물었다. 우리 대답은,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원래 이렇게 해왔다. 무슨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 일을 하는 거다. 판은 크게 벌리려고 노력하지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소식을 챙겨 들으려고 해도 따로 들을 수 없지만, 가보면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가 원래 이런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다양성을 갖춘 생태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지속적으로 생태화를 진행하다보면, 사람은 자연생태와 긴밀하게 결합돼 간다. 인류사회의 다양성은 자연생태의 다양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런 감각으로 계속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어중도立於中道”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중도는 무엇인가 ? 대도중용大道中庸이다 – 누가 누구이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판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든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표현으로 나타날 때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존재라면, 각각의 행위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다 합리적이다.

이런 상대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중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 도달했을 때, 이것을 “중도이립中道而立,비비가장야臂非加長也,이종치자중而從之者眾” (역자주 – 맹자와 순자를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활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발사는 하지 않는다. 또,  높은 곳에 올라 팔을 뻗으면 팔이 길지 않아도 보인다.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라는 의미 )이라고 할 수있다. 이 표현은 왜 향촌건설운동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향촌건설은 서구의 냉전형 이념이 만들어낸, 인문사회과학으로 포장된 시스템을 통해, 오직 하나의 정치형태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원선생 어째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소?” 나는 원래 습관이라고 답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매사에 흑백논리를 들이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연구지도 사상으로 중국전통문명중에서도 비교적 변증론적 색채를 가진 것을 취한다. 또 비교적 자연주의에 가까운 노자의 사상을 채택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도 결합돼 있으며, 불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은 전통 사상내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를 분리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향촌건설연구는 서구의 사회과학이 채택하는 분과학문적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특정 이념에서 출발한 연구도 지양한다.

 

회고해보는 우리의 관점

첫번째 관점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문명전승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만년에 달하는 문명이고, 이 문명의 전승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문명의 연속성은 단순한 인위에 의해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인종이 선진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이 다른 기타 정신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는 외부의 환경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래서 문명의 형성 조건이 다르고, 각각의 인류 문명의 차이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진과 후진도 없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인류문명은 각기 스스로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내재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부락 사회가 낙후된 것이라고 하고,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 생활방식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내재적 합리성을 갖고 있다. 왜 이것을 후진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구별하며 만든, 일종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인류의 문명을 관찰하려고 한다. 중요한 관찰의 포인트는, 기후의 주기변화에 따라 파생된 적응성 변화이다. 기후주기변화는 또 기후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렇게 각각의 기후대는 직접적으로 지표의 자원에 영향을 끼친다. 인류사회는 일찍이 원시시대에 농업과 수렵문명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주로 지표의 자원에 의존해서 생존해왔다. 그래서, 기후의 주기변화와 특정 기후대에서의 지표지리자원의 변화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가져왔다.

만일 우리가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향촌건설연구자들의 세계관은 ‘객관적인 역사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는 주로 식민화에 의해 결정된 이념에 몰입했고, 실은 서구중심주의가 서방의 이러한 변화 과정을 선진이자 보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포기한다면, 동방의 문명이든 서방의 문명이든, 남방 혹은 북방의 국가이든 각양의 생존 방식이 본래부터 다른 문화로 나타났을 것이고, 당연히 문화다양성의 합리적 내적요인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향촌건설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간의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화 이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새로운 생태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홍콩 링난대학의 라우킨치 LAU Kin Chi 劉健芝선생의 도움으로 국제비교연구를 했을 때, 내 강연에서 beyond cosm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뛰어 넘어야하고, 가치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매우 명료한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의 중요한 관점중 하나가 됐다.

다음은 근대 인류사회에서 우리가 형성한 연구 관점을 돌아본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제도결정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거시적 비교를 한 후에, 역사가 내포하는 세계관을 통해서, 제도문제를 연구해서 ‘제도파생론’을 만들어 냈다.

만일 우리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관점을 ‘인류문명차이 파생론’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내용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는 ‘제도파생론’인데, 일정한 자원의 구속조건하에서 상이한 인류문화가 형성되고, 거기에 맞는 각각의 제도가 파생됐다는 뜻이다. 

왜냐면, 각 지역에 부여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민화이후 수립된 대부분의 후발국가들은 모두 그들의 자원조건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자원환경이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제도는 요소구조의 변화에서 파생된다. 혹은 요소구조변화가 이런 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후속제도변화의 경로의존을 결정하게 된다. 제도 변화의 경로가 앞서의 제도 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제도결정론이 아니라, 제도파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번째 관점은 사실 하나의 이론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세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가가 현재 직면한 큰 도전과제들이 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제도적 비용이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이론과 월러스타인, 사미르 아민 그리고 아리기의 이론과 함께 결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사실은 핵심국가-반핵심반주변국가-주변국가의 순서대로 비용이 전가 되는 구조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선진국이 됐나? 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늘 수많은 재난에 직면해야 하는가? 사실은 전자의 비용이 후자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두번째 관점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변천도 모두 본래 제도의 프레임안에서 수익을 점유하고 비용은 다른 이에게 떠 넘기는 행위를 주도하는 이익집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적은 수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획이 성공한다면,  유도된 변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타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강요하고, 이를 강제적 제도변천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핵심국가 (지금은 미국이 가장 노른자이다)에서 반주변부 국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주변부 국가로 비용이 전가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부 국가마저 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비용을 자연 환경에 전가하게 되며, 이는 생태환경의 파괴, 즉 기후변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러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그러므로 파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을 전제로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다름아니다.

우리의 네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은 이런 정해진 틀과 운명에 빠져나갈 수 없고, 즉, 발전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권을 외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정권을 수립할 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종주국과 협상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주로 자원주권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핵심 경제주권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금융과 재정에 대한 것이다. 이때 얻게 되는 정치주권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는 집권을 하면서 사회에 일정한 발전의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경제자원에 기반한 자주개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약속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은 이러한 주권외부성이 정한 운명의 족쇄안에서, 자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 20세기는 비록 짧았고, 미완의 혁명도 이미 과거사가 됐으나,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주권외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식민지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고, 주권외부성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관점은 만일 비선진국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추진해서 향촌을 파괴한다면,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향촌의 전통 마을 사회는 외부성 문제를 내부화해서 층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실 간단하다. 국내의 현재 모든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미국의 담론체계를 수용한 채 따라가면서, 다른 이론을 배타시한다. 만일, 우리가 농가의 경제적 합리성을 언급한다면, 모두 시카고대학의 시어도어 슐츠의 소농경제합리성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소농경제는 자본주의 요구에 맞는 시장주체로서 부합해야 했고, 이 또한, 이념의 반영이다. 슐츠 이전에는 차야노프의 생존소농 이론을 모두 이야기했다. 농가에서는 그 가족 성원을 내칠 수 없기 때문에, 가정내에서 노동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도 가정내에서 배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소농경제는 가정내의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소농의 가정이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내부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다루는 메커니즘을 논하고자 한다. 마을에 모두 모여살기 때문에, 마을의 자산 경계는 지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을은 함부로 마을에 소속된 농가를 추방할 수 없다. 가정이 그 가족 성원을 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의 업무를 공동의 노력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외부성을 내부화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이 그러하다. 중국 향촌마을의 집체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 조직의 내부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 따라,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시화 정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 도산에 처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큰 농촌지역을 가진데다가, 농촌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라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상당부분, 향토사회가 위부 위기 비용을 내부화해서 떠안는 기능을 하면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넘기곤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중국의 도농2원구조 제도를 평가해보면, 충분히 그 장점을 발견할 수있고, 개발도상국에게 있어서, 과도하고 급진적이며, 빠른 도시화가 강조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일정하게 유지할 때, 안정된 국가체제운영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대륙과 같이 전면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오히려 향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관점이 우리들의 최근 10년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헌소스: 2019년 12월23일 Global University 그룹 원톄쥔 교수 방문 비디오 채록

https://mp.weixin.qq.com/s/3jyIticS8LempH2bAU726w

금, 2020/07/1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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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회 선배들은 지금 국회와 달랐다

1948년 8월 25일 오전 9시 반, 제헌의회 제48차 본회의가 열려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비롯한 법안을 논의하였다. 특별법기초위원회 김웅진 위원장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목부터 시작하여 제1조, 제2조, 제3조……. 각 조문마다 차례차례 낭독하고 이어 모든 의원들이 발언권을 얻어 논의하고 토론하여 마지막에 조문에 대한 투표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가령 제2조 조문이 투표 끝에 결정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게 기나긴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의원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였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 다음날 다시 동일한 시각에 속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힘이 강하다

유진홍 의원 지금 제2조를 가지고 벌써 두 시간이나 토론했습니다. 법원 원 정신이라는 것은 현행범 범죄자의 징계요, 장래를 경계하는 것이 법의 원 정신입니다.

….중략….

김장열 의원 제2조 말단에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는 문구를 「재산 및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로 수정하는 것을 동의합니다.

…중략….

이석주 의원 2조도 역시 1조와 같이 준엄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정기를 살리지 못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1조는 매국적이고 2조는 매국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작(受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에 와서 그 재산을 반만큼 몰수해서 그 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 자들이 그 재산의 위력을 가지고서 우리 조선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독립을 방해한 그 효력이 얼마나 컸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그 재산의 힘을 가지고 무슨 장난이 있을지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요. 그러므로 그 재산을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수정안을 찬성합니다.

부의장 김동원 가부 묻겠습니다. 이 동의를 잠깐 낭독할텐데 자세히 듣고 표결해주십시오.

(기록원 낭독 – 제2조 중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으로 수정할 것)

부의장 김동원 2조에 대한 수정안입니다. 수정안을 낭독해드렸는데 거기 대해 묻겠습니다.

(거수 표결)

재석 145, 가가 88, 부가 15, 그 수정안은 가결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제2조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의장 김동원 제2조는 전부 수정 통과되었습니다.

이석 의원 아닙니다. 일부만 수정되었지 전체 수정된 것이 아닙니다.

부의장 김동원 그러면 지금 수정 동의한 이 말씀하세요. 제2조는 전체 수정한 것인지 전부 수정한 것인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장열 의원 그 재산권 전체를 말한 것입니다.

부의장 김동원 제3조를 낭독할 테니까 들으세요.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수정안이 있습니다. 김명동 의원 외 12인의 수정안이 있습니다. 나와 말씀해주시오.

 

이날 특별법기초위원회 김웅진 위원장은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목부터 시작해 제1조, 제2조, 제3조, 각 조문을 차례차례 낭독했다. 이어 수많은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논의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조문에 대한 투표를 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제2조 조문이 투표 끝에 결정되기까지는 2시간도 넘는 기나긴 논의가 진행됐다. 그 속에서 의원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 다음날 같은 시각에 본회의를 속개하도록 했다.

지금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 ‘선배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법안을 검토하고 토론하고 결정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선배들을 본받아 대의권 그리고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 입법시스템으로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의원이 직접 검토해야 협치도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공무원이 ‘검토’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우리 국회밖에 없다. 어느 나라 의회든 당연히 국회의원이 검토하고 토론하고 심사한다. 그것이 곧 국회의 본업이고, 또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이다.

위의 표는 2018년 6월 27일 진행된 독일연방의회 법사위 제19차 회의 일정 공지사항이다. 원래 독일의회에서 위원회 법안심의는 비공개이지만 중요사안에 대한 공청회는 공개된다. 이 회의는 낙태광고금지제한에 관한 형법개정법안 공청회를 겸한 법안심의회의다.

a) 법안은 자유민주당*FDP가 발의한 법안이고, b) 법안은 좌파당*Linke가 발의한 법안이다. 옆의 빨간 박스에서 Berichterstatter/in는 검토보고자를 의미한다. Abg.는 의원(Abgeordnete/r)의 약자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검토보고는 각 당의 의원들이 수행하고 있다. 의원명은 기민당/기사당, 사민당, 대안독일당, 자민당, 좌파당, 녹색당의 순서다.【1】

 

협치, 과연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한국 정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협치’를 말하고 주문한다. 그러나 ‘협치’란 그저 단순히 당사자들과 참여자들이 생각을 바꾼다고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잠시 우리에게 ‘상식’으로 굳어져버린 방식을 바꿔 생각해보자. 바로 이 지점에서 국회의 본령인 입법과정 그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 구조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일하는 시간은 없고, 싸우는 시간은 많다. 그러나 만약 우리 국회가 독일 의회의 전문 검토보고 의원처럼 입법과정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즉 법안의 발의부터 검토 그리고 심의와 의결까지 다른 교섭단체 의원들과 함께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접촉하고 논의하게 된다면 사정은 크게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의원들은 다른 정당의 소속 의원들과도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토론하며 필연적으로 상호 소통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활동은 일상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말하는 ‘협치’도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다.

외화내빈, 빛 좋은 개살구로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는 법안발의 남발 현상 역시 다른 나라 의회의 경우처럼 당연히 정당 내부에서 의원들과 당 소속 정책전문위원의 논의를 거쳐 충분히 사전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법안발의가 남발되어 상임위원회가 한 차례 회를 열 때마다 법안이 수십, 수백 건 첩첩산중 쌓임으로써 정작 필수불가결한 법안에 대한 심의와 의결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기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중국의 전국인대도 법안 검토는 대표가 직접 한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원들은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문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먼저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초선의원의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고칠 의사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점을 알고서도 눈을 감는 것이다.

의원들은 비록 자신들 대신 공무원들이 법안을 검토하는 것이 자신의 권한을 크게 축소, 훼손시키는 것이지만, 우선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고 또 실제 그 일을 자기가 직접 하려면 시간상 능력상 힘들고 귀찮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실 본심은 안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하는 척만 하면서(더구나 사람들은 대개 여기에 속아 넘어간다!) 실제로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결국 모두 공무원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우리가 입만 열면 ‘독재국가’라면서 단칼에 무시하는 중국에는 전국인대(全國人代)【2】, 즉 전국인민대표 조직 중에 ‘전문위원회’라는 위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국회 공무원이 담당하는 그러한 전문위원회가 아니다. 바로 대표자, 즉 전국인민대표 중에서 전문가 출신의 대표들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전문위원회이다.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무능한 그리고 국민에게 봉사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되고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국회가 되어야 한다.

 

【1】 수년 전에 필자가 한 인터넷매체에 국회 검토보고제를 비롯해 기고문을 연재하고 있을 때 국회사무처의 한 간부가 해당 매체에 이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 게재 중단을 종용한 일이 있었다. 그 간부는 문제의 이메일에서 국회의원이 검토보고를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필자의 글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전문위원의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제도를 문제시하면서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이 검토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검토보고제도는 그 법안의 타당성 여부, 문제점, 심사방향 등을 검토하여 보고하는 것인데, 이를 법안을 제출한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검토보고제도의 취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차치하더라도, 문장 자체부터 전혀 다듬어지지 않는 등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그의 주장은 의회에서의 검토보고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인식 결여, 현재의 관행에 대한 근거 없는 맹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2】 여기 ‘전국인대’는 흔히 ‘전인대’로 칭해지지만, 중국에서는 반드시 ‘전국인대’라 부른다. 명칭은 관계자들의 시각과 요구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수, 2020/08/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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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무력화’는 역대 군사정권의 최대 관심사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국회는 역대 독재정권의 눈엣가시였다.

국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허수아비로 만들고자하는 시도는 이승만 정부 때부터 국회프락치 사건 등을 비롯하여 지속적으로 존재해왔고, 그 움직임은 박정희 · 전두환 군사정권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었다. 실제 이들 군사정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국회였다. 1961년의 5·16 쿠데타를 비롯하여 1972년 유신 선포 그리고 1980년 전두환의 5·17 계엄확대는 모두 “모든 정치활동의 금지”를 선포하면서 일차적으로 국회의 움직임을 일체 봉쇄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특히 유신헌법에 의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간선제로 변경하였다. 또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유정회(유신정우회)’라는 이름으로 임명하고 대통령이 헌법의 기본권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 등을 시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국회 해산권과 모든 법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가지게 되는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이 혼자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장악하였다. 또한 대통령 임기도 6년으로 연장하고 중임 및 연임 제한도 철폐하여 사실상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국회의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폐지하고 대통령에게 헌법개정권과 국회 해산권도 부여하였다. 나아가 유신 헌법은 대통령을 행정, 입법, 사법의 삼부(三府) 위에 군림하는 ‘국가 영도자’로서의 ‘국가 원수(元首)’로 규정하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국회 권한의 약화라는 과제는 지속적으로 정권의 최대 관심사였고 제1의 역점 사업이었다.

 

오늘 우리 국회 난맥상의 뿌리는 군사정권의 국회 왜곡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의 국회는 독재 권력, 더욱 구체적으로는 군사정권이 얽어놓은 족쇄에 포획되어 있다.

실제 초선으로 여의도에 입성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인사할 곳도 많고 보고도 많이 받아야 하고 가볼 곳도 많고 등등……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가 1년쯤 되어야 비로소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임위원회의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임위에서 나름 성실하게 법안을 심사하여 의결해봤자 ‘제2원(院)’으로 불리는 법사위에서 백년하청 묶어 놓을 수도 있고, 때로는 아예 내용까지 수정해버린다. 의원 위에 의원 있고, 상임위 위에 법사위 있는 꼴이다.

법사위의 이러한 ‘제2원’으로서의 높은 위상은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완성되었다. 또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되어 막 상임위 일이 손에 잡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이제 상임위를 바꿔야 한다. 의장 역시 임기 2년이다. 사실 2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금방 흘러가버린다. 2년 임기란 실제 ‘의식’과 행사만 치르다가 보내기 딱 좋은 기간이다. 세계의 어느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상임위 위원의 2년 임기제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매년 10월이면 국감, 즉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국감이지만, 의원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국감 두 달 동안 그리고 국감 준비에 한두 달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세계 어느 의회에도 국정감사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에게 입법이란 문자 그대로 본업이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든 이 원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입법권한이야말로 의회와 의원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에서는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의원이 그 법안을 충실하게 제정하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보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법률에 의해, 구체적으로 국회법의 규정에 의해, 법안에 대한 모든 검토 권한이 모조리 국회 공무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가히 ‘비(非)의회적 제도’ 아니 ‘반의회적 제도’라 불러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이러한 ‘비정상적’ 제도는 당연히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국회 공무원에 법안 검토 권한을 부여한’ 오늘의 이러한 제도는 국회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통제하고자 한 박정희, 전두환 독재 권력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것이다.

그래서 국회란 외부에서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이지만, 정작 입법이라는 본업과 관련해서는 할 수 있는 게 실제로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하여 결국 국회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으로 전락해버렸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국회는 군사독재 권력이 의도한 바대로 족쇄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군사정권이 남긴 국회적폐의 청산이 국회개혁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지금 국회 개혁의 핵심은 역대 군사정권이 국회를 무력화하고 통제하기 위해 왜곡시킨 제도적 족쇄 장치들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데 있다. 그 제도적 족쇄 장치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큰 문제는 이제까지 누차 강조했듯 의회제도의 기본과 원칙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교란시키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이다. 이외에도 국회 운영상의 족쇄 정치인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권한, 상임위 위원의 2년 임기제도와 국회의장 2년 임기제 그리고 국감제도 등도 모두 군사독재가 남긴 적폐들이다.

이제 군사정권이 왜곡시킨 이러한 비정상적인 제도들을 폐지하고 개혁함으로써 의회제도의 보편적 규범을 복원시켜내야 한다. 그것이 곧 국회가 진정 의회다운 의회로서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우리 국회도 불신의 깊은 늪을 벗어나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권력이 왜곡시켜놓은 ‘국회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국회 개혁의 시작점이자 그 본질이며 핵심이다.

 

소준섭

화, 2020/08/1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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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공기와 더불어 생명체 유지에 필수물질이다. 만일 물과 공기가 없다면 사람과 같은 동물뿐만 아니라 꽃피고 열매를 맺어주는 식물조차 살아남지 못한다. 특히 물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광합성을 일으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바닷물과 민물의 풍부함에 눈이 팔려 그 소중한 가치를 지나치기 쉽다. 물은 지구 표면의 71%를 덮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들과 생물들이 이용 가능한 지하수는 0.61%, 호수와 강물은 0.01%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물은 빙하 형태로 2.04%를 차지하고, 바닷물은 나머지 97.33%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지구상 물의 분포는 인간들이 음용가능한 물이 매우 귀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처럼 귀하고 중요한 물이 요즘에 들어 간헐적으로 특정지역에 국소적으로 쏟아지는 폭우로 변하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을 낳아왔다. 그래서 대륙을 지배하던 중국의 왕조가운데 치산치수를 잘하면 좋은 군주 소리를 들었지만 홍수 예방과 치산치수를 잘하지 못하면 권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물의 정치’야말로 민심 지지와 이반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토목국가에서 건설재벌과 토목학계, 토호 중심의 지역정치는 이익담합공동체로써 공동체이익 또는 일반 이익이라는 이름아래 사익 추구와 특수이익의 관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올해 한국에서는 6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8월초가 되어서야 50일이 넘는 긴긴 장마가 끝났다.【1】 “이번 장마는 기후위기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곳곳에 쏟아진 폭우로 논밭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는 물난리를 겪었다. 특히 그동안 토목건설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대로 “대하천(대강, 大江)에 큰 댐이 있어야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모두 거짓과 기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4대강 16개 보 건설이후 큰 비가 오지 않은 탓에 그런 검증기회가 없었다.

이번 8월 장마의 폭우로 인해 6일 한탄강댐 상류의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8일 섬진강댐 하류의 구례와 하동, 용담댐 유역 남원, 임실, 순창, 무주, 진약 지역 마을과 저지대 농지가 물에 잠겼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댐을 짓지 않아서 홍수피해를 입었다고 설쳐댔다.

 

4대강 사업성과에 대한 전면 재평가 기회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과 환경단체가 필사적으로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큰 댐 건설을 강행한 끝에 16개보(洑)를 설치했다. 이 막대한 토목사업은 한국형 녹색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즉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아래 2008년 12월 29일 낙동강지구 착공부터 시작하여 2012년 4월 22일까지 무려 22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한 대하천 정비 사업이었다. 즉 홍수조절과 수량 확보를 위해 4대강 본류를 준설하고, 16개의 보를 설치하고 수변 지역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2013년 박근혜 정부시절 감사원 감사를 해 보니 이 4대강사업은 한 마디로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래서 강바닥까지 파낸 지역이 생겨났으나 도로 메워지는 곳이 확인되었다. 어찌되었든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경남 창녕군의 낙동강 제방 일부도 8월 9일 붕괴되었다.

4대강 사업의 홍수 예방 효과에 대해 효과가 있다는 쪽은 이번 섬진강 유역 제방 붕괴는 4대강 사업에서 빠졌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류와 지천까지 4대강 사업을 확대했다면 홍수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낙동강 제방 붕괴는 약한 제방 탓이지 낙동강 보 설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는 쪽 주장은 섬진강 유역 제방 붕괴는 갑작스러운 댐 방류 때문에 일어났다면서 섬진강이 4대강 사업 제외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홍수피해가 적은 4대강 본류는 이런 사업 이전에도 홍수 피해가 적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낙동강 보 설치로 인해 수위와 수압이 높아져 낙동강 제방이 붕괴되었다고 설명했다. 4대강 반대 의견을 돌이켜보면 4대강 본류에 수많은 보 설치할 게 아니라 지류와 지천 정비부터 해야 하고, 하천 바닥까지 긁어대는 준설을 하지 말며, 한반도 대운하는 전혀 경제적이지 않다는 반론을 폈었다. 건설재벌과 토목학회, 강남부동산지옥 향유 세력이 이익담합공동체를 형성, 강행했다.

환경부는 “이렇게 큰비가 온 적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4대강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과연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 효과가 있는지 오히려 홍수 유발 가능성이 있는지 분석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미 4대강 사업은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대법원에서 법적 판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국무조정실 산하 ‘4대강 사업조사평가위원회’의 분석대상이 되어왔다. 큰 비가 내리지 않았던 때였는지 이 ‘4대강조사평가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4대강 사업 후 대부분의 구간에서 홍수 저감 효과가 확인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보의 역할에 대해 “댐처럼 홍수 조절 용량을 가지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22조 원이라는 막대한 국민혈세를 투입하였지만 애초부터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었음을 확인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이처럼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업들이 비경제적 평가에도 강행됨으로써 터무니없이 많은 국민세금이 낭비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통령후보 선거 공약대로 2018년 8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이 구성되어 4대강 보를 개방하고, 그 영향을 모니터링해 처리방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2019년 2월 조사평가단은 생태 모니터링과 보 유지 시 경제적 편익을 평가했다. 그래서 우선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중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의 해체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보 해체나 4대강 재자연화 추진은 답보·지체·유야무야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의 4대강사업‘이라는 독립언론 기획취재물이 방영되었다.【2】

 

섬진강 유역 둑 붕괴는 인재가 맞나?

지난 8월 7일과 8일 하루 밤 사이에 489 mm의 폭우가 구례에 내렸다. 갑자기 늘어난 엄청난 수량의 물은 저지대로 흘러갔다. 섬진강변에 설치되었던 낡은 다리로 넘어 물은 흘러 넘쳤고, 불어난 물은 강변 쪽이 아니라 강변 밖 쪽의 둑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는 탓에 이 수압을 견디다 못한 둑이 허물어지며 구례읍내 주택가는 한 순간에 물에 잠겼다. 얼핏 보면 자연재해의 모습이다. 비가 한순간에 많이 쏟아졌으니 어찌할 도리가 있었느냐는 게 수량을 관리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입장이었다.

물을 모아두었다가 물을 대 주고 물세를 받아 운영한다는 게 한국 용수(K-Water)라는 구호로 널리 알려진 한국수자원공사이다. 이번 폭우피해를 낳게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문제의 섬진강댐 관리주체의 하나도 수자원공사이다. 지난 8월 8일 섬진감댐은 평소처럼 강우예보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거이 끝나간다고 판단하였는지 물을 가두어두기 위해 방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만수위에 가까이 댐 그득히 집수하였다. 그러다가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자 방류를 시작했다. 약 40분간 방류한 수량은 최대 초당 8.52t에 달했다.

계곡에서 큰물을 만나 곤욕을 치른 사람들은 그 공포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이 뛰어들 듯이 물기둥이 이룬 채 갑자기 쳐내려온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며칠에 걸쳐 내리는 이슬비나 가랑비는 내리는 족족 지면을 적시며 땅 속으로 땅속으로 스며들고 가라앉는다. 이에 비해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강수량이 한꺼번에 많아지게 되면 그처럼 지면을 적시며 지하로 스며들 시간도 없이 엄청난 물이 그대로 아래로 치고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깊은 산속 계곡에 모아진 많은 빗물은 작은 연못이나 소(沼)를 거친 뒤 커다란 물기둥처럼 되어 흘러내리는 것이다. 이처럼 빗물이 갑자기 쏟아져 일어나는 특수상황이야말로 한 두 사람으로써는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난이요 천재지변을 당한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기상예보에 주목해야 하고, 그런 호우를 회피하기 위한 사전예방조치를 해야만 한다.

상류의 댐에서 갑자기 방류를 하게 되었을 때 그 물은 하류로 흐를수록 유속은 느려지지만 유량은 더욱 많아지면서 하류 지역의 제방에 직접 압력을 가하면서 붕괴 원인으로 돌변한다. 제방(堤坊)이 붕괴되었다라고 표현할 때 사람들은 종종 ‘둑이 터졌다’고 말한다. 이처럼 둑은 엄청난 수량과 높아진 물의 압력에 의해 물러진 흙이 견디지 못하고 터지게 되는 것이다.

<그림 1> 댐에 물을 집수, 방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위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댐은 200년 발생빈도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되고 있다.【3】 그 이전시기의 건설된 댐은 100년 빈도의 홍수 대비용이었다. <그림 1> 참조.

섬진강댐은 다목적댐이다. 이번 방류사고는 어떻게 일어났을까? 첫째, 폭우가 퍼붓기 이전에 댐 수위조절 위한 예비방류를 부실하게 했다. 댐을 비워두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7일 오후 집중호우가 내릴 때 이미 수위는 둘째, 섬진강 하류지역 물난리가 일어난 8일, 섬진강댐관리소는 최대 허용치를 초과해 대규모 방류를 해버렸다. 셋째, 주민들에 제때 알려주지도 않았다. 처음엔 방류량을 “초과 안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방류량을 “넘겼다”고 말을 바꿨다. 섬진강댐 하류 수해는 7개 지역에 달했다[<그림 2>와 <표 1> 참조].

“동아일보 취재 결과 수자원공사는 8일 오후 3시 30분에서 4시 10분까지 40분간 섬진강 댐의 계획방류량인 초당 1,868t보다 평균 4.65t(누적 1만1160t) 많은 초당 1,872.65t을 방 류했다. 최대 초당 8.52t까지 초과한 때도 있었다.【4】

<그림 2> 섬진강댐 하류 7개 지역 수해 현황

출처 : 지명훈·강은지. “수위조절 때 놓친 수공, 방류시간 통보도 늦어 주민 대응 못해” 동아일보 2020. 8. 13.

<표 1> 섬진강댐 하류 7개 지역 수해현황(2020. 8. 12. 오후 현재)

국회 안호영 의원실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제출한「용담댐, 합천댐, 섬진강댐 운영현황 (2020. 6. 21. ~ 8. 11)」<표 2> 자료를 분석,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8월 7일 ~ 8일 집중호우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예년수위(용담: 246.73m, 합천: 149.95m, 섬진강: 178.38m)에 비해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림 2>에서 빨간 점선은 예년 수위].

<표 2> 장마기간 집중호우시 3개 댐 운영 현황 (단위: m)

예를 들면 용담댐은 예년보다 높은 수위에서도 예비방류를 하지 않았고, 홍수기 계획홍수위도 준수하지 않았으며 초당 2,500톤을 방류하면서도 30분 전에야 주민에게 고지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안호영 의원은 “이번 용담댐 주변지역의 홍수 피해는 집중호우만의 문제가 아닌 홍수관리 매뉴얼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인재(人災)”라고 지적했다. 특히 용담댐의 경우 집중호우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 용담댐 저수율은 이미 홍수기 제한수위인 85.3%에 도달했고, 다음 날에는 90% 가까이 다다랐다. 이런 상황에서 수자원공사는 「댐관리규정」에 따라 댐의 안전과 상·하류의 홍수 상황 등을 고려하여 당시 방류량을 늘려야 했지만, 오히려 초당 300톤가량 흘려 내보내던 방류량을 45톤으로 줄인 것이다. 또한 섬진강댐의 경우 8월 7∼8일 집중호우 전부터 홍수기 제한수위보다 3m 낮게 댐 수위를 유지해 사전에 1억1600만 톤의 홍수조절용량을 확보했으나, 8일 오후 2시 30분 홍수기 제한수위(196.5m)를 넘긴 197.89m를 기록하고 있었다. 안의원은 “홍수 관리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환경부가 홍수 피해 난지 열흘이 넘도록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모든 것을 <댐관리 조사위원회>로 넘기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임을 단언하며 피해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 조속한 결론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그림 2> 섬진강댐 운영현황(2020. 6. 21 ~ 8. 11.)

수자원공사 사장은 8월 13일 섬진강댐 하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찾아가 “제 때 물을 내보내지 않고 뒤늦게 대규모 방류를 하는 바람에 수해 피해를 입었다”고 항의방문을 하자 “3개 기관이 섬진강댐을 공동 관리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담당하는 역할이 있어서 그걸 넘어서 움직일 수 없다”고 변명했다. 섬진강댐은 수자원공사와 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3개 기관이 공동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런 물관리 체계를 책임지게 될 환경부는 어떠한가 들여다보자.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8월 16일 아침 10시 수해 현장인 구례5일장에서 상인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다. 그 다음 서시1교를 들른 후 구례상하수도사업소, 전북도청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이날 방문일정에는 송상락 전남도행정부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순호 구례군수, 영산강유역환경청장, 영산강홍수통제소장, 수자원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사고를 일으킨 쪽과 피해주민을 대신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동행한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의원은 지난 8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환경부 조 장관에게 “이번 폭우 피해는 수자원공사가 홍수 대비 메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고 질타했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인재적 요소가 있었다” 고 인정했다.

야 이 도둑놈들아

시도 때도 없이 국회 앞 노상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이들이 많다. 국회 정론관조차 이용할 수 없는 다급한 사정의 민원인들이 기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이나 의견을 발표하고 일장 연설을 하는 게 다반사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는 참으로 기가 막힌 장면을 보고 너무나 놀란 적이 있다.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단결 투쟁 이라는 구호가 새겨진 머리띠를 두르고 국회의사당을 향해 한 입으로 이렇게 외쳐대는 것이었다. 현장을 지나던 행인의 하나였던 필자에게는 바로 누구를 규탄하거나 사퇴하라는 말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들려왔다.

야 이 도둑놈들아 아 아 !!!

원래 ‘월급도둑’이란 말은 군대사회에서 널리 회자되어왔다. 군인이란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전시나 평화 시기에 모두 필요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종종 군대의 존재가 평화 시기에 너무나 많은 군사비 지출 부담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런 저런 군소리를 듣게 되는 게 보통이다. 특히 중요하지 않은 보직을 차지하고서 특별한 일도 없이 월급을 축내는 부류야말로 ‘월급도둑’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말은 제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공직자를 지칭할 때 빛을 발한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면 공직자 가운데 월급도둑을 몰아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를 보다 못한 노조집회에서 장관과 정부출연기관장들 가운데 몇 몇은 국민세금을 축내는 ‘월급도둑’이라고 단정할 만한 무책임과 무능력, 무성의를 질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번 장마피해에 대해 과연 누가 ‘월급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짓 했을까?

첫째, 폭우가 쏟아져도 너무나 많이 한꺼번에 쏟아진 이번 2020 장마 피해는 어떤 기준에서 본다면 얼마든지 예상된 것이었다. 6월초부터 중국 안후이, 장시, 후배이 등 27개 성(省)과 시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7월 초순에 이미 이재민이 4000만 명에 육박했다, 최대 담수호 장시성 포양호는 1998년 대홍수 당시의 수위를 넘어서면서 범람 위기를 맞았다. 일본은 7월초부터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7월 4일부터 내린 폭우로 하천이 범람하여 마을이 침수된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촌에서 고립된 주민들은 땅 바닥에 밥(식), 쌀(미), 물, SOS라는 글씨를 적어놓고 구조를 기다리는 사진이 이미 국내에 보도되고 있었다(한겨레 2020. 7. 6.).

한국에서도 이미 6월 29일, 강릉에 206밀리미터의 비가 쏟아져 6월 중 강수량 기록을 109년 만에 갱신했고, 속초시 설악동에 281.5 밀리미터의 비가 내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일 강수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기상청은 7월 14일까지 강한 바람과 함께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에 300 밀리미터 이상의 폭우가 예상된다고 12일 예보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하여 이번 장마철에만 16차례나 비구름이 덮쳐왔다. 따라서 수해대책당국은 이처럼 퍼부을 장마비에 대한 수방대책을 수립, 시행되었어야만 했다.

둘째,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이상기후에 따른 국지성 폭우는 자연재난을 낳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미 지적되었듯이 이번 몇 가지 폭우피해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아니라 인재지변(人災地變)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무용지물이 되고 만 한탄강댐의 문제과 그 상류지역의 상습침수문제에 대해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해야 하겠다.

셋째, 치산치수의 올바른 정치는 “정책 따로 집행 따로”가 아니라 공약이나 정책의 이행, 신뢰의 회복, 협치의 실천에서 그 성패를 좌우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의 줄기찬 활동과 요구에 부응하여 물관리를 일원화하자는 합의가 있어왔다. 즉 수질과 수량 재해예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건설부(수량)와 환경부(수질)가 나누어 맡고 있던 물관리행정을 환경부로 일원화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5월 12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장에 목격했던 사실은 건설교통부 국장이 출석하여 미래통합당 간사의 질문에 답하면서 아직 부처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 한마디에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자동 폐지되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이 물관리 일원화 문제를 담당한다고 말해왔던 대통령 직속 물관리위원회는 4대강 대형보(洑) 상시 개발 후 재평가 실시에 따라 보 해체, 재자연화 여부 등을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지역 농민들이 보 해체를 반대하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이 반대와 주저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전임 대통령 정책실장 등이 4대강 보 해체와 재자연화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들춰지고 있다.【5】 밥값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공직자들이 남아 있는 한 녹색국가로의 전환은 매우 더디거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걸 해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민사회의 감시와 함께 정치권, 특히 집권여당의 책임과 역할 제고가 너무나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선거공약을 통해 헌법이 보장한 규정을 성실히 수행하여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더불어민주당 2017. 4. 나라를 나라답게.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 공약집 247쪽). 즉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대한민국 헌법 제 10호 제34조 제6호). 슈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당으로써 이런 헌법 규정의 준수와 이행에 필요한 모든 입법 노력을 다해야 하며, 정부의 관련법과 예산 집행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감시하고, 촉구하며 선도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녹색국가로 전환하는 지름길이요 올바른 길이라는 점을 재삼재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권시기 4대강 준설과 보건설이라는 토목사업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으로 구성된 경부운하 컨소시엄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여기에 국내 토목건설관련 학회와 협회가 이익공동체를 구성했고, 강남부동산지옥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본친화 시장 세력들이 가세하여 졸속 강행되어 만들어졌었다. 이들 토목건설이익공동체는 이제 16개의 보가 완성되자마자 이제는 지역 토호정치세력과 유착하여 과거의 과실이나 중대 수환경 문제를 은폐·호도·분식하면서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야 할 강과 하천의 생명과 환경을 여전히 쥐락펴락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새롭고 신선한 ‘물의 정치’, 올바른 치산치수정책이 확실하게 수립되어 이런 구시대의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이익담합공동체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단호히 그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새로운 녹색생명 개혁공동체를 구성, 운영하는데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진보개혁세력과 함께 시민들이 참여하는 녹색국가로의 전환을 앞당기는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방송을 이번 장마기간을 각각 54일과 58일이라고 보도했다. 한국방송 창 296회: 54일 장마의 경고. 2020. 8.22. https://www.youtube.com/watch?v=96qc_kOhp7Q ; 한국방송 시사직격 41회. 슈퍼 장마가 남긴 경고. 2020. 8. 21. https://www.youtube.com/watch?v=n2D9hxfwvM4

【2】 뉴스타파 2020. 7. 21. 문재인의 4대강 https://www.youtube.com/watch?v=5iMl0teBBWs&t=1638s

【3】 https://ko.wikipedia.org/wiki/%EB%8C%90

【4】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813/102427206/1

【5】 문화방송 2020. 7. 21. 4대강에는 ‘꼼수’가 산다 – 후반부 – PD수첩. https://www.youtube.com/watch?v=UDT9_bZ9ZQI

 

허상수

현재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 전 성공회대학교 교수·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고려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공영역: 인권 및 과학기술사회학, 연구주제: 지속가능한 사회, 이행기 정의, 정보사회

금, 2020/09/0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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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즉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19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의학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이동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 모임 제한’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또한 사회학적 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어떤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발병 및 확산 초기에 그 ‘어떤 무엇’은 사회적 심성 또는 지배적 규범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의 ‘순종적’ 국민 덕에 방역이 잘 된다고 해석되었다. 물론 신천지 등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전체 사회보다 자기 집단에 ‘순종적’인 문화가 방역에 가장 큰 장애가 됨이 곧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질서에서 ‘집단도덕’이 핵심이라고 보는 견해는 근현대 주류 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인 ‘어떤 무엇’은 공공의료제도라는 ‘제도’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특히 한 국제기관에서 독일의 공공의료제도를 높이 평가하여 한국보다 방역에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공공의료제도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와 같은 의견이 대두했다. 그러나 스페인 등 여타 유럽 국가의 환자까지 실어와 병상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여 사회폐쇄가 연장되면서, 이런 관점은 설득력을 잃었다. 또 공공제도가 잘 갖춰진 대표적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난데없는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렇게 의료제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경우는 의료사회학적인 입장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의 감염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인 ‘어떤 무엇’의 핵심은 역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회폐쇄 여부, 즉 개인들의 이동량 통제 문제로 넘어갔다. 결국 3차 유행에 와서는, 역학조사 중심의 초기 감염병 대응에서 실패하여 익명적, 집단적 자유제한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구와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회폐쇄에도 불구하고 이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파티와 사적 모임에서의 감염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학교나 직장과 관련된 이동량까지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동량 감소로 상당히 잘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왔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결국 사회적인 ‘어떤 무엇’에서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정부 방침에 잘 따라주는 ‘순종적’ 심성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사회적 거리’의 표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아파트 경비원 폭행 주민, 정인이 사건 등의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분노를 통해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공감은 인간적 공감의 형태로만 표출될 뿐, 과로를 강요하는 산업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간호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적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에 대한 분노 역시 노동권의 문제보다는 개인 인권의 측면에서 공감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살인과 구별되기 힘든 양상의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인격적 분노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불능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제대로 따른 행위자가 시민들 개인에 한정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찰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조직적 행위자는 모두 책임회피와 무시로 일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학대 부모에 대한 인간적 분노 못지않게 컸다. 그러나 정인이에 대한 젊은 부모들의 진정성 있는 추모의 물결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경이기도 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인이에 대한 추모가 ‘남에 대한 추모’라는 거리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감의 변화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2차 집단’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은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정’은 인연 맺기와 유관한 친밀감이다. 일회적이거나 익명적인 성격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감이 아니라, 인연 지속의 기대감 속에서 호혜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연고가 배제된’ 공감으로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2차 집단’적인 관계에 가깝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2차 집단’ 관계의 핵심은 이익이라고 보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합한 ‘차갑고’ ‘계산적인’ 관계라고 규정했다. 물론 거기에도 호혜성이 성립하나, 그것은 ‘인격적 친밀감’이 아니라 ‘공적 의무’에 기초한다. 즉 만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층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이다.

서구에서는 그런 시민적 공감이 공적 제도화를 낳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절차들이 확립되었다. 즉 서구에서 제도화는 곧 규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현 역시 의미한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나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를 통해 보이듯이, 한국에서 공적 공감은 제도화로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공감되는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기대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제도화가 어려운 이유는 규범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자의 산업 논리가 더 우선인지, 아니면 피고용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어서 규범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규범의 상태이다. 또는 정인이 사건에서처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에게 공감하는 개인들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그 규범에 동조하지만, 제도를 지켜야 할 권력기관은 제도를 무시할 만큼 규범에 무지한 것이다.

시민 개인의 시민적 공감과 제도 규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마도 민주주의 절차를 권위적으로 제도화한 한국 정치사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즉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표된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중간 과정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단순 절차적으로만 적용되어왔다. 권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유대상이 되어 그 자체가 이익으로서 분배된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권력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들은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의 수준을 넘어 사무치게 인격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제도화가 개인들의 마음과 괴리되어 있는 만큼, 그리하여 제도화가 규범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 되고, 그리하여 사회적 규범이 무엇인지 확인이 안 되는데 개인들의 감정만 확인되는 상태에서, ‘남’에 대한 격한 인격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내 집단’과 ‘남의 집단’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질적으로 집단 관계를 규정하던 고전적인 사회적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나’, ‘공감되는 다른 개인’, ‘권력기관’으로 상호작용의 대상을 삼분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나’를 포함한 ‘개인’과 ‘권력기관’ 간의 권력 비대칭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시민 개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서의 방역 성공은 권력기관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쌍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주권자로서 미약한 개인의 처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마주하여,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방역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방역이 성공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방역 역시 서구의 방역 못지않게 위태로울 수 있다. 서구의 경우 개인 주권자 의식이 강한 개인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을 불신하여 방역이 어렵다면, 한국에서는 제도적 권리가 약한 개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역 정책을 따르기 때문이다. 시민 개인들의 이런 자발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솔선수범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한 권리’의 형태로 보상받아야 한다. 현재의 방역 성공은 한국의 의료제도, 경제 제도, 이익분배 방식 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타인에게 마음 깊이 공감하여 ‘시민적 동원’의 최고치를 만들어낸, ‘좋은 시민’들 덕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화, 2021/02/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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